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8. 31. 14:00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 마태복음 9:9-13

말씀: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

성경: 마태복음 9:9-13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 병원

병원은 병든 환자들로 가득 차서 그들의 신음 소리와 악취가 나는 곳이다. 그런데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분위기를 싫어하여 환자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병원의 가치는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온다 해도 그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복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

본장은 전장인 8장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과 죄와 죄의 올무에 대한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을 여러 사건을 통해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실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과 함께 죄인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이라는 것과 구원에 이를 자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은유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본 동네로 오셨다(1). 사람들이 침상에 중풍병자를 메고 오는 것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2-8). 예수께서 마태라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의원은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다(9-13).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의 문제로 예수께 질문하자 예수는 당신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신다(14-17). 또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신다(18-26). 그 후 예수께서는 두 소 경을 고치시고, 벙어리를 고치시고,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27-38).

 

3. 부르시는 예수님(9-11)

예수님은 어떠한 삶을 사셨는가? 예수님은 세리나 창기,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같이 사람들이 멸시하거나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이들과 같이 지내며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구원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심령이 가난하고 죄에 억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자기를 의롭다 생각하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의 죄를 자복하며 마음을 비우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마태를 부르신 예수님

예수님은 12제자 중 1명에 속했던 마태를 부르신다. 마태는 세리였는데 그의 사회적 신분과 무관하게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셨다. 그 당시 세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마태를 부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부르심 앞에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며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9:9) 마가복음에서는 마태를 레위라고 기록하며 부르심의 장면을 소개한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부르며 자신을 좇으라고 말씀하신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2:14)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거부하지 않고 바르게 반응한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가 되었다.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5:27-28)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르셨던 다른 제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름은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다. 어느 날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던 예수님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다. ‘나를 따라 오너라.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게 된다. 잠시 후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다. 그들 또한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게 된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4:18-22) 예수님의 부르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우리 또한 를 부르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주님을 잘 좇는 복된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소식, 복음을 전파하는 생활을 하시며 누구와 함께 하셨을까?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볼 때 연약한 자들과 함께 하셨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도 하시며 사역을 잘 감당하셨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5:29) 세리 레위(마태)의 집에서 큰 잔치를 열었고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세리도 함께 참석했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5:29) 예수님은 이방인들과 죄인들도 사랑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기를 바라셨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이방인과 달라야 함을 말씀하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우리는 죄인들과 즐겨 식사하셨던 예수님, 죄인인 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비판하는 바리새인들

죄인들과 식사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이러한 모습을 보는 바리새인들의 시선은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판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9:11) 죄인들과 함께 했던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 당시 사람들의 견해는 이러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1:19)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진정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은 죄인의 집을 방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수군거린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19:7) 하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비판하는 자들에게도 예수님은 사랑으로 대하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는 곳에는 큰 무리가 모여 들었는데, 율법만 잘 지키는 삶을 살았던 자들과 종종 변론이 생기기도 했다.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9:14-16) 우리는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묵묵히 사역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변론을 즐겨하지 말고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주님의 일꾼들이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예수님이 필요한 자(12-13)

예수님은 병든 자들에게 관심이 있으셨다. 예수님은 왜 어두움에 눌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을까?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에게 접근한 것은 그들이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자들은 죄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중에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그 고통의 질고를 벗겨 주실 주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병든 자에게 필요하신 예수님

세리들과 식사하는 자신들을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9:12) 예수님은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자유하게 하는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함 받고 자유하게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자세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다. 우리는 주님께 어떠한 자세로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1-13) 바리새인은 자신의 옳은 행실을 드러냈고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아뢰며 기도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자기 행위의 옳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던 세리와 같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41:4) 우리는 의 영혼을 고치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147:3)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9:11) 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러 오셨는가? 죄인 된 를 부르러 오셨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9:13) 자신의 모습이 의인처럼 보이는 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자기의 의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은 그 의로움을 내려놓고 자신이 얼마나 허물 많은 연약한 자인지 깨달아야 한다. 어느 정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들 가운데 단 한번이라도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면, 그 순간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중 하나도 죄인이 아닌 자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야만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우리 가운데 악의를 행하기를 즐기는 자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께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일백 마리의 양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그 양을 더 소중히 여기며, 한 마리의 양이 돌아왔을 때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신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18:12-13) 우리를 오래토록 참으시고 회개하기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깨달아야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죄인인 나를 불러주신 주님의 사랑에 힘입어 반드시 이 땅 가운데서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5. 구원의 주님

우리 주님은 구원의 주님이 되신다. 우리 중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누구인가? 고통 가운데 있는 병든 자만이 예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자, 삶의 소망이 없어 고통을 받는 자, 사랑을 줄 사람이 없어 고통을 받는 자들, 모두가 우리 예수님이 필요한 자들이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을 때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만나주심을 믿어야 하다. 우리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게 잔치가 열리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예수님께서 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음을 믿어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지금도 죄인을 찾고 계시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 왕 되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이 땅 가운데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동안 믿음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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