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3. 8. 17. 06:35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고.

(바른성경) 요한1서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성령님과 동행하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요한1서 3:18 子女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行함과 眞實함으로 하자

(영어esv) 요한1서 3:18 Little children, let us not love in word or talk but in deed and in truth.

(헬라어신약stephanos) 요한1서 3:18 τεκνια μου μη αγαπωμεν λογω μηδε γλωσση αλλ εργω και αληθεια

(히브리어modern) 요한1서 3:18 בני אל נא נאהב במלין ובלשון כי אם בפעל ובאמ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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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2. 9. 13:31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지 말고.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지 말고.

(바른성경) 잠언 21:6 속이는 혀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요, 사라지는 안개이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지 않는 지혜로운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잠언 21:6 속이는 말로 財物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求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영어esv) 잠언 21:6 The getting of treasures by a lying tongue is a fleeting vapor and a snare of death.

(헬라어구약septuagint) 잠언 21:6 ο ενεργων θησαυρισματα γλωσση ψευδει ματαια διωκει επι παγιδας θανατου

(히브리어modern) 잠언 21:6 פעל אוצרות בלשון שקר הבל נדף מבקשי מו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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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는 자로 살고!

성경: 야고보서 3:7-12

약 3:7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약 3:8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9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약 3:10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약 3:11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약 3:12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같이 짠 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

 

1. 천국에 가는 자가 되고

어떤 사람이 천사에게 안내를 받아 천국 구경을 갔다. 천사는 천국에 들어온 이 사람을 어떤 창고로 안내했다. 그런데 그 창고 안에는 사람의 혀만 가득히 쌓여있었다. 다른 창고에는 귀만 있었고, 또 다른 곳에는 눈만 가득 들어있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그 사람은 천사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천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서 착한 체하고 말만 한 사람, 듣기만 한 사람, 보기만 한 사람들의 혀와 귀, 눈만 천당에 오고 다른 것은 다 지옥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세상에는 위선자가 많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마음을 소유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어 천국에서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지혜로운 자가 되고

야고보서 저자는 선생이 되려는 자들에게 두 가지의 교훈을 언급한다. 첫째는 말을 조심하라는 교훈이다. 선생은 말의 능력을 올바로 깨닫고 통제되지 않는 말의 위험성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혀는 우리의 신체 가운데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부분일 뿐만 아니라 혀로 인한 결과는 온 신체에 영향을 준다. 야고보서 저자는 여러 가지 예증을 통하여 길들여지지 않은 말의 치명적인 위험과, 동일한 입술로 축복과 저주를 빌 수 있는 모순을 설명한다(1-12절). 둘째는 참된 지혜를 얻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질서를 깨뜨리고 시기와 분쟁을 유발시키는 지혜는 거짓된 지혜이다. 오직 위로부터 내려온 참된 지혜는 거룩하고 관용하고 평화를 이루고 선한 열매를 맺는 지혜이다(13-18절).

 

3.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혀임을 깨닫고(7-8)

하나님의 사람들은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혀임을 깨닫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혀임을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7-8) ‘8절'의 ‘길들여 왔거니와’는 사람이 자신의 의도대로 지배하고 움직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은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며 벌레와 해물까지도 길들이지만 제일 길들이기 힘든 것이 자기 몸의 혀임을 야고보 사도는 밝힌다. 그러면서 혀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이는 인간 본성이 타락하여 죄로 오염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자연 상태에서의 인간의 혀는 악독을 발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혀가 불과 같다고 말한다. 혀는 몸의 한 부분이지만 불과 같아서 모든 것을 살라버릴 수 있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혀는 불과 같습니다. 혀는 우리 몸의 한 부분이지만 온몸을 더럽히고 세상살이의 수레바퀴에 불을 질러 망쳐버리는 악의 덩어리입니다. 그리고 혀 자체도 결국 지옥 불에 타버리고 맙니다.”(약 3:6)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이러한 혀를 제어하기가 쉽지 않음을 깨닫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점진적으로 변화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혀의 힘이 강함을 알고 악하게 혀를 사용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윗은 사울을 피해 굴에 있었던 때 이렇게 고백한다.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시 57:4) 다윗은 대적자들이 쫓을 때 몹시 괴로웠고 날카로운 칼과 같은 그들의 혀로 인해 심신이 고단했을 것이다. 혀는 이처럼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다윗은 악한 자들의 혀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그 입으로 악을 토하며 그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시 59:7) 또한, 바울은 속이는 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롬 3:13) 이렇게 악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혀임을 깨닫고 혀를 잘 훈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도움으로 입술로 죄를 범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시 35:28) 악한 말을 하는 악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혀임을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를 나오게 하지 말고(9-10)

하나님의 사람들은 입에서 무엇이 나오게 해야 함을 깨닫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를 나오게 하지 말아야 함을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입술로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약 3:9-10) ‘9절’의 ‘형상대로’는 인간의 원형인 하나님의 신적 본질로 지정의를 포함한 내면적 속성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서로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저주할 수 없다. 야고보 사도는 특히 그리스도인이 입술로 범죄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것이 도리에 맞지 않음을 강조했다. 우리는 입술로 죄를 범하는 것 아니라, 하나님께 합한 마음을 갖고 그 마음과 일치한 입술의 말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께서 가라사대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하며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거짓된 경건과 거짓된 복종이 아니라 입술과 마음이 일치된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보응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입술로 저주가 아닌 찬양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윗은 재판받는 악인을 생각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저가 저주하기를 좋아하더니 그것이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하기를 기뻐 아니하더니 복이 저를 멀리 떠났으며 또 저주하기를 옷 입듯 하더니 저주가 물 같이 그 내부에 들어가며 기름 같이 그 뼈에 들어갔나이다.”(시 109:17-18) 저주를 좋아하면 그 저주가 자기에게 임하고 축복을 좋아하면 그 복이 자기에게 임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저주가 아닌 축복의 말을 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다윗은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지은 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시 34:1)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도움으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입술로 찬양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에 따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게 하지 말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제는 입술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11-12)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함을 깨닫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함을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같이 짠 물이 단물을 내지 못하느니라.”(약 3:11-12) 여기서 ‘무화과 나무’는 팔레스타인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나무이다. 여름에는 큰 잎들을 내서 그늘을 만들어 주는데 팔레스타인의 주요 산물 중의 하나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상징한다. 무화과 나무가 다른 열매를 맺지 않듯이 우리는 한 입으로 서로 다른 말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한 입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동시에 형제를 저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마치 한샘에서 단물과 쓴 물이 동시에 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무화과나무가 감람나무 열매를, 감람나무가 무화과 열매를 낼 수 없듯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악한 것을 입술의 열매로 맺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방 신을 따라가는 이스라엘을 향해 이렇게 대언한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내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렘 2:21) 여기서 ‘이방 포도나무’는 야생 포도나무를 말한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주요 생업은 포도재배였다. 그들은 수확량이 확실하지 않았으나 이 포도나무를 매우 소중히 여겼다. 그런데 이렇게 귀한 포도나무가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되었다니, 이는 말도 안 되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그릇된 길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옳은 길로 행하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삶의 열매를 통해 거짓을 잘 분별하고, 좋은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20)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의 교리를 잘 분별하고, 진리를 좇아 행하며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좌편이든 우편이든 영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마 12:33)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거두는 복된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이들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 죽기까지 ‘나’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도움으로 못된 나무가 아닌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눅 6:43-44) 삶의 열매가 좋지 않다고 낙심하지 말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제는 못된 나무가 아닌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분명히 하고, 입술을 열어 주님을 찬양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하고 입술을 열어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시 108:1) 세상에서 자신의 입지가 불분명하다고 생각하여 불안정한 심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붙잡고 있음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둘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마음의 중심을 분명히 하고 영원토록 높임 받으실 여호와 하나님을 높이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는 혀임을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자!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게 하지 말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입술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사는 자! 성령님의 도움으로 못된 나무가 아닌 좋은 나무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는 삶을 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좋은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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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9. 6. 25. 09:02

간구.

간구.

(바른성경) 시편 22:15 내 힘은 질그릇같이 말랐고 내 혀는 입천장에 붙었으며 또 주께서 나를 죽음의 먼지 속에 버려두셨습니다.

자신이 고난 가운데 있다면 주께 소망을 두고 그분께 간구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영어kjv) 시편 22:15 My strength is dried up like a potsherd; and my tongue cleaveth to my jaws; and thou hast brought me into the dust of death.

(히브리어modern) 시편 22:15 יבש כחרש כחי ולשוני מדבק מלקוחי ולעפר מות תשפתנ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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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1. 22. 08:04

바른 마음과 혀.

바른 마음과 혀.

(바른성경) 잠언 17:20 마음이 비뚤어진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진다.

바른 마음을 소유하고, 혀를 잘 사용하는 복된 인생을 사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잠언 17:20 He that hath a froward heart findeth no good: and he that hath a perverse tongue falleth into mischief.

(히브리어Modern) 잠언 17:20 עקש לב לא ימצא טוב ונהפך בלשונו יפול ברע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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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0. 10. 07:15

혀.

혀.

(바른성경) 잠언 25:23 북풍이 비를 몰고 오듯 험담하는 혀는 얼굴에 분노를 일으킨다.

험담을 멀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잠언 25:23 The north wind driveth away rain: so [doth] an angry countenance a backbiting tongue.

(히브리어Modern) 잠언 25:23 רוח צפון תחולל גשם ופנים נזעמים לשון סת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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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죄 아래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삶!

성경: 로마서 3:9-18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 말의 지혜

어떤 사나이가 길을 걷다가 땅 위에 사과 모양을 한 이상한 것이 있기에 발로 밟았다. 그러자 그것은 갑자기 두 배로 커졌다. 사나이는 힘을 주어 다시 밟았다. 그러자 그것은 더 커졌다. 이번에는 지팡이로 때렸다. 그랬더니 그것은 크게 부풀어 결국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이때 신이 나타나 사나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아! 그것은 말싸움이라는 이름의 사과야. 상대하지 않으면 처음대로 있으나 맞서기만 하면 자꾸만 커지는 이상한 사과란 말이야!’ 말은 할수록 번지고 옮길수록 커지는 법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절제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아름다운 말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마침내 심판을 받고 망하게 되는 것이 결코 그들의 종교적 특권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망하게 된 것은 그들이 거짓되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까닭이다(1-8). 그리고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결론 짓고(9-20), 율법은 우리 죄를 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은혜는 그런 죄인 의식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1-31).

 

3. 죄 아래 있는 인간(9-12)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였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 아래에 있는 연약한 자이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을 증거한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 아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우리 유다인이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내가 지적했듯이 유다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같이 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3:9)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은 모두 죄 가운데 놓였다. 우리는 연약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자인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여기서 의인은 원어로 <divkaio": 디카이오스>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에 완전히 응한 자를 말한다. 이는 인간의 원죄로 인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일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한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타락한 인류는 더 이상 선을 행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땅 가운데 스스로 의인 된 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놓였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허락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3:11) 여기서 찾는 자는 원어로 <ejkzhtw'n: 에크제톤>이다. 이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또는 하나님의 공의를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찾지도 않는 이렇게 연약한 자가 바로 인간이다. 이렇게 작은 존재인 우리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무지하여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을 수도 없는 자인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그분은 잠시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실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율법을 좇아 그렇게 사는 자가 되려고 힘쓸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2) 바울의 이러한 증언은 사람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인 것이다. 주님을 알기 전에는 길 잃은 양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되지 못하고 의로운 자가 아님을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가 사는 길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이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 말고, 죄악을 사하여 주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해 아래에서 죄 아래 살고 있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되었음을 깨닫는 자가 되어,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인간의 거짓된 언어와 행실(13-15)

해 아래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행실을 하고 있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바울은 모두가 죄인 된 인간들이 행하는 죄악의 열매에 대해 열거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죄인 됨을 증거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이 혀로 속임을 일삼는다고 말한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3:13) 인간은 연약하여 자신의 입술로 범죄를 일삼는다. 바울은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아서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사람의 악한 마음이 입술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는 죄와 관련하여 속임을 베푸는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은 악인의 모습에 대해 시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10:7) 우리는 이렇게 악인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악인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입에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3:14) 여기서 악독, 신랄함, 가혹이란 의미로 지배자들의 난폭성과 잔인성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의 죄악상을 이렇게 말한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3:15) 여기서 흘리는제의적인 자리에서 피나 분비물을 쏟다, 버리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신약에서 순교자들이나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피와 함께 살인 행위의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다. 또한,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악행에 대한 묘사이다. 이러한 악행을 행하는 인간의 길에는 파멸과 고생이 언제나 있어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자가 이 시대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죄악을 인정하며 회개하고,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23: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 입술로 죄를 범하고 있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인간(16-18)

해 아래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영적인 감각이 둔하여 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죄악으로 얼룩진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3:16) 그뿐 아니라, 평강의 길을 잘 알지도 못한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3:17) 우리는 하나님 없이 바른길을 걸을 수 없는 자가 연약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연약한 자가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불행하며, 파멸과 고생이 있게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실체는 어떠한가? 바울은 인간 자체가 죄로 오염되었으므로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음을 증거한다. 율법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율법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는 그 율법을 지킬 능력이 인간에게 없고, 율법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57:21)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새 생명을 주시고,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18) 여기서 두려워함은 원어로 <fovbo": 포보스>이다. 이는 당황과 놀람을 뜻한다. 특히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 수반되는 경외심을 뜻한다. 우리는 권위가 있으신 하나님이 를 사랑하고 계심을 깨닫고, 그분을 최고로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으려 하나 어리석음을 범하는 자가 바로 인간이다. 연악한 인간,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르려고 하는 교만한 생각으로 범죄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어서 우리에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내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전적 부패한 존재인 우리는 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복된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지금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과 동행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19:5)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나의 행실을 살피며, 여호와를 찾는 삶!

우리는 구원 받은 주의 자녀로서 자신의 행실을 살피며, 여호와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3:10) 우리의 입술이 주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죄 아래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바른길을 걷게 하실 것이다. 죄 아래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되었음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사는 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작은 예수로 살 것을 결단하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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