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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회개하고 돌이키어, 죽는 인생이 아닌 사는 인생이 되고!

성경: 역대하 33:10-13

대하 33:10절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대하 33: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대하 33: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대하 33: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1.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집시인 스미스는 로드니 아저씨의 개종을 위해 기도하면서 전도할 기회를 기다렸다. 하루는 로드니 아저씨는 스미스의 바지 무릎이 닳은 것을 보고 이렇게 물었다. ‘얘야, 네 옷의 다른 곳은 멀쩡한데 왜 무릎만 헤어졌니?’ 그러자 스미스는 이렇게 답했다. ‘아저씨를 위해 기도를 드리다가 무릎이 닳았습니다. 저는 아저씨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 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아저씨는 스미스를 끌어안았고 잠시 후에는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시인했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사는 것이 큰 복임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불신자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늘 기도하고, 날마다 회개하기를 힘쓰며 주께로 돌이켜 그분과 동행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회개 후 회복

본장은 유다 왕국의 제14대 왕 므낫세와 그의 뒤를 이어 15대 왕이 된 아몬의 통치 행적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므낫세는 우상 숭배로 국가적 재난을 당한 역사의 교훈들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 왕과는 달리 우매한 길을 걸었다. 이러한 므낫세를 이어 왕이 된 아몬도 악을 행하다가 반란으로 인해 죽음으로써 일생을 마치게 된다. 본장은 선왕 히스기야의 치적을 언급한 이전 장과는 상반되게 악한 두 왕 므낫세와 아몬의 악정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먼저 므낫세가 선왕 히스기야와는 달리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 숭배 및 악을 행하는 일에 빠져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1-9절).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바벨론으로 끌려가 환난을 당하자 겸비하여 회개함이 나타난다(10-13절). 그리하여 므낫세는 그 회개의 열매로 우상을 파괴하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는 종교 개혁을 시행하였다(14-17절). 즉 므낫세가 보여 준 신앙적 모습에 관해 언급되어있는 것이다(18-20절). 한편 므낫세를 이어 왕이 된 아몬이 므낫세의 초기처럼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범죄하다가 반역을 당해 죽은 사건이 이어진다(21-25절).

 

3. 여호와의 말씀을 잘 듣는 자가 되고(10)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의 말씀을 잘 듣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자녀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따르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대하 33:10) 여기서 ‘이르셨으나’는 원어로 <rb'D::다바르>이다. 이는 ‘말하다, 책망하다, 선포하다, 훈계하다’를 의미한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는 므낫세와 그 백성들에게 여러 차례 경고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대하 33:10) 므낫세와 유다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서 그분의 말씀을 두려워할 수 있어야 한다. 므낫세 왕은 히스기야 왕의 아들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삶을 살았던 히스기야가 죽자 그 아들 므낫세가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유다 왕이 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5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유다를 통치했는데 20명의 유다 왕 중에 가장 오래 왕위에 앉아 있었다. 므낫세는 선왕 히스기야와는 전혀 다른 악한 길을 걸었다. 왕위에 오른 므낫세는 부친 히스기야의 선한 행실을 본받지 않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죄악을 본받았다. 그러한 결과로 표출된 것이 곧 그의 우상 숭배였다. 그는 심지어 성전 안에까지 온갖 우상을 채웠을 뿐만 아니라 유다 백성들을 이방 신에 빠지도록 유도하여 적극적인 죄악을 저질렀다. 그는 일월성신을 숭배하고 여호와의 전에 단을 쌓고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격발케 했다. “므낫세가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십 이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 오년을 치리하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 부친 히스기야의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숭배하여 섬기며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영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단들을 쌓고.”(대하 33:1-4) 우리는 자신의 삶 가운데 여전히 남아 있는 이러한 우상 숭배를 비롯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제거하고 얼굴을 주께로 돌이키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목을 굳게 하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바란다.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또 선지자로 말미암아 주의 신으로 저희를 경계하시되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의 손에 붙이시고도.”(느 9:29-30) 어느 시대이건 주님을 잘 섬겼던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 다시 죄를 범했고, 그 죄의 결과로 그들은 징계를 받아야 했다. 결국,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을 열방의 손에 붙이셔서 채찍질하셨다. 우리는 불순종, 악한 길에서 돌이키는 것만이 살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대언한다.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에 거하리니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24:4-7) 겸손한 자세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어 그분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말씀을 청종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이 모든 일이 네게 임하여 환난을 당하다가 끝날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그 말씀을 청종하리니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신 4:30-31) 세상의 다양한 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귀 기울이기를 즐기지 말고, 주의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죄에 대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11)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에 대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죄에 대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대하 33:11) 여기서 ‘바벨론’은 고대에 바벨탑이 세워졌던 곳으로 바빌로니아의 수도이다. 므낫세와 유다 백성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우상 숭배의 가증한 행위를 계속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징계를 내리셨다. 그것은 앗수르 왕의 군대 장관들로 하여금 유다를 침략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 일로 인해 므낫세 왕은 사로잡히고 쇠사슬에 묶인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 죄악을 행할 때 이방 나라를 들어 징계의 채찍으로 사용하셨는데, 자기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에게 매를 들 수밖에 없었다. 성경에 등장한 선지자들은 각자의 상황은 달랐으나, 하나님께서 징계하시어 패망한 나라와 민족을 보며 울 수밖에 없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패망한 이스라엘을 보며 고통 속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애 3:7) 우리 또한 이 시대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애통하며 울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시 107:10-12)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며 그분을 거역하여 망하는 인생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존재하시며 이 땅 가운데 가장 높으신 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이스라엘 고관들을 위해 지은 에스겔의 애가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방이 듣고 함정으로 그를 잡아 갈고리로 꿰어 끌고 애굽 땅으로 간지라.”(겔 19:4) 그는 바로느고 왕에 의해 애굽이라는 이방 나라로 끌려가는 여호아하스 왕과 유다 민족의 상황을 보며 매우 슬퍼했던 것이다. 죄에 대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바른 태도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나라와 민족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해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죄악에 대해 무감각하여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지 말고, 죄에 대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12-13)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환난 날에 주님을 불러 건짐을 받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대하 33:12-13) 여기서 ‘알았더라’는 원어로 <[d:y::야다>이다. 이는 ‘직접 보아서 확인하다, 경험을 통해서 깨닫다’라는 뜻이다. 므낫세 왕은 어려움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해서 건짐을 받았고, 그 경험을 통해서야 하나님을 고백할 수 있었다. 일국의 왕이었던 므낫세는 바벨론에 끌려가서 온갖 고통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환난 속에 있었던 므낫세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회개한 것이다. 므낫세는 환난을 당했을 때 그의 조부인 아하스 왕과는 달리 더 이상 범죄하지 않고 자신의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므낫세의 겸비함과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어 그를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려보내 왕위에 앉도록 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를 기록한다.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눅 15:16-18) 둘째 아들, 그는 회개하며 아버지께 돌아갔고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다. 우리는 죄악을 회개하며 아버지께 돌아갈 때 살게 됨을 깨닫고 그렇게 행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만날 만한 때에 부르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 55:6-9) 죄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부르며 돌아오면 긍휼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용서해 주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응답해 주시는 주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우리는 자신이 기도하여 응답받고 살아가는 복 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주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자신을 믿고 살아가며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모든 인간이 전적 부패하여 예수님의 보혈이 아니면 죄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환난 가운데서 기도하여 건짐을 받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환난 날에 주님을 불러 건짐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인생의 어려움 가운데서 혼자 고민하며 침륜에 빠져 있지 말고, 환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환난 날에 주님을 불러 건짐을 받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고 축복합니다.

 

6. 우상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잘 섬기며 사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기 삶 가운데 우상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잘 섬기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단을 다 성 밖에 던지고.”(대하 33:15) 바벨론에서 돌아와 다시 유다 왕위에 앉은 므낫세는 지난날의 죄악을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개혁에 착수했다. 그는 그동안 자신이 섬겼던 우상들을 제거하는 일에 힘썼던 것이다. 그리고 여호와의 전을 중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하나님께 드렸다. 산당에서 여전히 제사를 드림으로써 그 개혁의 한계성은 있었으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 섬기라고 명하여 백성들이 주를 섬기게 했다. 우리는 므낫세 왕의 회개와 회복, 그리고 개혁의 태도를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합당한 자세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죄악을 회개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삶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살아가는 복된 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마 3:8) 주의 백성들을 버리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사는 자! 죄에 대해 징계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한 삶을 사는 자! 환란을 당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고, 환난 날에 주님을 불러 건짐을 받는 지혜로운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회개하고 돌이키어 죽는 인생이 아닌 사는 인생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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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7. 20. 16:19

기드온과 300 용사의 승리, 사사기 7:19-23

말씀: 기드온과 300 용사의 승리

성경: 사사기 7:19-23

7: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7: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7: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7: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7: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1. 시련

George. B. Duncan의 글이다. 토기장이는 진흙으로 토기를 만드는 일을 한다. 진흙으로 토기를 만들어 완성시킨 토기장이는 토기 표면에 까맣게 칠을 했다. 이를 지켜보던 친구가 아니 왜 모두 까맣게 칠을 하지?”라고 물었다. 그는 빙긋 웃으면서 이렇게 해서 가마 속에 넣었다가 꺼내면 이 까만 것이 황금색이 된다네.”라고 대답했다. 신자의 생활도 비슷하다. 새까맣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가마, 즉 시련의 불에 들어갔다 나오면 아름다운 것이 된다. 그리스도를 닮아가려고 힘쓰는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환경과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잘 연단 받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역사의 주관자

하나님은 미디안 족속으로 인해 크나큰 고통을 당했던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위해 기드온이라는 새 일꾼을 예비하신다. 본장에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신실한 일꾼 기드온이 등장한다. 그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미디안 족속에게 대승을 거두는 장면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전쟁의 승패가 역사의 진정한 주인이신 하나님의 주관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본장은 본격적인 미디안과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기드온이 미디안과의 전투를 위해 군사를 모집하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에 기드온은 시험을 통해 그중 삼백 명의 군사를 뽑았다(1-8). 마침내 무수한 미디안 군대와 마주친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미디안 군사의 꿈을 통해 승리의 확신을 주셨다(9-14). 이에 용기를 얻은 기드온은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로 무장하고 야간 기습 작전을 펼침으로써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15-25).

 

3. 기드온의 삼백 용사

기드온이 미디안을 치기 위해 군사를 모집했을 때 모인 사람은 삼만 이천 명이었다. 미디안과 아말렉 군대가 해변의 모래처럼 많다는 기록에 의하면(12) 실제로 전투를 위해 이 정도의 군대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시험을 거쳐 삼백 명의 군사만 선발하도록 하셨다.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 것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7:5-8) 선출된 삼백 용사는 개의 핥는 것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였다. 그 외의 군인들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그리고 선출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장막으로 돌려보냈고 삼백 명만 남게 했다.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7:8) 하나님은 선출된 삼백 용사를 통해 미디안과 싸울 것을 명하셨다. 군대의 수적 우세가 전투의 승패에 중요한 요소가 되었던 고대의 전쟁에서 이것은 매우 불합리한 명령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투가 기드온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전투가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수행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삼백 명만을 선발하도록 한 것은 미디안의 섬멸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임을 알리시기 위함이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쟁은 구속사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것이며 성도들이 치르는 악과의 영적 전쟁 또한 하나님의 몫이다. 우리는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4. 세 부대가 나팔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19-20)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어떻게 전투했는가?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부수며 전투에 임했다. 그들은 2경초에 미디안 진영 근처에 이르렀다. 2경은 히브리인의 시간의 단위인데, 3경의 중앙의 시각으로 오후 10-오전 2시에 해당한다. 기드온은 이 시간에 한 밤중의 파수병 교대시간을 이용하여 미디안을 기습했다. 유대인은 밤을 4시간씩 세 때로 나누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의 습관에 따라 밤을 네 때로 나눴다. 기드온은 세 부대로 나누어 전투에 임했다.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7:19-20) 현대인의 성경은 20절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다른 두 부대도 그들을 따라 일제히 왼손에든 항아리를 부수어 횃불을 높이 들고 오른 손에 든 나팔을 불며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한 칼이다.’하고 외쳤다.”(2:20) 나팔을 불어 신호를 알리며 잠자는 미디안 군인들을 깨웠고, 항아리로 횃불을 감춘 후 항아리를 깨트려 전투가 일어난 것처럼 꾸몄다. 미디안 군인들은 갑작스러운 소리와 갑작스러운 불빛에 크게 놀랐을 것이다.

기드온은 한 군인이 꾼 꿈과 그 꿈의 해석을 통해 하나님께서 미디안 군대를 자신들에게 붙였음을 확신했다. “기드온이 그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7:13-15) 하나님은 미디안과 연합군을 기드온과 삼백 용사에게 붙이셨다.

구약 성경은 또 다른 기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기적을 일으키셨다.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6:4)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일 한 번씩 돌 되 엿새 동안 그렇게 하고 일곱째 날에는 그 성을 일곱 번 돌 것을 명하셨다. 일곱 번째 돌 때,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의 상황은 이렇다. “일곱 번째에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6:16)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고 나아가며 외칠 때 견고한 여리고 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6:20) 우리는 믿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 불가능이 없다는 확실한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했던 기드온과 삼백 용사처럼 모든 전투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려있음을 알고, 하나님 말씀을 의지하고 순종하는 믿음생활의 승리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진영의 군사들이 도망함(21)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손에 들며 기습하는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 앞에 미디안 군사들은 부르짖고 도망하고 만다.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7:2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서 적진을 둘러 싼 채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적군은 온통 갈팡질팡 아우성치며 도망치기 시작하였다.”(7:21)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은 각기 제 자리에 서서 진을 포위했고 적군은 모두 아우성을 치며 도망하고 말았다.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나님의 군사들이 승리하는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출애굽기는 또 다른 멋진 장면을 기록한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하는 중 홍해를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닷물이 벽이 된 홍해를 지나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들을 어지럽게 하셨고 애굽 사람들은 혼돈하고 만다.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애굽 사람들이 가로되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14:25) 그 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 마병들 위에 흐르게 하라고 명하셨고 그들은 수장되고 말았다.

구약 성경은 또 다른 기적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이스라엘 요람 왕 때, 아람 군대에 의해 사마리아 성이 포위 된 후 항복하려 했던 나병환자 네 사람의 이야기이다. 네 명의 문둥병자들은 어차피 굶어 죽게 된 환경 가운데서 한 가지 소망을 품었다. 그들은 아람 진영에 가서 항복을 하여 그들의 선처를 기대하고 아람 진영에 갔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람 사람들로 하여금 큰 군대의 출정하는 소리를 듣도록 역사 하셨다. 그래서 아람 사람들은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고용된 헷 족속과 애굽의 군대가 만들었던 소음들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황혼녘에 정신없이 본국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왕하 7:6-7)

아람 군대는 서둘러 도망치며 가축들과 장비들에 대해서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텅 빈 아람 진영에 온 문둥병자들은 정신없이 자신들의 배와 호주머니를 채웠고 좋은 것들은 감추기까지 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의 역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언제나 담대해야 한다. 솔로몬은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28:1) 우리는 어떠한 상황과 형편,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의인들이 되어야 한다. 미디안 진영의 군인들을 기드온과 삼백 용사에게 붙이신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됨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나팔을 불고 난 후(22-23)

기드온의 삼백 용사가 나팔을 불자 미디안 진영의 군인들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미디안 진영의 군사들끼리 싸우게 만드셨다.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7:22-23) 미디안 군인들은 도망했고 기드온과 삼백 용사는 그들을 추격했다. 미디안은 Midian(인명)(@yDImi, Midian)심판의 의미를 갖는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의 아들인데 그의 후처 그두라의 소생이다. 후에 아브라함은 미디안을 포함한 서자들에게는 자기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아들 이삭을 떠나 동국으로 가게 했다. ‘미디안 사람이란 그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혈연이다. ‘미디안이라는 한 개인과 한 민족은 동일 개념이다(25:1-6). 민수기 10:29에서는 미디안 사람이라고 했다. 광야의 민족이다(10:29-31, 60:6).

미디안 사람의 상인은 길르앗에서 온 이스마엘 사람의 상인과 더불어 요셉을 사서 애굽으로 데리고 갔다(37:25, 28).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미디안 사람이다(3:1). 사사 시대의 미디안 사람은 아말렉 사람과 동방 민족과 연합하여 가축과 장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처럼 큰 무리를 이루어 가나안 땅에 침입하여 도처에서 수확물을 약탈하고 그 땅의 농민을 매우 괴롭혔다. 7년 동안의 압박 후 하나님은 엘 바알, 즉 기드온을 일으켜 회개한 민족을 구했다. 이스르엘 평야에서 결전이 벌어져 침입자의 완패로 끝났다. 그들의 두 왕 오렙과 스엡은 사로잡혀 피살되었고, 다음에 두 왕 세바와 살문나도 역시 같은 운명으로 되었다. 그 후 그 땅은 40년간 태평하였다(6, 8, 9:17, 83:9-12, 9:4, 10:26). 이사야서는 장차 모든 이방 원수들과 하나님의 백성의 박해자들이 철저하게 멸망당할 것을 기드온이 미디안을 패하게 했던 일을 언급하며 기록한다.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9:4) 우리는 거룩하신 분, 만왕의 왕의 통치하심 앞에 하나님을 높여야 하며 하나님의 반대편에 있는 자들은 이 땅의 주인이신 왕 앞에 무릎 꿇을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을 소유한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삶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삽의 시는 이렇게 기록한다. “주는 미디안 인에게 행하신 것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83:9)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삶은 승리의 삶이고, 하나님의 얼굴에서 멀어진 삶은 패배의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기적을 일으키면서까지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완전하신 주님이 삶을 이끌어 주실 것을 기대하며,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승리는 주께 있음

모든 일들에 있어서 승리의 키를 가지고 계신 분은 우리 주 하나님이시다. 미디안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기드온과 그의 군사들은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만으로 승리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의 칼이여 하고 외쳤던 것이다. 오늘날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영적 전투를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도 미디안과 싸워야 했던 기드온과 삼백 용사의 삶과 비슷할 수 있다. 우리는 기드온과 삼백 용사들처럼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확실히 믿고 나아갈 때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환경을 보고 두려워 떨고 삶의 문제를 보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승리의 키를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 분께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싸우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이렇게 말한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4:13-14)

전능하신 하나님은 를 어두움의 구덩이에서 건지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살아계시는 주가 되심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승리가 주께 있음을 기억하고 언제나 능력의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예수 안에 큰 능력이 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하나님은 질그릇 같은 우리에게 보화를 담아 주셨다.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고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고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며 통치하심을 인정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기드온과 삼백 용사가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하며 싸웠음을 기억하고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을 하나님께 맡기어 드리며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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