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믿음으로 구하고 사랑하며 살라!

성경: 7:7-12

7: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7: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7: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7:12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1. 목사님의 질문

어느 교회에서 목사가 설교를 하고 있었다. “여러분들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분, 손들어 보세요.” 아무 반응이 없자, 다시 물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손들어 보세요.” 그때, 저 뒤에서 한 할아버지가 손을 들었다. 목사는 감격스러운 목소리로 할아버님,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우리에게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했다. 나이가 들어서 힘없는 목소리로 할아버진 말씀하셨다. “, 있었는데죽었어.”

 

2. 주를 믿는 자

예수께서는 비판하지 말 것을 명하셨고(1-5), 거룩한 것을 그 가치를 모르는 자에게 주지 말 것을 명하셨고(6), 구하면 주신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르치셨다(7-12). 산상수훈의 결론부에 이르러서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13-14)과 주의 뜻을 행하는 것과 열매의 중요성(15-23), 반석 위에 집을 지어야만 할 당위성(24-27)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을 마치시자 온 무리들이 예수의 신선한 가르침과 크신 권세를 놀랍게 여겼다(28-29).

 

3. 구하는 자(7-8)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에게 구하며 살아가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은 불가능이 없으신 하나님께 우리의 모든 문제들을 간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이렇게 할 때에 주님은 반드시 그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며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구하라(구하고 찾고 두드리라)

우리에게 구할 바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는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우리가 구할 때 주실 것이며, 찾을 때 찾아낼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을 말씀하신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7:7) ‘구하라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는 주님께 구하되 어떠한 자세로 구해야 할까? ‘구하라는 원어로는 <aijtevw:아이테오>인데, ‘요구하다, 찾다라는 의미로 단순한 요구가 아니라 마음이 담긴 간절한 요구를 나타낸다. 우리의 모든 것들을 아시는 주님께 자녀 된 자로서 그 분이 행하실 것을 믿고 간절히 요구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 간구하는 자와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님은 어떻게 응답해 주실까? 주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가까이 하실 주님을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저희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145:18-19)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를 가까이 하시는 주님, 소원을 이루며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잘 섬기되,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를 사랑하며 주님을 간절히 찾을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우리는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여 언제나 주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어야 한다. 그리고 주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게 되리라 말씀하신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21:22)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한 것을 받은 줄로 믿으면 그대로 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4)

 

찾아내고 열릴 것임

우리는 누구를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우리는 구하는 이는 받게 되고 찾는 이는 찾게 되고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신 예수님을 신뢰해야 한다.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 이니라.”(7:8)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며 기도해야 한다. 말씀을 의지하여 기도할 때 반드시 응답받게 될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믿고 구하되 입을 크게 벌리고 구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81:10)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던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 분께 입을 넓게 열고 간청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누구의 도움이 필요할까? 우리는 주님께 구하되 육신의 것들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것들도 사모해야 한다.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이 필요함을 기억하고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악한 자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나님이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신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11:13)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두 편의 강도가 있었다. 그 중 한 편의 강도는 예수님을 저주했지만, 다른 한 편의 강도는 예수님께 자신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위해 간구했다. 그리고 그 강도의 기도는 응답받게 되었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2-43)

주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응답받게 됨을 기억하고 주를 신뢰하며 간구하는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한다.

 

4. 주시는 주(9-11)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기를 원하실까? 주님은 어떤 것을 주신 분이신가? 우리에게 자신의 아들까지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어 주셨다. 이 뿐만 아니라 자녀 된 우리에게 더 좋은 것들로 응답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좋으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강인한 믿음을 가지고 그분을 신뢰하고 주님을 잘 섬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믿음의 중요성

왕자 윌리엄(William)이 영국의 왕으로 추대되었을 때에 그는 그의 친한 친구들에게 장관직을 주겠다는 서약서를 준 적이 있었다. 그때 윌리엄이 그의 한 친구에게 그 서약서를 주려하자 그 친구는 폐하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제가 폐하를 믿지 못한다면 어찌 당신의 신하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거절하였다. 그런데 그가 보여 준 믿음으로 그는 후에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처럼 인간세상에서도 상대를 신뢰하게 되는 것은 큰 감동과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그분을 향한 변치 않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아들이 떡과 생선을 달라하면

자신이 낳은 아이가 무엇을 필요로 한다면 그 필요를 채워주고자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당연한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예수님은 자식이 구할 때 부모는 그 요청에 바르게 반응하게 됨을 말씀하신다. 아들이 떡을 달라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고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7:9-10)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모의 마음이고 그 보다 더 간절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좋은 것을 주시는 분

우리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아는데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어떻게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신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11) 좋은 것을 주시는 주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대상이 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의지할 대상이 되시며 우리의 방패가 되신다. 시편기자는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는 주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우리는 정직한 마음으로 좋으신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만을 높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당할 수 있는 고통 가운데서 우리는 그 환경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는 우리에게 허락된 환경을 자신의 믿음을 단련하는 장으로 삼아야 한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환경에 전적으로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생각이 우리의 생각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깊음을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55:8-9) 좋으신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뿐인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분의 피로 죄를 용서함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우리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좋은 것들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

좋으신 주님께 우리가 기도로 나아간다면 주님은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좋은 것들로 베풀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 주님을 믿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5. 주를 믿는 자처럼, 사랑하며!

예수님은 우리의 구하는 것에 다 응답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우리만 풍성해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주를 믿는 자처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주의 사랑으로 남을 대접하는 사랑이 넘치는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바울은 자유로 부름 받은 자들에게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5:13-14) 이웃 사랑하기를 자신을 사랑함 같이 하며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8)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이 넘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까지 세상풍파 속에서도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견디기 어려워 보이는 우리에게 허락된 환난과 시련의 환경을 믿음의 연단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반드시 응답하실 주님께 믿음으로 간구하며 끝까지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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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고치시고 회복시키시는 주

성경: 9:27-31

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9: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

9:31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

 

1. 수의사

자신이 유명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그 가운데에는 수의사 한사람도 끼여 있었다. 늘 권위 세우기를 좋아하는 한 의사가 있었는데 그는 수의사가 못 마땅했었는지 모임에서 내쫓을 생각으로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개나 돼지만 고친다면서요?” 그러자 수의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 그렇습니다만 어디가 불편하십니까?”

 

2. 예수님의 권세

본장은 전장인 8장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과 죄와 죄의 올무에 대한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을 여러 사건을 통해 기록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실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또한 본장은 그러한 사실과 함께 죄인이야말로 예수의 사랑을 받을 자이라는 것과 구원에 이를 자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은유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본 동네로 오셨다(1). 사람들이 침상에 중풍병자를 메고 오는 것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2-8). 예수께서 마태라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의원은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다(9-13).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의 문제로 예수께 질문하자 예수는 당신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신다(14-17). 또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신다(18-26). 그 후 예수께서는 두 소경을 고치시고, 벙어리를 고치시며,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27-38).

 

3. 간구의 자세

우리는 문제를 만날 때 누구를 찾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까? 우리는 삶의 주인이 되시고 세상의 주관자가 되시며 문제의 해결사이신 주님께 부르짖을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문제의 해결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그리고 무엇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할까? 성경에 예수님은 많은 이적과 기적을 일으키셨고 주님을 찾는 이들을 자유하게 해 준 일들을 많이 기록한다. 가나안 여인의 딸을 자유하게 해주셨고, 귀신 들린 아들을 어두움에서 풀어주셨으며, 나병환자를 고치시는 등 많은 사역을 통해 간구하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주님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불쌍히 여겨 달라

오늘 성경의 본문에서는 두 맹인이 등장한다. 이 맹인들은 예수님이 지나 가실 때에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 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9:27)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긍휼함을 입기를 소원해야 한다. 우리는 간청을 하되 어디에 초점을 두는 자세가 필요할까?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되 주님께만 집중하여 응답받기를 바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여리고로 향하던 예수님을 만난 길가에 앉았던 두 소경이 불쌍히 여겨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하자, 무리들이 꾸짖게 된다. 그러자 그들은 더욱 소리 질러 불쌍히 여겨달라고 외친다.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20:30-31)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녀의 딸을 귀신으로부터 자유하게 해 주신다. 가나안 여인도 역시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외친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15:22) 간질로 고생하여 불에도 물에도 넘어지는 귀신들린 아들을 고치신 예수님은 우리의 능력의 주님이 되신다.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17:15) 질병과 고통과 악귀 들린 자를 고치시며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충만히 느낄 수 있다. “마침 그 시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소경을 보게 하신지라.”(7:21)

 

믿음 가지고

주님 앞에 응답 받을 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가야 할까? 예수님은 맹인들의 집에 들어가시게 된다. 그리고 맹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왔고, 주님이 그들에게 이 일 할 줄을 믿느냐고 하시니 그들은 주여 그러하오이다 라고 답한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9:28) 또한 예수님은 한 나병환자의 믿음을 보시고 그를 깨끗하게 해 주신다.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8:2) 주님은 능력이 있으시나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역사하실 수 없다. 예수님은 고향에서 배척을 받으셨는데 그들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능력을 행치 아니하셨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하여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아니하시니라.”(13:58)

만약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우리는 자신의 믿음 없음에 대하여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예수님은 귀신 들린 아들을 고치실 때 믿는 자들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 아이의 아비는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9:23-24) 열 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은 여인에게도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9:22) 예수님께서는 믿으면 주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11:44) 우리 모두가 주님께 믿음을 가지고 간구하면 응답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자가 될 것이다.

 

4. 간구의 결과

우리는 주님 안에서 주를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음이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갈 수 있음은 매우 감사한 일이다. 누구든지 먼저 예수님을 인생의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 분의 자녀들이 된다면, 주의 자녀로서 그분께 나아 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해결해 주시는 참 좋으신 분이시다. 우리는 그분께 기도하며 주와 동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믿음대로 됨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간구했을 때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예수님은 두 맹인의 눈을 만지시며 말씀하신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9:29)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때 반드시 역사는 일어나게 된다. 시편기자는 사랑의 주님을 이렇게 묘사한다.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146:8) 주님의 사랑 안에 믿음으로 거하는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보고서도 은혜를 베풀어 주실까? 예수님은 이러한 경우에도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백부장은 중풍병에 걸린 하인의 문제를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간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셨고 그 시로 하인은 낫게 되었다.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으니라.”(8:13)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 딸을 고치신 주님은 좋으신 주님이 되신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15:28)

 

경고하시는 주님

주님이 맹인들에게 믿음대로 되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들은 눈이 밝아지게 되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경고하시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9:30) 예수님은 이러한 소문들이 퍼지기를 바라지 않으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고치셨을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병환자에게 주님은 권고하신다. 고침 받음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고 감사함으로 나아갈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저를 경계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셨더니.”(5:14) 또한 주님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에게 달리다굼, 소녀야 일어나라! 하시며 그녀를 일어나 걷게 하신다. 그리고 주님은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신다.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5:43) 예수님은 모든 이들의 영혼이 눌림으로부터 자유하게 되기만을 바라셨고 자신이 드러나는 것은 꺼려하셨다.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12:16) 우리는 주 앞에서 큰 믿음을 가지고 주님의 역사하심의 도구로 사용되고 주의 영광이 세상 가운데 충만해지기를 위해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5. 온 땅에 퍼지는 소문

예수님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는 것을 경계하셨으나 예수의 소문은 온 땅에 퍼져나갔다. 그들은 그 감사를 품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그리스도의 침묵하라는 엄한 경계에 복종하지 못하고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렸다.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9:31) 주님의 고치심에 사람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때에 귀신들려 눈 멀고 벙어리 된 자를 데리고 왔거늘 예수께서 고쳐 주시매 그 벙어리가 말하며 보게 된지라. 무리가 다 놀라 가로되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 하니,”(12:22-23) 그리고 예수님의 경계하라는 권면에도 그 소식은 널리 전파될 수밖에 없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경계하사 아무에게라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계하실수록 저희가 더욱 널리 전파하니.”(7:36) 우리는 죄와 사망과 죄의 올무를 물리치시는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실 참 하나님이시요 구주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 분은 죄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우리 또한 좋으신 주님을 바로 섬기고 그를 사랑하며 그 사랑을 따라 세상 가운데서 승리해야 한다. 우리의 가진 어떠한 문제든지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간다면 주님은 해결해 주실 것이다. 주님은 우리를 고치시는 분이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주님이 되심을 기억하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믿음으로 간구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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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성경: 여호수아 21:43-45

21:4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

21:44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음이니라

21:45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

 

1. 사자와 거북이

어느 날 사자와 거북이가 길을 가다가 만났다. 두려울 게 없는 사자는 만만한 거북이에게 시비를 걸었다. 열 받은 거북이는 사자에게 한판 붙자고 했다. 그러자 사자가 거북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 너 싸우기 전에 가방 먼저 벗어!” 그러자 열 받은 거북이가 하는 말 잔말 말고 목도리나 풀어.”

 

2. 신실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아브라함 이후 이삭과 야곱 그리고 모세와 여호수아에 이르기까지 많은 당신의 일꾼들을 향하여 가나안 땅을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이 약속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불충으로 인해 중도에 취소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기에 식언치 않으시고 당신이 한번 약속하시고 맹세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고야 마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인해 이스라엘은 마침내 대망하던 약속의 땅 가나안에 무사히 입성할 수 있었고, 또 가나안 정복 전쟁을 완전히 끝낼 수가 있었다. 하나님은 당신의 언약에 참으로 신실하신 분으로서 당신이 약속하시고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뤄 내고야 마신다. 정녕 이 같은 하나님의 거룩한 집념과 초월한 사랑과 변함없는 신실성 때문에 오늘 연약한 인간이 비록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감히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주 예수의 재림을 고대할 수 있다.

본장에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에서 유일하게 기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 지파를 위해 성읍을 기업으로 준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레위 지파 족장들의 요구에 따라 각 지파의 기업 중에서 성읍과 그 들을 취해 그핫과 게르손, 므라리 자손에게 나누어 주었다(1-7). 이렇게 해서 레위 자손들은 이스라엘 전 지역의 48개 성읍과 들을 분배받게 되었는데(8-42), 이것은 다른 지파와 같이 생산을 위한 기업이 아니라 거주와 목축을 위한 공간 확보라는 차원에서 주어졌다. 이로써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에 완전히 분배되었다(43-45).

 

3. 약속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기로 한 약속의 땅을 허락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동일한 약속의 주님으로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분이시다.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기까지 많은 고통과 시련이 있겠지만, 우리가 주님을 붙잡고 믿음으로 기도한다면 약속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승리케 하실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국은 가나안 땅을 정복하도록 허락하신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곳에 거주하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사 주리라 하신 온 땅을 이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다 주셨으므로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여 거기에 거주하였으니.”(21:43)

우리는 삶 가운데 어떠한 주님을 바라보며 담대히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약속의 주님을 바라보고 그 분을 신뢰해야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서로 갈라서게 된 후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보아라. 너와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줄 것이며 자손의 수도 땅의 티끌 같게 할 것이라 말씀하신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13:14)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알고, 그 분께 응답받고 그 분께 감사함으로 예배드리며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또 누구에게 나타나셨을까? 야곱에게도 하나님은 나타나셨다. 야곱은 에서를 피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던 중 벧엘에서 꿈을 꾸게 되었다. 해가 져서 그 곳에서 유숙하려고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누워 잘 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나타나 말씀하신다.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꼭대기는 하늘에 닿았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 했다. 그 때에 약속의 하나님은 야곱에게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해 복을 얻을 것을 말씀하신다.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서 동서남북에 편만 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28:14) 야곱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4. 원수 앞에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을 대적할 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주위에 안식을 주셨으되 그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하셨으므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 중에 그들과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주셨음이니라.”(21:44) 여기서 안식은 원어로 <j'Wn: 누아흐>이다. 이는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모든 위험이 사라진 완전한 평화와 번영의 상태를 말한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완전한 평화와 번영을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 조상들에게 맹세했다. 맹세는 영어로 Oath인데 하나님 또는 신성하게 여겨지는 대상을 가리켜, 그 말과 동기에 거짓 없음과 약속 이행의 의지를 엄숙히 증언하는 일이다. 거짓이 없으시는 약속을 지키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말씀했을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가나안 족속을 점차 몰아낼 것이라고 하시며, 말씀대로 순종할 것을 명하신다. 들짐승이 번성하여 해할지도 모르니 급히 멸하지 말라 하시며 그들을 너희에게 붙이겠다고 말씀하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점점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두렵건대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이시고 그들을 크게 요란케 하여 필경은 진멸하시고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붙이시리니 너는 그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필경은 그들을 진멸하리라.”(7:22-24)

하나님께 온유한 자라고 칭함을 받았던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일련의 지시를 하게 된다. 여호수아가 너희들을 거느리고 건널 것이며 그 땅을 얻게 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명령대로 행하라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여호수아가 너를 거느리고 건널 것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네 앞서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너로 그 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붙이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31:3-5) 약속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습이 때로는 연약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말한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열조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로 그 땅을 얻게 하라. 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 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31:6)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강하고 담대하게 승리하는 우리가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5. 이루시는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하나님은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을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이루어 주신 분이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말씀하신 선한 말씀이 하나도 남음이 없이 다 응하였더라.”(21:45)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신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23:19) 우리는 말씀하신 바를 다 이루시고 식언치 않으시는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식에 앞서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해 기도를 마친 후 이스라엘 회중을 위해 축복한다. 그는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신 주님의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다고 하며 주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솔로몬이 무릎을 꿇고 손을 펴서 하늘을 향하여 이 기도와 간구로 여호와께 아뢰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일어나 서서 큰 소리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며 가로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무릇 허하신 대로 그 백성 이스라엘에게 태평을 주셨으니 그 종 모세를 빙자하여 무릇 허하신 그 선한 말씀이 하나도 이루지 않음이 없도다.”(왕상 8:54) 우리는 말씀을 온전히 이루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분을 바라보고 주님과 늘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미쁘신 하나님은 우리가 주로 더불어 교제하기를 원하신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분이심을 기억하고 주께 소망을 갖고 큰 용기를 얻어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6:18) 현대인의 성경은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분이 하신 약속과 맹세는 절대로 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앞에 있는 희망을 붙들려고 피난처를 향해 가는 우리는 큰 용기를 얻습니다.”(6:18)

 

6. 평안을 주시는 주

거친 세상 가운데서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을까?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하나님이 빛과 구원, 생명의 능력이시니 아무 것도 두렵지 않음을 말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27:1) 다윗은 또 하나님을 의지하니 두렵지 않다. 사람이 내게 어찌하겠느냐 라고 고백한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56:11) 우리는 사람보다 더 크고 강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평안을 주노니 이는 세상의 평안과 다르므로 마음에 근심도 두려워하지도 말아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강한 믿음 가지고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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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3. 26. 09:03

주님의 부활하심을 찬양, 누가복음 24:5-12

말씀: 주님의 부활하심을 찬양

성경: 누가복음 24:5-12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24: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24:11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24:12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 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가니라

 

1. 앵무새의 진실

어떤 못 생긴 아가씨가 동물상점에 새를 살까 해서 찾아 갔다. 아가씨가 문에 들어오자마자 문 앞을 지키고 있던 앵무새가 소리를 질러댔다. “에이! 아가씨 정말 못생겼네!” “못생겼어!, 못생겼어!” 화가 난 아가씨는 주인에게 화를 냈고 주인은 . 주의 시키겠습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고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몇 일후 다시 그 가게를 들른 아가씨는 설마 하는 마음으로 가게 문에 도달했다. 앵무새는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헤이 아가씨, 알지?” “알 꺼야! 알아.”

 

2. 그리스도의 부활

본장은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이 크게 강조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후 실망하여 뿔뿔이 흩어진 제자들은 부활 소식을 듣고는 다시 모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말씀하시고 승천하셨다. 본장은 우리들에게 커다란 희망을 주고 있다. 안식 후 첫 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의 무덤에 갔을 때 무덤 문을 열려 있었고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알려 주었다.

여자들이 사도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을 때 다른 이들은 믿지 않았으나 베드로는 무덤에 달려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다(1-12). 부활의 주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신다(13-35). 제자들이 모인 곳에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구운 생선을 드셨다(36-43). 그 후 성경 말씀을 풀어 가르치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증인으로 삼으시고,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무를 것을 명하셨다(44-49). 그 후 예수께서는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제자들에게 축복하시고 승천하셨다(50-53).

 

3. 다시 사신 주(5-6)

우리에게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그 분은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이 땅에 육신의 옷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리며 죽으셨다. 그 분은 가시관을 쓰시고 두 손과 두 발에 못 박히시며 옆구리에 창을 찔리셨다. 모든 모욕과 멸시를 받으시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고 죄 용서함을 받은 우리 모두는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기뻐해야 한다. 그 분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3일 만에 다시 사셨음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우리 주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사신 부활의 주님이시다.

 

두려워하는 여자들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자들은 천사들을 보고 두려워한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24:5) 여자들은 천사들을 보고 얼굴을 땅에 대었는데 여인들의 이러한 반응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가졌음을 알게 한다. 천사들은 살아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말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확실하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여자들은 언제 무엇을 가지고 무덤으로 향했을까? 그들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향품을 가지고 서둘러서 무덤으로 갔고 돌이 무덤에서 옮겨진 것과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천사를 보게 되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준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24:1-4) 무덤에는 아무 것도 없었고 우리 주님은 살아나셨다.

 

여인들

무덤으로 향했던 여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2명의 마리아와 살로메였다. 성경에 마리아는 여러 명이 등장하게 되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마리아: Mary(인명) (Mariva, Mary)높다[1] 막달라의 마리아이다. 예수와 12사도를 따라 갈릴리 지방을 순회한 부인인데, 예수께서 일곱 귀신을 쫓아내 주신 여인으로서 특기하고 있다(27:56, 16:9, 8:2). 그녀는 제자가 되어 자기의 소유로 예수님 일행을 섬겼다(27:56, 8:1-3). 십자가와 매장을 지켜보고, 3일 만에 시체에 바를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옮겨지고, 시체가 없어진 것을 보고, 요한과 베드로에게 보고하여 사도들과 다시 무덤으로 달려왔다가, 그들이 떠나간 후에도 계속 거기 웅크리고 있었다.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최초로 목격한 사람이다(16:9, 20:11-18). [2]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이며, 글로바의 아내인 마리아이다. 글로바는 알패오(10:3, 3:18, 6:15)와 같은 사람이다. ‘글로바알패오라는 이름은 다 같이 아람어 하르피의 변형이다. 그녀는 예수의 십자가와 매장, 그 후 사흘째 되던 날 향유를 가지고 무덤으로 갔을 때, 부활하신 주를 만난 곳에 등장할 뿐이다(28:1, 15:47, 16:1, 24:10). [3] 베다니의 마리아이다. [4]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그리고 살로메에 대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살로메: Salome(인명) 세베대의 아내이며 야고보와 요한의 모친이며 예수의 이모이다(27:56, 15:40, 16:1). 예수의 십자가를 멀리서 바라보았고(27:56), 예수의 부활의 날에는 아침 일찍이 향품을 가지고 주님의 무덤으로 갔다.

이 여인들에게 천사들은 어떤 말을 전했을까? 빈 무덤을 천사들은 지키고 있었고 여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는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않음을 말한다.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5-6) 여인들은 어떤 형상을 가진 천사들을 보고 그렇게 놀랬을까? 여인들은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흰 천사들을 보고 놀라고 말았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 수직하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28:3-5)

 

살아나신 주

천사들은 주님이 살아나셨다고 말하며 갈릴리에 계실 때에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기억하라고 전한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24:6) 주님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으며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예수님은 갈릴리에 모일 때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가르치셨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17:22-23)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무서워했다.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연고더라.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무서워하더라.”(9:31-32) 우리는 주님의 다시 살아나심을 잘 깨닫고 확실하게 믿는 부활의 신앙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 부활을 외치는 자(7-12)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셨던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그렇다면 다시 사신 주님을 따라가는 작은 제자인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주님의 다시 사심을 외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잘 깨닫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잘 알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죄악 된 세상 가운데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이 기쁜 부활의 소식을 전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는 우리 모두는 행복한 자들이다.

 

생각나게 하시는 주

그들은 이제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시리라 하셨던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24:7-8) 여기서 기억하고는 예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의 위엄과 예언의 성취를 함축하는 말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로 주님의 말씀이 반드시 성취됨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성령님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주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전파하는 이들

여인들은 이 소식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게 된다.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24:9-10) 사실 천사들이 여인들에게 부탁한 말이 있었다. 천사들은 제자들에게 주님이 살아나셨고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너희가 뵈오리라 말했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 할새.”(28:7-8) 주님의 다시 사심을 전한 여인들처럼 우리도 기쁨으로 주님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소식을 들은 이들의 반응(믿지 않는 자 VS 달려가는 자)

예수님의 다시 사심에 관한 소식을 들은 이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러나 이 소식을 들은 모두가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믿었고 어떤 이들은 믿지 않았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에 달려가서 구부려 들여다보니 세마포만 보이는지라. 그 된 일을 놀랍게 여기며 집으로 돌아 가니라.”(24:12) 어떤 이들은 여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으나 주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갔다. 베드로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믿음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여타 제자와 같이 의심은 가졌지만 예수가 부활한 빈 무덤을 확인하려는 의도로 이해 할 수도 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빈 무덤에 들어가 세마포가 놓였고 머리에 쌌던 수건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사실은 믿었으나 성경에 미리 예언되어 있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은 알지 못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 새 둘이 같이 달음질하더니 그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아나서 먼저 무덤에 이르러 구푸려 세마포 놓인 것을 보았으나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더니 시몬 베드로도 따라 와서 무덤에 들어가 보니 세마포가 놓였고 또 머리를 쌌던 수건은 세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켜 있더라. 그 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20:3-10)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소식에 가슴이 뜨거워지고 감격해야 한다. 이 사실이 성경에 예언되어 있었고 결국은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보지 않고서도 믿는 믿음이 우리 안에 있기를 소망한다.

 

5. 부활의 주를 찬양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은 사망권세를 깨뜨리고서 다시 사셨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 우리는 거듭나게 되었다.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우리 모두가 산 소망을 가지고 주님만을 최고로 찬양하는 삶을 사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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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3. 19. 08:47

겸손의 왕을 찬양, 마태복음 21:6-11

말씀: 겸손의 왕을 찬양

성경: 마태복음 21:6-11

21:6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21:7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21:8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21:10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

21:11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1. 서둘러라

배가 가라앉고 있었다. 선장이 소리쳤다. “누구 기도할 줄 아는 사람 없나?” “제가 기도할 줄 압니다.” 하고 한 사나이가 앞으로 나왔다.

좋아 그렇다면 기도를 해 주게.” 하고 선장이 말했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구명조끼를 입어라!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2. 예루살렘 입성

본장은 이제 드디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위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입성하신 뒤 성전에 들러 정화하신 것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예수님은 선민임을 자랑하며 예수님께 도전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세상에 속한 자를 심판하실 메시야라는 것을 더욱 드러낸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을 때 준비해 두셨던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다. 무리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한다(1-11).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신다. 그리고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신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의 행동과 무리들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란 찬송에 대하여 분개한다(12-17). 이른 아침에 예수께서 성으로 들어오시다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신다(18-2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로 더불어 여러 가지 논쟁을 하시고 비유를 말씀하기도 하셨다(23-46).

 

3. 겸손의 왕(6-8)

한 나라의 왕은 그 신분으로서의 가치가 대단하다. 그런데 인류의 죄악을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은 얼마나 위대할까? 우리는 하나님이신 그분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셨음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한 사람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며 십자가를 지셨다. 우리는 이러한 크신 은혜에 감격하며 새 생명을 주신 주님을 좇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은 겸손의 왕이시다.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에도 겸손한 모습으로 입성하신다. 우리는 겸손의 왕이 되시는 주님을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순종하는 제자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언가를 요청한다. 그리고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한다.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21:6) 주님의 어떤 말씀에 제자들은 순종했을까? 예수님은 제자들과 예루살렘 가까이에 이르게 되었고 두 제자를 보내어 나귀 새끼를 자신에게로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21:1-3) 예수님께 마땅히 순종하는 제자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우리는 친구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15:14)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모세도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자였는데, 모세는 하나님께 성막을 봉헌 할 때 순종하였음을 성경은 기록한다. “모세가 그 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40:16)

 

나귀를 타신 예수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나귀 새끼를 끌고 온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나귀위에 타시게 된다.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21:7) 성경사전은 나귀와 나귀 새끼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나귀(당나귀): Ass []Ass 포유류, 말과에 속하는 짐승. 말과 비슷하나, 말보다 몸집이 작다. 머리는 비교적 크고, 앞머리에 긴 털이 없다. 귀는 길고, 등이 불쑥 나와 있는데, 건강하여 부리기에 적당하다. 털은 단색으로 황갈색, 회흑색이 많고, 입 주위와 배는 백색이다. 어깨 높이는 0.8m-1.6m 정도이다. *나귀새끼: Colt []rG,('ayir) []pw'lo"(polos) []Colt 나귀의 새끼. 평화의 임금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타는 나귀나, 앗수르 및 애굽 왕이 타는 군마(軍馬)가 아니라, 나귀새끼를 타고 오실 것이 스가랴에 의해 예언되어 있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그리고 이 예언은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21:1-11, 11:1-11, 19:28-40).

 

주를 높이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는 회중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대다수의 무리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종려나무를 길에 폈다. “무리의 대다수는 그들의 겉옷을 길에 펴고 다른 이들은 나뭇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21:8) 겉옷을 길에 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이것은 예수를 왕으로 영접하는 무리들의 지극한 존경의 표시였다. 무리는 왜 이러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 이러한 그들의 행동은 예수를 정치적인 해방자로 이해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성경사전은 종려나무에 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종려, ~나무:Palm, Palm tree []Palm, Palm tree 열대와 아열대에 많이 보이는 상록 교목. 종려, 또는 종려나무로 성서에 역된 원어는, 대추야자(date-palm)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대추야자). 종려나무(hemp-palm)는 종려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높이는 3-7m에 달하고, 암갈색의 섬유에 싸인다. 줄기는 원주처럼 직립하고, 가지 치지(번식치) 않는다. 잎은 줄기 끝 자루에 총생 하는데, 각각 30cm가량의 대에 끝에 가서 손바닥처럼 갈라진 것으로 드리운다. 무리는 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가 호산나 찬송하였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 우리는 를 구속하신 겸손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복된 인생을 살아야 한다.

 

4. 주 앞에서(9-10)

우리는 주 앞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혹시 환경과 형편을 따지며 감정에 의존하여 주님 앞에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는 자신의 상황과 무관하게 주님을 기쁨으로 높이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하늘의 영광이요, 이 땅의 평화이다. 이 당시에나 지금이나 어떤 이들에게는 주님에 관한 소식이 못 마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살아계시는 주님 앞에 기쁨으로 바르게 반응하기를 다짐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호산나 외치며

무리는 앞에서 뒤에서 소리 높여 외친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21:9) 호산나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 말의 본래적인 뜻은 우리를 구원하소서인데 유대 사회에서 점차적으로 그 의미가 변모되어 찬양이나 기쁨의 환호가 되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기뻐해야 할까? 시편기자는 이렇게 주님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 “이 날은 여호와의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케 하소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118:24-26)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소식을 들었던 천군과 천사들도 주를 찬송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 예수님은 우리 모두에게 참 기쁨이 되신다. 제자들도 너무나 기뻐하고 주를 찬양했다.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19:37-38)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 되시는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12:13-15)

 

예수님을 맞이하는 자들의 반응

그런데 주님의 소식을 들은 자 모두가 예수님을 높이지는 않았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실 때 성은 소동하였다.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는 누구냐 하거늘.”(21:10) 소동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여기서는 예수의 출현으로 야기된 불안한 상황을 의미한다. 왜 이들은 소동할 수밖에 없었을까? 예수님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다 같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수님의 사역현장에 있던 이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예수님이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 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 교사들을 가르치실 때의 이야기이다. 그때 한 중풍병자가 있었는데 친구들은 그를 고쳐보기 위해 침상을 메고 와서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이 없어 지붕에 올라가서 기와를 벗기고 침상 째 예수 앞에 달아 내리게 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친구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시며 죄 사함을 받았다 말씀하셨다. 그런데 이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예수님의 말씀을 참람한 말이라고 하며 반응한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의논하여 가로되 이 참람한 말을 하는 자가 누구뇨.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5:21) 한번은 백성을 가르치는 예수님에게 예수의 권위를 두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렇게 말한다.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세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20:2) 주님의 일하심을 보고 좋은 편에서 반응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5. 예수 이름 높이며(11)

우리는 주님을 어떻게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이들에게 무리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말한다.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21:11)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기억해야 한다.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2:23) 우리는 좋으신 주의 이름을 높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시고 그녀의 아들을 살리신 주님의 기적을 보며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 하더라.”(7:16) ‘에게 주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145:8) 은혜로우시며 자비하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는 주님을 기뻐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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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께 은혜를 입는 요셉

성경: 창세기 41:37-43

41:37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41:38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41:39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41:40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41: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

41:42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

41: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

 

1. 루터의 꿈

루터는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이 꿈은 종교개혁의 봉화를 들려는 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다. 사단이 기독교인 전멸작전을 펴며 대장이 부하들에게 보고를 받고 있었다. 부하1: 대장님, 저는 사막을 걷는 예수쟁이들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자의 입 앞에서도 평화롭게 기도하더군요. 부하2: 저는 바다를 항해하는 예수꾼들에게 폭풍을 일으켰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암초에 올라가서 찬송을 부르더군요. 부하3: 저는 한 교회를 찾아가 10년 동안 모든 일이 잘되고 평안하게 해 주었더니 그들의 육과 영이 완전히 썩어버렸나이다.

 

2. 요셉에 대한 계획의 성취

창세기 41장은 40장에서 술 맡은 관원장이 옥에서 풀려 복직된 지 2년 만에 있게 된 일이다. 본장은 드디어 오랜 시련과 역경의 때가 지나고 하나님께서 요셉에 대하여 계획하셨던 뜻을 온전하게 이루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오랜 고난의 세월이 지나고 요셉은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예비해 주신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본장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요셉이 마침내 영광을 얻게 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지만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고 마침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게 된다(1-13). 그리하여 바로 앞에 불려 나온 요셉은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바로에게 그 꿈이 온 땅에 닥칠 칠 년 풍년과 칠 년 흉년을 예고한 것임을 알게 한다(14-36). 이에 바로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요셉을 총리로 세우게 되며(37-45), 총리가 된 요셉은 현명한 방법으로 7년 대흉년으로부터 온 땅의 백성들을 구하게 된다(46-57). 대기근으로 부터 많은 백성을 구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요셉을 바로 앞에 서게 하는 섭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가나안의 기근으로 파탄에 빠질 야곱, 장차 이스라엘 될 자들을 구하시려는 장기 계획의 일단을 가동시키게 된 것이다.

 

3. 바로의 꿈을 해석하는 요셉(37-39)

우리는 종종 꿈을 꾼다. 만약, 중요하게 생각되는 꿈의 해석이 어렵다면 꿈을 꾼 자는 곤란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의 꿈을 해석한 요셉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었고, 하나님이 함께 하였던 그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된다.

 

바로의 꿈

요셉이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준 지 2년이 지나 애굽 왕 바로는 꿈을 꾸었다. 그가 꾼 꿈은 매우 불길한 것이었다. 첫 번째 나타난 일곱 마리의 소는 매우 살이 찌고 건장해서 보기에 좋았다. 그러나 그 뒤에 나타난 일곱 마리의 마른 소가 이것들을 잡아 삼킴으로써 바로의 마음을 번민케 하였다. 바로는 살찐 일곱 소와 마른 일곱 소의 꿈을 꾼 후, 바로 연이어 충실한 일곱 이삭과 마른 일곱 이삭의 꿈을 꾸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동일한 꿈을 연속적으로 꾸게 하셨을까? 그 이유는 바로로 하여금 그 꿈을 범상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바로의 꿈에 대해 애굽의 박사들과 술사들의 당황과 침묵은 요셉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때 꿈으로 인해 크게 번민하는 모습을 지켜 본 술 맡은 관원장은 지금까지 잊고 있었던 요셉을 기억하게 되었다. 관원장은 일찍이 옥에서 들은 요셉의 부탁을(참조, 40:14) 잊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부탁을 이행할 수 있도록 상황을 만드셨던 것이다. 술 맡은 관원장은 이 년 전에 감옥에서 있었던 일을 바로에게 고하고 요셉을 천거하였다. 이에 바로는 요셉을 불러 자기 앞에 서도록 하였다.

 

꿈을 해석하는 요셉

꿈을 해석하지 못하다가 요셉의 꿈의 해석을 들은 이들은 기쁨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41:37) 요셉의 말은 이렇다.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41:33-36)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요셉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었다. 바로는 신하들 앞에서 이렇게 말한다.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41:38)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이라는 바로의 입술의 고백은 하나님의 큰 은총이 요셉에게 임했음을 알게 한다. 그는 일개 종이요 죄수에 불과했던 자였다. 그런데 요셉이 대국의 통치자 앞에서 하나님의 통찰력과 지혜를 지닌 자로 여겨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성경에는 또 다른 지혜로운 자가 등장한다. 그는 바로 다니엘이다. 느부갓네살 왕은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 지고 하늘에 닿은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다니엘에게 해석을 요청한다. 왕은 다니엘에게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박사가 능히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니라.”(4:18) 왕은 다니엘에게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고 확신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즉 네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으므로 네가 명철과 총명과 비상한 지혜가 있다 하도다.”(5:14) 하나님은 이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셨음이 분명하다.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

하나님은 명철과 지혜를 주시는 분이시다. 왕은 요셉의 꿈의 해석을 통해 그가 가지고 있는 명철과 지혜에 놀라게 된다.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41:39) 요셉은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보디발에게 팔리게 된다. 하나님과 함께한 요셉은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어 가정의 총무가 된다. 그는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했는데 하나님은 요셉을 위해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셨다.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으로 가정 총무를 삼고 자기 소유를 다 그 손에 위임하니 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39:4-6)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영이 함께 할 때에 주님의 지혜가 넘쳐나게 됨을 알 수 있다.

 

4. 총리가 된 요셉(40-42)

보디발 집의 총무였고 옥중에 갇혔던 그는 왕의 꿈을 해석함으로 신뢰를 받게 되고 애굽의 총리가 된다. 총리가 된 요셉은 어떠한 영광을 누리게 되었을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를 수 있고 우리의 생각을 넘어 어떠한 일들도 가능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스리는 요셉

바로는 요셉에게 어떠한 권한을 주게 되었을까? 바로 왕은 요셉에게 애굽을 다스릴 것을 명한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41:10) 왕이 말했던 너보다 높음이 왕좌 뿐 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애굽에서 바로 다음으로 실력자가 됨을 선언한 말이다. 특출한 지혜의 소유자로 인식된 요셉에 대한 바로의 파격적 인사는 반발이나 불만의 목소리를 일체 일으키지 않았다. 이는 참으로 놀랄만한 일이 분명하다. 또 다른 지혜자 다니엘도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 왕은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라고 명했었다.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방백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6:3)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요셉이 총리가 된 후, 애굽으로 식량을 구하러 온 그의 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을 팔았던 형제들을 미워 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자신을 이리로 보낸 자는 하나님이시라고 말한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말고 내려오사.”(45:8-9) 처음에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이 소식을 전하는 자녀들의 말을 믿지 못했고 기색했다.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45:26)

 

총리가 된 요셉
요셉은 또 어떤 하나님의 은혜를 받게 되었을까? 바로 왕은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임명한다.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하고.”(41:41) 요셉의 과거의 삶은 종의 삶이었고 옥중에 갇힌 자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때도 요셉과 함께 하셨고, 요셉은 옥중에서도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감당했었다. 그리고 간수장은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고 제반 사무처리 까지 하게 한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않을 정도였다.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39:22) 하나님 앞에서 깊은 중심을 가지고 있었던 요셉은 총리가 되는 큰 은혜를 입게 된 것이다.

 

권위가 생긴 요셉

하나님은 요셉에게 어떠한 은혜를 주셨을까? 총리가 된 요셉에게 바로왕은 자신의 인장 반지를 빼어 그의 손에 끼우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어준다. “자기의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을 입히고 금 사슬을 목에 걸고.”(41:42) 왕이 인장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에 끼어주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반지는 신분을 나타내는 고대의 도장이었는데 요셉의 손에 반지를 끼어주는 행위는 바로의 권한을 요셉에게 부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하나님의 지혜를 입었던 또 한 사람 다니엘에게 벨사살 왕도 자주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로 그의 목에 드리우게 하고 셋째 치리자로 삼았었다. “이에 벨사살이 명하여 무리로 다니엘에게 자주 옷을 입히게 하며 금 사슬로 그의 목에 드리우게 하고 그를 위하여 조서를 내려 나라의 세째 치리자를 삼으니라.”(5:29)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중심을 바르게 하여 성실하게 행하는 충성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 앞에서 이렇게 행하는 우리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시며, 큰 은혜를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왕 되신 그 분 앞에 충성을 다하는 파수꾼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열 므나의 비유를 통해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물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19:16-19) 왕이신 그 분이 우리를 찾으실 때 칭찬받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5. 버금 수레를 탄 요셉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총리가 된 요셉에게 왕이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를 태우매 무리는 그의 앞에 엎드리라고 말했다.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의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 하더라 바로가 그에게 애굽 전국을 총리로 다스리게 하였더라.”(41:43)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런 다음에, 또 자기의 병거에 버금가는 병거에 요셉을 태우니, 사람들이 물러나거라!’하고 외쳤다. 이렇게 해서, 바로는 요셉을 온 이집트 땅의 총리로 세웠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스데반은 설교 중에서 환난 가운데서 요셉을 건지신 주님을 말한다. “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7:10) 주님과 동행하기를 소원하는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은혜가 임하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 중에서라도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셉의 꿈 해석대로 복직된 술 맡은 관원장은 만 2년이 지난 후에 바로의 꿈으로 인해 비로소 요셉을 기억하게 되었다. 그 동안 요셉은 곧 풀려나리란 희망이 사라지고 술 관원장과 하나님께 대한 원망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이 년이란 시간은 요셉이 극적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한 준비 기간이었으며 가장 적합한 시기를 기다린 것이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의 기도의 응답이 늦을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이 듣지 않거나 이루실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적당한 시기를 기다리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온전한 믿음이란 때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함을 요셉의 고난과 번영은 말해준다. 요셉처럼 믿음으로 기다리며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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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3. 5. 11:56

우리를 살리신 주, 에베소서 2:1-8

말씀: 우리를 살리신 주

성경: 에베소서 2:1-8

2:1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2:3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2: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2: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2:7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1. 마지막 소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자식들이 집에 모여들었다. 가족들의 흐느낌 속에 아버지는 불규칙적으로 숨을 헐떡이고, 이 모습을 보던 어머니는 북받치는 슬픔에 부엌으로 가 평상시 남편이 좋아하던 해물 부침개를 지지고 있었다. 부침개가 익을 무렵, 이 냄새를 맡은 남편이 아내를 불렀다. “여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당신이 만든 부침개가 먹고 싶구려!” 그러자 아내가 남편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보! 조금만 기다려요. 내일 장례식 때 쓸 거니까요.”

 

2. 하나님의 우주 경륜

본장에서는 인간 구원의 문제를 하나님의 우주 경륜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다. 바울은 죄와 허물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던 인간이 그리스도의 공로로 하나님과 화해하게 됨을 밝히고 있다. 예수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는 태초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성취이다. 그리고 최후의 심판을 통해 성취될 하나님의 우주적인 계획을 의미한다.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된다. 첫째 단락에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영원하신 사역의 일부로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을 죽음에서 살리시고 당신과 화해케 하셨다는 구속의 역사를 말하고 있고(1-10), 둘째 단락에서는 평화의 사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화해케 하셨다는 사실과 함께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신 교회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11-22).

 

3. 죄인인 자(1-3)

인간에게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 땅의 부귀와 영화는 세상의 끝날 다 없어지게 되지만 하늘나라는 영원한 세계로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약속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누구를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죄로 죽어야만 하는 우리를 살리신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죄로 죽은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신 분이시다. 우리는 죄와 허물이 많은 자로서 예수님이 없었다면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2:1)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 죽었던의 의미는 죽은, 생명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인간의 죄로 인한 영적인 죽음의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끝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 놓게 되었다. 이토록 주님의 사랑은 크고 놀랍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고후 5:14) 우리는 어떤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 예수님이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불순종의 아들들

우리는 어떠한 자들이었을까? 어두움의 영은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 밖에 있었던 우리들은 그러한 영향 아래에서 행하는 자들이었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2:2) 믿는 자들까지도 멸하려고 하는 영적 존재인 사단은 어디를 돌아다닐까? 하나님이 사단에게 묻자 사단은 여기 저기 다녀왔다고 답한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1:7)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한가? 우리는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10)

 

본질상 진노의 자녀

우리는 어떠한 자들이었는가?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쫓는 자들이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면 더러운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우리를 더럽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나올까? 예수님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말씀하신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7:21-22)

우리는 날마다 속사람이 변화받기를 위해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바리새인이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께 와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느냐고 묻자,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관원이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3:1-6)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천국 인생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좇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성령을 좇아 행하여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16-24) 우리는 더러운 우리의 모습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 용서함을 받아 반드시 주안에 거하며, 성령의 사람으로 날마다 변화 받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2. 은혜를 입은 자(4-7)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것들로 채워주시는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들로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얼마나 클까? 우리는 매일 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자들로서 주님을 최고로 높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긍휼의 하나님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가 범죄 할 지라도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주님 앞에 엎드리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을 찾는 자가 어느 누구일지라도 주님은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시며 긍휼히 여겨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2:4) 죄인인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신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5:8) 우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며 죄악 된 길에서 돌이키고 주께로 돌아오면 주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은혜 입은 자

허물 많은 우리를 살리신 분은 누구신가? 우리는 주님의 큰 은혜를 입은 자들임을 기억하고 주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2:5) ‘허물은 원어로 <paravptwma: 파랍토마>이다. 이는 비틀거림, 잘못 내디딤이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빠진 인간의 죄악 된 상태를 가리킨다. 허물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신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인해 우리는 주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구원받는 은혜를 입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5:10) 우리의 행위로가 아닌 온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함을 받았음을 기억하고 늘 주님 안에 거하기 위해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11:5-6)

 

예수 안에서

주 안에서 우리는 어떠한 신분으로 바뀌게 되었는가? 우리는 구속함을 받은 자로서 주와 함께 하늘나라 백성이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6) 우리는 하나님이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는 분임을 알고 주를 찬송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 그리고 우리는 만물의 으뜸이 되시는 교회의 머리 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1:18)

 

주님의 영광

우리는 천국 백성 된 자들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우리를 천국 백성 삼으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알고 주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2:7) 우리는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바라는 바울의 고백과 같이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3:21) 우리는 누구에게 영광을 돌려야 할까?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을 돌리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딤전 1:17)

 

5. 하나님의 은혜(8)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선물은 무엇일까?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구원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분을 최고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주 안에서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게 되었음을 감사하며, 우리를 살리신 주님 앞에서 생명을 다해 사명을 잘 감당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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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2. 27. 11:28

긍휼히 여김 받는 자, 창세기 19:23-29

말씀: 긍휼히 여김 받는 자

성경: 창세기 19:23-29

19: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19: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19: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19: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

19: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

19:29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

 

1. 범사에 감사와 잘린 다리와 식인종

아프리카로 선교하러간 미국인 목사가 식인종들에게 둘러 싸였다. 이제라도 달려들어 곧 잡아 먹을듯한 기세다. 선교사: “여러분들은 나를 잡아먹고 싶은 모양인데 내 고기는 별로 맛이 없어서 못 먹을 텐데요.” 그는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종아리를 베어서 넘겨주며 어디 먹을 수 있는가 시식 좀 해 보시오. 그리고 먹을 수 있다면 드셔보셔!” 라고 했다 식인종들 가운데 추장정도로 보이는 한 식인이 그것을 맛보고는 퉤퉤 !” 하고 뱉어 버렸다. “보시오. 맛이 없어 못 먹는 다니까요......” 그 선교사는 그곳에 50년간을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 그의 다리는 교통사고로 잃고 고무다리를 했던 것이다. 다리를 잃었을 때는 아쉬움이 많았으나 그 잃은 다리로 생명을 구할 수 있었으니 이 어찌 감사 하지 않으랴.

 

2. 하나님의 심판

본장은 노아 대홍수와 더불어 하나님을 떠나 죄악에 빠진 인간들에게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엄중성을 보여 주는 소돔과 고모라 멸망 사건이 나타난다. 즉 하나님을 멀리하고 오직 쾌락만을 추구하는 방탕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상을 보여 주고 있으며(1-14), 엄중한 심판 가운데서도 롯과 그 가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고 있다(15-23). 세상의 재물과 쾌락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를 소개하고 있다(24-29). 끝으로 롯과 두 딸의 근친상간을 통해 롯의 세속적 선택(참조, 13:11)의 비참한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30-38).

 

3. 롯의 피신(23-25)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삶을 바른길로 인도하시기를 원하신다. 인간이 범죄 할 때에 화를 금치 않기도 하시는 분이 우리 주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인간을 벌하시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인간에 대한 벌을 내리시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이들을 구원하시기도 하실까?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롯은 이러한 큰 은혜를 받게 된다.

 

소알에 들어간 롯

하나님께서 우리를 돕는 방법은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를 돕기 위해 때로는 천사를 보내기도 하신다. 롯의 가족은 천사의 인도를 받게 되었는데, 천사의 재촉함으로 소돔에서 도망 나와 소알로 향하게 된다.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19:23)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받기 전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롯이 눈을 들어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했었다.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여호와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기 전이었는 고로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13:10) 그러나 여호와의 동산 같았던 소돔도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앞에 다 무너지게 된다.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림

거룩하신 하나님은 타락한 땅이었던 소돔을 어떻게 하시게 되었는가? 죄악으로 덮였던 소돔을 하나님은 벌하시게 된다. 하나님은 롯의 가족이 소돔을 떠날 때에 하늘에서 불을 내리시게 된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19:24) 예수님은 롯의 때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결국은 불과 유황으로 그들을 멸하였음을 말씀하신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서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저희를 멸하였느니라.”(17:28-29)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통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끝이 어떻게 됨을 잘 깨달아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벧후 2:6) 그리고 주님의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더욱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할 것이다.

 

다 엎어 멸하심

오래도록 참으셨던 하나님은 죄악에 대하여 어떻게 하실 수밖에 없었을까? 하나님은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을 다 멸하실 수밖에 없었다.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19:25) 죄악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나 자신의 죄악에 대하여 우리는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개인을 넘어 민족과 도시의 죄악에 대해서도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소돔을 멸망시키기 전에 천사는 롯에게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할 것을 권면했다. 그리고 롯은 멸망 받게 된 소돔으로 부터 건짐을 받는 은혜를 입게 된다.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19:17)

 

4. 주님의 멸하심(26-28)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었다면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을 때에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께 긍휼함을 입기 위해 늘 기도해야 한다. 죄로 가득한 우리에게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늘 사랑으로 권면하시는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의 죄악 됨을 보고 아파하실 아버지의 마음을 밝히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소금 기둥이 된 롯의 아내

롯의 아내는 왜 소금 기둥이 되었을까? 롯의 가족이 불덩이가 떨어지는 소돔을 떠나 도망가던 중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소금 기둥이 되고 만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19:26) 예수님은 마지막 날에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을 권면하시며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신다.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 세간이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오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이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생각하라.”(17:31-32) 우리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주님만 바라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 때에 우리의 믿음을 지키고 주님이 보실 때에 의롭다 하는 자들이 되어 뒤로 물로 가지 않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10:38)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는 아브라함

하나님은 롯에게 멸망에서 건짐을 받는 큰 은혜를 주셨다. 은혜를 입은 롯의 뒤에는 누가 있었을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기도로 인해 롯은 소돔으로부터 건짐을 받게 되었다. 아브라함은 그 아침에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게 된다.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여호와 앞에 서 있던 곳에 이르러.”(19:27) 소돔을 멸하시겠다는 계획을 알게 된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서서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하실 것이냐고 묻는다. 공의의 하나님께 순차적으로 성중에 50, 45, 40, 30, 20, 10명이 있으면 멸하지 않으실 것인지 묻게 되고 하나님은 그렇게 할 것을 약속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 아브라함이 말씀하여 가로되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고하여 가로되 거기서 사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사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옵시고 말씀하게 하옵소서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거기서 삼십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내가 감히 내 주께 고하나이다 거기서 이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이십인을 인하여 멸하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거기서 십인을 찾으시면 어찌 하시려나이까 가라사대 내가 십인을 인하여도 멸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더라.”(18:22-23) 하지만 결국은 멸망되고 마는 소돔을 바라보며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대화했던 그 순간을 생각하고 소돔을 멸하실 수밖에 없었던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크게 가슴 아파했을지도 모른다.

 

눈을 들어 온 지역을 보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바라보았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지역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 가마의 연기같이 치솟음을 보았더라.”(19:28) 우리는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징계 앞에 슬픔만이 있게 됨을 기억하고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편에서 주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법에서 벗어나서 육신이 좋아하는 삶만을 살게 되면 영원한 형벌을 면치 못함을 소돔과 고모라의 사건을 통해서 깨닫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1:7)

 

5. 공의로우신 주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므로 죄에 대하여는 결코 용서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아무리 작은 죄라도 하나님의 심판을 기억하고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승리해야 한다. 심판의 와중에서 롯과 그의 가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세상 가운데서 죄악과 싸워 반드시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긍휼히 여김 받는 자(29)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자들로 살아가야 할까?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었던 아브라함의 간청으로 롯은 하나님께 긍휼함을 입었다. “하나님이 그 지역의 성을 멸하실 때 곧 롯이 거주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보내셨더라.”(19:29) 우리는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 주님의 보호 아래에서 살아가야 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는 다 보호하시고 악인은 다 멸하시리로다.”(145:20) 시편기자는 선하신 주님께 간구한다. “여호와여 내 소시의 죄와 허물을 기억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을 인하여 하옵소서.”(25:7) 선하신 주님께 은혜입기를 소원하는 시편 기자의 고백과 같은 아름다운 말들이 우리의 삶 가운데 가득하여 늘 주님께 긍휼히 여김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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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2. 20. 10:26

승리의 날, 말라기 4:1-3

말씀: 승리의 날

성경: 말라기 4:1-3

4: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4:2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4:3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1. 레스토랑

오랜만에 고급 레스토랑에 간 가족, 부담스러운 가격임에도 스테이크를 시켰다. 많이 먹었다고 생각했지만 꽤 많이 남은 음식들을 그냥 두고 가기가 아까웠다. 아버지는 음식을 싸가려고 했지만 조금 민망한 생각이 들어 웨이터에게 둘러대기 시작했다. “여보게, 웨이터! 남은 음식은 싸주게. 집에 개가 있어서.” 그때 너무 똑똑한 아들이 말했다. “아빠, 집에 갈 때 개 사갈거야?”

 

2. 악인과 의인

하나님은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종말에 있을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에 대한 구원을 약속하신다. 교만하여 악을 행하는 자는 극렬한 풀무불과 같은 심판을 받아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치유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하나님은 악인에 대한 심판과 의인들이 장차 누릴 축복에 대하여 말씀하신다(1-3). 그리고 하나님은 계시를 극복하라고 지시하신 다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하고(4), 예언자 엘리야 즉, 메시야의 선구자 세례 요한이 전해 줄 하나님의 비밀을 기대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5-6).

 

3. 여호와의 날(1-2)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을 약속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자신의 뜻대로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은 천국과는 무관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의 날은 반드시 임하게 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용광로 불같은 날

만물의 마지막 날은 어떤 날일까? 하나님은 마지막 날에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게 됨을 말씀하신다. 교만하고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이 될 것을 말씀하신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4:1) 지푸라기는 그루터기, 왕겨를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 편에 반대되는 것들은 모두 불 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소멸의 불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실까? 하나님은 소멸의 불이시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대적자들을 어떻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신가? 하나님은 다윗이 노할 때 대적자들을 풀무 같게 하시고 소멸하시리라 말씀하신다. “네가 노할 때에 저희로 풀무 같게 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진노로 저희를 삼키시리니 불이 저희를 소멸하리로다. 네가 저희 후손을 땅에서 멸함이여 저희 자손을 인생 중에서 끊으리로다.(21:9-10) 풀무는 불을 피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 기구인데 용광로를 가리킨다. 본문에서는 다윗 왕이 암몬 자손들에게 행한 무서운 형벌을 상징하고 있다. 피조물들을 소멸하실 수 있는 주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의 증거를 사랑

우리는 주의 증거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무엇일까? 독일 격언에는 사랑은 입을 다물게 해도 말을 한다.”고 기록한다. 그리고 타고르는 사랑은 끝없는 신비이다. 그것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주의 증거를 사랑했다. 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를 사랑하나이다.”(119:119) 찌끼는 용광로에서 철광석을 녹이고 남은 노폐물을 가리키는데,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악인을 찌끼 같이 버리시는 분이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질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분이다. 스바냐 선지자는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는 은과 금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으로 그 난을 면하지는 못함을 말한다.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니라.”(스바냐 1:18) 우리는 은과 금보다 주님만을 최고로 사랑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알곡과 쭉정이

우리는 알곡인가 쭉정이인가? 우리는 마지막 날에 주님이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게 될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 타작마당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타작마당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행위를 의미하며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재림과 최후 심판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알곡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게 뵙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2)

하나님은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섬기며 살아가기를 바라실까? 우리는 주님을 반드시 먼저 믿고 살아가되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11초도 살아갈 수 없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늘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어떠한 복을 주실까? 하나님은 그들에게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게 됨을 말씀하신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4:2) 공의로운 해는 무엇인가? 공의로운 해는 인간의 상한 마음에 은혜를 베푸시고 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한다. 하나님 안에는 사는 역사가 있다. 주 안에서 모든 것은 치료함 받고 새롭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을 기억하고 주를 경외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긍휼히 여기시는 주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하나님께 겸손히 엎드려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복을 주시고 그 얼굴빛으로 우리에게 비취사.”(67:1) 우리는 하나님께 긍휼함을 입고 기쁨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정직히 행하는 자

하나님은 어떠한 자들을 기뻐하실까? 우리는 주 안에서 정직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 안에 거하여 풍성함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해와 방패이신 여호와는 은혜와 영화를 주시는 좋으신 분이시다. 영화는 원어로 <d/bK;: 카보드>이다. 이는 풍성함, 찬란히 빛남이란 뜻으로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풍부하고 빛나는 존재가 되는 것을 말한다. 언제나 주와 동행하며 찬란히 빛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고치시며 싸매시는 주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상처와 아픔이 많은 우리들일지라도 정직하게 주님 앞에 우리의 사정을 고백하면 주님은 우리의 상처를 싸매 주시며 새롭게 하실 것이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147:3)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나음을 입었음을 믿어야 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신 주님께 감사하며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주님은 우리를 고치실 것이다.

 

영광의 나타남, 빛을 발하라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여호와의 영광이 임할 것을 믿고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어두움 가운데 빛이 임하면 묶였던 것이 풀려나고 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60:1-3)

 

독생자의 영광

우리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으신 예수님께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할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안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함을 기억하고, 그 분을 기쁨으로 섬기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5. 주를 사랑하는 자들의 승리(3)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누구를 최고로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주님만 최고로 사랑하여 승리하는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 악인들의 끝은 어떠할까?

 

악인들은 재와 같이 됨

주님을 경외하지 않는 악인들은 주님의 날에 발바닥 밑에 재와 같이 될 것이다. “또 너희가 악인을 밟을 것이니 그들이 내가 정한 날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4:3)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결국 진흙같이 밟히게 될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7:10)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주님을 경외하는 자들로서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만 사랑

주님의 날이 악인들에게는 슬픔의 날이지만 십자가만을 바라보고 모든 환난과 역경을 이겨낸 자들에게는 승리의 날이 될 것이다.

주님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두는 것을 싫어하신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20:3) 우리는 주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모든 시험에 승리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신랑 되신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주와 동행하여 승리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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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2. 13. 11:44

믿음의 경주, 야고보서 1:1-8

말씀: 믿음의 경주

성경: 1:1-8

1:1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1: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1:6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1:7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1:8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1. 고공점프

독일, 영국, 프랑스, 한국 학생들이 고공점프를 하게 됐다. 너무 높은 곳이어서 학생들이 벌벌 떨고 있었다. 독일 교관이 나서서 독일 학생에게 명령이다. 뛰어내려라!”라고 하자 아무 말 하지 않고 뛰어내렸다. 그러자 영국 교관이 영국 학생에게 신사라면 뛰어내려라라고 하자 뛰어내렸다. 프랑스 교관이 프랑스 학생에게 어때?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하자 바로 뛰어내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국 학생이 구석에서 벌벌 떨며 절대 뛰어내리지 않겠다고 고래고래 악을 쓰자 그 학생의 교관이 말했다. “성적에 반영된다.” 그 말을 듣자 한국 학생은 가장 멋진 폼으로 뛰어내렸다.

 

2. 시련과 인내

야고보서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인사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시련은 인격을 연마시키는 역할을 하므로 시련을 기쁘게 맞이해야 한다(1-4). 참된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며 믿음으로 반응할 때 받을 수 있다(5-8). 부는 일시적인 것일 뿐이다(9-11). 시련은 하나님께서 인내를 가르치시려고 주시는 것이지만, 시험은 사람의 악한 욕심으로 말미암는다(12-15). 하나님은 시련을 주실 뿐만 아니라 좋은 선물들을 주신다(16-18). 말씀을 듣고 받았을 때에는 하나님의 의에 반대되는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 말씀을 듣는 자가 행함으로 순종치 않을 때에 당하게 되는 위험을 경고하고 헛된 경건과 순수한 경건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19-27).

 

3. 믿음의 싸움(1-4)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다양한 것으로 인해 갈등을 겪기도 하고 다양한 반응을 보이며 기뻐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우리는 삶 가운데서 언제나 영적인 싸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싸움을 하되 육적인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을 믿음으로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시험이 온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합당한 것일까?

 

야고보의 문안(예수의 형제 되는 야고보)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1:1) 성경은 몇 명의 야고보를 기록하고 있을까? 성경사전은 4명의 야고보에 관해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야고보:James(인명)('Iavkwbo", James)발뒤축을 잡음[1]12사도 중의 한 사람이며, 세베대의 아들이다(4:21, 10:2, 1:19, 3:17). 사도 요한의 형이다(17:1, 3:17, 5:37, 12:2). 최초의 제자 중 한 사람이며(4:21, 1:19, 29),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신뢰하고 있던 사도 중의 한 사람이다(17:1, 5:37, 9:2, 13:3, 14:33, 8:51, 9:28). [2]알패오의 아들이며, 예수님께서 택하신 12사도 중의 한 사람이다(10:3, 3:18, 6:15, 13). [3]주의 형제 야고보이다(13:55, 6:3, 1:19). 주님에게는 네 사람의 형제가 있었다. 야고보는 예수님의 바로 밑 동생이며, 요셉, 시몬, 유다의 형이었다. [4]사도 유다의 아버지이다(6:16,13). 이외에 성경은 아무 것도 그에 대해 말하지 않고 있다.

 

시험을 당하거든

우리가 주안에 있는 자들이라면 시험을 당하게 될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야고보는 시험을 당하면 기뻐하라고 말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 예수님을 믿으며 받게 되는 모욕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예수님은 인자를 인해 사람들이 미워하며 욕하면 복이 있음을 말씀하신다.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6:22-23) 사도바울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어떻게 대하고 있을까? 육체의 가시로부터 자유하기를 소원했던 바울에게 주님은 은혜가 네게 족함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바울은 약한데서 온전하여 질 것을 믿고 기뻐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우리 가운데 약함이 있다면 그 안에 큰 주님의 은혜가 머무르기를 위해 기도하여, 주의 능력으로 살아가야 한다.

 

믿음의 시련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인내해야 한다. 믿음의 시련은 무엇을 만들어 내는가?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1:3) 인내의 삶을 사는 자에게는 어떠한 복이 있을까? 바울은 참고 선을 행하여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는 영생함을 말한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2:7) 우리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인내로서 믿음의 경주를 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12:1)

 

인내를 이루라

우리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어 온전하고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말하고 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4) 우리에게 왜 인내가 필요한가? 바울은 인내가 필요함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10:36) 우리는 인내하는 과정에서 주님께 부르짖어야 한다. 우리는 다윗처럼 기도하며 다윗처럼 응답받아 기쁨으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는 승리자들이 되어야 한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40:1)

 

4. 지혜의 주께(5-6)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들로 베풀어 주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믿음의 싸움을 하며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부어주심을 믿어야 한다.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삶 가운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의 구할 바를 무엇에 의지하여 구해야 하나?

 

지혜가 부족하거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삶 가운데서 우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 지혜는 누가 주실 수 있을까? 야고보는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는 분임을 말한다. 구하라 그리하면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말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면 우리는 무엇을 깨닫게 될까? 솔로몬은 명철을 얻기 위해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지식을 불러 구하며 명철을 얻으려고 소리를 높이며 은을 구하는 것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인 보배를 찾는 것같이 그것을 찾으면 여호와 경외하기를 깨달으며 하나님을 알게 되리니 대저 여호와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2:3-6) 우리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을 더욱 알아가는 복이 있기를 바란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2-13) 우리는 주께 부르짖어 주님을 만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로 우리를 채워 날마다 새로워지는 삶을 살아야 한다.

 

믿음으로 구하고

우리는 주께 부르짖고 구하되 무엇을 가지고 구해야 할까? 주님께 구하면 반드시 응답받게 됨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1:6)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됨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2-24) 우리는 믿음으로 구하고 받은 줄로 믿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 야고보는 이런 자들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지 말라고 말한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1:7) 여호와는 악인의 제사를 미워하시고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하심을 알고 언제나 악에서 멀리 떠나고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되어 부르짖는 기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15:8)

 

5. 두 마음을 품지 말고(8)

주님이 가신 좁은 길을 걸어가는 작은 예수인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한 마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8)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죄악 된 모든 것들을 회개하여 거룩한 신부로서 주님과 동행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4:8) 시험을 당할 때 주님이 주신 지혜와 능력으로 인내로서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잘 지키고 경건의 삶을 살기에 힘써야 한다. 말씀대로 준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고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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