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2. 17:32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 시편 42:1-5

말씀: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

성경: 시편 42:1-5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 마음

히틀러는 평소에 싫어하는 것이 두 개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유대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자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의 가정적인 환경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행상인이었는데 물건을 구한 후 팔고 돌아오는데 한 달이나 두 달 정도가 걸렸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고독을 견디다 못해 이웃에 사는 유태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말았다. 어린 히틀러는 이 사실을 알고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 것을 호소했으나 어머니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결국 한 사람 어머니와 유태인의 범죄는 히틀러의 마음에 원한을 품게 했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갈망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조롱하는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한다. 자신의 영혼이 그러한 비난 소리에 아파하며 낙망할 때, 시인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격려한다. 낙망 중에 주를 바라보는 것만이 회복과 승리의 길임을 시인은 확신하고 있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에서 쫓겨나 멀리 유리하면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성전에서 하나님 공경하기를 갈급해 한다(1-2).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묻고 하나님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날에 많은 무리와 기쁨의 찬송을 부르던 그때와는 대조적으로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시인은 무척 슬퍼하고 있다(3-4). 그러나 이렇게 낙심한 상태에서 시인은 자기가 일어나야 함을 깨닫는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장차 임할 주님의 인자를 내다본다(5-8). 그리고 하나님을 내 반석이라고 하면서 과거에 지켜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왜 낙망만하고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꾸짖고 있다(9-11).

 

3. 주를 찾기에 갈급(1)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어떠한 일을 만나더라도 좋으신 주를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주를 찾는 자들의 소리에 반드시 귀 기울시는 분이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42:1) 여기서 갈급함은 원어로 <gr"[: 아라그>이다. 이는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를 말한다. 사슴은 목이 말라 있을 땐 간절함 마음으로 시냇물을 찾을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로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찾는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면 영혼에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84:1)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풍족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주를 만나고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36:8-9)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던 다윗은 주를 찾기에 힘썼고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63:1-2) 내가 걸어가는 길이 힘들다고 느껴지는가? 우리가 어떠한 길을 걸어갈지라도 그 순간 하나님을 찾는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며 나를 돕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 주께서 베풀어 주시는 영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2)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떤 이는 높은 가치의 것을 추구하며 어떤 이는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좇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지향하는 자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42:2)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살아계시는의 의미는 하나님이 이방 신들과는 다르게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방 신들과 비교할 수 없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되신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원했다. 또한 다윗도 하나님께 한 가지 일을 구했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주의 아름다움을 구하기를 소원했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27:4) 우리는 어디에 거하기를 더 소원하는가? 고라 자손의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84:10) 우리가 주의 궁정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우리 주님은 누구신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왕이 되신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10:10) 뿐만 아니라 생명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감당할 이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5:26) 우리는 아버지께 생명이 있고 아들에게 생명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누구든지 주께로 달려오는 자들은 영혼이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지금 나아와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아야 한다. 주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주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혼의 큰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한 분만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비방하는 자들 앞에 눈물(3)

우리는 믿는 자로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떠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까?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묻는 이들 때문에 밤낮으로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42:3) 또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토로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42:10) 비방자들은 믿는 자들을 대적하고 비방하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비방 할 때 주의 자녀들은 뼈가 마르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면 가만히 계시지 않고 더 좋은 것들로 채워 주실 것이다. 아삽의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한다.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 흘림 당한 보수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79:10) 주변의 어떤 이가 주님을 비방함으로 인해 자신이 참기 힘든 상황 가운데 있다면 그 때를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기회로 삼고, 자신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만 바라보며 승리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42:11) 내가 믿는 하나님을 향해 누군가가 비방하는 순간에는 눈물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바라고, 언제나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상한 마음(4)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기대만큼 어떠한 일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이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고 기뻐하며 슬퍼하는 것이 더 아름다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던 지난 날을 회상했고, 지금의 상황을 보며 슬퍼한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42:4) 시인은 과거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한 것을 기뻐했는데 여기서 성일은 안식일을 가리킨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모든 백성들은 이 날을 거룩히 구별해야 했다. 그리고 무리는 원어로 <@/mh;: 하몬>인데, ‘많은 수의 군중,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시인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일에 많은 수의 군중과 동행하며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던 것을 회상했고, 현재의 모습을 슬퍼한다.

또 성경의 다른 인물들은 언제 슬퍼했는가? 예레미야는 타락으로 인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4:1) 또한 한나는 슬피 울며 기도한다. 그녀는 아이를 갖지 못해 슬퍼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엘리 제사장은 술취한 줄로 오해했지만 한나는 엘리 앞에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삼상 1:15-16)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목격하게 되거나 자신의 마음 속에 원통함이 생기면 슬퍼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이 생길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자신이 슬픈 마음이 들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는 자들은 그 분께 모든 것을 토해 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62:8) 피난처가 되시는 살아계신 주님이 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이 땅에서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고단하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눈물을 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과 하나님 나라의 삶을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16:25) 내가 겪는 일로 인해 마음이 상할 때 주님께 모든 것들을 아뢰어 드리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천국을 소망삼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여전히 주를 찬양(5)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찬양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 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주께서 나를 도울 것을 확신해야 한다. 여기서 낙심하며구부러지다를 뜻한다. 즉 마음이 심하게 눌려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불안해의 의미는 영혼이 성난 파도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낙심하며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의 얼굴을 구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확신하며 언제나 주를 높이고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과 환경이 내게 다가오더라도 주님을 찾고 주님을 갈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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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6. 16. 08:25

선을 행하다가.

선을 행하다가.

(바른성경) 데살로니가후서 3:13 형제들아,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마라.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데살로니가후서 3:13 But ye, brethren, be not weary in well doing.

(영어ASV) 데살로니가후서 3:13 But ye, brethren, be not weary in well-doing.

(헬라어신약Stephanos) 데살로니가후서 3:13 υμεις δε αδελφοι μη εκκακησητε καλοποιουντες

(히브리어Modern) 데살로니가후서 3:13 ואתם אחי אל תלאו בעשות הטו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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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5. 28. 01:21

속사람을 강건하게!, 고린도후서 4:16-18

말씀: 속사람을 강건하게!

성경: 고린도후서 4:16-18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1. 보내고

점심시간 기다리며 오전을 보내고, 퇴근시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고, 월급날 기다리며 한 달을 보내고, 보너스 기다리며 석 달을 보내고, 휴가 기다리며 1년을 보내고, 승진 기다리며 5년을 보내고, 퇴직금 느는 맛에 10년을 보내고, 자식 크는 맛에 20년을 보내고, 집 한 칸 고대하며 30년 보내고.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유한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주 안에서 믿음의 눈으로 더욱 좋은 것을 바라보며 크게 기뻐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2. 논밭의 곡식

논밭의 작물들이 푸르른 것들로 가득하면 기쁠 것이다. 그러나 논밭이 푸르게 보이는 것은 곡식 때문일 수도 있고 잡초 때문일 수도 있다. 교회도 그럴 수 있는데, 교회 안의 성도들 중 모두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정의와 진리를 부르짖지만 이 중에는 잡초인 자들이 섞여 있기도 하다. 그들은 성경을 의심하며 지식인이라고 자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더러운 윤리를 진보라 하며 바르게 사는 자들을 바보 취급하며, 윗사람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아부한다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이 아닌 주 안에서 거듭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밭을 메운 곡식이 되어야 한다. 반드시 주님이 오셔서 추수할 때에 모두가 알곡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3. 바울의 사역

바울은 자신이 지닌 사도직의 영광스러움과 신성함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는 사역을 하며 유난히 고난과 시련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서 볼 때 그가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많은 환난을 겪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본장에서는 사도직이 갖는 영광과 고난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고난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친다는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이는 고난이 단지 고난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대한 복음의 핵심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에서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의 영광을 계속해서 변호하고 있으며(1-6), 둘째 단락에서는 고난을 통해 성도들이 참여하게 될 영원한 영광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7-18).

 

4. 피조물과 조물주

우리는 누가 만드신 작품인가? 우리는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줌으로서 창조되어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결코 진화를 거쳐서 존재하는 자들이 아니다. 스스로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피조물인 우리를 만드신 분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피조물인 우리 모두가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작품이 확실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는 때때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주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새 생명을 가진 우리는 주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겉 사람 & 속 사람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날마다 변화될 수 있을까?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의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는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바울은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므로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우리의 육체는 쇠하나 주 안에서 우리의 속사람은 쇠하지 않음을 믿어야 한다. 주님과의 관계가 좋을 때 우리의 속사람은 점점 강해 질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입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자 나단 선지자는 그를 책망한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우리가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된다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속사람이 강건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반석이시다. 시편기자는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라고 고백한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73:26)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받아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새 힘을 주시는 주

믿음의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시선을 둘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 좋으신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신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40:29) 우리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이 솟아남을 믿어야 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40:31) 우리는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로서 주의 일에 힘 있게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환경가운데서 믿음의 시련이 있을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고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속사람이 강건한 자들이 되어 즐거움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유순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 현대인의 성경은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유순하고 정숙한 마음가짐으로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귀한 일입니다.”(벧전 3:4) 주님의 도우심으로 속사람이 날마다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5. 환난과 영광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다 보면 세상의 다양한 환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세상의 문화와 정서, 법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환난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환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삶은 매우 짧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이 영원함을 기억하고 주의 나라에서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잠시 받는 환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 보았을까? 예수님은 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물과 피를 흘리셨다. 그 보혈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은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이다. 그 큰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잠시 받는 환난을 크게 여기지 말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여기서 경한 것이란 세상에서 성도들이 겪을 고난이 잠깐임을 의미한다. 공동번역은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고후 4:17) 우리는 주님을 믿으며 겪게 되는 고난이 잠깐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겪는 고난은 어떠한 유익이 있을까? 시편기자는 자신의 고난이 유익했다고 고백한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119:67)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겪게 되는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단련함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의 선진들에게도 고난은 있었을까? 예수님은 선지자들도 핍박 받았음을 말씀하신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5:12) 주를 믿으며 살아가는 동안 핍박이 있다면 하늘에서 상이 큼을 알고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참고 선을 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2:7) 우리는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하실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강인한 자들이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바울은 환난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3-5)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서 환난 가운데서도 잘 인내하여 주 안에서 소망을 갖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시련 가운데서 잘 인내해야 한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3-4)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주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장차 나타날 영광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는 고난을 극복한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주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현재의 고난보다 장차 나타날 영광이 크다고 말한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주님은 시험을 참는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하실 것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12) 우리는 어느 때를 살고 있는가? 죄악이 세상에 관영한 말세 중 말세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알고 더욱 정신을 차려 기도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말고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승리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공동번역은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서 고난의 때가 잠시 잠깐임을 깨닫고 영원한 세계인 주님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왕 되신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 어떠한 심판이 있게 되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인자가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염소는 영벌에 양은 영생에 있게 할 것을 말씀하신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46) 우리는 세상의 것들은 유한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6-17)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2-3)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주님을 바라볼 때 승리할 수 있다.

 

6. 영생을 주시는 주를 바라보고 인내하며 승리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동안 잘 인내해야 한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8:24-25) 바울의 인내는 영원한 영광과 관련이 있는데, 그는 일시적인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고난을 견디어 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보이는 세계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은 언젠가는 다 사라지고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도 역시 짧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씀을 지킨 자들에게는 크고 놀라운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생명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2:25)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의 은혜로 고난처럼 보이는 환경 가운데서도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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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29. 10:16

낙심

낙심.

(바른성경)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자. 지쳐 포기하지 않으면 때가 되면 거두게 될 것이다.

때가 되면 거두게 될것을 알고,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않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영어KJV) 갈라디아서 6:9 And let us not be weary in well doing: for in due season we shall reap, if we faint not.

(영어ASV) 갈라디아서 6:9 And let us not be weary in well-doing: for in due season we shall reap, if we faint not.

(헬라어신약Stephanos) 갈라디아서 6:9 το δε καλον ποιουντες μη εκκακωμεν καιρω γαρ ιδιω θερισομεν μη εκλυομενοι

(히브리어Modern) 갈라디아서 6:9 ואנחנו בעשות הטוב אל נחת כי נקצר בעתו אם לא נרפ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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