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왕 되신 부활의 주님을 믿는 믿음!

성경: 요한복음 20:24-29

20: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0: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고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0: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1. 믿음

지식인들은 대개 생생한 기적이 기독교에 실재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한 연설가가 교회의 일꾼들을 모은 화합에서 비웃으며 말했다. ‘나는 성경의 기적들을 안 믿어요. 여기 서있던 사람 중 누가 기적을 보여 줄 수 있나요?’ 그때 한 건장한 남자가 일어나서 말한다. ‘여러분, 이전에 내가 주정꾼에다 깡패였던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런 내가 변화되어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 자신이 곧 기적이 아닙니까?’ 청중들이 옳소, 옳소하고 소리쳤다. 연설가는 당황해서 이렇게 대꾸한다. ‘그건 당신이 새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죠!’ 그 청년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을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단호한 대답이었다. 우리의 삶 가운데도 언제나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넘쳐나야 한다. 주님의 은혜로 큰 믿음을 가지는 자가 되고 성령님께서 도움으로 주 안에서 계속된 삶의 변화를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2.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무덤에 있던 예수님은 이미 예언하신 대로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자신을 보이시고 그들에게 복음 증거의 사명을 부여하신다. 특히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도마는 예수의 부활을 의심하였다가 예수님을 직접 만나게 된다. 그 후에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한다. 사도 요한은 이 복음서를 기록하는 목적을 기록함으로써 부활하신 예수를 믿음이 곧 구원임을 증거하고 있다. 본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과 그 영향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본서의 기록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부활 사건에 이르러 더욱 강력하게 강조되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비어 있는 무덤(1-10), 부활하신 예수님(11-18),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예수님(19- 23), 의심 많은 도마(24-29), 본서의 기록 목적(30-31)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사도 요한은 신앙의 가장 핵심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것임을 본장을 통해 최종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3. 의심 많은 도마(24-25)

도마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고 있는가?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확고한 믿음이 있는가? 오늘 말씀에는 의심이 많았던 예수님의 제자인 도마가 등장을 한다. 우리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다. 다시 사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게 되는데, 그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다.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써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20:24) 도마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도마에 대한 성경사전의 상세한 기록은 이렇다. 도마: Thomas(인명)(qwma'", Thomas)쌍동이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다. 공관복음에서 이것은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이름이기는 하나(10:3,3:18, 6:15, 1:13) 요한복음에서는 그 이름에 디두모(쌍동이, 히브리어 !milT 도밈, 25:24와 비교)라는 설명이 가해져 있다(11:16, 20:24, 21:2).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사는 마리아의 형제 나사로의 병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돌로 때려죽일 위험을 무릅쓰고 유대로 가려고 할 때(11:7, 8), 도마는 예수님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좇으려고 친구 제자들에게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라고 말했다(11:1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이별을 앞두고 그들을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는 것, 예수님께서 어디로 가는가, 그 길을 제자들은 알리라는 것을 말했을 때 도마는 이렇게 말한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여기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하신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1-6). 부활하신 주께서 처음으로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다는 말을 듣고 도마는 내가 그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라고 말한다(20:24-25).

하나님은 이런 도마도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도마의 이 의심을 다른 사람의 유익이 되도록 쓰셨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도록 도마는 의심했다.’ 8일 후 나타나신 주님께서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도마에게 그가 구하는 표적을 보이신다. 그리고 도마는 이렇게 답한다. 그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말하고 주를 믿었다. 이렇게 도마는 요한복음을 통하여 다른 공관복음에서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도마는 후에 페루시아, 또는 인도에서 전도하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믿지 않는 도마

도마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못했다. 다른 제자들의 주님을 보았다는 증언 앞에 도마는 자신이 직접 못 자국에 손가락을 넣어 보아야만 믿겠다고 말한다.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20:25)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가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면 보지 않고서도 예수님의 다시 사심을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의 믿음은 어떠한가? 우리는 마음이 강퍅한 자들이 되지 말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에서 모세의 시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그 때에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며 나를 탐지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도다. 내가 사십년을 그 세대로 인하여 근심하여 이르기를 저희는 마음이 미혹된 백성이라 내 도를 알지 못한다 하였도다.”(95:8-10)

우리가 믿음이 약해지면 어려운 환경을 만났을 때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동안 광야 생활이 힘들어서 주님을 향해 입술로 범죄 하기도 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을 믿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믿음이 약해져 있을 때와 무관하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그 분의 역사를 이 땅 가운데 행하고 계심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믿음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3:12) 우리는 서로 기도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믿지 아니하는 악심으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는 일들이 없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하고 그 분을 더욱 사랑함으로 주님이 행하시는 모든 일들을 믿는 자로써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자비하신 예수님(26-27)

평강을 비는 예수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주님은 평강을 주시는 분이시다. 그 주님은 나에게는 어떠한 분이신가?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말씀하신다.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고.”(20:26) 주님은 우리가 연약할 때도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 하시며 우리가 주님을 믿는 확실한 믿음 가운데 거하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인 를 위하시고 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이루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시다.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시오리니 주께서 우리 모든 일을 우리를 위하여 이루심이니이다.”(26:12) 우리를 위하여 이루시는 평강의 주님과 함께 힘 있는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가 연약해져서 포기하고 싶을 때에도 주님은 를 바라보고 계시고, ‘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해 삶 가운데 관여하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며 화평케 하는 나의 언약은 옮기지 아니하리라 너를 긍휼히 여기는 여호와의 말이니라.”(54:10) 우리는 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는 주님 붙잡고 승리해야 한다.

 

옆구리를 보이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고 말한 도마에게 자신의 옆구리에 넣으라고 말씀하신다. 믿음이 없는 자에게 친히 보여주신 주님의 사랑은 한없이 크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우리는 주님의 말씀만으로도 믿을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 연약할 때도 우리의 삶에 관여하셔서 우리의 믿음의 성장 과정을 돕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크고 놀랍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하나님은 자비하심으로 죄악을 사하사 멸하지 아니하시고 그 진노를 여러 번 돌이키시며 그 분을 다 발하지 아니하셨으니.”(78:38) 진노의 계획 가운데서도 여러 번 참으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가 주님을 경외할 때 주님은 를 불쌍히 여겨 주심을 알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103:13-14) 의 믿음 없으심을 크게 벌하지 않으시고 인내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며, 주님을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전심으로 그 분을 경외하는 가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5. 복된 고백을 하는 믿음(28-29)

주님을 고백하는 도마

우리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믿음이 없어서 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했던 도마, 결국 그는 주님의 자비와 긍휼함을 입고 주님께 아름다운 고백을 한다.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20:28) 우리가 믿는 주님은 살아계신 분이시고 나를 바라보고 계신 주님이 되신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와 찬양과 감사로 나아감으로 아름다운 고백을 올려드릴 수 있는 체험이 넘쳐나야 한다. 주님의 보좌는 영원함을 알고 우리는 그분을 높이며 살아가야 한다. 시편기자는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45:6) 제자들은 풍랑을 잔잔케 하신 예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14:33) 우리는 삶 가운데서 많은 체험을 통해서, 아니면 작은 체험을 통해서, 주님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복된 믿음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그 믿음은 하나님께 기쁨이 된다.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한 도마의 고백 이후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복 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20:29) 주님께서 말씀하신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 도마의 신앙 고백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손과 발의 상처를 모두 확인하고 본 것에 근거한 신앙이었다. 도마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믿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장차 복음을 듣고 믿게 될 신약 성도의 복됨을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성경을 통해 주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로서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복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들이 될 것이다. 바울은 믿음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11:1) 우리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세계를 바라 볼 수 있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보지 못하고서도 믿는 믿음을 말한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 우리 모두가 성령님의 은혜로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구원 받은 자로서 기쁨 가운데서 넉넉히 즐거워 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6. 왕 되신 예수님

우리는 왕 되신 예수님을 좇는 삶을 살아간다.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서 행하신 일들은 모두 다 기록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주의 행하신 일들을 통해, 또는 우리에게 지금도 행하시는 예수님, 왕 되신 주님을 잘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21:25) 도마에 대한 예수의 책망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행동은 분명 불신앙이 전제된 것이었다. 그는 부활의 여러 가지 증거들을 단순히 의심한 것이 아니라 있을 수 없는 일로 치부해 버렸던 것이다. 도마의 사건은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주고 있을까? 우리는 성경에서 기록한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그 사건을 믿는 충분한 믿음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은 늘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의 이름은 임마누엘이 되신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우리는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평강의 왕 되신 주님을 믿고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우리 모두가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왕 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영적전투에 넉넉히 승리하며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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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8. 11. 06:55

순종.

순종.

(바른성경) 골로새서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주인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주님을 두려워하여 진실한 마음으로 하여라.

주님 앞에서 서로에게 순종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골로새서 3:22 Servants, obey in all things [your] masters according to the flesh; not with eyeservice, as menpleasers; but in singleness of heart, fearing God:

(헬라어신약Stephanos) 골로새서 3:22 οι δουλοι υπακουετε κατα παντα τοις κατα σαρκα κυριοις μη εν οφθαλμοδουλειαις ως ανθρωπαρεσκοι αλλ εν απλοτητι καρδιας φοβουμενοι τον θεον

(히브리어Modern) 골로새서 3:22 העבדים שמעו בכל דבר אל אדניכם לפי הבשר לא בעבודה למראה העין כמבקשי חן בני אדם כי אם בתם לבב כיראי האלה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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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7. 17. 08:20

기쁨.

기쁨.

(바른성경) 시편 30:5 주님의 노여움은 잠깐이고, 주님의 은총은 평생이다. 저녁에는 눈물이 머물더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이다.

주님의 노여움은 잠깐이고, 주님의 은총은 평생이다. 저녁에는 눈물, 아침에는 기쁨이 올 것을 믿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시편 30:5 For his anger [endureth but] a moment; in his favour [is] life: weeping may endure for a night, but joy [cometh] in the morning.

(헬라어구약Septuagint) 시편 30:5 εξαξεις με εκ παγιδος ταυτης ης εκρυψαν μοι οτι συ ει ο υπερασπιστης μου

(히브리어Modern) 시편 30:5 כי רגע באפו חיים ברצונו בערב ילין בכי ולבקר רנ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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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6. 20. 15:15

말함.

말함.

감사의 소리, 주님의 놀라움을 말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바른성경) 시편 26:7 감사의 소리를 들려주고, 주님의 모든 놀라운 일을 말하겠습니다.

(영어KJV) 시편 26:7 That I may publish with the voice of thanksgiving, and tell of all thy wondrous works.

(헬라어구약Septuagint) 시편 26:7 εισακουσον κυριε της φωνης μου ης
εκεκραξα ελεησον με και εισακουσον μου

(히브리어Modern) 시편 26:7 לשמע בקול תודה ולספר כל נפלאותי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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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도

마음으로도.

(바른성경) 마태복음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입술뿐만 아니라 마음으로도 주님을 가까이 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마태복음 15:8 This people draweth nigh unto me with their mouth, and honoureth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 is far from me.

(영어ASV) 마태복음 15:8 This people honoreth me with their lips; But their heart is far from me.

(헬라어신약Stephanos) 마태복음 15:8 εγγιζει μοι ο λαος ουτος τω στοματι αυτων και τοις χειλεσιν με τιμα η δε καρδια αυτων πορρω απεχει απ εμου

(히브리어Modern) 마태복음 15:8 העם הזה נגש בפיו ובשפתיו כבדוני ולבו רחק ממנ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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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합니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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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주일설교 영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7. 15:34

주님은 여전히 내 하나님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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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7. 11:24

주님 앞에서의 인생, 시편 144:1-11

주님 앞에서의 인생, 144:1-11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144: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144:2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144: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144:5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

144:6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

144:7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144:8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의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44:9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144:10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144:11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 유머: 관리비 청구서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가 없네. 어디로 갔지.. 분명히 여기 이 가방에 두었는데벌써 30분이 넘게 가방을 뒤지는 아내. ‘안되겠어, 관리사무소에 가봐야겠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재발급을 요청하니 이미 납부가 되었다고 한다. 더 당황한 아내는 신랑에게 전화해 봤다. ‘아니 내가 그런 거 내는 거 봤어요?’ 남편이 말한다. 점점 더 오리무중이다. 다시 집으로 와서 다시 가방을 찾아보다가 점점 사색이 되어가는 아내. 며칠 전 아버님 생신이어서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외출을 하면서 우체통에서 편지뭉치들을 꺼냈다. 식구들과 만나서 식사를 한 후 헤어지면서 뒤늦게 생각나 아차하며 아버님께로 갔던 아내. ‘아버님 이거~’ ‘머 이런 걸 됐다’ ‘아이 아버님 성의니까 받아주세요.’ ‘괜찮대도 그러는구나.’ ‘아잉, 아버님.’ 극구 사양하시는 아버님께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자켓 주머니에 넣어드렸던 봉투가 아내 손에 그대로 남아 있다니. ㅠㅠ

 

2. 도우시는 하나님

다윗은 전쟁에서 여러 번 기적적으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도움을 찬송하고 있다(1). 다윗은 사울의 손에 여러 번 죽을 뻔 했으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것이 너무 신기하여서, 그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지금도 갖고 있다(2-4). 그리고 현재 당하고 있는 난관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원한다(5-11). 다윗은 자기를 괴롭히는 원수들의 특징으로 '거짓 행동' 을 고발한다. 다윗에게 있어서 궤사한 말과 그런 행위의 소유자는 가장 큰 대적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진노가 나타나기를 청원한다. 또한 장차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안정될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현재의 사실처럼 감사한다(12-15).

 

3. 찬양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훈련시키시어 강한 용사가 되게 하셨음을 찬양하면서, 자신을 핍박하는 대적들의 거짓됨에 대해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셔서 자신을 곤경에서 구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또한 시인은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는 복에 대하여 증거하며,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심을 말한다.

 

4. 하나님과 인생(1-4)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인생은 어떠한가?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며,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을 구원하시고, 인간을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실 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 최고의 능력이 있으신 분은 바로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반석이신 여호와

다윗은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심을(1) 고백한다. 다윗이 많은 전쟁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다윗의 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이는 전쟁, 보이는 싸움, 보이는 환경의 어려움, 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전투, 그 어디에서라도 승리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보이는 환경 가운데서, 내게 원수라고 생각되는 자들을 대할 때에도 영적인 부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4)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반석이신 여호와만을 바라고 의지하며, 강건한 자들로 잘 훈련 받아야 한다. 바울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10-11)고 말한다.

 

나의 사랑, 요새

다윗은 하나님께 나의 사랑, 나의 요새, 나의 산성, 나를 건지시는 이, 나의 방패이심을 말하며,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2)고 고백한다. 하나님께 사랑의 노래와 고백을 올려드리는 다윗의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며,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하나님이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다윗은 능력으로 띠를 띠우사 자신을 치는 자들로 굴복케 하시며, 원수와 자신을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심을 말하고, 저희가 둘러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이 승리자이시고, 승리케 하시는 분이심을 말하며,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인다(삼하 22:40-48).

 

인생이 무엇이기에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 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3-4) 다윗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인생을 생각해 주시는 주님을 묵상하는데,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짧은 시간동안 작은 사람으로서 살아간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큼을 고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좋은 환경과 형편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겸손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146:3-4) 우리는 한 평생 사는 동안 사람들과 원수를 맺어서도 안 되나, 혹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주님을 의지하고 불변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5. 원수들 앞에(5-8)

하나님 앞에 선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원수들은 있을 수 있다. 우리 앞의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적들이 생길 수도 있다. 뚜렷한 이유가 없지만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원수들 앞에서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 우리를 무너뜨리려하는 어떤 이들에게, 그들이 취했던 행동과 같은 태도로 대한다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이 아닐 수 있다. 오직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시선을 결코 빼앗기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5)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님, 하늘을 낮게 드리우시고, 내려오시며, 산들을 만지시어 산마다 연기를 뿜어내게 하십시오.”(144:5)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고, 만물은 그 분 앞에 진동하기도 한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19:18)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강행하시도록 탄원하는데,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64:1-2)라고 말한다.

 

원수들을 무찌르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면 원수들은 물러가게 된다. 다윗은 기도한다.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6)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뢰의 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77:17-18)

 

주의 손을 펴사

주님은 우리를 구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7)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높은 곳에서 주의 손을 내미셔서 거센 물결에서 나를 끌어내시고, 외적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144:7) 또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엄몰하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로 내 위에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69:14-15) 하나님만이 만물 중에서 높으신 분임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여 큰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93:3-4)

 

거짓을 말하는 이들

원수들은 대부분 거짓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거짓에 반응할 이유는 없다. 다윗은 고백한다.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의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7)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12:2),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셀라).”(62:4)

 

우리는 원수들 앞에 지혜롭게 반응해야 한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모든 일을 고하며 도움을 구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인내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태도를 갖는 그리스도인들은 복 받은 자들이 분명하다.

6. 구하시는 주(9-11)

주님을 찬양

우리는 주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원수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승리케 하실 주, 승리케 하신 주님을 높여야 한다. 다윗은 주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9) 주님을 잘 의지하여, 되어진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만 찬양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150:3-5)

 

구하여 주소서

주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0-11)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여호와께서 너희 곧 너희와 또 너희 자손을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115:14-15)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미래를 책임지시며 그들의 삶을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께 잘 붙들리어 주님 앞에서 주님께 합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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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벧전 3:8-12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3: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

3: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3:12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1. 각국 여자들의 이상형

미국: 운동을 잘하는 남자

프랑스: 똑똑한 남자

일본: 돈 많은 남자

한국: 운동 잘하고 똑똑하고 돈 많은 남자

2. 성도의 가정생활

저자는 성도들의 가정생활에 관해 말한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외모보다는 마음을 다듬어야 하고, 남편은 아내가 더 연약한 그릇임을 알고 소중하게 여길 것을 권면한다(1-7). 그리고 성도들 상호간에는 사랑하고 서로 불쌍히 여기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복을 빌어 주라고 권면한다(8-12). 한편, 악행으로 인한 고난보다는 선행으로 인한 고난을 받게 된 것이 복인 줄 알고 감사할 것을 권면한다. 고난을 받을 때에는 인내하고 믿음과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은 자에게는 대답할 수 있도록 항상 준비해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3-17). 그리스도께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신 사건을 언급하고 세례의 참 뜻이 전인격의 변화임을 강조한다(18-22).

 

3. 형제에게(8-10)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게 어떻게 대하는 것을 기뻐하실까? 우리는 얼마나 서로를 사랑하고 있으며, 얼마나 서로를 불쌍히 여길 수 있을까?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이 어떠하기를 바라실까?

 

형제 사랑(한 마음으로, 형제 사랑)

베드로는 한 마음으로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할 것을 말한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 3:8)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 앞에 교만하지 말고 긍휼을 입기를 구해야 한다. 다윗은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분이심을 고백한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103:13) 주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일하시게 되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 사도들은 기도한 후 성령이 충만하여 말씀을 전하였고, 믿는 무리는 서로 통용하는 역사기 일어났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4:32)

우리는 서로 나누며 아름다우신 주님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주님께로부터 부여되는 사랑의 충만함 속에서 서로에게 먼저 사랑으로 다가가야 한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12:10) 바울은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우는 자가 되라고 말한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12:15) 우리가 속한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으로 주 안에 거해야 할까?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마음과 같은 뜻으로 합하라고 말하라고 말한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전 1:10) 그리고 에베소 교회에 모든 어두움에 속한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라고 말한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4:31-5:2) 골로새 교회에는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로서 살아갈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입고.”(3:12)

우리는 이러한 말씀에 도전을 받고, 행함과 진실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사도요한은 가이오에게 행함과 진실로 사랑하라고 말한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요일 3:18-19)

 

도리어 복을 빌라(, 욕을 갚지 말고)

우리는 꼭 모든 이들을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예수님은 원수조차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악과 욕을 그대로 갚지 말고 복을 빌 것을 말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내 앞의 원수를 바라보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20:22)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 것과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5:39),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또한 예수님은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고 모욕자를 위해 기도할 것을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6:27-29) 우리는 우리 앞의 원수를 바라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원수 갚는 것은 주께 있으니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한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19-21)

 

4. 지켜라(10-11)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야 할까? 주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도 연약하여서 세상에 속한 자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이 살아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변화받기를 위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생명을 사랑하는 자(악한 말, 거짓 입술 그치며)

우리는 주안에서 생명을 사랑하는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악한 말을 그치며, 거짓을 말하지 말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우리의 정직한 심령을 소유하길 소원하며 속사람이 변화기를 위해 주님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나다나엘을 보며 그 안에 간사한 것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1:47) 우리는 가끔은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디아스포라 유대교 기독교인들에게 스스로 경건하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1:26)

베드로는 악독, 외식, 시기, 비방을 버릴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벧전 2:1) 사도요한은 밧모섬에서 환상가운데 하늘을 본 사도요한은 그곳에서 노래하는 이들은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14:5)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가 주님이 기뻐하는 말과 생각과 모습가운데 거하기를 위해 기도해야한다. 시편기자는 형통함을 보고 자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나로 주의 택하신 자의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업으로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기업과 함께 자랑하게 하소서.”(106:5)

 

악에서 떠나(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우리는 악에서 떠나 화평을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고 말한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벧전 3:11) 우리가 악에서 떠나 하나님 편에 속해 있으면 영적인 좋은 것들 가운데 기뻐하게 될 것이다. 솔로몬은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영혼을 보전하게 됨을 말한다. “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니 그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16:17) 유다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언했던 이사야는 그들이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울 것을 말한다.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1:16-17)

그리고 선을 행하고 화평케 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 우리는 어떠한 기도를 하며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들로서 주의 영광가운데 거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가 죄로 달려가는 육체를 가지고 죄 뿐인 세상 속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가르쳐 주신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6:13)

 

5. 주님의 마음으로 서로에게

우리는 서로에게 주님의 마음을 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어떤 원수조차 사랑할 것을 말씀하셨던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날마다 주의 은혜를 구하며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며 원수같이 보이는 그들에게 도리어 복을 빌고, ‘안에 마귀의 속성인 거짓을 뽑아내며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는 자들이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의인의 간구에 귀 기울이시는 주

하나님은 의의 간구에 귀 기울이시는 우리의 주님이 되신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벧전 3: 12) 무엇보다도 정직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전심을 다해 기도하는 삶을 통해 고통처럼 보일 수도 있는 우리의 인생가운데서, 성령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15:18)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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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모습으로 주님께 영광, 대하 5:11-14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5:11 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열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5:12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제단 동쪽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백이십 명이 함께 서 있다가

5:13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5:14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1. 핀 마이크

목사님, 핀 마이크는 뽑아놓고 가세요!”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예배가 시작되었는데 목사님이 아랫배가 아파 오기 시작했습니다. 참으려고 애를 썼지만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5분간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볼 일을 마치고 목사님이 다시 강단에 올라왔을 때 성도들이 마구 웃고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이상하게 물었습니다. “아니 여러분! 양해를 구하고 갔다 왔는데 이렇게 웃으면 어떻게 합니까?” 그때 짓궂은 집사님 한 분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다음에 화장실에 가실 때는 핀 마이크를 뽑아 놓고 가세요! 글쎄 실제 상황이었다니까요!”

 

2. 여호와의 전

본서 저자는 성전 준공 후에 있었던 성전 봉헌의 사실을 본장에서 시작하여 7장까지 계속적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본장은 솔로몬 통치의 가장 영광스러운 장면을 언급한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언약궤와 관계된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본장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메워 올려 지성소에 안치하는 장면이다. 즉 본장은 성전이 완공되었음을 재 언급하는 것과(1), 법궤를 내전으로 영입하는 과정(2-10), 언약궤가 지성소에 도착하자 하나님이 성전에 임재 해 계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술하며(11-14), 법궤 안치 사실을 생생히 그리고 있다.

 

3. 거룩하라(11)

거룩하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우리는 얼마나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정결하게 하고

솔로몬은 성전건축을 마치고 언약궤를 다윗 성에서 성전으로 메워 올려 지성소에 안치하게 된다. 성소에서 나올 때에 제사장들은 정결하게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게 된다. “이 때에는 제사장들이 그 반열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대하 5:11) 표준 새번역은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제사장들은 갈래의 순번을 가리지 않고, 모두가 이미 정결 예식을 마치고 거기에 들어가 있었고

거룩함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까? 거룩함의 성경사전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거룩함(): Holiness []vd<qo(qodesh) []aJgiasmov"(hagiasmos) []Holiness불의 및 오예에서 [분리] [격절]된 거룩한 상태에 대한 용어이다. 성서에 있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만 이해되는 것이다. 히브리어 명사[-- vd<qo(qodesh)], 형용사[--v/dq;(qadosh)], 그리스어 명사[하기아스모스 aJgiasmov"(hagiasmos)] 형용사[하기오스 a{gio"(hagios)][거룩함]의 원어인데, 모두 [분리], [차단]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격절성, 존엄성, 초월성을 의미하고, 하나님에 있어서 거룩의 본질을 분명히 할 수가 있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부르는데 있어서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41:14)로도 부른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내려와 백성을 성결케 하였고, 백성들은 자기 옷을 빨았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 백성에게 이르러 백성으로 성결케 하니 그들이 자기 옷을 빨더라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예비하여 제 삼일을 기다리고 여인을 가까이 말라 하니라.”(19:14-15)

인간의 연약함으로 우리가 부정하게 되었다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회개하며, 죄악 가운데 빠진 이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히스기야는 깨끗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은 부정한 사람을 위해 회개기도를 했고,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셨다. “회중에 많은 사람이 성결케 하지 못한 고로 레위 사람들이 모든 부정한 사람을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아 저희로 여호와 앞에서 성결케 하였으나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잇사갈과 스불론의 많은 무리는 자기를 깨끗케 하지 아니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 기록한 규례에 어긴지라 히스기야가 위하여 기도하여 가로되 선하신 여호와여 사하옵소서 결심하고 하나님 곧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는 아무 사람이든지 비록 성소의 결례대로 스스로 깨끗케 못하였을지라도 사하옵소서 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대하 30:17-20)

주님 앞에서 성결한 삶은 너무나도 중요한데 에스라도 성결을 말한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에 수가 부족하여 레위 사람이 일을 도울 때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 까지 기다렸고,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다.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 형제 레위 사람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의 성결케 하기 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의 성결케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대하 29:34)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거룩한 모습으로 서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4. 노래하라(12)

우리는 언제 누구에게 노래하기를 즐겨할까?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이 대상이 되시며 우리는 언제든지 주님 앞에서 그 분을 노래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한다.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노래하라)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은 나팔 부는 제사장 백 이십 명과 함께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주님을 노래한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의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제단 동쪽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백이십 명이 함께 서 있다가.” (대하 5:12)

노래에 대한 성경사전의 정의는 아래와 같다. *노래: Song []Song 가사에 악곡을 붙인 형식에 의한 사상과 감정의 표현.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는 옛 부터노래가 있었고, 야곱 시대에 이미 수고나 거문고의 반주에 의한 노래가 가창되었다(31:27). 또한 출애굽에 관계된 미리암의 노래가 있고(15:1-18), 드보라의 노래(삼상 18:7), 다윗이 사울과 요나단을 애도 조상한 [활 노래](삼하 1:19-27) 등의 유명한 것들이 보인다. 그러나 종교적인 시가로서 대표되는 것은 시가이고, 하나님을 찬미한 성전에서의 노래이다(21:17, 18, 137:3, 4, 28:7 기타). 노래에 쓰인 원어는 여러 가지가 보이데, 그 중 다음 몇 가지는 빈출도도 높고, 중요하다. 노래의 히브리어 명사 [-ryvi(shir)]77, 동사와 같은 형으로 86회 씌어져 있다.

다윗은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로 주님을 노래하라 했다. “다윗이 레위 사람의 어른들에게 명하여 그 형제 노래하는 자를 세우고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울려서 즐거운 소리를 크게 내라 하매 레위 사람이 요엘의 아들 헤만과 그 형제 중 베레야의 아들 아삽과 그 동종 므라리 자손 중에 구사야의 아들 에단을 세우고 그 다음으로 형제 스가랴와 벤과 야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마아세야와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문지기 오벧에돔과 여이엘을 세우니 노래하는 자 헤만과 아삽과 에단은 놋제금을 크게 치는 자요 스가랴와 아시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운니와 엘리압과 마아세야와 브나야는 비파를 타서 여창에 맞추는 자요 맛디디야와 엘리블레후와 믹네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과 아사시야는 수금을 타서 여덟째 음에 맞추어 인도하는 자요 레위 사람의 족장 그나냐는 노래에 익숙하므로 노래를 주장하여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요”(대상 15:16-22)

우리는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시편기자도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주님을 찬양하라고 말한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 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 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150:3-5) 우리는 구원의 반석이 되시는 주님을 즐거이 노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95:1-2)

 

5. 다 함께 소리 내어라(13)

우리는 언제 누구를 향해 소리를 내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소리를 높일 수 있어야 하며,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함께 주님을 높일 때 기뻐하신다.

 

일제히 소리를 내어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은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고 감사하며 나팔과 제금과 모든 악기로 여호와를 찬송할 때,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하게 되었다.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 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여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대하 5:13)

시편기자는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르며 그 앞에 나아갈 것을 말한다. “(감사의 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이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 앞에 나아갈지어다.”(100:1-2)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기에 우리는 주님을 높여야 할까? 스가랴는 주는 선하시고 인자히심이 영원하다고 말한다. “서로 찬송가를 화답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주는 지선하시므로 그 인자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영원하시도다 하니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전 지대가 놓임을 보고 여호와를 찬송하며 큰 소리로 즐거이 부르며.”(3:11)

하나님이 임하시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게 될까? 모세는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의 성막에 충만하게 되었음을 말한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40:34-35) 에스라는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넓적한 돌을 깐 땅에 엎드려 경배했음을 말한다. “이스라엘 모든 자손은 불이 내리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있는 것을 보고 박석 깐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여호와께 감사하여 가로되 선하시도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도다 하니라.”(대하 7:3)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복된 인생으로 살아가되, 오직 되어진 일들을 통해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한 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15:6)

 

6. 하나님의 영광의 충만함(14)

여호와의 영광

제사장들은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서서 섬기지 못할 정도였다.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 5:14)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가정,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거룩한 우리의 삶이 되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기쁨 가운데 거하는 작은 예수의 제자로서 늘 승리해야 한다. 오직 왕 되신 주님만 바라보고 그 분께만 영광을 돌리는 복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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