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
성경: 요한일서 4:16-21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4: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4: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1. 삶의 여정
삶의 여정에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무거운 짐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환경이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고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상적인 환경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겠으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좋은 환경에서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와서 근심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무거운 근심조차도 피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는 인내를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최상의 조건인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과 하와도 타락의 길을 걷는 실수를 했던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불평불만 하지 말고,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겸손하게 창조주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사랑하는 삶
전장에서 사도 요한은 사랑의 실천을 강조했다. 이제 본장에서 요한은 영들을 시험해야 함과 사랑이신 하나님과 그분을 사랑하는 성도의 행위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그는 누구든지 하나님께로서 난 자라면 그의 사랑을 통하여 그것을 입증할 수 있음을 언급한다. 거짓 가르침들이 활개를 칠 때는 진리의 확실한 시금석이 필요하다. 무엇이 시금석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시금석들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참된 것으로 인정하고 믿는 태도일 것이다. 이것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이다(1-6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러한 사랑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 사랑의 최고의 예는 우리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화목 제물로 보내신 사건 속에 나타난다. 이 숭고한 사랑이 그리스도인의 모범이다(7-12절).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신앙 고백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도 사랑 안에서 온전해 가야 한다. 완전해진 사랑은 두려움을 물리칠 것이다. 그리고 형제 사랑은 하나님 사랑에 대한 강력한 시금석이다(13-21절).
3. 사랑의 하나님(16-17)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떠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우리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 사도요한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고 지시하는 윤리의 근간이다. 따라서 언제나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통하여 사랑이 나타나야 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이듯이 주님과 그리스도인의 관계도 마찬가지로 사랑의 관계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을 알고 믿어,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울에게 쫓기는 삶을 살았던 다윗은 자신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노래한다. 다윗은 사랑의 하나님, 힘과 방패가 되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 18:1-3) 다윗은 자신을 건지신 하나님, 자신의 요새가 되시는 하나님, 피할 바위, 방패와 산성이 되시는 하나님을 노래한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아 알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였다. 우리는 고통의 현장,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그분께 간절히 기도하는 삶, 그분을 끝까지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반드시 경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사랑을 타인에게 흘려보내는 귀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8)
믿는 자들은 어떠한 능력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사랑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 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요일 4:17)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있게 되면 예수님처럼 담대하게 복음으로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삶 가운데서 예수님을 닮아 가며,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될 것을 날마다 선포해야 한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늘 깨어 있어 주와 동행하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또한, 우리는 날마다 주와 동행하고, 주님을 맞이할 그 날이 기쁨의 날이 될 수 있도록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도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3-14) 우리는 주의 제자 된 삶을 살아가며 받을 수 있는 핍박조차도 문제로 여기지 않는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매일의 삶 가운데 성령님의 위로와 인도하심,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길 기도한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을 결단하겠는가? 사랑의 하나님, 그분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확실히 마음에 새기고,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주님의 이름을 높여 찬양하며, 주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파하는 복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온전한 사랑(18-19)
믿음의 사람들 안에 무엇이 있을 때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가? 주의 자녀들 안에 예수님의 온전한 사랑이 있게 되면, 그는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요일 4:18)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오히려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벌 받을 일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는 것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증거입니다.”(요일 4:18) 사랑에는 결코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어떤 이가 벌 받을 일을 생각한다면 두려워해야 하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자들은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어떠한 신분의 사람들인가?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수 있는데, 이는 양자의 영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롬 8:15)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들로서 환경과 형편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주의 사랑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 그분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천국 시민이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히 12:28)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은 자들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복된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관계인데, 누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는가?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인인 ‘나’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알고, 가슴 깊이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우리는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천국 백성의 삶을 살고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10)
아직도 자기 자신을 주인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의 사랑의 은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음을 알고,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삶,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우리 가운데 성령님의 큰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을 결단하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분께서 ‘나’를 먼저 사랑하셨음을 깨달아 알고, 날마다 주의 사랑 안에 거하는 삶, 주의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형제를 사랑(20-21)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로서 누구를 사랑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 그리고 사랑을 입은 자로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우리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에 있는 형제 자매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다면 진정으로 위에 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함을 말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인 그리스도인들은 마땅히 서로 사랑해야 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 인생의 모든 불행과 분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서로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곳에 평화와 복이 있으며, 서로 미워할 때 분쟁과 파멸, 저주가 있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의 은총을 입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어떠한 형제라도 사랑할 수 있도록 날마다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요일 4:12)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믿음의 사람들로서 자신 앞에 있는 궁핍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요일 3:1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의 계명이다. 본문에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1) 우리는 나의 형제, 나의 부모, 나의 가족, 나의 친척, 나의 민족, 그리고 열방의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날마다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소망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사랑임을 기억하고, 날마다 성숙한 모습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자, 사랑이 넘쳐나는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한마음으로 서로 동정하고, 형제처럼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 3:8)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을 결단하겠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형제를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성경의 두 가지 핵심은 무엇인가? 바로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가 절대 별개의 것이 아님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7-39)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목숨을 다하여 주 여호와를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기도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사랑으로 행하고, 사랑으로 품어주고, 사랑으로 바라보고, 사랑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친히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가실 것이다.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친히 경험하고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자, 죄인인 ‘나’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깊이 체험하고 날마다 주의 사랑에 거하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성령님의 은혜로 형제를 사랑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