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긍휼함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성경: 다니엘 9:3-10
단 9: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단 9:4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단 9:5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단 9:6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단 9:7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
단 9:8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단 9:9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단 9:10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

1. 유한한 삶을 사는 인간
안식일에 한 랍비가 예배당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의 두 아이가 그만 죽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2층으로 시체를 옮겨 놓고 남편이 오기를 기다렸다. 랍비가 돌아오자 그녀는 랍비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어떤 분이 제게 방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 굉장히 값진 보석을 맡기고 갔어요. 그런데 얼마 안 되어 그가 다시 찾아와 그 맡긴 보석을 돌려 달라고 했어요. 이런 경우엔 어떻게 해야 좋겠나요?’ 그러자 랍비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을 얼른 임자에게 돌려 드리시오.’ 그 후 그녀는 랍비에게 이렇게 말했다. ‘실은 방금 하나님께서 귀한 두 보석을 하늘로 가지고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부여해주신 한정된 시간 동안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자신이 유한한 인생을 살고 있음을 깨닫고, 긍휼함이 넘치시는 하나님께 늘 겸손한 자세로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죄를 사해 주시는 하나님께 간구하고
본장은 다니엘이 서책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예언 즉 칠십 이레의 의미를 깨닫는 내용을 기록한다. 다니엘은 먼저 하나님께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죄악을 아뢰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언약을 만드시고 복을 주시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방백과 열조와 나아가 현재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였음을 회개하고 있다(1-16절). 또한, 다니엘은 자신의 백성이 지은 모든 죄를 사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만이 죄인에게 구원이 된다는 사실을 다니엘은 이해하고 있었다(17-19절). 다니엘이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의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칠십 이레에 대한 의미를 말해 준다. 이스라엘이 고난을 당하는 칠십 이레가 끝나면 예언이 응하고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게 될 것임이 나타난다(20-27절).

3.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고(3-6)
하나님의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단 9:3-6)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은 다니엘은 이스라엘의 회개와 구속을 위해 베옷을 입고, 금식하며 재를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할 것을 결심했다. 그리고 이를 실행에 옮긴 것이다.
‘3절’의 베옷은 두껍고 거친 직물인데 색깔이 어둡고 염소 털로 만들어졌다. 베옷은 애도자들이나 통회자들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겉옷으로 입었는데, 베옷을 입는다는 것은 회개나 자기 비하를 상징한다. 그리고 ‘5절’의 반역하여는 원어로 <Wnd]r:m;:마라드누>이다. 이는 ‘반역하다, 배반하다’는 뜻으로 사람에 대한 반역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반역도 나타내는데 여기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죄악 중에 행하였음을 의미한다. 본문의 앞부분은 이렇게 기록한다. “메대 족속 아하수에로의 아들 다리오가 갈대아 나라 왕으로 세움을 입던 원년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년만에 마치리라 하신 것이니라.”(단 9:1-2) 다니엘은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연수를 깨달았다. 그 내용은 유다 민족이 바벨론에서 70년 간 포로 생활을 한 후에 다시 본토로 돌아가리라는 것이다. 다니엘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깨달은 때는 주전 538년으로, 주전 605년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유다 백성이 포로로 잡혀 간지 67년이 되는 해이다. 다니엘은 서책 즉 예레미야의 예언서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았으며, 하나님께 뜻을 정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한 것이다. “강한 손으로 주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오늘과 같이 명성을 얻으신 우리 주 하나님이여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단 9:15) 우리 또한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며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이 재앙이 아닌 평안과 소망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0-13)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주의 자녀들의 죄악에 대해 징계할 수밖에 없으나, 우리를 향한 주님의 생각이 재앙이 아닌 평안과 소망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주님의 마음을 알고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기간을 정해 슬퍼하며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때에 나 다니엘이 세 이레 동안을 슬퍼하며 세 이레가 차기까지 좋은 떡을 먹지 아니하며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아니하며 또 기름을 바르지 아니하니라.”(단 10:2-3) 민족의 죄악을 품고 울며 밤이 맞도록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맟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로다.”(욜 1:13)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욜 2:12) 자기 생각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어떠한 흐름을 보며 염려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주께 범죄함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됨을 알고(7)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께 범죄함으로 인해 무엇을 당하게 됨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주께 범죄함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됨을 알고, 의로우시고 정직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여 공의는 주께로 돌아가고 수치는 우리 얼굴로 돌아옴이 오늘과 같아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민들과 이스라엘이 가까운 곳에 있는 자들이나 먼 곳에 있는 자들이 다 주께서 쫓아내신 각국에서 수치를 당하였사오니 이는 그들이 주께 죄를 범하였음이니이다.”(단 9:7) ‘7절’의 공의는 하나님의 의로운 본질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에게 원하시는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가리킨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판단하시는 분이며, 사랑하는 주의 백성들에게도 채찍질하시는 분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고발한 이스라엘의 죄는 주의 법도와 규례 즉 율법에의 불순종과 선지자들의 예언 및 경고에 대한 무시로 양분된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결국 하나님께 대한 불신앙과 우상 숭배로 귀착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원인이 되었고,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포로 신세가 되었다. 그래서 다니엘은 자신과 동족이 처한 상황과 그 원인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한 것이다.
거짓이 없으시며 공의로우신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그 모든 길이 공평하며 진실 무망하신 하나님이시니 공의로우시고 정직하시도다.”(신 32:4)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해 벌을 받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레 26:33-34) 우리는 나라와 민족의 범죄함으로 인해 수치를 당할 수 있음을 알고, 의로우시고 정직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에스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러워 낯이 뜨뜻하여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우리의 열조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인하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열방 왕들의 손에 붙이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 같으니이다.”(9:6-7)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위치에 놓이지 말고, 주님의 뜻 안에 거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 공의로우신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않았음을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단 9:14)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의로우시고 정직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정직하시니이다.”(시 119:137)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무시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께 범죄함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됨을 알고 의로우시고 정직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죄악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긍휼과 용서를 구하고(8-10)
하나님의 사람들은 죄악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죄악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긍휼과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며 여호와께 돌아와 용서함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여 수치가 우리에게 돌아오고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마는 주 우리 하나님께는 긍휼과 용서하심이 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패역하였음이오며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부탁하여 우리 앞에 세우신 율법을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단 9:8-10) ‘9절’의 사유하심은 원어로 <hj;ylis]:쎌리하>이다. 이는 ‘용서’를 뜻하는데 항상 용서의 주체가 하나님으로 나타난다. 다니엘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를 했기 때문에 자신의 열조와 열왕과 방백에게 수욕이 돌아왔던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이어서 그는 긍휼과 사유하심이 주께 있다고 고백하면서 유다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달라고 간구했다. 우리는 죄를 고백할 때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간절히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죄악을 행한 이들에게는 형벌을 내리시지만, 회개하면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기도한다.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구하옵나니 주의 인자의 광대하심을 따라 이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되 애굽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백성을 사하신 것같이 사하옵소서.”(민 14:18-19)
사유하시며 긍휼함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느헤미야 선지자는 광야 생활을 회상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오직 주는 사유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저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느 9:17) 죄악을 행한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셔서 광야에 버리지 않으시고 그들을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붙잡혀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또 저희가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 하여 크게 설만하게 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 저희를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사 떠나게 아니하셨사오며.”(느 9:18-19) 우리는 죄를 고백하여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완전히 멸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긍휼의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느헤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의 긍휼이 크시므로 저희를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 이니이다.”(9:31) 주의 자녀를 멸하기를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온전한 믿음으로 바라보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는 선하사 사유하기를 즐기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시 86:5)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우리는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인생의 최고 우선순위가 주님을 영접하는 일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주저하지 말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긍휼함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죄악을 회개하여 용서함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회개하며 여호와께 돌아와 용서함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 55:7) 세상에서 죄악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죄악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긍휼과 용서를 구하고 회개하며 여호와께 돌아와 용서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의 긍휼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단 9:17-19) 구원의 하나님께 믿음으로 기도하여 그분의 도우심을 얻고 살아가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 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 80:3) 우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애통한 마음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는 자! 주께 범죄함으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됨을 알고, 의로우시고 정직하게 판단하시는 하나님께 엎드리는 자! 죄악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긍휼과 용서를 구하고, 불의한 생각을 버리고 회개하며 여호와께 돌아와 용서함을 받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긍휼함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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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성령님의 도움으로 서로 사랑하며 종노릇하는 자!

성경: 갈라디아서 5:13-15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라디아서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성경을 읽을 때는 결코 전속력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도록 해야 한다. 시속 60마일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길가의 꽃을 볼 수 없다. 아마도 빠른 속도로 주행할 때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없고, 구름의 움직임과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느림의 미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의 말씀을 천천히 묵상할 때 큰 은혜가 부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 조금 더 집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자로서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자유한 자임을 밝힌다. 그러나 자유한 자가 그 자유를 육체의 소욕을 좇는 기회로 삼으면 안 되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함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임을 교훈한다. 이는 사랑의 법을 좇아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의미한다. 본장은 3-4장에서 다룬 교리적인 내용들을 갈라디아 교인들의 현실 상황에 적용시키고 있다. 바울은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의 비난과 왜곡에 대해 복음을 변명하고 율법과 비교하여 복음의 기본 교리를 설명한 후, 이제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은 본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규정지을 수 있는 본질적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율법이나 방종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며,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과 서로 종노릇하는 것과 성령은 본장과 다음 장에서 바울이 권고의 핵심을 이룬다. 본장의 첫째 단락은 복음의 본질보다 할례와 같은 외적 인습에 얽매이는 행위를 경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걷는 참 자유를 지킬 것을 권하고(1-12), 둘째 단락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올바로 행사하기 위해 사랑으로 종노릇할 것과 성령을 좇아 생활할 것을 권고한 내용이며(13-18), 셋째 단락은 성령이 금하는 것과 성령으로 행한 자들의 열매를 보여 준다(19-26).

 

3. 서로 종노릇하라(13)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서로에게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5:13) 여기서 육체의 기회는 이기적인 욕망, 윤리적, 도덕적 방종이란 말로 대치할 수 있는데 이는 율법을 자유케 하신 목적과는 위배되는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여러분의 자유를 남용하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5: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에 가슴 깊이 감사하며,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거나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자유를 악용하지 않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 2:1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러분은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인답게 생활하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십시오.”(벧전 2:16)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힘쓰되,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용하지 말고,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교회와 사회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이웃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15:1-2) 자기 옆에 있는 지체가 믿음이 연약하다면 그를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의 약점을 서로 담당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성숙한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의 마음으로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이 충만하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모습을 보이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우리 또한 예수님 처럼 서로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 안에서 자유하며, 서로 섬김의 본을 보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3-45)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기쁨으로 주를 섬기고, 주 안에서 서로 종노릇하는 성숙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이웃을 사랑하라(14)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5:14)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의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5:14) 성경을 요약하면 사랑에 관한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되,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구약 성경은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8) 자신에게 원수로서 행했던 이에게도 사랑으로 대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원망과 불평을 입에서 멀리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주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12:33)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중심을 다하여 예배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예배와 함께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음의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 사랑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율법은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원수까지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지키는 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8-1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흘러갈 수 있도록 힘쓰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5:26) 미움과 시기와 다툼이 끊이지 않는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조심하라(15)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타인을 괴롭히거나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성령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며 서로 조심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5) 여기서 물고는 원어로 <davknete: 다크네테>이다. 이는 물다, 찌르다, 괴롭히다라는 뜻으로 악한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가리킨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헐뜯고 해친다면 둘 다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5:15) 자신이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아니면 이웃을 시기한 나머지 형제와 자매를 찌르고 괴롭힌다면 그것은 함께 망하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이러한 미성숙한 자가 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래도록 믿음 생활을 했지만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육신에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타까운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끊이지 않는 영적인 전투가 이루어지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고단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5-9)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 삼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형제와 자매를 사랑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시기와 다툼을 조심하고, 진리를 따라 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3:14) 강퍅한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서로 물어뜯는 괴로운 삶을 살지 말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서로 사랑하며, 복음 전파의 삶을 사는 자!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에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복음 전파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화를 잘 다스리고 악한 것을 생각하기를 멀리하는 그리스도인, 겸손하게 행하며 잘 인내하는 그리스도인, 이렇게 사랑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잘 전파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서로에게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며, 서로 섬김의 본을 보이는 자!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지 말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 타인을 괴롭히거나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성령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며 진리를 따라 행하는 자!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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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자!

성경: 로마서 8:1-8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1. 그리스도인

이 세상에서 위선자가 되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위선자는 외관상으로 그리스도인이므로 세상의 증오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는 존재 가치가 없는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하고 자기 자신 또한 증오하며 마귀마저도 그를 멸시할 수 있다. 위선자들이야말로 마귀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일은 아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가는 것보다 그들은 훨씬 더 큰 고행을 하면서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실하기를 원하나, 그들은 선하게 보여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부르심을 받은 주의 백성들인 우리가 위선자로서의 삶이 아닌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속의 은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그에 근거한 구속의 은혜를 증거한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주권자가 되시는데 누구도 그 사랑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의 구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본장에서 구원의 영원성을 길게 논한다. 구원은 그리스도가 속죄하여 주신 은총과 거기 따르는 성령의 살리는 역사로 이루어진다. 이 구원의 성취는 하나님 자신의 희생으로 된 것인 만큼, 그것은 하나님과 같이 영원하다(1-17). 그러므로 이 구원은 고난 때문에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 중에서 완성되어 간다(18-26). 그러나 모든 고난은 신자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고 도리어 합동하여 유익을 준다. 그렇게 되는 원인은, 신자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실에 있다(27-30). 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끊는 방해물은 없다.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된 것이므로 영원한 것이다(31-39).

 

3. 예수 안에 있는 자(1-2)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어떠한 은혜를 허락하셨는가? 예수님과 무관한 삶을 살 때는 인간의 죄의 해결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면 인간의 원죄에 대해 누구도 정죄하지 못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받는 일이 없습니다.”(8:1)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 거듭난 자들을 정죄할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 있는 자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8-19)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 행위의 악함으로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8:2)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이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음을 알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율법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을 이는 아무도 없으나, 그렇다고 율법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는 주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가 없고,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 가운데서 기쁨으로 주를 섬겨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영을 따라 행하는 자(3-4)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무엇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세상에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갔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율법 아래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위해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여기서 보내어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묘사한다.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의 타락한 성품 때문에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 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8:3)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 값을 담당해 주셨음을 알고, ‘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되었음을 선포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모습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영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면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도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어주셨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며 이제는 육신의 법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닌, 영을 따라 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8:4)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경건 생활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14:5)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말씀 위에 서기 위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육신의 생각 VS 영의 생각(5-6)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고 영의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의 삶이 다름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8: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님의 일을 생각합니다.”(8:5)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또는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옳지 않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육신을 따라 사는 자인지, 아니면 영을 따라 사는 자인지 잘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로서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도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소망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려움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의 자녀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주인공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고 하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그 생각의 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6) 여기서 생명과 평안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축복에 처하게 됨을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로서 영의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고 영의 생각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께서 허락하신 생명과 평안 가운데 거하기를 소망한다. 구원받은 우리가 개인적인 종말이나, 역사적인 종말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우리는 보이는 육의 세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영의 생각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직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말씀을 따르는 영적인 주의 제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거듭난 주의 백성으로서 성령님의 감동에 민감하고,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며, 조금씩 변화되어 가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8:7-8)

바울은 자신의 마음속에 두 가지 법이 싸우고 있음을 말한다. 그 법은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4-25) 육신을 입고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죄악으로 향하는 마음보다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대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고, ‘가 속한 공동체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점점 더 풍성히 맺어지기를 소망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깨닫고,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자!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말씀 위에 서기 위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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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

성경: 이사야 51:1-6

51: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51: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51: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51: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1: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51: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1. 사랑의 하나님

한 작가가 그가 지나온 해변가 모래 위에 새겨진 그의 발자국을 돌아다보았다. 그가 똑바로 걷고자 전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로가 형편없이 비뚤어졌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것이 나의 삶이구나. 모든 발자국마다 비뚤어지지 않은 것이 없구나!’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 그가 깨었을 때 모래 위엔 어떤 발자국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조수가 모든 비뚤어진 발자국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게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주는 신호이구나.’라고 속삭였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비뚤어지고 넘어진 우리의 삶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해서 그들이 때가 이르면 구원을 받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잠시 징계를 받아 이방에게 정복당하고 바벨론 나라의 포로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그들이 포로에서 풀려나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올 것을 말씀한다. 그리고 그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을 예언함으로써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로 갈 것을 말씀하신다. 본장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받을 하나님의 축복을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했던 언약을 기억하여 이스라엘에게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1-3). 하나님의 율법은 알려지고 정의와 공평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워질 것이다(4-8).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힘으로 다시 일어나셔서 출애굽 때 하셨듯이 그 백성들을 구하시리라고 기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9-16).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깨어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심판의 때가 다 지나갔음을 말씀하고 계신다(17-23).

 

3. 언약의 하나님(1-3)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51:1) 여기서 찾아 구하는은 갈급한 심령으로 어떤 것을 진지하게 찾는 것을 의미한다.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을 기억해 보라고 한 것이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의 말을 들어라. 정의를 추구하고 야훼를 찾는 자들아. 너희를 떼어낸 바위를 우러러보고 너희를 파낸 동굴을 쳐다보아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며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약속하시며 그 약속을 지키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51:2)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에게 고향을 떠나 지시하는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신다. 그 후, 아브람이 도착한 곳은 가나안 땅이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그와 약속을 하셨다. 약속의 내용은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 곧 하나님의 백성이 많을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져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약 사백 년 후에 장정의 수만 육십만이 될 만큼 많아졌다(참조, 12:37). 그리고 그 많은 후손들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 또 친히 찾아오셔서 그들을 노예 상태로부터 구해 주셨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웠다. 우리는 주의 자녀들이 믿는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되심을 깨달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51:3) 여기서 창화하는노래, 음악을 뜻한다. 주로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정교하고도 감격이 넘치는 찬양을 가리킨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다시 축복하여 그 황폐한 땅을 에덴처럼 만들고 그 사막을 내 동산처럼 만들 것이니 이 땅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감사와 찬송이 있을 것이다.”(51: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그들을 회복시키셔서 그들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나의 삶의 형편이 어떠하다고 할지라도 가 약속의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친히 삶에 간섭하여주신다면 의 삶은 형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끝까지 인내하며 약속의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 그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24: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갖고 언제나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주와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 지금이 주님을 만날때이다. 자신의 삶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분을 만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을 의지하고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께서 베푸시는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시는 하나님(4-5)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이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51: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뭇 백성들아, 똑바로 나를 쳐다보아라. 부족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훈계가 나에게서 나간다. 나의 법이 뭇 백성의 빛이 되리라.”(51:4)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은 온 세상의 빛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우리의 귀를 그분께 기울이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그는 하나님의 복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33:12)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 되신다. 우리 나라와 민족이 왕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소망하고, ‘가 속한 공동체가 주님 안에 거하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눈에 든 주의 백성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판단하시는 주가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51:5) 여기서 공의란 그 절대 공정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뜻하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사랑하신다.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의 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나의 구원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가 능력으로 뭇 백성을 재판하겠다. 섬들이 나를 우러러 바라보며, 나의 능력을 의지할 것이다.”(51:5) 하나님은 의로우신 능력의 주가 되시는데, 그분께서 일으키시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바벨론 나라의 포로로 계속 놔두지 않으셨다. 자신의 백성들을 친히 자유하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를 사랑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능력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96:13)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두움을 물리치시고 만민 앞에 빛으로 임하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기를 소망한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빛이 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여호와의 구원(6)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51: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그 아래 땅을 살펴보아라. 하늘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이 낡은 옷처럼 해어질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하루살이처럼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구원은 영원하며 나의 의는 쇠하지 않을 것이다.”(51:6)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이루지 못할 일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한번 하기로 작정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의 주가 되신다.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서 우리는 잠잠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하루살이와 같이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하는 작은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아무리 선한 의도로 어떤 일을 행한다고 해도 그 일을 온전히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이 전혀 없으신 완전하신 주가 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그 일은 반드시 성취된다. 우리는 계획하신 일을 반드시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인정하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102:26) 인간의 모든 것이 변함에 비해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주가 되시는데, 그분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길 원하신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이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열방에 있는 영혼들이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도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나, 예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에 거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모습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죄로 가득한 인간은 어떻게 해야 죄에서 자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늘 깨어있어 주를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0-12)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구원의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창세 전부터 를 택해 주신 주를 기쁘게 맞이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구원의 주님, 믿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103:17)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인자하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인자하신 주를 경외하는 자, 그는 영원토록 의로우신 주와 동행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과 능력은 변함이 없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확실한 구원으로 인도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고 악행을 일삼았다. 그러나 변함없는 공의로우신 주의 빛과 주의 사랑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들은 포로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의 심판의 목적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널리 퍼지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겸손히 그분 앞에 엎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잘 깨닫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10:27-29) 하나님의 일은 택한 자를 위한 것이며 나아가 영원한 나라를 만드시려는 그분의 거룩한 계획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통해 얻게 될 영원한 복을 기억하고,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과 동행하여, 주의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자! 어두움을 물리치시고 만민 앞에 빛으로 임하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빛이 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자!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구원의 주를 바라보고, ‘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창세 전부터 를 택해 주신 주를 기쁘게 맞이하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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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0. 14. 14:40

율법의 완성, 사랑으로!, 로마서 13:8-10

말씀: 율법의 완성, 사랑으로!

성경: 로마서 13:8-10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13: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1. 작은 사랑

인디애나 주에 잭 하일목사가 시무하는 교회가 있다. 그 교회에 출석하는 여신도 한 명이 목사님을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다. 그녀는 매우 부자였다. 그녀는 세상이 재미없고 못마땅해 살고 싶지 않다.’고 불평을 했다. 이에 하일목사는 매일 누군가를 위해 좋은 일 한 가지씩 만 해보시오. 내일은 병원에 있는 외로운 환자에게 장미꽃을 사다 주고, 모레는 맹인 수용소에 가서 먹을 것을 나누어주시오. 그리고 다음 날은 교인 중에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 케익을 만들어 주시오.’하고 처방을 해주었다. 그대로 순종한 여신도는 며칠 후 다시 와서 목사님, 내 병이 나았습니다.’하며 감격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작은 사랑을 나누는 우리의 삶이 되어 하나님 안에서 행복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성도의 삶

바울은 본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정권에 순종해야 할 것을 가르친다. 정권에 대한 순종의 이유는 모든 권세를 다 하나님이 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의 권력자가 공의를 행하고 공동체의 평안함을 위해서 일할 때는 그의 권위에 순종하고 물심 양면으로 그를 도와야 한다(1-7). 사랑은 율법의 완성으로 무겁고 괴로운 율법을 기쁘고 즐겁게 지킬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에서 살아갈 때 자신만을 돌아보지 말고 항상 이웃의 형편을 돌아보고 사랑을 베풀기에 힘써야 한다(8-10). 또한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삶 속에서도 성도는 깨어서 살아야 한다. 여기서 깨어 있다는 것은 말씀의 빛으로 갑옷을 입음과 그리스도로 옷 입음을 말한다(11-14). 이와 같이 성도들은 믿음과 삶이 온전히 말씀가운데 일치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3. 새 계명

바울은 성도들에게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떠한 빚도 지지 말 것을 명하면서 사랑을 행하는 자는 모든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다. 이 모든 계명의 근본 사상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근거한 사랑이었을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는 자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 이웃에게 해를 끼칠 경우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사랑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율법을 십자가에서 완성하시고 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심에서도 나타난다. 새 계명의 내용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사랑하셨듯이 성도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신약의 성도는 구약의 율법보다 차원이 높은 사랑의 법을 좇아 살아가는 자들이다.

 

사랑의 빚(8)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놓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죄 씻음을 받고 천국 백성이 되었다.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신 사랑에 빚진 자들이다. 우리는 주님께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모든 이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13:8)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을 가슴 깊이 경험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 사랑을 경험한 자들은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누구든지 대접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없다. 우리는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7:12)

우리는 예수님께서 를 사랑하셨듯이 의 이웃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39-40)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는 자로서 사랑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10) 우리는 무슨 일을 행할 때 사랑으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우리 스스로는 이루기 어려운 그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가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4) 우리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최고의 법을 지키는 것이 될 것이다.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2:8) 우리 모두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새기고,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로 사랑으로 모두를 대하는 삶을 사시기를 축복합니다.

 

계명(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떠한 계명을 주셨는가?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다. 그러나 이러한 계명과 함께 중요한 것은 사랑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계명을 사랑이 포괄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13: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웃에 대한 이러한 계명을 주셨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살인하지 말지니라. 간음하지 말지니라.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20:12-27)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이러한 계명을 잘 지키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사랑하라는 말씀을 잘 지킬 수 있기를 위해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10:27)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사랑은 무엇인가? 바울은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성령님의 은혜로 사랑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까? 우리는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 없는 자들이다.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율법은 우리를 범죄자로 정하게 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완전한 자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하며, 서로 용서하며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너희가 만일 경에 기록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한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2:8-10) 만약 우리의 삶이 주님께서 명령하신 사랑하며 사는 삶이라면 최고의 법을 지키는 삶일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흘리신 십자가 보혈의 은혜로 주 안에서 영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이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는다면 그는 어리석은 자 일 것이다. 우리는 거듭난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바울은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 하라고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5:13)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가되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사랑으로(10)

종말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더욱 그리스도의 새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울수록 사단의 세력은 더욱 기승을 부려 악한 일들이 세상에 더욱 많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운 세상가운데 빛으로 밝히 드러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사랑의 원리를 가지고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생이 사랑의 실천이었던 것처럼 성도의 생활 원리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세상 가운데 그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법을 가지고 있지만 그 법만으로는 세상이 온전해 질 수는 없다. 어떤 면에서 법은 인간을 황폐하게 하지만 사랑은 법으로 인해 황폐화된 인간의 마음을 되살아나게 할 수 있다. 우리는 사랑이 인간의 부족한 율법의 완성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런 사랑의 행동 원리를 따라 그리스도인들은 소외받고 있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고 굶주린 자들의 배고픔을 채워 주어야 한다. 우리의 이러한 삶의 모습을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율법의 완성, 사랑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우리가 사랑으로 살아가게 된다면 이웃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10)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에게 해로운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한다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일입니다.”(13:10) 예수님의 충만한 사랑을 가 먼저 힘입고, 성령님의 은혜로 율법의 완성인 그 사랑으로 사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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