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마음을 다해 주께 드리는 자!
성경: 누가복음 21:1-4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1: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21: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1. 하나님의 방문
어느 토요일 아침 ‘루즈벨트’대통령이 나가는 워싱턴 교회의 교구 목사 사무실에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이내 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번 주일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오실 것 같습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교구 목사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제가 지금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꼭 오실 것 같습니다. 정말 수많은 교인들이 참석할 만한 일이지요.’ 교회에 오는 이들은 각자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올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다른 이유에서 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이들은 자신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종교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는 어떠한 예배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중심을 다해 예배하는 복된 그리스도인,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교훈
본장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종말에 대한 예고를 주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본장은 내용 구성상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종말에 관한 문제 제기, 종말 선포,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이 그것이다. 본장의 주님의 말씀은 교육적 목적으로 주어진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칭찬하셨다(1-4절). 사람들이 성전을 칭송하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고(5-9절), 말세에 일어나게 될 여러가지 징조들을 말씀하셨다(10-28절). 그리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사 종말의 징조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분별할 것을 가르치셨고(29-33절), 한편으로는 종말을 맞이하여 성도들이 스스로 절제하고 기도하고 깨어있을 것을 가르치셨다(34-38절).
3. 헌금(1)
믿는 자들은 언제 예물을 드리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보통의 경우 예배드리러 교회에 나올 때,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린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것을 목격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눅 21:1) NIV 성경는 이렇게 기록한다. “As he looked up, Jesus saw the rich putting their gifts into the temple treasury.”(눅 21:1) 한글 개역 성경에는 헌금으로 번역된 말이 없고, 연보로 번역되어 있는데,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느 날 예수께서는 부자들이 와서 헌금 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셨는데 예수님께서 하루는 사람이 연보 궤에 헌금을 넣는 것을 보셨다.”(눅 21:1) 헌금은 [영] Offering, Gift, Contribution Offering이다. 이는 받은바 은혜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여 바치는 금전이다. 예배 때에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은 언제부터였는가? 헌금을 봉헌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의 습관이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에 의해 수입의 10분의 1이 하나님께 바쳐졌다(레 27:30). 그리고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예배 때 교회의 성례전에 쓸 것(빵, 포도주 등) 및 곤란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가지고 와서 드렸고 각각 소용을 충당했다(고후 9:8-15). 드디어 그것은 금전을 바치는 헌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3세기에는 이미 매월, 매년, 혹은 임시의 헌금이 행해졌다. 그러나 5세기 무렵부터는 십분의 1세가 행해지게 되었고, 7세기에는 제도로서 확립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유지 및 그 활동은 그것에 의해 처리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어떠한가? 이때도 국가가 교회의 경비를 지출하고, 또는 교회세로서 교회의 활동을 유지하는 금전을 거두는 일과 같이 대행하는 형식이 많은 나라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와 완전히 분리하게 된 곳에서는 신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헌금을 드림으로써 교회를 섬겼다. 이렇게 헌금은 예배의 중요 부분으로서 위치 하고 있다. 전례적인 예배의 경우 헌금은 설교 후에 봉헌송과 함께 드려진다. ‘나’는 어떠한 자세로 헌금을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헌금은 충동이나 흥분한 감정으로 드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헌금을 드리는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옳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계획성을 가지고 드리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고후 9:7). 우리 모두가 예물을 드리되, 주께 기쁨으로 드리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2-3)
예수님은 어떠한 예물을 기뻐하실까?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작은 예물도 매우 기뻐하신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신다.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눅 21:2) 주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유심히 보셨다. 그 후, 그의 제자들에게 올바른 헌금의 정신을 교훈하시는데 이를 통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주의하도록 경고하신 것이다. 가난한 과부가 드린 ‘렙돈’은 [그] leptovn(lepton) [영] Copper, coin이다. 그리스의 최소 동화(막 12:42, 눅 21:2)인데, 1/8센트이다. 누가복음 12:59에서는 ‘호리’로 번역되어 있다. 중량 1.7g, 앗사리온의 1/8, 고드란트의 1/2에 해당한다(막 12:42). 과부가 헌금한 렙돈은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유통하고 있던 청동화로 보인다. 예수님은 이 과부가 드린 렙돈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시며 불과 두 렙돈을 드린 것을 칭찬하신다. 그리고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라고 평가하신다. 우리는 위선의 적발과 경건의 발견에 있어서 예수님의 깊은 안목을 볼 수 있다. 렙돈은 당시 노동자가 받는 일당의 1/128에 해당하는 돈이었는데, 두 렙돈이 과부의 생활비 전액임을 감안 할 때 그녀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눅 21:3) 부자들의 많은 헌금보다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주의 깊게 보신 예수님은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헌금의 양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우리는 예물을 드릴 때 작은 양이지만 진실한 마음을 담아서 드려야 한다. 만약, 많은 양이지만 마음의 중심을 다해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 와야 한다. 예수님의 발 앞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녀를 비판했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닦는 그녀를 평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받아주셨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막 14:8-9)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아셨다.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향유를 부으며 마음 중심으로 나아온 그녀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행 10:34) 인간의 외모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예물을 드리는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나’는 어떠한 예배자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두 렙돈을 드린 과부처럼 중심을 다해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중심을 다해 예배하며, 중심을 다해 예물을 드리고,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부자의 헌금 VS 가난한 과부의 헌금(4)
하나님은 어떤 그리스도인의 헌금을 더 기뻐하실까? 예수님은 부자의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 중 과부의 헌금을 더 귀하게 여기셨다. 하나님은 풍족한 중에 드리는 헌금보다, 없는 중에 드리는 헌금을 더 기뻐하신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눅 21: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눅 21:4) 주님은 넉넉한 가운데 일부를 드린 예물보다, 없는 중에 전부를 드린 과부를 칭찬하신 것이다. 주님은 헌금의 양보다는 헌신하는 마음을 헤아리신다. 주님은 내면과 동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올바른 자세로 예물을 드려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 때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올 때 교회의 성례전에 쓸 것(빵, 포도주 등)을 가져 왔었다. 그들은 가난한 형제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가지고 왔는데, 그들의 교제의 모습은 매우 헌신적이었다. 또한, 부유한 신자들은 가난한 형제들의 생활필수품을 돕기 위해 자기들의 소유를 팔기까지 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던 것이 분명하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행 2:44-45)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나길 원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큰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 주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를 가졌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한다. 우리는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열방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 나기를 기도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크고 작은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나서, 서로 나누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그 마음을 예물이든 아니면 다른 어떠한 모습으로라도 주님께 표현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 ‘나’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예물을 드릴 것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가진 것이 없으면 없는 가운데 작은 것이라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풍족하면 풍족한 가운데 최고 좋은 것으로 드릴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며, 큰 것이 아닐지라도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 드리기를 기뻐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도전을 준다. 하나님은 헌금과 더불어 헌금에 담긴 마음을 받으신다. 참된 헌금의 정신은 생활비 전부라도 드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참된 마음을 담아 주께 드린다면 헌금의 크기와 관계없이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지시한 후, 건축에 쓸 예물을 백성들과 드리고 감사의 기도를 이렇게 올려드린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7)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며 기뻐할 수 있다면 더 큰 은혜이다. 다윗이 주께 드리며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주께 마음을 다해 드리며 기뻐할 수 있길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이다. 주께 기쁨으로 예물을 드리는 자, 두 렙돈을 드린 과부처럼 작은 것이라도 마음 중심을 담아 주께 드리는 자,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기뻐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알고 기쁨으로 주께 드릴 것을 결단 하는 자,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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