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4. 4. 20:37

존귀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12-15

말씀: 존귀하신 예수님

성경: 요한복음 12:12-15

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2: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2: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 찬송

한 목사님이 노환으로 누워계신 어머니의 머리맡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었다. 80세가 훨씬 넘은 할머니가 자기의 병이 치료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자녀를 위로했다. 임종예배를 위해 온 가족이 다 모였을 때, 목사님은 어느 성구를 읽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네가 알아서 골라라. 단지 찬송하는 것으로 말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노구에 병마와 싸웠지만 그녀는 괴로움에 지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 달라는 유언을 했던 것이다. 삶 가운데 우리는 어떠한 고통을 가지고 있는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로 세상에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역을 했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명을 고난과 죽음을 통해 성취하실 그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장에서 요한은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구약 성경의 예언에 대한 성취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수천 년 전에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비로소 성취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이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갖고 있는 메시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향유를 부은 마리아(1-8), 나사로를 죽이려는 음모(9-11), 예루살렘 입성(12-19), 한 알의 밀(20-26), 자신의 죽음의 예고(27-36), 강퍅한 유대인들(37-43), 빛이신 예수님을 믿을 것에 대한 권면(44-50)으로 이루어졌다.

 

3.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12)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이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환영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이스라엘 왕으로 믿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그때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이는 구약의 메시야 예언의 성취였다. 예수님을 환영한 무리는 누구였을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살리실 때 함께 있던 자들의 증거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표적 행하심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를 본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달랐다.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그 광경을 보고 분을 내며 그들의 하는 일이 쓸데없다고 말했다. 본문을 보면 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는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12:12)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었는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면 신고할 것을 명령해 놓았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11:55-56)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했지만,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잡고자 했던 것이다.

유월절에 대해 더 살펴보면 이렇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주셨고, 그들은 이것을 기념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어, 출애굽을 행하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6:6) 또한 종교개혁을 했던 남 유다의 요시아 왕은 정성을 다해 유월절을 지켰었다. “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대하 35:7) 유대인의 각 가정에서 지키고 있는 유월절의 식순을 보면 니산월의 13, 즉 그 날의 일몰과 함께 시작되어 등불을 켜면 집안에서 일체의 누룩을 제해 버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4일 저녁부터 유월절의 식사를 시작한다. 축복은 기도한 후, 첫째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손을 씻고 기도한 후 쓴 나물에 쓴 나물에 하로세스를 발라(곁들여) 기도 후 가족에게 먹게 했다. 하로세스[ts,/rj(ch roseth)는 과실과 포도주를 섞어 만든 크림 같은 조미품으로 이것은 선조가 애굽에서 점토를 반죽하던 고통의 상징이다. 그 후 고난의 빵으로 불리는 세 조각 겹친 무교병을 취해 애굽에서 선조의 고난을 상기했다.

 

4. 호산나 찬송 받으시는 예수님(13)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주님께 호산나 하고 외치며 왕이신 주님을 찬송한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 그들이 흔들던 종려나무 가지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종려나무는 거룩함이나 승리, 또는 번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전쟁에서 승전하고 입성할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외쳤던 호산나<wJsannav>의 의미는 부디 도와주십시오, 구원하옵소서의 뜻을 갖는다. 이는 시편 118:25에 있는 히브리어에 대한 음역이다. , 그들은 구원의 메시야를 환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님을 주제로 하는 마태복음에서 마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21:9-11)

무리들은 호산나 하고 외치며 주님을 높였고 온 성은 소동했다. 우리 주님은 왕 중의 왕이시오, 주 중의 주이시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44:6) 우리는 예수님이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천국에서도 주를 믿는 나라와 족속들은 어린양 예수께 찬송하게 될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7:9)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나 주님을 호산나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나귀를 타신 예수님(14)

왕이신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12:14) 여기서 어린 나귀는 스가랴 9:9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이다. 말은 전쟁 시에 타지만 나귀는 평화 시에 타는 동물이다. 따라서 메시야가 평화의 왕이며 사랑의 왕으로 오심을 나타내며 어린 나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공의와 구원을 베푸는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이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예수님께서 타고 오신 나귀는 어떤 나귀였는가? 예수님은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나귀새끼를 풀어 끌고 올 것을 명하셨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11:1-7)

조금은 이상한 명령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올 것을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사람들은 제자들이 나귀를 푸는 것을 허락했고 예수님은 겉옷이 걸쳐진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주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나귀를 타신 겸손하신 예수님, 왕 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씻고 용서함 받아 주님의 보좌 앞에 엎드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겸손의 왕 예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왕 되신 예수님(15)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주님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미 예언된 대로 나귀를 타고 오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보고 우리는 크게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12:1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 임금이 너에게로 오신다.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하신 말씀 그대로였다.”(12:15) 예수님과 관련해 언제 또 소동하는 일이 있었는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유대인의 왕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 소식을 듣고 소동하고 만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2:2-3) 왕 되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기다리는 자들은 주님의 나타나심에 크게 기뻐하며 감동했을 것이고, 예수님께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이 소식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놀랐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식에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 내가 구원자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다면 복 받은 자이다. 우리 주님의 일은 크고 기이하다. 우리는 만국의 왕을 높이며 찬양하는 승리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한 계시록은 주 안에서 승리자들의 노래를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15:3)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시련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인내로서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하여, 왕 되신 주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호산나를 외치면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한 군중의 함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의 함성은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메시야, 바로 그분이 오셨으므로 더 이상 지체 말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는 민족적인 간청이었다. 군중은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단지 자신들이 기대한 정치적, 민족적 소망을 이뤄 줄 메시야로만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장차 자기들의 기대가 무너졌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무리로 돌변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의 모습이 당시의 군중과 비슷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와 가정, 개인의 어떠한 목적과 영광을 위해 주님을 좇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들로서 주님을 잘 따라가며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5) 온 맘과 힘을 다하여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우리는 바울의 고백에 도전 받아야 한다. 나귀를 타신 겸손하신 예수님,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구원자 예수님, 존귀하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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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참 제자로서 주를 좇는 삶

성경: 마가복음 1:16-20

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18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

1: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1: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1. 이상한 꿈

독일의 말틴 미네르목사님은 히틀러 치하 시 본 회퍼와 함께 감옥에 갇혔다. 그 후 그는 살아 출옥하게 되었고 정치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그때 이상한 꿈을 꾸었다. 그와 더불어 모든 사람들이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 있었다. 주님은 그의 뒤에 선 사람들에게 네가 한 일을 변명해 보라.’고 질문했다. 그러자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반대하고 욕하는 사람만 있었지 나에게 예수님을 전해 주는 사람은 없어서 믿지 않았다.’고 말했다. 똑같은 꿈을 계속해서 일곱 번이나 꾸게 되었고 그는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결단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들로서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만 바라보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마가는 마태나 누가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기사를 기록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세례 요한의 사역을 도입하여 복음서를 시작한다. 그 다음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 사건과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이겨내신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한다. 그 후에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께서 네 제자를 부르시고 이적을 행하시는 모습을 다루었다. 마가복음 기자는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요 복음이라는 선언으로서 글을 시작한다(1). 그리고 세례 요한의 이야기를 소개하고(2-8), 예수님의 요단 강 수세와 광야의 시험을 간략하게 언급한다(9-13). 그리고 마가복음 전체의 주제라 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해 선포한다(14-15). 예수님께서는 시몬과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삼으시고(16-20),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좇아내신다(21-28). 그 후 시몬의 집에 가서 장모의 열병을 고쳐 주시고, 몰려온 많은 병자들의 병도 고쳐 주신다(29-34). 새벽에 일어나셔서 기도하시고 갈릴리 온 마을을 다니시며 전도하고 병자를 고쳐 주셨는데(35-39), 특히 한 문등병자를 고쳐주신 일을 상세히 묘사한다(40- 45).

 

3. 갈릴리 해변에서 제자들을 부르심(16)

우리는 누구의 부름을 받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본문에서 예수님은 어부로 살고 있었던 몇몇을 제자로 부른다.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1:16) 예수님은 갈릴리 해변을 지나가시다가 시몬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를 목격한다. 갈릴리는 Galilee(지명) (lyliG:, Galilee)이다. 팔레스틴의 가장 북쪽에 있는 지방인데, 히브리어로는 고리’, ‘주변’, ‘지역을 의미한다. 산지 둘레에 성읍이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런 지방명이 생긴 것 같다. 이 지역의 자연과 생활은 어떠했을까? 갈릴리는 자연적 특질에 따라 갈릴리 바다 북안의 가버나움-라마(Ramah)평야-돌레마이를 연결하는 선이며 상·하 갈릴리로 나뉘어져 있다. 상 갈릴리(Upper Galilee), 즉 갈릴리 북쪽은 레바논 산맥의 남쪽 지맥을 포함하는 높이 약 450-1,208m의 산지인데, 팔레스틴 최고의 겔마크 산(Jermak, 1,208m)이 있다.

이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원래 세례 요한을 좇았었다. 그러나 그들은 요단강에서 예수님을 만났었고 주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되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좇는 두 사람 중에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1:40-42)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시며 삶의 주인이 되신다. 나를 주님의 제자로 불러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잘 따라가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사람을 낚는 어부(17)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무엇인가? 주님은 제자들을 부르시며 한 가지 사명을 주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1:17)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오라 명하시며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할 것을 말씀하신다. 주님께서 명하실 때 순종하는 자는 복 받은 자이다. 제자로 부르실 때 바르게 반응하고 주님의 말씀 앞에 순종할 수 있는 자는 복 받은 자이다. 제자들은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고기를 잡게 된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후, 물고기를 두 배에 가득 채우게 되었다. 제자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명하신다.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5:10)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부름 받았음을 마음으로 확신하고 주님의 제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결단해야 한다.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따랐던 제자 베드로는 나중에 성령이 충만하여 주님을 전파했다. 베드로는 회개하여 죄 사함 받고 성령님의 역사로 구원 받으라고 말하며 열심히 복음을 전했다. 베드로의 설교 이후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해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2:38-41) 주님의 제자들로 부름을 받은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열심히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됨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그물을 버리고 주를 따름(18)

예수님을 좇아가는 제자들은 어떠한 것도 버릴 수 있어야 하는가? 제자들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이렇게 반응했다. “곧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니라.”(1:18) 어부 생활을 했던 제자들에게 그물은 생활 수단의 중요한 도구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를 좇기로 결심 한 후 그것을 포기했다.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5:11)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주님 앞에서 바른 결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자신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14:33)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예수님을 좇는 자들에게 주님은 반드시 보응해 주신다. 열정이 넘쳤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는데 무엇을 얻겠느냐고 묻는다.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사오니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19:27-30) 자신의 것을 버린 자는 영생을 상속받게 된다.

예수님을 늦게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수 있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다른 것들을 포기하고 주를 좇을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반드시 복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용서함 받아 주님의 자녀가 되어 복된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을 선택하고 주님을 따르기로 결단할 때 주께서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배를 버려두고 주를 따름(19-20)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바르게 결단할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부르심 앞에 그물 뿐 아니라 배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섰다.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1:19-20)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부르시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와 삯꾼들을 배에 남겨 둔 채 예수를 따라 나섰다.”(1:19-20) 누군가를 구원자로, 스승으로 좇을 때는 확고한 결단과 믿음이 필요하다. 구약성경에서 엘리사는 스승 엘리야 선지자를 보고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좇는다. “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왕상 19:20) 엘리사는 엘리야를 좇기 위해 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는 소 두 마리를 잡았으며 소의 기구를 불사르고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다.

예수님은 주를 좇는 자세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제자 중에 또 하나가 가로되 주여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8:21-22) ‘부친을 장사하게 하소서라는 제자 중 한 사람의 질문에 주님은 강경하게 답변하신다. 주님을 좇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시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성령님과 동행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잘 따라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을 잘 따라가는 자, 주를 향한 견고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믿음 생활을 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예수님의 참 제자

예수님의 사역과 함께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우리 몸은 이 세상에 속해 있으나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 나라에 속해 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실 때 모든 세상적인 죄악들을 극복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가 세상 나라를 이길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 되셔서 나를 다스리고 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한다. 바울의 믿음은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3:8)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전부라고 내가 고백할 수 있다면 복된 일이다.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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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23. 05:30

말씀하시면

말씀하시면.

(바른성경) 요한복음 5: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주께서 말씀하시면 불가능함이 없음을 믿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요한복음 5:8 Jesus saith unto him, Rise, take up thy bed, and walk.

(헬라어신약Stephanos) 요한복음 5:8 λεγει αυτω ο ιησους εγειραι αρον τον κραββατον σου και περιπατει

(히브리어Modern) 요한복음 5:8 ויאמר אליו ישוע קום שא את משכבך והתהל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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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성경: 마태복음 26:31-35

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1. 골프 챔피언 에드 파골

에드 파골은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긴 골프 챔피언이다. 그는 10살 때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그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왼쪽 팔이 20cm나 짧아졌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중에도 앞으로 골프 챔피언이 되겠다는 소망과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그렇게 짧은 팔을 가지고 어떻게 골프를 칠 수 있겠소?’라고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는 할 수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날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더욱 굳게 다짐했다. 그 후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수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난 예고를 하셨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1-5).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6-13). 그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는 음모에 가담했다(14-1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내기를 원하셨다. 가룟 유다에게는 다시 한 번 암시적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떡과 포도주로 성찬을 베풀었다(17-29). 예수님께서는 수난 후에 제자들이 흩어지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셨다(30-35). 그 후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어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36-46). 드디어 가룟 유다의 밀고로 예수께서 붙잡히신다(47-56). 예수님은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을 받으셨다(57-66). 베드로는 예수님의 심문 현장을 보러 왔다가 발각되자 엉겁결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에 심히 통곡한다(67-75).

 

 

3.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31-32)

흩어지리라 예언하심

우리는 주를 믿는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를 버리고 흩어질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셨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무리들은 음모를 꾸몄고 그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를 통해서 주님은 잡히신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라 하였느니라.”(26:31)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미리 아셨고, 가슴 아픈 소식이지만 이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신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이 말씀 후 베드로는 주님께 그리하지 마실 것을 말하며 항변했지만 예수님은 그 말을 물리치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밤 잡히시게 된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중에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확신하시며 담대하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환난은 찾아 올 것이다.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며 서로 잡아 주는 일들이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24:9-10) 우리는 주 안에서 확고한 믿음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며 죽기까지 주를 좇아 살아갈 것을 다짐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17:5)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주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아나리라 말씀하심

우리는 주님께서 살아나셨음을 확실히 믿고 살아가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갈 것을 말씀하신 후, 긍정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던지신다. 자신은 잡히고 제자들은 흩어지게 되는 절망의 상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다시 살아난 후 갈릴리로 먼저 가 있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2) 예수님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부활하셨고 제자들은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주님은 죽으실 뿐만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20:19) 채찍질 당하며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실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제자들은 잘 깨닫지 못했었다.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였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18:33-34) 제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아직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을 때 천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천사들은 무서워하는 여자들을 진정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28:6-7) 주님이 누웠던 곳은 비어 있었고 우리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33-35)

주를 버리지 않겠다 말하는 베드로

우리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믿음이 있는가?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떠날 것을 말씀하셨던 예수님께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그의 확신에 찬 믿음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지 않았을 때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를 믿는 믿음도 끝까지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늘 주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16:18-19) 우리 모두가 겸손한 자들이 되고 겸손한 자들과 함께 하는 복된 길을 걸어가야 한다.

자신의 마음만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행하여 주님의 은혜를 입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28:25-2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주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119:116-117) 내가 소유한 믿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임을 잘 깨닫고, 주의 말씀을 사랑하여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누가 붙잡아 주셔야만 주 안에 서 있을 수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셔야만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담대하게 주님께 대답했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26:34) 베드로는 목숨조차 주를 위해 버릴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진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13:38)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는 나의 강점과 약점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을 인정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자들을 붙잡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인하지 않을 것을 말하는 베드로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을 지키며 주와 동행해야 한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이 자신을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자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26:35) 하지만 제자들이 주님을 떠나갔음을 성경은 잘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또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주님 앞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며 믿음을 잘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의 힘으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주님의 제자들로서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믿음을 잘 지키어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즉각적 회개를 하는 베드로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주님을 좇아야 할까?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26:74) 믿음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순간에도 변치 않는 믿음이 참 믿음이다. 목숨을 걸고 믿는 믿음이라야 참 믿음이다. 베드로는 순간적인 위기의식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러나 곧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통회하고 자복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6:75) 우리는 잘못을 아는 순간 즉각적으로 회개했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며 도전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하나님께 아뢰어 드리고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 앞에 나아가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이 땅 가운데서 주와 동행하는 복을 누려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3)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를 위해 중보하고 계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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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2. 25. 05:46

예수님 생각

예수님 생각.

(바른성경) 히브리서 3:1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함께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 신앙고백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여라.

하나님의 자녀인 거룩한 형제로서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히브리서 3:1 Wherefore, holy brethren, partakers of the heavenly calling, consider the Apostle and High Priest of our profession, Christ Jesus;

(헬라어신약Stephanos) 히브리서 3:1 οθεν αδελφοι αγιοι κλησεως επουρανιου μετοχοι κατανοησατε τον αποστολον και αρχιερεα της ομολογιας ημων χριστον ιησουν

(히브리어Modern) 히브리서 3:1 לכן אחי הקדושים חברים לקריאה של מעלה הביטו אל השליח וכהן הודיתנו הגדול אל המשיח ישו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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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성령님과 동행하기

성경: 사도행전 1:6-11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 사해

요단 계곡 남단에는 죽은 바다가 있다. ‘죽은 바다인 사해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것 중의 하나로 길이가 47마일, 넓이는 10마일, 수심이 1,292 피트나 된다. 요단강에서 그곳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의 양만해도 상당량이 되는데 사해는 전혀 소량의 물도 내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사해의 아래에 위치한 지역은 건조한 사막 지대가 되었다. 사해의 염기는 다른 바다의 5배나 되며, 거기에는 어떤 물고기도 살지 못하고 해변에도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다. 마치 하나님의 저주가 그곳에 퍼부어진 것처럼 음울하고 황폐한 분위기이다. 이러한 사해의 모습은 이기적인 삶의 전형이라 하겠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가 자신만을 위해 좋은 것을 다 소유하고자 하는 삶이 아닌, 좋은 것을 나누고 흘러 보내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약속

본장은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의 약속을 기록하고 있다. 본서의 저자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 대한 증거에 이어 본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시작된 초대교회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장은 그래서 본서 전체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최후의 지상 명령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명령에 따라 본서의 내용은 전개된다. 본서를 누가복음의 속편으로 이해할 때에 본장은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본장을 기점으로 하여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본장은 본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이러한 본장은 머리말(1-5), 예수님의 승천(6-11), 다락방 기도(13-14), 가롯 유다의 종국(15-19), 사도로 뽑힌 맛디아(20-26)로 구성되어 있다.

 

3. 예수님(6-8)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정치적 독립을 의미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일은 그들의 알 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더 위대한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 민족에 국한될 수가 없었고 온 세계를 위한 그 분의 증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은 후에 이 일을 해야 했다. 8절은 특별히 사도행전의 흐름을 말해 주고 있다.

 

예수님에 대한 시각의 차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의 의중을 잘 알 수 있다면 복된 일이다. 제자들은 주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에 관하여 이렇게 묻는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1:6) 제자들은 언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후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우실 때가 지금입니까?’하고 묻자.”(1:6) 1세기의 유대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을 위한 지상적이고 정치적 나라를 의미했다. 그리고 주님이 사역하시던 한 때에 그 백성들은 예수님을 강제로 그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교 사역은 이 땅에서의 나라의 세속적인 화려함이 아닌 영적 능력으로 이룩하려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는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두 아들이 주의 나라의 좋은 보좌에 앉기를 요청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0:21) 그 자리는 왕 다음의 좋은 자리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좋은 자리를 요구하는 한 인간의 부족하고 겸손하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영적으로 힘쓰며, 한 마음을 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정치적으로 평화를 가져다주는 분이 아니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사야서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이렇게 기록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우리는 를 위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님이 평강의 왕이시며, 영원한 왕이심을 믿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여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버지의 권한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은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답하신다. ‘때와 시기에서 때는 기회를 의미하며 시기는 지속적인 기간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때에 대한 권한은 오직 한분 하나님 아버지께 있다. 바울은 주님 오심의 때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2)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 우리 주님의 재림의 때도 하나님만 아신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때는 하나님의 권한임을 잘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만의 권한이 있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주님은 한 어머니의 요청 이후,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잔을 마시려니와 좌우편에 앉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임을 말씀하신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0:23) 주님의 때의 권한이 하나님 아버지께만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는 자신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증인(8-10)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주님을 믿으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탐욕적인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참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증인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에 이 일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우리는 명예와 권력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관심을 갖아야 한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온 땅에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렇게 명하신 예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열방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될 때 예수님은 오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주님의 오심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우리는 이 말씀을 잘 기억하며 온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가까운 이웃에게서 부터 열방의 민족에게 까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 원수 마귀를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10:19)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으며, 믿는 자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은 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아직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하늘로 올라 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 가셨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1:9) 개역한글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1:9) 여기서 올리워 가시니의 원어는 <uJpevlaben: 휘펠라벤>이다. 이는 영접하다, 부양하다.’라는 뜻인데 예수님의 승천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승천이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며 이것은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제자들 앞에서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셨고 제자들은 구름에 가린 주님을 볼 수 없었다.

구약에서는 영광의 구름이 등장한다. 하나님을 뵈옵기 위해 시내산에 오른 모세에게 주님은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19:9) 하나님은 그 분의 역사를 그려 가실 때 구름을 등장시키시기도 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은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3) 주를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처소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의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믿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흰 옷 입은 두 사람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로 흰 옷 입은 두 사람, 천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1:10)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을 때에도 그들은 천사를 목격하게 된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28:3) 천사의 형상은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다. 또한 예수님의 무덤의 두 천사를 요한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20:12)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확실히 신뢰하며, 의심 없이 주님을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다시 오실 주님(11)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흰 옷 입은 두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1)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큰 영광과 능력으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1:27)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 모두가 주께서 다시 오심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사도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주님 앞에 악한 자와 선한 자, 모두가 주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자들로서 존귀하신 주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야 한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14:4) 거룩하신 주님처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힘쓰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언제나 받기를 소원하며,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대하며 주와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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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 21. 05:15

기도.

기도.

(바른성경) 누가복음 22:46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자고 있느냐? 시험에 들지 않도록 일어나서 기도하여라." 하셨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누가복음 22:46 And said unto them, Why sleep ye? rise and pray, lest ye enter into temptation.

(헬라어신약Stephanos) 누가복음 22:46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τι καθευδετε ανασταντες προσευχεσθε ινα μη εισελθητε εις πειρασμον

(히브리어Modern) 누가복음 22:46 ]74-64[ ויאמר אליהם למה תישנו קומו והתפללו אשר לא תבאו לידי נסיונ, עודנו מדבר והנה המון ואחד משנים העשר הנקרא יהודה הלך לפניהם ויקרב אל ישוע לנשק ל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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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1. 2. 23:02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

(바른성경) 요한복음 3:5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물과 성령으로 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요한복음 3:5 Jesus answered, Verily, verily, I say unto thee, Except a man be born of water and [of] the Spirit, he cannot enter into the kingdom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 요한복음 3:5 απεκριθη ο ιησους αμην αμην λεγω σοι εαν μη τις γεννηθη εξ υδατος και πνευματος ου δυναται εισελθειν εις την βασιλειαν του θεου

(히브리어Modern) 요한복음 3:5 ויען ישוע אמן אמן אני אמר לך אם לא יולד איש מן המים והרוח לא יוכל לבוא אל מלכות האלה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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