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

성경: 이사야 45:11-13

45:11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

45:12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

45:13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1. 연약한 모습으로도

아름다운 식물의 꽃들은 식물 구성 중에서 가장 약한 에너지를 공급받아서 피우는 것이라고 원예학자들은 말한다. 강한 힘과 양분은 모두 줄기와 가지로 보내진다. 그리고 힘이 없고 미약한 양분들은 꽃잎을 돋아내게 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한다. 우리는 사시사철 아름답게 보는 모든 꽃이 가장 약한 힘이 모여 만들어 낸 아름다운 결실인 것을 알 수 있다. 지극히 약하고 작은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법이다.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자기 모습이 연약하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은혜 아래에서 주의 아름다우심을 드러낼 수 있음을 알고, 늘 힘찬 모습으로 주의 영광을 드러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고자 하는 일이 참 많다. 그러나 우리가 이루고 싶은 일이 산더미같이 많을지라도 실제로 그 일을 다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과학 업적이 대단하다고 하지만, 아직 이루지 못한 것도 아주 많다. 인간은 모든 것을 다 이루 수 없으나, 전능하신 하나님은 가능하시다. 하나님은 뜻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다. 그분은 원하는 것을 이룰 충분한 능력을 소유한 분이다. 본장은 고레스에 관한 예언과 더불어 나타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말하고 있는데, 고레스 왕은 그의 포로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는 칙령을 발표한다. 그 외에도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해서 열국에게 복수했다. 하나님의 유일성이 다시금 강조되고 정의가 비같이 내리게 될 것이다(1-8).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므로 땅 위의 개개인에게 주권을 행사하실 수 있다(9-13).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면 이방인들도 하나님이 유일하신 분임을 알게 된다(14-19).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이 우상을 떠나 다가오는 멸망에서 구원을 받으라고 요청하신다(20-25).

 

3. 절대자 하나님(11)

주의 은혜로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절대자 하나님이 되심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너희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며 또 내 아들들과 내 손으로 한 일에 관하여 내게 명령하려느냐.”(45:11)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며, 인간의 삶도 주께서 주관하심을 알아야 한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을 세우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무슨 권리로 내 자녀들에 대해서 앞으로 될 일을 물으며 너희가 누군데 내가 하는 일에 대하여 명령하느냐?”(45:11)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작은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께 명령하는 자가 아닌 묻고 응답받아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야 함을 알아야 한다.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늘 우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위해 함께 기도한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45:9-10) 진흙인 인간은 토기장이이신 하나님께 불평할 수 없다. 짧은 시간과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혜 아래에서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인데, 만왕의 왕이 되신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자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43:15) 우리 하나님은 절대자이시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그것 자체로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그 어떤 다른 것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도움을 받을 대상도 없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완전한 존재이시다. 우리는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고 있으며, 인생 끝날까지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며 그분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께 긍휼을 입는 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사 자기 다니엘과 동무들이 바벨론의 다른 박사와 함께 죽임을 당치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구하게 하니라.”(2:18)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긍휼을 입는 자, 우리의 생명을 주관 하시는 하나님의 눈에 드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완전하시고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가 되어,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창조주 하나님(12)

주의 은혜로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 되심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내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모든 군대에게 명령하였노라.”(45:1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주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것들과 사람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는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손으로 하늘을 펴고 하늘의 수많은 별들을 명령하여 생기게 하였다.”(45:12) 우리 하나님은 손으로 하늘을 펴시고 수많은 별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주가 되신다. 창세기는 천지창조 역사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1:26-27) 하나님은 그의 절대 능력으로 이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그 세계 안에 인간이 거하도록 만드셨는데, 그분은 세계와 모든 인간의 창조자이시다. 우리는 지음 받은 존재로서 지으신 자의 주관하에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피조물이 조물주의 주관하에 있다는 것은 피조물이 조물주의 모든 뜻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 은혜와 섭리에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원하시며 완전하신 주가 되심을 알아야 한다.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40:28)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피곤하지도 않으시다. 그리고 그 지혜는 끝이 없으셔서 인간의 명철과 지혜를 초월한다. 이렇게 크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한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1:3) 그렇다. 모든 세계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졌음을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신 주를 의지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주께서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32:17) 성령님의 역사로 이 믿음이 우리에게 생겨나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동안,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기쁜 마음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은혜의 하나님(13)

주의 은혜로 구원받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심을 알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가 공의로 그를 일으킨지라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하리니 그가 나의 성읍을 건축할 것이며 사로잡힌 내 백성을 값이나 갚음이 없이 놓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45:13) ‘건축할 것이며는 건축자로서의 하나님을 가리키는데, 여기서는 이방인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하시는 일들을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해방하는 도구로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다. 우리 하나님은 이방인들 도구로 사용해서라도 그분의 뜻을 이루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되신다. ‘하나님의 공의란 그 절대 공정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뜻하고, 하나님은 이것을 사랑하신다(37:28, 99:4, 61:8, 62:2). 현대인의 성경은 본문의 13절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나의 의로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키루스를 일으켰다. 내가 그의 모든 길을 곧게 할 것이니 그가 내 성 예루살렘을 재건하고 포로로 잡혀 있는 내 백성을 아무런 값이나 대가를 받지 않고 거저 놓아 줄 것이다. 이것은 전능한 나 여호와의 말이다.”(45:13)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는 하나님, 포로 된 백성들을 자유케 하시고 예루살렘을 재건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고레스 왕을 사용하셨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 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대하 36:22-2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토록 사랑하신다. 우리는 이방인을 사용해서라도 자기 뜻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우리 또한 사랑하고 계심을 알아야 한다. ‘를 사랑하시고 를 구원해 주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3:24-26) 십자가에서 화목 제물이 되어 죽으시며 의 죄를 담당하신 예수님의 은혜, 값없이 주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수 복음을 전달하는 복음 전파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언제나 주의 권능을 찬양하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65:5)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은혜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께 순종하고 경배하는 자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자유케 하신 하나님, ‘가 믿고 섬기는 주님이 절대자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자이신 그분 외에는 다른 신이 없으신데, 그분은 스스로 존재하시고 완전하시며 전능하시다. 그분은 무소 부재하시며 모든 것이 되시는 살아계신 주가 되신다. 우리에게 그분 외에 섬길 다른 신이 없고 그 뜻에 항거할 존재가 없음을 고백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멸망하는 삶을 살지 않아야 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에게 순종하고 그를 찬미하는 자, 성령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9:6)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고 세상 모든 만물은 주께 경배해야만 함을 깨닫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우리가 하나님께 지음을 받은 자로서 주의 뜻 가운데서 행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께서 절대자 하나님이 되심을 깨닫고, 주께 긍휼을 입는 자로 살아가는 자! 만물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기쁜 마음으로 사는 자!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은혜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항상 기뻐하며 감사하는 자!

성경: 빌립보서 4:4-7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 얼굴

어떤 힌두 원주민과 선교사의 이야기이다. 어느 날, 원주민은 선교사를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선교사님 얼굴을 빛나게 만드는 약을 내게 좀 주십시오.’ 그러자 선교사님은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그 원주민은 이렇게 답했다. ‘당신들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빛나는 얼굴들을 하고 있다는 걸 내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 좀 달란 말입니다.’ 원주민의 눈에 비친 그리스도인의 얼굴은 언제나 밝고 빛이 난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삶이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란다.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감사의 마음

본장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영적 성장을 위한 결론적인 몇 가지 충고와 더불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 빌립보를 포함하는 고대 마게도냐 지방의 부인들은 다른 지방의 부인들과는 달리 개인 재산을 소유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본장에서 바울이 언급한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인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 아래에서 빌립보 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요 인물이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불화는 사람들에게 화제의 대상이 되었고, 빌립보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 화해케 함으로써 주 안에서 흠 없는 온전한 공동체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도로 본장을 기록한다.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빌립보 교회의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종합적인 충고를 하고 있으며(1-9), 둘째 단락에서는 빌립보 교회가 보내 준 선물에 대한 감사와 마지막 인사를 덧붙이고 있다(10-23).

 

3. 기뻐하며(4-5)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하는가? 마음 가운데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4:4-5) 자기 삶의 형편을 볼 때 기뻐할 수 없다고 판단될지라도, 믿음으로 기뻐할 것을 결단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전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던 이스라엘 백성, 말씀을 지키기를 힘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막절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감사로 나아왔다. 레위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23:34) 초막절은 [] Feast of Boosths, [] twOKSuh' gj(chag hassukkoth)이다.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실절)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히브리인)3대 축절의 하나로 최대의 축제(14:16, 18)인데, [수장절]이라고도 부른다(Feast of ingathering, 23:16, 34:22). 새 번역의 요 7:2에는 [장막절]로도 번역하고 있다.

초막절은 가을의 추수로서, 올리브, 포도, 무화과 등을 거둬들이고, 이것을 감사하면서 해를 끝마치는 연말 추수의 감사제이며 동시에 신년제이기도 했다. 주께서 정해 주신 바에 따라 절기를 지키는 동안은 밭에 초막을 세우고 그곳에 거했던 것에서 초막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23:40-43). 이처럼 원래는 농경력의 행사였는데 후에 이스라엘이 경험한 광야의 고초와 유랑의 장막 생활을 기념하기 위하여 민족사적, 신앙적 해석이 더해지며 절기 기간 중, 야외에 나뭇가지 등으로 임시초막을 만들어 거하는 행사가 되었다(8:14-17).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를 기억하고 또한, 이 세상이 임시적인 초막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표시였다. 우리나라의 교회에서는 칠칠절을 기념하여 맥추 감사 주일을 지키고 있고, 수장절로도 불리는 초막절을 지키며 추수 감사 주일을 지키고 있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가을에는 수장절을 지키라.”(34:22)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든 곡식을 타작하고 포도즙을 짜서 저장한 후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켰던 것이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16:13)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일곱째 달 보름날에는 거룩한 모임을 열고 생업을 돕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칠일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키셨다. “칠월 십오일에는 너희가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칠일 동안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라.”(29:12) 우리가 이 정도의 의식을 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늘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며, 성령님과 동행하며 늘 기뻐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에 있던지 언제나 기뻐할 수 있는 삶을 바란다.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 이 땅 가운데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환경을 초월한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감사함으로(6-7)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하는가? 마음 가운데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6-7) 여기서 지키시리라는 군대에서 보초가 병영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주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며, 감사함으로 나아오는 자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늘 주와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사랑했고 말씀을 지키기를 힘썼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장절을 지킬 때, 성회로 모였고 아무 노동도 하지 않았다. “첫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23:35) 여기서 성회[] Holy assembly이다. 이는 예배를 위해 성소(회막)에 소집된 종교적인 집회를 가리키는 말이다. 유월절의 첫째 날과 일곱째 날에 이 성회가 소집되었다(12:16, 28:18, 23:4-8). 또는 1년에 6, 중요한 축제일에 열렸던 것이다(28:26, 29:7, 12, 23).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 나아와 주님을 높인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16:15)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에 나와서 한 해 동안 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소출을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했다.

우리는 주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로 그분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장성한 분량의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의 법도 지키기를 기뻐할 때, 주께서 이 땅에서도 번성케 되는 복을 허락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30:16)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의 법을 따라 살아가서 주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먼저 믿은 우리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과 자기 사이에 막힌 담이 없게 하여, 언제나 주님의 평강을 누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이 땅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마음속에 근심하는 연약한 모습이 아니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주께 맡기고 기도하며, 늘 감사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감사함으로 주께 나아가는 삶

날마다 주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베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 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95:2) 주님은 우리의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신다. ‘의 마음의 상처와 고통, ‘삶의 역경을 모두 알고 계시며, ‘를 바라보시며 응원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주님 앞에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의 입술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입술을 열어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 안에서 소망을 가지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좋은 일꾼으로 날마다 성장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이 땅 가운데서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환경을 초월한 믿음으로 항상 기뻐하는 자! 이 땅에서 믿음의 길을 걷는 동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주께 맡기며,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예수 안에서의 지체로서 연합하여 승리하는 삶!

성경: 전도서 4:7-12

4:7 내가 또 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

4:8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4:9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4:10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4:11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4:12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1. 돈보다도 더

여인숙을 경영하는 늙은 부부가 있었다. 하루는 한 청년이 유숙하면서 큰돈이 든 가방을 맡기자 그들에게는 그 돈을 빼앗고자 하는 유혹이 생겼다. 그래서 그들은 청년에게 호박씨를 까서 먹여 정신을 흐리게 한 후, 다음날 그가 정신없이 그냥 가도록 하려는 꾀를 생각해 냈다. 그들은 호박씨를 까서 밤새도록 그 청년을 접대했다. 그러나 다음 날 그 청년은 보란 듯이 가방을 챙긴 후 밖으로 나갔다. 그 청년이 떠난 후 그들은 청년이 숙박비도 내지 않은 채 간 것을 알았다. 그들은 큰돈을 빼앗고자 하는 것에 정신이 팔리다가 숙박비도 받지 못한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돈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돈의 멍에가 되어 살지 말고, 돈의 유혹에 빠지지도 말고, 돈보다 더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돈을 사랑하기보다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하며, 정직한 마음으로 끝까지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인생

본장에서 솔로몬은 불의함으로 가득 찬 사회의 모습을 말한다. 이는 인생의 허무함이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와 구조, 모든 것에도 있음을 알게 한다. 세상에는 권세 있는 자가 자기 힘을 과시하고, 힘이 없는 자는 억울함을 당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남을 속이기를 일삼는 자가 매사에 열심이 있는 자보다 더 큰 이익을 얻기도 한다. 그래서 참된 만족과 평안을 얻는 삶은 찾아보기 힘들기도 하다(1-6). 또한, 많은 부를 가지고 있지만, 후손이 없어서 희망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참된 우정을 나눌 친구도 없다면 그는 불행한 자이다.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없고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날 때부터 권력과 부귀를 보장받은 자가 있고, 반면에 어떤 이는 피지배자로 태어나서 살아간다. 하지만 권력을 잡은 자라도 영원하지 않고 뒤에 오는 권력자에 의해 배척받게 마련이다(7-16). 저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허무하며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3. 한 사람의 수고(7-8)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는 해 아래에서 어떠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로서 세상을 잘 분별하는 지혜를 가지고, 주님을 잘 섬기며 영혼의 만족함을 얻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자신이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내가 또다시 해 아래에서 헛된 것을 보았도다.”(전도서 4:7) 여기서 헛된 것은 개인의 무력함을 가리키거나 죄 된 삶의 무의미함, 삶의 짧고 공허함을 가리키기도 한다. 솔로몬은 인간들의 삶을 볼 때 무의미하기도 하며 짧고 공허하기도 하다고 말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길게 보이지만 정말 짧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지 않고 다른 것들을 좇는다면 그의 삶은 공허함 그 자체일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39:6) 어떠한 경우에는 자신이 쌓아놓은 부도 누군가가 취해갈 수 있다. 우리는 평생 부자가 되기 위해 힘쓰며 쌓아놓은 재물도, 사실은 그의 것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고하는 삶을 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전도서 4:8)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나 형제도 없이 혼자 살면서 억척스럽게 일하며 자기 부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는 즐거움도 마다하고 누구를 위해서 그처럼 열심히 일하는가? 이것도 다 헛된 것이며 불행한 일이다.”(4:8) 아들도 형제도 없이 혼자 사는 어떤 이가 일만 열심히 하며 돈을 모았는데, 그가 자신의 부에도 만족하지 못한다면 어떠하겠는가? 그가 자신의 삶에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는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열심히 일했으며, 그것은 참으로 헛되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에 늘 감사하며 만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궁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1:13) 그렇다. 우리의 인생에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수고가 있는 것이다.

이 땅에서는 모두가 수고해야 하며, 결국은 모두가 세상을 떠나야만 함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부자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12:20) 곡식을 더 쌓기 위해 곳간을 더 크게 짓고 쌓아놓아,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려는 부자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우리는 어떠한 부자도 자신의 소유를 다 놓고 이 땅을 떠나가야 함을 깨닫고, 부를 위한 삶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다른 것을 좇기보다 지혜 있는 자가 되어 주님을 먼저 따를 것을 결단하고, 영혼의 만족을 얻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 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55:2) 세상에서의 수고가 있음을 인정하며, 늘 감사함으로 주님을 잘 섬기며 영혼의 만족함을 얻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9-10)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는 해 아래에서 어떠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로서 형제, 자매에게 사랑으로 대하며, 서로 돕는 자가 되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을 고백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도서 4:9) 여기서 은 어떤 사람의 노동력을 고용하여 지불되는 대가를 가리킨다. 여기서는 두 사람이 함께 수고하면 한 사람이 일하는 것보다 더 나은 임금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혼자서 애를 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하는 것이 낫다. 그들의 수고가 좋은 보상을 받겠기 때문이다.”(4:9) 그렇다. 혼자서 애쓰는 것보다 둘이서 함께 할 때 좋은 성과가 있고, 좋은 보상도 받게 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함께 도우며 출애굽의 과정을 잘 이끌었던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이다. 하나님은 말이 우둔하다고 고백하는 모세에게 형 아론이 있음을 언급하시며 마땅히 출애굽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명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 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너는 그에게 말하고 그 입에 말을 주라 내가 네 입과 그의 입에 함께 있어서 너의 행할 일을 가르치리라.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그는 네 입을 대신할 것이요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4:14-16) 주의 뜻 안에서 서로 협력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일은 멋진 일인데, 자신이 그 일에 동참하고 있다면 그는 복된 사람일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뇨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전 12:18-21)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존귀한 자들이며 서로가 한 몸임을 깨닫고, 서로 하나가 되어 주의 일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도서 4:10) 혼자가 아니라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는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나 아들이자 다윗의 친구인 요나단은 다윗에게 용기를 준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 23:16) 다윗이 십 광야 수풀에 있을 때 요나단은 다윗에게 두려워 말라 말하고, 친구 다윗이 왕이 되며 자기는 다음이 될 것을 아버지도 안다고 말하며 그에게 용기를 준 것이다. 우리 또한 서로 좋은 믿음의 친구가 되어 서로에게 힘을 주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셨고, 베드로는 순교하기까지 주를 위한 삶을 살아갔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22:31-32) 믿음 안에 있는 한 지체로서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이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어려운 일들을 겪기도 하겠지만 서로의 관계 속에서 잘 연단 받고 성장하여,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27:17) 쇠는 쇠에 대고 갈아야 날이 서고 사람은 이웃과 비비대며 살아야 다듬어짐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은 공동체, 그리고 형제와 자매가 되어 늘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세 겹줄은 끊어지지 않음(11-12)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는 해 아래에서 어떠한 지혜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의 지체들이 연합할 때 승리할 수 있음을 알고,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무리 강할지라도 약한 자의 연합보다는 약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전도서 4:11)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추운 방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진다. 그러나 혼자서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겠는가?”(4:11) 그렇다. 난방도 되지 않는 방에 혼자 누워있으면 춥겠지만,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게 잘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연합의 힘이 위대함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도서 4:12) 여기서 끊어지지뽑아내다, 근절하다, 부수다.’는 뜻이다. 이는 단순히 뽑아내는 것부터 뿌리채 뽑아내는 것까지 두루 사용될 수 있는 말이다. 여기서는 삼겹으로 묶은 줄의 단단한 결속력을 비유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혼자서 막지 못할 원수도 둘이서는 막을 수 있다. 삼겹으로 줄을 꼬면 쉽게 끊어지지 않는 법이다.”(4:12) 영적 전투가 일어나는 상황 가운데서도 한 사람보다는 두 사람이, 두 사람보다는 세 사람이 강한 전투를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어려움이 있다면 그 상황을 함께 나누고 기도하여, 넘을 수 없어 보이는 장애물도 능히 돌파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구약성경에는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한 믿음으로 승리를 경험했다. 그들은 신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풀무 불 가운데 던져 넣음을 당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신상 앞에 절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인 세 친구에게 화가 나 있는 느부갓네살 왕에게 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3:16-17) 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한 다니엘의 세 친구와 같이, 우리 또한 연합하는 믿음으로 영적 전투에 승리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면서 함께 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깨닫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소망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마음으로 연약한 지체들을 품고, 연합하여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어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성령으로 연합하여 평안함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세 겹줄이 끊어지지 않음을 기억하며 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영적 전투에 승리하고, 믿음으로 주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세상이 아닌 주님께 나아와 쉼을 얻고, 성령 안에서 연합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것들을 좇아 정신없이 살아가지 말고, 주님께 먼저 나아와 마음의 쉼을 얻고, 성령 안에서 연합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일 2:16) 육신의 정욕을 위해 살아가지 말고, 영적인 세계가 있음을 깨닫는 자가 되어 큰 믿음의 사람으로 주님을 잘 섬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쉼이 있음을 알고,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세상에서의 수고가 있음을 인정하며, 늘 감사함으로 주님을 잘 섬기며 영혼의 만족함을 얻는 삶을 살아가는 자! 믿음의 사람들로서 형제, 자매에게 사랑으로 대하며, 서로 돕는 자가 되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세 겹줄이 끊어지지 않음을 기억하며 늘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 영적 전투에 승리하고, 믿음으로 주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성령님의 도움으로 서로 사랑하며 종노릇하는 자!

성경: 갈라디아서 5:13-15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갈라디아서 5:14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

갈라디아서 5:15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1.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성경을 읽을 때는 결코 전속력으로 달려가서는 안 된다. 천천히 걸어가며 주위를 둘러보도록 해야 한다. 시속 60마일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길가의 꽃을 볼 수 없다. 아마도 빠른 속도로 주행할 때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없고, 구름의 움직임과 모든 자연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에 느림의 미학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믿음 생활을 하면서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의 말씀을 천천히 묵상할 때 큰 은혜가 부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 조금 더 집중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누리는 자로서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한 자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받은 성도는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 자유한 자임을 밝힌다. 그러나 자유한 자가 그 자유를 육체의 소욕을 좇는 기회로 삼으면 안 되고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함이 진정한 자유를 누리는 것임을 교훈한다. 이는 사랑의 법을 좇아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의미한다. 본장은 3-4장에서 다룬 교리적인 내용들을 갈라디아 교인들의 현실 상황에 적용시키고 있다. 바울은 유대주의 거짓 교사들의 비난과 왜곡에 대해 복음을 변명하고 율법과 비교하여 복음의 기본 교리를 설명한 후, 이제 그에 따른 구체적인 실천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바울은 본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규정지을 수 있는 본질적 요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대해, 율법이나 방종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서로 종노릇하는 것이며, ‘성령이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사랑과 서로 종노릇하는 것과 성령은 본장과 다음 장에서 바울이 권고의 핵심을 이룬다. 본장의 첫째 단락은 복음의 본질보다 할례와 같은 외적 인습에 얽매이는 행위를 경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걷는 참 자유를 지킬 것을 권하고(1-12), 둘째 단락은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올바로 행사하기 위해 사랑으로 종노릇할 것과 성령을 좇아 생활할 것을 권고한 내용이며(13-18), 셋째 단락은 성령이 금하는 것과 성령으로 행한 자들의 열매를 보여 준다(19-26).

 

3. 서로 종노릇하라(13)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적인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서로에게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5:13) 여기서 육체의 기회는 이기적인 욕망, 윤리적, 도덕적 방종이란 말로 대치할 수 있는데 이는 율법을 자유케 하신 목적과는 위배되는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형제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고 여러분의 자유를 남용하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5: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에 가슴 깊이 감사하며, 그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거나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그 자유를 악용하지 않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 2:1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러분은 율법에서 해방된 자유인답게 생활하십시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용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십시오.”(벧전 2:16) 죄를 깨닫게 하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힘쓰되, 성령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그 자유를 악용하지 말고,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주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교회와 사회 공동체 안에서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여기시는 이웃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15:1-2) 자기 옆에 있는 지체가 믿음이 연약하다면 그를 험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의 약점을 서로 담당하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성숙한 믿음의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의 마음으로 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랑이 충만하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는 섬김의 모습을 보이셨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13:14-15) 우리 또한 예수님 처럼 서로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 안에서 자유하며, 서로 섬김의 본을 보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10:43-45)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기쁨으로 주를 섬기고, 주 안에서 서로 종노릇하는 성숙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이웃을 사랑하라(14)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형제와 자매를 사랑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5:14)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의 말씀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5:14) 성경을 요약하면 사랑에 관한 말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잘 믿되,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구약 성경은 사랑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8) 자신에게 원수로서 행했던 이에게도 사랑으로 대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원망과 불평을 입에서 멀리하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여 주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12:33)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중심을 다하여 예배하는 것은 너무나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예배와 함께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마음의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율법의 완성이 사랑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율법은 자신의 죄를 발견하게 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있는데, 원수까지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지키는 자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13:8-10)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흘러갈 수 있도록 힘쓰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지 말고,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5:26) 미움과 시기와 다툼이 끊이지 않는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조심하라(15)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서로에게 어떠한 태도로 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타인을 괴롭히거나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성령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며 서로 조심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5:15) 여기서 물고는 원어로 <davknete: 다크네테>이다. 이는 물다, 찌르다, 괴롭히다라는 뜻으로 악한 감정으로 상대방에게 해를 입히는 행동을 가리킨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헐뜯고 해친다면 둘 다 멸망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5:15) 자신이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아니면 이웃을 시기한 나머지 형제와 자매를 찌르고 괴롭힌다면 그것은 함께 망하는 길일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자신을 살피고,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이러한 미성숙한 자가 되지 않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오래도록 믿음 생활을 했지만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고전 3:3) 육신에 속한 자가 되어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타까운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끊이지 않는 영적인 전투가 이루어지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고단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11:5-9)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 삼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형제와 자매를 사랑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시기와 다툼을 조심하고, 진리를 따라 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3:14) 강퍅한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서로 물어뜯는 괴로운 삶을 살지 말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천국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서로 사랑하며, 복음 전파의 삶을 사는 자!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에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복음 전파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화를 잘 다스리고 악한 것을 생각하기를 멀리하는 그리스도인, 겸손하게 행하며 잘 인내하는 그리스도인, 이렇게 사랑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사랑 가운데서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잘 전파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고후 4:5)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를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서로에게 오직 사랑으로 종노릇하며, 서로 섬김의 본을 보이는 자!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지 말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자! 타인을 괴롭히거나 서로에게 해를 입히지 않도록, 성령님께 민감하게 반응하며 진리를 따라 행하는 자!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바람을 잡으려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의 지혜로 사는 자!

성경: 전도서 4:4-6

전도서 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전도서 4: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전도서 4: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1. 감사

호나라 국경의 어느 요새 근처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의 말이 호나라 쪽으로 도망쳐 버리자 주위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했다. 그러자 노인은 태연스럽게 고맙소. 그러나 이것이 어떤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라고 했다. 그 후 도망쳤던 말이 훌륭한 호나라 말을 데리고 돌아오자 이번에는 그를 축하하러 왔다. ‘뭘요. 이것이 어떤 불행이 될지 누가 압니까?’ 이 일이 일어난 후 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노인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호군이 공격해 오자 모든 장정은 전쟁에 나가 전사했으나 노인의 아들은 이를 면할 수 있었다. 이 일로부터 새옹지마란 고사성어가 생겨났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자신의 삶 가운데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미리 염려하거나 판단하지 말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인생

본장은 솔로몬의 개인적인 체험의 소산이 아니라 객관적인 관찰에서 나온 진술이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잘 관찰하여 그 속에서 엿볼 수 있는 인생의 허무를 잘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인간 삶의 요체인 사회생활의 가장 중요한 사항인 정치와 경제가 하나님 중심이 아닐 때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말하고 있다. 저자는 본장에서 불의함으로 가득 찬 사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인생의 허무함이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와 구조, 모든 것에 나타남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에는 권세 있는 자가 설치고 힘없는 자는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또한, 열심히 노력하는 자보다 남을 속이는 자가 더 큰 이익을 얻으니 참된 만족과 평안은 어디에도 없다(1-6). 그리고 아무리 많은 부를 가졌어도 후손이 없으므로 희망이 없는 사람이 있고, 참된 우정을 나눌 친구를 발견하기 어렵다.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없고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인 것이다. 더구나 날 때부터 권력과 부귀를 보장받은 자가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피지배자로 태어나며, 권력을 잡은 자라도 영원하지 않고 뒤에 오는 권력자에 의해 배척받게 마련이다(7-16). 이로써 저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허무하며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성공만을 지향하는 사회는 어떤 사람이 정당한 방법을 가지고 성공할지라도 정당한 대가를 그에게 안겨 주지 않는다. 성공한 사람은 수고의 대가로 시기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태한 사람들에 의해서 그의 능력이 낮게 평가되기도 한다. 그래서 솔로몬은 성공만을 지향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지적한다. 우리로 하여금 너무나 많은 것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작은 것을 얻고 그것을 누리는 것이 더 낫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너무 경쟁하지 말고(4)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 가운데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믿음의 사람들은 서로 너무 많은 경쟁을 하거나 시기하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전도서 4: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경쟁심이 있어서 남보다 더 얻으려고 기를 쓰는 것을 나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이 또한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다.”(4:4)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동료, 그리고 타인과 너무 과한 경쟁을 하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창세기에는 요셉을 시기한 형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훗날 애굽의 총리가 될 요셉을 형들이 시기한 것이다.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37:4) 구약 성경은 시기로 가득했던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바로 다윗을 시기한 사울의 이야기이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삼상 18:8-9) 사울은 골리앗을 이긴 다윗에게는 만만이라고 하고 자신에게는 천천이라고 했던 여인들의 말에 집착한 나머지 다윗을 시기하게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예배는 받지 않고 동생 아벨의 예배만 받으신 하나님께 좋지 않은 마음을 품고, 동생 아벨을 죽인 가인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우리는 가인처럼 타인을 시기하거나, 죄를 다스리지 못하는 연약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시기와 질투를 멀리하고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아가며 기쁨을 누리는 복된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사울이 다윗의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함을 인함이었더라.”(삼상 18:14-16)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자신을 살피고, 큰 믿음의 사람, 그리고 좋은 인격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너무 놀지도 말고(5)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 가운데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믿음의 사람들은 서로 지나치게 놀기만 하는 삶을 살지 말고, 부지런한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전도서 4: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놀다가 말라 죽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4:5) 게으른 태도로 팔짱을 끼며 일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결국 소비하게 된 후에 말라 죽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12:27) 게을러서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않는 자, 그는 가난한 인생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보다 부를 더 사랑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나, 게으름으로 인해 가난한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13:4) 마음으로 소원하면서도 얻지 못하는 안타까움에 처하지 말고, 부지런하여 풍족한 인생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수확의 때에 거두는 자가 되어야지, 그때에서야 심은 것이 없어서 수확도 못하고 구걸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20:4) 우리는 자기 삶의 태도를 돌아보며 게으른 삶을 살았다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늘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24:33-34)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삶 가운데서 게으르지 않게 행하며, 신앙생활도 부지런함으로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평온함을 선택하고(3)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땅 가운데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지혜로운 것인가? 믿음의 사람들은 탐심으로 인해 피곤한 삶을 살지 말고, 협력하여 서로에게 유익을 주며, 평온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전도서 4:6)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람을 잡으려고 두 손을 허우적거리느니 한 움큼으로 만족하는 것이 더 낫다.”(4:6)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두 개의 손으로 가득 움켜쥐려 하는 어리석음을 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헛된 것들을 좇아 살아가지 말고, 집안의 재산이 많지 않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최고로 경외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5:16-17)

또한,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16:8) 돈이 많은 것이 참 행복을 가져오지 못함을 깨닫고, 늘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행복을 누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이 소유한 것이 너무 많지 않다고 생각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한 삶을 살고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7:1)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된 안식과 평강이 있음을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참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탐욕과 개인주의에서 벗어나고, 서로 협력하여 승리의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4:9-12)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탐심을 버리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평안함이 넘쳐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고 부지런히 행하여, 주께서 주시는 기쁨을 누리며 사는 자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기를 소망한다. 성실하고 부지런히 행하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기쁨으로 행복하게 살아가는 개인과 가정, 교회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 게으름을 멀리하고 부지런함으로 살아가며, 믿음 생활도 열심히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눕자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6:10-11)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헛된 것을 좇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으며, 예수 그리스도로 참된 만족을 얻는 지혜로운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가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본즉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1:14) 성령님과 동행하며 자신을 살피며, 서로 너무 많은 경쟁과 시기하는 삶을 살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기쁨을 누리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동안 삶 가운데서 게으르지 않게 행하며, 신앙생활도 부지런함으로 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탐심을 버리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평안함이 넘쳐나는 삶을 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천국 시민으로서 복된 삶을 사는 자!

성경: 누가복음 6:20-26

누가복음 6: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누가복음 6:21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누가복음 6:22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누가복음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누가복음 6:24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누가복음 6:25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누가복음 6: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1. 시각

가정이 넉넉하지 못해서 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그는 기술이 없어 직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그는 사진술을 배워 사진 기자가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그에 관한 책을 서점에 주문했다. 그러나 편지를 받은 서점의 착오로 그 책은 오지 않고 발성법에 관한 책만 날라왔다. 하지만 그 책을 돌려보낼 만한 운송료도 없어 그대로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몹시 실망한 소년은 하는 수 없이 그 발성법 책을 보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 소년은 세계적인 유명한 성악가가 되었는데 그가 바로 찰리 맥카시이다. 그렇다. 책을 보아도 어떤 책을 보느냐에 따라 생각과 진로가 달라질 수도 있다. 독서뿐만 아니라, 어떠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도 달라질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좋은 책도 있고, 세상에 수많은 좋은 것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만나고, 주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은 말씀을 듣기 원하는 자들에게 하늘나라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셨다. 주님은 신앙인들의 바른 삶의 모습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 주셨다. 우리에게도 이 말씀은 교훈과 삶의 방식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날마다 우리를 향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이 있음을 깨닫고, 예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 삼고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안식일을 범했다고 정죄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임을 분명하게 선언하셨다(1-5). 다른 안식일에 예수님은 회당에서 손 마른 자를 고쳐 주셨는데 바리새인들이 안식일을 범했다고 정죄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셨다(6-11).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 기도하신 후에 열두 제자를 세우셨다(12-19). 그 후에 평지에 서셔서 여러가지 교훈들을 들려주셨다(20-49).

 

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음(20-21)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어떠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복이 있는 자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로 사는 것이 복이 있는 자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이르시되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6:20-21) 여기서 우는 자는 원어로는 통곡하다, 애통하다를 뜻하는데 이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자복의 의미가 강하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마음의 애통함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 세상을 좇아 살아가지 않는 자가 복된 자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5:3) 언제나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을 가지고 가난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나사로의 이야기의 비유를 통해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교훈하신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16:25)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바리새인들이 하늘나라에서의 삶과 최후 심판을 믿으면서도 신앙에 부합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을 말씀하신다. 부자는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면서 살았으나 나사로는 병이 든 몸을 이끌고 부자의 대문에서 구걸하며 살았다. 거지 나사로는 구걸할 뿐만 아니라 헌데를 앓으며 부자의 대문에 누워 있었다. 개들이 와서 그의 헌데를 핥는 비참한 삶을 살았으나 거지는 천국에 갔고, 반대로 호의호식하면서 살았던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우리의 믿음의 눈이 열려서 하나님의 나라가 실재함을 깨닫기를 기도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55:1-2)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는 자 그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가난한 마음으로 천국 백성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가난한 심령을 소유하고,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4) 자신에게 허락하신 환경을 감사하며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이 걸어가신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을 때 복이 있음(22-23)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어떠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복이 있는 자인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았다면 그는 복이 있는 자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6:22-23) 여기 기뻐하고 뛰놀라의 의미는 고난 이후에 받게 될 영원한 축복을 바라보면서 감사하라는 의미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미움을 받을 때, 주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일하다가 모욕을 당할 때, 하늘에서 받게 되는 상이 큼을 알고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주를 위한 자신의 수고를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 11:23-26)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했던 사울,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그 후, 그리스도를 전하는 바울의 삶을 살게 된다. 그는 매를 맞고 옥에 갇히기까지 열심히 사명을 감당한다. 우리는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그리스도를 위한 인생을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22)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기쁘게 좁은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자기 삶을 돌아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의 나라에서 하나님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지혜롭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6:1-2) 의로운 일을 하거나 구제를 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행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낮음 마음으로 겸손하게 행하여 하나님께서 기쁘게 여기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10:39)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더라도 기쁘게 여기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화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되지 말고(24-26)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복이 있는 자로서 어디 가운데 거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화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6:24) 여기서 부요한 자는 물질을 많이 소유하거나 그로 인하여 영적으로 교만해진 사람을 말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는 복이 아닌 화 가운데 거하는 자일 것이다. 우리는 많은 물질로 인해 영적으로 교만해지는 불쌍한 인생을 살지 말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보다 부를 더욱 사랑하는 자, 그는 어리석은 자인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부요한 자는 위로를 이미 받았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배부른 자에게도 화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6:25) 지금 배불리 먹고 지내는 사람들, 그들도 굶주릴 날이 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배부름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더 가치가 있음을 깨닫고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어느 날, 한 관리가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다. 큰 부자였던 그는 계명을 잘 지키는 자였으나, 자신의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근심하고 만다. “그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예수께서 저를 보시고 가라사대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어떻게 어려운지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18:23-25) 그렇다. 재물이 많고도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기 때문에 주의 이름으로 선을 행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재물을 더욱 사랑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함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주께서 부르실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 높고 이 땅을 떠나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12:20) 영원히 소유하지 못할 재물을 선택하기보다, 영원한 생명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모든 이들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살아갈 수만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6:26) 세상에서의 칭찬보다 하나님 아버지께 받을 칭찬을 기대하며,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만일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면 세상은 그를 한 집 식구로 여겨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면, 그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므로 세상의 미움을 받게 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9)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 재물에 소망을 두어 화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되지 말고, 삶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복 가운데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의를 위하여 핍박받으며, 성령님과 동행하며 기뻐하는 자!

이 땅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의를 위하여 핍박받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5:10) 우리는 믿음의 길을 걸어가며 의를 위해 핍박을 받게 되거는 행복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성숙한 믿음에 이를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해서 서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가진 것이 없으나 많은 이들을 부요하게 하는 삶을 사는 자, 바로 가 되기를 소망한다. 오직 예수 그리스로 인해 참 행복을 누리는 복된 자, 바로 가 되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허락하신 환경을 감사하며 가난한 심령을 가지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께서 걸어가신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자! 예수님 때문에 미움을 받더라도 기쁘게 여기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자! 재물에 소망을 두어 화 가운데 거하는 자가 되지 말고, 삶의 모든 것이 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복 가운데 거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어둠 속에서도 소망 되시는 주를 붙잡는 자!

성경: 시편 119:81-88

시편 119:81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시편 119:82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시편 119:83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시편 119:84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시편 119:85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시편 119:86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시편 119:87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시편 119:88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

 

1. 신앙의 자세

한 어머니가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어린아이를 꼭 껴안고 순교자의 대열에 서 있었다. 한쪽에서는 굶주린 사자들이 입을 벌리고 성도들을 향해 달려들려 했다. 그때 이 어린아이가 무서워서 울며 어머니의 가슴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러자 어머니는 얘야, 조금만 참아라. 곧 밝혀질 것이다.’라고 조용히 타일렀다. 사자가 물어뜯으면 그 순간은 아프겠지만 그 순간만 지나면 하늘나라가 전개될 것이다. 현실의 상황을 초월한 어머니의 고백이다. 인간의 삶도 어떻게 보면 잠시 잠깐의 삶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이 땅 가운데서 살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삶의 환경과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고,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믿음을 지키며 소망 되시는 주를 붙잡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자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찬양을 하면서 말씀의 귀중한 가치를 강조한다. 자신에게 구원을 주시며 자신의 인생길을 진리로 인도하는 빛 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시인은 갈급해 하며 그 말씀과 항상 함께하기를 간구하고 있다. 저자가 미상인 본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 것이다. 독특한 것은 시의 각 절마다 율법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본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극한 정성은 가히 경이로울 따름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결단이 나오고(1-8), 이어서 그 말씀을 즐거워함을 말한다(9-16). 시인은 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원하면서 하나님의 관용을 애원하고 있다(17-32).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하여 주의 법도를 따를 것을 다짐하고 있으며(33-96),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바라보고 있다(97-136).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다시금 언급하고 있다(137-176).

 

3. 주의 말씀을 바라고(81-83)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를 섬기는 동안 무엇을 바라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주의 말씀을 바라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고, 주의 말씀을 바란다고 고백한다. “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시편 119:81)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다가 지쳤으나 그래도 나는 주의 말씀을 신뢰합니다.”(119:81)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구원을 사모하다가 지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기 때문에 끝까지 인내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라 자손의 마스길 영장으로 한 노래에서 시인은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함을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1-2) 자신의 영혼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그리워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일 것이다.

언제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않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을 갈망하며 구원을 바라는 동안 피곤함을 느낀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며,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붙잡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시편 119:82-83)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 몸이 당신 약속을 눈 빠지게 기다립니다. 언제 나에게 위안을 주시렵니까? 나 비록 연기 속의 가죽 부대처럼 되었사오나 나는 당신의 뜻을 잊지 않으리이다.”(119:82-83) 여기 연기 속의 가죽 부대는 극심한 고통과 슬픔을 뜻하는 비유적 표현이다. 자기 삶의 형편과 처지가 열악하게 느껴질수록 우리는 더욱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아야 할 것이다. 날마다 하나님의 위로와 평안을 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과 주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우리를 곤고케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하소서.”(90:13-15) 주의 말씀을 바라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삶,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날마다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주께 도움을 구하고(84-8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를 섬기는 동안 누구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말고, 주께 도움을 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교만한 자들이 해하려고 함을 토로하며,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해 줄 것을 구한다.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시편 119:84-8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 벌하시겠습니까? 주의 법을 지키지 않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잡으려고 함정을 팠습니다.”(119:84-85) 여기서 교만한 자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백성들을 착취하는 사회 지도자들을 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교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자신에게 원수들의 공격이 있다면 주께 도움을 구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이 언제나 평탄하지는 않을 터인데, 누군가는 지금 큰 어두움의 터널을 통과하고 있기도 할 것이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시간 동안, 사탄의 공격으로 인해 큰 고통을 받는다. 그는 자신의 친구 엘리바스의 충고에 답하며 두 번째 논쟁을 한다. 그러면서 이렇게 인생의 허망함을 토로한다. “나의 날은 베틀의 북보다 빠르니 소망 없이 보내는구나. 내 생명이 한 호흡 같음을 생각하옵소서 나의 눈이 다시 복된 것을 보지 못하리이다. 나를 본 자의 눈이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주의 눈이 나를 향하실지라도 내가 있지 아니하리이다.”(7:6-8) 그렇다. 인생의 속도는 참으로 빠르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각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큰 고통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의 삶이 형통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신실하신 주를 붙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신실하신 주님께 늘 도움을 구하며, 인생의 참 주인이 되시는 주를 붙잡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시편 119:86) 이유 없이 원수들의 핍박을 당하고 있는 자, 그리고 인생의 어두움을 통과하고 있는 자,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의 얼굴을 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주께 도움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내 우편을 살펴 보소서 나를 아는 자도 없고 피난처도 없고 내 영혼을 돌아보는 자도 없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나를 핍박하는 자에게서 건지소서 저희는 나보다 강하니이다.”(142:4-6) 믿음 생활을 하면서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최고의 피난처가 되시는 주께로 피하는 자, 자신이 처한 형편을 토로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살리시는 주를 높이고(87-88)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를 섬기는 동안 누구를 높이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불평불만 하지 말고, 살리시는 주를 높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원수들이 자신을 죽이다시피 했지만, 그때에도 주의 법도를 버리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119:87) 우리 또한 원수들의 공격 가운데서도 입술로 범죄 하지 말고, 주의 율례를 붙잡으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기를 바란다. 구약성경에는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고 온 힘을 다했지만 그를 살려준 다윗의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다윗은 십 광야 앞 하길라 산 길가에 진친 사울을 발견한다. 그런데 다윗은 진영 가운데 누워서 자고 있는 사울의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며, 그를 살려준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삼상 26:9)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이 선한 마음,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이 있기를 바란다. 어떤 사건을 볼 때 하나님의 큰 뜻이 있지는 않은지 영적으로 잘 분별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119:25)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 영혼이 먼지 속에 처박혔사오니 말씀하신 대로 이 몸을 살려주소서.”(119:25) 자신을 해하려 하는 원수에게도 사랑으로 대하고, 자신이 처한 형편을 하나님께 아뢰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살리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신 주를 바라보며, 그분을 높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시편 119:88) 살아계신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하며, 우리 또한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리시는 주를 높이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를 살리시는 주를 높이며, 주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25:10)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약속과 명령을 지키는 모든 사람들을 성실과 사랑으로 인도하시는구나.”(25:10) 하나님의 약속과 명령을 지키기를 즐거워하는 자, 그리하여 주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열정적으로 믿음 생활하는 자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열정적으로 믿음 생활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10:28) 언젠가 주를 뵙게 될 날에 주님께서 기쁨으로 맞이해 주시고, 우리도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하나님 중심적인 믿음의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열정적으로 주를 섬길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3:15-16) 어둠 속에서도 소망 되시는 주를 붙잡고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 바로 가 되기를 기도한다. 어떠한 삶의 형편 가운데서도 주의 말씀을 바라고 주의 긍휼을 구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사람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께 도움을 구하는 자! 믿음 생활하면서 불평불만 하지 말고, ‘를 살리시는 주를 높이며, 주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살아가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족한 삶을 사는 자!

성경: 디모데전서 6:3-10

딤전 6:3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딤전 6:4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딤전 6:5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

딤전 6:6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딤전 6:7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딤전 6: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딤전 6: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딤전 6: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1. 세상을 탐하지 말고 늘 깨어 있어.

얼음이 얼어붙은 골짜기 위를 나르던 독수리가 있었다. 그 독수리는 짐승이 죽은 것을 발견하고 얼어붙은 골짜기로 내려가 오래도록 식욕을 채웠다. 그러다가 그만 날개가 얼음에 얼어붙고 말았다. 위로 날아 올라가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결국, 독수리는 그렇게 죽고 말았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을 탐하는 일에 열중하다 결국은 하늘을 날을 수 없게 된 이 독수리처럼 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영혼과 믿음과 사랑의 날개를 세상에 잠기지 않도록, 늘 깨어 있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믿음의 선한 싸움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명하면서 성도들에게 바로 교훈할 것을 지시했다. 이 믿음의 싸움은 특히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서 믿음의 길을 저버리는 자들에 대해 경계할 것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 것을 교훈했다. 본장은 5장에서 거론되던 교회 안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뒤이어 교회의 문제들을 다루며, 마지막으로 디모데 개인에게 주는 명령 및 결어로 맺어지고 있다. 제일 먼저 상전에 대한 순복을 다룬다(1-2). 이것은 노예 제도가 있던 초대교회 당시의 상황에서 나온 교훈으로 갈등 관계에 있는 두 계층을 향하여 순복과 사랑의 원리를 논한 것으로 엡 6:5-9과 일맥상통한다. 뒤이어 경건한 자가 금해야 할 교만과 탐욕에 대해 다루고 있고(3-10), 선배 목회자인 바울이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주는 개인적 권면(11-16), 그리고 부자들이 갖추어야 할 실천적 신앙을 언급함으로써(17-19), 자칫 현실에 안주하기 쉬운 부자들에게 교훈하고 있다. 끝으로 비공식적인 인사말로 끝맺는 말(20-21)이 기록되어 있다.

 

3.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경건에 힘쓰며(3-5)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힘써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경건에 힘쓰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딤전 6:3)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다른 교리를 가르치거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건전한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거나 경건한 생활 원칙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딤전 6:3) 바울은 다른 교리를 가르치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함을 언급한다. 바울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진리의 말씀에 착념치 아니하는 자는 교만하여 진리를 알지 못하므로 다툼을 일으킨다고 말한다. 이러한 자들의 마음은 부패하여 경건을 이익의 재료로 생각한다. 그들은 복음을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며, 겸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다툼이 아닌 화평 가운데 거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날마다 말씀을 가까이하고 경건의 생활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전 4:7-8) 하나님을 모독하는 무가치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한 사람이 되도록 자신을 훈련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영적으로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는 교만하여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 6:4-5) 우리는 교만하거나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지만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지 않고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간다면, 그는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예수님의 제자일 것이다. 우리는 육체의 정욕을 위하여 살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육체의 정욕을 위하여 사는 자들은 주의 몸된 교회를 어지럽히고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충만함을 입어, 날마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 가운데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이다. 힘써 기도하되, 삶 가운데서 다툼과 논쟁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58:4) 자신이 속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같은 마음을 품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12:16)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고 주의 진리의 말씀을 따라 행하며, 경건의 삶에 힘쓰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5:26)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에 믿음으로 살 것을 결단하며, 주의 말씀을 사랑하고 경건의 생활에 힘쓰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자족하는 마음으로(6-8)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으로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딤전 6:6) 여기서 자족하는 마음생활에 넉넉한 재산, 자신의 몫이 충분하다고 보는 마음 자세, 자족함을 뜻한다. 본문에서는 영적인 풍요함 즉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어가는 가운데 경건한 마음을 통해서 얻게 되는 마음의 참된 평화의 상태를 가리킨다. 우리는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에 큰 이익이 있음을 깨닫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기 삶의 형편을 돌아보며 원망과 낙심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허락된 환경 가운데서 감사의 제목을 찾고 그리스도 안에서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인생에 환난과 풍파가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삼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믿음 생활을 하면서 환난과 풍파가 온다고 할지라도 끝까지 인내하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는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잃지 않는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음을 깨닫고 늘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 우리는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음을 기억하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아는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혹시 부유한 자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혼을 찾으실 때 이 땅에서의 그의 삶은 끝인 것을 기억하며, 우리는 자신만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20-21) 개인적인 종말이나 역사적인 종말의 때가 되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자신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삶 가운데서 지혜로운 선택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허탄과 거짓말을 멀리하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30:8-9)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늘 갖고,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자족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돈을 사랑하지 말고(9-10)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보다 무엇을 더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인생을 살아가면서 돈은 중요하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우리는 돈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돈을 좇아가는 인생이 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 보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어떤 것이 결코 있어서는 되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사람이 부자가 되려 할 때 시험과 올무에 빠지고 결국엔 멸망에 빠지게 된다고 말한다. 탐심은 우상 숭배로서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사단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 사단은 믿는 자들을 유혹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지금도 일하고 있다. 그는 물질로써 사람들을 유혹하여 진리를 떠나 멸망과 침륜에 빠지도록 힘쓰기도 한다. 심지어 사단은 광야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셨던 예수님께도 나타났다. 우리는 사단이 지금도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알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며 믿음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룟 유다는 돈을 사랑하므로 예수님을 배반하는 극악한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아간도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써 비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다. 우리는 하나님 보다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올무에 걸리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21:6) 언제나 거짓을 멀리하는 그리스도인,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가 되기를 소망한다. 부는 좋은 것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보다 부를 더 사랑하거나, 거짓으로 부를 축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을 인하여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보라 너희 밭에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5:1-4) 늘 정직한 마음으로 행하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평안함과 부를 누리는 가 되기를 소망한다. 악인으로 살아가서 슬픔 가운데 거하지 말고, 믿음의 사람이 되어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악인에게는 많은 슬픔이 있으나 여호와를 신뢰하는 자에게는 인자하심이 두르리로다.”(32:10)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자, 그는 지혜로운 자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 있는 것들보다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돈을 최고로 여기며 살아가는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돈을 비롯한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고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소망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4:22) 우리는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음을 믿음으로 날마다 선포해야 할 것이다. 믿음 안에서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모든 일에 만족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3:12-13)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매일의 삶이 그리스도 안에서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헛된 영광을 구하지 말고 주의 말씀을 따라 행하며, 경건의 삶에 힘쓰는 자! 그리스도 안에서 허탄과 거짓을 멀리하고, 자족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는 삶을 사는 자!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지 말고, 세상에 있는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는 자!

성경: 이사야 42:1-4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42:2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42:4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1. 예수님께 나아와

어느 날 한 부인이 무디를 찾아왔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너무나 강퍅해서 도저히 예수님께 나올 수가 없다고 무디에게 말했다. 그 후, 무디는 이렇게 권면했다. ‘그렇군요. 아주머니!, 그러나 성경은 너희 마음이 온유한 자는 다 내게로 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검은 사람이나 마음이 악한 사람이나 마음이 강퍅한 사람이나 마음이 온유한 사람이나 어떤 사람을 막론하고 다 나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 외에 누가 아주머니의 강퍅한 마음을 온유하게 만들어 줄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주께 나아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예수님 앞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자신의 마음의 모양이 어떠하던지,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참 쉼을 얻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영원히 회복시키실 분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힌 것과는 다르게, 그분은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역할을 감당하신다. 하나님의 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모든 인간이 감당해야 할 죄의 몫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친히 인간의 죄악을 담당하셨는데, 그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얻은 구원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거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이어지는 징표가 된다. 본장은 하나님의 종인 메시야가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이루신다는 구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붙드시고 선택하신 민족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축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1-4). 하나님은 그의 종의 사역을 도우시며 새로운 일을 행하게 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것을 말한다. 이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이 찬양을 받게 될 것이다(5-17). 그러나 현재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악을 행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며 형식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18-25).

 

3. 이방에 정의를 베풀 예수 그리스도(1)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임을 깨닫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께서 이방에 정의를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42:1)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셨으며, 온 세상에 진리를 전하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때가 되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주님 위에 임하셨음을 기억한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3:16) 요한은 자신이 세례를 줄 때 주님 위에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장면을 보며, 주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다. 그리고 그 장면을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이렇게 기록한다. “요한이 또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 하였노라 하니라.”(1:32-34)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이 땅 가운데서 사역을 감당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께서는 어두움에 눌린 자들을 자유케 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셨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10:38) 우리는 를 구원해 주시고, 어두움에서 자유하게 해 주신 예수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최고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1:13)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빛의 자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는 인생, 부끄러움을 당치 않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벧전 2:6)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벧전 2:4)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음을 기억하며,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구원받고 천국 백성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심(2)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임을 깨닫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께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42:2)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소리치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며, 거리에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셨다. 그분은 겸손하고 온유하신 우리의 주가 되신다.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주님 앞에 맡기어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마음의 쉼을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예수님께 나아와 쉼을 얻고, 그분 안에서 날마다 믿음이 자라나고 좋은 성품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마땅히 주의 종은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딤후 2:24) 주 안에서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에게 친절히 대하며 지혜로 권면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사랑이 풍성하시고 다투지 않으시는 주가 되신다.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 경계하셨으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말씀하신 바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바 나의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성령을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12:16-20)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 주님, 정의를 승리로 이끄신 주님을 믿고, 그분께 순복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모욕을 당하시면서도 모욕으로 갚지 않으신 주님,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위협하지 않으시고 정의대로 심판하시는 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신 주님께 늘 감사하며, 그분을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3)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신 예수님을 믿고,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17:20)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소유하며, 육체의 장막을 벗은 후에도 영원한 천국에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심(3)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떠한 분임을 깨닫고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주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42:3) 여기서 꺾지 아니하며는 원어로 <rb'v;: 솨바르>이다. 이는 깨뜨리다, 산산조각 내다.’라는 뜻으로 심판적, 형벌적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꺾지 아니한다.’는 것은 영원히 죽을 운명에 처한 인간을 버리지 않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킨다. 우리가 상한 심령으로 나아간다면 주님은 우리 마음의 상처를 싸매주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147:3) 누구든지 주께로 나아가면 상처의 치유를 받고, 살게 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이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주시는 주님을 가까이하는 자, 그가 지혜로운 자인 것이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40:29-31)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좋으신 주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 하나님을 의지하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50:10) 우리는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과 빛이 없이 흑암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기를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열방이 주님 앞에 나오는 날을 꿈꾸며 영으로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또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이후, 그 사실을 보지 않고 믿지 못하는 믿음이 없는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20:27) 하나님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는 믿음, 성령의 감동하심에 따라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바란다. 그러나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할 것이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지금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고 경건의 훈련에 힘써야 할 것이다. 언제나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주께로 와서 쉼을 얻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자신의 모든 근심과 문제를 주님께 맡기며 기도하여 응답을 받고, 장성한 분량의 믿음에 이르러 주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쇠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고, 예수님만 바라보며 승리(4)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쇠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붙잡고 승리하는 자, 삶의 역경 속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며 승리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42:4) 이사야 선지자는 그분이 비틀거리거나 낙심하지 않으시는데, 섬나라 사람들도 그 가르침을 기다릴 것을 대언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통해 날마다 교훈 받기를 소망한다. 땅의 모든 족속과 열방이 주께로 돌아오며 주 앞에 경배해야 함을 기억하고, 우리도 그분께 경배하는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열방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경배하리니.”(22:27)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경배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2-3)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도 를 위해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만을 바라보며 낙심치 말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주께서 이방에 정의를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구원받고 천국 백성의 삶을 사는 자! 주께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육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며 영원한 천국에 가는 자! 주께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그분께 와서 쉼을 얻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늘 깨어 있어 주를 기쁨으로 뵈옵는 자

성경: 마가복음 13:28-33

13: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13: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13: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13: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13: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

 

1. 빛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새로운 삶

미국 출생으로 영국에서 거주했던 화가 휘슬러의 저서 중 ‘10시의 강의라는 것이 있다. 그 내용은 오후 10시만 되면 낮에 보이던 런던교의 추한 부분도, 다리 밑의 흙탕물도 모두 채식이 되어 자취를 감추고 가스 빛으로 템즈 강만이 휘황 찬란한 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휘슬러의 유명한 ‘10시의 강의이다. 정말로 도시의 추한 곳들도 밤만 되면 보석 같은 빛을 받아 아름답게 보인다. 인간의 삶과 세계의 모습도 비슷할 수 있다. 악이 성해지고 죄악이 깊이 스며든 곳일지라도 주께서 강림하시면 그의 빛으로 인해 다 아름답게 변화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지금 나의 삶의 형편과 처지가 어떠하다고 할지라도,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새롭게 되기를 바란다. 흙탕물이었던 자신의 삶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나고 회개하여, 천국 백성으로서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이스라엘의 멸망과 세상의 종말

본장은 이스라엘의 멸망과 세상 종말에 있을 사건을 복합적으로 다루고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운명을 예언하신 후에 감람산에서 성전을 바라보시면서 마지막 날에 일어날 사건들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해 주셨다. 이 예언을 감람산에서 하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감람산 강화라고도 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을 예언하셨다(1-2). 감람산에 올라가사 제자들에게 종말에 일어날 여러 가지 현상들에 대하여 예언하셨다. 각처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고 전쟁과 지진이 일어나고 복음이 만국에 전파되고 해와 달과 별의 권능이 흔들릴 때 인자가 구름 타고 영광중에 온다고 말씀하셨다(3-27). 그리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구체적인 종말의 때는 알지 못하지만, 대략적인 때는 알 수 있을 터이니 깨어 있으라고 경고하셨다(28-37).

 

3. 인자가 가까이 올 때(28-29)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시대를 분별하며, 누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시대를 분별하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13:28-29) 28절의 말씀은 무화과 나무의 예증으로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상징이다. 예수님도 이 상징을 이전에 사용하셨다(13:6) 전에 언급되었던 그 나무의 특색은 열매와 잎사귀가 거의 동시에 생긴다는 점이다. 잎사귀가 돋아나면 여름이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소생된 민족을 이 종말론적 사건의 다가옴과 결합시키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21:29-31) 우리는 주님의 오실 때를 고대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연의 현상을 보고 계절의 변화를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시대를 잘 분별하는 자들이 되어 주의 오심을 잘 준비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5) 우리는 이 시대가 주의 오심의 때가 가까웠음을 깨닫고 모이기를 더욱 힘쓰고, 깨어 있어 기도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서로 원망하기를 멀리해야 할 것이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5:9)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의 오심의 때가 가까운 것을 알고, 심판의 때에 주님을 기쁨으로 뵈옵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얻으면 경건치 아니한 자와 죄인이 어디 서리요.”(벧전 4:17-18) 주님 앞에 의인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복음에 순종하는 자, 경건의 훈련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면서 시대를 잘 분별하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반드시 이루어지는 주의 말씀(30-31)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무엇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됨을 믿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주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됨을 믿으며, 경건에 힘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13:30-31) 예수님은 무화과나무의 상태가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것을 통하여 시대를 분별하라고 가르쳐 주셨다. 이처럼 자연의 현상을 통해서 때를 분별할 수 있듯이 시대의 징조를 통해서 주님께서 반드시 재림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도록 비유로 가르치셨다. 주님은 천지는 없어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과 진리의 말씀은 영원히 불변하며 반드시 성취됨을 깨닫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옛적에 땅의 기초를 두셨사오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니이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 주는 여상하시고 주의 연대는 무궁하리이다.”(102:25-27)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그 천지도 주께서 말씀하실 때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천지는 없어져도 창세 전부터 계셨던 주님은 영원히 존재하실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하라.”(40:8) 우리는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며, 자연 만물이 결국 시드나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심을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짓말을 하시지 못하며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행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23:19)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 앞에, 그분의 뜻을 잘 분별하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께서 반드시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을 데리러 오실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13:26-27)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거룩한 신부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0-12) 주의 날은 반드시 도적같이 오게 될 것이다.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동안, 주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됨을 믿으며, 경건에 힘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주님의 오실 때를 모르므로, 근신하여(32-33)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근신하며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주님의 오실 때를 아무도 모름을 기억하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13:32-33) 예수님은 재림의 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고 말씀하신다. 하늘에 있는 천사도 모르고 심지어 아들까지도 모르며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그날과 그 시기를 알지 못하므로 주의하여 깨어 있어야만 한다. 종말의 섭리에 대한 성도의 긴장이 풀어지는 일처럼 위험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에 예고된 종말의 징조를 잘 분별하고 경계하며 바른 믿음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 바 아니요.”(1:7) 우리는 그때를 알지 못하므로 영적으로 늘 깨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25:6) 우리는 그때를 잘 알지 못하나, 신랑이신 예수께서 반드시 오실 것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날마다 경건의 훈련에 힘쓰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12:15)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는 그리스도인, 건강하고 깨끗한 공동체가 가 속한 공동체가 될 것을 소망하며, 우리는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6:18)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성령님을 의지하기를 바란다. 주님의 오실 때를 아무도 알지 못함을 기억하고, 구원받은 주의 백성으로서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있어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간절히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며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한 자가 되지 말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 주께서 우리를 맞으러 오실 때 언제든지 주님을 기쁨으로 뵈옵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34-36)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오실 때를 아무도 모름을 기억하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근신하여 깨어 있는 자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로서 언제나 근신하여 깨어 있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의 다음 말씀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 엘는지, 밤 중 엘는지, 닭 울 때 엘는지, 새벽 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13:34-35) 우리는 집주인이 저물 때, 밤 중, 또는 새벽 엘는지, 언제 주께서 오실지 모름을 깨닫고, 언제 주인이 오든지 반갑게 주인의 얼굴을 뵐 수 있는 충성 된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지금도 마귀는 열심히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힘쓰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16:15) 믿음 생활을 하면서 말씀을 가까이하고 성령님을 앞세워 나가며, 죄를 멀리하는 그리스도인, 사랑의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이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대를 분별하며,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복된 자! 주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게 됨을 믿으며,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살아가는 자! 주님의 오실 때를 아무도 모름을 기억하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