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728x90

말씀: 예수 안에서의 지체로서 연합하여 승리하는 삶!

성경: 전도서 4:7-12

4: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4: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 돈보다도 더

여인숙을 경영하는 늙은 부부가 있었다. 하루는 한 청년이 유숙하면서 큰돈이 든 가방을 맡기자 그들에게는 그 돈을 빼앗고자 하는 유혹이 생겼다. 그래서 그들은 청년에게 호박씨를 까서 먹여 정신을 흐리게 한 후, 다음날 그가 정신없이 그냥 가도록 하려는 꾀를 생각해 냈다. 그들은 호박씨를 까서 밤새도록 그 청년을 접대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청년은 보란 듯이 가방을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 그 청년이 떠난 후 그들은 청년이 숙박비도 내지 않은 채 간 것을 알았다. 그들은 큰돈을 빼앗고자 하는 것에 정신이 팔리다가 숙박비도 받지 못한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돈의 멍에가 되어 살지 말고, 돈의 유혹에 빠지지도 말고,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돈을 사랑하기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정직한 마음으로 끝까지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인생

본장에서 솔로몬은 불의함으로 가득 찬 사회의 모습을 말한다. 이는 인생의 허무함이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와 구조, 모든 것에도 있음을 알게 한다. 세상에는 권세 있는 자가 자기 힘을 과시하고, 힘이 없는 자는 억울함을 당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남을 속이기를 일삼는 자가 매사에 열심이 있는 자보다 더 큰 이익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참된 만족과 평안을 얻는 삶은 찾아보기 힘들기도 하다(1-6). 또한, 많은 부를 가지고 있지만, 후손이 없어서 희망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참된 우정을 나눌 친구도 없다면 그는 불행한 자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없고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날 때부터 권력과 부귀를 보장받은 자가 있고, 반면에 어떤 이는 피지배자로 태어나서 살아간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자라도 영원하지 않고 뒤에 오는 권력자에 의해 배척받게 마련이다(7-16). 저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허무하며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3. 한 사람의 수고(7-8)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는 해 아래에서 어떠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로서 세상을 잘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주님을 잘 섬기며 영혼의 만족함을 얻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자신이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내가 또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전도서 4:7) 여기서 헛된 것은 개인의 무력함을 가리키거나 죄 된 삶의 무의미함, 삶의 짧고 공허함을 가리키기도 한다. 솔로몬은 인간들의 삶을 볼 때 무의미하기도 하며 짧고 공허하기도 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길게 보이지만 정말 짧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지 않고 다른 것들을 좇는다면 그의 삶은 공허함 그 자체일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39:6) 어떠한 경우에는 자신이 쌓아놓은 부도 누군가가 취해갈 수 있다. 우리는 평생 부자가 되기 위해 힘쓰며 쌓아놓은 재물도, 사실은 그의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고하는 삶을 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전도서 4:8)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나 형제도 없이 혼자 살면서 억척스럽게 일하며 자기 부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즐거움도 마다하고 누구를 위해서 그처럼 열심히 일하는가? 이것도 다 헛된 것이며 불행한 일이다.”(4:8) 아들도 형제도 없이 혼자 사는 어떤 이가 일만 열심히 하며 돈을 모았는데, 그가 자신의 부에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어떠하겠는가? 그가 자신의 삶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며, 그것은 참으로 헛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늘 감사하며 만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1:13) 그렇다. 우리의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수고가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모두가 수고해야 하며, 결국은 모두가 세상을 떠나야만 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부자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12:20) 곡식을 더 쌓기 위해 곳간을 더 크게 짓고 쌓아놓아,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려는 부자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우리는 어떠한 부자도 자신의 소유를 다 놓고 이 땅을 떠나가야 함을 깨닫고, 부를 위한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다른 것을 좇기보다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주님을 먼저 따를 것을 결단하고, 영혼의 만족을 얻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 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55:2) 세상에서의 수고가 있음을 인정하며, 늘 감사함으로 주님을 잘 섬기며 영혼의 만족함을 얻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9-10)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는 해 아래에서 어떠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로서 형제, 자매에게 사랑으로 대하며, 서로 돕는 자가 되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을 고백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도서 4:9) 여기서 은 어떤 사람의 노동력을 고용하여 지불되는 대가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두 사람이 함께 수고하면 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임금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겠기 때문이다.”(4:9) 그렇다. 혼자서 애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할 때 좋은 성과가 있고, 좋은 보상도 받게 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함께 도우며 출애굽의 과정을 잘 이끌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다. 하나님은 말이 우둔하다고 고백하는 모세에게 형 아론이 있음을 언급하시며 마땅히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명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4:14-16) 주의 뜻 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일은 멋진 일인데, 자신이 그 일에 동참하고 있다면 그는 복된 사람일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전 12:18-2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존귀한 자들이며 서로가 한 몸임을 깨닫고, 서로 하나가 되어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도서 4:10) 혼자가 아니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나 아들이자 다윗의 친구인 요나단은 다윗에게 용기를 준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 23:16) 다윗이 십 광야 수풀에 있을 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두려워 말라 말하고, 친구 다윗이 왕이 되며 자기는 다음이 될 것을 아버지도 안다고 말하며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우리 또한 서로 좋은 믿음의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힘을 주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고, 베드로는 순교하기까지 주를 위한 삶을 살아갔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믿음 안에 있는 한 지체로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들을 겪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관계 속에서 잘 연단 받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27:17) 쇠는 쇠에 대고 갈아야 날이 서고 사람은 이웃과 비비대며 살아야 다듬어짐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공동체, 그리고 형제와 자매가 되어 늘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세 겹줄은 끊어지지 않음(11-12)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는 해 아래에서 어떠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의 지체들이 연합할 때 승리할 수 있음을 알고,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약한 자의 연합보다는 약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도서 4:11)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추운 방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진다. 그러나 혼자서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겠는가?”(4:11) 그렇다.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 혼자 누워있으면 춥겠지만,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게 잘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연합의 힘이 위대함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12) 여기서 끊어지지뽑아내다, 근절하다, 부수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뽑아내는 것부터 뿌리채 뽑아내는 것까지 두루 사용될 수 있는 말이다. 여기서는 삼겹으로 묶은 줄의 단단한 결속력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혼자서 막지 못할 원수도 둘이서는 막을 수 있다. 삼겹으로 줄을 꼬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이다.”(4:12) 영적 전투가 일어나는 상황 가운데서도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강한 전투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면 그 상황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여,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장애물도 능히 돌파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구약성경에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한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했다. 그들은 신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풀무 불 가운데 던져 넣음을 당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신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세 친구에게 화가 나 있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3:16-17) 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 다니엘의 세 친구와 같이, 우리 또한 연합하는 믿음으로 영적 전투에 승리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함께 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깨닫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소망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연약한 지체들을 품고, 연합하여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성령으로 연합하여 평안함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세 겹줄이 끊어지지 않음을 기억하며 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영적 전투에 승리하고, 믿음으로 주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세상이 아닌 주님께 나아와 쉼을 얻고, 성령 안에서 연합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것들을 좇아 정신없이 살아가지 말고, 주님께 먼저 나아와 마음의 쉼을 얻고, 성령 안에서 연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육신의 정욕을 위해 살아가지 말고,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 자가 되어 큰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을 잘 섬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쉼이 있음을 알고,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세상에서의 수고가 있음을 인정하며, 늘 감사함으로 주님을 잘 섬기며 영혼의 만족함을 얻는 삶을 살아가는 자! 믿음의 사람들로서 형제, 자매에게 사랑으로 대하며, 서로 돕는 자가 되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세 겹줄이 끊어지지 않음을 기억하며 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영적 전투에 승리하고, 믿음으로 주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728x90
728x90

말씀: 예수 부활을 믿고 전하는 자!

성경: 누가복음 24:5-10

24: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24: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 영혼 사랑

은 조그만 시골의 이발사이다. 어느 날, 그는 시로부터 큰 상금을 받고 장소를 옮겨 다른 주에 있는 마을에 더 큰 이발소를 차리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의 식구가 이사하기 전 환송회를 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해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은 다시 돌아와 그의 이발소를 열었다. 아마도 큰 곤경에 처했던 것 같았다. ‘은 가위질을 다시 하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큰 도시에 글쎄 교회도 주일학교도 없지 뭡니까? 사람들은 돈벌이와 도박, 술을 먹는데 너무 바빠서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더라고요. 주일이 되어서 아이들을 보낼 주일학교가 없던걸요? 난 그래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명예, 세상의 좋은 것들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며, 어린 영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 그때 무덤의 문은 열려 있었고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알려 주었다. 여자들이 사도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을 때 다른 이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무덤에 달려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다(1-12). 부활의 주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셨다(13-35). 제자들이 모인 곳에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사 구운 생선을 잡수셨다(36-43). 그 후 성경 말씀을 풀어 가르치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증인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명하셨다(44-49). 예수님은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제자들에게 축복하시고 승천하셨다(50-53).

 

3. 천사를 보고 놀라는 여인들(4-5)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누구를 보고 놀라게 되는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천사를 보고 놀라고 만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을 보고 근심한다. 그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보게 되고, 여인들은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댄다. 그리고 천사들은 어찌 다시 사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묻는다.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24:4-5) 여인들은 두 천사를 보고 얼굴을 땅에 대는데, 여기 얼굴을 땅에 대니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렇게 여인들이 반응한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인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보고 무척 놀라고, 경외심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의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는 대답에서 살아 있는 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말의 의미는 예수의 부활이 확실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이 확실하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 자들, 이 사실을 확고한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24:1-3)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큰 지진이 났었고, 예수님의 시체를 넣어 둔 무덤의 돌문이 굴려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마침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이 묻혀 있던 무덤을 찾았다. 그런데 무덤의 돌문이 옮겨진 것을 보고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인들은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간 줄 알고 근심한 것이다. 심지어 여인들 중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너무 슬픈 나머지 울기까지 했다. 그녀는 무덤 속을 본 후, 두 천사를 목격하게 되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20:11-12) 우리는 이렇게 무덤 안에 있던 천사들이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고 놀란 여인들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삼 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6-8)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몇 일만에 부활하셨는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를 깨고 삼 일만에 부활하셨다. 천사들은 이 사실을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에게 전하게 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24:6-8) 여인들은 천사들의 말을 듣고서야,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에서 기억하고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예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의 위엄과 예언의 성취를 함축하는 말이다. 예수님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서 살아계실 때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과거에 말씀하셨던 내용은 이렇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17:22-23) 천사들은 죽은 지 삼 일만에 부활하신다는 이 말씀을 여인들에게 상시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통해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을 기억하고 부활의 사실을 믿게 된다.

우리는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믿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 앞에 일어난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건을 믿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우리는 성경이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자신에게 응하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과 능욕, 침 뱉음을 받을 것, 채찍질 당하고 죽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18:31-33) 하지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망의 권세를 깨고, 말씀 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28:6)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어느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해야 한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을 때,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간섭하시고, ‘를 일으키실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삼고, 부활의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여,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여인들(9-10)

여인들은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행했는가? 여인들은 이 소식을 들은 후, 이 사실을 전하게 된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가 이 사실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린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24:9-10)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이 사실을 확실히 믿었다. 여인들은 슬픔을 떨쳐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빈 무덤과 천사의 말을 열한 사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소식을 전파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시고 다시 사셨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며, 전에 말씀하신 대로 거기서 주님을 볼 수 있음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말한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16:7-8)

여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놀랐다. 심지어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워하면서도 기쁜 마음이 샘솟아 올랐을 것이다. 여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28:7-8) 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도착한다. 여인들은 슬퍼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일을 전하게 된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16:10) 아마도 제자들이 처음에는 이 소식을 듣고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건이 기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믿기 어려운 이 사건이 실제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사셨다. 우리는 이 사건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믿을 뿐만 아니라, 믿고 전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전한 여인들처럼, 주의 부활을 믿고 전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부활의 소식을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성전을 헐면, 자신이 삼일 동안 다시 일으킬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19-2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육체였고, 유대인들에 의해 주님은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를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처음에는 그 말이 허탄한 듯이 보여 믿지 않았다. 여인들의 말을 들은 제자 중 베드로만이 무덤으로 달려갔다. 베드로는 무덤에 가서 빈 무덤을 확인하고 신비감에 싸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부활 신앙으로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삼 일만에 다시 사셨다. 다시 사신 예수님, 부활의 주님이 의 주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믿는 자들의 부활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 복된 삶을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을 지금 믿음으로 고백하고, 주님 오실 날까지 이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거친 세상에서 이 고백을 하기에 한없이 부족하지만, 주께서 도우실 때 이 고백이 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성령님께서 도우실 때에 이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복된 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728x90
728x90
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3. 24. 08:12

참 사랑.

참 사랑.

(바른성경) 요한복음 19:18 거기서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다른 두 사람도 그분과 함께 양쪽에서 못 박고 예수님을 가운데 두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참 사랑을 아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요한복음 19:18 Where they crucified him, and two other with him, on either side one, and Jesus in the midst.

(영어ASV) 요한복음 19:18 where they crucified him, and with him two others, on either side one, and Jesus in the midst.

(헬라어신약Stephanos) 요한복음 19:18 οπου αυτον εσταυρωσαν και μετ αυτου αλλους δυο εντευθεν και εντευθεν μεσον δε τον ιησουν

(히브리어Modern) 요한복음 19:18 ויצלבו אתו שמה ושני אנשים אחרים עמו מזה אחד ומזה אחד וישוע בתוך׃

728x90
728x90

'교육 >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시 사실 것을 믿는 믿음.  (0) 2016.03.26
물과 피를 흘리신 예수.  (0) 2016.03.25
내어줌 당하신 예수님.  (0) 2016.03.23
가시관을 쓰신 주.  (0) 2016.03.22
훈련  (0) 201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