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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22. 18:20

온유와 화해가 있는 삶!, 마태복음 5:21-26

말씀: 온유와 화해가 있는 삶!

성경: 마태복음 5:21-26

5:21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5: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5: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5:25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1. 구원

영국의 대문호로 손꼽히는 세익스피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정의를 구현한다. 그러나 이로써만 재판을 한다면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인간이 모두 죄인임을 잘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실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지 않고는 구원될 수 없음을 명백히 증거해 주고 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이다. 죄인인 우리에겐 예수님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서나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인데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 복수 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하기 때문이다(48).

 

3. 지켜야 할 것(21-22)

살인하지 말라

우리는 주 안에 있는 자들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는 주 안에서 형제를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구약시대의 제사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기 위한 의식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과 화목하려거든 그와 같은 제사를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목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다. 참된 화목이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있는 벽이 다 허물어질 때 이루어진다는 것을 새 계명은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주의 계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힘쓰고 있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5:21) 우리는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범죄 함을 슬퍼하시며 이 땅에 홍수를 내리셨다. 노아의 가족만 남기시고 지면에서 다 쓸어버리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와 언약을 세우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명하신다. 그에게 산 동물을 먹되 그 생명은 피째 먹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또한 피의 중요성을 말씀하시는데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었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9:5-6)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소중한 자들이다.

그러나 어떤 이는 실수로 살인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어떤 이는 고의로 살인하기 한다. 고살자는 고의로 살인한 사람을 말하는데 민수기는 고살자의 최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무릇 사람을 죽인 자 곧 고살자를 증인들의 말을 따라서 죽일 것이나 한 증인의 증거만 따라서 죽이지 말 것이요. 살인죄를 범한 고살자의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죽일 것이며 또 도피성에 피한 자를 대제사장의 죽기 전에는 속전을 받고 그의 땅으로 돌아가 거하게 하지 말 것이니라. 너희는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피는 땅을 더럽히나니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 너희는 너희 거하는 땅 곧 나의 거하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함이니라.”(35:30-34) 구약시대에 고의로 살인한 자는 그 또한 죽게 되었다. 하나님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시는 분이시고 하나님께서 만드신 땅이 더럽혀 지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 분은 거룩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명기에서 모세를 통해 신세대를 향한 언약 갱신을 말씀하신다. 피 흘린 죄가 제거 되어야 함에 대해 모세는 이렇게 말한다.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의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21:7-9) 우리는 주 앞에서 피 흘린 죄를 제거해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과 죄악들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두 씻어버리고 언약의 백성으로서 승리해야 한다. 생명의 소중함을 기억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타인을 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노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리가 타인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우리는 타인에게 노를 발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5:22)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피시는 생명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생명에게 함부로 노하지 말아야 한다. 형제에게 바보라 하지 않아야 한다. 주님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구약성경은 가인의 분노에 대해 기록한다. 가인은 동생 아벨의 제사는 받고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하나님께 화가 났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4:5-6) 하나님은 분하여 안색이 변한 가인에게 왜 안색이 변하느냐고 물으셨다. 주님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분을 내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언제 마음의 분을 품기도 하는가? 하나님께 큰 복을 받은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을 시기질투 하게 되었다. “그 형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참으로 우리를 다스리게 되겠느냐 하고 그 꿈과 그 말을 인하여 그를 더욱 미워하더니.”(37:8) 그의 형제들은 아버지께 최고의 사랑을 받은 요셉을 미워했다. 우리는 타인에 대한 시기질투를 버려야 한다. 이러한 미움의 감정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에서 노를 버릴 것을 말한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37:8) 우리는 내면의 분을 잘 다스려야 한다. 자기 안의 분을 표출하며 타인에게 화를 내는 연약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좋은 에너지를 이웃에게 나누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형제의 삶(23-26)

형제와 화목, 그 후 예물

주 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는 형제와 화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예배할 때 주님께 예물을 드린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물을 드리기 전에 형제와 화목한 후에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신다.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형제와 화목한 삶을 사는 것도 너무나 중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5:23-24) 우리는 날마다 자신과 이웃의 관계를 돌아보며 언제나 화목하기를 힘쓰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다면 주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성경은 변화된 삭개오를 소개한다. 세리였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한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19:8)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최고 우선순위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자신의 죄를 십자가 앞에 내어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함 받고 주의 자녀로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판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자 한다. 야곱은 계속 도피하는 삶을 살게 된다.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자기보다 앞서 보내며 그들에게 부탁하여 가로되 너희는 이같이 내 주 에서에게 고하라. 주의 종 야곱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에게 붙여서 지금까지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떼와 노비가 있사오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고하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더라 하라 하였더니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가로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인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누고 가로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32:3-8) 누구와 원수를 맺고 살아가는 삶은 근심만 있는 주 앞에서 아름답지 못한 삶임을 깨닫고 화목하게 살아가기를 위해 우리는 늘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편지하며 거룩한 손을 들고 기도할 것에 대해 교훈한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우리의 힘으로는 화목한 삶을 살 수 없다. 죄를 멀리하고 오직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화목하게 하실 것이다. 주님은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고 말씀하신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9:50) 그리스도인들은 맛이 나는 소금이 되어야 한다. 소금은 맛이 변치 않는 것인데 함께 소금을 먹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우정의 상징이다. 우리는 불변하는 우정을 가지고 형제와 화목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형제와 화목하기를 결단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쓰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고발자와 화해하라

그리스도인들은 이웃과 화목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수님은 고발자와 사화하라고 말씀하신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5:2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를 고소하려는 사람과 함께 법정으로 갈 때 너는 도중에 그와 재빨리 타협하라. 그렇지 않고 재판을 받는 날이면 유치장 신세를 져야 할 것이다.”(5:25) 우리는 언제나 이웃과 화목하기를 위해 지혜자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잠언에서 솔로몬은 지혜를 가지고 믿는 자들이 승리해야 함을 말한다. 담보와 보증을 했을 때 자신의 입의 말로 인해 잡히게 됐으니 이웃에게 겸손히 가서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라고 기록한다. “내 아들아 네가 만일 이웃을 위하여 담보하며 타인을 위하여 보증하였으면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 내 아들아 네가 네 이웃의 손에 빠졌은즉 이같이 하라 너는 곧 가서 겸손히 네 이웃에게 간구하여 스스로 구원하되 네 눈으로 잠들게 하지 말며 눈꺼풀로 감기게 하지 말고 노루가 사냥군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새가 그물 치는 자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같이 스스로 구원하라.”(6:1-5)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면, 이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5:26) 우리는 죄에 대한 보응이 있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큰 사랑을 입은 자들로서 서로를 향해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야고보 기자는 말한다.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2:13)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자비 없는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2:13) 이웃과 좋지 못한 관계 가운데 있다면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겸손한 자세로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님이 부어주시는 넘치는 사랑을 가지고 이웃과 화해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사랑이 풍성한 삶

문제가 없는 사회, 문제가 없는 가정, 문제가 없는 개인은 없다. 하지만 이러한 연약함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된다면 모든 문제는 문제가 아니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우리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웃인 형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며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긍휼을 구한다면 주께서 반드시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우리는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으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반드시 승리하게 됨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13:24) 천국 길은 좁은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때로는 부담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어 성령님께 붙잡힌다면 불가능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형제와 연합하여 동거하는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자신에게 온유가 넘쳐나고 이웃과 화해가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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