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하늘에 시민권을 둔 그리스도인

성경: 빌립보서 3:17-21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1. 유혹

영국의 도서 지방에 있는 니들즈(Needles) 근방의 사우스 다운즈(South Douns)라는 곳에서만 서식하는 특이한 종류의 나비가 있다. 한 곤충학자는 그 나비를 채집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해가 지면 시럽단지와 솥을 가지고 언덕에 올라가, 엉겅퀴에다 솔로 시럽을 발라 놓은 뒤 밤중쯤 되어 그곳에 가보면 나비들이 시럽에 달라붙어 날아가지 못합니다.’ 이는 사탄의 속임수와 흡사하다. 사탄은 온 거리마다 쾌락의 단물을 발라 놓고는 유혹받은 자들의 발목을 잡아 놓는다. 달콤한 독배를 마시고 위험에 대한 모든 의식을 상실하도록 유혹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 것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는가? 사탄의 유혹을 따라가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 성령님의 음성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늘 소망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유대주의자들의 거짓 교훈에 대해 경계하면서 자신과 같이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살 것을 명한다. 거짓 선생들은 육신의 욕심을 위하여 산다. 하지만 성도는 바울과 같이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둔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좇아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본장은 빌립보 교회를 혼란케 하는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엄중한 경고를 다루고 있다. 즉 유대주의자들이 여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빌립보 교회에 침입하여 복음의 순수성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논쟁적인 어조의 엄중한 경고를 한다. 본장에 수록되어 있는 바울의 적대자와의 논쟁은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과 바울 자신의 입장을 밝혀 주고 있다. 바울은 본장에서 자신의 적대자들을 가리켜 개들, 행악하는 자들, 손할례당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대화를 획책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바울은 매우 신랄하게 책망한다.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 바울은 적대자들에 대한 강경한 경고와 더불어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이 가져다 준 유익에 관하여 설파하고 있다(1-14). 둘째 단락에서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아 진리를 굳게 잡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되 거짓 교사를 멀리하라고 경계하고 있다(15-21).

 

3. 믿음의 본(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본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본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믿음으로 살아갔음에 대해 확신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유혹을 경계할 것을 명하면서 자신을 본받아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좇아 행하라고 권면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3:17) 여기서 원형, 따라가야 할 표상을 가리킨다. 바울은 복음에 철저한 자신의 삶을 따르라고 성도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3:17) 확신에 찬 믿음으로 바울은 고백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도들의 본이 되라고 권면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자신이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자, 타인에게도 믿음의 본이 될 수 있는 자가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체들 앞에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복 받은 자가 분명하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13:7) 우리의 삶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님의 아름다운 열매가 점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더욱 확고한 믿음으로 사는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 간에 서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는 자(18-19)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의 원수로 행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3:18) 바울은 눈물로 많은 이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여 멸망의 길로 가는 자들을 좇을 것을 염려하며 간절한 호소를 한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사람마다 십자가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소망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를 어리석게 보는 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 그들이 멸망으로 가게 됨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3:19) 여기서 위장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한 자들은 욕심을 따라 행함으로써 배를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자,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늘 깨어 있어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땅의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 밖에 있을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22:15) 우리는 십자가와 원수가 되게 행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기쁨으로 주를 뵈옵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1:18-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숨을 걸고 따라가는 주님의 군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자신의 모습은 감추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되는 역사, 성령님의 도움으로 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20-2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시민권을 둔 자인가?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나, 하나님 나라에 시민권을 둔 자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3:20) 바울은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땅의 일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며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신분이 하늘에 소속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위엣 것을 찾는 지혜로운 인생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3:1-3)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인생, ‘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이 나의 삶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세상과 짝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힘들고 고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주와 함께 걸어가는 삶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11)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주의 자녀들을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깨닫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소망한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날마다 믿음의 사람들이 열방 가운데 더해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주님,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살리시는 주가 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소망 가운데 즐거움으로 이 길,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3: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우리도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을 소망 삼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좇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3:4)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로서 세상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며, 하늘을 소망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서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늘에 속한 삶을 사는 자!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삶을 살아갈 것을 믿음으로 결단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의 법치하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법이 통치하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소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나그네에 불과하며 정의와 평화의 법이 다스리는 영원한 본향으로 가는 과정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운명과는 대조되는 놀라운 축복과 은총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교훈을 따르거나, 땅의 거짓된 것을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 그리스도로 인한 참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4:1) 하늘에 소망을 두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제자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8)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사라질지라도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주를 바라보며,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의 사람으로서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 예수님의 생명과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살아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5-7)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움으로 확고한 믿음으로 살기를 소망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고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게 하며, 성령님의 도움으로 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하며, 하늘을 소망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서 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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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성경: 시편 27:1-6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편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편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 소망

미국의 백화점 왕인 제이 씨 페니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는 심한 재정난에 허덕여 죽으려고까지 했고, 격리 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찬송 소리를 듣고 한 예배의 장소로 가 보았다. 그때 그곳에서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가 뒷좌석으로 다가가 앉으려 할 때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매우 익숙한 찬송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찬송은 그에게 위로와 큰 확신을 주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나를 좀 돌보아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그 후 그는 건강도 회복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결국 상업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소망의 하나님

본 시편은 어려움에 처할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 이전까지 선한 것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께만 소망을 둔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을 가진 주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본시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이런 일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기도 하는 일이다. 본시는 비탄시로서 자신의 슬픈 처지를 탄식하며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는 내용이다. 시인은 자신의 위기에 대해 호소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반드시 보호해 주신다는 신앙의 확신을 노래한다.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므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친다고 할지라도 두렵지 않다는 담대한 신앙고백을 한다(1-6). 이어서 시인은 자신이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있으니 여호와께서 응답해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주께서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버리거나 떠나는 일이 없기를 절실한 마음으로 부르짖는다(7-12). 마지막으로 시인은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함으로써 끝을 맺는다(13-14).

 

3. 두려워하지 않음(1-3)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빛이요 구원주이시며 생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어떤 두려움과 공포도 없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두려움은 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있는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다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과 보호의 능력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빛과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1) 여기서 능력은 원어로 <z/[m;: 마오즈>이다. 이는 피난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안전한 장소, 피난처, 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과 피난처가 되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형편 가운데 처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15:2) 모세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힘과 노래와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듯이 주를 신뢰하는 자들 앞에 있는 어떠한 문제와 상황도 해결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원수들이 왔으나 그들이 실족하고 말았음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7:2) 하나님이 의 편이 되어주신다면, 원수들도 어찌하지 못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울 것이 전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3:6) 담대하게 고백했던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날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매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담대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편 27:3) 여기서 ‘태연하리로다신뢰하다, 의탁하다를 의미한다. 다윗은 주를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군대가 진 칠지라도 전쟁이 일어나 자신을 치려 할지라도, 주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윗뿐만 아니라 에게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넉넉히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5-37)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이 부족한 자들은 주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를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안전함(4-5)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주 안에서 안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 27:4)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원어로 <!['n: 노암>이다. 이는 선함, 매력, 아름다운 점, 사랑스러움을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확신을 여호와의 집에 거하려는 갈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에 대한 바램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서 그 전에서 사모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안목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그분의 말씀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다윗과 같이 그분 안에 있을 때 안전함을 깨닫고, 여호와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하기를 소망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6) 우리에게도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가득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또한, 다윗은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키시는 주가 되심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시편 27:5) 여기서 장막회막, 여호와의 전이라고도 불리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주와 동행하기를 원했던 다윗은 환난 당할 때 하나님께서 주의 날개 아래에서 지켜 주심을 고백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갈망하는 다윗은 자신의 환난 날에도 여호와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고백한 것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이 임재해 계시는 장막 은밀한 곳에 자신을 숨겨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확신했다.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고백과 믿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늘 친밀한 교제가 있기를 소망한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께서 베푸시는 절대적인 안전과 은혜를 입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은혜로 인하여 환난을 당해도 요동하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처럼 우리도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방의 모든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반석 위에 든든히 선 우리의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7:24-25)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서가는 믿음이 의 믿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원했던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여호와를 찬송(6)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주를 높이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7:6) 여기서 제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 드려졌던 종교의식이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무찔러 주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드리며 주를 찬양할 것을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둘러싼 원수를 무찌르시고 높임을 받을 것을 확신했다.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원수들 앞에 두려워하거나 그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실 주를 기대해야 한다. 원수를 무찌르시는 주님, 모든 결과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주님을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21:13)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체험하고, 날마다 주를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주를 찬양하기를 소망한다. 지금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를 높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19-20) 우리는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자녀가 되어 서로 교제하며 주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해와 방패가 되시는 주, 은혜와 영화를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 달려가는 자, 그는 안전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18:10)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내가 만난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문제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건져 주시고, ‘를 사망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날마다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자!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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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죄 아래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삶!

성경: 로마서 3:9-18

3: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3: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3: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3: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3: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3: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3: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3: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1. 말의 지혜

어떤 사나이가 길을 걷다가 땅 위에 사과 모양을 한 이상한 것이 있기에 발로 밟았다. 그러자 그것은 갑자기 두 배로 커졌다. 사나이는 힘을 주어 다시 밟았다. 그러자 그것은 더 커졌다. 이번에는 지팡이로 때렸다. 그랬더니 그것은 크게 부풀어 결국 길을 막아버리고 말았다. 이때 신이 나타나 사나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좋아! 그것은 말싸움이라는 이름의 사과야. 상대하지 않으면 처음대로 있으나 맞서기만 하면 자꾸만 커지는 이상한 사과란 말이야!’ 말은 할수록 번지고 옮길수록 커지는 법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언어의 사용에 있어서 절제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아름다운 말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이웃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유대인들이 마침내 심판을 받고 망하게 되는 것이 결코 그들의 종교적 특권과 상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들이 망하게 된 것은 그들이 거짓되어서 하나님을 믿지 않은 까닭이다(1-8). 그리고 바울은 모든 사람들이 다 죄인이라고 결론 짓고(9-20), 율법은 우리 죄를 지적하여 우리로 하여금 어찌할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하지만 은혜는 그런 죄인 의식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21-31).

 

3. 죄 아래 있는 인간(9-12)

해 아래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존재였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 죄 아래에 있는 연약한 자이다. 바울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을 증거한다.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 아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3:9)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우리 유다인이 나은 점이 무엇입니까?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미 내가 지적했듯이 유다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다 같이 죄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입니다.”(3:9)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인간은 모두 죄 가운데 놓였다. 우리는 연약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수 없는 자인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여기서 의인은 원어로 <divkaio": 디카이오스>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도덕적으로 깨끗한 자를 가리킨다. 그리고 성경적으로는 하나님의 율법적 요구에 완전히 응한 자를 말한다. 이는 인간의 원죄로 인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일 수 밖에 없음을 증거한 것이다. 아담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타락한 인류는 더 이상 선을 행할 능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이 땅 가운데 스스로 의인 된 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3) 모든 사람은 죄 가운데 놓였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가 허락되어야만 했다.

그러나 연약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알지도 못했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3:11) 여기서 찾는 자는 원어로 <ejkzhtw'n: 에크제톤>이다. 이는 하나님을 구하는 것또는 하나님의 공의를 요구하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의 공의를 찾지도 않는 이렇게 연약한 자가 바로 인간이다. 이렇게 작은 존재인 우리는 인간 스스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인간은 무지하여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을 수도 없는 자인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멀리한다면, 그분은 잠시 동안 하나님의 은혜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실 수도 있다.

반면에 우리가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율법을 좇아 그렇게 사는 자가 되려고 힘쓸지라도, 그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는 연약한 자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3:12) 바울의 이러한 증언은 사람이 율법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인 것이다. 주님을 알기 전에는 길 잃은 양이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을 고백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우리가 스스로 의롭게 되지 못하고 의로운 자가 아님을 인정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가 사는 길은 여호와께 돌아가는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3:6) 이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지 말고, 죄악을 사하여 주실 예수님께 나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자신이 해 아래에서 죄 아래 살고 있었음을 깨닫고,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되었음을 깨닫는 자가 되어,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인간의 거짓된 언어와 행실(13-15)

해 아래 살아가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행실을 하고 있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죄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바울은 모두가 죄인 된 인간들이 행하는 죄악의 열매에 대해 열거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죄인 됨을 증거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이 혀로 속임을 일삼는다고 말한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3:13) 인간은 연약하여 자신의 입술로 범죄를 일삼는다. 바울은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 같아서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사람의 악한 마음이 입술을 통하여 나타나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는 죄와 관련하여 속임을 베푸는 죄의 성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은 악인의 모습에 대해 시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궤휼과 포학이 충만하며 혀 밑에는 잔해와 죄악이 있나이다.”(10:7) 우리는 이렇게 악인의 길을 걸어가며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악인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입에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다고 말한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3:14) 여기서 악독, 신랄함, 가혹이란 의미로 지배자들의 난폭성과 잔인성의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본문에서 바울은 인간의 죄악상을 이렇게 말한다.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3:15) 여기서 흘리는제의적인 자리에서 피나 분비물을 쏟다, 버리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신약에서 순교자들이나 예수님의 죽음과 연관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여기서는 피와 함께 살인 행위의 범죄를 고발하는 것이다. 또한,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르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성경에서 사용되는 악행에 대한 묘사이다. 이러한 악행을 행하는 인간의 길에는 파멸과 고생이 언제나 있어 평강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다. 우리는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그 시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렇게 연약하고 부족한 자가 이 시대를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죄악을 인정하며 회개하고,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23: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 입술로 죄를 범하고 있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작은 예수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인간(16-18)

해 아래 살아가는 연약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 어떠한 삶을 살아가기도 하는가?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인간은 영적인 감각이 둔하여 져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수도 있다. 이처럼 인간은 죄악으로 얼룩진 모습으로 살고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3:16) 그뿐 아니라, 평강의 길을 잘 알지도 못한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3:17) 우리는 하나님 없이 바른길을 걸을 수 없는 자가 연약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려고 해도 자신의 힘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렇게 연약한 자가 바로 우리이다. 우리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인간은 불행하며, 파멸과 고생이 있게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실체는 어떠한가? 바울은 인간 자체가 죄로 오염되었으므로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음을 증거한다. 율법의 역할은 무엇이었는가? 율법은 죄인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증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하기 위한 도구이다. 우리는 그 율법을 지킬 능력이 인간에게 없고, 율법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57:21)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는 새 생명을 주시고, 의롭다고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평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3:18) 여기서 두려워함은 원어로 <fovbo": 포보스>이다. 이는 당황과 놀람을 뜻한다. 특히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두려움에 수반되는 경외심을 뜻한다. 우리는 권위가 있으신 하나님이 를 사랑하고 계심을 깨닫고, 그분을 최고로 사랑하며, 두려워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바르게 서 있으려 하나 어리석음을 범하는 자가 바로 인간이다. 연악한 인간,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스스로 율법을 지켜 하나님의 의에 이르려고 하는 교만한 생각으로 범죄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어서 우리에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내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전적 부패한 존재인 우리는 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복된 삶을 살 것을 결단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지금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과 동행해야 할 것이다. 언제나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경외하고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하나님의 종들 곧 그를 경외하는 너희들아 무론대소하고 다 우리 하나님께 찬송하라 하더라.”(19:5)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나의 행실을 살피며, 여호와를 찾는 삶!

우리는 구원 받은 주의 자녀로서 자신의 행실을 살피며, 여호와를 찾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하니라.”(3:10) 우리의 입술이 주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죄 아래 있는 자로서 십자가의 은혜를 붙잡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바른길을 걷게 하실 것이다. 죄 아래 살았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보혈로 새롭게 되었음을 깨닫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고 사는 자! 주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깨닫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작은 예수로 살 것을 결단하는 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고,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십자가 앞에 나오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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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부족함이 없으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성경: 시편 23:1-6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1. 인도하심

비행기는 착륙과 이륙이 매우 중요하다. 기후가 사납거나 짙은 안개로 인해 조종사의 시야가 가려진다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기장은 착륙 장치 계기를 두 전광에 맞추어 일정 속도로 하강하며 비행기의 조정 계기 장치에 온 신경을 다 쏟는다. 또한, 부기장은 무전기에, 부조종사는 계기 작동에 매달려 온 심혈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는 사고를 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요즘은 공항에 최신식 컴퓨터 착륙 장치가 있어서 비행기가 그 영역 안에 들어오면 조종사는 조종간이나 감속 장치 작동 등을 모두 컴퓨터에 맡긴다. 그러면 비행기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짙은 안개나 사나운 일기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착륙하게 된다. 하물며 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길 때 안전한 곳으로 인도함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인도함 받기를 소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널리 애송되는 시편을 꼽으라면 시 23편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과 성도들을 목자와 양이라는 관계로 묘사하는 아름다운 이 시는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의 축복에 대해 깊은 확신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목동의 경험을 가진 다윗의 생생한 시적 표현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심어 주고 있다. 본시는 아름다운 서정시로서 여호와를 목자로, 인간을 양으로, 그리고 인생을 푸른 초원으로 비유하여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을 노래했다. 음침한 골짜기와 원수라는 시적 소재를 적절하게 사용하여 전반부의 전원적 이미지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시킨 후에 최종적으로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찬양함으로써 끝맺는다(1-6).

 

3. 목자이신 하나님(1-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어 주시는가?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목자가 되어 주신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이러한 은유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3:1) 여기서 목자는 하나님을 비유한 말이다. 고대 팔레스타인은 목축업을 주로 하였으므로 이 비유는 널리 사용되었다. 다윗은 자신이 아닌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하면서 하나님이 자신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다윗은 양에게 목자가 절대적인 존재요, 생명 그 자체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온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주의 자녀들을 늘 지켜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의지할 때 결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또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34:9-10) 주의 자녀로서 날마다 여호와를 찾을 때,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목자가 되어 주시는 우리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23:2) 여기서 초장은 원어로 <t/an]: 네오트>이다. 이는 거처, 안식처를 뜻한다. 그리고 쉴 만한은 원어로 <t/jnUm]: 메누호트>이다. 이는 잔잔한, 조용한을 의미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안식처로,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심을 고백한 것이다. 우리는 다윗뿐 아니라 하나님을 목자로 여기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영적인 복을 얻게 됨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인도하시며 영혼의 양식을 먹여 주신다. 영혼의 양식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을 의로운 말씀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감사하며, 하나님만을 높이는 인생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목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주님께 묻고 기도할 때, 그분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영적으로 구한 것 이외에 더 좋은 것들로 풍성케 하실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우리는 주의 자녀들을 좋은 물가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동안,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목자이신 하나님과 동행하며 끝까지 승리하여 주께 잘했다고 칭찬받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2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인도하시는 하나님(3-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어 주시는가?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신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23:3) 여기서 소생시키고는 원어로 <bWv: 슈브>이다. 이는 돌아오다, 회복하다, 회개하다.’를 뜻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혼을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해 의의 길로 인도하심을 믿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윗뿐 아니라 주의 자녀들을 의의 길로 인도하셔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주와 함께 살아가는 자는 영혼이 회복되며 의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목자의 삶을 생각해본다면 어떠한가? 목자는 그 양을 찾아가서 구해 내며 평소에도 양들을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지팡이로 방향을 제시한다. 그리고 양들을 덮치는 맹수들을 무찌르기 위한 막대기를 가지고 있다. 다윗은 이런 목자와 같으신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하시는 분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목자의 기구들이나 목자의 희생적인 태도는 하나님의 보호를 상징하기에 매우 적절하다. 다윗은 그의 생애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기면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다. 하나님은 이렇게 다윗의 삶에서 역사하시며 그를 보호해 주셨는데, 하나님은 다윗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을 지켜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는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위기와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한다면 그분이 반드시 를 건져주시고 보호해 주심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의 백성들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23:4) 여기서 지팡이와 막대기는 목자들이 가지고 다니던 무기로 양들을 인도하고 맹수의 공격을 막을 때 사용한다. 우리가 주를 믿는 믿음을 확실히 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되어주시며, 주의 자녀들은 어떠한 해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구원의 주를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가 소경을 그들의 알지 못하는 길로 이끌며 그들의 알지 못하는 첩경으로 인도하며 흑암으로 그 앞에 광명이 되게 하며 굽은 데를 곧게 할 것이라 내가 이 일을 행하여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리니.”(42:16) 하나님은 캄캄하던 앞길을 트이게 하시며, 험한 길도 탄탄대로가 되게 하시는 주가 되신다.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험한 길이 평탄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주께서 행하시면 불가능함이 없는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이 혼자가 아니며, 주께서 항상 함께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주의 백성들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실 주를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건지시는 하나님(5-6)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어 주시는가?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건지시는 주가 되신다. 다윗은 자신의 삶이나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목자로서 인도하시며 보호하셨던 하나님이 자신을 얼마나 큰 축복으로 채워주셨던가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다윗은 자신이 원수들의 위협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원수들이 보는 앞에서 큰 식탁을 베푸시고 자신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며 연회를 베풀어주셨다고 말한다. 여기서 하나님은 후하게 손님을 환대하는 너그럽고 친절한 주인으로 묘사된다. 다급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에게 필요한 상을 차려 주셨으며 환대하면서 맞아 주셨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23:5) 우리 가운데도 주님의 간섭하심이 있어, 이러한 고백을 많이 하게 되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백성들의 원수들 보다 자기 백성들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늘 위협과 곤란 속에 살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몫인 내 잔이 주께서 베풀어주신 풍성하고 너그러운 축복임을 알고 있었다. 믿음의 사람들은 풍성하게 인도하신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어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의 환경이 아무리 어렵고 곤란하더라도 를 향한 축복을 풍성히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삶 속에서 그분만을 높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믿는 자들은 주님 안에서 만족하다고 고백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23: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의 선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이 평생에 나를 따를 것이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리라.”(23:6)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의 삶 가운데 넘쳐나기를 기도한다. 주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동안 기쁨이 넘치기를 소망한다.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자, 주님과 동행하며 기뻐하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일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하나님의 인도함을 잘 받고, 주 안에서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그분을 잘 따라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하며, 마음으로 결단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10:9-10)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 1:10)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에 감사하고, 주께 부르짖는 믿음의 사람들을 고난 가운데서 건지실 주님을 신뢰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거친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원수를 대적하시고 잔치를 베푸실 주님을 신뢰하고, 선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으로 인도하실 주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여호와를 경외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음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18-19) 죄악을 사유하시며, 인애와 자비가 풍성하신 주,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께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주를 기뻐하며, 주를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 의 삶을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103:17) 우리는 주의 인자하심이 의 삶에 영원토록 있기를 바라며, 내가 속한 공동체와 나라와 민족, 그리고 열방 가운데도 동일한 은혜가 있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푸른 풀밭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굳게 믿고 살아가는 자!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주의 백성들의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실 주를 바라보는 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받지 않을 것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이러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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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자!

성경: 로마서 8:1-8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8: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8: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1. 그리스도인

이 세상에서 위선자가 되려고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위선자는 외관상으로 그리스도인이므로 세상의 증오 대상이 된다. 그리고 그는 존재 가치가 없는 자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미워하고 자기 자신 또한 증오하며 마귀마저도 그를 멸시할 수 있다. 위선자들이야말로 마귀의 가장 충실한 추종자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장 놀라운 일은 아주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천국에 가는 것보다 그들은 훨씬 더 큰 고행을 하면서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은 신실하기를 원하나, 그들은 선하게 보여지기를 원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부르심을 받은 주의 백성들인 우리가 위선자로서의 삶이 아닌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속의 은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랑과 그에 근거한 구속의 은혜를 증거한다. 아들을 주시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신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주권자가 되시는데 누구도 그 사랑을 막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성도의 구원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본장에서 구원의 영원성을 길게 논한다. 구원은 그리스도가 속죄하여 주신 은총과 거기 따르는 성령의 살리는 역사로 이루어진다. 이 구원의 성취는 하나님 자신의 희생으로 된 것인 만큼, 그것은 하나님과 같이 영원하다(1-17). 그러므로 이 구원은 고난 때문에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고난 중에서 완성되어 간다(18-26). 그러나 모든 고난은 신자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고 도리어 합동하여 유익을 준다. 그렇게 되는 원인은, 신자가 구원받기로 예정된 사실에 있다(27-30). 신자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끊는 방해물은 없다.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하나님의 예정에 근거된 것이므로 영원한 것이다(31-39).

 

3. 예수 안에 있는 자(1-2)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 어떠한 은혜를 허락하셨는가? 예수님과 무관한 삶을 살 때는 인간의 죄의 해결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면 인간의 원죄에 대해 누구도 정죄하지 못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받는 일이 없습니다.”(8:1) 예수님과 함께 사는 사람, 거듭난 자들을 정죄할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예수님 밖에 있는 자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8-19)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악으로 가득한 세상에 오셨다. 그러나 인간들은 자기 행위의 악함으로 어두움을 더 사랑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은 결국 심판을 받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예수님을 주로 영접한 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음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죄와 죽음의 굴레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8:2)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들은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게 되었다. 이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하게 되었음을 알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렇다면 율법은 어떠한 일을 하는가?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을 이는 아무도 없으나, 그렇다고 율법이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우리는 율법의 행위로는 주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가 없고, 율법이 죄를 깨닫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자유케 된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주의 영 가운데서 기쁨으로 주를 섬겨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후 3: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동안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고,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영을 따라 행하는 자(3-4)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무엇을 따라 행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세상에서 자신의 뜻대로 살아갔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율법 아래 자유롭지 못한 인간을 위해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율법이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8:3) 여기서 보내어보내다, 파견하다라는 뜻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묘사한다.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은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우리의 타락한 성품 때문에 율법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양으로 보내시고 우리의 죄 값을 그에게 담당시키신 것입니다.”(8:3) 우리는 예수님께서 인간의 죄 값을 담당해 주셨음을 알고, ‘가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되었음을 선포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 2:24)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모습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영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시면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도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루어주셨다. 이 사실을 믿는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며 이제는 육신의 법을 따라 사는 자가 아닌, 영을 따라 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8: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8:4)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이제 육체를 따라 살지 말고,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야 할 것이다.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쓰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경건 생활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14:5)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이전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말씀 위에 서기 위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육신의 생각 VS 영의 생각(5-6)

하나님은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시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우리는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고 영의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육신을 따르는 자와 영을 따르는 자의 삶이 다름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8: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의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님의 일을 생각합니다.”(8:5)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도 자신의 유익을 위해, 또는 자기중심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옳지 않은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이 육신을 따라 사는 자인지, 아니면 영을 따라 사는 자인지 잘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이들로서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이 되기를 도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8:1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소망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어려움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의 자녀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된 주인공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생각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고 하면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이 어떠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그 생각의 결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6) 여기서 생명과 평안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가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축복에 처하게 됨을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로서 영의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고 영의 생각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께서 허락하신 생명과 평안 가운데 거하기를 소망한다. 구원받은 우리가 개인적인 종말이나, 역사적인 종말을 아직 경험하지 않았을지라도 이 땅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를 계속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14:17) 우리는 보이는 육의 세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영의 생각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오직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가 말씀을 따르는 영적인 주의 제자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성령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거듭난 주의 백성으로서 성령님의 감동에 민감하고,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며, 조금씩 변화되어 가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8:7-8)

바울은 자신의 마음속에 두 가지 법이 싸우고 있음을 말한다. 그 법은 하나님의 법과 죄의 법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7:24-25) 육신을 입고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우리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죄악으로 향하는 마음보다 성령님께서 감동을 주시는 대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성령 안에서 행하고, ‘가 속한 공동체에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점점 더 풍성히 맺어지기를 소망한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2-23)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 결코 정죄함이 없음을 깨닫고, 주의 영으로 충만함을 입어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사는 자!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말씀 위에 서기 위해 주의 영의 인도함을 받는 자!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잘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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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

성경: 이사야 51:1-6

51:1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51:2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51: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51:4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

51:5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

51:6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 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

 

1. 사랑의 하나님

한 작가가 그가 지나온 해변가 모래 위에 새겨진 그의 발자국을 돌아다보았다. 그가 똑바로 걷고자 전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로가 형편없이 비뚤어졌음을 발견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이것이 나의 삶이구나. 모든 발자국마다 비뚤어지지 않은 것이 없구나!’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나 그가 깨었을 때 모래 위엔 어떤 발자국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조수가 모든 비뚤어진 발자국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영혼에게 이것은 하나님이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주는 신호이구나.’라고 속삭였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비뚤어지고 넘어진 우리의 삶을 다시 회복시키시고, 바른길로 인도해 주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이스라엘의 하나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듭해서 그들이 때가 이르면 구원을 받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잠시 징계를 받아 이방에게 정복당하고 바벨론 나라의 포로가 되게 하셨다. 그러나 때가 이르면 그들이 포로에서 풀려나 가나안 땅으로 되돌아올 것을 말씀한다. 그리고 그 땅에서 영원히 살 것을 예언함으로써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 나라로 갈 것을 말씀하신다. 본장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받을 하나님의 축복을 말한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했던 언약을 기억하여 이스라엘에게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1-3). 하나님의 율법은 알려지고 정의와 공평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세워질 것이다(4-8).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그 힘으로 다시 일어나셔서 출애굽 때 하셨듯이 그 백성들을 구하시리라고 기원하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전능하신 분임을 입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9-16). 이제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에게 깨어나라고 말씀하시면서 심판의 때가 다 지나갔음을 말씀하고 계신다(17-23).

 

3. 언약의 하나님(1-3)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언약의 하나님이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51:1) 여기서 찾아 구하는은 갈급한 심령으로 어떤 것을 진지하게 찾는 것을 의미한다. 갈급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에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일을 기억해 보라고 한 것이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의 말을 들어라. 정의를 추구하고 야훼를 찾는 자들아. 너희를 떼어낸 바위를 우러러보고 너희를 파낸 동굴을 쳐다보아라.”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기억하며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하시고 그에게 약속하시며 그 약속을 지키신 신실하신 하나님을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51:2) 아브람을 찾아오신 하나님은 그에게 고향을 떠나 지시하는 땅으로 갈 것을 명령하신다. 그 후, 아브람이 도착한 곳은 가나안 땅이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고, 그와 약속을 하셨다. 약속의 내용은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 곧 하나님의 백성이 많을 것에 대한 약속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져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약 사백 년 후에 장정의 수만 육십만이 될 만큼 많아졌다(참조, 12:37). 그리고 그 많은 후손들이 애굽의 노예로 있을 때 또 친히 찾아오셔서 그들을 노예 상태로부터 구해 주셨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웠다. 우리는 주의 자녀들이 믿는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 되시며, 그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되심을 깨달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51:3) 여기서 창화하는노래, 음악을 뜻한다. 주로 악기 연주에 맞춰 노래하는 것으로 하나님께 대한 정교하고도 감격이 넘치는 찬양을 가리킨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다시 축복하여 그 황폐한 땅을 에덴처럼 만들고 그 사막을 내 동산처럼 만들 것이니 이 땅에 기쁨과 즐거움이 있고 감사와 찬송이 있을 것이다.”(51: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자신이 그들을 회복시키셔서 그들이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지금 나의 삶의 형편이 어떠하다고 할지라도 가 약속의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친히 삶에 간섭하여주신다면 의 삶은 형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찬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끝까지 인내하며 약속의 하나님을 붙잡고 살아가는 자, 그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24: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아브라함과 같은 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갖고 언제나 친밀한 관계 가운데서 주와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55:6) 지금이 주님을 만날때이다. 자신의 삶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그분을 만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을 의지하고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께서 베푸시는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시는 하나님(4-5)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시는 하나님이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51: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뭇 백성들아, 똑바로 나를 쳐다보아라. 부족들아, 내 말에 귀를 기울여라. 훈계가 나에게서 나간다. 나의 법이 뭇 백성의 빛이 되리라.”(51:4)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법은 온 세상의 빛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우리의 귀를 그분께 기울이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그는 하나님의 복 가운데 거하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 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33:12) 하나님은 온 땅의 왕이 되신다. 우리 나라와 민족이 왕이신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소망하고, ‘가 속한 공동체가 주님 안에 거하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눈에 든 주의 백성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판단하시는 주가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공의가 가깝고 내 구원이 나갔은즉 내 팔이 만민을 심판하리니 섬들이 나를 앙망하여 내 팔에 의지하리라.”(51:5) 여기서 공의란 그 절대 공정하심과 정의로우심을 뜻하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사랑하신다.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의 의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고, 나의 구원이 이미 나타났으니, 내가 능력으로 뭇 백성을 재판하겠다. 섬들이 나를 우러러 바라보며, 나의 능력을 의지할 것이다.”(51:5) 하나님은 의로우신 능력의 주가 되시는데, 그분께서 일으키시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바벨론 나라의 포로로 계속 놔두지 않으셨다. 자신의 백성들을 친히 자유하게 하기를 원하셨다. 그렇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를 사랑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능력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96:13)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두움을 물리치시고 만민 앞에 빛으로 임하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기를 소망한다.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빛이 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여호와의 구원(6)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 되신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해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지지 아니하리라.”(51: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고 그 아래 땅을 살펴보아라. 하늘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땅이 낡은 옷처럼 해어질 것이며 세상 사람들이 하루살이처럼 죽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 구원은 영원하며 나의 의는 쇠하지 않을 것이다.”(51:6)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신데, 이루지 못할 일이 전혀 없다. 하나님은 한번 하기로 작정한 모든 일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의 주가 되신다. 하나님의 일하심 앞에서 우리는 잠잠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하루살이와 같이 짧은 시간 동안 존재하는 작은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아무리 선한 의도로 어떤 일을 행한다고 해도 그 일을 온전히 이루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불가능이 전혀 없으신 완전하신 주가 되신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로 작정하셨다면 그 일은 반드시 성취된다. 우리는 계획하신 일을 반드시 행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인정하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102:26) 인간의 모든 것이 변함에 비해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는 주가 되시는데, 그분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길 원하신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영혼들이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열방에 있는 영혼들이 잠시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도록 도고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나, 예수님과 관계없이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형벌에 거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모습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죄로 가득한 인간은 어떻게 해야 죄에서 자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늘 깨어있어 주를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 3:10-12)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구원의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창세 전부터 를 택해 주신 주를 기쁘게 맞이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구원의 주님, 믿는 자들을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103:17)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인자하신 주님의 얼굴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인자하신 주를 경외하는 자, 그는 영원토록 의로우신 주와 동행하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과 능력은 변함이 없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확실한 구원으로 인도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의를 저버리고 악행을 일삼았다. 그러나 변함없는 공의로우신 주의 빛과 주의 사랑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셔서 그들은 포로에서 자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확신을 가지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의 심판의 목적이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이 땅에 널리 퍼지도록 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겸손히 그분 앞에 엎드리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언제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잘 깨닫고 순종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10:27-29) 하나님의 일은 택한 자를 위한 것이며 나아가 영원한 나라를 만드시려는 그분의 거룩한 계획을 통해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을 통해 얻게 될 영원한 복을 기억하고,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며 담대하게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날마다 성령님을 의지하고 신실하신 언약의 하나님과 동행하여, 주의 큰 복을 받아 누리는 자! 어두움을 물리치시고 만민 앞에 빛으로 임하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빛이 되시는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자!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구원의 주를 바라보고, ‘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창세 전부터 를 택해 주신 주를 기쁘게 맞이하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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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성경: 에베소서 4:17-24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1. 하나님을 사랑

어린 소년이 아버지인 비클리주교에게 아버지 성경에 나오는 그룹과 스랍의 뜻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는 아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룹이란 지식을 뜻하는 히브리 말이고, 스랍은 열정을 뜻한단다. 그러므로 그룹은 특별히 지식에 뛰어난 천사이고, 스랍이란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천사라고 생각되어지는구나!’ 그 후, 어린아이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그렇다면 저는 죽어서 그룹이 되기보다는 스랍이 되겠어요. 많은 지식을 갖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날마다 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

본 장에는 만유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경륜과 예정, 구속, 화해 등의 교리와 함께 교회론을 다루었지만, 본 장에서부터는 그러한 내용들을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시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 장은 교리적인 원리에서 실천적인 적용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다. 교리와 실천은 따로 분리되어 있거나 서로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한 사건의 원인과 결과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교리처럼 그에 부응하는 실천적 삶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본 장의 내용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1-10),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11-16),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17-24), 새로운 생활의 법칙(25-32)으로 구성되어 있다.

 

3.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고(17-1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행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믿음의 사람들은 육신의 삶,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4:17-18)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방인의 허망한 것으로 행치 말라고 명한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죄악 된 삶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무지함과 완악한 모습을 보였다. 즉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므로 사망의 길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마음이 완악함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행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육으로 살아가지 말고 영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우리는 혈과 육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영적으로 변화 받는 삶을 살도록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날마다 성령의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는 자,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기를 힘쓰는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7-8)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날마다 멀리하고, 하나님의 법에 순복하며 살 것을 선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면, 성령님과 동행하며 죄와 싸워 이기는 삶, 날마다 천국 백성의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도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9-11)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제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의 말씀을 잘 깨닫고, 완악한 마음으로 허망한 일을 행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생명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감각 없는 자가 되지 말고(19-2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4:19-20) 주의 자녀들이 완악한 마음을 품는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잠시는 가만히 두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완악함을 인하여 방탕과 죄악의 길로 행하도록 방임하여 두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대로 보응하시기 위하여 진노의 불을 예비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감각이 없이 더러운 것을 행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 우리는 이방인처럼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우상숭배를 행하지 않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감각이 없이 정욕대로 행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는 자가 아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우리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열방에 있는 주의 백성들의 마음이 날마다 주님을 갈망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이러한 예정된 역사가 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한 놀라운 사랑의 사건임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4-15) 구원받은 주의 자녀들은 이제 가 주인인 삶이 아닌 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면서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를 향한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21-2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벗어 버려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4:21-22)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이방인 중에 있어 그들이 행하는 허망한 것을 좇아 행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자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르침 받은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성령님이 도울 때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의 과거의 삶은 어떠했는가?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1:13)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를 받아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갔다. 우리 또한 바울과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을 날마다 선포해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우리는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정욕대로 살아갔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중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어제와 오늘이 같은 믿음, 언제나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믿음이 아닌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신의 모든 잘못된 습관을 멀리하고, 영적인 세계에서 날마다 주님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우리는 외식을 멀리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날마다 성령님의 은혜로 변화 받기를 소망한다. 이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심령이 새롭게 되어(23-24)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심령이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에 이르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3-24)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자로서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날마다 영이 새롭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주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의 말씀을 잘 깨닫고, 완악한 마음으로 허망한 일을 행하지 않는 자!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지 않는 자! 날마다 성령님의 은혜로 변화를 받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사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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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영원히 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승리!

성경: 이사야 40:6-11

40: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40: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40: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40: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1. 예수 그리스도

모라비안 사람들이 그린란드에서 선교를 시작할 때의 이야기다. 그들은 원주민들을 무지부터 깨우쳐야겠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교육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너무 실망한 나머지 그곳을 떠나기로 했다. 배를 기다리는 동안 선교사 중 한 명이 복음서 한 부분을 번역하다 자신의 번역 능력을 시험해 보려는 듯 읽어 보았다. 그것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구절이었다. 그때 선장이 일어나 그에게 다시 한번 읽어달라고 요청했다. 다 듣고 난 선장은 외쳤다. ‘당신이 읽은 것이 정말 사실이오? 그렇다면 당신은 처음부터 왜 그걸 말하지 않았소? 당신은 떠날 수 없소. 우리는 를 위해 고난 당하신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겠소.’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뻐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전달하는 복음 전파자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언약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되었다가 다시 회복될 것임을 예언하신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심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전지전능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백성들에게 실망하지 말고 여호와를 앙망하여 새 힘을 얻을 것을 권면하고 있다. 본장은 하나님의 위엄을 보여주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임하는 심판의 기간이 거의 끝났다고 말씀하신다. 위로라는 말이 계속 반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외치는 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예비하라고 한다(1-5). 아름다운 소식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백성들을 환영한다(6-11). 또한, 다섯 가지의 수사적인 질문을 던짐으로써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시며 그분은 도울 힘을 필요로 하지 않았음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너무나 웅장하여 열방의 백성들은 그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12-17). 나아가 이사야 선지자는 우상에 관하여 말하면서 어떤 우상과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18-26).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지키신다는 말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로하고 있다(27-31).

 

3. 풀과 같이 연약한 인간(6-7)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이 땅에 살아가는 우리는 하나님 앞에 풀과 같은 존재이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렇게 대언한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40:6-7) 여기서 여호와의 기운이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우주적으로 활동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데, 본문에서는 순간적이고 일시적인 인간의 수명과 존재 자체와 대조적인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능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너무나도 작은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게 됨을 외치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인간이 연약한 존재인가를 잘 깨닫게 한다. 인간은 한없이 연약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풀과 꽃은 살아 있을 때는 아름답지만 곧 시들어 버린다. 이처럼 인간의 모든 지혜와 힘도 아름다운 것같이 보이기는 하나 곧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인간을 홍수처럼 쓸어버리실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분이 행하시면 당해낼 수가 없다. 모세의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께서 저희를 홍수처럼 쓸어 가시나이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벤바 되어 마르나이다.”(90:5-6) 우리는 아침에 돋는 풀과 같을 존재임을 기억하고, 크신 하나님을 높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크신 하나님 앞에 늘 겸손한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말한다.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우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1:10-11) 우리가 속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더 낫게 여기며 스스로 자세를 낮추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부유한 자라면, 그는 더욱이 자신도 들의 핀 꽃과 같이 사라지게 됨을 깨닫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높으신 분, 위대하신 분임을 반드시 알고 그분 앞에서 바르게 믿음 생활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을 크게 높이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12: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시온에 사는 사람들아, 기쁨으로 외치고 노래하라! 너희 가운데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은 위대하시다.”(12:6) 우리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연약함을 알고, 날마다 주님을 바라고 높이며 그분을 힘써 노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들의 풀과 같은 존재인 의 작음을 알고,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높이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영원히 서는 하나님의 말씀(8-9)

이 땅에 있는 많은 것들 중 무엇이 영원히 존재하는가? 이 땅에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다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존재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40:8) 풀은 시간이 지나면 시들고 말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세상의 피조물과 달리 영원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의 말씀이기 때문에 영원함을 알아야 한다. 피조물은 유한하나, 창조주 하나님은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며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8)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선포되기를 소망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40:9)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에서 자유케 될 것을 말씀하신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루살렘아, 높은 산에 올라가서 좋은 소식을 전하라! 시온아, 너는 두려워하지 말고 큰 소리로 유다 성들에게 너희 하나님이 오신다고 외쳐라!”(40:9)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큰 소리로 유다 성들에게 하나님이 오실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아는 자, 그분의 말씀을 믿는 자들은 실족하지 않고 새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 깨닫고 외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6:19)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좁은 길을 걸어가는 예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면서 고난과 핍박이 올지라도 끝까지 십자가를 바라보며 승리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벧전 3:14) ‘를 써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부르심을 받은 주의 백성으로 담대하게 이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함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반응하며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인도하시는 하나님(10-11)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떠한 하나님이 되시는가? 살아계신 하나님은 택한 주의 백성들을 다스리시며 인도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되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40:10) 보응하시는 하나님, 강한 힘과 능력이 있으신 하나님은 친히 당신의 땅과 당신의 나라를 다스리실 것이며, 자기 백성들에게 상벌을 주실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장차 주 여호와께서 강한 자로 오셔서 능력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당연히 받을 상벌을 주실 것이다.”(40:10) 우리는 크신 하나님이 죄에 대해 보응하셨고, 주님의 때에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렇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열방 중에 판단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시며.”(110:6)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시면, 그분이 명하시는 모든 것을 사망에 이르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으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며, 그분 앞에 자세를 낮추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과학을 발전시킨다 해도 피조 세계를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인간이 지어진 세계를 다 측량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창조주의 지혜와 능력을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지혜 앞에서 생명이 있는 동안에 잠시 존재하는 연약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고 그 권위 앞에 복종하는 것이 바른 도리임을 깨달아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노래한다. “하나님께 고하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인하여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66:3) 우리는 주님의 행하신 일들을 생각할 때 놀랄 수밖에 없다. 주의 크신 능력을 본 원수들은 그분께 복종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다 알지 못하는 부족한 자임을 인정하며, 그분의 역사에 쓰임 받고 있음을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다스리실 뿐만 아니라 좋은 것으로 먹이시며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본문에서 이시야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40:11) 하나님은 자신의 양 떼인 우리를 먹이시고, 부드러운 손길로 좋은 곳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주의 백성들은 좋으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와 구속 사역을 계획하시고 성취하심의 궁극적인 목적이 피조물로부터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 위함임을 알고, ‘를 인도하시는 주를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양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13:20) 우리는 인간을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할 때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고, 이 땅 가운데서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귀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의 전적 부패함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벧전 2:25)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는 복이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하여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천국 시민이 되어 매일을 기쁨으로 걸어가시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인간을 다스리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면류관을 바라보며 승리!

우리는 언약의 하나님을 붙잡고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장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여주는 말씀이 자주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신 것은 모두 지키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나라의 포로가 되어 구원 얻을 소망을 상실했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의 언약은 성실히 이행되었고 그들은 구원의 은혜를 받았다. 이렇게 새로운 언약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우리는 택한 백성들이 누리는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깨닫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4) 믿음 생활을 하는 동한 힘들고 고단할지라도 언약의 하나님, 회복시키실 하나님을 믿고, 영광의 면류관을 주실 예수님을 생각하며 끝까지 승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자신만이 알\고 있는 고통과 눈물이 있는가? 이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로서 주님이 계신 보좌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7:17) 우리는 주님을 뵙는 날에 있게 될 놀라운 일들을 생각하며 힘차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 앞에 풀과 같은 작은 존재임을 알고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높이는 자! 이 땅에 있는 것들은 언젠가는 다 사라지나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함을 알고, 말씀 앞에 겸손하게 반응하며 주의 복음을 전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를 다스리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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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승리!

성경: 고린도후서 3:4-11

고후 3: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고후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후 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후 3: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고후 3: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고후 3: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고후 3: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고후 3: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1. 용기

아랍 속담에 항상 햇볕만 내리쬔다면 사막을 이룬다.’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실수와 슬픔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삶에 위대한 교훈을 준다. 위대한 음악가 엘가에게는 음색이 훌륭한 젊은 소프라노 가수인 제자가 있었다. 그런데, 한번은 연주회에서 중요한 대목을 하다가 큰 실수를 하게 되어 슬퍼하는 제자에게 엘가는 이렇게 말했다. ‘엘가낙심하지 말아라. 네 마음을 상하게 한 이것이 바로 너를 위대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을 믿는다!’라고 용기를 주며 그녀를 위로했다. 확실히 그것은 그녀에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되었으며 결국 훌륭한 음악가로 대성하였다. 세상에는 눈물이 아니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자신에게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가져다준 어떤 사건과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자신의 시선을 거기에만 멈추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삼고 다시 일어나, 성령님과 동행하며 행복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영광의 종류

바울은 앞장에서 눈물의 편지를 쓰게 된 경위를 설명한다. 이어서 바울은 본장에서 고린도 교회의 회복에 대한 기쁨과 승리감을 가진다. 그리고 자신의 사도로서의 사역과 그가 믿는 바를 심도 있게 설명하기 시작한다. 본장에서는 사도권에 관한 문제가 심각하게 다루어진다. 사도란 복음 전파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그리스도께로부터 파송된 인물을 말한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의 사역으로써 더욱더 사도임을 강조하고 있다. 바울은 또한 대적자들과의 논쟁에 있어서 여러 번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설명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편지를 통해 그들의 신앙을 각성시키고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해 거짓 사도들의 주장과 대립되는 기독교의 진수를 다시 한번 본장에 요약해서 설명하고 있다. 본장의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째 단락에서는 바울의 추천서 문제가 다루어져 있으며 옛 언약의 사역과 새 언약의 사역이 대조되어 설명되고 있다(1-6). 둘째 단락에서 바울은 모세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립하여 묘사함으로써 새 언약의 탁월성을 강조하고 있다(7-18).

 

3. 하나님으로부터 만족(4-5)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주의 일을 감당하면서 누구로부터 만족할 수 있는가?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다양한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우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4-5)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주의 일을 행하고 나서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하고 있는 만족은 인간의 능력으로 생각하여 성취된 그러한 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것이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의 일에 동참 할수 있는 기회와 자격을 주셨음을 기억하고 언제나 주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의 은혜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일을 행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모든 일의 결과에 대해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있어서 어떤 이는 심고, 어떤 이는 물을 주며, 하나님만이 그것들을 자라나게 하신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고전 3:6) 우리는 주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반응하고 순종할 때 주님께서 당신의 일을 행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일의 성과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는 것을 초월하여 그 일을 행하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그 일을 행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하는 성숙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명감이 확실했고 주의 일을 잘 감당했던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넘쳐나서 아름다운 열매가 가득하고,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하며, 그 일의 결과에 대해 하나님께만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살리는 것은 영(6)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을 살리는 것은 무엇인가? 율법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고, 주의 영은 우리를 살리신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고후 3:6) 여기서 새 언약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세워진 옛 언약과는 완전히 다른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진 언약을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전파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구약 시대의 율법과 비교하여 새 언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자신을 새 언약의 일꾼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의 규정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율법과 복음은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우리는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성령의 역사로 주 안에서 다시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6:63)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의 규정으로가 아닌 영으로 깨닫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정욕적인 삶을 살아가기보다는 영적으로 성숙한 자들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주의 일꾼이 되고, 율법의 규정으로가 아닌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영의 직분의 영광(7-8)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직분의 영광이 더 귀한 것을 알고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으나 영의 직분의 영광이 더 귀함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고후 3:7) 여기서 돌에 새긴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세운 옛 언약을 말하는 것으로 육적 이스라엘에 대한 것이었고 형식적이고 의문, 즉 율법이었다. 그리고 임시적인 것으로서 영원한 새 언약과는 대조되는 것이다. 율법은 석판에 새겨진 문자인데, 결국은 죽음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는 잠시이긴 했으나 그 얼굴은 너무나 찬란한 광채가 빛났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히 그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이 십계명의 심부름꾼도 그렇게 영광스러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광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 dwObK(kabod) [] dovza(doxa) [] Glory 하나님의 완전성, 탁월성, 임재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씌어지는 용어이다. 이 말은 레바논의 영광’(35:2), ‘솔로몬의 모든 영광’ (6:29)등에서 보는대로, 사물이나 인간의 뛰어난 것, 선미한 것, 빛나는 것 등을 말하는데도 쓰인다. 그런데 주로 하나님의 나타나심과 임재, 이에 대한 하나님 찬양함에 있어서 쓰인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은 시내산을 덮는 구름, 이스라엘의 성막 위에 머문 구름에 의해 친히 그 임재를 보여주시고, 그 영광을 나타내셨다(24:16, 40:35).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은혜, , 긍휼하심의 계시이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가 없었고 그 영광을 간접적으로 우러러 볼 뿐이었다(33:17-23).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시고(1:14)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참된 모습)’으로(1:3) 기록한다.

그런데 바울은 영의 직분의 영광이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의문의 직분의 영광보다 우월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모세가 시내 산에서 내려올 때의 모습을 예로 들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의 상황은 이렇다.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일 사십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를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34:28)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이 새겨진 법궤를 받아 백성에게 내려왔을 때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났다. 우리는 모세가 율법 즉 사람을 정죄하는 직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광이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죄인에게 생명을 주는 의의 직분의 영광은 더욱 대단하다. 본문에서 바울은 영의 직분의 영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고후 3:8) 우리는 영의 직분, 성령님이 도우시는 복음 전파의 직분이 더욱 영광이 넘침을 알고 감사함으로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1:17) 율법은 모세를 통해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와 진리가 왔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말씀을 영으로 잘 깨닫고 열심히 복음 전파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현시대 복음 전파자의 직분, 성령의 심부름꾼이 영광스러움을 깨닫고,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기쁨으로 사역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의의 직분의 영광(9-11)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직분의 영광이 더 귀한 것을 알고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으나 의의 직분이 더욱 영광스러움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고후 3:9) 여기서 넘치리라능가하다, 넘치다, 탁월하다의 의미이다. 이는 의의 직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것이므로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는 것이다. 우리는 의의 직분이 정죄의 율법의 직분보다 더욱 영광이 넘침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없음을 알고 성령 안에서 의의 소망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5:4-5)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자신의 직분을 영광이 넘치는 직분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복음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배경으로 한다. 또한, 예수님이 친히 자기에게 직분을 주셨음을 확신하고 있다. 우리는 바울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신분을 가진 사람들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계속될 영광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고후 3:10-11) 금방 없어질 것도 영광스러웠다면 영원히 있을 것은 더욱 영광스러울 것이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과연 지금의 이 영광은 엄청나게 큰 것입니다. 이 영광에 비긴다면 과거의 그 영광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깐 있다 없어질 것도 빛났다면 영원히 계속될 것은 얼마나 더 찬란하게 빛나겠습니까?”(고후 3:10-11) 우리는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영광보다 영원히 계속될 영광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함 받아 천국 백성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주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담대하게 주의 일을 감당했던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1:20) 바울의 고백처럼 살든지 죽든지 를 통해 예수님이 나타나고 예수 그리스도만 존귀하게 되기를 날마다 선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영광보다 영원히 계속될 영광을 바라보고 예수님이 걸어가신 좁은 길을 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사는 자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승리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기도하며 나아간다면 우리는 끝까지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의 나라에 있기를 기도한다.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얕은 뿌리를 가진 믿음의 사람이 아닌, 뿌리가 깊은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3:7-8) 우리가 소유한 어떠한 것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존귀하게 여기는 믿음의 자녀, 겸손한 태도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믿음의 자녀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 땅에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천국을 소망 삼고,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를 잘 지고 승리하기를 바란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22:5) 주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 그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만족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는 주의 일꾼이 되고,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자! 성령의 심부름꾼이 영광스러움을 깨닫고 충성스러운 종으로서 기쁨으로 사역하는 자!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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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5. 24. 17:17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이사야 58:6-12

말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성경: 이사야 58:6-12

58:6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58:8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58:9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58:10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58:11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58:12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1. 삶의 주인

한 귀부인이 임종하는 자리에 몇몇 친지들과 노선교사가 둘러서서 천천히 움직이는 여인의 입술을 주목하고 있었다. 이내 그들은 아주 조그만 외마디를 들을 수 있었다. ‘어서 가져와!’. 그들은 그녀에게 되물었다. ‘뭘 가져올까? 약을 가져다줄까?’ 그때 부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감돌았다. 선교사는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순간임을 알렸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왕관을 어서 가져와요. 만왕의 왕이신 우리 주님께 그걸 드려요.’ 그녀는 얼마 후 숨을 거두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누구를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분께 기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의 태도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가식적인 금식을 책망하면서 진정한 금식의 의미를 교훈한다. 하나님은 진정한 금식을 행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시지만 거짓으로 금식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의 징벌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경고하신다. 이는 외식적인 종교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이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크게 외치고 목소리를 아끼지 말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고발할 것을 명하셨다(1). 본장의 나머지 부분은 이사야가 이스라엘의 형식주의적 신앙을 비판하는 내용인데, 주로 형식적인 금식과 형식적인 안식일 성수에 관한 것이었다. 금식하면서 오락을 하며 다투고 죄악을 행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소외당한 자를 돌보며 배고픈 자를 먹여 주는 것이다. 그리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2-12). 또 안식일에는 오락을 행하지 않고 존귀하게 여기면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13-14).

 

3. 사랑과 긍휼을 베푸는 기도의 태도(6-8)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태도로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주님 앞에 금식 기도를 하며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할 때 태도가 중요한데, 먼저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58:6) 여기서 결박차꼬, 족쇄를 가리킨다. 이것은 불의하고 잔혹한 권위를 가지고 타인의 권리나 유익을 억압하는 행위를 의미한다. 우리는 금식을 할 때, 타인을 향한 압제받는 사람을 놓아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버려야 할 것이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압박의 사슬을 풀어주고 모든 멍에를 꺾어 버리며 억압당하는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58:6)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나아올 때, 이러한 바른 자세를 갖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나아올 때,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피하지 않아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58:7) 여기서 빈민은 그날 벌어서 그날 먹고사는 경제적으로 빈궁한 자와, 사회적으로 의지할 데 없는 피 압박자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하루 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이들, 헐벗은 자들에게 사랑으로 베푸는 그리스도인을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금식하며 기도할 때 이러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눈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선한 눈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바른 행실로 하나님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22:9) 예수님은 뽕나무에 올라서까지 주님을 보기 원했던 세리 삭개오를 만나 주셨다. 그리고 삭개오와 예수님은 그의 집에 가서 대화를 나눈다. 그때, 삭개오는 회개하며 이런 고백을 한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19:8) 예수님은 그를 축복하며 삭개오의 집에 구원이 이를 것을 말씀하신다. 우리는 삭개오 이야기를 통해 교훈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의지할 데 없는 자들에게 사랑으로 행동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이웃에 대한 사랑의 태도를 취하고,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는 자들에게는 주께서 놀라운 복을 허락하신다. 이사야 선지자는 본문에서 그렇게 하면 여호와의 영광이 뒤에서 호위하게 됨을 대언한다.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58:8) 우리에게 빛이 새벽같이 비치고, 치유가 급속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의를 드러내실 분이 앞에 지나가시는 복, 여호와의 영광의 호위를 받게 되는 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복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좋으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4:2) 그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치료하는 광선이 임할 것이며, 그들은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게 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나아올 때 먼저 바른 태도로 나아오기를 소망한다. 이웃을 억압하고 돌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주의 영광의 호위를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하나님(9-10)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금식하며 기도할 때 주님 앞에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 앞에 간절히 부르짖어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58:9) 우리는 주께 부르짖어 응답받고, 폭력과 폭언을 멀리하는 바른 자세를 갖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부르짖을 때는 현재의 고난과 어려움에서부터 구원해 달라는 도움의 요청을 적극적으로 행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 하나님은 가 간절히 부르짖는다면 현재의 고난, 어려움으로부터 건져주시는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37:4) 날마다 주를 향한 감사의 고백을 하며, 주님께 부를 짖을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반드시 이루어 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올바른 자세를 취하고 주께 구할 때, 반드시 문이 열리는 역사가 일어남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7:7-8) 주께 간절히 부르짖고 구하여 주께 응답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간절히 부르짖으며 기도하되, 주린 자에게 심정이 동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을 깨달아야 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58:10) 우리의 정성을 굶주린 자들에게 쏟고 불쌍한 자의 소원을 들어줄 때, 그리스도인의 주변이 대낮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내가 지금 부유하지 않다면 의 형편에 맞게 구제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11:24-25) 일반적으로 물질이 더해감에 따라 부는 더해진다. 그러나 부가 더해지는 것에도 한계가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부에 대한 완전한 보장을 받을 수 없음을 알고, 자신의 형편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에 귀하게 헌신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부자에게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시며 이렇게 권면한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18:22) 이 부자는 예수님의 권면을 듣고 심히 근심했다. 우리는 이 부자와는 달리 부귀와 영화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고, 주의 말씀 따르기를 소망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주께 간절히 부르짖어 응답받는 귀한 삶을 살기를 소망한다.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하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난한 마음으로 천국을 소망삼고, 기쁜 마음으로 이 좁은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인도하시는 하나님(11-12)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할 때, 그분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가? 주의 자녀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만족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주의 자녀들은 물 댄 동산 같고, 끊어지지 않는 샘 같을 것이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58:11) 여기서 만족하게는 충분히 식사하여 만족함을 의미하는데, 주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떡을 흡족하게 공급하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다. 하나님은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자, 이웃에게 말씀대로 대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복을 허락하신다.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 메마른 곳에서도 배부른 삶을 사는 자, 다툼이 없고 웃음이 넘치는 삶을 사는 자,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28:25) 우리는 가난한 마음을 소유한 겸손한 자들이 되어 여호와를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인도하시면 그들은 목이 마르지 않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49:10)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기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영혼의 만족을 얻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천국에 시민권을 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받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또한, 먼저 믿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 주님이 주시는 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기도하는 자, 그 민족이 복 가운데 거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회개하고 금식하면 복을 받고 오래 황폐된 곳을 재건할 것을 말한다.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보수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38:12)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자손들이 오랫동안 폐허가 된 곳을 재건하고 옛 기초를 다시 쌓을 것이며 너희는 성벽을 재건하고 시가지를 복구하는 백성으로 알려질 것이다.”(58:12)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실한 주의 백성들에 의해 세워지는 복을 받게 되는 것을 대언하고 있는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좋은 것들을 좇아 살아갈 수 있지만, 그러한 것들 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삶이 최고의 복 받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기도하는 자, 사랑을 나누는 자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기도하는 자, 사랑을 나누는 자의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의 힘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기도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의 문제는 무엇인가? 우리의 삶의 형편은 어떠한가? ‘는 어떠한 기도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자 하는가? 금식하며 기도할 문제가 있는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29:12-13)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3:11) 금식하며 기도하고자 할 때, 그에 앞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못한 것들, 타인을 억압하거나 가난한 자에게 함부로 대한 것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나아올 때 이웃을 억압하며 돌보지 못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주의 영광의 호위를 받는 삶을 사는 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난한 마음으로 천국을 소망 삼고, 주께 간절히 부르짖어 응답받는 자,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좇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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