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0. 26. 15:35

여호와께 돌아와 아뢰는 자!, 호세아 14:1-3

말씀: 여호와께 돌아와 아뢰는 자!

성경: 호세아 14:1-3

14:1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

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

14:3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1. 자비

색슨 왕국에서 반역도들의 난리가 일어났다. 임금은 직접 군대를 끌고 나가서 반역의 평정을 위하여 싸웠다. 마침내 반역도들을 퇴치하고 평화를 이루어 놓았다. 승리를 거두고 왕궁으로 돌아온 임금은 한 가지 특별한 일을 명령했다. 왕궁의 정문에다 촛불을 켜 놓은 동안에 반역 음모에 가담했던 사람은 누구든지 자수를 하면 용서해 주는 특혜였다. 훌륭한 임금이었기 때문에 자비를 베푼 것이었다. 그러나 한 자루의 촛불이 타고 있는 동안에 한해 기회를 준 것이었다. 모든 일에 기회가 있는 것처럼 용서, 사랑에도 기회가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회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명하시면서 그들이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그들의 이슬이 되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그들로 축복의 열매를 맺게 하실 것을 의미한다. 본장은 회개를 촉구하는 전반부(1-3)와 이스라엘의 죄악이 치유됨으로 번영과 축복을 누릴 것을 예고하는 후반부(4-9)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호세아 선지자의 마지막 외침을 거절하여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

 

3. 돌아오라(1)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있는 주의 백성들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 있는 주의 백성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본문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언한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네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졌느니라.”(14:1) 여기서 엎드려졌느니라는 원어로 <lv'K;: 카솰>이다. 이는 비틀거리다, 기우뚱거리다는 뜻으로 몸이 약하거나 대적자로부터 도피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셨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는 살게 된다. 자신 안에 있는 우상을 버리고 주께로 나아가는 자는 복 받은 자이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무엘이 이스라엘 온 족속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삼상 7:3-4) 이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늘을 다스리는 풍요의 신이었던 바알 신을 섬기기도 했었는데, 사무엘은 이러한 행동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명했다.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이 우상 숭배에서 돌이키고 그 분만을 예배할 때 기뻐하신다. 바로 지금이 하나님을 찾을 때임을 잘 깨닫고 여호와께로 돌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내가 속한 가정, 학교, 나라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에 속해있다면 우리는 금식하며 회개해야 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2:12-13) 우리가 마음의 중심을 다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갈 때, 주께서 마음을 돌이켜 주실 것이다. 우리는 가증한 것들을 버리고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아 네가 돌아오려거든 내게로 돌아오라 네가 만일 나의 목전에서 가증한 것을 버리고 마음이 요동치 아니하며.”(4:1)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보다 더 좋아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아뢰어라(2)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서 돌이킨 주의 백성들이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서 돌이킨 주의 백성들이 자신의 사정을 아뢰기를 바라신다. 본문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언한다.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14:2)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사정을 잘 아뢸 수 있어야 한다. 불의를 제거한 백성들이 마음을 다해 자신의 입술로 주를 높일 때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불완전한 인간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연약하여 죄를 범했고,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찾아와 죄를 지적한다. 그들의 대화는 이렇다. “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 12:13)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즉시 회개했고,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받아주셨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허물을 아뢰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했던 다윗은 마음에 죄의식을 느끼고 자책하여 자신의 죄를 회개한다. 다윗이 인구수를 조사한 후에 그 마음에 자책하고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여호와여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삼하 24:10)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이 전심으로 회개할 때 죄를 사해 주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뿐만 아니라, 주의 자녀가 구하는 것들에 대해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7:11)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께 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형편과 삶의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고, 삶 가운데서 감사함으로 주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69:30-31) 자신의 문제와 상황을 주님 앞에 솔직하게 아뢰어 드리어, 영과 육이 형통케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긍휼을 구함(3)

하나님은 죄악 가운데서 돌이킨 주의 백성들이 무엇을 고백할 때 기뻐하시는가?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이 당신만을 의지하며, 그 분 앞에 겸손한 태도로 나아와 긍휼을 입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본문에서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언한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14:3) 한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를 의지했었고 자신들의 힘을 의지했다. 하지만 이러한 마음의 태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옳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긍휼히 여김을 받는 자, 불쌍히 여김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막강한 국력을 가진 나라와 그들이 섬기는 신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것들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한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 손을 드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31:3) 하나님이 손을 들어주시면 승리하게 되며 하나님 편에 서는 자는 안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왕 되신 예수님 앞에 만물은 꿇어 엎드려야 하며, 빛이신 주께서 오시면 모든 어두움은 떠나가야만 한다. 주님의 날에 가증한 우상과, 더러운 원수는 완전하게 제거 되고 말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13:2) 우리는 주님 오시는 그 날 까지 악을 멀리하고, 겸손한 자들이 되어 주의 긍휼을 입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승리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146:9) 악인에게 복 주시지 않으며, 연약한 자를 붙들어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146:3)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참 의지의 대상이 되시는 분은 오직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나의 피할 바위가 되심을 고백하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자비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죄와 죄의 오염을 제거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우리 하나님 한 분이시다. 죄 가운데 있는 나의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이 은혜 주시면, 돌이키고 회개하여 주 안에서 평안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의 형편을 바라보지 말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이 있는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한다. 오직 주님의 이름을 자랑하고 그 분만을 온전히 신뢰하며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20:7-8)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자, 그는 살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분께 아뢰는 자는 주의 인도함을 받는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12:6) 언제 어디서나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께 돌아와 아뢰어 긍휼함을 입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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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부활의 예수님을 소망 삼고

성경: 베드로전서 1:3-9

1: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1:4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1:5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1: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1:8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1:9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1. 정체성

어느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정체를 주제로 한 수업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한 흑인 소년에게 물었다. ‘조니, 우린 지금 정체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어요. 너는 누구지?’ 그러자 소년이 대답했다. ‘, 저의 이름은 조니입니다. 저는 흑인이며 좋은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쓰레기는 만드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조니는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작품인 나는 어떠한가? 주님이 만드신 작품인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뻐할 수 있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며 주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주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믿음과 소망

본장은 베드로 사도가 흩어져 있는 성도들에게 보낸 서신의 앞부분이다. 베드로는 앞으로 닥치게 될 믿음의 시련을 지혜롭게 극복하도록 격려하는 내용을 언급한다. 그런데 베드로의 이러한 권고는 당시 성도들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적용되는 삶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먼저 문안 인사를 한 후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복음의 축복을 선포한다. 미래의 구원의 소망은 현재의 고난과 시련을 능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한다. 그리고 이 고난은 믿음을 정금같이 단련시켜서 미래의 구원을 확실하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해준다(1-12). 믿음과 소망 중에 거하는 성도들은 개인적인 정욕을 좇지 말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13-16).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모가 아닌 삶의 열매로 판단하신다는 사실과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근거해서 성도들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한다(17-21). 구원받은 성도들은 피차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22-25).

 

3. 부활하신 예수님(3)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를 소망 삼아야 하는가? 베드로는 긍휼이 많으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도록 역사했다고 증거한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산 소망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에 대한 소망을 가리킨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삶의 소망이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은 고난 중에 처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내의 근거가 된다. 베드로 사도는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 1:3) 우리는 삶의 소망이 되시는 부활의 주님께 감사하고 그 분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해야 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삼 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 바울은 이렇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20)

부활은 무엇인가? 부활은 Resurrection [] ajnavstasi"(anastasis)이다. 이는 다시는 죽을 일이 없는 썩지 않을 영체로 다시 살아나는 일이다(6:9, 고전 15:42-54). 우리 예수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고전 15:12-16). 예수님은 자신이 죽은 후 다시 사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16:21, 17:9, 23, 20:19, 27:63). 예수 그리스도를 장사한 무덤은 비어 있었고(24:1-9),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20:19-29, 고전 15:58).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리스도이신 것을 증명한다(1:4).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십자가 위에서 속죄의 완성이다(2:32-36, 4:25). 우리는 부활의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5:10)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그 분을 소망 삼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믿는 자들이 받을 유업(4)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어떠한 유업을 주시는가? 거듭난 자 즉 산 소망을 가진 자는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받게 된다. 이 기업은 이 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 이 기업은 우리의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선물이다. 베드로 사도는 고백한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4) 우리는 주 안에서 유업을 잇는 자들임을 기억하고 하늘 소망을 가지고 승리해야 한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양 무리의 본이 되라고 권면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4) 하나님은 천국을 소망삼고 주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자들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오실 때 죽은 사람은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산자 또한 변화 할 것을 말한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고전 15:52-54) 주님께서 오시는 날에 승리가 죽음을 삼켜 버렸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 질 것이다. 주님이 오시는 날에 믿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25:34)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의 모든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고, 용서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유업으로 받고, 이 땅에서도 산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보호함을 받는 그리스도인(5)

그리스도인은 누구의 보호를 받게 되는가?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붙잡아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가 하면 끝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의 생명에도 끝이 있다.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겪게 되는 여러 가지 고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난은 하늘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터널과도 같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신자들의 믿음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때 우리는 이 좁은 길을 기쁘게 걸어 갈 수 있다. 우리는 주 안에서 믿음으로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는 자들에게 보호하심이 있음을 고백한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벧전 1:5) 여기서 예비하신은 원어로 <eJtoivmhn: 헤토이멘>이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와 보존의 행위 특히 구원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된다.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신자들이 끝까지 구원을 지키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예수님을 믿게 되면 받게 되는 복은 무엇인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심판에 이르지 않게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한다. 다음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우리는 주님이 주시는 물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임을 경험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고 붙잡아 주시는 분은 누구신가?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는 분은 우리 주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37:23-24)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들어 주시면 주 안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됨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믿는 자들 안에서 일을 행하시며 그 일을 완성하실 주님을 신뢰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 주님께서 끝까지 구원을 이루어 가실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맡기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고난 가운데 주를 의지함(6)

우리는 자신에게 큰 고난이 닥치게 될 때 누구를 의지해야 하는가? 우리는 고난 앞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인간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신앙이나 인격의 참 모습이 드러난다. 평소에는 잘 구분할 수 없으나 극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참과 거짓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 우리는 고난이 다가올수록 주 안에서 확고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믿음은 시련을 극복할 뿐 아니라 영혼을 구원한다는 것을 깨닫고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영혼이 구원받는 복을 누려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근심하는 것은 잠깐이고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근심을 주는 환경이 있을 때 오히려 믿음으로 기뻐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기적적으로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녀는 기도에 응답해 주신 여호와를 즐거이 외치며 기뻐한다.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삼상 2:1)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 받게 되는 핍박이 있을 때에도 기뻐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5:12) 언제나 우리가 예수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나아가면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큰 믿음을 가지고 고난 가운데서도 주를 의지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기도로 영적 돌파를 하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확실한 믿음(7-9)

우리가 주를 믿는 확실한 믿음을 가질 때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는 끝까지 인내하여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7-9) 우리는 자신이 겪고 있는 고난이 크게 느껴질지라도 마음을 연단하시며 나를 주의 도구로 사용하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17:3) 바울은 주께서 참고 선을 행한 자에게 좋은 것으로 베풀어 주시는 분임을 말한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2:7) 우리는 영생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믿는 자들에게 유업을 주실 예수 그리스도, 끝까지 우리의 구원을 보호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해야 한다. 예수님을 최고로 사랑하기 때문에 고난 가운데서도 인내하며,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 믿음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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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9. 12:10

주를 송축하는 삶, 시편 103:1-6

말씀: 주를 송축하는 삶

성경: 시편 103:1-6

103: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103: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03: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103:6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1. 감사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죤 하갈의 이야기이다. 그는 목회자가 되려고 준비하던 기간에 쓰디쓴 고통을 맛보아야 했다. 그의 아들이 1950년에 뇌성마비로 갑자기 쓰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아들의 병으로 인해 감사합니다. 이 일로 인해 주님은 나를 겸손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과 내 아들처럼 병고에 시달리는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랑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로 인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후로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주 안에서 어떠한 환경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2. 다윗의 시

이 시는 다윗의 찬양 시로 문학적 가치와 채용이 풍성한 주옥같은 시이다. 밝고 힘찬 분위기가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다윗 시의 진수를 보여 준다. 그 내용은 찬양, 죄 사함,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왕권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주된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기쁨 어린 찬양의 권면이다. 이 시는 설명과 이해보다는 여러 번 반복하여 읽고 암송하면서 음미해야 할 시이다. 본시는 다윗의 찬양 시로서 문학적 가치나 내용이 전체 시편의 백미로 꼽힐 만큼 뛰어나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의 능력 있는 통치, 그리고 인간의 죄에 대한 고백과 찬양 등이 나타나 있다. 이 시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권면한다(1-2). 그리고 그 찬양을 통해 나타나는 개인적 축복(3-5)과 민족적인 축복 (6-19)을 다루고 있다. 더 나아가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인간에게만 국한 시키지 않고 천군과 천사에게로 확대시키고 있다(20-22).

 

3.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1-2)

거룩한 이름을 송축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분은 누구인가? 어떤 이도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다.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실 수 있다.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하나님을 송축하는 삶은 최고로 멋지고 아름다운 삶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송축하기를 바란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103:1) 여기서 내 속에 있는 것들은 지, , 의를 포함한 전인격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다윗은 전인격을 다해 여호와 하나님을 송축하기를 원했다. 우리 하나님은 누구신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 지어다.”(47:7)

주님이 만나주시면 우리는 반드시 영적인 만족을 얻게 될 것이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내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63:5) 우리는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주를 바라고,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영적인 은사들에 대해 권면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고전 14:15) 우리는 영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영과 마음으로 주를 찬미하는 큰 믿음을 가져야 한다. 늘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승리해야 한다. 주님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4:24) 영이신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고, 거룩하신 주님의 이름을 언제나 송축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은택을 잊지 말고

우리는 누구를 송축해야 하나?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주를 송축할 것을 바라고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택을 잊지 않기를 원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2) 여기서 잊지 말지어다는 히브리어로 잊다를 뜻하는 <hk'v;: 솨카흐>이다. 이는 상대방의 선한 호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주를 송축하며 주께서 베풀어 주신 선한 호의를 무시하지 않기를 원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잘 섬겼던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잊자 하나님의 진노가 유다에 임하게 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대하 32:25) 하나님의 진노 후 히스기야 왕은 회개했다. 우리는 하나님께 잘못한 것을 늘 회개하고 주님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116:12)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의 신분은 어떠했는가? 하나님의 언약과는 무관한 소망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 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2:11-13) 예수님의 은혜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이 지은 큰 죄, 작은 죄를 모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받고 그 분을 찬송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이사야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63:7)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고, 주께서 베푸신 은택을 잊지 않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은혜 주시는 하나님(3-4)

고치시는 주

주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가? 인간의 죄를 사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오직 주님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는 못 고치실 병이 없다. 은혜의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시며 병을 고치시는 분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103:3) 여기서 은 원어<!yaWlj}T': 타할루아임>은 육체적인 질병을 뜻한다. 우리 주님은 못 고칠 병도 없으신 분이다. 자신이 가진 병을 하나님께 의탁하여 간절히 기도한다면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치료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치료자가 되시며 구원자가 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는 죄를 범하자 불 뱀을 통해 벌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뱀들을 떠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 뱀을 쳐다본즉 살더라.”(21:7-9) 백성들 중 놋 뱀을 쳐다 본 자들은 살게 되었다. 예수님은 주님을 바라보는 자들을 살리는 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는 영혼이 살게 되는 역사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주께서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주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음을 믿어야 한다. 이사야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주님의 은혜로 내가 구원받았고 주님의 은혜로 내가 나음을 입게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죄를 사하실 권세도 있으시고 병에서 자유하게 하시는 유일하신 능력의 주님이 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2:10-11)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문제는 해결된다. 예수님의 은혜로 죄 사함 받고 영혼의 자유를 누리며, 예수님의 은혜로 문제를 해결 받아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승리해야 하나?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 후 우리에게 주실 면류관을 바라보며 승리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103:4) 여기서 파멸은 원어로 <tj'v': 솨하트>이다. 이는 지옥또는 멸망으로도 번역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멸망에 이르게 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다윗은 생명을 회복이 불가능한 멸망에서 건져주시고 긍휼의 관을 씌우실 주님을 높인다. 우리 하나님은 나를 구속하신 분이고 믿음 안에서 인내로 승리한 자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주께서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원수에게서 건져 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거센 파도를 지나는 배의 항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믿음을 가지고 주를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믿고 승리해야 한다.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12) 주 안에서 시험을 이기며 예수님만 바라보고 승리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새롭게 하시는 주

부족한 우리는 주님 앞에서 어떻게 힘을 얻게 되는가? 우리는 주께서 함께 하실 때 불가능한 일이 하나도 없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롭게 하실 때 우리는 담대하게 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103:5) 여기서 좋은 것은 원어로 <b/f: 토브>이다. 이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된다. 다윗은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시키실 주님을 높인다. 우리는 주께서 믿는 자들을 도와주실 때 독수리 같이 날아오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할 때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은 좋은 것으로 영혼을 만족케 하실 것이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107:9)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며 하나님을 앙망하여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40:31)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새 힘을 주셔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게 하실 주님을 송축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좋으신 주(6)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주가 되신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103:6) 우리는 공의로우신 주, 우리를 자유하게 하실 주를 날마다 송축해야 한다. 또한 환경을 보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연약한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유라눈 하나님 밖에 있는 부유함도 의미가 없음을 기억하며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야고보 기자는 부한 자들의 슬픔을 이렇게 기록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꾼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연락하여 도살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지게 하였도다. 너희가 옳은 자를 정죄하였도다. 또 죽였도다.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5:1-6)

우리는 주를 믿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주님만 바라보고 인내하며 승리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아뢰어 드리어 응답받아 승리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궁핍한 자의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도움이 없는 가난한 자도 건지며.”(72:12)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반드시 도와주시는 분이이심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이 도우시면 우리는 안전하게 된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12:5) 나의 모든 상황과 형편을 알고 계시고 나를 건지실 능력이 있으신 주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좋으신 주님을 송축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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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14. 17:25

주님처럼 사랑으로, 골로새서 3:12-17

말씀: 주님처럼 사랑으로

성경: 골로새서 3:12-17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 건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라고 했던 나풀레옹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는 비통한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것은 힘을 기초로 해서 천재의 창조를 쌓았던 것이므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역사는 어떠한가? 우리 예수님은 그의 제국을 사랑 위에 건설했다. 그리고 지금도 수천만의 사람들이 그의 이름으로 죽으려 한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며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신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 성도가 추구해야 할 것

바울은 주 안에서 믿는 자들이 추구하며 행해야 할 삶의 양태와 목적에 대해 교훈한다. 그것은 육체를 좇는 땅의 것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 법은 그리스도의 새 계명, 즉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러한 사랑 실천의 실제적인 면을 들어 가정과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된 자임을 강조하는 교리적인 가르침이 본장에서부터는 윤리적인 권면과 지시로 분위기가 바뀐다. 본장에 나타나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비유는 로마서의 첫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비유와(5:12-21) 밀접히 연관된다.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의 변화는 언제 일어날까? 이는 불순종하고 무기력한 첫째 아담의 존재 방식을 버리고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힘입을 때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이 최초에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장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된다. 첫째 단락에서 바울은 사람의 새 목표가 무엇이며,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하여 역설하고 있다(1-11) 둘째 단락에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새로운 성품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12-17), 셋째 단락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각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가져야 할 행동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18-25). 

 

3. 옷 입고;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12)

우리는 믿는 자로서 무엇으로 옷 입은 삶을 살아야 할까?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3:12) 바울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로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여기서 택하사의 의미는 원어로 <ejklektoi;: 에클렉토이>이다. 이는 제비를 뽑는 것과 같은 우연한 것이 아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지에 따라 뽑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로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창세전부터 선택 받고 주님과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자가 바로 주님을 영접하고 살아가는 임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바울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믿는 자들을 정했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 입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불만이 있거든; 용납, 용서(13)

믿는 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바울은 불만이 있을 때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할 것을 말한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3:13) 우리는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내 죄가 깨끗해졌음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11:25) 우리는 주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되,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자들로서 주님 앞에 아뢰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용서하되, 예수님 앞에서 서로 용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고후 2:10)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사랑; 온전하게 매는 띠(14)

믿는 자들은 또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바울은 용납과 용서를 하는 삶을 살아가되,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권면한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4) 누군가를 향한 용납과 용서는 결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모든 좋은 것들을 행하되 사랑이 기초가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의가 나타날 수도 있고, 완전한 용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아가페의 사랑으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어떠한 문제라도 문제가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7) 경건한 삶,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삶, 그 위에 사랑을 더하여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으로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허물은 주의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한다. 온전하게 매는 띠인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장: 그리스도의 평강(15)

믿는 자들은 무엇이 자신을 주장하게 해야 할까? 바울은 예수님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3:15) 여기서 평강은 상황적인 조건에 관계없이 항상 편안하고 자족하는 영적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우리의 환경과 상황과 무관하게 주어지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수님의 평강이 내 삶에 늘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우리는 주님이 주신 평강을 받아 누리며, 두려운 마음을 밖으로 던져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또 이렇게 권면한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20) 우리 모두가 주님이 주신 평강 안에서 두려움을 멀리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풍성한 말씀 가운데; 권면, , 찬송, 신령한 노래, 감사의 마음(16)

우리의 삶 가운데 무엇이 풍성해야 할까? 세상의 지식이나 자신의 경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바람직한 삶이 아니다. 돈과 명예와 부귀는 우리에게 만족함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후에는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삶을 망가트리게 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울은 삶 가운데 풍성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3:16) 우리의 삶에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와 찬양, 신령한 노래, 감사가 넘쳐나서 날마다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한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47:6-7)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늘 왕이신 주님을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17)

우리는 주 안에서 좋은 것들을 행하되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한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3:17) 말과 일에 있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있던 에게 빛으로 찾아 오셔서 구원하신 주님을 높여드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주의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임을 기억하며 승리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 어떠한 형편에서도 깊고 넓고 크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에게 행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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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9. 07:34

기다림.

기다림.

(바른성경) 유다서 1: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고,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려라.

주의 사랑에서 자기를 지키고, 영생에 이르도록 예수님의 긍휼을 기다리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유다서 1:21 Keep yourselves in the love of God, looking for the mercy of our Lord Jesus Christ unto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 유다서 1:21 εαυτους εν αγαπη θεου τηρησατε προσδεχομενοι το ελεος του κυριου ημων ιησου χριστου εις ζωην αιωνιον

(히브리어Modern) 유다서 1:21 ושמרתם את נפשתיכם באהבת אלהים וחכיתם לרחמי אדנינו ישוע המשיח לחיי העול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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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8. 31. 14:00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 마태복음 9:9-13

말씀: 부르심에 반응하는 삶!

성경: 마태복음 9:9-13

9:9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9: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9:12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9: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1. 병원

병원은 병든 환자들로 가득 차서 그들의 신음 소리와 악취가 나는 곳이다. 그런데 병원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그 분위기를 싫어하여 환자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병원의 가치는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온다 해도 그들을 사랑으로 받아들여 복음을 심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이러한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

본장은 전장인 8장에 이어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과 죄와 죄의 올무에 대한 권세를 가지셨다는 것을 여러 사건을 통해 기록한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요, 인류를 구원하실 참 메시야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과 함께 죄인이야말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을 자이라는 것과 구원에 이를 자가 가져야 할 신앙의 자세를 은유적으로 가르쳐 주고 있다.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를 건너서 본 동네로 오셨다(1). 사람들이 침상에 중풍병자를 메고 오는 것을 보시고 죄 사함을 선포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다(2-8). 예수께서 마태라는 세리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들과 함께 식사를 하셨다. 바리새인들이 비난하자 의원은 병든 자에게 필요하다는 말씀을 하신다(9-13).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의 문제로 예수께 질문하자 예수는 당신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신다(14-17). 또한 야이로의 딸을 살리시고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쳐 주신다(18-26). 그 후 예수께서는 두 소 경을 고치시고, 벙어리를 고치시고, 회당에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27-38).

 

3. 부르시는 예수님(9-11)

예수님은 어떠한 삶을 사셨는가? 예수님은 세리나 창기, 가난하고 병든 자들과 같이 사람들이 멸시하거나 가까이하기 싫어하는 이들과 같이 지내며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구원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심령이 가난하고 죄에 억눌려 신음하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셨다.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한다면 자기를 의롭다 생각하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의 죄를 자복하며 마음을 비우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마태를 부르신 예수님

예수님은 12제자 중 1명에 속했던 마태를 부르신다. 마태는 세리였는데 그의 사회적 신분과 무관하게 예수님은 마태를 부르셨다. 그 당시 세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죄인이었던 마태를 부르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 부르심 앞에 마태는 예수님을 따르며 주님의 제자가 되었다.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9:9) 마가복음에서는 마태를 레위라고 기록하며 부르심의 장면을 소개한다. 예수님은 세리 레위를 부르며 자신을 좇으라고 말씀하신다. “또 지나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저에게 이르시되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2:14)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거부하지 않고 바르게 반응한다.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모든 것을 버리고 제자가 되었다. 그 후에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나를 좇으라 하시니 저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좇으니라.”(5:27-28)

성경에는 예수님이 부르셨던 다른 제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이름은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다. 어느 날 갈릴리 해변을 거니시던 예수님은 바다에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신다. ‘나를 따라 오너라.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그들은 그물을 버려두고 주님을 좇게 된다. 잠시 후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신다. 그들 또한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게 된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이 그 부친 세베대와 한가지로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저희가 곧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4:18-22) 예수님의 부르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우리 또한 를 부르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라도 주님을 잘 좇는 복된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하신 예수님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의 소식, 복음을 전파하는 생활을 하시며 누구와 함께 하셨을까?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볼 때 연약한 자들과 함께 하셨다.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도 하시며 사역을 잘 감당하셨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5:29) 세리 레위(마태)의 집에서 큰 잔치를 열었고 다른 사람들과 또 다른 세리도 함께 참석했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았는지라.”(5:29) 예수님은 이방인들과 죄인들도 사랑하셨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하는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원수까지도 사랑하기를 바라셨다. 예수님은 믿는 자들이 이방인과 달라야 함을 말씀하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우리는 죄인들과 즐겨 식사하셨던 예수님, 죄인인 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비판하는 바리새인들

죄인들과 식사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어떠했을까? 이러한 모습을 보는 바리새인들의 시선은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판했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9:11) 죄인들과 함께 했던 예수님을 바라보던 그 당시 사람들의 견해는 이러했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1:19)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이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으로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만 하시는 분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진정한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옳은 일이었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사람들은 죄인의 집을 방문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수군거린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19:7) 하지만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비판하는 자들에게도 예수님은 사랑으로 대하셨다. 예수님과 제자들이 가는 곳에는 큰 무리가 모여 들었는데, 율법만 잘 지키는 삶을 살았던 자들과 종종 변론이 생기기도 했다. 저희가 이에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둘렀고 서기관들이 더불어 변론하더니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심히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9:14-16) 우리는 비판하는 사람들 앞에서도 묵묵히 사역하셨던 예수님을 생각하며, 변론을 즐겨하지 말고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주님의 일꾼들이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예수님이 필요한 자(12-13)

예수님은 병든 자들에게 관심이 있으셨다. 예수님은 왜 어두움에 눌린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을까?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에게 접근한 것은 그들이 고통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구원의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자들은 죄로 말미암아 심한 고통 가운데 있던 사람들이었다. 우리 중에 인생의 고통을 짊어지고 괴로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 있는가?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불쌍히 여기시고 주님은 우리를 찾아오실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마음을 열고 그 고통의 질고를 벗겨 주실 주님을 영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병든 자에게 필요하신 예수님

세리들과 식사하는 자신들을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9:12) 예수님은 병든 자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자유하게 하는 분이시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치유함 받고 자유하게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님께 를 불쌍히 여겨달라는 자세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다. 우리는 주님께 어떠한 자세로 기도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에 대해 말씀하신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1-13) 바리새인은 자신의 옳은 행실을 드러냈고 세리는 자신이 죄인임을 아뢰며 기도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자기 행위의 옳음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달라고 기도했던 세리와 같이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가 주께 범죄 하였사오니 내 영혼을 고치소서 하였나이다.”(41:4) 우리는 의 영혼을 고치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147:3) 예수님은 우리를 고치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신 분이시다. 무리가 알고 따라왔거늘 예수께서 저희를 영접하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병 고칠 자들은 고치시더라.”(9:11) 의 모든 병을 고치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능력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누구를 부르러 오셨는가? 죄인 된 를 부르러 오셨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9:13) 자신의 모습이 의인처럼 보이는 자들은 회개해야 한다. 자기의 의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은 그 의로움을 내려놓고 자신이 얼마나 허물 많은 연약한 자인지 깨달아야 한다. 어느 정도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그들 가운데 단 한번이라도 죄를 지은 자들이 있다면, 그 순간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 중 하나도 죄인이 아닌 자들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보혈만을 의지하고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야만 주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을 찾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우리 가운데 악의를 행하기를 즐기는 자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주님께 긍휼히 여겨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은 일백 마리의 양 중 한 마리가 길을 잃었다면 그 양을 더 소중히 여기며, 한 마리의 양이 돌아왔을 때 더 기뻐한다고 말씀하신다. “너희 생각에는 어떻겠느뇨 만일 어떤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 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 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18:12-13) 우리를 오래토록 참으시고 회개하기를 촉구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잘 깨달아야 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죄인인 나를 불러주신 주님의 사랑에 힘입어 반드시 이 땅 가운데서 주님의 제자로서 살아가면서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5. 구원의 주님

우리 주님은 구원의 주님이 되신다. 우리 중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이 누구인가? 고통 가운데 있는 병든 자만이 예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고통을 받는 자, 삶의 소망이 없어 고통을 받는 자, 사랑을 줄 사람이 없어 고통을 받는 자들, 모두가 우리 예수님이 필요한 자들이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찾을 때 사랑의 예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만나주심을 믿어야 하다. 우리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게 잔치가 열리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7) 예수님께서 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셨음을 믿어야 한다.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19:10) 지금도 죄인을 찾고 계시는 주님의 부르심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 왕 되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이 땅 가운데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동안 믿음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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