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3. 18. 10:00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알고.고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바른성경) 누가복음 1: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자들을 비추게 하셔서, 우리의 발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끝까지 잘 따라가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누가복음 1: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者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平康의 길로 引導하시리로다 하니라

(영어esv) 누가복음 1:79 to give light to those who sit in darkness and in the shadow of death, to guide our feet into the way of peace."

(헬라어신약stephanos) 누가복음 1:79 επιφαναι τοις εν σκοτει και σκια θανατου καθημενοις του κατευθυναι τους ποδας ημων εις οδον ειρηνης

(히브리어modern) 누가복음 1:79 להאיר לישבי חשך וצלמות ולהכין את רגלינו אל דרך השלו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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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죄 아래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삶!

성경: 로마서 3:9-18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 말의 지혜

어떤 사나이가 길을 걷다가 땅 위에 사과 모양을 한 이상한 것이 있기에 발로 밟았다. 그러자 그것은 갑자기 두 배로 커졌다. 사나이는 힘을 주어 다시 밟았다. 그러자 그것은 더 커졌다. 이번에는 지팡이로 때렸다. 그랬더니 그것은 크게 부풀어 결국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이때 신이 나타나 사나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아! 그것은 말싸움이라는 이름의 사과야. 상대하지 않으면 처음대로 있으나 맞서기만 하면 자꾸만 커지는 이상한 사과란 말이야!’ 말은 할수록 번지고 옮길수록 커지는 법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절제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아름다운 말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마침내 심판을 받고 망하게 되는 것이 결코 그들의 종교적 특권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망하게 된 것은 그들이 거짓되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까닭이다(1-8). 그리고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결론 짓고(9-20), 율법은 우리 죄를 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은혜는 그런 죄인 의식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1-31).

 

3. 죄 아래 있는 인간(9-12)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였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 아래에 있는 연약한 자이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을 증거한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 아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우리 유다인이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내가 지적했듯이 유다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같이 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3:9)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은 모두 죄 가운데 놓였다. 우리는 연약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자인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여기서 의인은 원어로 <divkaio": 디카이오스>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에 완전히 응한 자를 말한다. 이는 인간의 원죄로 인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일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한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타락한 인류는 더 이상 선을 행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땅 가운데 스스로 의인 된 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놓였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허락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3:11) 여기서 찾는 자는 원어로 <ejkzhtw'n: 에크제톤>이다. 이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또는 하나님의 공의를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찾지도 않는 이렇게 연약한 자가 바로 인간이다. 이렇게 작은 존재인 우리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무지하여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을 수도 없는 자인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그분은 잠시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실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율법을 좇아 그렇게 사는 자가 되려고 힘쓸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2) 바울의 이러한 증언은 사람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인 것이다. 주님을 알기 전에는 길 잃은 양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되지 못하고 의로운 자가 아님을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가 사는 길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이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 말고, 죄악을 사하여 주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해 아래에서 죄 아래 살고 있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되었음을 깨닫는 자가 되어,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인간의 거짓된 언어와 행실(13-15)

해 아래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행실을 하고 있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바울은 모두가 죄인 된 인간들이 행하는 죄악의 열매에 대해 열거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죄인 됨을 증거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이 혀로 속임을 일삼는다고 말한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3:13) 인간은 연약하여 자신의 입술로 범죄를 일삼는다. 바울은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아서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사람의 악한 마음이 입술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는 죄와 관련하여 속임을 베푸는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은 악인의 모습에 대해 시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10:7) 우리는 이렇게 악인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악인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입에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3:14) 여기서 악독, 신랄함, 가혹이란 의미로 지배자들의 난폭성과 잔인성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의 죄악상을 이렇게 말한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3:15) 여기서 흘리는제의적인 자리에서 피나 분비물을 쏟다, 버리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신약에서 순교자들이나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피와 함께 살인 행위의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다. 또한,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악행에 대한 묘사이다. 이러한 악행을 행하는 인간의 길에는 파멸과 고생이 언제나 있어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자가 이 시대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죄악을 인정하며 회개하고,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23: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 입술로 죄를 범하고 있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인간(16-18)

해 아래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영적인 감각이 둔하여 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죄악으로 얼룩진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3:16) 그뿐 아니라, 평강의 길을 잘 알지도 못한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3:17) 우리는 하나님 없이 바른길을 걸을 수 없는 자가 연약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연약한 자가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불행하며, 파멸과 고생이 있게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실체는 어떠한가? 바울은 인간 자체가 죄로 오염되었으므로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음을 증거한다. 율법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율법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는 그 율법을 지킬 능력이 인간에게 없고, 율법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57:21)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새 생명을 주시고,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18) 여기서 두려워함은 원어로 <fovbo": 포보스>이다. 이는 당황과 놀람을 뜻한다. 특히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 수반되는 경외심을 뜻한다. 우리는 권위가 있으신 하나님이 를 사랑하고 계심을 깨닫고, 그분을 최고로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으려 하나 어리석음을 범하는 자가 바로 인간이다. 연악한 인간,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르려고 하는 교만한 생각으로 범죄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어서 우리에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내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전적 부패한 존재인 우리는 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복된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지금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과 동행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19:5)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나의 행실을 살피며, 여호와를 찾는 삶!

우리는 구원 받은 주의 자녀로서 자신의 행실을 살피며, 여호와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3:10) 우리의 입술이 주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죄 아래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바른길을 걷게 하실 것이다. 죄 아래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되었음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사는 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작은 예수로 살 것을 결단하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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