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견고한 믿음, 평안한 마음으로 승리!

성경: 잠언 14:26-32

14:26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

14:28 백성이 많은 것은 왕의 영광이요 백성이 적은 것은 주권자의 패망이니라

14:29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

14:30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

14:31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

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

 

1. 기도

미국 노아라는 곳에 사는 가난한 크리스쳔 가정이 생활의 궁핍으로 북쪽 다커다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안 일곱 살 난 딸이 그곳에도 교회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거기는 시골이라 교회가 없단다라는 어머니의 대답에 딸은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이사 가는 날이 되어 출발할 준비를 모두 마쳤으나 딸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가 허둥지둥 그녀를 찾다가 교회로 달려갔더니 어린 딸이 무릎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있었다. 이 광경을 본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어 그곳에도 교회가 서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하여 그들이 이사를 간지 두 달 만에 교회가 세워졌다고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기도의 응답을 잘 체험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그분과 동행 하는 삶, 하나님께 간구하여 응답받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

한 사람을 의인과 악인, 지혜자와 미련한 자로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 구분의 기준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께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마음이 하나님께 대해 어떠한 자세와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것이 그의 삶의 모습과 특징, 그리고 결과를 결정해 줄 것이다. 본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지혜자와 미련한 자,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제시하고 있다. 또한, 삶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다. 계속해서 악인과 의인의 특성을 비교하고 있는 본장은 주로 사회적인 관점에서 양자의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지혜로운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신실한 말을 하며 자신의 분수에 맞게 살지만 어리석은 자는 여호와를 경멸히 여기고 거짓말을 일삼으며 거만한 태도를 보인다(1-9). 의인은 죄의 길이 비록 겉으로 보기에 달콤하지만 결코 가까이하지 않으나, 악인은 순간의 쾌락을 위해 악한 길로 가고 만다. 그러나 결국 악인은 의인을 이기지 못하고 그 앞에 엎드러지게 될 것이다(10-19). 재물은 지혜로운 자에게는 축복이나 미련한 자에게는 오히려 화근이 된다. 그리고 진실한 말을 하는 자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나 거짓말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20-25).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뜻을 따라 가난한 자를 돕고 의롭게 사는 자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나 악인은 진노를 당하게 될 것이다(26-35).

 

3.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26-28)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그분 앞에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여호와를 항상 경외해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14:26) 하나님을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견고한 믿음을 허락하신다.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 자식들에게도 피난처가 생긴다.”(14:26) 경외란 무엇인가? 경외는 []ta'r]yI(yir'ah) []Fovbo'"(phobos) []Fear Reverence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을 나타내는데 쓰는 용어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명하는 말씀은 하나님은 경외할 것을 함께하고 있다(6:4). 시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지는 때, 하나님은 영광과 광채 가운데 친히 나타나셔서 이 경외심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 심어주셨다(4:10).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응답일 것이다.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만이 이 경외심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날마다 찾고 구하여 그분을 알아,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12: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악을 멀리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7:26)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죄악의 길을 피하며, 죄를 짓게 유혹하는 자들을 피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성령님의 지도를 잘 받는다면 이러한 삶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재앙으로부터 안전하며 평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19:2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가운데, 생명이 붙어있는 동안에,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 받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29-30)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들로서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14:29) 화가 나는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해서 쉽게 노하는 자, 그는 지혜롭지 못한 자이다. 노를 더디 하는 자는 명철한 자이며,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노는 무엇인가? 노는 분노와 진노인데, [] #a('aph), hm;j'(chemah) []ojrghv(orge) [] Anger이다. 성내는 일, 노는 일반적으로는 개체의 요구 및 목표를 달성하려 함에 있어서 그것이 저지되는 것에 대한 보복적 정서 반응을 말한다. 그리고 성장해 감에 따라 노는 잠재적, 지속적, 보복적으로 되어간다. 보복은 간접적 합목적성을 더해간다.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지배에 복종치 않는 사상과 행동에 대한 인간의 노는 정당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기록한다(32:19, 17:16). 반면에 경솔하고 부당한 노와 거기서 생겨나는 죄의 위험은 경고한다(37:8, 4:26). 우리는 완전히 성내지 않는 자, 완전한 자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부당한 노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며, 분노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일에 반하는 것들에 대해서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노를 멀리하는 자,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던 모세를 보고 도전받아야 할 것이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12:3)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한 자가 되어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 가운데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며, 성령님의 지도를 잘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는 무엇을 지키기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어떠한 것들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된다면 그는 복 받은 자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25:28) 성벽이 없다면 적의 침략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자, 그는 영적인 전투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싸우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영적인 전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싸우되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시기하거나 눈앞에 보이는 적과 싸우는 일에 힘쓰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평온한 마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14:30) 우리는 삶 가운데 일어나는 시기, 질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 끊어버리고, 마음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17:22) 불완전한 모습으로 불완전한 환경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로서 영적 전투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의인의 삶(31-32)

하나님은 어떤 이의 삶을 기뻐하실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의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신이 스스로 의로울 수는 없지만, 성령님과 동행 할 때 의로운 길을 걸어가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의 피값으로 사는 자, 주를 공경하는 자들로서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주의 사랑으로 대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지으신 이를 멸시하는 자요 궁핍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자는 주를 공경하는 자니라.”(14:31) 이웃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그들을 업신여기지 않는 자,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이웃을 대하는 자는 복 받은 자이다. “그 이웃을 업신여기는 자는 죄를 범하는 자요 빈곤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니라.”(14:21)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고 기도에 힘써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자, 그분의 사랑을 힘입어 살아가는 자는 행복한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극히 작은 자에게 사랑으로 대하는 자, 그는 주님의 칭찬을 받는 인생이 될 것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25:40) 가난한 자를 선대하고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웃을 대하며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께서 복되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주와 함께 걸어가는 의인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14:32)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악한 사람은 제 악행으로 망하지만 착한 사람은 그 정직으로 피난처를 얻는다.”(14:32) 주의 말씀을 멀리하고 자기 뜻대로 인생을 살아가는 자, 그들은 죄악의 유혹에 빠져 악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이렇게 악한 길을 걸어가는 악한 사람의 종말은 결국 멸망이지만, 주님의 법을 따라가는 자, 성령님의 지도를 받는 주의 백성들은 안전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유대인들에게 자신은 위로부터 났으며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음을 말씀하신다. 이어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8:24) 유대인들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모든 민족, 그리고 우리는 죄 가운데서 태어난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도 잘 모르며, 자신의 죄를 잘 깨닫지 못하고 계속 악으로 달려가게 된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 이후로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이 죄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해 주셨고, 그를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죄를 씻고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성령님의 은혜로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성령님을 의지하며 말씀을 붙잡고 의인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의 자녀로서 승리

우리는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성령님의 은혜로 주의 자녀로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실 때 우리는 큰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가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악과 미련함이 아니라 의와 지혜를 선택함으로써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항상 간직하고, 삶의 순간마다 주의 제자로서 바른 결정과 행동을 하는 자, 자신이 복 받은 자임을 인정하며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잘 전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딤후 1:7) 하나님 안에서 견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은 주 안에서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며, 평안한 마음으로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우리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주님께 모든 문제와 상황을 맡기어 드리며, 평안한 마음을 가지고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주 안에서 안전하며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 그는 언제 어디서나 천국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성령님의 은혜로 의로운 길을 걸어가며 견고한 믿음과 평안한 마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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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2. 8. 16:20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 요한복음 4:9-14

말씀: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

성경: 요한복음 4:9-14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4: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 인격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과 독일의 종교 개혁자 루터가 후에 교리 문제로 사이가 좋지 못할 때였다. 그때 칼빈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루터가 나를 마귀라고 하여도 나는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높일 것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헐뜯고 악담하고 불평하는 일은 잘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더 뛰어나다. 그러나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저를 이길 줄 알고 고상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우리의 삶,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복음 전파

본장은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여정에 있어 베푸신 교훈과 표적을 다루고 있다. 특히 본장에 수록된 교훈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간의 담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예수님의 두 번째 강화로서, 자기 계시의 원리와 초청의 원리를 드러내 주신다. 예수님께서 이 여정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기 전에 대적들과의 무모한 충돌을 피하시기 위함이다. 둘째로, 소외받는 무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보편성을 부각시키셨다. 이러한 본장은 수가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1-6), 우물가의 여인(7-15), 참 예배의 본질(16-26), 사마리아 여인의 증거(27-30), 참 양식(31-38), 사마리아인들에게 증거(39-42), 갈릴리 사역 개시(43-45) 두번째 표적으로서 신하의 아들을 살리심(46-54)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사마리아 여인(9)

예수님은 누구를 사랑하셨는가? 예수님은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은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다.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4:9) 어느 날, 예수님은 유다를 떠나 갈릴리로 향하여 가실 때 사마리아로 통과하게 되었다. 사마리아 수가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 곁에 앉아 쉬셨고, 그때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다. 수가는 사마리아 성인데,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 가까이에 있었다(4:5). 일반적으로 야곱의 우물에서 평원을 건너 동북쪽으로 1km 지점에 있는 에발 산의 동륙에 있는 아스갈 마을과 동일시된다. 옛날의 세겜, 오늘날의 델 발라다를 가리킨다. 수가라는 동네에 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매일 야곱의 우물로 혼자 물을 길으러 온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물을 줄 것을 이 여인에게 요구한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부정하게 여겨 상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마리아인은 유다와 이방인의 혼혈족이었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그들을 개와 같이 취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사마리아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

사마리아인은 누구인가? 사마리아인은 [] [] !ynIrom]vo(shomronim), pl. [] Samareitai(Samareitai), pl. Samarivth"(Samarites), Samariti"(Samaritis) [] Samaritans이다. 기원전 721년 앗수르 왕 사르곤 2(Sargon 2)에 의한 사마리아 점령 후, 각지에서 이민족을 이주시키고, 그들이 잔존 이스라엘과 혼혈하여 생겨난 사람에 대한 호칭이다(왕하 17:24-40). 특히 기원전 721년 앗수르에 의해 북 왕국이 멸망된 후, 여기에 외국인이 식민 이주되어, 종교 생활, 사회생활은 현저히 이교화되었다. 그리고 기원 전 4세기 말에는 마게도냐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마게도냐인의 이주도 있어서, 포로 귀환 후의 신앙의 순수성을 주장하고, 수호하려는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인과 세차게 대립하게 되었다. 유대인은 이교화된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예루살렘성전에 들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마리아인은 대항적으로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사마리아역 성서를 편집했다. 이 반목은 후대까지 계속되었는데, 유대인은 유다와 갈릴리와의 왕복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마저도 피하여, 일부러 요단강 동안의 페레아(Peraea-요단 저편 마 19:1)를 우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성 부인에게 전도하시고(4:1-26),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까지 들어(10:30-35), 이 반목을 극복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영혼을 사랑하셨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주님이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영혼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베드로는 설교를 하기 위해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방문한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방문하는 것,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인지 알았지만, 그 금기를 깨고 성령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바에 순종하여 그의 집에 가게 된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10:28) 우리는 이방인이었지만 주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하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어떠한 이들도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번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며 사역하실 때,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 질렀던 나병 환자 10명을 고치신다. 그런데 고침 받은 10명 중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주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7:16-19) 사마리아인처럼 또한 이방인인데,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간구하여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되어진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 열방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나를 극진히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고, 그분을 알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마리아인도 사랑하신 예수님, ‘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붙잡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예수 그리스도(10)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에 다니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4:10)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던 사마리아 여인을 보며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우리는 믿는 자들이 구할 때 좋은 것들로 베풀어 주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육신의 것 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들도 충만하게 채워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예수님께 구하는 자들은 생수를 마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셔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신 그분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며, 만왕의 왕,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55:6-9)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만나기를 사모하며 부르짖을 때, 그분은 우리를 반드시 만나 주실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우리는 참 하나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각이 모든 이들에게 열려지기를 위해 중보해야 할 것이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영적인 안목이 열려야(11-12)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열려야 하는가?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안목이 열려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4:11-12) 사마리아 여인은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정오에 깊이가 약 26m인 이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는데 그녀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 깊은 우물에서 당신이 생수를 얻겠는지 물으며 야곱보다 큰 자이냐고 주님께 묻는다. 시간이 얼마 지나 예수님은 영적인 안목이 열리지 못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생수를 주는 자임을 밝히신다. 그런데 오히려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관대 야곱의 우물보다 더 좋은 생수를 줄 수 있느냐며 물었던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단번에 알아봤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안목을 가진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고전 2:14)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영이신 하나님의 일을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는 무엇을 얻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기 위해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6:27)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서 주의 자녀들이 구할 때 좋은 것들로 베푸실 것을 믿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자, 성령님의 은혜로 영적인 안목이 열려 하나님의 행하심을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 주의 행하심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13-14)

세상 사람들은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우물의 물은 육신의 목마름을 잠시 해결해 주지만, 주께서 주시는 물은 영혼의 목마름을 완전히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신이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임을 말씀하시며 자신이 영원한 물을 주는 자이심을 교훈하셨다. 그러나 여인은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오해한다. 그리고 다시는 물을 길으러 오지 않게 그 물을 주실 것을 요구한다. 그 때에 예수님은 그 여인의 숨겨진 사실을 끄집어내며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심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주께로 나아와 그분께 부르짖는 이들은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살게 되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목마른 자들아 나아오라, 주께서 채우시리라! 주께로 나아오는 자들은 목마름에서 완전히 자유케 될 것이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55:1-3) 여호와를 청종하면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의 영혼이 살게 됨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주의 자녀들을 풍성히 채우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49:10)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는 살게 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께서 를 사랑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성령님의 은혜로 영적인 안목이 열려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잘 깨닫고, 목이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시는 주님을 찾고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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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삼손

성경: 사사기 15:14-20

15:14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

15: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15:16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15:17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15: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15:19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

15:20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

 

 

1. 마음

6살 짜리 딸을 키우고 있던 부부가 있었다. 그들은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원인 모르는 병으로 죽었고, 딸은 밤마다 무서워했다. 모든 것이 어둡게만 보이는 그들의 삶이었다. 그런데, 무서움으로 가득했던 딸이 믿음의 말을 했다. 딸은 아빠에게 아무리 무서워도 아빠가 곁에 있으면 난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잠들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 어려움과 환난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환경 가운데 놓이더라도 주 안에 거함으로 두려운 마음을 떨쳐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와 함께하는 자,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는 결코 환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삶,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삼손

전장에는 딤나 혼인 잔치에서의 수수께끼 사건이 언급되었다. 당시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낸 수수께끼를 해결하지 못하자 삼손의 아내를 통해 해답을 알아낸다. 이에 격분한 삼손은 아스글론 사람 30명을 쳐죽이고 그들의 의복을 벗겨 블레셋 사람들에게 상품으로 주었다. 오늘 본문에는 전장의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딤나를 떠났던 삼손은 시간이 지나자 다시 아내를 찾아 장인 집으로 갔고, 본장은 이때 발생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격분한 모습의 이야기를 기록한 전장에 반해, 본장은 아내에 대한 연정을 잊지 못한 삼손이 딤나에 돌아와 벌어진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아내를 다시 찾기 위해 딤나에 돌아온 삼손은 이미 아내가 다른 곳으로 시집간 사실을 알고 분노하여 블레셋 사람들의 곡식을 불 태운다(1-8).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 백성들을 괴롭히자 유다 사람들은 삼손을 결박하여 그들에게 넘겨준다(9-13). 그러나 동족에 의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진 삼손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힘을 얻어 결박을 풀고 나귀의 턱뼈로 블레셋 사람 일천 명을 죽이고, 힘이 소진한 삼손은 또다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샘에서 솟는 물을 마시고 원기를 회복한다(14-20). 이와 같은 사실을 통해 본장은 자기의 사역자와 끝까지 함께하시며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3.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니(14)

여호와의 신이 믿는 자들에게 임하면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는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삼손, 사사시대의 한 사사였던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이 함께 할 때 그의 힘이 강해졌음을 성경은 기록한다. 본문에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결박당했던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하는 장면을 기록한다. “삼손이 레히에 이르매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로 마주 나가며 소리 지를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시매 그의 팔 위의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그의 결박되었던 손에서 떨어진지라.”(15:14) 유다 사람들은 삼손으로 인해 자신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결박한 후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줄 계획을 짰다. 그리고 삼손에게 목숨은 해하지 않고 결박만 할 것을 약속한 후 그를 밧줄로 결박했다. 그런데 삼손이 레히에 이르렀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그에게 마주 나가며 소리 질렀고,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갑자기 임하여 삼손에게 강한 힘이 생겨서 밧줄을 끊어 버렸던 것이다. 우리는 여호와의 신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임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사사였던 옷니엘에게 여호와의 신이 임하여 그가 나가서 싸우니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는 일이 일어났다.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3:10)

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놀라운 힘으로 밧줄의 결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듯이 찢었다. 삼손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어 손에 아무 것도 없어도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음같이 찢었으나 그는 그 행한 일을 부모에게도 고하지 아니하였고.”(14:6) 기적적인 힘, 강한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었던 삼손,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입은 자였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은 그를 잡기 위해 계속하여 온갖 노력을 다했다. 어느 날, 삼손이 그가 사랑했던 들릴라와 함께 방에 있을 때의 일이다. 들릴라는 삼손을 잡기 위해 방에 사람을 매복시키고 그에게서 나오는 힘의 비결을 알기 위해 삼손을 유혹했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마르지 않은 새 활줄 일곱으로 자신을 결박하면 힘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그러나 블레셋 사람들이 그렇게 했지만 삼손은 그 줄을 끊어 버렸고, 그를 잡기 위한 작전은 실패하고 만다. “이미 사람을 내실에 매복시켰으므로 삼손에게 말하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그 칡 끊기를 불탄 삼실을 끊음 같이 하였고 그 힘의 근본은 여전히 알지 못하니라.”(16:9) 삼손의 힘의 근본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 힘의 근본은 하나님이었음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는 할 수 없지만, 여호와의 영이 함께 하시면 불가능함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할 때,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동참할 수 있었음을 알고, 우리도 여호와의 영에 감동받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역사를 그려나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삼손의 손에 들린 나귀의 턱뼈(15-17)

여호와의 신이 임한 삼손은 나귀의 턱뼈를 보았다. 삼손에게 나귀의 턱뼈가 주어졌을 때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가? 삼손은 나귀의 새 턱뼈를 집어 든 후 천 명을 상대했다. 블레셋 사람들은 나귀의 턱뼈로 인해 죽었고 그들은 한 더미, 두 더미 쌓여졌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이르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천 명을 죽였도다 하니라.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15:15-17) 이 상황을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외쳤다. 당나귀 턱뼈로 이자들을 모조리 묵사발을 만들었네. 나는 당나귀 턱뼈로 천 명이나 쳐죽였네.”(15:16)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임했을 때, 블레셋 사람들은 결코 그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삼손의 손에 쥐어진 나귀 턱뼈에 맞아 블레셋 사람들은 주검이 되고 말았다. 그가 사랑했던 들릴라가 힘의 비밀을 알려달라고 삼손을 유혹 했을 때, 그는 새 활줄 일곱으로 자신을 결박하면 약해진다고 말했다. 그들이 그렇게 했지만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들리라는 또 다시 그에게 간청한다. “들릴라가 새 줄을 취하고 그것으로 그를 결박하고 그에게 이르되 삼손이여 블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미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팔 위의 줄 끊기를 실을 끊음 같이 하였고 그 때에도 사람이 내실에 매복하였었더라.”(16:12) 삼손은 쓰지 않은 새 밧줄들로 자신을 결박하면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아질 것을 말했고, 들릴라가 그렇게 했지만 삼손은 결박된 것을 끊어 버렸고, 그들의 작전은 실패하고 만 것이다.

삼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다윗은 골리앗을 물리치는 기적을 경험했다. 1규빗은 45cm인데, 키가 6규빗이었던 골리앗을 목동 다윗이 돌을 물매로 던져 이긴 것이다.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삼상 17:49-50) 다윗은 자신을 비웃었던 골리앗 앞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들고 나가서 승리했다. 하나님 손에 붙잡히면, 불가능이 가능케 된다.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이 지은 큰 죄, 작은 죄를 모두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아야 한다. 주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연약한 자이지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그분께 붙잡히게 되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자,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자가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는 자,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고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는 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목이 말라 부르짖는 삼손(18-19)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힘으로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삼손은 몹시 목이 말랐다. 체력이 고갈되고 목이 말랐던 삼손은 여호와 하나님께 무엇을 요청했는가? 삼손은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는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을 허락하신다.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 하나님이 레히에서 한 우묵한 곳을 터뜨리시니 거기서 물이 솟아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 불렀으며 그 샘이 오늘까지 레히에 있더라.”(15:18-19) 삼손은 종을 통해 이 큰일을 행하셨으나 이제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게 되었음을 고백하며 부르짖었다. 하나님은 한 우욱한 곳을 터뜨리셔서 물을 솟아나게 하셨다. 삼손은 그 물을 마시고 정신을 차렸고, 그 샘을 엔학고레라고 불렀다. ‘엔학고레부르짖는 자의 샘물또는 그의 외침에 응답한 우물을 뜻하는데, 이것은 삼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곳 레히의 우묵하게 꺼진 데서 물이 터져 나오게 하셨다. 삼손은 그 물을 마시고 기운을 차렸다. 그 샘이 오늘까지도 레히에 있는데, 그 샘을 엔학코레라고 부르게 된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15:19) 삼손은 1,000명의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는 힘을 발휘한 뒤 목이 탔었고 지친 상태에서 동족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려는 다른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힐까 염려도 했을 것이다. 그는 고통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여호와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자신에게 허락된 수많은 고통의 환경 속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다. 그는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주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34:6) 여호와께 부르짖는 자는 환난 가운데서 건짐을 받게 될 것이다. 또한, 다윗은 그의 아들 압살롬을 피할 때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뺨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셀라).”(3:7-8) 다윗은 자신 앞에 많은 대적이 있음을 알고, 고통 가운데서 구원을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여호와께 구하면 좋으신 아버지께서 풍족하게 채워주심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깊은 수렁에서 건지시고, 어두운 터널을 문제없이 통과하게 하시며, 타는 목을 흠뻑 적셔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아시는 분이기 때문에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분께 아뢰면 살게 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41:17-18)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결코 고통 가운데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좋은 땅, 풍성한 곳으로 인도하길 원하신다. 삼손이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은 것처럼 우리도 자신이 처한 형편을 주님 앞에 바르게 아뢰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 안에서 안전함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은 주 안에서 안전한 삶을 살게 된다. 블레셋 사람의 때, 위기 가운데 있었을 때, 그 때에 하나님은 삼손을 통해 역사하셨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사사 삼손은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사역했다. “블레셋 사람의 때에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15:20) 인간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삼손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할 때 권능을 받은 삼손이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친 것처럼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결코 실패하지 않고 승리하게 된다. 우리는 사사 삼손을 통해 고통의 환경 가운데서도 주를 의지하고 주의 영에 감동하여 살아간다면 결코 망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고후 4:8-9)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했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또한,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가 나를 에워싸고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희를 끊으리로다.”(118:11) 원수들이 에워쌀지라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주를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일어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7:8) ‘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좁은 길, 험난한 길이라고 느껴진다 할지라도 여호와의 신께 붙잡히면 기쁜 삶, 행복한 여정이 될 것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가 여호와의 영에 감동된 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자, 부르짖어 응답받는 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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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누구나 가야 할 하나님 나라!

성경: 마태복음 13:47-50

13: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13: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13: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13: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사명

노만 멀리어드목사에게 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도 목사가 되었다. 후에 그가 목사직을 맡게 되었을 때 그는 부유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제안들을 거절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고지의 가난한 교회에 가서 시무했다. 이에 대해 그의 부친 멀리어드 목사는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그것을 감사한다. 내 아들이 연봉 1만 파운드를 받는 궁전에 있는 것보다 150파운드 연봉을 받는 곳에 있는 아들을 보는 것이 더 기쁘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의 어떤 부귀영화보다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감사하게 여기며 좁은 길을 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비유

본장은 그 유명한 씨 뿌리는 비유와 천국 비유가 있는 장이다. 씨 뿌리는 비유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의 유형을 말해 주고 있다. 그리고 천국 비유를 통해서는 사람이 천국에 가려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와 천국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 한편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영접받지 못한 사실이 언급되어 있다. 본장은 천국에 관한 일곱 가지 비유들을 모아놓은 천국 비유집인데, 그 내용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그에 대한 설명(1-23), 가라지 비유(24-30), 겨자씨 비유(31-32), 누룩 비유(33), 가라지 비유에 대한 설명(34-43), 밭에 감추인 보화와 극히 값진 진주 비유(44-46), 그리고 그물 비유이다(47-50). 이 모든 비유의 결론으로서 곳간에서 옛것과 새것을 내어 오는 집주인의 비유를 말씀해 주신다(51-52). 이 모는 비유를 마치신 후에 예수님은 고향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능력을 행했으나 고향 사람들은 목수의 아들인 예수님을 배척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치 않으셨다(53-58).

 

3. 그물과 같은 천국(47)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 나라를 예비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무엇과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천국은 마치 물고기를 잡기 위해 놓은 그물과 같다고 말씀하신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13:47) 천국은 [] Kingdom of heaven [] hJ basileia twn oujranon(he basileia ton ouranon)이다. 이는 하나님 나라와 동의어인데, 마태복음에만 씌어져 있는 말로서 다른 복음에서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말하고 있다. 이것은 종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다(3:2, 4:17, 7:21, 8:11, 10:7, 13:11, 16:19, 18:1, 3, 4, 23, 23:13, 25:1).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기를 주저한 유대인의 감정을 고려하여 하나님대신에 하늘이라는 말의 천국을 쓴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마태복음 12:28, 19:24, 31:43 등에는 하나님 나라를 쓰고 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 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 오니 혼인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22:9-10)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초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누가복음에서 큰 잔치의 비유를 통해 가르치신다. 잔치를 계획한 주인은 이 잔치에 많은 이들이 초대되어 자리가 가득 차기를 원했다. 그래서 주인은 종에게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채울 것을 말한다.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가로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14:21-23) 잔치에 많은 이들이 차고 넘쳤으면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일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은 깨어 있어 기도하는 자, 성령으로 충만한 자, 기름 등불을 잘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열 처녀의 비유의 이야기는 이렇다.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25:1-4) 우리는 예수님을 잘 믿는 자,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미련한 처녀가 아니라 슬기로운 처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받아들이고, 천국 백성이 되어, 깨어 있는 신실한 그리스도인,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들로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그물 속 물고기를 분류(4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물의 비유에서 그물 속의 물고기는 천국에 가야 할 영혼이다. 그런데 그물 속 물고기가 모두 다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그물 속의 물고기가 어떻게 된다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은 그물 비유에서 그물 속 물고기가 분류됨을 말씀하신다.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13:48)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부들은 그물이 가득 차면 해변에 끌어올려 놓고 앉아서 좋은 것은 추려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버린다.”(13:48) 여기서 그물[] Nets, 짐승이나 새 또는 물고기를 잡는 기구(25:15, 35:7, 8, 29:5, 51:20, 19:8, 1:17, 9:12, 1:15-17)이다. 그 주요한 용도는 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19:8, 4:18 기타). 고대 이스라엘은 고기를 그리 먹지 않는 편이어서 어부는 없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갈릴리 바다가 저명한 어장으로 되고, 갈릴리 바다 서안의 타리카에아(Tarichaea=막달라)에는 물고기의 절임 공장도 있어, 멀리 로마까지도 수출되었다. 그물은 용도에 따라 약간씩 달랐는데, 새나 짐승을 잡기 위한 그물과 고기잡이용의 그물로 구분할 수 있겠다. 본문으로 돌아가 본다면, 어부들은 물고기로 가득한 그물을 물가로 끌어올린 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류한다. 천국 그물에 잡힌 물고기들을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천국 그물 안에도 악인이 있다는 강력한 암시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3장에서는 밭에서 자라나는 가라지 조차도 추수 때까지 뽑지 말고 기다릴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기로 계획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숫군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13:30) 여기서 가라지를 심은 이는 마귀고, 추수 때는 세상의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이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13:39) 우리가 살고있는 이 세상의 마지막이 되면, 추숫군인 천사는 마귀가 심어 놓은 가라지는 단으로 묶어 불사르고 곡식은 거두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마귀가 언제나 열심히 일하고 있음을 알고, 깨어 있어 마귀를 대적하는 그리스도인, 가라지가 아닌 알곡 신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 주님의 때가 되면 그물 속의 물고기는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분류되며, 주님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는 분류됨을 알고, 우리 모두가 좋은 물고기, 알곡 신자가 되어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세상의 끝(49-50)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영원한 것일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은 언젠가는 끝이 오게 되어 있다. 예수님은 세상의 끝이 반드시 있음을 말씀하신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13:49-50) 세상의 끝이 오면 주님은 천사들을 통해 악인과 의인을 가른 후, 악인은 풀무 불에 던져 넣을 것이다. 그리고 악인은 지옥에서 울며 이를 갈며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고 들어온 이들은 다시 어두움에 내어 던져지게 됨을 말씀하신다.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22:12-14) 우리는 세상의 끝날이 반드시 오게 됨을 알고, 자신의 예복을 잘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을 잘 돌아보아, 거룩하지 못한 자, 타성에 젖은 예배 생활을 하는 자가 아닌, 주님을 뵈었을 때 적합한 예복을 갖춘 자,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날마다 회개하기를 힘쓰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 죄를 멀리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가라지의 비유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40-43) 세상의 끝에는 죄를 짓게 하는 모든 사람과, 주님을 믿고 주님의 사역을 한다고 했지만 불법을 행했던 자, 그들은 풀무 불에 전져질 것이다.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주께서 다시 오실 그날,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게 될 그날, 열방 중에서 주의 택하신 자들을 모으실 그 날을 기대하고 믿음을 지키며 끝까지 영적 전투에 승리해야 할 것이다.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24:31) 영원할 것 같지만 반드시 끝이 오는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 좁은 길을 걸어가면서 힘들고 고단할 지라도, 믿는 자들의 본향인 영원한 천국을 소망 삼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천국의 제자 된 자의 삶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반드시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며 승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천국 그물의 비유에서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확실히 말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 비유를 통해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13:52) 서기관이란 율법을 베껴서 보존하고 해석하여 가르치는 임무를 가진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은 천국의 제자 된 사람들이 이러한 서기관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사명이 있음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인 자, 천국의 제자 된 자들이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로서 이러한 서기관의 임무, 이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옛것과 새것이란 모세의 율법과 예수님의 교훈을 말한다. 집주인이 옛것과 새것을 곳간에서 내어와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처럼,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들은 모세의 율법과 예수의 교훈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여 사람들을 가르쳐야 한다. 우리는 천국의 제자 된 서기관으로서 이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 천국 복음을 잘 증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의 힘으로는 잘 할 수 없으나, 우리가 성령님을 의지한다면 하늘의 지혜로 천국 백성의 삶을 잘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주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우리는 이렇게 고백한 바울의 고백에 도전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지혜로 사역하고, 감사의 찬양을 하며 승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3:16)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이 세상 가운데서 누구나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으로 반응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성숙한 믿음으로 자라나는 그리스도인,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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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성경: 마태복음 5:13-16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 소금과 빛

우리는 꽃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꽃이 시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꽃이 그 최고의 특성을 상실할 때, 그것은 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승용차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 차가 사고가 나서 더 이상 차로써 그 구실을 하지 못할 때, 그것은 쇠붙이로서 다시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소금과 빛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금과 빛은 그 기능을 일단 상실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인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으로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 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잘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사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복수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 하기 때문이다(48).

 

3. 세상의 소금(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세상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여기 소금이니의 소금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금은 구약에서는 부패 방지에 긴요한 물질이었고, 정결과 순수함의 상징어로 등장한다. ‘소금[] jl'm,(melach) [] a{la"(halas) [] Salt이다. 소금의 화학명은 염화나트륨이고 보통 식염이라고도 한다. 천연 해수 중에는 약 2.8% 포함되고, 또한 암염에서도 산출된다. 사해의 물은 보통해수의 6배 가까이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제염에 이용되고, 그들 이스라엘은 세돔(소돔)에서 근대적 제염공업을 발달시키고 있다. 소금은 성막, 성전에서의 제물에 넣어졌다(2:13, 43:24). 소금은 맛이 변치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데, ‘함께 소금을 먹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우정의 상징이다. 그리고 [소금의 언약]이라는 표현을 낳았다(대하 13:5와 스 4:14 비교). 그런 점에서 막 9:50에 있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는 명령과 서로 화목하라는 말이 결합되어 있는 일은 의미가 있다. 소금은 또한 건전한 인격과 언어에도 사용되어 있다(4:6). 반면에, 파괴된 성읍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9:45). 롯의 아내는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를 돌아다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19:26). 우리는 예수님도 지상의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하셨음(17:32, 33)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지옥에 가는 이들은 누구나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을 말씀하신다.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9:49-50)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옥에 가는 자들이 아니라, 천국에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형제자매로서 서로 원수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법대로 다시 살아가는 자가 아닌, 주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벧후 2:20-21)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세상이 좋아서 다시 세상을 향해 간다면 그의 믿음은 주님께 칭찬받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는 거룩한 주의 백성,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다. 우리는 맛을 잃지 않는 소금, 이 소금으로서 반드시 세상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세상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들이 아닌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소금으로서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매일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14:34-35)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금의 신분을 잊지 말고, 소금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세상의 빛(1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신분을 소유한 자들인가?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5:14) 여기 빛이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빛은 거짓이나 부정의 개념과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며 여기서는 죄악된 세상에 복음을 밝히는 성도의 사명을 강조하는 말이다. 빛은 [] r/a('or), r/am;(ma'or) [] fw'"(phos) [] Light이다. 빛은 육안으로 느끼는 비교적 파장이 짧은 전자파이다. 넓은 의미에서 눈으로 느낄 수 없는 자외선, 적외선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눈으로 느껴지는 빛을 가시광이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이 자연적인 빛 외에도 초자연적인 빛,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며(27:1, 119:105, 24:13, 3:20), 하나님은 제 1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1:3). 그리고 하나님은 옷 입음 같이 빛을 입으셨다라고도 표현되어 있다(104:2). 빛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궁극적인 행복을 나타내는 생활과 관련해서도 기록되어 있다(36:9). 신약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빛이라하시고(8:12, 9:5, 12:46), 또한 요 1:5에는 하나님은 빛이시라(oJ qeo;" fw'" ejstin)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빛으로 일컬어진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5:14).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빛나는 것은 사람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빛의 사명은 무엇인가? 빛의 사명은 어두움의 세상에 빛을 발하여 모든 것을 비추는 일이다(5:6, 5:8). 등대 위의 등불이 모든 것을 비추듯이 우리는 어두움의 세계에 참 빛을 보여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은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12:36)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를 가졌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한다.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고 천국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또한, 빛의 자녀들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우리는 모두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이신 예수님께 지도를 받으며 좁은 길을 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 가운데서 어두움의 유혹이 오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빛의 아들로서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믿음을 잘 지키어 나가야 한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등경 위에 등불(15)

어두움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빛으로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등불을 두어야 하는가?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5:1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5:15) 빛을 밝히기 위한 등불은 등경 위에 얹어 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등불[] r/am;(ma'or) [] luvCno"(luchnos) [] Light, Lamp, Torch인데, 등에 켠 불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장막이나 집안에 주야로 등불을 켜둘 필요가 있었다. 당시의 실내는 어두워서 주간에도 작은 것을 찾는데는 등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15:8). 그리고 그것은 조명의 목적을 위함이기도 하고 항상 불씨를 손 가까이에 준비해 두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에서 여러 가지 상징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켜있는 등불은 건강과 활기있는 생활을 의미하고, 꺼진 등불은 그 반대를 의미했다(18:28, 13:9, 24:20, 31:18 기타). 하나님은 사랑의 등불(119:105)이시고, 다윗도 이스라엘의 등불로 말해졌다(삼하 21:17-). 다윗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그가 한번 넘어지는 때면 이스라엘은 등을 잃어 암흑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등불은 하나님의 보호의 상징(29:3)이었고, 계명은 인생의 등불(6:23), 그리고 눈은 몸의 등불(6:22)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등불이시다(21:231:6-9, 8:12). 우리는 빛 되신 주님, 등불이신 주님을 따라 등불을 비추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놓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삶은 반드시 형통하게 됨을 알고, 그렇게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4:18)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빛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빛의 자녀로서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영적으로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2: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세대 가운데서 여러분이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2:15) 우리는 흠이 없고 순전한 믿음을 가진 자, 악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서 영적인 복들을 받아 누려야 한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순수한 자이나, 큰 믿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의 신분을 가진 자임을 깨닫고,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게 될 것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는 이미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임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여전히 어둡고 썩어져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빛과 소금임을 기억하고 주와 동행하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5:14)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언제 어디서나 비취시도록 그분 앞에서 겸손히 서 있어야 한다. 빛을 받아들이는 자, 그는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자신 앞에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소망 삼고, 영원한 세계에서 왕 노릇하게 될 그 날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22:5) 우리 모두가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자, 세상의 빛으로 사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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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 11. 17:12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미가 7:18-20

말씀: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와!

성경: 미가 7:18-20

7:18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7:19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7:20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

 

1. 인식

하얀색은 검정색 옆에서 보아야 뚜렷하게 구별이 된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 옆에서 볼 때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어린아이는 어른 앞에서 어리다는 인식을 하게 되며, 악한 사람은 선량한 사람 앞에서라야 악한 것을 인식하게 된다. 악한 사람끼리 있으면 구별이 안 되는 법이다. 예를 들면, 동양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보면 매우 잘생겼다고 생각하지만, 서양 사람들 앞에서 보면 그들 스스로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이 못생겼다고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하면서 살아가는가? 인간에게 있어서 외모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판단의 기준에 따라 평가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안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상대를 하나님의 잣대로,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 앞의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작품임을 알고,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이스라엘을 향한 눈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부패를 바라보면서 아쉬움과 슬픔의 눈물을 흘린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이스라엘의 멸망과 함께 새로운 예루살렘인 메시야의 나라가 보인다. 이것은 좌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을 준다. 그래서 선지자는 또 다른 확신과 소망으로 말씀을 선포한다. 그의 선포에는 이제 소망이 있다. 감사의 기도는 이 희망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본장은 본서의 결론부에 해당하는데, 지금까지 다루었던 이스라엘의 죄악상, 이에 따른 심판, 그리고 미래의 소망과 남은 자들의 구원에 관하여 종합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미가 선지자는 본장에서 하나님처럼 경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고 탄식하면서 임박한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록하고 있다.

한편, 그는 남은 자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미리 예견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미래가 희망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특히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들추어서 그들로 하여금 죄악을 고백하고 돌아오게 함으로써 그들에게 궁극적인 의미인 구원과 축복을 주려고 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실패치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망을 주심은 여호와의 속죄의 은총과 언약의 신실하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가지고 있는 본장은 철저하게 타락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전반부(1-6)와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과 미래의 소망을 동시에 밝히고 있는 후반부(7-20)로 구성되어 있다.

 

3. 주와 같으신 분은 없음(18)

세상 사람들은 이 땅 가운데 많은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렇게 많은 신들 중에 어떠한 신이 참 신이라고 생각하는가? 미가 선지자는 주와 같은 신이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거짓이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 되신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과 그 기업에 남은 자의 허물을 사유하시며 인애를 기뻐하시므로 진노를 오래 품지 아니하시나이다.”(7:18)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주의 자녀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노를 더디하시고 한결같은 사랑을 주시는 분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은혜를 입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킨다.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이렇게 요청한다.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나는 은혜 줄 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33:18-19) 우리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함이 넘치는 주가 되신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두 번째 돌판에 십계명을 주게 되는데, 구름 가운데서 강림하셔서 모세의 앞을 지나가시며 이렇게 선포하신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34:6-7)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 뿐만아니라, 악과 선에 대해 반드시 보응하신다. 우리는 이러한 여호와 하나님이 신 중의 신, 왕 중의 왕이 되심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신 중의 신이신 좋으신 주께로 돌아와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5:9-10) 한 영혼을 기뻐하시는 주님은 죄인 하나가 돌아올 때 매우 기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죄악 덩어리이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있을 때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며 우리를 기뻐하신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3:17) 우리를 구원하신 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 인자와 자비가 풍성하신 주, 이렇게 좋으신 주와 같으신 분이 없음을 삶 가운데서 날마다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주(19)

신 중에 신, 왕 중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여겨주시는가? 인간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신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7:19) 여기서 바다에는 원어로 <hL;xum]: 메출라>이다. 이는 깊음, 깊은 곳이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완전히 사해 주심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죄를 용서해 주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범할 수 있는 행동의 죄, 생각으로 범하는 죄를 회개하기를 기뻐해야 할 것이다. 시편에는 모세의 기도를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긍휼히 여기소서. 아침에 주의 인자로 우리를 만족케 하사 우리 평생에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90:13-14) 모세는 주의 은혜를 구했다. 그는 주님께 종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인자로 만족케 하여 주시기를 바랬다.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심하게 벌하시다가도 불쌍히 여기신다.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3:32)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께서는 사랑이 그지없으시어 심하게 벌하시다가도 불쌍히 여기신다.”(3:32) 우리는 이렇게 주의 사랑과 관심을 입고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야 한다. 이제는 율법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음을 기억하고, 죄의 종 노릇에서 벗어나 의의 종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우리는 죄의 종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주의 제자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앞에 주님만을 섬길 것을 지금 결단하고, 겸손하게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 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뇨.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4:5-6) 하나님은 성령님이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다.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지금도 를 불쌍히 여겨주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께 날마다 감사하고,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인애가 풍성하신 주(20)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인애가 풍성하신 주가 되신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7:20) 하나님은 스스로 말씀하신 약속을 반드시 지키셨는데,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한결같은 사랑을 보여 주신 주가 되신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아끼지 않고 번제로 드리기까지 순종함을 보고 그를 축복하신다.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22:16-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손에게까지 이르는 복도 받게 된 것이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우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17:7-8)

우리 또한 하나님의 큰 사랑을 입은 아브라함처럼 주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를 구하고, 약속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 충만함을 입은 스가랴는 예언 가운데서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1:72-74) 하나님은 언약을 지키시는 사랑의 주가 되신다. 작자 미상의 시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105:8-10)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고 자손을 축복하신 하나님, 약속을 지키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인애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의 삶에 관여하시고 를 좋은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신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 인애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잘 붙잡고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

우리는 죄악에서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가야 한다. 본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민족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선지자의 애정 어린 호소를 엿볼 수 있었다. 나아가 이스라엘 민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우리는 죄악에서 돌이켜 여호와 하나님께 돌아오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어떠한 고통이나 환난 중에서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믿는 자들의 힘이 되시는 여호와를 힘입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며 승리하는 믿음 생활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면 우리는 새로워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36:25-27)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새로운 마음으로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잘 걸어가게 될 것이다. 날마다 믿음으로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130:7-8) 이 땅에 주와 같으신 분은 없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히 여기시는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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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주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고!

성경: 시편 108:1-5

108:1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108:2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108:3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108:4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108: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1. 믿음

쟌 윌턴26살까지 인생을 마구잡이로 살았다. 그러던 중 자신의 방랑 생활을 청산하고 우연히 교회에 나갔다가 겨자씨에 비유한 말씀을 듣고 큰 깨달음을 얻었다. ‘그렇다. 나에게도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다면 불가능한 것이 없을 것이다.’ 그 뒤 그는 호주머니에 항상 겨자씨를 넣어 가지고 다녔다. 후에 그는 유명한 실업가가 되었고 엘리자베스 세로부터 작위까지 받게 되었다. 그의 성공을 보고 어느 사람이 당신은 왜 겨자씨를 가지고 다닙니까?’라고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좌절할 때마다 이 겨자씨를 보면 다시 용기를 갖게 되기 때문이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 좌절, 또는 희망 가운데 있는가? 혹시 좌절과 절망 가운데 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 작은 믿음일지라도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용기

다윗은 선민의 땅이나 이방인 땅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한다.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는 용기의 원천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택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시는데 그 용기는 다름 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나타난다.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택한 자며 군대와 같은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주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만군의 왕이 되심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우리의 힘은 결코 영원하거나 무한하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받아야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본문의 시는 혼합시의 형태를 띠고 있는데 각각 비탄시인 시 57:7-11과 시 60:5-12에서 발췌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목할 것은 본시는 비탄시가 혼합된 형태이지만 찬양 시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능력은 시인의 찬양의 중요한 이유가 되며(1-5) 나아가 주를 의지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됨을 서술하고 있다(6-13).

 

3. 마음을 정함(1)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정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마음을 정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을 높여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108:1) 개역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으로 찬양하리로다.”(108:1) 다윗은 마음을 정하고, 심령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란 표현에서 하나님만을 향하여 온 영혼이 집중된 시인의 청결한 마음 상태를 알 수 있다. 우리는 마음의 초점과 방향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전적으로 그분을 의뢰해야 한다. 그리고 심령으로는 원어로 <d/bK: 카보드>이다. 이는 영광또는 심령을 뜻한다. 여기서는 사람의 가장 진실 되고 고귀한 심령을 의미한다. 우리는 마음을 정하고, 마음의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윗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늘 주님을 노래했다. 그는 죽을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서도 입을 열어 주님을 찬양했다.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난 후, 다윗은 이렇게 노래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34:1) 다윗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도 뛰어넘는 큰 믿음, 깊은 신앙을 가진 자였다.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는 복 받은 자일 것이다. 또한 시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146:1-2) 지금까지 내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큰가? 우리는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71:15)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그분의 이름을 날마다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을 찬양(2-3)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를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지음 받은 자로서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시편 108:2-3) 그는 비파, 수금에게 깨라고 하며 자신이 새벽을 깨울 것을 말한다. 그는 비파와 수금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할 만큼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또한, 만민 중에 감사하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기로 결심한다. 우리는 다윗에게 도전을 받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열심을 다해야 한다. 고요하고 청아하게 가라앉은 새벽은 하루 중 가장 경건하고 신선한 시간인데, 그는 이 새벽에 주님을 찬양하기를 원했다. 우리도 가장 이른 시간에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할 수 있다면 복일 것이다. 이 때 영적인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새벽 뿐 만 아니라 어느 때든지 하나님을 찬양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큰 축복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의무와 권리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57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57:8) 새벽을 깨우며 주님을 높이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이다. 또한 아삽의 시는 이렇게 기록한다. “시를 읊으며 소고를 치고 아름다운 수금에 비파를 아우를지어다.”(81:2)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풍악을 잡고 소구를 쳐라. 거문고를 울리며 수금으로 아름다운 가락을 뜯어라.”(81:2) 모든 악기를 동원하여 주님을 노래하는 모습, 그 모습을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열방을 통치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열방을 흔들 수도, 안전하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시다. 우리는 공의로우신 그분 앞에 합당한 자로 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공의로우신 주님의 뜻을 깊이 아는 자들이 되어, 자신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자들로 살아야 할 것이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열방 중에서는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통치하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흔들리지 못 할지라 저가 만민을 공평히 판단하시리라 할지로다.”(96:10) 나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어떠한 형편과 환경에서도 만물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인자하신 주(4)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그리스도인들이 섬기는 하나님은 인자하신 주가 되신다. 다윗은 주의 인자하심을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108:4) 하나님은 인자하심이 크신 주가 되신다. 여기서 인자하심이는 인간의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한다. 하나님은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신 인자한 주가 되신다. 주와 같으신 분이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음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주께서 옛적에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에게 성실을 베푸시며 아브라함에게 인애를 더하시리이다.”(7:18-20) 인자함이 풍성하신 주님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노를 항상 품지 않으신다.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형편과 삶의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고, 삶 가운데서 감사함으로 주님께 찬양을 올려드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길을 다 예비하시고 인도해 주시는 주님께 삶을 의탁하는 자는 지혜로운 자일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55:9) 우리는 인간의 길, 그리고 생각보다 높으신 주님을 붙잡고 승리하는 삶, 주님의 아름다우심을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다윗은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8:1) 나는 어떠한 삶을 살기를 기도할 것인가?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자하신 주님을 날마다 만나고, ‘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의 이름, 아름다우신 주의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높임을 받으실 영광의 하나님(5)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높임을 받아야 마땅하신 영광의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는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영광의 하나님을 높이는 복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108:5) 다윗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었다. 다윗이 찬양했던 하나님은 의 하나님이 되심을 기억하고 우리 또한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려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다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심이로다.”(148:13) 우리는 언제나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 주를 즐거워하는 멋진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5:11)

우리는 다윗에게 도전을 받고 앞으로 다가올 환난의 시기에도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하며, 영광의 하나님을 노래 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들이 누릴 수 있는 큰 축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도 은혜를 베푸시길 원하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계와 우주에 높아져야 함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주의 자녀로서 주의 인자와 진리를 삶 속에서 찬양할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한다. 이 땅에서 믿음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을 정하여 인자하신 하나님, 높임을 받아야 마땅할 영광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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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주님 오실 날을 고대하며 믿음으로!

성경: 히브리서 10:19-25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10:21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10: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10: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버팀대

아버지와 함께 강가를 걷고 있던 한 소년이 갑자기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버지, 이것 좀 보세요! 사람들이 다리 밑 부분에 세워 둔 받침대를 떼어내고 있어요. 어쩌려고 그러는 것일까요? 다리가 무너져 내리지는 않을까요?’ 그러자 아버지가 대답했다. ‘버팀대를 제거하는 것은 다리가 이제 막 완성된 다릿발에 단단히 고정되게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더 하나님을 굳게 의지하며 살도록 하시기 위해 세속적인 버팀대들을 떼어내시곤 하신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에 대해 잘 이해하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감사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믿음

그리스도의 속죄 제사의 우월성을 레위적인 체계와 비교하면서 요약한다(1-8). 특별히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사 현재에도 활동하고 계심을 강조한다(9-1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이 대제사장을 믿는 믿음이며 이 믿음은 서로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서로 격려하는 일이 필수적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중요하다(19-25). 한편, 배교의 위험성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엄중한 경고를 한다(26-31). 저자는 과거 그들의 인내를 기억할 것을 권고하면서 확신을 잃어버리지 말 것을 강조한다(32-39).

 

3. 예수의 피를 힘입어(19-20)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며 무엇을 힘입어 주께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10:19) 여기서 담력이란 예수의 피를 힘입어 하나님의 구원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지만, 예수의 피를 힘입어 담대하게 성소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은 갈라졌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새로운 살 길이 열리게 되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10:20) 하나님이신 그분께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는 그 은혜를 감사하게 생각하며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이 세상 가운데서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양의 문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자만이 구원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10:7)

이 땅에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에 가는 복을 누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구원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지금도 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 또한,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가는 자는 구원을 얻고 마음대로 드나들며 꼴을 얻을 수 있음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10:9) 우리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길과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복음에 바르게 반응해야 한다. 현재,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피를 힘입어 날마다 성소에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21-22)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 받은 자로서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주 앞에 나아가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10:21-22)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은 구약의 제사 의식을 끝마쳤다. 뿐만 아니라, 예배의 방식도 바꾸어 놓았는데, 이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뿌려져있다. 그리스도인은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 맑은 물로 씻음 받았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가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먼저 그 휘장 안에 들어가셔서 멜기세덱의 계열에 속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가셨느니라.”(6:2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를 위해 하늘의 지성소로 먼저 들어가셨음을 알고, 그분의 자녀로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를 사망에서 건지신 구원의 주가 되신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성령의 역사로 되어졌음을 깨닫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3:5) 우리는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 구원의 은혜에 감격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우리는 주의 은혜로 소유하게 된 이 믿음을 잘 간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3:12) 우리는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 악에서 벗어나 참 마음과 참 믿음으로 살아가야 할 주의 백성이 되었음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사랑과 선행으로(23-24)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지체들 간에 무엇을 행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구원받은 주의 백성으로서 주 안에서 소망을 굳게 잡고,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10:23-24) 여기서 격려하며자극하다, 성나게 하다.’라는 뜻으로 상대방으로 하여금 어떤 일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자극하고 돕는 것을 말한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는 미쁘시다. 우리는 그 분 안에서 참 소망을 가지고, 지체들 간에 서로 사랑으로 격려하면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믿음생활을 하면서 사랑하지 못할 대상이 내 앞에 있다면, 우리는 믿음으로 사랑하지 못하는 상황을 영적 돌파하며 원수까지 사랑하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관여하시는 하나님은 그 시험을 반드시 이기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감당하지 못할 시험에는 피할 길을 내어 주심을 우리는 확신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또는 교회 안에서 자신이 타인보다 더 나은 자라고 생각된다면, 그는 주안에서 형제자매의 종이 될 것을 결단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주의 자녀를 삼아주시고, 그 분의 은혜로 자유케 된 우리는 그 자유를 자신의 육체의 기회로 삼지 않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5:13)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주 안에서 지체된 자들로서 서로 종노릇 할 수 있기를 위해 중보 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누구라도 끝까지 사랑할 것을 입으로 선포하고 그렇게 행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나는 지금 이웃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예수님이 피 값으로 사신 지체를 사랑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된 자들로서 그 분의 마음과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 격려하며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그 날이 가까울수록(25)

예수님은 지금도 를 위해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 를 극진히 사랑하심을 깨닫고 우리는 그분을 위한 삶,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은 이제는 주를 사랑하는 자신의 백성들을 맞이하러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올수록 더욱 주님을 사랑하고, 더욱 이웃을 사랑하며, 더욱 깨어 기도하는 예배자들로서 승리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5) 지금은 자다가 깰 때이다.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부를 만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방탕한 생활을 하거나 술 취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늘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13:11-13) 우리는 주의 자녀로서 나 자신만 좋은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지 말고, 모이기를 기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어, 그리스도의 사랑을 세상 가운데 흘러 보내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4)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날마다 성소로 나아갈 수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사랑과 선행을 행할 수 있는 자들이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기에 힘쓰고, 그 날이 가까이 올수록 서로 뜨겁게 사랑하여 주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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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삶

성경: 요한복음 3:16-21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3: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3: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3:21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1. 광택

한 여인이 은으로 된 가족 식기 세트를 침침한 찬장 속에서 꺼내며 중얼거렸다. ‘세상에 이런 좋은 그릇이 광택을 잃어버리다니. 매일 이것을 사용하지 않고는 아무도 반짝거리는 빛을 볼 수 없는 법이지.’ 이것은 은으로 만들어진 식기뿐만 아니라 믿음의 문제에서도 동일하다. 신앙생활을 주일날 예배드리는 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날마다 믿음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는다면 주님 앞에 합한 믿음을 소유할 수 없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삶 가운데서 매일 빛 되신 예수님을 따라갈 것을 소망하며, 장성한 믿음의 분량의 사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그렇게 살 수 있도록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본장은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 내용과, 세례 요한의 예수님에 대한 증거를 기록한다.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의 구원을 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러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증거 하신다.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와 자신과의 관계를 명확하게 밝히면서, 예수님의 증거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게 되고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받게 됨을 선포한다.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대화의 기록은 본서에 수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7대 강화 중 그 첫 번째에 해당한다. 이 강화는 하나님 나라와 거듭남이 서로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거듭남의 교훈(1-8), 예수님의 자기증거(9-15), 믿음으로 얻는 영생(16-21), 세례 요한의 마지막 증언(22-30), 하나님의 아들 예수에 대한 증거(31-36)로 구성되어 있다.

 

3. 영생(16-17)

이 땅에서 살아가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 받게 되는 축복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죄인인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받아들일 때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이것은 지상 최대의 축복일 것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거듭나느냐는 니고데모의 질문에 답하시며 그와 대화를 한다. 니고데모와 대화하셨던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에 대해 본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6-17)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 된다.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함 보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목적으로 예수님을 보내셨다. 인류의 종말과 개인의 종말에 이르게 되면 죄인은 심판을 받게 되지만,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께 나아와 회개하고 그분을 영접한 자들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9:13) 죄인인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야만 살 수 있는 작은 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이다. ‘를 사랑하셔서 이 땅에 독생자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를 살리기 위해 가장 낮은 모습으로 이 땅 가운데 오신 만왕의 왕이 되신다. 우리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삶 가운데서 그분을 높여야 할 것이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2:10-11)

우리 모두가 인류의 가장 큰 기쁨의 소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소식에 기쁨으로 반응하며, ‘를 위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주의 자녀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심판(18-19)

이 땅에 살아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은 결국 어떻게 되는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삶의 주인을 자신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함 받고, 예정된 심판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3:18)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는 심판 아래에 놓여 있게 된다. 여기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의 의미는 예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로 심판 아래 놓여 있던 그들이 복음을 거부하므로 심판이 이미 확정된 것이라는 뜻이다. 인류의 조상이 범죄함으로 인해, 예수님의 이름을 믿지 않는 자들은 계속해서 심판가운데 놓일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두움에서 벗어나 빛으로 나와야 한다.

죄악된 자신의 모습, 부끄러운 모습일지라도,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믿음으로 나아와야 할 것이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3:19) 어두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자신의 행위를 회개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무릎 꿇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한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더 이상 심판 가운데 놓여 있는 자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로서 주님을 예배해야 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 이 땅에서 살아가지만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심판과 관계없는 하나님의 자녀, 빛의 자녀가 되었음을 감사하고, 삶 가운데서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제는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더 이상 어두움에 다니지 말고 빛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8:12) 우리 모두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성령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영접하여 심판 가운데 놓여 있지 않는 자, 좁은 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진리를 따르는 자(20-21)

우리는 나그네로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무엇을 따르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예수, 진리를 따르는 자들로서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악을 미워하고 빛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 진리의 말씀대로 행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3:20-21)

세상 가운데서 참 행복을 찾을 수는 없다. 세상에 취하는 것은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좇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참 행복한 삶을 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따르는 자가 되어 빛으로 나아오기를 소망해야 한다. 진리를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며, 겸손하게 그분의 이름을 높이기를 힘써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거만한 자는 견책 받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며 지혜 있는 자에게로 가지도 아니하느니라.”(15:12) 진리를 따르는 자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서 주님의 지혜로 사역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진리를 따르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많은 과실을 맺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가지인 우리는 포도나무인 예수님께 붙어 있어 아름다운 결실을 맺어 하나님의 풍성함 가운데 거해야 할 것이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4-5)

우리는 죄악을 미워하고 진리가운데 서기를 원하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는 의인의 길은 형통하게 됨을 믿어야 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4:18) 이 땅에서 잠시 잠깐 지내다가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우리는 인생이 짧음을 알고, 세상의 좋은 것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법을 좇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오직 예수, 진리를 따르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열매 맺는 삶

우리는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로서 예수님께 붙어 있을 때, 성령님의 역사로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다. 날마다 우리 가운데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를 통해서 행하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그분의 역사를 생각하며,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로서 진리에 순종하는 자, 경건의 생활에 힘쓰는 자, 형제를 사랑하는 자가 되어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할 것이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무엇보다도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우리는 성령 안에서 서로 사랑하기를 힘쓰고, 성령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11)

우리 모두가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심판 가운데서 머무르지 말고, 진리를 따르는 자가 되어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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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인

성경: 마가복음 4:26-29

4: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4: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4: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4: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1. 욕심

어느 날, 개구리들이 자기들에게 임금이 없는 것을 불안해하여 신께 임금을 보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자 신은 나뭇조각 하나를 늪에 떨어뜨려 주었다. 개구리들은 그 떨어지는 소리에 깜짝 놀라 모두들 늪 속에 숨었다. 그러나 나뭇조각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떠 있기만 하자, 그 위에 올라앉아서 놀며 나뭇조각을 바보 취급했다. 그 후, 그들은 신께 처음의 임금보다 날쌘 임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들의 원대로 무섭고 날쌘 물뱀을 보내 주었다. 결국, 개구리들은 모두 그 물뱀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지나친 욕심은 파멸의 구덩이로 빠지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가 마음이 가난한 자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삼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비유

본장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에 관해 여러 가지 비유를 들어 설명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마가는 비유를 통하여 신비로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그리고, 거센 풍랑을 말씀으로 잔잔하게 하신 사건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와 능력을 강조한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가르치셨고,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그 비유의 해석을 말씀해 주셨다(1-20). 그리고 등경 위의 등불 비유(21-25)와 저절로 자라는 씨의 비유(26-29)와 겨자씨의 비유(30-32)등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가르침을 비유로만 말씀하셨고 나중에 조용한 시간에 제자들에게는 모든 비유들을 해석해 주셨다(33-34). 저녁 무렵에 예수님께서 호수 건너편으로 가시려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중 큰 광풍이 일어나 배가 침몰할 위기에 놓였을 때, 예수님께서 말씀으로 바다와 바람을 잠잠케 하셨다(35-41).

 

3. 하나님의 나라(26)

이 땅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죽음 이후에 결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에 오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모두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원의 주로 믿는 자, 주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 나라에 가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말씀하신다.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4:26) 하나님의 나라는 밭에 씨를 뿌리는 농부와 같다. 마태복음에서는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13:24) 밭에 씨가 뿌려진다면, 그 씨는 결국 자라게 될 것이다. 뿌려진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밭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다. “이 비유는 이러하니라. 씨는 하나님의 말씀이요.”(8:11)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는 복음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많은 이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 복된 삶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6-9)

우리는 자신의 달란트에 따라 주의 말씀을 전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든지 주어진 형편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 때 열매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주의 일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보응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4:36-38) 우리는 나 자신이 작은 교회임을 기억하고 날마다 주의 말씀을 묵상하는 삶, 날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날마다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말씀 전하기를 힘쓰고, 주의 백성들이 많아지기 위해 기도하기를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자라나는 신앙(27)

이 땅에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살아가는 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하게 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는 신앙이 자라나게 되어 있다. 마음 밭에 하나님의 말씀인 씨가 뿌려지면 싹이 나서 자라게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4:27) 하루하루가 지나는 동안 싹은 자라나게 되어 있다. 공동 변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루하루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나지만 그 사람은 그것이 어떻게 자라나는지 모른다.”(4:27) 말씀 안에 거하게 되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믿음의 나무로 성장하게 된다. 우리는 말씀 안에 거하여 믿음의 거장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벧후 3:18)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자라가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신에게도 복이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됨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삶,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삶은 인간의 힘으로 쉽게 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살아계신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신다면 모든 것이 가능함을 믿어야 한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3:7-8) 우리가 말씀을 잘 듣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쓸 때, 바람과 같은 성령님께서 하나님을 주로 고백하게 하며, 믿음의 삶을 살게 하실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믿음이 자라나기를 위해 중보기도 해야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살후 1:3)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의 사랑 안에서 풍성한 삶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이를 위해 늘 기도하며, 말씀의 씨앗이 마음 밭에서 잘 자라가는 믿음의 자녀들이 되어 주 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성숙한 신자(28)

하나님은 이 땅에서 복음을 받아들이고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결국 어떠한 신자가 되기를 원하실까? 하나님은 말씀 가운데 거하며 주를 따라가는 자들이 믿음이 점점 자라나, 성숙한 신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땅에 떨어진 씨앗은 열매를 맺고, 충실한 곡식으로 자라나게 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4:28) 우리는 씨앗이 떨어진 마음의 밭을 좋게 하여, 그 씨앗이 충실한 곡식으로 자라가게 해야 할 것이다. 좋은 마음의 밭에서는 작은 씨앗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 수 있는 거목으로 자라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4:31-32)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형제자매의 믿음이 잘 자랄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잘 보살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성장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권면한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1:9-11)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풍성하신 분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한다면 우리는 성숙한 신자가 되어 의의 열매가 가득한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3)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계절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다. 이와 같이 우리 또한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 형통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성숙한 분량의 믿음에 이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었다면, 자신에게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이웃에게 그 사랑을 넉넉히 전달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주님께 칭찬 받는 자, 거룩한 신부로서 담대하게 주를 맞이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3:12-13) 우리는 복음을 듣게 하시고, 복음을 깨닫게 하시고, 복음으로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청종하는 삶을 살아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신자로서 주님을 날마다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알곡 신자가 되어 승리(29)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말씀으로 변화 받는 자들이 되어, 주님 오실 그 날에 알곡 신자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한다. 우리는 알곡 신자로 주님을 맞이하는 큰 기쁨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4:29)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은 올라가신 그대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추수 때가 되면 알곡 신자는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때에 하나님은 천사들을 통해 이러한 일들을 행하실 것이다.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으라.”(13:40-43)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함으로 이 믿음을 지키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 예수님을 따라 좁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나를 위해 중보하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선한 싸움을 잘 싸워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믿음 안에서 선한 싸움을 싸운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우리 모두가 말씀을 먹고 장성한 분량의 믿음에 이르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감격하며,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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