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성경: 마태복음 5:13-16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 소금과 빛

우리는 꽃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꽃이 시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꽃이 그 최고의 특성을 상실할 때, 그것은 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승용차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 차가 사고가 나서 더 이상 차로써 그 구실을 하지 못할 때, 그것은 쇠붙이로서 다시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소금과 빛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금과 빛은 그 기능을 일단 상실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인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으로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 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잘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사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복수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 하기 때문이다(48).

 

3. 세상의 소금(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세상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여기 소금이니의 소금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금은 구약에서는 부패 방지에 긴요한 물질이었고, 정결과 순수함의 상징어로 등장한다. ‘소금[] jl'm,(melach) [] a{la"(halas) [] Salt이다. 소금의 화학명은 염화나트륨이고 보통 식염이라고도 한다. 천연 해수 중에는 약 2.8% 포함되고, 또한 암염에서도 산출된다. 사해의 물은 보통해수의 6배 가까이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제염에 이용되고, 그들 이스라엘은 세돔(소돔)에서 근대적 제염공업을 발달시키고 있다. 소금은 성막, 성전에서의 제물에 넣어졌다(2:13, 43:24). 소금은 맛이 변치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데, ‘함께 소금을 먹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우정의 상징이다. 그리고 [소금의 언약]이라는 표현을 낳았다(대하 13:5와 스 4:14 비교). 그런 점에서 막 9:50에 있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는 명령과 서로 화목하라는 말이 결합되어 있는 일은 의미가 있다. 소금은 또한 건전한 인격과 언어에도 사용되어 있다(4:6). 반면에, 파괴된 성읍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9:45). 롯의 아내는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를 돌아다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19:26). 우리는 예수님도 지상의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하셨음(17:32, 33)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지옥에 가는 이들은 누구나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을 말씀하신다.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9:49-50)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옥에 가는 자들이 아니라, 천국에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형제자매로서 서로 원수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법대로 다시 살아가는 자가 아닌, 주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벧후 2:20-21)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세상이 좋아서 다시 세상을 향해 간다면 그의 믿음은 주님께 칭찬받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는 거룩한 주의 백성,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다. 우리는 맛을 잃지 않는 소금, 이 소금으로서 반드시 세상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세상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들이 아닌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소금으로서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매일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14:34-35)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금의 신분을 잊지 말고, 소금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세상의 빛(1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신분을 소유한 자들인가?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5:14) 여기 빛이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빛은 거짓이나 부정의 개념과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며 여기서는 죄악된 세상에 복음을 밝히는 성도의 사명을 강조하는 말이다. 빛은 [] r/a('or), r/am;(ma'or) [] fw'"(phos) [] Light이다. 빛은 육안으로 느끼는 비교적 파장이 짧은 전자파이다. 넓은 의미에서 눈으로 느낄 수 없는 자외선, 적외선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눈으로 느껴지는 빛을 가시광이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이 자연적인 빛 외에도 초자연적인 빛,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며(27:1, 119:105, 24:13, 3:20), 하나님은 제 1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1:3). 그리고 하나님은 옷 입음 같이 빛을 입으셨다라고도 표현되어 있다(104:2). 빛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궁극적인 행복을 나타내는 생활과 관련해서도 기록되어 있다(36:9). 신약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빛이라하시고(8:12, 9:5, 12:46), 또한 요 1:5에는 하나님은 빛이시라(oJ qeo;" fw'" ejstin)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빛으로 일컬어진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5:14).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빛나는 것은 사람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빛의 사명은 무엇인가? 빛의 사명은 어두움의 세상에 빛을 발하여 모든 것을 비추는 일이다(5:6, 5:8). 등대 위의 등불이 모든 것을 비추듯이 우리는 어두움의 세계에 참 빛을 보여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은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12:36)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를 가졌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한다.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고 천국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또한, 빛의 자녀들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우리는 모두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이신 예수님께 지도를 받으며 좁은 길을 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 가운데서 어두움의 유혹이 오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빛의 아들로서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믿음을 잘 지키어 나가야 한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등경 위에 등불(15)

어두움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빛으로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등불을 두어야 하는가?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5:1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5:15) 빛을 밝히기 위한 등불은 등경 위에 얹어 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등불[] r/am;(ma'or) [] luvCno"(luchnos) [] Light, Lamp, Torch인데, 등에 켠 불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장막이나 집안에 주야로 등불을 켜둘 필요가 있었다. 당시의 실내는 어두워서 주간에도 작은 것을 찾는데는 등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15:8). 그리고 그것은 조명의 목적을 위함이기도 하고 항상 불씨를 손 가까이에 준비해 두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에서 여러 가지 상징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켜있는 등불은 건강과 활기있는 생활을 의미하고, 꺼진 등불은 그 반대를 의미했다(18:28, 13:9, 24:20, 31:18 기타). 하나님은 사랑의 등불(119:105)이시고, 다윗도 이스라엘의 등불로 말해졌다(삼하 21:17-). 다윗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그가 한번 넘어지는 때면 이스라엘은 등을 잃어 암흑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등불은 하나님의 보호의 상징(29:3)이었고, 계명은 인생의 등불(6:23), 그리고 눈은 몸의 등불(6:22)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등불이시다(21:231:6-9, 8:12). 우리는 빛 되신 주님, 등불이신 주님을 따라 등불을 비추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놓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삶은 반드시 형통하게 됨을 알고, 그렇게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4:18)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빛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빛의 자녀로서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영적으로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2: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세대 가운데서 여러분이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2:15) 우리는 흠이 없고 순전한 믿음을 가진 자, 악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서 영적인 복들을 받아 누려야 한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순수한 자이나, 큰 믿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의 신분을 가진 자임을 깨닫고,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게 될 것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는 이미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임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여전히 어둡고 썩어져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빛과 소금임을 기억하고 주와 동행하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5:14)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언제 어디서나 비취시도록 그분 앞에서 겸손히 서 있어야 한다. 빛을 받아들이는 자, 그는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자신 앞에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소망 삼고, 영원한 세계에서 왕 노릇하게 될 그 날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22:5) 우리 모두가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자, 세상의 빛으로 사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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