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신실하신 주를 갈망
성경: 시편 91:1-11 / 모세의 시
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91: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91: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91: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91: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91: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91: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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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프 챔피언 에드 파골
그는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긴 골프 챔피언이다. 그는 10살 때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그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왼쪽 팔이 20cm나 짧아졌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중에도 앞으로 골프 챔피언이 되겠다는 소망과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그렇게 짧은 팔을 가지고 어떻게 골프를 칠 수 있겠소?’라고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때 그는 ‘할 수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날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더욱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언제나 주안에서 용기를 잃지 말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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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인도하심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의지할 분은 누구신가? 시인은 인간의 의뢰할 존재는 하나님뿐임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여 찾는 자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뢰는 기도를 통해 나타나며,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시어 환난 중에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본시는 험한 인생의 여정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최고이자, 최후의 요새임을 고백하고 있는 시로서 시 46편과 유사한 내용구조를 지니고 있다. 감정의 심한 굴곡을 담고 있는 비탄 시와는 다르게 초지일관 하나님의 변함없는 보호와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있는 신앙 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시인의 신뢰는 하나님에 관한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흔히 발견되는 일시적이고 심리적인 믿음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시인은 이스라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상기하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 보호와 구원과 영화가 베풀어질 것임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누리는 안전에 대해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본시는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선언적 고백을 하는 전반부와(1-2절), 해명적 고백을 하는 중반부(3-13절),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적 응답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14-16절)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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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1)
‘나’의 피난처가 되는 분은 누구신가?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자라고 고백한다. 이는 세상의 모든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늘 아래로 피할 때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도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거해야 하는가?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시 91:1) 여기서 ‘지존자’는 원어로 <@/yl][,:엘레온>인데 ‘가장 높은 자’라는 뜻이다. 이는 세상 나라의 통치자들이나 그들이 섬기는 신들과 비교해 탁월하시고 홀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우리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어디인가? 은밀한 곳은 ‘비밀 장소’를 의미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곳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지존자 하나님을 나타낸다. 다음으로 ‘거하리로다’의 의미는 새끼가 어미의 품속에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되어 평안한 쉼을 얻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계신 곳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주님을 다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호흡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주님께 감사를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지식으로 알고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면 주께서 그 안에 거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5-16) 하나님께서 죄인인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속에 모셔 들이고 주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의 자녀로서 피난처 되신 주님 품에 거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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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난처요 요새이신 하나님(2-3)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 요새, 의뢰할 분임을 고백한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시 91:2)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다윗도 반석, 요새, 건지시는 자,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신 하나님을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본문에서 또한 시인은 사냥꾼의 올무와 전염병에서 건지실 주님을 고백한다.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시 91:3) ‘사냥꾼의 올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는 들짐승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을 일컬으며 성경에서는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한 간악한 계교를 가리킨다. 우리는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서 실수하고 심지어 타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그 분께 기도하며 깨어 있게 된다면 사냥꾼의 올무에 빠지지 않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타락할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벌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후 재앙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죄의 용서함을 구했다.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민 16:46-48) 타락한 인간들을 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로서 피난처 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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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의 진실함(4)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우리 하나님은 진실함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실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시 91:4) 여기서 ‘깃으로’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끼를 품는 어미 새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의 깃이 우리를 덮을 때에 우리는 안전하게 되며, 이렇게 보호하시는 그 분의 진실함은 최고의 방패임이 분명하다. 어느 날 아브람은 환상 중에 하나님을 뵈옵는다. 아브람은 롯을 구출하기 위한 전쟁의 승리 후에 정신적인 낙심 상태에 있었고 영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었다. 그 원인은 첫째,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돌라오멜’과 그의 연합군들의 복수전이나 가나안 열국과의 동맹전의 위험을 인식한 데 있었다. 두 번째, 가나안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셨기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가 된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셨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 15: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셨던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주의 백성들에게 신실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7-18)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분이시다.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나 주님의 말이 없어지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31)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으심을 기억하고 진실하신 하나님께 피하여 안전한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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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포와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음(5-6)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가? 시인은 많은 사람이 엎드러지더라도 하나님께 피한 자에게는 재앙이 가까이 못하며 악인의 보응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이미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모든 장자를 죽이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고 그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임한 재앙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을 행하실 때에도 반복되어 질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주 안에 있는 자들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주 안에서 이러한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음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시 91:5) ‘낮에 흐르는 살’의 의미는 한낮에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빛을 뜻한다. 이는 팔레스타인 같은 사막 지대에서 일사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것은 인간에게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주께서 보호하실 때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시 91:6) 개역한글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파멸은 원어로 <bf,q,:케테브>이다. 이는 ‘완전히 휩쓸어 가는 것’이 란 뜻으로 전쟁이나 기근같이 삶의 터전을 완전히 폐허로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주 안에 거할 때 전쟁과 기근에서도 우리는 두렵지 않게 된다. 다윗은 원수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 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시 27:1-3) 하나님께서 늘 생활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어떠한 두려움도 물리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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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악인들의 멸망(7-8)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를 해할 자는 아무도 없다. 본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시 91:7) 여기서 ‘만 명이’의 의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 재앙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할 때 어느 재앙도 ‘나’를 멸망시키지 못함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의 삶에 관여하셔서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보응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시 91:8) ‘보리로다’는 어떤 현상이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확언하는 표현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며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반드시 하나님 편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악을 싫어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창 7:23) 죄악이 관영한 인류를 물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어 주님만을 바라고 그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시 37:34) 주님 앞에서 악인은 패하게 됨을 기억하며 주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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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피난처이신 주님(9-11)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분은 누구신가? 그 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나’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본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시 91:9) ‘거처’는 어린아이가 완전한 평안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되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인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품을 의미한다. 우리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품속에서 안전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시 91:10-11)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재앙도 없고 천사들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갈 길을 보호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본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보호하여 주심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고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참된 지식과 사랑을 통해 올려지는 기도를 흠향하시고 위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시인이 예측할 수 없는 위태로운 삶의 상황에서 유일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소망했음을 기억하고 이처럼 황금만능주의, 향락주의, 음란한 문화 속에서도 결코 낙망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붙잡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우리가 절망처럼 느껴지는 세상살이에서도 주안에서 희망을 가진다면 반드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승리하게 될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신실하신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지도하실 주님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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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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