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8. 11. 22:44

피난처 되시는 주, 시편 121:1-8

말씀: 피난처 되시는 주

성경: 시편 121:1-8

121:1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121:2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3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121: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121: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121: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1. 위기는 기회

스코틀랜드의 어느 아름다운 벽에는 유명한 동물화가 에드윈 랜드시어경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러해 전 그곳에서 만찬회가 열렸을 때 특별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한 사람이 새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던 벽에 소다수를 뿌리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사방은 오점 투성이로 가득하게 되었고, 주인도 화를 내게 되자 만찬회는 좋지 않은 분위기 가운데 끝이 났다. 모든 사람들이 떠나가고 손님으로 초대되었던 에드윈 경은 홀로 남게 되었다. 그는 즉시 방문을 잠갔다. 그리고 그의 가방을 열고 그곳에서 그의 페인트와 붓을 꺼내 벽에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놓았다. 그는 장애물을 기회로 전환시킨 것이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얼룩진 삶을 생각하며 불평불만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은혜

본장은 많은 사람들이 애송하는 저자 미상의 시이다. 일반적으로 순례자가 그 여정 가운데서 그를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위안과 만족을 얻은 감사의 시로 알려져 있다. 본시 전체에서 풍겨나는 아름답고도 감미로운 신뢰의 분위기는 험악한 인생길을 순례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위로와 소망을 얻게 하는 힘이 된다. 본시는 일반적으로 고난에 처한 순례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위안과 축복을 받게 된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나타나는 평안에 대한 감사의 시이다. 먼저 모든 도움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소개하는데(1-2), 그 하나님은 다름 아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으로 나타난다(3-4).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는 결코 불안하지 않음을 밝힌다(5-8). 시의 전체 분위기는 감미롭지만 그 내용은 저자의 강한 신앙을 알게 한다.

 

3.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

고난에 빠져 헤매는 인간에게 있어서 궁극적인 도움은 어디서 오는가? 우리의 도움은 오직 하나님 한 분으로부터 온다. 인간은 자신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자신이 섬기는 신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지만 결코 얻지 못한다. 그것은 인간이 섬기는 모든 우상은 헛된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하나님은 택한 백성을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면서 그분의 성실하심을 한없이 보여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는 택한 백성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떠한 인간이라도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알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 하나님의 변함없는 도움을 간구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움은 일회적인 것이 아닌 영원함을 깨닫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4. 피난처(1-2)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분은 누구신가?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시편 기자는 자신이 산을 향해 눈을 든다고 고백한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121:1) 여기서 은 시온 산을 가리키며, 이는 하나님의 처소를 상징한다. 시인은 하나님의 처소를 향해 눈을 들며 도움을 구하면서 도움이 여호와께로부터 온다고 말한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121:2) 여기서 천지를 지으신은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를 나타내고 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권능이 있으신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는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자신의 인생에 환난이 왔다면 그는 피난처와 힘이 되시는 하나님께로 나아와야 한다.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 받은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146:5-6) 하나님께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어떠한 사람도 우리를 해할 수 없음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13:6) 주의 자녀로서 인간의 영원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로 피하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졸지 않으시는 주(3-4)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지키시는가?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며 믿는 자들을 지키신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121:3-4) 하나님은 우리를 넘어지지 않게 하시며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살펴 주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자연을 통해서도 자신의 섭리를 보이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실 때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통해 주야로 인도해 주셨다.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 행하사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에게 비취사 주야로 진행하게 하시니.”(13:21) 우리는 하나님께 나의 삶에도 불과 구름 기둥을 통해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를 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의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27:1) 다윗은 수많은 위협 가운데 놓여 있었으나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주를 의지하며 두려워하지 않았다. 우리 또한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입술로 좋으신 주를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지켜주셔야만 안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127:1) 우리는 집을 세우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성을 지키시는 분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주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믿는 자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하심을 입었다고 고백한다.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벧전 1:5)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있음을 믿고, 힘을 다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께서 지켜주심을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다. “대저 여호와는 너의 의지할 자이시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3:26) 하나님은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믿는 자들을 지켜 보호해 주고 계심을 믿어야 한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졸지도 않으시며,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십자가 앞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지키시는 주(5-6)

믿는 자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믿어야 하는가?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시편기자는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주가 되심을 고백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121:5) 여기서 그늘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사막 지대인 팔레스타인의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그늘에 비유하고 있다. 뜨거운 사막을 걷다가 그늘이 있어 태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면 감사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할 바위가 되시며 태양으로부터 보호해 주시는 그늘이 되신다. 하나님께서 지키실 때 어떠한 것들도 우리를 상하게 할 수 없다. 시편기자는 해와 달이 상하게 할 수 없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121:6) 하나님이 지켜주시면 어떠한 것들도 나를 상하게 할 수 없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삶, 은혜와 긍휼 가운데 거하는 삶이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열방의 민족과 족속들이 주께로 나아오기를 원하고 계신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셨던 예수님은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 모으는 것처럼 주의 자녀를 몇 번이고 모으려 했으나 그들이 원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23:37)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드리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주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이 되어 하나님의 보호하심 가운데 거하며, 주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헌신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존하신 하나님께로 피하는 자는 화로부터 안전하게 됨을 믿어야 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91:8-10) 우리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이 전능자만을 의지하며 피난처로 삼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함께 기도해야 한다. 어떠한 위협이 있더라도, 어떠한 환난이 있더라도 크신 주님 앞에 보호 받을 수 있음을 믿고, 요동하지 않는 견고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로다.”(16:8)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 되어 주신다면 결코 요동할 필요가 없다. 우리의 피할 바위가 되시고, 우리의 그늘이 되시는 주님, 지금도 나를 사랑하셔서 지키시는 주님을 믿고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영혼을 지키시는 주(7-8)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이 영혼을 지키시는 분임을 알고 생명 되시는 주를 붙잡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21:7-8) 여기서 너의 출입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든 행사를 뜻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음 안에 거하는 자, 주를 의지하는 자들의 삶을 지키심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복 받는 삶이 나의 삶이 되도록 믿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악을 미워하고 주님 안에 거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저가 그 성도의 영혼을 보전하사 악인의 손에서 건지시느니라.”(97:10) 우리는 연약한 자들임을 인정하며 믿음의 사람들로 살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예수님은 시험에 들지 않고 악에서 구하여 달라고 기도할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6:13) 우리 모두가 졸지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는 피난처가 되시는 주님, 나의 영혼을 지키시는 주님을 날마다 의지하여 평안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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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8. 4. 14:43

주안에서의 기적, 누가복음 8:49-56

말씀: 주안에서의 기적

성경: 누가복음 8:49-56

8: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8: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8:51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8: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8: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8: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8: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1. 신앙

우주를 다녀온 두 우주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우주를 다녀왔지만 다른 고백을 했다. 우주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러시아의 우주인 가가린의 고백은 이렇다. “신은 우주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우주인 제임스 어윈은 달나라를 탐험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폴로 15호를 타고 가서 달에 머무르는 동안 하나님의 존재를 아주 가까이 체험했다.” 똑같은 우주인인데도 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했고 다른 한 사람은 체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견해 차이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가진 신앙의 차이 때문이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 삶 가운데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전도 여행을 다니셨고,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등의 여자들도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다(1-3).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고, 나중에 제자들과 계실 때에 그 비유를 해석해 주신다(4-15). 또한 등불 비유를 말씀하신다(16-18).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중에 모친과 동생들이 온 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의 모친이요 동생이라고 말씀하신다(17-21). 호수 건너편으로 가실 때 광풍이 일어났지만 예수께서 말씀으로 잠잠케 하신다(22-25). 갈릴리 맞은편의 거라사 지방에 이르러 군대 귀신들린 자를 만나서 치료해 주신다(26-39).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돌아오신 후 회당장 야이로 딸의 병을 고쳐 주시러 가는 길에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만나서 고쳐 주신다. 그러는 동안 이미 죽은 야이로의 딸을 예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죽음 가운데서 살리신다(40-56).

 

3. 믿는 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예수님으로부터 어떠한 은혜를 입었는가? 그녀는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림을 받는 은혜를 입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메시야의 권세를 잘 알 수 있다. 인간은 한계에 부딪쳐 있을 때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믿는 자들은 모든 문제의 해결 자이신 주를 의지해야 한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절망에 빠진 자라도 그 절망에서 건지시며 참된 희망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어두움과 죽음의 권세에 눌려 있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전진해야 할 것이다. ‘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분 앞에 날마다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4. 야이로의 딸의 죽음(49)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에 대한 어떤 소식을 들었는가? 예수님은 사역 중에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8:49) 한 사람이 와서 야이로에게 그의 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여기서 괴롭게 하지 마소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전하는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없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5:35) 그 딸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 분명히 죽은 아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회당장 야이로는 열두 살 먹은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자신의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8:40-42)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예수님이 죽어가는 아이를 고치실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의 딸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이었다. 우리는 문제의 상황 앞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헤맬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달려가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구덩이에서 건짐 받게 됨을 믿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믿는 자들이 주를 의뢰해야 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50:10) 언제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고, 전능하신 주께 불가능이 없음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두려워 말라(50)

예수님은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가지고 온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은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했던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야이로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8:50) 예수님은 딸이 죽었다는 말 앞에 두려워 말라,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믿음 앞에서는 어떠한 장애물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믿는 자들 앞에서는 어떠한 장애물도 문제가 될 수 없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독자 이삭을 얻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4:20) 공동번역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의 나이가 백세에 가까와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4:19)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날마다 잃지 않아야 한다. 성령 안에서 깨어있어 기도하여 하나님께 약속을 받고, 의심 없이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확신하며, 바라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2-24)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믿음으로 말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는 역사가 반드시 있게 됨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9:23) 우리는 날마다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 없는 자들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 앞에 모든 것이 굴복함을 기억하며 믿음의 말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고 의심 없이 기도하여 응답받는 삶,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통곡하는 이들(51-52)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야이로의 죽은 외동딸이 있는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울며 통곡하고 있었다.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8:51-52) 여기서 울며 통곡하매는 장례식의 침통한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는 분이시므로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모든 것들은 반응해야만 한다. 성경은 몇 명의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죽은 나사로가 깨어나는 사건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11:11-13) 예수님이 친구라고 불렀던 나사로도 예수님께서 명하실 때 일어나야만 했다.

구약 성경에는 엘리사가 죽은 수넴여인의 아이를 살린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엘리사는 아이 위에 올라가 자기 입과 눈, 손을 대고 그 몸에 엎드린다. 그 후 아이의 살은 점차 따듯해졌고 아이는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 엘리사는 자신의 종 게하시를 통해 수넴 여인을 오게 했고 그 여인에게 아들을 취하라 말한다.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왕하 4:34-36)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앞에 모든 것들이 무릎 꿇게 됨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죽음도 무릎 꿇게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임을 확실히 믿고, 언제나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구할 바를 구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비웃음&기적(53-55)

사람들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비웃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는 일어났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8:53-55)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심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비웃을 지라도 그 웃음에 움츠려 들 필요가 전혀 없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대로 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5:41)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문제의 상황이 끝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소경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침을 사용하시며 그를 고쳐 주신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8:23) 소경은 예수님이 안수하시자 눈을 뜨고 말았다. 우리는 소경을 불쌍히 여기셨던 예수님,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못 고칠 병으로부터, 어두움의 눌림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명하시면 불가능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명하셨고, 죽은 나사로는 베로 몸을 감은 채 나왔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11:43-44)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도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땅에서 제일 복된 삶은 모든 것을 잠잠케 하시는 주와 동행하는 삶이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풍랑은 잔잔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8:24) 아무리 죽게 된 상황일지라도 살아계신 주님을 찾고 간절히 부르짖으면 반드시 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됨을 믿어야 한다. 불신자들의 비웃음에 마음이 요동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영적 전투에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놀라움(56)

예수님의 행하심 앞에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딸을 보고 부모는 깜짝 놀라고 만다.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8:56)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아이의 부모는 깜짝 놀랐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두셨다.”(8:56) 마가복음은 부모 뿐 아니라 사람들도 크게 놀랐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게 하셨고 그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5:42-43) 소녀를 사랑하셨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예수님 보다 더 강한 것도 없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바람과 바다는 순종해야만 한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 하는고 하였더라.”(4:41) 우리는 주 안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소녀를 살리신 예수님,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나를 수렁에서 건지신 예수님, 나를 모든 문제의 구덩이에서 건지실 예수님을 붙잡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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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

성경: 누가복음 9:37-43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 새

9: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 아들이니이다

9: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9: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9: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9: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 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1. 믿음의 사람

군함 한 척이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출항했다. 그 배에는 스티븐스라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승선해 있었다. 배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해역에 당도하자 배에 탔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티븐스 곁으로 몰려들며 스티븐스를 잡아라, 스티븐스를 잡아라.’하고 외쳤다. 그들은 평소 스티븐스가 청렴한 생활과 성실한 기도 생활을 하며 성경말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지경에 처한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사람을 붙잡고자 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은 자신이 하실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메시야 이신 예수님께서 기적과 이사를 행하시고 우리를 위한 최종적인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자기에게 정해진 길로 걸어가신다. 제자들에게 친밀히 말씀하시고 메시야의 놀라운 일들을 자세히 보여 주신다.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길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확실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셨던 예수님의 사역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신유와 축사의 능력을 주어 선교 사역지로 파송하신다(1-6). 헤롯은 예수님으로 인한 표적들을 보고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였다(7-9). 사도들이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예수님과 사도들과 많은 무리들이 광야에 모였는데, 여기서 유명한 오병이어의 사건이 일어난다(10-17). 그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주는 그리스도시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에 자신의 메시야 사역에 대해 가르쳐 주신다(18-27). 그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는 변화산에 올라가사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종말에 관해 말씀을 나누신다(28-36). 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 들린 아이를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시고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신 후에 그 아이를 고쳐 주신다(37-42). 나중에 다시 예수님께서는 메시야 사역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다(43- 45).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보고 겸손을 가르치셨고(46-48), 드디어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49-62).

 

3. 귀신 들린 아이(9:37-43; 17:14-18; 9:14-27)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아이를 고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다시 알리셨다. 메시야로서 세상의 모든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시기 위해 감당하시는 사역을 알리셨다. 예수님은 이기신 권세를 물려받은 사람들이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9:23)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이러한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믿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4. 예수님을 맞이하는 큰 무리(37-38)

예수님을 맞이한 이들은 누구였는가? 변화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신 예수님을 큰 무리들이 맞이한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 새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 아들이니이다.”(9:37-38) 변론하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9:16-17) 귀신 들린 아이 때문에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변론을 하고 있었다. 귀신들린 외아들을 고쳐야 하는 문제로 그들은 소란스러웠다. 예수님은 그 아이의 아비와 이렇게 대화한다.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9:21-22) 아버지는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한다.

우리는 문제의 상황 앞에서 언제나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많은 이들을 자유하게 해 주셨다. 마태복음은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의 외침을 기록한다.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불쌍히 여기어 달라고 간절히 외친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15:22) 예수님은 간절히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다. 삶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기도하여 응답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귀신들린 자들의 반응(39)

귀신들린 자들은 어떠한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가? 귀신들린 자들은 귀신으로 인해 경련, 거품을 일으키고 상함을 받기도 한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9:39)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아이는 악령이 덮치기만 하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온 몸에 상처를 입습니다만 악령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9:39) 악령은 문제를 일으킨다. 악령은 인간에게 들어가서 상처를 입히고 그 곳에서 나가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 그는 반드시 반응하며 견디지 못해 그 곳을 떠나가게 됨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는 예수님께 간청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시며 아이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9:24-25) 우리는 마귀와 가까이 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원래 우리는 마귀에게 속한 자들었으나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세상에 속한 자들의 영적인 위치는 이렇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8:44) 세상에 속한 자들은 거짓을 말하고,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언제나 깨어있어 마귀를 대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마귀는 세상 사람들을 자신의 방향대로 끌고 가려고 하며, 믿는 자들 또한 넘어뜨리기 위해 열심을 내는 피조물이다. 우리는 마귀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는 삶, 성령 안에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성령 충만함을 입어 마귀와의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하며,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제자들은 못 쫓음, 야단맞는 제자들(40-41)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누구를 좇을 수 있어야 하는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마귀를 잘 대적하고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의 제자들은 벙어리 귀신 들린 자를 자유하게 하지 못했고,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보고 꾸짖으신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9:40-41) 우리는 예수님 안에는 불가능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이 상황을 마가복음을 이렇게 기록한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9:19) 우리는 주와 동행하는 자들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은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며 억압 가운데서 풀어주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때 하나님을 불신했고,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음에 대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14:11)

우리는 지금까지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로 인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유대 성읍들의 선교 사역을 위해 70인 봉사대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을 해할 자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10:17-19)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원수를 제어할 권세가 있음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날마다 영적 전투를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귀신을 꾸짖고 아이를 낫게 하신 예수님(42)

예수님은 누구를 낫게 하는 분이신가?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를 자유하게 하시는 분이다. 이 땅의 왕이신 예수님은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해 주시는 치료의 주가 되신다.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9:42)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은 경련을 일으키며 반응했다. 예수님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며 귀신을 쫓아낸 후, 그 아버지에게 아이를 주었다. 마가복음은 그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9:26-27) 귀신은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로 경련이 일어나게 했고, 예수님은 죽은 것 같이 된 아이를 일으키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자유하게 하시며,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해 주시는 능력의 주가 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 중 또 하나의 사역의 장면을 기록한다. 갈릴리 가버나움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은 크게 소리 지르는 귀신 들린 자,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외치는 자를 꾸짖으신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4:35-36) 예수님의 이름 앞에 어두움은 굴복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삼킬 자를 찾으며 두루 다니는 마귀, 인간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며 일하는 마귀를 대적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천국에 시민권을 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 받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시는 좋으신 예수님을 날마다 찬양하며, 주의 권능을 힘입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땅 위의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주님(43)

우리 주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분을 마음의 중심에 잘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 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9:43) 하나님은 크신 분이고 우리는 작은 자이기 때문에 주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렇게 크신 주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복 받은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자유하게 한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집에 들어갔고 이렇게 대화한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9:28-29) 이 시대의 주의 제자인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 어두움은 물러가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이 고단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 삼고 승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는 주의 제자들을 위해 지금도 중보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며 그분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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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7. 20. 16:19

기드온과 300 용사의 승리, 사사기 7:19-23

말씀: 기드온과 300 용사의 승리

성경: 사사기 7:19-23

7: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7: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7: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7: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1. 시련

George. B. Duncan의 글이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토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진흙으로 토기를 만들어 완성시킨 토기장이는 토기 표면에 까맣게 칠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가 아니 왜 모두 까맣게 칠을 하지?”라고 물었다. 그는 빙긋 웃으면서 이렇게 해서 가마 속에 넣었다가 꺼내면 이 까만 것이 황금색이 된다네.”라고 대답했다. 신자의 생활도 비슷하다. 새까맣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가마, 즉 시련의 불에 들어갔다 나오면 아름다운 것이 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힘쓰는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환경과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잘 연단 받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은 미디안 족속으로 인해 크나큰 고통을 당했던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위해 기드온이라는 새 일꾼을 예비하신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신실한 일꾼 기드온이 등장한다.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미디안 족속에게 대승을 거두는 장면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쟁의 승패가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장은 본격적인 미디안과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투를 위해 군사를 모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에 기드온은 시험을 통해 그중 삼백 명의 군사를 뽑았다(1-8). 마침내 무수한 미디안 군대와 마주친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미디안 군사의 꿈을 통해 승리의 확신을 주셨다(9-14). 이에 용기를 얻은 기드온은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로 무장하고 야간 기습 작전을 펼침으로써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15-25).

 

3. 기드온의 삼백 용사

기드온이 미디안을 치기 위해 군사를 모집했을 때 모인 사람은 삼만 이천 명이었다. 미디안과 아말렉 군대가 해변의 모래처럼 많다는 기록에 의하면(12) 실제로 전투를 위해 이 정도의 군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시험을 거쳐 삼백 명의 군사만 선발하도록 하셨다.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7:5-8) 선출된 삼백 용사는 개의 핥는 것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였다. 그 외의 군인들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선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장막으로 돌려보냈고 삼백 명만 남게 했다.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7:8) 하나님은 선출된 삼백 용사를 통해 미디안과 싸울 것을 명하셨다. 군대의 수적 우세가 전투의 승패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고대의 전쟁에서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명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기드온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전투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삼백 명만을 선발하도록 한 것은 미디안의 섬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리시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쟁은 구속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며 성도들이 치르는 악과의 영적 전쟁 또한 하나님의 몫이다. 우리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 세 부대가 나팔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19-20)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어떻게 전투했는가?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며 전투에 임했다. 그들은 2경초에 미디안 진영 근처에 이르렀다. 2경은 히브리인의 시간의 단위인데, 3경의 중앙의 시각으로 오후 10-오전 2시에 해당한다. 기드온은 이 시간에 한 밤중의 파수병 교대시간을 이용하여 미디안을 기습했다. 유대인은 밤을 4시간씩 세 때로 나누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의 습관에 따라 밤을 네 때로 나눴다. 기드온은 세 부대로 나누어 전투에 임했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7:19-20) 현대인의 성경은 20절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다른 두 부대도 그들을 따라 일제히 왼손에든 항아리를 부수어 횃불을 높이 들고 오른 손에 든 나팔을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한 칼이다.’하고 외쳤다.”(2:20) 나팔을 불어 신호를 알리며 잠자는 미디안 군인들을 깨웠고, 항아리로 횃불을 감춘 후 항아리를 깨트려 전투가 일어난 것처럼 꾸몄다. 미디안 군인들은 갑작스러운 소리와 갑작스러운 불빛에 크게 놀랐을 것이다.

기드온은 한 군인이 꾼 꿈과 그 꿈의 해석을 통해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대를 자신들에게 붙였음을 확신했다.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7:13-15) 하나님은 미디안과 연합군을 기드온과 삼백 용사에게 붙이셨다.

구약 성경은 또 다른 기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6:4)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한 번씩 돌 되 엿새 동안 그렇게 하고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 것을 명하셨다. 일곱 번째 돌 때,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의 상황은 이렇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6:16)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고 나아가며 외칠 때 견고한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6:20) 우리는 믿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불가능이 없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했던 기드온과 삼백 용사처럼 모든 전투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알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믿음생활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진영의 군사들이 도망함(21)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손에 들며 기습하는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 앞에 미디안 군사들은 부르짖고 도망하고 만다.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7:2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서 적진을 둘러 싼 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적군은 온통 갈팡질팡 아우성치며 도망치기 시작하였다.”(7:21)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각기 제 자리에 서서 진을 포위했고 적군은 모두 아우성을 치며 도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군사들이 승리하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출애굽기는 또 다른 멋진 장면을 기록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는 중 홍해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닷물이 벽이 된 홍해를 지나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고 애굽 사람들은 혼돈하고 만다.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14:25) 그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 마병들 위에 흐르게 하라고 명하셨고 그들은 수장되고 말았다.

구약 성경은 또 다른 기적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스라엘 요람 왕 때, 아람 군대에 의해 사마리아 성이 포위 된 후 항복하려 했던 나병환자 네 사람의 이야기이다. 네 명의 문둥병자들은 어차피 굶어 죽게 된 환경 가운데서 한 가지 소망을 품었다. 그들은 아람 진영에 가서 항복을 하여 그들의 선처를 기대하고 아람 진영에 갔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람 사람들로 하여금 큰 군대의 출정하는 소리를 듣도록 역사 하셨다. 그래서 아람 사람들은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고용된 헷 족속과 애굽의 군대가 만들었던 소음들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황혼녘에 정신없이 본국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왕하 7:6-7)

아람 군대는 서둘러 도망치며 가축들과 장비들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텅 빈 아람 진영에 온 문둥병자들은 정신없이 자신들의 배와 호주머니를 채웠고 좋은 것들은 감추기까지 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의 역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언제나 담대해야 한다. 솔로몬은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28:1) 우리는 어떠한 상황과 형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의인들이 되어야 한다. 미디안 진영의 군인들을 기드온과 삼백 용사에게 붙이신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됨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나팔을 불고 난 후(22-23)

기드온의 삼백 용사가 나팔을 불자 미디안 진영의 군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끼리 싸우게 만드셨다.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7:22-23) 미디안 군인들은 도망했고 기드온과 삼백 용사는 그들을 추격했다. 미디안은 Midian(인명)(@yDImi, Midian)심판의 의미를 갖는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아들인데 그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이다. 후에 아브라함은 미디안을 포함한 서자들에게는 자기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아들 이삭을 떠나 동국으로 가게 했다. ‘미디안 사람이란 그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혈연이다. ‘미디안이라는 한 개인과 한 민족은 동일 개념이다(25:1-6). 민수기 10:29에서는 미디안 사람이라고 했다. 광야의 민족이다(10:29-31, 60:6).

미디안 사람의 상인은 길르앗에서 온 이스마엘 사람의 상인과 더불어 요셉을 사서 애굽으로 데리고 갔다(37:25, 28).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 사람이다(3:1). 사사 시대의 미디안 사람은 아말렉 사람과 동방 민족과 연합하여 가축과 장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처럼 큰 무리를 이루어 가나안 땅에 침입하여 도처에서 수확물을 약탈하고 그 땅의 농민을 매우 괴롭혔다. 7년 동안의 압박 후 하나님은 엘 바알, 즉 기드온을 일으켜 회개한 민족을 구했다. 이스르엘 평야에서 결전이 벌어져 침입자의 완패로 끝났다. 그들의 두 왕 오렙과 스엡은 사로잡혀 피살되었고, 다음에 두 왕 세바와 살문나도 역시 같은 운명으로 되었다. 그 후 그 땅은 40년간 태평하였다(6, 8, 9:17, 83:9-12, 9:4, 10:26). 이사야서는 장차 모든 이방 원수들과 하나님의 백성의 박해자들이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을 기드온이 미디안을 패하게 했던 일을 언급하며 기록한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9:4) 우리는 거룩하신 분, 만왕의 왕의 통치하심 앞에 하나님을 높여야 하며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이 땅의 주인이신 왕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소유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삽의 시는 이렇게 기록한다. “주는 미디안 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83:9)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삶은 승리의 삶이고, 하나님의 얼굴에서 멀어진 삶은 패배의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기적을 일으키면서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완전하신 주님이 삶을 이끌어 주실 것을 기대하며,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승리는 주께 있음

모든 일들에 있어서 승리의 키를 가지고 계신 분은 우리 주 하나님이시다. 미디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은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만으로 승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칼이여 하고 외쳤던 것이다. 오늘날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영적 전투를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미디안과 싸워야 했던 기드온과 삼백 용사의 삶과 비슷할 수 있다. 우리는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처럼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확실히 믿고 나아갈 때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환경을 보고 두려워 떨고 삶의 문제를 보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승리의 키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싸우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이렇게 말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3-14)

전능하신 하나님은 를 어두움의 구덩이에서 건지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살아계시는 주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승리가 주께 있음을 기억하고 언제나 능력의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예수 안에 큰 능력이 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하나님은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보화를 담아 주셨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통치하심을 인정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하며 싸웠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어 드리며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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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7. 13. 20:32

충성된 종, 디모데후서 2:3-7

말씀: 충성된 종

성경: 디모데후서 2:3-7

2:3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2:4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2: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2:7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1. 싸움

영국 사람들이 사용하는 격언 중에 화를 낼 줄 모르는 것은 바보이고 화를 내지 않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라는 말이 있다. 열대의 정글 속에 살고 있는 코브라는 잘 길들이면 피리 소리를 듣고 둥근 머리를 곧게 세우며 춤을 추는 일도 곧잘 해내는 영리한 동물이다. 그런데 영리한 이 뱀이 정글 속에서 적수가 되는 놈들끼리 만나게 되면 서로 흥분하여 금방 상대방을 공격하여 삼킬 듯 덤벼든다. 하지만 그들의 대결은 오래 가지 않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싸움판을 피하여 주춤주춤 물러서 제 갈 길들을 찾아간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원수처럼 보이는 어떤 이와의 불편한 관계, 그들과의 관계의 갈등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를 소원하고, 꿈과 목표가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 안에서 좋은 군사가 되기를 힘쓰고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일꾼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가 되며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일꾼이 될 것을 명한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깨끗케 하여 하나님께서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헌신할 것을 교훈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시키고 거짓 교훈을 좇아 교회의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해 엄히 경계할 것과 아울러 그들이 다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온유함으로 징계할 것을 지시한다. 앞장에서 바울은 담대한 자세를 가지고 복음 전파에 임할 것을 디모데에게 당부했다. 이어서 본장에서는 구체적으로 복음 전도자의 자세 및 임무를 강조하고 있다. 디모데에게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라고 권고한 바울은 단지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그치지 말고 더 나아가 성도들을 주의 진리의 말씀으로 훈련시키고 무장시키는 데까지 나아갈 것을 당부하고 있다. 결코 정체되어 있어서는 안 되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성숙되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불신자들을 위한 복음 전파와 아울러 성도들을 양육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본장의 내용은 선한 사역자의 모습을 언급하는 전반부(1-7), 사역자의 받은 상급을 언급한 중반부(8-13), 선한 사역자에게 주는 권면을 언급한 후반부(14-26)로 구성되어 있다.

 

3. 병사(3-4)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로서 자신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을 것을 명한다. 군사는 언제나 자신의 사생활보다는 상관의 명령을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군사는 언제나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그의 뜻을 이루기에 힘써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리스도의 충성된 군사가 되기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 강하고 자신이 가르쳐 준 교훈을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고 명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단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게 하는 일에 힘써야 할 것이다.

 

좋은 병사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어떠한 병사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죄악으로 물든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 2:3)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건 좁은 길을 걷는 삶이다. 좁은 길을 잘 걸어가기 위해서는 환난과 핍박, 세상의 유혹이 오더라도 잘 이겨내는 좋은 병사가 되어야만 한다. 예수님 안에서 믿음을 잘 지키는 자들은 모든 것을 참고 잘 견디는 삶을 살게 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7)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것 때문에 받아야 하는 핍박과 고난을 잘 이겨내는 좋은 병사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을 바라며 믿고 견디는 우리를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사람들과 이견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우리는 자신 앞에 있는 하나 되지 못함을 잘 해석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는 육체의 싸움을 하지 않고 그 상황을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영적 전투에 잘 임해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싸우는 병기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3-5)

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 그 안에 있는 문제를 영적으로 잘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눈앞에 보이는 지체를 싸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되며, 사랑의 대상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삶을 지배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놓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시험이 오더라도 끝까지 인내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12) 우리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 영적인 싸움이 치열할지라도 끝까지 견디어 주님을 만나 뵈었을 때 잘했다고 칭찬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믿음의 훈련을 잘 통과하여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 충성된 종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없음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병사로서 무엇에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가?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병사로서 생활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4) 군대에 입대한 병사는 과거의 생활에 대해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오직 자신에게 맡겨진 일인 나라를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그것이 바로 충성된 병사의 바른 태도이다.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는 자,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우리가 되어야 한다. 사람의 마음은 네 가지 종류의 밭으로 이야기 할 수 있다. 이 밭은 길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이다. 예수님은 네 가지 밭의 비유를 통해 믿는 자들의 삶을 말씀하신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8:14) 길가에 있는 것은 마귀가 씨앗을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뿌리가 없어 시련을 당할 때 배반하는 자이다. 그리고 가시떨기 밭은 말씀을 듣고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이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의 밭이 어떠한 밭인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좋은 마음의 밭이 되어, 믿음의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또한 우리가 좋은 군사로서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길 원한다면 모든 일에 절제하며, 향방 없이 달리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고전 9:25-26) 우리는 모든 일에 잘 참을 수 있는 자, 목표를 가지고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 살며,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전파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좋은 군사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서 생활에 얽매이지 말고 잘 절제하며,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경기(5-6)

바울은 복음 사역으로 인해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게 되지만 그러한 고난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만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게 됨을 교훈한다. 또한 바울은 어떠한 고난이 있어도 법대로 경기해야만 승리자가 될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하나님의 법대로 영적 전투를 수행하여 승리자가 될 것을 디모데에게 교훈한다. 이는 디모데에게 복음 사역을 행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고난이 있더라도 세상과 타협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바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법대로 경기해야

그리스도인들은 좋은 군사로서 무엇에 따라 경기해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 안에서 경기하는 자로서 법에 따라 경기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딤후 2:5) 법을 지키지 않고 승리한 선수는 경기에서 승리했을 지라도 인정받지 못한다. 우리는 편법을 쓰지 않고 바른 법에 따라 경기하여 승리의 면류관을 얻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믿음의 경주를 하며 불합리한 환경이나 사람들을 만날 때, 머릿속에서 법에는 어긋나지만 좋게만 보이는 어떠한 생각이 떠오르더라도 우리는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환난과 고난의 길,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하는 상황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바르게 경기할 것을 다짐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주의 군사들이 죽도록 충성한 이후에 주께서 면류관을 주실 것을 말한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2:10)

하나님이 허락하신 테스트의 과정, 마귀가 주는 시험 가운데서도 당당히 말씀을 붙잡고 승리해야 해야 한다.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12) 우리는 시험을 잘 이겨내어 하나님께 옳다 인정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 앞에 보이는 고통스러운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주님 앞에 섰을 때 받게 될 영광을 바라보며 힘차게 경기에 임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믿음의 길을 잘 달려갔음을 고백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의로운 재판장이신 예수님께서 믿음의 경주를 잘한 이들에게는 반드시 상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열어 장차 도래할 주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사모해야 한다. 좋은 군사로서 믿음 안에서 잘 경기하고 주님을 만났을 때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수고하는 농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안에서 어떠한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충성된 종으로서 수고하는 농부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딤후 2:6)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리고 힘들여 일한 농부가 소출을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딤후 2:6) 우리는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있는 삶, 힘들여 일한 농부의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 안에서 열심히 심고 가꾸고 일해 아름다운 결실을 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복 받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함 받아 천국 백성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지만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신다.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9:37-38) 우리는 좋은 군사로서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는 일꾼들이 더욱 많아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지금은 말세 중 말세이다. 지구상의 평화는 외교와 협력 등을 포함한 인간의 노력으로 완전히 해결 될 수 없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열방이 회개하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는 나라와 민족들이 될 때 주의 거룩한 영광의 파도가 온 세계를 덮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추수할 때가 이르렀음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4:35-38)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공의가 이 땅 가운데 넘쳐나 뿌린 대로 열매 맺는 일이 넘쳐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시간들로 가득차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10:36) 예수님 안에서 충성된 종으로서 수고하는 농부가 되어 복음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총명을 주시리라(7)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주의 일 감당하기를 힘쓰는 자들을 반드시 돕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리가 충성된 종으로 살아가기를 힘 쓸 때 반드시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다. 우리는 충성된 종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힘과 지혜와 능력을 주실 주님을 기대해야 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딤후 2:7)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주의 일꾼들의 필요를 채워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은 요셉에게 지혜의 복을 허락하신다. 바로 왕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 요셉에게 감탄한다.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41:38-39)

우리는 좋은 군사로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말씀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여호와여 나를 내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하여 숨었나이다.”(143:8-9) 하나님은 어떠한 환경과 상황 가운데서도 주를 의지하며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자들을 도와주신다. 예수님은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우리는 사명감을 확실히 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할 때 돕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야 한다. 충성된 종으로서 성령님의 도움으로 승리하며 성령 충만하게 사역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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