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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어둠 속에서도 소망 되시는 주를 붙잡는 자!

성경: 시편 119:81-88

시편 119: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편 119: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시편 119:83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시편 119: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시편 119:85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시편 119: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시편 119:87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시편 119: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1. 신앙의 자세

한 어머니가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어린아이를 꼭 껴안고 순교자의 대열에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굶주린 사자들이 입을 벌리고 성도들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그때 이 어린아이가 무서워서 울며 어머니의 가슴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얘야, 조금만 참아라. 곧 밝혀질 것이다.’라고 조용히 타일렀다. 사자가 물어뜯으면 그 순간은 아프겠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하늘나라가 전개될 것이다. 현실의 상황을 초월한 어머니의 고백이다. 인간의 삶도 어떻게 보면 잠시 잠깐의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이 땅 가운데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삶의 환경과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믿음을 지키며 소망 되시는 주를 붙잡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자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찬양을 하면서 말씀의 귀중한 가치를 강조한다. 자신에게 구원을 주시며 자신의 인생길을 진리로 인도하는 빛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시인은 갈급해 하며 그 말씀과 항상 함께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저자가 미상인 본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 것이다. 독특한 것은 시의 각 절마다 율법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본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극한 정성은 가히 경이로울 따름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결단이 나오고(1-8), 이어서 그 말씀을 즐거워함을 말한다(9-16). 시인은 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원하면서 하나님의 관용을 애원하고 있다(17-32).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주의 법도를 따를 것을 다짐하고 있으며(33-96),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바라보고 있다(97-136).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다시금 언급하고 있다(137-176).

 

3. 주의 말씀을 바라고(81-8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를 섬기는 동안 무엇을 바라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주의 말씀을 바라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고, 주의 말씀을 바란다고 고백한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편 119:81)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다가 지쳤으나 그래도 나는 주의 말씀을 신뢰합니다.”(119:81)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구원을 사모하다가 지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에서 시인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함을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1-2) 자신의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일 것이다.

언제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않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갈망하며 구원을 바라는 동안 피곤함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며,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붙잡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시편 119:82-83)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 몸이 당신 약속을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언제 나에게 위안을 주시렵니까? 나 비록 연기 속의 가죽 부대처럼 되었사오나 나는 당신의 뜻을 잊지 않으리이다.”(119:82-83) 여기 연기 속의 가죽 부대는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자기 삶의 형편과 처지가 열악하게 느껴질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날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주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90:13-15) 주의 말씀을 바라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삶,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날마다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주께 도움을 구하고(84-8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를 섬기는 동안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주께 도움을 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교만한 자들이 해하려고 함을 토로하며,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해 줄 것을 구한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시편 119:84-8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 벌하시겠습니까? 주의 법을 지키지 않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잡으려고 함정을 팠습니다.”(119:84-85) 여기서 교만한 자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백성들을 착취하는 사회 지도자들을 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교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자신에게 원수들의 공격이 있다면 주께 도움을 구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 언제나 평탄하지는 않을 터인데, 누군가는 지금 큰 어두움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 동안, 사탄의 공격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친구 엘리바스의 충고에 답하며 두 번째 논쟁을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한다.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7:6-8) 그렇다. 인생의 속도는 참으로 빠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고통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이 형통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신실하신 주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실하신 주님께 늘 도움을 구하며, 인생의 참 주인이 되시는 주를 붙잡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시편 119:86) 이유 없이 원수들의 핍박을 당하고 있는 자, 그리고 인생의 어두움을 통과하고 있는 자,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의 얼굴을 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께 도움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 우편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142:4-6) 믿음 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최고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께로 피하는 자, 자신이 처한 형편을 토로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살리시는 주를 높이고(87-8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를 섬기는 동안 누구를 높이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불평불만 하지 말고, 살리시는 주를 높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원수들이 자신을 죽이다시피 했지만, 그때에도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119:87) 우리 또한 원수들의 공격 가운데서도 입술로 범죄 하지 말고, 주의 율례를 붙잡으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기를 바란다. 구약성경에는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그를 살려준 다윗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다윗은 십 광야 앞 하길라 산 길가에 진친 사울을 발견한다. 그런데 다윗은 진영 가운데 누워서 자고 있는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며, 그를 살려준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삼상 26:9)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이 선한 마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란다. 어떤 사건을 볼 때 하나님의 큰 뜻이 있지는 않은지 영적으로 잘 분별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119:25)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 영혼이 먼지 속에 처박혔사오니 말씀하신 대로 이 몸을 살려주소서.”(119:25) 자신을 해하려 하는 원수에게도 사랑으로 대하고, 자신이 처한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살리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주를 바라보며, 그분을 높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시편 119:88)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하며, 우리 또한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리시는 주를 높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살리시는 주를 높이며, 주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25:10)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약속과 명령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을 성실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구나.”(25:10)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지키기를 즐거워하는 자, 그리하여 주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열정적으로 믿음 생활하는 자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열정적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10:28) 언젠가 주를 뵙게 될 날에 주님께서 기쁨으로 맞이해 주시고, 우리도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하나님 중심적인 믿음의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열정적으로 주를 섬길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3:15-16) 어둠 속에서도 소망 되시는 주를 붙잡고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 바로 가 되기를 기도한다.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주의 말씀을 바라고 주의 긍휼을 구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께 도움을 구하는 자! 믿음 생활하면서 불평불만 하지 말고, ‘를 살리시는 주를 높이며, 주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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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와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

성경: 이사야 12:1-6

12: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12: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12: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12:4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12:5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12:6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1. 희망

왓츠의 희망이란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유명하면서도 매우 의미 있는 그림이다. 지구 위에 앉아 있는 여인이 그 소재인데 그 여인의 눈은 앞을 볼 수 없게 붕대로 감겨져 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하나의 줄만 남겨 놓고 모두 끊어진 하프가 들려 있다. 그 끊어진 줄은 산산이 부서진 그녀의 기대를 재현시키는 듯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줄 하나가 바로 희망을 상징하는 줄인 것이다. 그녀는 그런 와중에도 승리감에 넘쳐 하프의 마지막 남은 줄로 연주를 한다. 그리고 거기서도 아름다운 멜로디는 흘러나온다! 나의 삶은 어떠한가? 환경을 바라보며 원망하는 삶이 아닌 허락된 환경 가운데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도 날마다 희망이 넘쳐나며,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여 충성되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감사의 노래

앞장은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심으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 다음 장인 본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노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순서이다. 하나님의 구원이 임함으로 성도는 노래를 불렀고 그 구원이 완성되는 날 또한 큰소리로 찬양할 것이다. 본장은 남은 자들이 모두 돌아와서 기뻐하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그날에는 모든 두려움이 사라지고 영원한 기쁨만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1-3). 또한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있던 남은 자들이 돌아와 온 천하에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선포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보여 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4-6).

 

3. 감사로 주께 나아가(1-3)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의 삶이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면 회개하고 주 안에서 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감사로 나아간다면 어두움의 권세도 힘을 잃게 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습을 보시며 기뻐하실 것이다.

 

감사

어떤 철학자들은 세상을 저주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슬퍼한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계를 존귀하게 여기며 삶을 기뻐한다. 그러나 만일 창조가 없었더라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그런 기쁨은 없었을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곳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계와 그를 지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실 수도 있고, 우리를 징계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을 때는 불평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임하면 우리는 감사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12:1) ‘노하셨사오니는 말이 콧바람을 불거나 씩씩거리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 격노한 상태를 의미한다.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노하심이 그치고 은혜가 허락된다면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게 된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약하게도 하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그의 남아 있는 백성을 위하여 앗수르에서부터 돌아오는 대로가 있게 하시되 이스라엘이 애굽 땅에서 나오던 날과 같게 하시리라.”(11:16)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나라에게서 자유케 되었을 때 그들은 주님의 행하심 앞에서 주를 높이고 주께 감사의 고백을 했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의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25:1)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주를 높이고 찬송해야 한다.

본문을 기록한 이사야는 누구인가? 이사야는 Esaias(인명) (Why:[]v'y], Esaias)여호와의 구원의 뜻을 가진다. 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왕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하여 주로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선지자이며 이사야서의 저자이다. 그는 말씀에 의한 최초의 본격적 대선지자였다. 그의 문필 활동은 역대하 26:22, 32:32, 8:1, 16, 30:8, 34:16 등에 표시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확실한 것은 이사야서 그 자체이며, 그 용어의 풍부함, 문체의 힘과 격식, 문학적 기교의 다양성 등은 본서를 히브리 예언 문학의 최고봉으로 인정할 수 있다. 그 문학적 소양으로 미루어 확실히 그는 서민적이 아닌 듯 하다. 그리고 그에게는 상징적사물의 이용이나 환상은 적고, 문필변설의 재능이 탁월했지만 그의 예언은 단순한 추상적 철학이나 명찰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대의 유다 왕국 사상최초의 국제적 위기를 큰 스케일로 예언의 상징이나 예표로서 사용했다.

수리아 이스라엘 연합군의 침입(7)에 의해 앗수르의 모습을 빌어 구원, 심판, 메시야, 잔류자 등에 관한 예언이 흘러 나왔다. 앗수르 왕 산헤립의 예루살렘 포위와 기적적 패퇴(36, 37)에 의하여 포로와 귀환의 복음이 흘러 나왔다. 병든 히스기야 왕에게 보낸 바벨론 왕 므로닥 발라단의 사절(38, 39)에 의해 마찬가지로 포로와 귀환의 복음이 뒷받침되고 있다. 특히 이사야서에 있어서 여호와의 종, 메시야의 수난과 영광, 여호와와 메시야의 지배하에 있는 전 세계의 종말적 역사관, 그 안에 위치가 정해진 교회의 모습 등 제재가 풍부하고 시야가 넓은 선지자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또 그의 위대한 인격, 정치가적 재능, 유대 역사의 위기에 직면하여 조국을 위해 진력한 공로, 후세에 끼친 위대한 감화는 실로 선지자 중의 선지자임을 느끼게 한다.

 

긍휼히 여기시는 주

하나님 앞에 우리는 어떠한 자들인가? 인간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를 범죄 함으로 왜곡시키고 망가뜨렸다. 그리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저주 아래 놓이게 되고 말았다. 인간의 범죄는 인간 자신과 세계를 죽음 아래에 놓이게 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을 슬퍼하셨다. 하나님은 그 범죄로 말미암아 자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 저주 아래 놓이게 된 인간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리고 자기를 떠난 인간을 긍휼히 여겨 주셨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구원이시고 삶의 주인이 되신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12:2)

주님을 신뢰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신뢰의 의미는 순간적이며 감정적인 것이 아니라 성심을 다해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을 신뢰하는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우리의 반석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영원히 의뢰하라 주 여호와는 영원한 반석이심이로다.”(26:4) 주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면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게 됨을 믿어야 한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49:10) 세상이 아무리 시끄럽고 불안해 보일지라도 주께서 의 삶을 인도하시면 가 안전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118:14) 여호와께서 힘과 능력이 되심을 선포하는 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께로 나아가면 우리는 주 안에서 생명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12:3) 주 안에는 기쁨이 있고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빛 되신 주를 좇는 삶, 생명이 되신 주를 믿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36:9) 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주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갈 때, 주께서 에게 기쁨을 주시고 생명을 허락하시는 역사가 있게 됨을 믿어야 한다.

 

4. 주께 찬양 드리며(4-5)

우리는 좋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많은 일들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며, 그 분을 높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은 피조물들에게 찬양받기에 합당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충분하신 좋으신 주님이 되신다. 어느 누구든지 주님과 관계없이 살아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로운 삶을 살아 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은 추상적이거나 비실제적인 것이 아니다. 주님의 긍휼은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것인데 인간에 대한 구원으로 현실화되었다. 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긍휼은 죄로 말미암아 저주 아래 있는 자들이 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했음을 의미한다. 이 구원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죽음 및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일 때 성령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먼저 주를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그 좋으신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님의 행하심 앞에 우리는 주님을 높일 수밖에 없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12:4) ‘높다 하라.’의 의미는 들려지다, 존귀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이는 권위와 능력이 높이 평가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권위와 능력이 있으신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그분은 평강의 왕이 되신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우리는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가운데 모시고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께 감사하며 주님의 행하심을 만민에게 전하는 자들로서 살아가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대상 16:8)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모든 만물이 영광을 돌리는 날이 오도록 우리는 힘써 기도해야 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9-11)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여 복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찬양

하나님의 창조와 긍휼과 구원에 감사를 표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이 가운데 가장 먼저 언급되어야 할 것은 입술로 하는 찬양일 것이다. 사람은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과 의미를 드러내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힘과 정성을 다해 주를 찬양하고 다양한 악기를 다 동원하여 주를 찬양해야 한다. 주님은 포로 된 자들을 자유하게 하시며 백성을 구원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 주님을 찬양하며 좋으신 주님을 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12:5)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57:5) 온 땅 위에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해야 한다. “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해 돋는데서 부터 해 지는데 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113:1-3) 영원토록 높임을 받으실 주님을 찬양하며 온 땅에 주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실 그 날을 기대하며 자신이 속한 곳에서 충성된 종으로서 주의 얼굴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5. 여호와를 찬양하는 삶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의 삶을 반드시 인도해 주실 것을 신뢰해야 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한번 선택한 백성들에 대해서는 그 분의 언약을 이루어 가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을 때 나타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셨을까?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와 감사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때일 수 있다. 이때가 바로 주님의 이름을 높여야 할 기회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를 다 헤아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능력이 무한하신 하나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지금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입술을 열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좋으신 주님을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는 세상에서 제일 크신 살아계신 주님이 되신다.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12:6) 우리는 이 좋으신 주님을 소리 높여 불러야 한다. 시편 기자는 고백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71:22) ‘를 구원하시고 의 삶을 인도하실 주님을 찬양하며 그 분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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