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8. 12. 08:36

피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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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8. 11. 22:44

피난처 되시는 주, 시편 121:1-8

말씀: 피난처 되시는 주

성경: 시편 121:1-8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1. 위기는 기회

스코틀랜드의 어느 아름다운 벽에는 유명한 동물화가 에드윈 랜드시어경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러해 전 그곳에서 만찬회가 열렸을 때 특별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한 사람이 새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던 벽에 소다수를 뿌리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사방은 오점 투성이로 가득하게 되었고, 주인도 화를 내게 되자 만찬회는 좋지 않은 분위기 가운데 끝이 났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고 손님으로 초대되었던 에드윈 경은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즉시 방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의 가방을 열고 그곳에서 그의 페인트와 붓을 꺼내 벽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는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킨 것이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얼룩진 삶을 생각하며 불평불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은혜

본장은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저자 미상의 시이다. 일반적으로 순례자가 그 여정 가운데서 그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위안과 만족을 얻은 감사의 시로 알려져 있다. 본시 전체에서 풍겨나는 아름답고도 감미로운 신뢰의 분위기는 험악한 인생길을 순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는 힘이 된다. 본시는 일반적으로 고난에 처한 순례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위안과 축복을 받게 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나타나는 평안에 대한 감사의 시이다. 먼저 모든 도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는데(1-2), 그 하나님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으로 나타난다(3-4).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는 결코 불안하지 않음을 밝힌다(5-8). 시의 전체 분위기는 감미롭지만 그 내용은 저자의 강한 신앙을 알게 한다.

 

3.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

고난에 빠져 헤매는 인간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온다. 인간은 자신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자신이 섬기는 신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지만 결코 얻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 섬기는 모든 우상은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면서 그분의 성실하심을 한없이 보여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택한 백성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떠한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 하나님의 변함없는 도움을 간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움은 일회적인 것이 아닌 영원함을 깨닫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4. 피난처(1-2)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분은 누구신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산을 향해 눈을 든다고 고백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21:1) 여기서 은 시온 산을 가리키며, 이는 하나님의 처소를 상징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처소를 향해 눈을 들며 도움을 구하면서 도움이 여호와께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1:2) 여기서 천지를 지으신은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를 나타내고 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권능이 있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는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자신의 인생에 환난이 왔다면 그는 피난처와 힘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와야 한다.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 받은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146:5-6) 하나님께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어떠한 사람도 우리를 해할 수 없음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13:6) 주의 자녀로서 인간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로 피하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졸지 않으시는 주(3-4)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지키시는가?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며 믿는 자들을 지키신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121:3-4)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하시며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살펴 주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자신의 섭리를 보이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주야로 인도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13:21) 우리는 하나님께 나의 삶에도 불과 구름 기둥을 통해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27:1) 다윗은 수많은 위협 가운데 놓여 있었으나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주를 의지하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 또한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입술로 좋으신 주를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만 안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127:1) 우리는 집을 세우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성을 지키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믿는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하심을 입었다고 고백한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음을 믿고, 힘을 다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께서 지켜주심을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3:26) 하나님은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믿는 자들을 지켜 보호해 주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졸지도 않으시며,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지키시는 주(5-6)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믿어야 하는가?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주가 되심을 고백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121:5) 여기서 그늘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사막 지대인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그늘에 비유하고 있다. 뜨거운 사막을 걷다가 그늘이 있어 태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면 감사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할 바위가 되시며 태양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그늘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지키실 때 어떠한 것들도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없다. 시편기자는 해와 달이 상하게 할 수 없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121:6)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어떠한 것들도 나를 상하게 할 수 없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 은혜와 긍휼 가운데 거하는 삶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열방의 민족과 족속들이 주께로 나아오기를 원하고 계신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은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는 것처럼 주의 자녀를 몇 번이고 모으려 했으나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23:37)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드리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주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거하며, 주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존하신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는 화로부터 안전하게 됨을 믿어야 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91:8-10) 우리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이 전능자만을 의지하며 피난처로 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함께 기도해야 한다.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어떠한 환난이 있더라도 크신 주님 앞에 보호 받을 수 있음을 믿고,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16:8)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신다면 결코 요동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피할 바위가 되시고, 우리의 그늘이 되시는 주님, 지금도 나를 사랑하셔서 지키시는 주님을 믿고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영혼을 지키시는 주(7-8)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이 영혼을 지키시는 분임을 알고 생명 되시는 주를 붙잡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21:7-8) 여기서 너의 출입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행사를 뜻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음 안에 거하는 자, 주를 의지하는 자들의 삶을 지키심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복 받는 삶이 나의 삶이 되도록 믿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악을 미워하고 주님 안에 거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97:10) 우리는 연약한 자들임을 인정하며 믿음의 사람들로 살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6:13) 우리 모두가 졸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는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나의 영혼을 지키시는 주님을 날마다 의지하여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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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8. 10.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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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7. 20. 16:19

기드온과 300 용사의 승리, 사사기 7:19-23

말씀: 기드온과 300 용사의 승리

성경: 사사기 7:19-23

7: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7: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7: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7: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1. 시련

George. B. Duncan의 글이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토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진흙으로 토기를 만들어 완성시킨 토기장이는 토기 표면에 까맣게 칠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가 아니 왜 모두 까맣게 칠을 하지?”라고 물었다. 그는 빙긋 웃으면서 이렇게 해서 가마 속에 넣었다가 꺼내면 이 까만 것이 황금색이 된다네.”라고 대답했다. 신자의 생활도 비슷하다. 새까맣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가마, 즉 시련의 불에 들어갔다 나오면 아름다운 것이 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힘쓰는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환경과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잘 연단 받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은 미디안 족속으로 인해 크나큰 고통을 당했던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위해 기드온이라는 새 일꾼을 예비하신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신실한 일꾼 기드온이 등장한다.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미디안 족속에게 대승을 거두는 장면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쟁의 승패가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장은 본격적인 미디안과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투를 위해 군사를 모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에 기드온은 시험을 통해 그중 삼백 명의 군사를 뽑았다(1-8). 마침내 무수한 미디안 군대와 마주친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미디안 군사의 꿈을 통해 승리의 확신을 주셨다(9-14). 이에 용기를 얻은 기드온은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로 무장하고 야간 기습 작전을 펼침으로써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15-25).

 

3. 기드온의 삼백 용사

기드온이 미디안을 치기 위해 군사를 모집했을 때 모인 사람은 삼만 이천 명이었다. 미디안과 아말렉 군대가 해변의 모래처럼 많다는 기록에 의하면(12) 실제로 전투를 위해 이 정도의 군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시험을 거쳐 삼백 명의 군사만 선발하도록 하셨다.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7:5-8) 선출된 삼백 용사는 개의 핥는 것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였다. 그 외의 군인들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선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장막으로 돌려보냈고 삼백 명만 남게 했다.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7:8) 하나님은 선출된 삼백 용사를 통해 미디안과 싸울 것을 명하셨다. 군대의 수적 우세가 전투의 승패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고대의 전쟁에서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명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기드온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전투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삼백 명만을 선발하도록 한 것은 미디안의 섬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리시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쟁은 구속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며 성도들이 치르는 악과의 영적 전쟁 또한 하나님의 몫이다. 우리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 세 부대가 나팔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19-20)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어떻게 전투했는가?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며 전투에 임했다. 그들은 2경초에 미디안 진영 근처에 이르렀다. 2경은 히브리인의 시간의 단위인데, 3경의 중앙의 시각으로 오후 10-오전 2시에 해당한다. 기드온은 이 시간에 한 밤중의 파수병 교대시간을 이용하여 미디안을 기습했다. 유대인은 밤을 4시간씩 세 때로 나누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의 습관에 따라 밤을 네 때로 나눴다. 기드온은 세 부대로 나누어 전투에 임했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7:19-20) 현대인의 성경은 20절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다른 두 부대도 그들을 따라 일제히 왼손에든 항아리를 부수어 횃불을 높이 들고 오른 손에 든 나팔을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한 칼이다.’하고 외쳤다.”(2:20) 나팔을 불어 신호를 알리며 잠자는 미디안 군인들을 깨웠고, 항아리로 횃불을 감춘 후 항아리를 깨트려 전투가 일어난 것처럼 꾸몄다. 미디안 군인들은 갑작스러운 소리와 갑작스러운 불빛에 크게 놀랐을 것이다.

기드온은 한 군인이 꾼 꿈과 그 꿈의 해석을 통해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대를 자신들에게 붙였음을 확신했다.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7:13-15) 하나님은 미디안과 연합군을 기드온과 삼백 용사에게 붙이셨다.

구약 성경은 또 다른 기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6:4)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한 번씩 돌 되 엿새 동안 그렇게 하고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 것을 명하셨다. 일곱 번째 돌 때,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의 상황은 이렇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6:16)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고 나아가며 외칠 때 견고한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6:20) 우리는 믿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불가능이 없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했던 기드온과 삼백 용사처럼 모든 전투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알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믿음생활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진영의 군사들이 도망함(21)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손에 들며 기습하는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 앞에 미디안 군사들은 부르짖고 도망하고 만다.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7:2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서 적진을 둘러 싼 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적군은 온통 갈팡질팡 아우성치며 도망치기 시작하였다.”(7:21)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각기 제 자리에 서서 진을 포위했고 적군은 모두 아우성을 치며 도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군사들이 승리하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출애굽기는 또 다른 멋진 장면을 기록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는 중 홍해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닷물이 벽이 된 홍해를 지나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고 애굽 사람들은 혼돈하고 만다.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14:25) 그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 마병들 위에 흐르게 하라고 명하셨고 그들은 수장되고 말았다.

구약 성경은 또 다른 기적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스라엘 요람 왕 때, 아람 군대에 의해 사마리아 성이 포위 된 후 항복하려 했던 나병환자 네 사람의 이야기이다. 네 명의 문둥병자들은 어차피 굶어 죽게 된 환경 가운데서 한 가지 소망을 품었다. 그들은 아람 진영에 가서 항복을 하여 그들의 선처를 기대하고 아람 진영에 갔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람 사람들로 하여금 큰 군대의 출정하는 소리를 듣도록 역사 하셨다. 그래서 아람 사람들은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고용된 헷 족속과 애굽의 군대가 만들었던 소음들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황혼녘에 정신없이 본국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왕하 7:6-7)

아람 군대는 서둘러 도망치며 가축들과 장비들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텅 빈 아람 진영에 온 문둥병자들은 정신없이 자신들의 배와 호주머니를 채웠고 좋은 것들은 감추기까지 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의 역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언제나 담대해야 한다. 솔로몬은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28:1) 우리는 어떠한 상황과 형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의인들이 되어야 한다. 미디안 진영의 군인들을 기드온과 삼백 용사에게 붙이신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됨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나팔을 불고 난 후(22-23)

기드온의 삼백 용사가 나팔을 불자 미디안 진영의 군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끼리 싸우게 만드셨다.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7:22-23) 미디안 군인들은 도망했고 기드온과 삼백 용사는 그들을 추격했다. 미디안은 Midian(인명)(@yDImi, Midian)심판의 의미를 갖는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아들인데 그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이다. 후에 아브라함은 미디안을 포함한 서자들에게는 자기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아들 이삭을 떠나 동국으로 가게 했다. ‘미디안 사람이란 그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혈연이다. ‘미디안이라는 한 개인과 한 민족은 동일 개념이다(25:1-6). 민수기 10:29에서는 미디안 사람이라고 했다. 광야의 민족이다(10:29-31, 60:6).

미디안 사람의 상인은 길르앗에서 온 이스마엘 사람의 상인과 더불어 요셉을 사서 애굽으로 데리고 갔다(37:25, 28).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 사람이다(3:1). 사사 시대의 미디안 사람은 아말렉 사람과 동방 민족과 연합하여 가축과 장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처럼 큰 무리를 이루어 가나안 땅에 침입하여 도처에서 수확물을 약탈하고 그 땅의 농민을 매우 괴롭혔다. 7년 동안의 압박 후 하나님은 엘 바알, 즉 기드온을 일으켜 회개한 민족을 구했다. 이스르엘 평야에서 결전이 벌어져 침입자의 완패로 끝났다. 그들의 두 왕 오렙과 스엡은 사로잡혀 피살되었고, 다음에 두 왕 세바와 살문나도 역시 같은 운명으로 되었다. 그 후 그 땅은 40년간 태평하였다(6, 8, 9:17, 83:9-12, 9:4, 10:26). 이사야서는 장차 모든 이방 원수들과 하나님의 백성의 박해자들이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을 기드온이 미디안을 패하게 했던 일을 언급하며 기록한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9:4) 우리는 거룩하신 분, 만왕의 왕의 통치하심 앞에 하나님을 높여야 하며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이 땅의 주인이신 왕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소유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삽의 시는 이렇게 기록한다. “주는 미디안 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83:9)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삶은 승리의 삶이고, 하나님의 얼굴에서 멀어진 삶은 패배의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기적을 일으키면서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완전하신 주님이 삶을 이끌어 주실 것을 기대하며,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승리는 주께 있음

모든 일들에 있어서 승리의 키를 가지고 계신 분은 우리 주 하나님이시다. 미디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은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만으로 승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칼이여 하고 외쳤던 것이다. 오늘날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영적 전투를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미디안과 싸워야 했던 기드온과 삼백 용사의 삶과 비슷할 수 있다. 우리는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처럼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확실히 믿고 나아갈 때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환경을 보고 두려워 떨고 삶의 문제를 보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승리의 키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싸우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이렇게 말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3-14)

전능하신 하나님은 를 어두움의 구덩이에서 건지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살아계시는 주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승리가 주께 있음을 기억하고 언제나 능력의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예수 안에 큰 능력이 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하나님은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보화를 담아 주셨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통치하심을 인정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하며 싸웠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어 드리며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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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7. 8. 09:22

지키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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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성경: 민수기 28:26-31

28:26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

28:27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28:28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십 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 분의 이요

28:29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

28:30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를 드리되

28:31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1. 소망

Jackson 선교사는 태평양의 작은 군도 중 한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셨다. 그는 맨 처음 가서 7년 동안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했다. 그를 보낸 선교 본부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겠다고 하면서 돌아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가슴에 아직 주의 빛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분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그의 말대로 몇 개월이 지나자 열매를 맺기 시작하여 성공적인 선교를 하게 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결코 소망이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소망이 있는 삶,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절기와 규례

요단 동편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구 계수가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켜 다시 한 번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절기와 규례에 대해 가르치게 하셨다. 여기 본장에서부터 30장까지는 모두 규례와 절기에 관한 교훈들이다. 본장에서 29장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각종 제사와 절기에 관한 규례를 언급한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언급된 바 있는 내용이 다시 등장한 것은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도록 다시 한 번 강조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드려야 할 상번제와 안식일 제사 및 월삭의 번제에 관한 규례를 말씀해 주셨다(1-15). 또한 절기 제사로 출애굽과 관련된 유월절과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칠칠절 제사에 관한 규례를 정해 주셨다(16-31)

 

3. 첫 열매를 드리는 날(26)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지키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칠절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오기를 명하셨다.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를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일도 하지 말 것이며.”(28:26) 하나님은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그들이 감사의 제사로 나아오기를 원하셨다. 칠칠절은 [] t[obuv; gj(hag shabuath) [] Feast of Weeks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실절)등의 3대 절기를 지켰다. 칠칠절은 이스라엘 백성(히브리인)3대 축절의 하나로 유월절에서 7주째 즉 제 50일째에 지킨 밀 거둔 첫 이삭(열매)을 드린 절기(16:9-12)이다. 따라서 [초실절] [맥추의 초실절](34:22), 또는 [맥추절](23:16)로도 불린다. 미슈나 및 탈무드에서는 이 절기를[아체레스 tr,x,[(atseres)](종료 termination이라는 뜻)라고 부르고 있다. 그것은 50일 간에 걸치는 유월절 기간이 이 절기(축일)로서 끝나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이 날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로 지켰다. 그들은 유월절을 유대국민의 탄생, 칠칠절을 그들의 종교의 탄생일로 중시하고 있다. 원래는 농업적 축제일이었는데, 율법 부여라는 역사적 의미를 가지게 되어, 중요한 절기로 되었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이것을 [오순절]로 부르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최대의 축제인 초막절 외에도 두 번의 감사절기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다. 그 중 하나는 맥추의 초실절, 또 다른 하나는 오늘 날의 추수 감사절인 수장절이다. 출애굽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34:22) 또한 신명기는 맥추 감사절인 칠칠절을 이렇게 기록한다. 칠 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지니라.”(16:9-11)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세어서 하나님 앞에 칠칠절을 지켰다. 이때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대로 힘을 다해 예물을 드렸다. 그리고 하나님은 객, 고아, 과부가 함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명하셨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특별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와 복을 기억하며 감사하며 나아갔듯이 우리 또한 언제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특별히 맥추 감사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향기로운 번제로 드림(27)

하나님은 칠칠절을 지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을 가지고 나아갈 것을 말씀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향기로운 번제로 나아올 것을 말씀하셨다. “수송아지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28:27) 수송아지 두 마리, 숫양 한 마리, 일 년 된 숫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여호와께 번제로 나아오라고 명하고 계신다. 번제는 [] hl;[ ('olah) [] oJlokauvtwma[o{lo"(전부) kaivw(태움)의 합성어] [] Burnt offering이다. 이는 희생제물로서의 동물을 제단 위에서 제단의 거룩한 불로 태워 희생제물 전부가 연기로 하늘에 올라감으로써 예배자의 마음이 하나님께 바쳐짐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제사방법의 하나이다. 이 제사는 유목민 사이에 있어서의 최고의 제사 중 하나였다. 셈족에 의해 일반화되고 구약의 족장들 이후 하나님께 드리는 특별한 전소의 희생제사로 되었다. 전소의 제물로도 불리고 있는 대로, 이 특징은 전부 하나님께 드려지는데 있다. 다만, 7:8에 의하면 동물의 가죽은 제사장에게 주어졌다. 그러므로 이 제물은 때로 [온전한 제물](전부 드리는 희생제물)로 불린다(삼상 7:9, 33:10, 51:19). 이 전소의 제물을 드리는 법에 대해서는 레위기 1장이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번제의 방법은 이렇다. 동물은 소, , 염소의 수컷의 온전한 것이어야 했다. 동물을 드리는 사람은 이 동물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 후 열납이 되어 속죄가 된다(1:4). 이어서 그는 제단 곁에서 그 동물을 잡는다.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의 주위에 뿌린다. 이 피는 생명이며(17:14, 9:4-5, 12:23, 7:26-27), 이 피는 하나님께만 속한다(4:10). 가죽을 벗기고 몇 부분으로 잘라 나눈다. 이렇게 하여 희생제물의 내장과 발(정강이)은 물로 씻겨, 머리와 지방과 함께 전부가 제단 위에서 불태워 지게 된다. 이 희생제물이 새일 경우는 산비둘기 또는 집비둘기가 사용된다. 이 경우에는 손을 얹거나 목을 따거나 하는 일을 하지 않고, 그 머리를 비틀어 제단 위에서 불사른다. 형편에 따라 새의 번제는 고가의 소의 희생제물, 그리고 보통 사람이 하는 양이나 염소의 희생제물을 대신하기도 한다(5:7, 12: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와 같이 번제로 자신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오라고 명하셨다.

또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나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민수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수송아지 둘과 수양 하나와 일 년 된 수양 일곱을 다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께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할 것이며.”(28:19) 수송아지 둘, 수양 하나, 일 년 된 수양 일곱을 드리되 흠이 없는 것으로 드리라 말씀하고 있다. 화제는 [불로 태워버린다]는 뜻인데서 불태운 모든 희생 제물을 뜻하는 말이다. 번제와 동류인 경우도 있으나(29:18), 때로는 불태우지 않는 제물을 포함시킨 일이 있다(24:7, 9). 때로는 기념의 몫으로서 제사장의 것으로 되는 빵이나 유향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24:7). 하나님은 흠이 없는 것으로 화제를 드려 번제가 되게 하며 하나님께 나아오라고 명하고 있다. 또한 레위기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수 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수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23:18-19) 하나님은 이렇게 각 사람의 형편에 따라 번제로, 속죄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 앞에 나아오기를 원했다. 우리는 언제나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되, 특별히 맥추절을 지키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또한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소제를 드림(28-2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번제 외에도 어떠한 것들을 가지고 나아오기를 원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제로 나아오기를 원했다.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십 분의 삼이요 숫양 한 마리에는 십 분의 이요. 어린 양 일곱 마리에는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이며.”(28:28-29)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와 함께 곡식예물로 고운 밀가루를 기름으로 반죽하여 바쳐야 한다. 중송아지 수놈 한 마리에 십 분의 삼 에바, 수양 한 마리에 십분의 이 에바, 어린 수 양 일곱 마리에는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 에바 씩 바쳐야 한다.”(28:28-29) 에바는 바구니란 뜻인데, 바구니에 넣은 물건의 양이 단위의 명칭이 된 경우다. , ‘에바란 곡물(밀가루, 보리, 볶은 곡식 등)이나 고체의 양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측량 기구 혹은 단위로서(16:36; 5:15; 5:10), 1에바는 약 22에 해당한다. 번제 외에 곡식예물로는 고운 밀가루에 기름으로 반죽하여 바치되, 수송아지 한 마리마다 십 분의 삼, 숫양 한 마리에는 십 분의 이, 어린 양 한 마리마다 십분의 일을 드릴 것을 명하셨다.

그리고 소제는 [] hj;n]mi (minchah) [] hj;n]mi (minchah) [] Cereal offering이다. 이는 주로 피 없는 곡류를 주체로 한 예물을 가리키며 원래는 단독으로 드린 농경적 재물이었다. 그러나 차츰 동물희생의 번제에 종속하는 부가물로서 곡물을 드리는 경우의 예물의 명칭으로 되었다(15:18-29 ). 고운가루로 전병을 만들거나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바쳤다(2:1, 2, 4-10, 14-16). 어떤 경우에는 소금, 유향을 넣어 드렸다(2:11-13). 극빈자에게는 이것이 속죄제로서 인정되었다(5:11-13). 그것은 어떠한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이 열려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번제로서 헌신을 표시하고 소제는 근로의 열매를 드리는데서 행위의 성별을 상징했다. 이러한 면에서 원래 번제와 소제는 구별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소제를 통해서도 그들의 마음을 받으시길 원했다. 우리는 형편에 따라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때로는 작은 것 일 수도 있겠지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 나아와야 한다. 언제나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를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속죄를 위하여(3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 어떠한 제사로 나아오기를 원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하며 나아오기를 원하셨다. “또 너희를 속죄하기 위하여 숫염소 한 마리를 드리되.”(28:30) 속죄는 [] !yriPuKi (kippurim), [] luvtrwsi"(lutrosis)이고 [] Atonement, Redemption이다. 이는 대가지불에 의한 죄와 속박에서의 해방과 구원을 의미한다. 특히 신약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속량하신 것을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범한 죄를 사함 받거나 없이하기 위해, 또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소나 양 등의 가축을 잡아 그 피(생명)를 제단에 붓고 혹은 그 고기를 불살라 이것을 드려 대신 속죄했다(29:1-28, 36, 4:20-35). 우리는 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제물을 가지고 속죄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주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주의 자녀로 삼아주시기 위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우리는 이 십자가의 은혜에 늘 감격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드리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삶의 어떠한 문제라도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와 해결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베드로는 친히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서 인간을 자유하게 하신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2:2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 갈 수 있는 복 받은 자임을 믿어야 한다. 속죄의 제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와 엎드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언제나 주의 은혜로 살아갈 것을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흠이 없는 것으로 드리며 감사함으로(31)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던 하나님은 그들이 늘 감사함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셨다. 전심으로 드려지는 그들의 예배를 받기를 원하셨다. 정성을 다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마음을 아는 길이었을 것이다.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28:31) 우리는 현대 시대를 살아가면서 과거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상번제와 소제와 전제로 하나님께 제사하지는 못할지라도 하나님께 정성을 다해 최상의 모습으로 나아가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말라기의 말씀은 흠 있는 것이 아닌 최상의 것들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옳은 것임을 알게 한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1:13-14)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는 또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가!’하며 코웃음을 치고 있다. 너희가 훔친 것과 저는 것과 병든 것을 가져왔으니 내가 그것을 받겠느냐? 나에게 바치겠다고 약속한 좋은 짐승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를 속이고 쓸모없는 것을 바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나는 위대한 왕이다. 모든 민족이 내 이름을 두려워하고 있다.”(1:13-14)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 속에서 죄인인 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일어났던 십자가의 사건을 기억하며,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며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벧전 3:18) 우리는 위대하신 왕,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온 맘과 정성을 다해 예배하는 삶을 살 것을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 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한다. 나를 구원해 주신 분, 나의 영을 살리신 분, 나의 삶을 푸른 초장 쉴만한 물 가로 인도해 주실 주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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