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3. 14. 09:37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고.

그리스도 안에서 차별이 없고.

(바른성경) 갈라디아서 3:28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차별이 없으며, 너희는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다.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신분과 관계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깨닫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人이나 헬라人이나 종이나 自主者나 男子나 女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영어esv) 갈라디아서 3:28 There is neither Jew nor Greek, there is neither slave nor free, there is no male and female, for you are all one in Christ Jesus.

(헬라어신약stephanos) 갈라디아서 3:28 ουκ ενι ιουδαιος ουδε ελλην ουκ ενι δουλος ουδε ελευθερος ουκ ενι αρσεν και θηλυ παντες γαρ υμεις εις εστε εν χριστω ιησου

(히브리어modern) 갈라디아서 3:28 ואין עוד לא יהודי ולא יוני לא עבד ולא בן חורין לא זכר ולא נקבה כי אתם כלכם אחד במשיח ישו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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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죄 아래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삶!

성경: 로마서 3:9-18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 말의 지혜

어떤 사나이가 길을 걷다가 땅 위에 사과 모양을 한 이상한 것이 있기에 발로 밟았다. 그러자 그것은 갑자기 두 배로 커졌다. 사나이는 힘을 주어 다시 밟았다. 그러자 그것은 더 커졌다. 이번에는 지팡이로 때렸다. 그랬더니 그것은 크게 부풀어 결국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이때 신이 나타나 사나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아! 그것은 말싸움이라는 이름의 사과야. 상대하지 않으면 처음대로 있으나 맞서기만 하면 자꾸만 커지는 이상한 사과란 말이야!’ 말은 할수록 번지고 옮길수록 커지는 법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절제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아름다운 말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마침내 심판을 받고 망하게 되는 것이 결코 그들의 종교적 특권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망하게 된 것은 그들이 거짓되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까닭이다(1-8). 그리고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결론 짓고(9-20), 율법은 우리 죄를 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은혜는 그런 죄인 의식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1-31).

 

3. 죄 아래 있는 인간(9-12)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였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 아래에 있는 연약한 자이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을 증거한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 아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우리 유다인이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내가 지적했듯이 유다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같이 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3:9)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은 모두 죄 가운데 놓였다. 우리는 연약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자인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여기서 의인은 원어로 <divkaio": 디카이오스>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에 완전히 응한 자를 말한다. 이는 인간의 원죄로 인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일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한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타락한 인류는 더 이상 선을 행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땅 가운데 스스로 의인 된 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놓였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허락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3:11) 여기서 찾는 자는 원어로 <ejkzhtw'n: 에크제톤>이다. 이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또는 하나님의 공의를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찾지도 않는 이렇게 연약한 자가 바로 인간이다. 이렇게 작은 존재인 우리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무지하여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을 수도 없는 자인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그분은 잠시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실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율법을 좇아 그렇게 사는 자가 되려고 힘쓸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2) 바울의 이러한 증언은 사람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인 것이다. 주님을 알기 전에는 길 잃은 양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되지 못하고 의로운 자가 아님을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가 사는 길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이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 말고, 죄악을 사하여 주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해 아래에서 죄 아래 살고 있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되었음을 깨닫는 자가 되어,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인간의 거짓된 언어와 행실(13-15)

해 아래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행실을 하고 있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바울은 모두가 죄인 된 인간들이 행하는 죄악의 열매에 대해 열거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죄인 됨을 증거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이 혀로 속임을 일삼는다고 말한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3:13) 인간은 연약하여 자신의 입술로 범죄를 일삼는다. 바울은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아서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사람의 악한 마음이 입술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는 죄와 관련하여 속임을 베푸는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은 악인의 모습에 대해 시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10:7) 우리는 이렇게 악인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악인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입에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3:14) 여기서 악독, 신랄함, 가혹이란 의미로 지배자들의 난폭성과 잔인성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의 죄악상을 이렇게 말한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3:15) 여기서 흘리는제의적인 자리에서 피나 분비물을 쏟다, 버리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신약에서 순교자들이나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피와 함께 살인 행위의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다. 또한,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악행에 대한 묘사이다. 이러한 악행을 행하는 인간의 길에는 파멸과 고생이 언제나 있어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자가 이 시대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죄악을 인정하며 회개하고,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23: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 입술로 죄를 범하고 있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인간(16-18)

해 아래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영적인 감각이 둔하여 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죄악으로 얼룩진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3:16) 그뿐 아니라, 평강의 길을 잘 알지도 못한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3:17) 우리는 하나님 없이 바른길을 걸을 수 없는 자가 연약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연약한 자가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불행하며, 파멸과 고생이 있게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실체는 어떠한가? 바울은 인간 자체가 죄로 오염되었으므로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음을 증거한다. 율법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율법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는 그 율법을 지킬 능력이 인간에게 없고, 율법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57:21)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새 생명을 주시고,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18) 여기서 두려워함은 원어로 <fovbo": 포보스>이다. 이는 당황과 놀람을 뜻한다. 특히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 수반되는 경외심을 뜻한다. 우리는 권위가 있으신 하나님이 를 사랑하고 계심을 깨닫고, 그분을 최고로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으려 하나 어리석음을 범하는 자가 바로 인간이다. 연악한 인간,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르려고 하는 교만한 생각으로 범죄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어서 우리에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내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전적 부패한 존재인 우리는 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복된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지금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과 동행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19:5)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나의 행실을 살피며, 여호와를 찾는 삶!

우리는 구원 받은 주의 자녀로서 자신의 행실을 살피며, 여호와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3:10) 우리의 입술이 주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죄 아래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바른길을 걷게 하실 것이다. 죄 아래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되었음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사는 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작은 예수로 살 것을 결단하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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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7. 11:34

십자가의 능력, 고린도전서 1:18-25

십자가의 능력, 고전 1:18-25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1: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1: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1: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 유머: 치과

영심이가 치과에 가서 이 하나를 빼려고 하는데 치료비가 얼마냐고 물었다. 의사가 2만원이라고 대답하자 영심이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뽑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는데 왜 비싸죠? 그러자 의사가 대답했다. 물론 환자분이 원하시면 아주 천천히 뽑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2. 본장은 본서의 서론부에 해당하는 내용으로서 발신자의 이름 명기, 수신자의 이름 명기, 수신자에 대한 문안 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아울러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이유와 그들에게 주는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을 내용상 구분하면 영적 혼란과 분쟁을 겪었던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문안 인사와 감사의 말이 기록된 부분(1-9), 특정 지도자를 따라 형성된 고린도 교회의 분쟁을 다루는 부분(10-17), 고린도 교인들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서 세상의 지혜와 근본적으로 다른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을 가져오는 십자가의 도를 소개하는 부분(18-31)으로 나눌 수 있다.

 

3. 고린도 교회에 있었던 분파

고린도 교회의 분쟁의 주요 원인은 어느 특정 지도자를 따라 형성된 파벌이 상호 적대감을 유발시킨 것이었다. 그 파벌들은 첫째, 바울에 속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의 파당이 있었다. 아마도 제일 먼저 개종해서 믿기 시작한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은 처음 자기들에게 전도해 준 바울의 말밖에 들으려 하지 않았다. 둘째, 아볼로파가 있었다. 아볼로는 학문이 높은 사람이었으며 헬라의 철학에 밝아 교리와 성경을 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셋째, 게바파가 있었다. 이들은 베드로가 바울이나 아볼로보다 더 권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끝으로 그리스도파가 있었다. 이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들이야말로 아무 당에도 속하지 않고 파당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처하며 그리스도의 명령만 좇는다고 주장했다. 이들 모두 자기들 입장만 주장했기에 교회 내에 큰 문제를 야기시켰다.

 

4. 능력(18-21)

십자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는 크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십자가는 어리석게만 보이며 고통과 실패의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인류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놓는 큰 의미를 지닌다. 십자가의 도는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18)을 바울은 말한다.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이 된다. 복음이 가리웠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고후 4:3)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다(고후 10:4).

*십자가(十字架):Cross []staurov"(stauros) []Cross 고대서방세계에 있어서의 사형집행의 형구(刑具). 십자가는 고통과 죽음을 가져다주는 형구에 지나지 않았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에 의해 십자가는 사랑과 용서의 구현, 또는 자기희생의 표상으로 되고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심원한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되었다. 예수당시의 십자가에는 세가지형이 있었는데, X자형, T자형, 십자형이었다.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죄인의 이름이라든가 죄 패가 붙어졌다(27:37). 로마시대에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자에게는 이 형은 행해지지 않았다. 예수당시의 십자가형은 노예에 대한 형으로서, 치욕과 혐오를 뜻했다(19:31, 고전 1:29, 3:13, 2:8). 그러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써 그 치욕과 혐오는 사도들을 비롯한 신자들에 의해 영예로 바뀌었다(6:14).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인류에 대신하여 죄의 속량이 이루어진 때문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것으로서, 믿음으로써 받아야 할 것이다(3:22-25).

 

멸하고 폐하시는 주

우리는 하나님의 법을 잘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데 하나님은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시는 분(19)이시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성서에도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없애 버리고 똑똑하다는 자들의 식견을 물리치리라는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만 잘 의지하여 나의 지혜가 아닌 주님의 지혜로만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의 지혜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하시나 세상의 지혜는 불완전하다. 바울은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21)고 말한다. 하나님은 이 땅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실 수 있으므로 우리에게 세상의 지혜는 의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거짓말하는 자의 징조를 폐하며 점치는 자를 미치게 하며 지혜로운 자들을 물리쳐 그 지식을 어리석게(44:25)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우리는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는(1:22)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

하지만 인간의 불완전한 인간의 지혜에 비해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하시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22)고 바울은 말한다.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하나님을 알게 하며 어리석게 보이는 전도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는 기적들이 얼어나게 된다. 다니엘은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하나님께 있음(2:20)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지혜는 완전하시며 하나님은 우리의 찬송의 대상이 되신다. 예수님은 70인의 성공적인 여행을 격려하신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께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며,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임을 말씀하고 감사하며 기도한다(10:21). 영적인 비밀은 어린아이와 같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은 깊고,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하며 그의 길을 찾지 못함(11:33)을 깨닫고 주님만 의지하는 우리가 되어한다.

 

5. 부르심(22-24)

표적과 지혜를 찾는 이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찾을 수 있는 지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주님을 영접할 수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을 따라감에 있어서 단순하게 믿고 주님을 예배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았다(22). 하지만 우리는 유대인들과는 달리 주님을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할 때, 예수님은 하늘의 붉고 흐림을 통해 날의 좋고 궂은 것을 알면서(천기를 분별)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말씀하시며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다 하시며 그들을 떠나가신다(16:1-4).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우리는 다른 것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그리스도만을 따라가야 한다. 바울은 자신들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임(23)을 말한다. 이방인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 생명이 되시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만을 전하며, 예수님만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고 삼 일만에 살아날 것과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24:46-47)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나무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이 삼일 만에 다시 살리셔서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들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에게 하셨으므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게 됨(10:39-43)을 알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함(6:14)을 고백한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주를 잘 섬기며 살아가되 주님의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부르심을 받은 자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불러주심에 감사해야 한다. 바울은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임(24)을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가 되신다.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음(고전 1:30)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택한 자들은 예수님을 닮게 하시고, 예수님이 형제들 중의 맏아들이 되게 하시며, 믿는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시는(8:28-30) 주님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한다.

 

6. 의지의 대상(25)

십자가

그리스도는 나뉘지 않은 온전한 분이시므로 우리는 분파를 초월해 하나이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되 바울파, 게바파 혹은 다른 파로서만 믿고 다른 이들과 분쟁한다면 이는 그리스도를 올바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교회의 일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그 근거를 두어야 한다. 그것이 주님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는 대표적 모습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온전히 주님을 교회의 머리로 인정하여 주님 안에서 일치된 교회의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만 의지

하나님의 어리석음은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은 사람보다 강함(25)을 인정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붙였음을 말씀하시며 여리고 성을 매일 한 번씩 엿새 동안, 제 칠일에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이 양각나팔을 길게 불 때 백성들이 큰 소리로 외쳐 부를 때 성벽이 무너져 내리게 될 것(6:2-5)을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할 때 역사는 일어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고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셔서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약한 것들을 택하셔서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실 수 있는 분임(고전 1:27-29)을 기억하여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승리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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