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16. 13:29

감정과 언어에 있어서의 지혜, 잠언 15:1-4

말씀: 감정과 언어에 있어서의 지혜

성경: 잠언 15:1-4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15: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15:4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1. 영혼사랑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으로 갈 선교사 지망생들을 접견하여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선교사로 중국에 가려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후보자들은 제각기 중국의 수많은 영혼들이 멸망의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대답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대답만으로는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면 쓰러지고 말겁니다.’ 그 후 한 지망생은 이렇게 다시 묻는다. ‘그러면 선교사님은 무슨 동기로 가셨습니까?’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답한다. ‘내겐 한 동기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을 사랑해서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가?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언어생활

본장의 1-2, 4, 23, 28절은 모두 언어생활에 대한 교훈이다. 어떤 사람의 언어생활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을 그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쌓아 놓은 악을 그의 입을 통해서 쏟아낸다. 그는 노를 격동하는 과격한 말을 하고, 패려한 것을 말하며 자신의 미련함을 드러내는 말을 한다. 참으로 미련하고 악한 자의 말은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그의 혀는 마치 칼과 같아서 그것을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를 상하게 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분노를 쉬게 하는 온유한 말을 하며, 때에 맞는 아름다운 말을 깊이 생각한 후에 한다. 그의 혀는 생명나무와 같이 듣는 이의 마음을 치료하며 생기를 북돋아 준다. 그의 입과 입술은 참으로 복되어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참으로 그는 그의 입술의 열매로 인한 복록을 누린다.

 

3. 의인과 악인

의인과 악인의 특징에 대해 비교하고 있는 본장은 특히 하나님께 대한 태도의 차이를 자세히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악인과 의인의 모든 차이가 결국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연유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참된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함이라는 잠언 전체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말을 할 때 지혜롭게 하는 자는 화평을 이루나 과격한 말은 다툼을 일으킨다(1-7).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8-12). 사람의 참된 기쁨은 물질에 있지 않고 마음의 화평에 있으므로 분을 내지 않고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13-20). 그러므로 의인은 지혜로운 말을 즐겨하고 불의한 뇌물을 멀리함으로 소원이 이루어지나, 악인은 훈계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멸시함으로 음부에 들어가게 된다(21-33).

 

4. 분노의 감정(1)

우리는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자신에게 들리는 말에 따라 감정이 요동하기도 하는 것이 연약한 인간이다. 우리가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우리는 유순한 말을 하고 과격한 말을 멀리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어떠한 말이 자신을 화나게 할 때에도 노하기를 더디 할 수 있어야 한다. 노와 분에 대해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29:22) 노할 수 있는 상황에 서로 노하기에 열심을 낸다면 다툼은 그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분을 내고 분 품은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잘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돈, 권력, 명예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에 탐심을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28:25) 탐하는 마음은 다툼만 일으키게 함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풍족한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분을 쉽게 내면 다툼을 일으키나 노하기를 더디 하면 시비가 그치게 될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15:18) 믿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원수라도 사랑 할 수 있는 믿음의 태도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크고 놀라움을 알고, 가슴으로 그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잠언은 미움과 사랑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10:12) 우리 앞에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미움의 결과는 다툼이고 사랑의 결과는 평안임을 반드시 기억하고 사랑하기를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언제나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말을 하며 타인에게 뜨거운 주의 사랑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지혜 있는 자(2)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믿는 자들에게 큰 복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지혜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아름다운 말을 하는 우리가 된다면 감사한 일이다. 솔로몬은 혀와 입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15:2) 혀를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성령님의 은혜로 혀를 잘 훈련받아 성숙한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주님 닮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 의인과 악인의 말은 다른데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15:28) 우리는 입을 통해 악을 쏟아내기 보다,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매한 자가 아닌 지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함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라고 말했던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말과 우매자의 입술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 입의 말의 시작은 우매요 끝은 광패니라.”(10:12-13) 연약한 인간은 말의 실수를 종종 한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입의 말을 통해 은혜만 흘러갈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마음을 갖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16:23)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마음을 갖게 되고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인생의 길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늘 주님께 아뢰어 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주께서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5:21) 주님께 기도하여 하늘의 지혜를 덧입고 성령님의 은혜로 혀를 잘 다스려 지혜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감찰하시는 주(3)

우리를 감찰하시는 분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주님은 나의 마음의 슬픔과 기쁨을 다 알고 계신다. 솔로몬은 인간을 어디서든지 살피시는 여호와의 눈이 있음을 말한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15:3) 우리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악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최고 우선순위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어 드려야 한다. 큰 죄나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주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보혈로 용서함 받아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어 드리고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걸음을 감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주가 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34:21-22)

인간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없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언한다.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16:17)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23:24) 우리의 선과 악은 하나님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3)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잘못한 것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주님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주의 일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주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온순한 혀(4)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온순한 혀를 가지고 생명을 흘러 보내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5:4) 간사한 혀는 거짓을 말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52:2-4) 우리는 남의 말을 하는 것이 죄임을 알고 이러한 습관을 멀리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18:8)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사람들은 그것을 삼키기 좋아한다.”(18:8) 우리는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기를 소망하는 구별된 자로서 입술에 선한 말이 넘쳐나야 한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16:24) 우리는 성령님께서 삶을 지도하시므로 선한 말을 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감정에 기초한 언어 사용을 하는 연약한 자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칭찬받을 만한 언어를 사용하는 지혜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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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9. 12:10

주를 송축하는 삶, 시편 103:1-6

말씀: 주를 송축하는 삶

성경: 시편 103:1-6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103:6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1. 감사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죤 하갈의 이야기이다. 그는 목회자가 되려고 준비하던 기간에 쓰디쓴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의 아들이 1950년에 뇌성마비로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아들의 병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이 일로 인해 주님은 나를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과 내 아들처럼 병고에 시달리는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후로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주 안에서 어떠한 환경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2. 다윗의 시

이 시는 다윗의 찬양 시로 문학적 가치와 채용이 풍성한 주옥같은 시이다. 밝고 힘찬 분위기가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다윗 시의 진수를 보여 준다. 그 내용은 찬양, 죄 사함,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왕권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주된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기쁨 어린 찬양의 권면이다. 이 시는 설명과 이해보다는 여러 번 반복하여 읽고 암송하면서 음미해야 할 시이다. 본시는 다윗의 찬양 시로서 문학적 가치나 내용이 전체 시편의 백미로 꼽힐 만큼 뛰어나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의 능력 있는 통치, 그리고 인간의 죄에 대한 고백과 찬양 등이 나타나 있다. 이 시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권면한다(1-2). 그리고 그 찬양을 통해 나타나는 개인적 축복(3-5)과 민족적인 축복 (6-19)을 다루고 있다. 더 나아가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인간에게만 국한 시키지 않고 천군과 천사에게로 확대시키고 있다(20-22).

 

3.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1-2)

거룩한 이름을 송축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분은 누구인가? 어떤 이도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실 수 있다.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하나님을 송축하는 삶은 최고로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송축하기를 바란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103:1) 여기서 내 속에 있는 것들은 지, , 의를 포함한 전인격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다윗은 전인격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기를 원했다. 우리 하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 지어다.”(47:7)

주님이 만나주시면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63:5) 우리는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주를 바라고,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영적인 은사들에 대해 권면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 우리는 영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영과 마음으로 주를 찬미하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다. 늘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승리해야 한다. 주님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4:24) 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을 언제나 송축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은택을 잊지 말고

우리는 누구를 송축해야 하나?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주를 송축할 것을 바라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택을 잊지 않기를 원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2) 여기서 잊지 말지어다는 히브리어로 잊다를 뜻하는 <hk'v;: 솨카흐>이다. 이는 상대방의 선한 호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주를 송축하며 주께서 베풀어 주신 선한 호의를 무시하지 않기를 원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잘 섬겼던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자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에 임하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대하 32:25) 하나님의 진노 후 히스기야 왕은 회개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잘못한 것을 늘 회개하고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116:12)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의 신분은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언약과는 무관한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 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2:11-13)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이 지은 큰 죄, 작은 죄를 모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그 분을 찬송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63:7)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고, 주께서 베푸신 은택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은혜 주시는 하나님(3-4)

고치시는 주

주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가?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는 못 고치실 병이 없다.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병을 고치시는 분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103:3) 여기서 은 원어<!yaWlj}T': 타할루아임>은 육체적인 질병을 뜻한다. 우리 주님은 못 고칠 병도 없으신 분이다. 자신이 가진 병을 하나님께 의탁하여 간절히 기도한다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치료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치료자가 되시며 구원자가 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하자 불 뱀을 통해 벌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뱀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21:7-9) 백성들 중 놋 뱀을 쳐다 본 자들은 살게 되었다. 예수님은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을 살리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영혼이 살게 되는 역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주께서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주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음을 믿어야 한다. 이사야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주님의 은혜로 내가 구원받았고 주님의 은혜로 내가 나음을 입게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실 권세도 있으시고 병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유일하신 능력의 주님이 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2:10-11)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영혼의 자유를 누리며, 예수님의 은혜로 문제를 해결 받아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승리해야 하나?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 후 우리에게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며 승리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103:4) 여기서 파멸은 원어로 <tj'v': 솨하트>이다. 이는 지옥또는 멸망으로도 번역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멸망에 이르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윗은 생명을 회복이 불가능한 멸망에서 건져주시고 긍휼의 관을 씌우실 주님을 높인다. 우리 하나님은 나를 구속하신 분이고 믿음 안에서 인내로 승리한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주께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원수에게서 건져 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거센 파도를 지나는 배의 항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주를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고 승리해야 한다.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12) 주 안에서 시험을 이기며 예수님만 바라보고 승리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롭게 하시는 주

부족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어떻게 힘을 얻게 되는가? 우리는 주께서 함께 하실 때 불가능한 일이 하나도 없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실 때 우리는 담대하게 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103:5) 여기서 좋은 것은 원어로 <b/f: 토브>이다. 이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다. 다윗은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시키실 주님을 높인다. 우리는 주께서 믿는 자들을 도와주실 때 독수리 같이 날아오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할 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좋은 것으로 영혼을 만족케 하실 것이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107:9)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을 앙망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40:31)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새 힘을 주셔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실 주님을 송축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좋으신 주(6)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주가 되신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103:6) 우리는 공의로우신 주, 우리를 자유하게 하실 주를 날마다 송축해야 한다. 또한 환경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연약한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유라눈 하나님 밖에 있는 부유함도 의미가 없음을 기억하며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 기자는 부한 자들의 슬픔을 이렇게 기록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5:1-6)

우리는 주를 믿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주님만 바라보고 인내하며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어 드리어 응답받아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72:12)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반드시 도와주시는 분이이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우리는 안전하게 된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12:5) 나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알고 계시고 나를 건지실 능력이 있으신 주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좋으신 주님을 송축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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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2. 17:32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 시편 42:1-5

말씀: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

성경: 시편 42:1-5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 마음

히틀러는 평소에 싫어하는 것이 두 개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유대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자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의 가정적인 환경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행상인이었는데 물건을 구한 후 팔고 돌아오는데 한 달이나 두 달 정도가 걸렸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고독을 견디다 못해 이웃에 사는 유태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말았다. 어린 히틀러는 이 사실을 알고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 것을 호소했으나 어머니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결국 한 사람 어머니와 유태인의 범죄는 히틀러의 마음에 원한을 품게 했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갈망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조롱하는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한다. 자신의 영혼이 그러한 비난 소리에 아파하며 낙망할 때, 시인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격려한다. 낙망 중에 주를 바라보는 것만이 회복과 승리의 길임을 시인은 확신하고 있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에서 쫓겨나 멀리 유리하면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성전에서 하나님 공경하기를 갈급해 한다(1-2).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묻고 하나님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날에 많은 무리와 기쁨의 찬송을 부르던 그때와는 대조적으로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시인은 무척 슬퍼하고 있다(3-4). 그러나 이렇게 낙심한 상태에서 시인은 자기가 일어나야 함을 깨닫는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장차 임할 주님의 인자를 내다본다(5-8). 그리고 하나님을 내 반석이라고 하면서 과거에 지켜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왜 낙망만하고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꾸짖고 있다(9-11).

 

3. 주를 찾기에 갈급(1)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어떠한 일을 만나더라도 좋으신 주를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주를 찾는 자들의 소리에 반드시 귀 기울시는 분이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42:1) 여기서 갈급함은 원어로 <gr"[: 아라그>이다. 이는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를 말한다. 사슴은 목이 말라 있을 땐 간절함 마음으로 시냇물을 찾을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로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찾는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면 영혼에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84:1)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풍족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주를 만나고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36:8-9)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던 다윗은 주를 찾기에 힘썼고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63:1-2) 내가 걸어가는 길이 힘들다고 느껴지는가? 우리가 어떠한 길을 걸어갈지라도 그 순간 하나님을 찾는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며 나를 돕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 주께서 베풀어 주시는 영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2)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떤 이는 높은 가치의 것을 추구하며 어떤 이는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좇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지향하는 자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42:2)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살아계시는의 의미는 하나님이 이방 신들과는 다르게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방 신들과 비교할 수 없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되신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원했다. 또한 다윗도 하나님께 한 가지 일을 구했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주의 아름다움을 구하기를 소원했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27:4) 우리는 어디에 거하기를 더 소원하는가? 고라 자손의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84:10) 우리가 주의 궁정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우리 주님은 누구신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왕이 되신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10:10) 뿐만 아니라 생명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감당할 이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5:26) 우리는 아버지께 생명이 있고 아들에게 생명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누구든지 주께로 달려오는 자들은 영혼이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지금 나아와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아야 한다. 주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주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혼의 큰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한 분만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비방하는 자들 앞에 눈물(3)

우리는 믿는 자로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떠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까?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묻는 이들 때문에 밤낮으로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42:3) 또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토로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42:10) 비방자들은 믿는 자들을 대적하고 비방하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비방 할 때 주의 자녀들은 뼈가 마르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면 가만히 계시지 않고 더 좋은 것들로 채워 주실 것이다. 아삽의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한다.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 흘림 당한 보수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79:10) 주변의 어떤 이가 주님을 비방함으로 인해 자신이 참기 힘든 상황 가운데 있다면 그 때를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기회로 삼고, 자신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만 바라보며 승리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42:11) 내가 믿는 하나님을 향해 누군가가 비방하는 순간에는 눈물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바라고, 언제나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상한 마음(4)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기대만큼 어떠한 일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이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고 기뻐하며 슬퍼하는 것이 더 아름다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던 지난 날을 회상했고, 지금의 상황을 보며 슬퍼한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42:4) 시인은 과거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한 것을 기뻐했는데 여기서 성일은 안식일을 가리킨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모든 백성들은 이 날을 거룩히 구별해야 했다. 그리고 무리는 원어로 <@/mh;: 하몬>인데, ‘많은 수의 군중,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시인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일에 많은 수의 군중과 동행하며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던 것을 회상했고, 현재의 모습을 슬퍼한다.

또 성경의 다른 인물들은 언제 슬퍼했는가? 예레미야는 타락으로 인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4:1) 또한 한나는 슬피 울며 기도한다. 그녀는 아이를 갖지 못해 슬퍼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엘리 제사장은 술취한 줄로 오해했지만 한나는 엘리 앞에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삼상 1:15-16)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목격하게 되거나 자신의 마음 속에 원통함이 생기면 슬퍼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이 생길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자신이 슬픈 마음이 들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는 자들은 그 분께 모든 것을 토해 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62:8) 피난처가 되시는 살아계신 주님이 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이 땅에서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고단하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눈물을 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과 하나님 나라의 삶을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16:25) 내가 겪는 일로 인해 마음이 상할 때 주님께 모든 것들을 아뢰어 드리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천국을 소망삼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여전히 주를 찬양(5)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찬양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 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주께서 나를 도울 것을 확신해야 한다. 여기서 낙심하며구부러지다를 뜻한다. 즉 마음이 심하게 눌려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불안해의 의미는 영혼이 성난 파도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낙심하며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의 얼굴을 구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확신하며 언제나 주를 높이고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과 환경이 내게 다가오더라도 주님을 찾고 주님을 갈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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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성경: 마태복음 26:31-35

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1. 골프 챔피언 에드 파골

에드 파골은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긴 골프 챔피언이다. 그는 10살 때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그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왼쪽 팔이 20cm나 짧아졌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중에도 앞으로 골프 챔피언이 되겠다는 소망과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그렇게 짧은 팔을 가지고 어떻게 골프를 칠 수 있겠소?’라고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는 할 수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날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더욱 굳게 다짐했다. 그 후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수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난 예고를 하셨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1-5).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6-13). 그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는 음모에 가담했다(14-1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내기를 원하셨다. 가룟 유다에게는 다시 한 번 암시적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떡과 포도주로 성찬을 베풀었다(17-29). 예수님께서는 수난 후에 제자들이 흩어지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셨다(30-35). 그 후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어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36-46). 드디어 가룟 유다의 밀고로 예수께서 붙잡히신다(47-56). 예수님은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을 받으셨다(57-66). 베드로는 예수님의 심문 현장을 보러 왔다가 발각되자 엉겁결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에 심히 통곡한다(67-75).

 

 

3.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31-32)

흩어지리라 예언하심

우리는 주를 믿는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를 버리고 흩어질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셨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무리들은 음모를 꾸몄고 그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를 통해서 주님은 잡히신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라 하였느니라.”(26:31)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미리 아셨고, 가슴 아픈 소식이지만 이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신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이 말씀 후 베드로는 주님께 그리하지 마실 것을 말하며 항변했지만 예수님은 그 말을 물리치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밤 잡히시게 된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중에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확신하시며 담대하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환난은 찾아 올 것이다.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며 서로 잡아 주는 일들이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24:9-10) 우리는 주 안에서 확고한 믿음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며 죽기까지 주를 좇아 살아갈 것을 다짐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17:5)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주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아나리라 말씀하심

우리는 주님께서 살아나셨음을 확실히 믿고 살아가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갈 것을 말씀하신 후, 긍정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던지신다. 자신은 잡히고 제자들은 흩어지게 되는 절망의 상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다시 살아난 후 갈릴리로 먼저 가 있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2) 예수님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부활하셨고 제자들은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주님은 죽으실 뿐만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20:19) 채찍질 당하며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실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제자들은 잘 깨닫지 못했었다.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였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18:33-34) 제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아직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을 때 천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천사들은 무서워하는 여자들을 진정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28:6-7) 주님이 누웠던 곳은 비어 있었고 우리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33-35)

주를 버리지 않겠다 말하는 베드로

우리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믿음이 있는가?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떠날 것을 말씀하셨던 예수님께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그의 확신에 찬 믿음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지 않았을 때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를 믿는 믿음도 끝까지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늘 주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16:18-19) 우리 모두가 겸손한 자들이 되고 겸손한 자들과 함께 하는 복된 길을 걸어가야 한다.

자신의 마음만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행하여 주님의 은혜를 입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28:25-2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주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119:116-117) 내가 소유한 믿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임을 잘 깨닫고, 주의 말씀을 사랑하여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누가 붙잡아 주셔야만 주 안에 서 있을 수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셔야만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담대하게 주님께 대답했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26:34) 베드로는 목숨조차 주를 위해 버릴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진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13:38)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는 나의 강점과 약점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을 인정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자들을 붙잡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인하지 않을 것을 말하는 베드로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을 지키며 주와 동행해야 한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이 자신을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자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26:35) 하지만 제자들이 주님을 떠나갔음을 성경은 잘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또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주님 앞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며 믿음을 잘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의 힘으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주님의 제자들로서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믿음을 잘 지키어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즉각적 회개를 하는 베드로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주님을 좇아야 할까?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26:74) 믿음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순간에도 변치 않는 믿음이 참 믿음이다. 목숨을 걸고 믿는 믿음이라야 참 믿음이다. 베드로는 순간적인 위기의식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러나 곧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통회하고 자복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6:75) 우리는 잘못을 아는 순간 즉각적으로 회개했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며 도전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하나님께 아뢰어 드리고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 앞에 나아가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이 땅 가운데서 주와 동행하는 복을 누려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3)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를 위해 중보하고 계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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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2. 16. 13:13

주의 자녀로서 인내하라!, 전도서 7:8-10

말씀: 주의 자녀로서 인내하라!

성경: 전도서 7:8-10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감사

알렉산더 화이트목사님은 항상 무엇에든지 감사하는 분이었다. 그는 주일이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 후 설교를 시작했다. 그가 있는 곳은 다행히 날씨가 항상 좋았다. 그러던 어느 주일 갑작스럽게 폭풍우가 몰려왔다. 한 성도는 목사님은 오늘 같은 날에 과연 뭐라고 말씀하실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때 화이트 목사님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같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험악한 날씨를 매일 주시지 않음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 감사의 고백을 하는 우리의 삶이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전도자

인생이란 무엇인가? 본장부터는 허무한 인생 속에서도 나름대로 보람 있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교훈적 형식으로 언급한다. 전도자는 젊은 시절에 인생의 허무함을 몸소 경험한 후에 신앙을 회복했다. 그는 하나님의 참된 지혜를 소유한 인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제시한다. 특별히 본장은 솔로몬이 자신이 장년 시기에 저술한 잠언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잠언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어떤 행위에 대해 상대적인 관점에서 표현한다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저자는 보다 나으니라는 비교급의 형식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만 참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전반부(1-14), 중용에 대한 성경적 시각을 분명히 드러내 주는 중반부(15-18), 말씀을 의지하던 지혜자의 능력과 인간의 부패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후반부(19-29)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지혜로운 삶을 살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지혜이다. 하나님 중심의 지혜는 인본주의적 지혜와는 달리 우매한 것보다 월등한 우월성을 지닌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지혜를 근거로 신중하게 살아가야 함을 전도자는 역설한다.

 

3. 겸손함과 인내(8)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7:8) 일은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더 좋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보다는 참는 마음이 낫다. 여기서 낫고좋다, 유익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 또는 사람에게 선이나 기쁨을 만들어 주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익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싫어하시고 겸손한 마음을 기뻐하신다. 솔로몬은 이런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다. 우리도 누구를 대하던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겸손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솔로몬은 잠언에서 교만의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13:10) 교만의 끝은 다툼이 일어날 뿐이다.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권면을 듣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잠언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28:25) 욕심이 많은 자는 말썽을 일으키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로서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혼이 천국 가는 복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힘써 주님을 좇아야 한다. 우리는 인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21:19) 우리는 믿음을 가진 자로서 세상 가운데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세상의 다양한 시험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10:36) 성령님을 의지하여 겸손함이 넘쳐나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노하기를 더디 하고(9)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성급하지 않아야 한다. 주 안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결단코 조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우둔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일을 빨리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일의 시작보다 그 끝이 중요함을 알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세상을 사는 지혜는 급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급한 마음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며 노를 발하게 하고, 일을 그르치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렇게 살아가지 못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에 변화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솔로몬은 노하지 말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7:9) 노하는 것은 우매한 자들의 태도이다.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멋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노를 발했던 몇몇의 인물들이 있다. 가인은 자신이 드린 예물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자 심히 분해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인에게 왜 안색이 변하느냐고 물으셨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4:5-6) 가인은 분한 마음을 야단치셨던 하나님 앞에 화가 났고 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또한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자 매우 노했다. 화가 난 하만은 유대인들을 다 멸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3:5-6) 하지만 에스더는 믿음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서 사정을 고했다. 결국엔 노를 참지 못했던 하만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그는 나무에 달려 목숨을 잃게 되었다.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잠언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14:17) 성급히 노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일을 행하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명철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14:29) 분은 다툼을 일으키고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할 것이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15:18) 또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가 용사보다 나음을 깨닫고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 우리는 빨리 듣고, 느리게 말하며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1:19)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나쁜 감정과 좋지 않은 생각을 말로 뱉어냄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힘들다. 그러나 성령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 쓸 때에 주께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들로 우리를 바꾸실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들로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지혜자(10)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자들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많은 세월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잠시 동안 이 땅에서 살아간다. 연약한 인간들은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감사의 고백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이 세상 가운데서 불평하며 죄를 짓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월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7:10)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감사해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많다.

성경은 죄악 된 인간을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인간의 악함을 시편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14:2-3) 인간은 다 죄 아래에 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혀는 속이기를 힘쓴다. 인간의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율법 아래 놓인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다. 바울은 죄 아래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3:9-10)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혜를 소유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3:18) 지혜는 그것을 얻는 사람에게 생명의 나무이다. 우리는 그 지혜 얻기를 사모해야 한다. 지혜는 병기보다 낫다. 한 사람의 지혜는 성읍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솔로몬은 지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다마는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 말이 신청되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한 죄인이 많은 선을 패괴케 하느니라.”(9:15-18) 우리는 조용한 지혜자의 말이 어리석은 임금의 큰 소리보다 나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정직한 자들이 되어 구한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잠언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2:7) 우리는 은혜를 주시며 힘과 방패가 되어 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의 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주신 지혜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인내로서 승리

전도자는 죄악 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허무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없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며,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의 자녀로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고, 시험과 환난을 인내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복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시편기자는 자비와 은혜가 넘치시는 여호와께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103:8)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의 모든 상황을 맡겨 드려야 한다. 주님은 인내하는 자를 복되게 여기시는 좋으신 분이다.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5:11) 우리는 욥의 인내에 도전을 받아야 한다. 욥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 내가 겪는 고난이 크다고 생각 되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과정을 통해 를 단련하신 후에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와 동행 하게 될 것을 기대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22) 우리는 주의 자녀로서 인내해야 한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동안 잘 인내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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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믿음을 가지고 견고하게

성경: 베드로전서 5:5-10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5: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 여우 한 마리

며칠 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여우는 산비탈을 지나다 포도밭에 새까맣게 잘 익은 포도송이를 보게 되었다. 배고픈 여우는 포도를 보고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래서 그 포도를 따먹기 위해 발돋움을 해보았지만 키가 닿지 않았다. 여우는 펄쩍 뛰기도 하고 저만큼 가서 달려오다가 힘껏 뛰어오르기도 했지만 키가 닿지 않았다. 그러자 여우는 원망스럽게 포도송이를 바라보다가 침을 탁 뱉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까짓 것 안 먹고 말지! 벌레 먹고 시기만 한 걸?’ 여우는 불평을 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일을 대할 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훈련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장차 영광에도 참예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한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닮아 겸손함으로 주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권고한다. 본장은 그리스도인들의 협동적인 훈련과 개인적인 훈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장로들은 무리를 돌봐야 하는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저들의 영혼을 살펴야 한다.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하며 양쪽 모두는 겸손의 은혜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하는 유일한 올바른 태도이다(1-6). 신자는 자신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하며 원수인 마귀의 악한 계교에 대해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고난의 주제를 다시 상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목적은 오직 고난 받은 자로 하여금 미래의 영광을 쌓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7-11). 끝으로 저자는 자신의 동역자인 실라와 바벨론의 교회와 마가의 인사를 전한 후 간단한 축사로 서신을 맺는다(12-14).

 

3. 겸손함으로(5)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서로를 대해야 할까? 순종과 겸손의 모습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베드는 이렇게 권면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여기서 허리를 동이라옷을 매어 입다라는 뜻이다. 이는 어떤 일을 바로 실행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적극적인 태도로 겸손으로 옷 입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3:12)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을 입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 입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는 무엇으로 옷 입기를 결단할 것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소망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4) 우리는 정욕을 위해 살아가지 말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주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면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낫게 여겨야 한다. 어떠한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2:3)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겸손의 모습으로 서로 사랑으로 행하며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때가 되면 높이심(6)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어떠한 복을 주실까?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진다면 때가 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여기서 높이시리라는 남들 앞에서 고귀한 자로 선포하고 숭앙을 받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겸손할 때에 주께서 우리를 고귀한 자, 높임을 받는 자로 세우실 것이다. ‘는 낮아지기 위해 힘써야 하는가, 아니면 높아지기를 위해 힘써야 하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23:12) 주께서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이는 분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이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잠언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29:23)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겸손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야고보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10) 우리가 주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된다면 주님은 우리를 반드시 높이실 것이다. 주 앞에서 겸손한 자들이 되어 주님의 은혜를 입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맡기라(7)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신 안에 있는 염려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권면한다. 우리의 염려는 죄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 해 주심으로 모든 염려와 근심을 없애주신다. 주님은 우리의 사망의 문제와 모든 질병과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 해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주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개역한글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여기서 권고하심이란 관심을 가지고 돌봄, 그리고 조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자신의 염려를 주께 맡길 때 주님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시고 조언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것조차 염려해서는 되지 않는가? 예수님은 염려에 대해 이렇게 명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6:25) 예수님은 의 목숨과 몸을 책임져 주시는 좋으신 주님이 되시므로 우리는 염려를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육신을 위해 무엇으로 채울까 염려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또한 예수님은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6:34)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깨어라(8)

주 안에 있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는 무엇을 하고 다니는가? 우리는 마귀는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여기 저기 사자처럼 다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여기서 근신하라는 원어로 <nhvyate: 넵사테>이다. 이는 근신하다, 절제하다, 경계하다라는 뜻으로 희미한 정신 상태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에 굳게 서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근신하고 절제하고 경계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귀가 공격해 올지라도 결코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무엇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은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를 경계할 것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21:34)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 주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은 주님 밖에 있는 자들이 영영한 불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신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25:41) 왼편에 있는 자들은 마귀를 위해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바울은 낮에 속한 자들로서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근신하고 깨어 있어 주님께 기쁨이 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고 늘 깨어 있어 마귀의 일들을 잘 분별하며 믿음생활에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7. 믿음을 굳건히 하여(9)

우리는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을 굳건히 해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을 굳건히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9)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고난이 있음을 인정하며 결코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11:33)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갔던 의인들은 믿음으로 승리했고,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고, 믿음으로 사자로부터의 공격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2)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세상 가운데서 환난을 당할 지라도 결코 승리 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이 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 우리가 주를 붙잡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하실 것이다. 주 안에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은혜의 하나님(10-11)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은혜의 주가 되신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 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 5:10-11) ‘를 부르신 주님께서 잠시 고난을 당하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여기서 온전하게는 어떤 일이라도 잘 수행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가 되게 함을 의미한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실 때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은 가볍고, 주께서 베풀어 주실 영광은 무거움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또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138:7) 하나님은 우리를 소성케 하시며,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건져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과 환경 가운데 처하던지 언제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를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견고하게 세워져 가는 믿음의 사람, 믿음의 가정, 믿음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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