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성경: 시편 27:1-6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편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편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 소망

미국의 백화점 왕인 제이 씨 페니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는 심한 재정난에 허덕여 죽으려고까지 했고, 격리 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찬송 소리를 듣고 한 예배의 장소로 가 보았다. 그때 그곳에서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가 뒷좌석으로 다가가 앉으려 할 때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매우 익숙한 찬송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찬송은 그에게 위로와 큰 확신을 주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나를 좀 돌보아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그 후 그는 건강도 회복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결국 상업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소망의 하나님

본 시편은 어려움에 처할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 이전까지 선한 것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께만 소망을 둔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을 가진 주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본시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이런 일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기도 하는 일이다. 본시는 비탄시로서 자신의 슬픈 처지를 탄식하며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는 내용이다. 시인은 자신의 위기에 대해 호소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반드시 보호해 주신다는 신앙의 확신을 노래한다.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므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친다고 할지라도 두렵지 않다는 담대한 신앙고백을 한다(1-6). 이어서 시인은 자신이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있으니 여호와께서 응답해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주께서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버리거나 떠나는 일이 없기를 절실한 마음으로 부르짖는다(7-12). 마지막으로 시인은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함으로써 끝을 맺는다(13-14).

 

3. 두려워하지 않음(1-3)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빛이요 구원주이시며 생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어떤 두려움과 공포도 없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두려움은 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있는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다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과 보호의 능력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빛과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1) 여기서 능력은 원어로 <z/[m;: 마오즈>이다. 이는 피난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안전한 장소, 피난처, 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과 피난처가 되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형편 가운데 처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15:2) 모세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힘과 노래와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듯이 주를 신뢰하는 자들 앞에 있는 어떠한 문제와 상황도 해결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원수들이 왔으나 그들이 실족하고 말았음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7:2) 하나님이 의 편이 되어주신다면, 원수들도 어찌하지 못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울 것이 전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3:6) 담대하게 고백했던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날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매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담대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편 27:3) 여기서 ‘태연하리로다신뢰하다, 의탁하다를 의미한다. 다윗은 주를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군대가 진 칠지라도 전쟁이 일어나 자신을 치려 할지라도, 주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윗뿐만 아니라 에게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넉넉히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5-37)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이 부족한 자들은 주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를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안전함(4-5)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주 안에서 안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 27:4)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원어로 <!['n: 노암>이다. 이는 선함, 매력, 아름다운 점, 사랑스러움을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확신을 여호와의 집에 거하려는 갈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에 대한 바램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서 그 전에서 사모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안목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그분의 말씀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다윗과 같이 그분 안에 있을 때 안전함을 깨닫고, 여호와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하기를 소망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6) 우리에게도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가득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또한, 다윗은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키시는 주가 되심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시편 27:5) 여기서 장막회막, 여호와의 전이라고도 불리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주와 동행하기를 원했던 다윗은 환난 당할 때 하나님께서 주의 날개 아래에서 지켜 주심을 고백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갈망하는 다윗은 자신의 환난 날에도 여호와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고백한 것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이 임재해 계시는 장막 은밀한 곳에 자신을 숨겨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확신했다.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고백과 믿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늘 친밀한 교제가 있기를 소망한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께서 베푸시는 절대적인 안전과 은혜를 입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은혜로 인하여 환난을 당해도 요동하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처럼 우리도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방의 모든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반석 위에 든든히 선 우리의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7:24-25)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서가는 믿음이 의 믿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원했던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여호와를 찬송(6)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주를 높이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7:6) 여기서 제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 드려졌던 종교의식이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무찔러 주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드리며 주를 찬양할 것을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둘러싼 원수를 무찌르시고 높임을 받을 것을 확신했다.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원수들 앞에 두려워하거나 그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실 주를 기대해야 한다. 원수를 무찌르시는 주님, 모든 결과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주님을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21:13)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체험하고, 날마다 주를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주를 찬양하기를 소망한다. 지금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를 높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19-20) 우리는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자녀가 되어 서로 교제하며 주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해와 방패가 되시는 주, 은혜와 영화를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 달려가는 자, 그는 안전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18:10)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내가 만난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문제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건져 주시고, ‘를 사망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날마다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자!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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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견고한 믿음, 평안한 마음으로 승리!

성경: 잠언 14:26-32

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14: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14: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1. 기도

미국 노아라는 곳에 사는 가난한 크리스쳔 가정이 생활의 궁핍으로 북쪽 다커다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일곱 살 난 딸이 그곳에도 교회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거기는 시골이라 교회가 없단다라는 어머니의 대답에 딸은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이사 가는 날이 되어 출발할 준비를 모두 마쳤으나 딸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허둥지둥 그녀를 찾다가 교회로 달려갔더니 어린 딸이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그곳에도 교회가 서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사를 간지 두 달 만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기도의 응답을 잘 체험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그분과 동행 하는 삶, 하나님께 간구하여 응답받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

한 사람을 의인과 악인, 지혜자와 미련한 자로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구분의 기준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해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모습과 특징, 그리고 결과를 결정해 줄 것이다. 본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지혜자와 미련한 자,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삶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다. 계속해서 악인과 의인의 특성을 비교하고 있는 본장은 주로 사회적인 관점에서 양자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신실한 말을 하며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지만 어리석은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거만한 태도를 보인다(1-9). 의인은 죄의 길이 비록 겉으로 보기에 달콤하지만 결코 가까이하지 않으나, 악인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악한 길로 가고 만다. 그러나 결국 악인은 의인을 이기지 못하고 그 앞에 엎드러지게 될 것이다(10-19). 재물은 지혜로운 자에게는 축복이나 미련한 자에게는 오히려 화근이 된다. 그리고 진실한 말을 하는 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나 거짓말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20-25).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따라 가난한 자를 돕고 의롭게 사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나 악인은 진노를 당하게 될 것이다(26-35).

 

3.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26-28)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그분 앞에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여호와를 항상 경외해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14:26) 하나님을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견고한 믿음을 허락하신다.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 자식들에게도 피난처가 생긴다.”(14:26) 경외란 무엇인가? 경외는 []ta'r]yI(yir'ah) []Fovbo'"(phobos) []Fear Reverence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을 나타내는데 쓰는 용어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명하는 말씀은 하나님은 경외할 것을 함께하고 있다(6:4). 시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지는 때, 하나님은 영광과 광채 가운데 친히 나타나셔서 이 경외심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 심어주셨다(4:10).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응답일 것이다.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만이 이 경외심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날마다 찾고 구하여 그분을 알아,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12: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악을 멀리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7:26)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죄악의 길을 피하며, 죄를 짓게 유혹하는 자들을 피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성령님의 지도를 잘 받는다면 이러한 삶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재앙으로부터 안전하며 평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19:2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가운데, 생명이 붙어있는 동안에,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 받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29-30)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들로서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14:29) 화가 나는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해서 쉽게 노하는 자, 그는 지혜롭지 못한 자이다. 노를 더디 하는 자는 명철한 자이며,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노는 무엇인가? 노는 분노와 진노인데, [] #a('aph), hm;j'(chemah) []ojrghv(orge) [] Anger이다. 성내는 일, 노는 일반적으로는 개체의 요구 및 목표를 달성하려 함에 있어서 그것이 저지되는 것에 대한 보복적 정서 반응을 말한다. 그리고 성장해 감에 따라 노는 잠재적, 지속적, 보복적으로 되어간다. 보복은 간접적 합목적성을 더해간다.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지배에 복종치 않는 사상과 행동에 대한 인간의 노는 정당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기록한다(32:19, 17:16). 반면에 경솔하고 부당한 노와 거기서 생겨나는 죄의 위험은 경고한다(37:8, 4:26). 우리는 완전히 성내지 않는 자, 완전한 자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부당한 노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며, 분노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일에 반하는 것들에 대해서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노를 멀리하는 자,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던 모세를 보고 도전받아야 할 것이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12:3)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한 자가 되어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 가운데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며, 성령님의 지도를 잘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는 무엇을 지키기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어떠한 것들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된다면 그는 복 받은 자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25:28) 성벽이 없다면 적의 침략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자, 그는 영적인 전투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싸우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영적인 전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싸우되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시기하거나 눈앞에 보이는 적과 싸우는 일에 힘쓰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평온한 마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14:30) 우리는 삶 가운데 일어나는 시기, 질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 끊어버리고, 마음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17:22) 불완전한 모습으로 불완전한 환경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로서 영적 전투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의인의 삶(31-32)

하나님은 어떤 이의 삶을 기뻐하실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 의로울 수는 없지만, 성령님과 동행 할 때 의로운 길을 걸어가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의 피값으로 사는 자, 주를 공경하는 자들로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주의 사랑으로 대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14:31) 이웃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그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는 자는 복 받은 자이다.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14:21)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고 기도에 힘써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자, 그분의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자는 행복한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자, 그는 주님의 칭찬을 받는 인생이 될 것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가난한 자를 선대하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웃을 대하며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복되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주와 함께 걸어가는 의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14:32)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악한 사람은 제 악행으로 망하지만 착한 사람은 그 정직으로 피난처를 얻는다.”(14:32) 주의 말씀을 멀리하고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자, 그들은 죄악의 유혹에 빠져 악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악한 길을 걸어가는 악한 사람의 종말은 결국 멸망이지만, 주님의 법을 따라가는 자, 성령님의 지도를 받는 주의 백성들은 안전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위로부터 났으며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말씀하신다. 이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8:24)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모든 민족, 그리고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난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도 잘 모르며, 자신의 죄를 잘 깨닫지 못하고 계속 악으로 달려가게 된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이 죄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해 주셨고,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죄를 씻고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성령님의 은혜로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말씀을 붙잡고 의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의 자녀로서 승리

우리는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성령님의 은혜로 주의 자녀로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때 우리는 큰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가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악과 미련함이 아니라 의와 지혜를 선택함으로써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삶의 순간마다 주의 제자로서 바른 결정과 행동을 하는 자, 자신이 복 받은 자임을 인정하며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잘 전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 하나님 안에서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주 안에서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며, 평안한 마음으로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께 모든 문제와 상황을 맡기어 드리며,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주 안에서 안전하며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 그는 언제 어디서나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령님의 은혜로 의로운 길을 걸어가며 견고한 믿음과 평안한 마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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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누구나 가야 할 하나님 나라!

성경: 마태복음 13:47-50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13: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사명

노만 멀리어드목사에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도 목사가 되었다. 후에 그가 목사직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부유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제안들을 거절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고지의 가난한 교회에 가서 시무했다. 이에 대해 그의 부친 멀리어드 목사는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그것을 감사한다. 내 아들이 연봉 1만 파운드를 받는 궁전에 있는 것보다 150파운드 연봉을 받는 곳에 있는 아들을 보는 것이 더 기쁘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보다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사하게 여기며 좁은 길을 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비유

본장은 그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와 천국 비유가 있는 장이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유형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천국 비유를 통해서는 사람이 천국에 가려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와 천국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영접받지 못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본장은 천국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들을 모아놓은 천국 비유집인데, 그 내용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그에 대한 설명(1-23), 가라지 비유(24-30), 겨자씨 비유(31-32), 누룩 비유(33), 가라지 비유에 대한 설명(34-43), 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 비유(44-46), 그리고 그물 비유이다(47-50). 이 모든 비유의 결론으로서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어 오는 집주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신다(51-52). 이 모는 비유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능력을 행했으나 고향 사람들은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않으셨다(53-58).

 

3. 그물과 같은 천국(47)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놓은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13:47) 천국은 [] Kingdom of heaven [] hJ basileia twn oujranon(he basileia ton ouranon)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와 동의어인데, 마태복음에만 씌어져 있는 말로서 다른 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종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3:2, 4:17, 7:21, 8:11, 10:7, 13:11, 16:19, 18:1, 3, 4, 23, 23:13, 25:1).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주저한 유대인의 감정을 고려하여 하나님대신에 하늘이라는 말의 천국을 쓴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12:28, 19:24, 31:43 등에는 하나님 나라를 쓰고 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22:9-10)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초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다. 잔치를 계획한 주인은 이 잔치에 많은 이들이 초대되어 자리가 가득 차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울 것을 말한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14:21-23) 잔치에 많은 이들이 차고 넘쳤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깨어 있어 기도하는 자, 성령으로 충만한 자, 기름 등불을 잘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25:1-4)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는 자,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미련한 처녀가 아니라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천국 백성이 되어, 깨어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로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그물 속 물고기를 분류(4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물의 비유에서 그물 속의 물고기는 천국에 가야 할 영혼이다. 그런데 그물 속 물고기가 모두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그물 속의 물고기가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은 그물 비유에서 그물 속 물고기가 분류됨을 말씀하신다.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13:48)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부들은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추려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버린다.”(13:48) 여기서 그물[] Nets, 짐승이나 새 또는 물고기를 잡는 기구(25:15, 35:7, 8, 29:5, 51:20, 19:8, 1:17, 9:12, 1:15-17)이다. 그 주요한 용도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19:8, 4:18 기타). 고대 이스라엘은 고기를 그리 먹지 않는 편이어서 어부는 없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갈릴리 바다가 저명한 어장으로 되고, 갈릴리 바다 서안의 타리카에아(Tarichaea=막달라)에는 물고기의 절임 공장도 있어, 멀리 로마까지도 수출되었다. 그물은 용도에 따라 약간씩 달랐는데,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한 그물과 고기잡이용의 그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본문으로 돌아가 본다면, 어부들은 물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물가로 끌어올린 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류한다. 천국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천국 그물 안에도 악인이 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3장에서는 밭에서 자라나는 가라지 조차도 추수 때까지 뽑지 말고 기다릴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기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30) 여기서 가라지를 심은 이는 마귀고, 추수 때는 세상의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이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13:39)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면, 추숫군인 천사는 마귀가 심어 놓은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고 곡식은 거두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마귀가 언제나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알고,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 가라지가 아닌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 주님의 때가 되면 그물 속의 물고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되며, 주님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는 분류됨을 알고, 우리 모두가 좋은 물고기, 알곡 신자가 되어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세상의 끝(49-50)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영원한 것일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언젠가는 끝이 오게 되어 있다. 예수님은 세상의 끝이 반드시 있음을 말씀하신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13:49-50) 세상의 끝이 오면 주님은 천사들을 통해 악인과 의인을 가른 후, 악인은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리고 악인은 지옥에서 울며 이를 갈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이들은 다시 어두움에 내어 던져지게 됨을 말씀하신다.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2-14) 우리는 세상의 끝날이 반드시 오게 됨을 알고, 자신의 예복을 잘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을 잘 돌아보아, 거룩하지 못한 자, 타성에 젖은 예배 생활을 하는 자가 아닌, 주님을 뵈었을 때 적합한 예복을 갖춘 자,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날마다 회개하기를 힘쓰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40-43) 세상의 끝에는 죄를 짓게 하는 모든 사람과, 주님을 믿고 주님의 사역을 한다고 했지만 불법을 행했던 자, 그들은 풀무 불에 전져질 것이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될 그날, 열방 중에서 주의 택하신 자들을 모으실 그 날을 기대하고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영적 전투에 승리해야 할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4:31) 영원할 것 같지만 반드시 끝이 오는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 힘들고 고단할 지라도, 믿는 자들의 본향인 영원한 천국을 소망 삼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천국의 제자 된 자의 삶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반드시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며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천국 그물의 비유에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실히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비유를 통해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3:52) 서기관이란 율법을 베껴서 보존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는 임무를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 된 사람들이 이러한 서기관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인 자, 천국의 제자 된 자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이러한 서기관의 임무,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옛것과 새것이란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교훈을 말한다. 집주인이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내어와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처럼,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은 모세의 율법과 예수의 교훈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으로서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 천국 복음을 잘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의 힘으로는 잘 할 수 없으나,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한다면 하늘의 지혜로 천국 백성의 삶을 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우리는 이렇게 고백한 바울의 고백에 도전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지혜로 사역하고, 감사의 찬양을 하며 승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3:16)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 가운데서 누구나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으로 반응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나는 그리스도인,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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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2. 20. 05:31

여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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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죄악에서 돌이켜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성경: 에스겔 18:21-24

18:21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18:22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18:23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18:24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

 

 

1.

천둥 번개와 함께 폭풍우가 몹시 몰아치던 어느 날 밤, ‘스티븐슨선교사에게 길을 잃은 백인 청년 두 명이 찾아왔다. 그들은 진스 강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이에 선교사는 이 정글에는 길이 없습니다. 방향도 설명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선교사님의 답변을 듣고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합니까?’라고 말하며 절망했다. 그 후 선교사님은 이렇게 조언했다. ‘방법은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길을 아는 제가 당신들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인생의 길이 잘 보이지 않을 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분께서 인도해 주시는 복된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의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회개

유다 백성들은 그들이 열조의 죄악을 따라 열조들처럼, 어쩌면 그보다 더 범죄 함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이 죄가 없다고 말하며, 조상이 지은 죄로 말미암아 불공평한 하나님께 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본장에서 그 생각의 부당성을 설명하신다.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들 각 개인에 대한 책임의 막중함을 강조하고 아울러 회개를 촉구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재 포로 생활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각 개인의 죄로 인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의 본장은 죄에 대한 책임은 당사자가 지지만, 아들을 구원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음을 밝힌다(1-13). 그리고 아버지가 악을 행하더라도 아들이 의를 행하면 살 수 있음을 묘사한다(14-20). 또한, 회개하면 죄에 대한 책임이 없어지나 현재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면 과거의 의로운 생활도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밝히고(21-29), 회개를 촉구한다(30-32).

 

3. 죄에서 돌이켜(21)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에서 돌이켜야 하는가? 우리는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죄에서 돌이켜야 한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18:21) 악인이 사는 길은 죄에서 돌이켜 주님을 따르는 것이다.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의 법을 따라 가는 삶을 사는 것을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는 죄인인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눈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죄악에서 돌이킬 때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18:28)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 계셔서 역사하신다. 우리가 주께 돌아오기를 결단하고, 주님을 찾고 부르짖는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우리는 불의를 행하고자 하는 생각을 던져버리고 여호와께 달려가 복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달려가면 주의 긍휼하심을 입게 됨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주께 붙잡힌 자들이 되어 형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에 완전케 하사 나로 수치를 당치 않게 하소서.”(119:80) 언제나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 간구하며,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죄가 기억함 되지 않음(22)

주께 회개하며 나오는 자들은 하나님께 어떠한 은혜를 입게 되는가? 하나님은 주께 용서를 구하며 겸손함으로 나아오는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신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 범죄 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18:22)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나오는 자들은 죄 사함을 받게 된다. 우리는 모두 연약한 죄인들이다.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죄를 짓기도 하는 자,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다. 우리 모두는 완전하신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이다. 우리가 연약하여 죄를 범했다면 주께로 나아와 회개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정결케 할 것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한다. 한때 다윗은 연약하여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말았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찾아와 죄를 지적했고, 다윗은 눈물로 회개하며 이렇게 기도한다. “(다윗의 시, 영장으로 한 노래,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선지자 나단이 저에게 온 때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51:1) 눈물로 회개한 다윗의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주셨다.

바벨론을 통해 이스라엘을 심판하셨던 하나님께서 주님의 때에 바벨론의 왕과 그 땅을 벌하고, 이스라엘을 다시 그의 목장으로 돌아가게 하셨다. 주님께서 간섭하시고 다스리시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50:20) 죄로 가득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달려가야 한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복음에 바르게 반응해야 한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죄악 덩어리이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을 때 살게 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날마다 겸손함으로 주님께 엎드리기를 힘쓰며,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담대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악인의 길에서 떠나(23)

우리는 어떠한 길에서 떠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는가? 죄에 대해 큰 은혜를 입은 그리스도인들은 악인의 길에서 떠날 것을 선포하고 힘써야 한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18:23) 악인은 결국 망하게 된다. 악인은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가는 자들이므로 죽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멸망으로 달려가는 악인들이 주께로 돌아온다면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한 영혼을 사랑하신다. 지금 이렇게 연약한 모습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를 응원하신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보좌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중보해 주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다니지 아니하느냐. 또 찾은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15:4-7)

를 지금도 찾고 계시는 주께로 우리는 언제나 나아올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주의 백성들은 옛 구습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옷 입기를 소원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죄악과의 싸움이 고단할지라도, 영적전투가 힘들게 느껴진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가 의 승리임을 선포하며, 날마다 잘 인내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우리는 자비와 사랑이 넘치시는 주님께 날마다 나아가기를 힘쓰고, 주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기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147:11) 악인의 길에서 떠나 주를 경외하며, 그분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큰 복 가운데서 형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의인의 삶(24)

우리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 천국 백성으로서 이 땅에서의 나그네의 삶을 잘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가는 믿음의 여정을 잘 걸으며 승리할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의인들은 공의를 떠나지 말고 악을 멀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만일 의인이 돌이켜 그 공의에서 떠나 범죄하고 악인이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대로 행하면 살겠느냐 그가 행한 공의로운 일은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그 범한 허물과 그 지은 죄로 죽으리라.”(18:2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나 만일 옳게 살던 사람이 그 옳은 길을 떠나 나쁜 일을 하여나 보기에 역겨운 짓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따라 다니며 한다고 하자. 그가 살 수 있을 것 같으냐! 나는 그가 이전에 옳게 산 것도 알아주지 않으리라. 죄를 쓰고 죽을 것이다.”(18:24) 우리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는 자, 주께서 허락하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고 여호와의 율례와 규례를 좇는다면, 마땅히 하나님의 축복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이웃과 함께 믿음을 나누면서 불의를 제거하기 위해 애쓰는 자들을 결코 버리시지 않고 구원하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이러한 사실은 신앙의 현재적인 측면을 강하게 부각시켜서 각기 바른 삶을 살아야 함을 알게 한다.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되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하고,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불순종을 회개하며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10:38-39)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하여 주께로 돌아오는 자, 죄악 된 세상 가운데서 끝까지 믿음을 잘 지키는 자,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선한 믿음의 싸움을 싸워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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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16. 13:29

감정과 언어에 있어서의 지혜, 잠언 15:1-4

말씀: 감정과 언어에 있어서의 지혜

성경: 잠언 15:1-4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15: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15:4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1. 영혼사랑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으로 갈 선교사 지망생들을 접견하여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선교사로 중국에 가려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후보자들은 제각기 중국의 수많은 영혼들이 멸망의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대답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대답만으로는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면 쓰러지고 말겁니다.’ 그 후 한 지망생은 이렇게 다시 묻는다. ‘그러면 선교사님은 무슨 동기로 가셨습니까?’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답한다. ‘내겐 한 동기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을 사랑해서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가?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언어생활

본장의 1-2, 4, 23, 28절은 모두 언어생활에 대한 교훈이다. 어떤 사람의 언어생활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을 그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쌓아 놓은 악을 그의 입을 통해서 쏟아낸다. 그는 노를 격동하는 과격한 말을 하고, 패려한 것을 말하며 자신의 미련함을 드러내는 말을 한다. 참으로 미련하고 악한 자의 말은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그의 혀는 마치 칼과 같아서 그것을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를 상하게 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분노를 쉬게 하는 온유한 말을 하며, 때에 맞는 아름다운 말을 깊이 생각한 후에 한다. 그의 혀는 생명나무와 같이 듣는 이의 마음을 치료하며 생기를 북돋아 준다. 그의 입과 입술은 참으로 복되어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참으로 그는 그의 입술의 열매로 인한 복록을 누린다.

 

3. 의인과 악인

의인과 악인의 특징에 대해 비교하고 있는 본장은 특히 하나님께 대한 태도의 차이를 자세히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악인과 의인의 모든 차이가 결국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연유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참된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함이라는 잠언 전체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말을 할 때 지혜롭게 하는 자는 화평을 이루나 과격한 말은 다툼을 일으킨다(1-7).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8-12). 사람의 참된 기쁨은 물질에 있지 않고 마음의 화평에 있으므로 분을 내지 않고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13-20). 그러므로 의인은 지혜로운 말을 즐겨하고 불의한 뇌물을 멀리함으로 소원이 이루어지나, 악인은 훈계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멸시함으로 음부에 들어가게 된다(21-33).

 

4. 분노의 감정(1)

우리는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자신에게 들리는 말에 따라 감정이 요동하기도 하는 것이 연약한 인간이다. 우리가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우리는 유순한 말을 하고 과격한 말을 멀리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어떠한 말이 자신을 화나게 할 때에도 노하기를 더디 할 수 있어야 한다. 노와 분에 대해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29:22) 노할 수 있는 상황에 서로 노하기에 열심을 낸다면 다툼은 그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분을 내고 분 품은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잘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돈, 권력, 명예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에 탐심을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28:25) 탐하는 마음은 다툼만 일으키게 함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풍족한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분을 쉽게 내면 다툼을 일으키나 노하기를 더디 하면 시비가 그치게 될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15:18) 믿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원수라도 사랑 할 수 있는 믿음의 태도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크고 놀라움을 알고, 가슴으로 그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잠언은 미움과 사랑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10:12) 우리 앞에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미움의 결과는 다툼이고 사랑의 결과는 평안임을 반드시 기억하고 사랑하기를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언제나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말을 하며 타인에게 뜨거운 주의 사랑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지혜 있는 자(2)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믿는 자들에게 큰 복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지혜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아름다운 말을 하는 우리가 된다면 감사한 일이다. 솔로몬은 혀와 입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15:2) 혀를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성령님의 은혜로 혀를 잘 훈련받아 성숙한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주님 닮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 의인과 악인의 말은 다른데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15:28) 우리는 입을 통해 악을 쏟아내기 보다,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매한 자가 아닌 지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함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라고 말했던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말과 우매자의 입술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 입의 말의 시작은 우매요 끝은 광패니라.”(10:12-13) 연약한 인간은 말의 실수를 종종 한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입의 말을 통해 은혜만 흘러갈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마음을 갖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16:23)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마음을 갖게 되고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인생의 길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늘 주님께 아뢰어 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주께서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5:21) 주님께 기도하여 하늘의 지혜를 덧입고 성령님의 은혜로 혀를 잘 다스려 지혜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감찰하시는 주(3)

우리를 감찰하시는 분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주님은 나의 마음의 슬픔과 기쁨을 다 알고 계신다. 솔로몬은 인간을 어디서든지 살피시는 여호와의 눈이 있음을 말한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15:3) 우리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악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최고 우선순위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어 드려야 한다. 큰 죄나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주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보혈로 용서함 받아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어 드리고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걸음을 감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주가 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34:21-22)

인간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없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언한다.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16:17)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23:24) 우리의 선과 악은 하나님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3)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잘못한 것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주님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주의 일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주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온순한 혀(4)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온순한 혀를 가지고 생명을 흘러 보내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5:4) 간사한 혀는 거짓을 말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52:2-4) 우리는 남의 말을 하는 것이 죄임을 알고 이러한 습관을 멀리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18:8)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사람들은 그것을 삼키기 좋아한다.”(18:8) 우리는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기를 소망하는 구별된 자로서 입술에 선한 말이 넘쳐나야 한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16:24) 우리는 성령님께서 삶을 지도하시므로 선한 말을 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감정에 기초한 언어 사용을 하는 연약한 자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칭찬받을 만한 언어를 사용하는 지혜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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