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2. 8. 16:42

사마리아 여인.

사마리아 여인.

예수님은 누구를 사랑하셨는가? 예수님은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은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다.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요 4:9)

어느 날, 예수님은 유다를 떠나 갈릴리로 향하여 가실 때 사마리아로 통과하게 되었다. 사마리아 수가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 곁에 앉아 쉬셨고, 그때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다.

수가는 사마리아 성인데,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 가까이에 있었다(요 4:5). 일반적으로 야곱의 우물에서 평원을 건너 동북쪽으로 1km 지점에 있는 에발 산의 동륙에 있는 아스갈 마을과 동일시된다. 옛날의 세겜, 오늘날의 델 발라다를 가리킨다.

수가라는 동네에 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매일 야곱의 우물로 혼자 물을 길으러 온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물을 줄 것을 이 여인에게 요구한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부정하게 여겨 상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마리아인은 유다와 이방인의 혼혈족이었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그들을 개와 같이 취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사마리아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

사마리아인은 누구인가? 사마리아인은 [히] [형] !ynIrom]vo(shomronim), pl. [그] ミ Samareitai(Samareitai), pl. Samarivth"(Samarites), Samariti"(Samaritis) [영] Samaritans이다.

기원전 721년 앗수르 왕 사르곤 2세(Sargon 2)에 의한 사마리아 점령 후, 각지에서 이민족을 이주시키고, 그들이 잔존 이스라엘과 혼혈하여 생겨난 사람에 대한 호칭이다(왕하 17:24-40).

특히 기원전 721년 앗수르에 의해 북 왕국이 멸망된 후, 여기에 외국인이 식민 이주되어, 종교 생활, 사회생활은 현저히 이교화되었다.

그리고 기원 전 4세기 말에는 마게도냐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마게도냐인의 이주도 있어서, 포로 귀환 후의 신앙의 순수성을 주장하고, 수호하려는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인과 세차게 대립하게 되었다.

유대인은 이교화된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예루살렘성전에 들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마리아인은 대항적으로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사마리아역 성서를 편집했다.

이 반목은 후대까지 계속되었는데, 유대인은 유다와 갈릴리와의 왕복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마저도 피하여, 일부러 요단강 동안의 페레아(Peraea-요단 저편 마 19:1)를 우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성 부인에게 전도하시고(요 4:1-26),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까지 들어(눅 10:30-35), 이 반목을 극복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영혼을 사랑하셨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주님이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영혼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베드로는 설교를 하기 위해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방문한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방문하는 것,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인지 알았지만, 그 금기를 깨고 성령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바에 순종하여 그의 집에 가게 된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행 10:28)

우리는 이방인이었지만 주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하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어떠한 이들도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번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며 사역하실 때,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 질렀던 나병 환자 10명을 고치신다.

그런데 고침 받은 10명 중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주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눅 17:16-19)

사마리아인처럼 ‘나’ 또한 이방인인데,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간구하여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되어진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 열방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나를 극진히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고, 그분을 알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마리아인도 사랑하신 예수님,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붙잡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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