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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3. 31. 07:38

상한 심령으로

상한 심령으로.

(바른성경) 시편 51:17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니, 하나님은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멸시하지 아니하십니다.

상한 심령으로 여호와께 나아가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시편 51:17 하나님의 求하시는 祭祀는 傷한 心靈이라 하나님이여 傷하고 痛悔하는 마음을 主께서 蔑視치 아니하시리이다

(영어esv) 시편 51:17 The sacrifices of God are a broken spirit; a broken and contrite heart, O God, you will not despise.

(히브리어modern) 시편 51:17 זבחי אלהים רוח נשברה לב נשבר ונדכה אלהים לא תבז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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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성경: 시편 27:1-6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편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편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 소망

미국의 백화점 왕인 제이 씨 페니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는 심한 재정난에 허덕여 죽으려고까지 했고, 격리 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찬송 소리를 듣고 한 예배의 장소로 가 보았다. 그때 그곳에서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가 뒷좌석으로 다가가 앉으려 할 때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매우 익숙한 찬송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찬송은 그에게 위로와 큰 확신을 주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나를 좀 돌보아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그 후 그는 건강도 회복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결국 상업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소망의 하나님

본 시편은 어려움에 처할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 이전까지 선한 것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께만 소망을 둔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을 가진 주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본시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이런 일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기도 하는 일이다. 본시는 비탄시로서 자신의 슬픈 처지를 탄식하며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는 내용이다. 시인은 자신의 위기에 대해 호소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반드시 보호해 주신다는 신앙의 확신을 노래한다.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므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친다고 할지라도 두렵지 않다는 담대한 신앙고백을 한다(1-6). 이어서 시인은 자신이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있으니 여호와께서 응답해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주께서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버리거나 떠나는 일이 없기를 절실한 마음으로 부르짖는다(7-12). 마지막으로 시인은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함으로써 끝을 맺는다(13-14).

 

3. 두려워하지 않음(1-3)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빛이요 구원주이시며 생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어떤 두려움과 공포도 없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두려움은 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있는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다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과 보호의 능력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빛과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1) 여기서 능력은 원어로 <z/[m;: 마오즈>이다. 이는 피난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안전한 장소, 피난처, 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과 피난처가 되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형편 가운데 처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15:2) 모세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힘과 노래와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듯이 주를 신뢰하는 자들 앞에 있는 어떠한 문제와 상황도 해결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원수들이 왔으나 그들이 실족하고 말았음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7:2) 하나님이 의 편이 되어주신다면, 원수들도 어찌하지 못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울 것이 전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3:6) 담대하게 고백했던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날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매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담대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편 27:3) 여기서 ‘태연하리로다신뢰하다, 의탁하다를 의미한다. 다윗은 주를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군대가 진 칠지라도 전쟁이 일어나 자신을 치려 할지라도, 주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윗뿐만 아니라 에게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넉넉히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5-37)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이 부족한 자들은 주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를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안전함(4-5)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주 안에서 안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 27:4)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원어로 <!['n: 노암>이다. 이는 선함, 매력, 아름다운 점, 사랑스러움을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확신을 여호와의 집에 거하려는 갈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에 대한 바램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서 그 전에서 사모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안목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그분의 말씀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다윗과 같이 그분 안에 있을 때 안전함을 깨닫고, 여호와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하기를 소망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6) 우리에게도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가득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또한, 다윗은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키시는 주가 되심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시편 27:5) 여기서 장막회막, 여호와의 전이라고도 불리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주와 동행하기를 원했던 다윗은 환난 당할 때 하나님께서 주의 날개 아래에서 지켜 주심을 고백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갈망하는 다윗은 자신의 환난 날에도 여호와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고백한 것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이 임재해 계시는 장막 은밀한 곳에 자신을 숨겨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확신했다.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고백과 믿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늘 친밀한 교제가 있기를 소망한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께서 베푸시는 절대적인 안전과 은혜를 입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은혜로 인하여 환난을 당해도 요동하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처럼 우리도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방의 모든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반석 위에 든든히 선 우리의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7:24-25)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서가는 믿음이 의 믿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원했던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여호와를 찬송(6)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주를 높이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7:6) 여기서 제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 드려졌던 종교의식이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무찔러 주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드리며 주를 찬양할 것을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둘러싼 원수를 무찌르시고 높임을 받을 것을 확신했다.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원수들 앞에 두려워하거나 그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실 주를 기대해야 한다. 원수를 무찌르시는 주님, 모든 결과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주님을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21:13)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체험하고, 날마다 주를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주를 찬양하기를 소망한다. 지금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를 높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19-20) 우리는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자녀가 되어 서로 교제하며 주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해와 방패가 되시는 주, 은혜와 영화를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 달려가는 자, 그는 안전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18:10)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내가 만난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문제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건져 주시고, ‘를 사망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날마다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자!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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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8. 31. 14:00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 마태복음 9:9-13

말씀: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

성경: 마태복음 9:9-13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 병원

병원은 병든 환자들로 가득 차서 그들의 신음 소리와 악취가 나는 곳이다. 그런데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분위기를 싫어하여 환자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병원의 가치는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온다 해도 그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복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

본장은 전장인 8장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과 죄와 죄의 올무에 대한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을 여러 사건을 통해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실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과 함께 죄인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이라는 것과 구원에 이를 자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은유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본 동네로 오셨다(1). 사람들이 침상에 중풍병자를 메고 오는 것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2-8). 예수께서 마태라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의원은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다(9-13).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의 문제로 예수께 질문하자 예수는 당신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신다(14-17). 또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신다(18-26). 그 후 예수께서는 두 소 경을 고치시고, 벙어리를 고치시고,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27-38).

 

3. 부르시는 예수님(9-11)

예수님은 어떠한 삶을 사셨는가? 예수님은 세리나 창기,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같이 사람들이 멸시하거나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이들과 같이 지내며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구원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심령이 가난하고 죄에 억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자기를 의롭다 생각하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의 죄를 자복하며 마음을 비우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마태를 부르신 예수님

예수님은 12제자 중 1명에 속했던 마태를 부르신다. 마태는 세리였는데 그의 사회적 신분과 무관하게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셨다. 그 당시 세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마태를 부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부르심 앞에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며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9:9) 마가복음에서는 마태를 레위라고 기록하며 부르심의 장면을 소개한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부르며 자신을 좇으라고 말씀하신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2:14)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거부하지 않고 바르게 반응한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가 되었다.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5:27-28)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르셨던 다른 제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름은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다. 어느 날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던 예수님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다. ‘나를 따라 오너라.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게 된다. 잠시 후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다. 그들 또한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게 된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4:18-22) 예수님의 부르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우리 또한 를 부르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주님을 잘 좇는 복된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소식, 복음을 전파하는 생활을 하시며 누구와 함께 하셨을까?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볼 때 연약한 자들과 함께 하셨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도 하시며 사역을 잘 감당하셨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5:29) 세리 레위(마태)의 집에서 큰 잔치를 열었고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세리도 함께 참석했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5:29) 예수님은 이방인들과 죄인들도 사랑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기를 바라셨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이방인과 달라야 함을 말씀하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우리는 죄인들과 즐겨 식사하셨던 예수님, 죄인인 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비판하는 바리새인들

죄인들과 식사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이러한 모습을 보는 바리새인들의 시선은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판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9:11) 죄인들과 함께 했던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 당시 사람들의 견해는 이러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1:19)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진정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은 죄인의 집을 방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수군거린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19:7) 하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비판하는 자들에게도 예수님은 사랑으로 대하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는 곳에는 큰 무리가 모여 들었는데, 율법만 잘 지키는 삶을 살았던 자들과 종종 변론이 생기기도 했다.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9:14-16) 우리는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묵묵히 사역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변론을 즐겨하지 말고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주님의 일꾼들이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예수님이 필요한 자(12-13)

예수님은 병든 자들에게 관심이 있으셨다. 예수님은 왜 어두움에 눌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을까?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에게 접근한 것은 그들이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자들은 죄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중에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그 고통의 질고를 벗겨 주실 주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병든 자에게 필요하신 예수님

세리들과 식사하는 자신들을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9:12) 예수님은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자유하게 하는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함 받고 자유하게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자세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다. 우리는 주님께 어떠한 자세로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1-13) 바리새인은 자신의 옳은 행실을 드러냈고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아뢰며 기도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자기 행위의 옳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던 세리와 같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41:4) 우리는 의 영혼을 고치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147:3)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9:11) 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러 오셨는가? 죄인 된 를 부르러 오셨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9:13) 자신의 모습이 의인처럼 보이는 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자기의 의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은 그 의로움을 내려놓고 자신이 얼마나 허물 많은 연약한 자인지 깨달아야 한다. 어느 정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들 가운데 단 한번이라도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면, 그 순간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중 하나도 죄인이 아닌 자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야만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우리 가운데 악의를 행하기를 즐기는 자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께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일백 마리의 양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그 양을 더 소중히 여기며, 한 마리의 양이 돌아왔을 때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신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18:12-13) 우리를 오래토록 참으시고 회개하기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깨달아야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죄인인 나를 불러주신 주님의 사랑에 힘입어 반드시 이 땅 가운데서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5. 구원의 주님

우리 주님은 구원의 주님이 되신다. 우리 중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누구인가? 고통 가운데 있는 병든 자만이 예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자, 삶의 소망이 없어 고통을 받는 자, 사랑을 줄 사람이 없어 고통을 받는 자들, 모두가 우리 예수님이 필요한 자들이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을 때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만나주심을 믿어야 하다. 우리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게 잔치가 열리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예수님께서 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음을 믿어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지금도 죄인을 찾고 계시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 왕 되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이 땅 가운데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동안 믿음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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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4. 5. 07:36

감사함으로.


감사함으로.

(바른성경) 시편 56:12 하나님이시여, 주님의 약속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감사의 제사를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약속의 주님께 감사의 제사를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영어KJV) 시편 56:12 Thy vows [are] upon me, O God: I will render praises unto thee.

(영어ASV) 시편 56:12 Thy vows are upon me, O God: I will render thank-offerings unto thee.

(히브리어Modern) 시편 56:12 עלי אלהים נדריך אשלם תודת ל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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