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잘 따라가는 자!

성경: 마가복음 11:4-10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달려가고

어렵고도 중대한 임무를 맡았던 한 젊은 장교의 이야기이다. 그는 여러 번의 임무 수행에 비참하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의 상관인 대령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를 또다시 맡겨 그 장교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드디어 그 젊은 장교는 이번에는 영웅적으로 그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었다. 군목은 이 사실을 알고 그에게 축하의 말을 건냈다. 그러자 그 청년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지요. 내가 그를 실망시켰는데도 그는 나를 계속 신임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 누군가가 자신을 신뢰해 준다고 믿고 인내하며 노력한다면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부르심의 목적을 따라 끝까지 달려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음을 믿으며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사역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정화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구약 시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입성 첫날 성전을 둘러보셨다(9:9).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에서 만연되어 있는 인간의 위선과 탐욕, 허영과 자기중심의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숙청하기 위해 채찍을 드셨다. 예수님은 베다니에 이르신 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데 많은 이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환호하였다(1-10). 다음날 배가 고프신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셨다. 그러나 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11-14).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는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셨다(15-18). 다음 날 아침에 무화과 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서 믿음의 교훈을 주셨다(19-25).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더불어 논쟁을 벌였다(27-33).

 

3. 예수님을 태울 나귀 새끼(4-6)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으나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나귀 새끼를 가져가도록 허락했고 제자들은 나귀 새끼를 풀어 예수님께로 끌고 올 수 있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4-6)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메시야로서 왕으로서의 입성이다. 예수님은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 둘을 보내셔서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신 것이다. 벳바게(aGEP' tyBE, Beth-phage)는 지명인데, 익지 않은 종려의 곳의 의미를 지닌다. 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곳인데,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km거리에 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여기서 나귀를 구하여 탔음을 기록한다(21:1, 11:1, 19:29). 예수님은 공생애 최후의 사역을 위해 메시야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자 하셨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서 입성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의 앞의 상황은 이렇다.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어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셨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11:1-3)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타실 나귀 새끼가 제자들을 통해 순조롭게 전달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미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막힘없이 진행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깨닫고 그분의 역사에서 좋은 편에 속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으나, 천사들과 권세들도 순복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께 순복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2)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지 말고,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복하며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잘 믿고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을 축복합니다.

 

4. 예수님이 타신 나귀 새끼(7-8)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새끼 나위 위에 얹어 놓았고 예수님은 그 나귀를 타셨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11:7-8) 요한복음은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12:14) 제자들은 주님이 시키신 대로 나귀 새끼를 끌고 왔는데 그 나귀는 지금까지 누구도 타 보지 않은 나귀였다. 이렇게 하여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21:4-5)

예수님은 분명히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었는데, 보좌 대신 나귀 새끼에 겸손히 앉으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의도하신 대로 모두 순종하게 만드셨다. 제자들은 끌고 온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걸쳤는데 유대인에게 있어서 겉옷을 벗어 펴는 행위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왕하 9:13). 우리는 자신이 믿는 주님이 왕이신 예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21:8) 나귀 새끼를 타고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의 왕 예수님을 기뻐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분주하게만 살아가지 말고,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호산나 찬송을 받으신 예수님(9-10)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호산나 찬송을 받으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호산나 찬송하며 주님을 높였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11:9-10)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주님을 추종하는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으며 나뭇가지를 꺾어 주님의 길을 예비했다. 그리스도의 입성을 알리는 그들의 아우성은 왕께 대한 찬송이었다. 그들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환호를 끊임없이 외쳤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예수님은 많은 백성의 환호를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그 후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신 후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다. 이러한 수난을 우리를 위해 받으시게 된다.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19:15)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게 된다. 이러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아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렇게 높임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주님을 잘 따라가는 복된 삶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복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주님께서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지금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인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라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 기쁨이 없어 보이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호산나 찬송을 받기 합당하신 예수님을 높이며 그분을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란다.

 

6. 언제나 구원의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높이며 찬양하는 복된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구원의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높이며 찬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146:2)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구원받은 주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일이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진행됨을 인정하고, 그분께 순복하며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잘 믿고 따라가는 자! 분주한 삶 가운데서도 믿음의 눈을 열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겸손의 왕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기뻐하며 사는 자! 자기 삶의 형편을 생각하며 낙심하지만 말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호산나 찬송을 받기 합당하신 예수님을 높이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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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찬양을 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성경: 마가복음 11:4-10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 기다리시는 주

영국 남동부의 하트포드셔 왓포드 교회의 묘지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교회 묘지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형 무덤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큰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덤은 무신론자인 한 여인의 무덤이었는데 그녀는 임종 직전까지 하나님께 도전했다. 심지어는 임종의 병상에서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 무덤에서 나무가 나와 자라게 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평생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그녀의 죽음이 오히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분으로서 인간이 회개하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심을 무언으로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되어, 높으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엎드리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 주일이다. 그리고 다음 주일날은 영광스러운 승리의 부활절 주일이다. 내일부터 한 주간 동안은 고난 주간인데,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이 한 주간은 희비가 엇갈리는 주간이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신 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환호하였다(1-10). 다음날 예수님은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셨다. 그런데 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11-14).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는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셨다(15-18). 다음 날 아침에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서 믿음의 교훈을 주셨다(19-25).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더불어 논쟁을 벌였다(27-33).

 

3.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4-6)

겸손한 왕이신 예수님은 어디로 입성하셨는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하는 예수님을 위해 이렇게 순종한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4-6)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11:1-3) 예수님의 명령은 이상한 명령처럼 보인다.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주인이 있었던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순종은 나귀가 예수님 앞에 이르게 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메시야로서, 왕으로서의 입성을 의미한다.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셔서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다. 벳바게와 베다니는 서로 인접한 마을이었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km 거리에 있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최후의 사역을 위하여 메시야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평화의 왕이 되신다. 구약 성경에는 장차 작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우리는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선지자로 하신 이 말씀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알고 계셨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21:4-5) 예루살렘으로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되신다.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며, 예수님처럼 마음이 겸손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땅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삶 가운데서 늘 높이고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나귀 새끼 위에 타신 예수님(7-8)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은 무엇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가? 겸손하신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나귀 중에서도 새끼 나귀를 타고서 입성하신 것이다. 본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11:7-8) 예수님은 겉옷을 깐 새끼 나귀 위에 앉으셨다.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사람들은 자신의 겉옷을 깔고,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그를 맞이했다. 나귀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는 어떤 나귀였을까? 이 나귀는 아직 어느 누구도 타 보지 않은 나귀였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의도하신 대로 모두 순종하게 만드셨다. 제자들은 끌고 온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걸쳤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겉옷을 벗어 펴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왕하 9:13).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보좌가 아닌 나귀 새끼 위에 앉으신 것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앉는 자리, 그 위에 양탄자 대신 제자들의 허름한 겉옷을 깐 것이다. 이런 메시야의 모습은 그가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종으로도 오셨음을 의미한다. 우리 예수님은 인류의 왕이셨으나 종이 되셨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폈을 것이다.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19:36)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나무를 길에 펴고 흔들었다. 그들이 펴고 흔들었던 종려나무는 무엇인가? 종려나무는 영어로 Palm, Palm tree이다. 열대와 아열대에 많이 보여지는 상록 교목이다. 종려, 또는 종려나무로 성경에 번역된 원어는 대추야자(date-palm)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종려나무(hemp-palm)는 종려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높이는 3-7m에 달하며 암갈색의 섬유에 싸인다. 줄기는 원주처럼 직립하고, 가지치지(번식치) 않는다. 잎은 줄기 끝 자루에 총생하는데 각각 30cm가량의 대에 끝에 가서 손바닥처럼 갈라진 것으로 드리운다. 자웅이주이고 5-6월에 엽액에서 담황색의 화수가 나와, 황백색 여섯 잎이 작은 꽃이 핀다. 과실은 타원형으로 굳고, 9-10월에 암청색으로 익는다. 그리고 줄기의 섬유로 종려승, 종려선, 종려비, 또는 깔개 등을 만든다고 한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은 이 나뭇잎을 흔들면서 환영한 것이다(12:13). 이 나무는 승리의 표상으로 되었다. 종말의 구속된 성도들은 이 나무를 손에 들고서 어린 양 앞에 서 있을 것이다(7:9).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행하셨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들은 바로 순종했고, 제자들의 순종은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행케 했다.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19:35) 새끼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그리고 그분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겸손한 모습으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역하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호산나찬송을 받으신 예수님(9-10)

무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소리를 지르며 호산나하며 찬송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11:9-10)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앞, 그리고 뒤에서 사람들은 호산나 호산나하며 기쁨으로 외친 것이다. 새끼 나귀를 타신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추종하는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으며 나뭇가지를 꺾어 주님의 길을 예비했었다. 그리스도의 입성을 알리는 그들의 아우성은 왕께 대한 최고의 찬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엄한 영접은 백성들의 뜨거운 눈물과 정감 어린 사랑으로 대신했다. 그들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환호를 끊임없이 외쳤을 것이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21:9)

여기서 호산나는 영어로 Hosanna이고 [] wjsanna(osanna)이다. 헬라어 호산나는 아람어 an;[]v'wOh(hoshana)’의 음사로서 ! 구원해 주시옵소서의 뜻이다. 구약에서는 여호와께 구원을 구하는 짧은 기도로서 시 118:25에 씌어져 있다. 이것은 초막절 때 사람들이 제단의 주위를 돌면서 외친 환성인데, 이 축제 때의 기도는 거의 이 말로 시작되었다. 신약에서는 종려 주일에 예수님의 최종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한 사람들의 환성, 또는 아이들이 성전 뜰에서 주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 지르는 기쁨의 외침(21:9, 15)인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사건에 관련하여 복음서에 모두 6회 씌어져 있다(21:9, 9, 15, 11:9, 10, 12:3). 이러한 것들로 볼 때, 메시야를 대망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영접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메시야이신 주를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듣고 믿어, 주를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자기 삶의 주인을 선택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인류의 평화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어떠한 삶의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삶 가운데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인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좋은 것들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높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의 평화이다. 온 땅과 민족은 좋으신 주께 마음 중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우리는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찬양을 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지어다.”(148:1) 예루살렘에 새끼 나귀를 타고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신다. 우리 모두가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찬양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감사의 고백을 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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