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육체의 일을 버리고 성령을 좇아서

성경: 갈라디아서 5:16-24

5: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5: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5: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5: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5: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5: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1. 습관

명망 있는 외과 의사 한 분이 수술을 집도하기 위해 보스턴 대학에 왔다. 의대 학생들은 발코니에 모여 의사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얼마 후 의사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이 사람이 만약 삼 년 전에만 습관을 고쳤더라면 이 수술이 필요치 않았을 것입니다. 일 년 전에만 고쳤더라도 아주 간단한 수술로 족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학생들은 죄악 생활의 비극을 절감하게 되었다. 만약 모든 비문을 진실하게 기록한다면 여기 죄악의 습관으로 목숨을 잃은 자가 누워 있다고 기록될 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늘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성령님을 의지함으로서 주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삶이되기를 축복합니다.

 

2. 주 안에서 자유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자유 한 자임을 밝혔다. 그러나 자유 한 자가 그 자유를 육체의 소욕을 좇는 기회로 삼으면 안 되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함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임을 교훈했다. 이는 사랑의 법을 좇아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의미한다. 본장은 3-4장에서 다룬 교리적인 내용들을 갈라디아 교인들의 현실 상황에 적용시키고 있다. 바울은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의 비난과 왜곡에 대해 복음을 변명하고 율법과 비교하여 복음의 기본 교리를 설명한 후, 이제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본장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규정 지을 수 있는 본질적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율법이나 방종이 아니라 사랑이며,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며,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과 서로 종노릇 하는 것과 성령은 본장과 다음 장에서 바울이 권고의 핵심을 이룬다. 본장의 첫째 단락은 복음의 본질보다 할례와 같은 외적 인습에 얽매이는 행위를 경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걷는 참 자유를 지킬 것을 권하고(1-12), 둘째 단락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올바로 행사하기 위해 사랑으로 종노릇 할 것과 성령을 좇아 생활할 것을 권고한 내용이며(13-18), 셋째 단락은 성령이 금하는 것과 성령으로 행한 자들의 열매를 보여 준다(19-26).

 

3. 그리스도인이 좇아 행할 것(16-18)

바울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좇아 행할 것을 명하면서 그리하면 육체의 소욕을 이루지 아니할 것임을 밝힌다.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서로 대적 관계에 있어서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육체의 소욕을 이룰 수 없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행할 때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는 곧 성도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좇아 행하는 자들은 성령의 법에 속했으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이다. 인간은 연약하여 율법으로는 정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인을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시키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성령의 법안에서 행하여 육체의 소욕을 죽여야 함이 마땅하다.

 

성령을 따라 행하라

우리는 무엇을 따라 행해야 하는가? 바울은 성령을 따라 행할 것을 말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5:16) 우리가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육신의 생각인가? 성령의 생각인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8:4-5) 우리는 영의 일을 생각하는 영을 좇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죄만 짓고 살지 말고 왕 되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성숙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6:12) 주의 말씀을 따라 순종을 잘 하는 사람은 복 받은 자이다. 우리의 옛 사람은 어떠한 모습이었는가?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2:3) 우리의 옛 사람, 진노의 자녀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영의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과거의 모든 잘못에 대해서는 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어느 누구도 죄인이 아닌 사람은 없다. 이제 우리는 주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것을 확신하며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멋진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만을 최고로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5-16)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예수님을 잘 좇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한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복음에 빚진 자들로서 이 땅에서의 나그네의 삶을 나의 맘대로 살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2-14)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며 주께 순종하는 복된 가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성령&육체

성령의 일과 육체의 일은 어떻게 다른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른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5:17-18) 우리는 성령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뜻 안에서 내안에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점검하여, 성령님이 주신 지혜로 주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과거에 지었던 모든 죄를 주님 앞에 고백하고 회개하며 성령님의 인도함 받기를 위해 간구해야 한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눈물로서 회개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51:10-12) ‘의 죄를 회개하고 성령님의 완전한 지배를 받을 때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삶, 즐거움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성령님의 조명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넘쳐나야 한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삶이 주의 말씀으로 굳게 되기를 기도했다. 나의 행보를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아무 죄악이 나를 주장치 못하게 하소서.”(119:133) 하나님의 말씀 위에 의 믿음을 잘 쌓고 그 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7:18) 주 안에서 우리는 주님의 선하신 뜻대로 나아가고자 하나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는 한 없이 연약하다. 마음과 육신 안에서 두 법은 항상 싸우고 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1-25)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고백한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곤고한 자들이 분명하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성령님의 뜻에 순복하기를 힘씀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이뤄 드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는 육신을 좇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영을 좇는 자가 될 것인가?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말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5-8) 우리는 육신의 생각이 사망이고 영의 생각이 생명과 평안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할지 지금 결단해야 한다. 영을 좇아 살아가며 영의 생각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삶을 살아 갈 수 있을까?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26:41)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삶을 살게 할 것을 믿어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렇게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4. 육체의 일들(19-21)

바울은 육체의 일들에 대해 열거하면서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임을 경고한다. 즉 육체의 일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이다. 이러한 행위들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위배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새 계명인 사랑의 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는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곳으로서 더러움이 있는 자들은 그 곳에 들어갈 수가 없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죄와 함께 거하실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을 행하는 자들은 그들의 아비인 마귀와 함께 지옥에서 영원히 거하여야 하는 것이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리 안의 육체의 일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가? 바울이 언급한 것처럼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이 우리 안에는 가득하다.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5:19) 음행이란 간음, 음행, 축첩, 간통, 근친상간, 불결함을 뜻하며 상징적으로는 우상 숭배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죄악 된 모습들을 철저하게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들로서 날마다 죄악들을 이기며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입을 통해 나오는 말들을 볼 때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15:18-19) 또 예수님은 악한 생각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신다.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7:21-23) 우리는 자신의 마음에 어떠한 더러운 것들이 있는지 잘 살피고 깨끗한 마음이 되기 위해 날마다 회개하기를 힘쓰고 아름다운 입술을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우리의 육신에는 선한 것이 없다(7:18). 우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다면 지금 는 육신에 속한 자로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우리는 자신의 현 주소를 잘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새 사람이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음행, 더러운 것, 탐욕의 말을 버리고 감사의 말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이것을 정녕히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5:3-5) 우리는 천국을 침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모든 더러운 말들은 입에서 제거하고 거룩한 백성으로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천국을 침노하는 자들이 되어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우상 숭배, 원수 맺음, 분쟁, 시기

우리의 삶 가운데는 어떠한 우상숭배와 원수 맺음과 분쟁과 시기 등의 주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이 있는가? 바울은 주님 보시기에 기쁘지 않는 육체의 일들이 있음을 말한다.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5:20) 분냄과 당 짓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공공의 유익보다는 자기 자신만의 유익을 위할 때 나타나며 상호 불신으로 나타나는 사회적인 죄를 의미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 안에서 서로 하나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시기와 원망과 불평과 원수 맺음을 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5:21)

우리는 우상숭배와 주술을 멀리해야 한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열심히 복음을 전파했다. 어느 날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던 중 신접한 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 귀신 들린 여종에게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바울의 선포 이후에 그 귀신은 즉시 나오게 되었고 그 여인은 자유하게 되었다. “우리가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나니 점으로 그 주인들을 크게 이하게 하는 자라. 바울과 우리를 좇아와서 소리질러 가로되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하며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와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종의 주인들은 자기 이익의 소망이 끊어진 것을 보고 바울과 실라를 잡아 가지고 저자로 관원들에게 끌어갔다가.”(16:16-19)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파하며 주의 일을 성실하게 잘 감당했다. 그러나 어두움에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함으로 인해 고발을 당하여 옥에 갇히게도 되었다. 우리 또한 주술을 제거하며 하나님만을 높이는 자들이 되어 주님의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한다. 눌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자유하게 해 주며 주의 영광이 이 땅 가운데 드러나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를 시기하는 자들이나 로 하여금 시기를 나게 하는 자들도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임을 기억해야 한다.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2:8-9) 예수님의 아가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며 서로 하나 됨을 통하여 주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예비 된 나라를 상속 받기를 바라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25:34)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이 누구였는가?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 6:10)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을 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나라에 속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님은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21:34) 말세지말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라고 말한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13:13) 우리는 주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주님을 사랑함으로 힘써 기도하는 자들이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5. 성령의 열매(22-24)

바울은 성도가 그리스도 안에서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들에 대해서 열거한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법을 좇아 열매 맺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와 함께 그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선언한다. 우리는 성령님을 좇아 살아가며 어떠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가?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이다. 성령의 열매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가는 우리의 삶 속에서 맺어지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 안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열매이기도 하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저절로 열매를 맺음같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됨을 알고 주 안에서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성령의 열매에 관해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5:22) 자비와 양선은 무엇인가? 자비는 남을 돌보는 너그러운 마음이며 양선은 사랑과 의를 겸한 선한 마음의 상태이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말씀처럼 열매가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또 성령의 열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3)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의 열매가 넘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면 하나님의 영이 마음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8:9) 성령님을 마음 가운데 모시고 말씀에 잘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을 대접하고 거룩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움을 믿어야 한다.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을 좋아하며 근신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1:8)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자유케 된 우리는 그 자유를 주께 순복하는 기회로 삼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5:13)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육신의 일을 버리고 성령님을 좇아 살아가며 말씀으로 영적 전투에 승리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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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성경: 요한12:12-17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 태공망 여상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태공망 여상은 주문 왕 때 출세의 가도를 달렸으나 젊었을 때는 대단히 가난했다. 그런데도 밖에 나가 일할 생각은 않고 독서삼매의 나날을 보냈으므로 집안이 엉망이었다. 이때 부인은 생활에 지쳐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이름을 떨친 여상에게 어느 날 부인이 나타나 다시 살게 해달라고 했다. 이때 여상은 잠자코 물이 담긴 그릇을 엎지르고는 저 물을 그릇에 다시 담아 보시오.’하였다. 그러나 물은 흙 속에 스며들어 버렸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무언가를 하다가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쉽게 주님을 저버리지는 않는가? 세상을 더욱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만 최고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1-6). 새 계명은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다. 어두움과 증오가 함께 존재하듯이 빛과 사랑도 함께 존재한다(7-11). 이러한 교제의 삶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다 해당된다(12-14). 성도들은 세상을 사랑치 않아야 한다(15-17).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의 약속을 믿고 의를 행해야 한다(18-29).

 

3. 죄 사함 받은 주의 자녀

우리는 어떠한 은혜를 받은 자들일까? 우리는 원래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할 죄의 속성을 지닌 자들이다. 그 죄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인류가 죄 아래 있다는 사실과 역사적 예수의 위치는 매우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들이다.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죄의 문제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까지 부여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음을 말한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요일 2:12) 예수님께는 어떤 권세가 있는가? 예수님은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어느 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가 지붕을 통해 내려졌다. 친구들에 의해 천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믿음으로 인해 고쳐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5:20) 한 번은 향유 옥합으로 예수님을 씻어드린 죄인이었던 여인에게 주님은 죄를 사하여 주신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7:47-50) 사람들은 죄 사함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불만을 가졌으나,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 분명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구원이 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4:12)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나아가야 한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10:43) 의 삶에서 작게 또는 크게 지은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께 죄를 자백하면 죄를 사하여 주심을 믿고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주님 앞에 나아가 죄 사함 받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4. 견고한 믿음가지고 마귀를 대적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영적전투를 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해야 할까? 주 안에서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은 신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또 악한 자를 이겼다고 말한다. 여기서 악한 자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악한 자는 마귀를 가리키고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싸우는 사람들이며 이를 위해서는 믿음에 견고히 서야만 한다. 믿음에 견고히 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한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를 피하여 숨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주님이 도울 것이며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됨을 믿어야 한다.

요한은 아비들에게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고, 청년들에게 악한 자를 이기었음을 말한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3)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복을 받았음에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아는 은혜에 관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아버지는 아들을 알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는 아버지를 알게 된다. 주님이 주신 은혜로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게 되었음은 놀라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지 못한다. 세상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세상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의 자녀의 신분에서 벗어나야 한다. 악한 자에게 속아 아벨을 죽인 가인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악한 자의 지배를 받게 되면 악한 행위의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죄인들도 사는 길이 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화목 제물이 되신 좋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 되신다. 예수님은 곧 십자가를 지시게 될 즈음에도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사랑의 주님이 되신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근신하여 깨어있어 주님처럼 기도하며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 영적 전투에 임하는 주님의 군사로서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0-12)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영적전투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5.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에 거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 예수님의 참 제자는 어디에 거하는 자들일까?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참 제자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8:31)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은 주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된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6:10)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고백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우리는 능력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말씀이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 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3:16) 늘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삶을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6. 세상을 사랑치 말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가? 본문에서 세상이란 용어는 하나님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음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로서의 세상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아니다.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런데 본문은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한다. 이때의 세상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 이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가리킨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친히 주인이 되셔서 통치하시는 세상을 그리스도인은 사랑하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본서가 하나님과 세상을 날카롭게 대립시킨 것은 헬라어의 특성에 기인한다. 헬라 사상은 본래 영과 육, 세상과 천상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한다. 세상과 육은 저급하고 악한 것이고, 천상과 영은 고급하고 선한 것이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끊임없이 세상과 육을 벗어던지고 영의 세계인 천상에 이르고자 한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가진 헬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본 서신에서도 세상과 하나님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래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단지 세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는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상에 대해 하나님과 대립하는 일체의 존재의 의미로 기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 것을 말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멀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우리는 주님만을 잘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을 미워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9)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을 각오하되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우리는 어떠한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들인가? 확실한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감을 말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 그리스도의 종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로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며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서 위의 것들을 바라보는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3:1-2) 예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결코 세상가운데서 승리하게 됨을 선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7.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한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분이시다. 천지는 없어지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102:26)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없어지고 변하지만 주 안에는 영원함이 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우리는 삶의 어떠한 것들 중에서도 최고 우선순위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우리는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라고 고백한 다윗의 기도처럼 언제나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143:10)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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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5. 5. 05:40

정욕을 따르지 말고.

정욕을 따르지 말고.

(바른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처럼 정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처럼 정욕을 따르지 마는 '우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영어KJV) 데살로니가전서 4:5 Not in the lust of concupiscence, even as the Gentiles which know not God:

(영어ASV) 데살로니가전서 4:5 not in the passion of lust, even as the Gentiles who know not God;

(헬라어신약Stephanos) 데살로니가전서 4:5 μη εν παθει επιθυμιας καθαπερ και τα εθνη τα μη ειδοτα τον θεον

(히브리어Modern) 데살로니가전서 4:5 ולא בתאות זמה כדרך הגוים אשר אינם ידעים האלה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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