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주의 날에 교만한 자가 낮아짐을 알고 회개하며 주님만 높이는 자!

성경: 이사야 2:10-18

2:10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2:11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2:12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2:13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2:14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 오른 작은 언덕과

2:15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2:16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2:17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2:18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1. 가치

리디아의 왕 피디우스는 대단히 부유했다. 그러나 그는 부유했어도 인색한 사람이었다. 하루는 사냥을 마치고 온 왕이 배고파하자 그의 부인이 그에게 저녁 식사 대신 금을 내왔다. 이를 본 왕은 얼마간 그것을 칭찬하더니 음식을 들여오라고 했다. 그러자 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음식을 가지고 오라뇨?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가져왔는데요.’ 왕은 화가 나서 이렇게 답했다. ‘뭐라고? 금으로 내 배고픔을 채우라는 말이요?’ 그러자 부인이 답했다. ‘돈을 가지고 있어도 유용하게 쓸 수 없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아닐까요? 그것은 선량하고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람에게만 가치가 있는 법이죠.’ 그제야 왕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자신에게 소중한 어떤 것을 타인에게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자,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나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여호와의 날

1장은 본서의 도입부이자 이사야서 전체의 구도인 심판-회복 구도의 축소판이다. 거기서 저자는 범죄한 유다가 받을 심판과 남은 자들이 받을 회복을 언급하고 있다. 이어지는 2:1-4:6은 심판-회복의 이중주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어떤 형태로 연주되는지를 예언하고 있다. 그 예언의 첫 부분을 차지하는 본장은 여호와의 날에 의인과 악인, 옛 세상과 새 세상이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 것인가를 노래하고 있다. 본장은 이사야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예언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말일’, ‘여호와의 날이 언급되어있는 것으로 보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사야는 말일에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 위에 군림하게 될 것이며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상의 왕으로 공의로운 심판을 행하실 것임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1-4).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며 겸손히 살아가는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5-11).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우상과 우상 숭배자들, 특히 교만한 자들에게 임하여 그 모든 것들을 파괴하시기 때문이다. 유다가 저지른 모든 죄가 우상으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많은 구절이 나타나며, 이사야는 이러한 유다 백성들에게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촉구하고 있다(12-22).

 

3. 그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하고(10-11)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날이 도래할 것을 깨닫고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해야 할 주의 날이 다가옴을 알고, 당할 자가 없으신 참 하나님을 높이며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2:10) 여기서 위엄과는 원어로 <dj'P':파하드>이다. 이는 두려워하다, 경외하다는 뜻으로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야훼께서 일어나 땅을 흔드실 때 너희는 그 두려운 얼굴을 피하고 그 빛나는 위엄을 피하여 바위굴로 들어가거라. 먼지 속에 몸을 숨겨라.”(2:10) 우리는 주의 날에 여호와 하나님의 위엄을 보며 놀라게 될 것이다. 교만한 자는 굴복되며 여호와만이 높임을 받으시는 그 날이 오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2:11) 그 날에 모든 이들이 주의 진노를 피해 숨게 될 것이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6:15-16) 이렇게 강력한 힘이 있으시나 여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 지옥에 넣으실 권세가 있으신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인간의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영적인 세계가 존재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12:5) 우리는 죽음 이후 영원한 세계가 존재함을 깨닫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를 경외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주와 같으신 분이 없음을 고백하며 그분을 경외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열방의 왕이시여 주를 경외치 아니할 자가 누구리이까 이는 주께 당연한 일이라 열방의 지혜로운 자들과 왕족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음이니이다.”(10: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참 하나님, 영원한 왕을 당할 자가 없음을 깨닫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기를 바란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10:10) 두려워하지 않아야 할 대상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해야 할 주의 날을 언젠가는 맞이하게 됨을 알고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으신 참 하나님을 높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여호와의 날에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는 낮아지고(12-16)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날에 어떠한 사람들이 낮아짐을 깨닫고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의 날에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가 낮아지게 됨을 깨닫고, 교만함을 물리치고 겸손히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날이 모든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리니 그들이 낮아지리라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언덕과 모든 높은 망대와 모든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2:12-16) ‘12’절의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날에 전능하신 여호와께서 교만하고 거만하며 자만하는 자들을 모조리 낮추실 것이며.” 여기서 그 날은 어떤 특정한 때를 가리키는데 성경에서는 주로 종말적 심판의 날을 의미한다. 주의 날, 종말의 심판의 날에 하나님 앞에 교만한 자와 자고한 자는 낮아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만을 미워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한다.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16:5) ‘13’절의 레바논Lebanon(지명)(@/nb;l], Lebanon)흰 산의 뜻을 갖는다. 팔레스틴 북부에 솟은 수리아의 산맥인데, 오늘날의 졔벨 리브난(Jebel Libnon)이다. 산기슭은 포도나무로 덮혔고(14:6, 7), 산맥은 거대한 백향목으로 유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잣나무, 소나무, 황양목 등도 풍부했다(왕상 5:6-10, 왕하 19:23, 40:16, 60:13, 11:1). 사자나 표범 등 들짐승이 숲속을 돌아다녔다(왕하 14:9, 4:8). 나무는 잘라 건재로써 궁궐이나 신전을 건축했을 뿐만 아니라, 베니게 사람에 의해 선박의 돛대로도 사용되었다(3:7, 27:5). 레바논의 백향목은 가장 유명한데, 애굽은 이것을 선재와 기타 목공 재료로서 일찍부터 착안하였으며, 앗수르도 이를 벌채하여 본국으로 수송하였다. 또 솔로몬 왕도 성전과 궁궐 건축에 이 백향목을 구했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레바논의 것들도 모두 주의 날에는 주의 말씀 앞에 순종함으로 반응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무서운 힘으로 대적들을 꺾으시는 하나님을 깨닫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가장 강력한 힘과 권세를 가지고 계신 하나님, 그분 앞에 대적자들이 온전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혁혁한 위력으로 그 가지를 꺾으시리니 그 장대한 자가 찍힐 것이요 높은 자가 낮아질 것이며 철로 그 빽빽한 삼림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작벌을 당하리라.”(10:33-34) 자연 만물을 주관하셔서 가지를 꺾으시며 인생을 주관하셔서 높은 자를 낮추시는 하나님, 위대한 하나님을 늘 인정하고 그분을 끝까지 잘 섬기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교만함을 물리치고 겸손한 자세로 믿음 생활에 승리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6)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주의 날이 도래하면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가 낮아지게 됨을 깨닫고 자기 안에 교만함을 물리치고 겸손히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그날에 여호와 하나님만 높임을 받으시고(17-18)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날에 누구만 높임 받음을 깨닫고 지혜롭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의 날에 하나님만 높임 받음을 깨닫고, 죄를 미워하시며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오직 주님만 높이며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2:17-18) 우리는 우상을 멀리하며 여호와 하나님만을 높이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 성경은 한 신비한 사건, 갑자기 석회벽에 무서운 글씨가 적힌 이야기를 기록한다. 벨사살 왕이 큰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가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해 온 금, 은그릇으로 사람들과 마시고 있을 때, 석회벽에 손가락이 나타나서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는 이상한 글자가 기록이 되었다. “그가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강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그 왕위가 폐한바 되며 그 영광을 빼앗기고 인생 중에서 쫓겨나서 그 마음이 들짐승의 마음과 같았고 또 들나귀와 함께 거하며 또 소처럼 풀을 먹으며 그 몸이 하늘 이슬에 젖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게 되었었나이다 벨사살이여 왕은 그의 아들이 되어서 이것을 다 알고도 오히려 마음을 낮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스스로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전 기명을 왕의 앞으로 가져다가 왕과 귀인들과 왕후들과 빈궁들이 다 그것으로 술을 마시고 왕이 또 보지도 듣지도 알지도 못하는 금, , , 철과 목, 석으로 만든 신상들을 찬양하고 도리어 왕의 호흡을 주장하시고 왕의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지 아니한지라 이러므로 그의 앞에서 이 손가락이 나와서 이 글을 기록하였나이다.”(5:20-24) 벨사상 왕은 그 글자를 해석해 줄 자를 찾았고, 다니엘은 그 의미를 해석해 주었다.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는 뜻이며, ‘데겔은 왕을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함이 보였다는 뜻, 그리고 우바르신은 하나님께서 왕의 나라를 나누어 메대와 바사에게 주었다는 의미이다. 벨사살 왕은 마음이 높았고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로 그 날 밤에 죽임을 당했다. 하나님 보다 높아지는 자를 반드시 낮추시는 하나님을 깨닫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멀리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6:16-17) 구약 성경은 교만으로 인해 징계를 받은 한 왕, 벨사살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는 7년 동안 짐승의 마음을 받아 살게 되는 이상한 병에 걸린다. 그는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고 몸이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라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어 7년을 보낸 후 회복되어 회개하며 주님을 높인다. “그러므로 지금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의 왕을 찬양하며 칭송하며 존경하노니 그의 일이 다 진실하고 그의 행하심이 의로우시므로 무릇 교만하게 행하는 자를 그가 능히 낮추심이니라.”(4:37) 우리는 때가 되어 병에서 치유 받고 하나님을 찬양했던 느부갓네살 왕과는 달리 징계 이전에도 겸손히 주님을 섬기며 찬양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자기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겸손히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붙잡혀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으며 겸손한 자세로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주님만 높이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기를 바란다. “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13:11) 스스로 높은 척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주의 날이 도래하면 하나님만 높임 받음을 깨닫고 죄를 미워하시며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오직 주님만 높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분을 높이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분을 높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미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의 때에 완성될 것이다. 이 두 시간의 긴장 속에 있는 날들이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다. “오직 만군의 여호와는 공평하므로 높임을 받으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은 의로우시므로 거룩하다 함을 받으시리니.”(5:16) 이러한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만 높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지금도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진행되고 있고 언젠가는 끝나게 됨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을 선포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12:4)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언제나 빛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두렵고 찬란한 영광 앞에서 피해야 할 주의 날을 언젠가는 맞이하게 됨을 알고,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으신 참 하나님을 높이며 살아가는 자! 주의 날이 도래하면 교만한 자와 거만한 자가 낮아지게 됨을 깨닫고, 자기 안에 교만함을 물리치고 겸손히 살아가는 자! 주의 날에 하나님만 높임 받음을 깨닫고, 죄를 미워하시며 교만을 꺾으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주님만 높이며 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주의 날에 교만한 자가 낮아짐을 알고 회개하며 주님만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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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자!

성경: 로마서 8:1-8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1. 그리스도인

이 세상에서 위선자가 되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위선자는 외관상으로 그리스도인이므로 세상의 증오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는 존재 가치가 없는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하고 자기 자신 또한 증오하며 마귀마저도 그를 멸시할 수 있다. 위선자들이야말로 마귀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일은 아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가는 것보다 그들은 훨씬 더 큰 고행을 하면서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실하기를 원하나, 그들은 선하게 보여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부르심을 받은 주의 백성들인 우리가 위선자로서의 삶이 아닌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속의 은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그에 근거한 구속의 은혜를 증거한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주권자가 되시는데 누구도 그 사랑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의 구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본장에서 구원의 영원성을 길게 논한다. 구원은 그리스도가 속죄하여 주신 은총과 거기 따르는 성령의 살리는 역사로 이루어진다. 이 구원의 성취는 하나님 자신의 희생으로 된 것인 만큼, 그것은 하나님과 같이 영원하다(1-17). 그러므로 이 구원은 고난 때문에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 중에서 완성되어 간다(18-26). 그러나 모든 고난은 신자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고 도리어 합동하여 유익을 준다. 그렇게 되는 원인은, 신자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실에 있다(27-30). 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끊는 방해물은 없다.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된 것이므로 영원한 것이다(31-39).

 

3. 예수 안에 있는 자(1-2)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어떠한 은혜를 허락하셨는가? 예수님과 무관한 삶을 살 때는 인간의 죄의 해결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면 인간의 원죄에 대해 누구도 정죄하지 못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받는 일이 없습니다.”(8:1)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 거듭난 자들을 정죄할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 있는 자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8-19)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 행위의 악함으로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8:2)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이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음을 알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율법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을 이는 아무도 없으나, 그렇다고 율법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는 주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가 없고,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 가운데서 기쁨으로 주를 섬겨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영을 따라 행하는 자(3-4)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무엇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세상에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갔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율법 아래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위해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여기서 보내어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묘사한다.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의 타락한 성품 때문에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 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8:3)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 값을 담당해 주셨음을 알고, ‘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되었음을 선포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모습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영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면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도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어주셨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며 이제는 육신의 법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닌, 영을 따라 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8:4)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경건 생활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14:5)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말씀 위에 서기 위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육신의 생각 VS 영의 생각(5-6)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고 영의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의 삶이 다름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8: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님의 일을 생각합니다.”(8:5)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또는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옳지 않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육신을 따라 사는 자인지, 아니면 영을 따라 사는 자인지 잘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로서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도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소망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려움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의 자녀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주인공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고 하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그 생각의 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6) 여기서 생명과 평안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축복에 처하게 됨을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로서 영의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고 영의 생각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께서 허락하신 생명과 평안 가운데 거하기를 소망한다. 구원받은 우리가 개인적인 종말이나, 역사적인 종말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우리는 보이는 육의 세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영의 생각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직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말씀을 따르는 영적인 주의 제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거듭난 주의 백성으로서 성령님의 감동에 민감하고,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며, 조금씩 변화되어 가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8:7-8)

바울은 자신의 마음속에 두 가지 법이 싸우고 있음을 말한다. 그 법은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4-25) 육신을 입고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죄악으로 향하는 마음보다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대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고, ‘가 속한 공동체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점점 더 풍성히 맺어지기를 소망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깨닫고,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자!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말씀 위에 서기 위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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