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 11. 13:28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시편 119:105-112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성경: 시편 119:105-112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19: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119: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119: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9: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9: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1. 가로등

보물섬의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가로등 지기였다. 그는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거리를 내려가면서 거리의 가로등에 차례로 불을 켜는 것을 보곤 했다. 그는 여기서 받은 교훈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가로등 지기가 지나간 후에는 항상 그 뒤에 등불이 남겨진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가로등지기처럼 자신이 지나온 길에 빛을 남기고 있을까? 모든 이에게 소망과 사랑의 빛을 밝혀 주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찬양을 하면서 말씀의 귀중한 가치를 강조한다. 자신에게 구원을 주며 자신의 인생길을 진리로 인도하는 빛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시인은 갈급해 한다. 그리고 그 말씀과 항상 함께하기를 간구한다. 저자가 미상인 본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 것이다. 독특하게도 시의 각 절마다 율법이라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본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극한 정성은 경이롭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결단이 나오고(1-8), 이어서 그 말씀을 즐거워함을 말한다(9-16). 시인은 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원하면서 하나님의 관용을 애원하고 있다(17-32).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해 주의 법도를 따를 것을 다짐하고 있으며(33-96),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바라보고 있다(97-136).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다시금 언급하고 있다(137-176).

 

3. 주의 말씀(105-10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 됨을 강조한다. 그래서 자신이 주의 율례를 끝까지 행하려고 자신의 마음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119:105-106) 여기서 맹세하고는 법정에서 증인이 진실만을 말할 것이라고 선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죄인에게 구원을 허락함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진리로 인도해 줌을 깨달아야 한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고백했을까? 잠언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6:23) 주의 말씀은 등불이요, 빛이요, 생명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던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요시아 왕이다. 요시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왕이었고, 요시아 왕 때에 백성들도 율례를 지키는 삶을 살았다.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왕하 23:3) 하나님은 이런 요시아 왕을 기뻐했을 것이다. 우리는 주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지도자, 리더가 많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 우선으로 여기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119:115)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기에 힘을 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고난가운데 기도(107-108)

주의 자녀들이 고난 가운데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큰 고난을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나기 위해 간청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119:107-108) 주께서 명하시면 모든 것이 해결됨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할 것이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22:14-18)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아뢰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들에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고통 가운데서 를 건져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심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34:19)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신의 삶 가운데 고난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가? 우리가 주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를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143:11) 우리는 찬송을 받으실 주님께서 자신의 삶에 관여하셔서 가르쳐 주실 것을 요청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119:12)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면 우둔한 자도 깨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119:130)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환경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악인들이 해하려고 함(109-110)

악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를 공격하기도 할까? 악인들은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생명이 위기 가운데 있었으나 주의 법을 잊지 않음을 고백한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119:109-110) 원수들은 남을 넘어지게 하려고 올무를 놓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원수들이 공격해 올지라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 하는 자들 중에는 교만한 자가 있는데 시편기자는 그들이 웅덩이를 팠다고 말한다.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119:85) 주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함정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힘쓴다. 그러나 우리는 원수들의 모략과 공격에 맞서서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말씀을 의지하여 깨어 기도함으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복음의 일군 바울에게도 큰 고난이 있었다. 그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주의 일을 위해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한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바울은 옥에 갇히기도 했었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죽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주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면서도 주의 일을 잘 감당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고후 11:23) 우리는 충성된 주님의 일군으로서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좁은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해야 한다. 심지가 곧은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뜻을 정하고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기도했던 다니엘, 그는 하나님께 중심이 바로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악인들이 헤하려고 할 때, 큰 고난이 올 때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의 증거들로 기업을 삼음(111)

우리는 무엇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즐거워 할 수 있다면 그는 어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자일 것이다. 시편기자는 주의 증거들을 자신의 기업으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119:11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마음이 즐거워 했다. 다윗은 여호와의 교훈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19:8) 우리가 주의 계명을 최고로 사랑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119:127) 주의 구원을 사모하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119:174)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중심에 두고, 주의 말씀으로 인해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

시편 기자는 본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본장은 율법주의의 우수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됨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진리가 되므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할 것이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 가운데도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주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하여 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죄 용서함 받고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영원히 주의 율례들을 행함(112)

우리는 무엇을 위해 결단하고 기도해야 할까? 우리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119:112) 시편 기자는 악한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해달라고 이렇게 기도한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141:4) 우리는 예수님만을 최고로 사랑하는 자들로서,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 붙잡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근신하며, 주의 은혜를 바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 두어,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 5. 11:21

어려운 환경 속에서의 기도, 시편 57:1-5

말씀: 어려운 환경 속에서의 기도

성경: 시편 57:1-5 / 사울을 피해 굴에 있는 다윗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57: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57: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57: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7: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1. 문둥병

매리 리드라는 인도의 한 선교사가 있었다. 그녀는 문둥병 환자들에 대해 도울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병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후 의사로부터 그녀 역시 문둥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그녀는 절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제까지 그녀는 문둥병 환자들로 인해 마음 아파했으나 앞으로는 그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곧 그녀는 인도로 되돌아가 동일한 환자로서 그들과 함께 일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건강과 희망을 주는 귀한 일을 감당했다. ‘는 어떠한 형편 가운데 놓여있는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날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원의 주

시인은 원수에게 쫓겨 숨어 있는 상황 속에서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한다고 고백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널리 전파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과 찬양은 구원받은 모든 자의 행할 바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므로 그분의 긍휼을 체험했다. 그러므로 위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피신하였다(1). 왜냐하면 자기가 의지하고 부르짖는 하나님의 높으신 사실에 안전을 느꼈기 때문이다(2). 하나님의 구원은 불쌍한 자를 돌보시는 자비와 그 약속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진실성으로 성립된다(3). 그러므로 위험한 원수들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4), 하나님을 높이기 원한다(5). 이 시인은 과거의 신앙 체험에 의하여 진정한 성도를 해하려는 원수들의 흉계가 필경 그들의 자멸을 가져오는 사실에 대하여 확신했다(6). 다윗은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7). 이런 안정된 상태에서 그 안전 보장에 대해 하나님께 힘을 다해 찬송을 드린다(8-11).

 

3. 주의 날개 그늘 아래(1)

우리는 위기의 상황가운데 놓였을 때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인 사울에게 악하게 대하지 않았다. 어느 날 다윗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 피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시를 통한 그의 삶이 잘 표현 되어 있다. 다윗은 큰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구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57:1) 다윗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했다. 심정적으로 긍휼히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 고난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소원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주께로 피하기를 원했는데, 여기서 피하되는 대적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자가 안전한 은신처로 피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평안을 누리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된다면 어디로 피해야 하는가? 우리는 위기의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었을 때 다른 이를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9:10) 우리 주님은 자신을 의지 하는 자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나는 누구를 의지하며 누구의 도움을 구하는 자가 될 것인가?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13:5) 오직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며,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2)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 하나님은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신 주가 되신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행하실 능력의 주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이루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윗은 어려움 가운데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는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57:2) 여기서 지존하신의 의미는 원어로 <@/yl][,: 엘리온>이다. 이는 세상 통치자나 그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뛰어나며 온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칭호이다.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신들보다도 뛰어나며 우주를 다스리는 유일한 신이 되신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2-3) 우리는 모든 신위에 뛰어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처한 상황이 위기처럼 느껴지는가? 그럴 때일수록 주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바울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루시는 주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늘 주의 일에 힘쓰고,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구원(3)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에서 건지는 분이신가?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사랑으로 원수를 바라본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원수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원수를 헤하려 한다. 다윗은 자신을 헤하려는 사울의 무리들의 비방에서 건짐 받기를 하나님께 구했다. 우리도 하나님께 구한다면 원수의 비방에서 건짐 받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57:3) ‘삼키려는의 의미는 원어로 <#a'v;: 솨아프>이다. 이는 맹수가 먹이를 삼키는 모습을 뜻한다. 여기서는 다윗이 원수들에 의해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방의 의미는 거짓된 말과 조롱하는 말로 상대방을 해치고 인격을 모독하는 것을 뜻한다. 다윗은 거짓된 말과 조롱하는 말을 통한 모독의 말을 들으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 가운데 놓인 다윗은 인자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운다면 모든 것들이 해결 받게 됨을 믿었다. 다윗을 삼키려는 자가 많았다.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에서 다윗은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를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56:1-2) 우리는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어떠한 기도를 해야 할까? 다윗은 자신을 보호해 주실 주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61:7)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지실 능력 있는 분이 되신다. 인자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문제를 해결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4)

원수들은 무엇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들기도 할까?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혀일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언어의 구사는 어떤 이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이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고 원수들의 혀가 날카로운 칼 같다고 고백한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57:4) 여기서 불사르는 자는 원어로 <!yfih}l: 라타팀>이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깊은 증오로 인해 마음속에 미움이 불타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다윗을 해하려는 사울을 뜻한다. 그리고 날카로운 칼은 다윗을 해치려는 사울의 잔인함을 묘사한다. 사울의 무리는 다윗을 이토록 괴롭혔고 다윗의 마음에는 그들을 원수처럼 여기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혀를 통한 말은 한 사람의 믿음을 시험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3:6) 우리는 어떠한 혀를 가져야 할까? 솔로몬은 지혜로운 자의 혀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12:18)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지혜로운 자의 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원수들을 미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원수들로부터 건짐 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여 일어나 나의 영혼을 구원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17:12-13) 원수가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처럼 우리를 공격하고, 날카로운 칼과 같은 혀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지라도 주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가 그러한 환난과 시험을 잘 통과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신 주(5)

우리가 믿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다윗은 자신을 어려움 가운데서 건지실 주님께 이러한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57:5) 여기서 하늘 위에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대인들은 하늘이 세상을 다스리는 신의 거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이심을 하늘 위에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 놓였을 때 누구를 의지 할 것인가? 그리고 도움을 주실 능력의 주님을 신뢰한다면 어떻게 주님께 고백할 것인가? 우리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실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바라며, 부르짖는 자들을 반드시 도울 주님을 믿고 감사의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8.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아직도 주님을 마음에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와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좋으신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있음을 확신하고 감사했다. 우리 또한 예기치 못한 일로 큰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무엇을 확신해야 할까? 우리는 주의 날개로 암탉이나 새들이 자기 새끼를 보호하듯이 를 덮어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지키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 보호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깨닫지 못할 때는 어떻게 될까? 이 때 하나님은 잠시 날개를 걷고 그들에게 고통의 위험을 주기도 하신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 없이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기도 하신다. 우리는 주의 날개 아래 보호받고 있을 때 그 보호하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찬송하는 다윗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께 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시편 기자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신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113:4-6)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가 되신다. 우리가 평안함 가운데 거하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주님,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해결 하실 수 있는 주님께 부르짖어 응답받아 주를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30. 19:47

천국 가는 길, 누가복음 13:24-30

말씀: 천국 가는 길

성경: 누가복음 13:24-30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13: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13: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13: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13: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1. 신호등

한 기독교인이 길을 건너기 위해 교통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성경을 들고 있는 소녀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한 소녀가 신호등을 바라보며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 건너갈까? 지나가는 차들도 없는데!’ 이 말을 들은 다른 소녀는 빨간 불인데 교통질서를 위반하고 건너가는 것보다는 녹색 불이 될 때까지 이렇게 기다려야 돼. 우리가 성경을 들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니?’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천국 백성 된 자로서 날마다 주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원

어떤 사람이 구원에 대해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와 관련하여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에 대해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첫째, 성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둘째, 준비되지 못한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여기서 준비되지 못한 자란 주의 이름으로 일하였으되 악행을 즐겨 일삼던 자들이다. 셋째, 지금은 나중 된 자이지만 장차는 먼저 될 자도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도리를 잘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날마다 빛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두어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에 대해 질문하자, 실로암 망대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신다(1-5). 또 무화과나무 비유도 들려주신다(6-9). 안식일에 십팔 년 동안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 주시며(10-17), 하나님 나라에 관해 겨자씨 비유와 누룩비유를 말씀하셨다(18-20). 그리고 예루살렘 여행 중에 구원에 대한 질문에 답변해 주셨다(21-30). 어떤 바리새인들로부터 헤롯의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하는 음모를 전해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메시야 적 사역을 선포하시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애곡하신다(31-35).

 

3. 좁은 문으로(24)

천국은 정말로 있을까? 성경은 천국이 실제하고 있음을 말씀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는 자들은 천국에 갈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주님을 따라가는 순례자의 길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 걸어가는 길은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13:24) 여기서 좁은 문의 의미는 진리를 따르는 자가 당할 당연한 고난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우리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성령님께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면 충분히 주님의 제자로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음을 말씀하시며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7:13-14) 하지만 우리는 천국행 티켓을 반드시 얻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천국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제일 소중한 것인지 분별하고, 반드시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될 것을 다짐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을 소망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할까?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6:27)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복 받은 자들로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힘써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도 주님의 역사에 동참한 자로서 힘써 일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9)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닫힌 문(25-26)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는 천국의 문이 열려 있을 때 감사하며,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어 들이고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자녀라면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말씀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13:25-26) 지혜로운 자라면 천국백성으로 살기를 소망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주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중 예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자가 있을 수도 있는가?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노릇,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 중에서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7:21-22)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왼편에 있는 자들이 영영한 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된 곳에 들어가게 됨을 말씀하신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25:41)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그 분이 심판자가 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13:25)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음은 주님의 은혜이다. 육신의 생명이 붙어 있는 이때,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천국 문이 닫히기 전에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슬피 울며 이를 갈 자(27-28)

예수님은 주님을 잘못 따르던 자들에게 냉대하기도 하실까?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분께서 양과 염소를 가르는 때에는 심판의 주로서 정확한 판단을 하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악한 자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13:27-28) 여기서 행악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윤리적인 무당 행위를 가리키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행위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행악하는 자들은 천국 문 밖으로 쫓겨나서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우리는 행악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죽기까지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을 잘 따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과 무관한 삶을 살았던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사랑의 주님께서도 그 때에는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게 될 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25:12)

우리는 주님 앞에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거짓을 말하는 자도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5:6)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의 끝은 다르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1:6) 우리는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형으로 죽어가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행악 자는 예수님을 저주했지만, 다른 한 편의 행악 자는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자신을 생각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긍휼을 구했던 그 행악 자가 낙원에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2-43) 우리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지만 자신의 죄 때문에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들이 있다면, 사랑의 주님께 용서를 구하며 자비하신 주님께 엎드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천국 문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자가 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 씻음을 받고 주의 자녀로서 승리의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6. 잔치에 참여 할 자(29-30)

우리는 어디에 속할 것을 결단해야 하는가? 지금도 천국 문은 열려있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자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오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13:29-30) 예수님을 먼저 믿은 자들은 열심을 가지고 좁은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며, 뒤 늦게 믿은 자들이 있다면 더욱 열심히 주를 좇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주님의 날에 천사들은 사방으로부터 택한 자들을 모으게 될 것이다.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13:27)

예수님은 또 두 아들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21:28-31) 포도원에 가서 일할 것을 대답만 하고 불순종한 맏아들이 있었고, 가기 싫다고 대답한 후 회개하고 일하러 간 둘째 아들이 있었다. 이들 중 주님은 누구를 더 기뻐하셨을까? 주님은 회개를 하고서 일하러 간 둘째 아들을 더 기뻐하셨다. 우리는 주님께서 회개 후 순종하는 아들의 편이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는 천국백성 된 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1:23) 우리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주께 소망을 두고 충성된 일군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천국 가는 길을 선택하고, 지상 최대의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24. 09:43

예수 그리스도, 누가복음 1:26-33

말씀: 예수 그리스도

성경: 누가복음 1:26-33

1: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1: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1: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1: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1: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1: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1: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1: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1. 베드로가 쉬는 날

천국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아름다운 처소이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천국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 날은 베드로가 문을 지키지 않는, 비번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천국을 향해 오는 많은 무리가 있었다. 그들이 천국 문에 도착하면 체크를 하게 되어있는데, 매우 낯익은 노인이 그 앞에 다다랐다. 예수님은 그에게 이름을 물었다. 그러자 그 노인이 이렇게 답한다.󰡒저의 이름은 요셉입니다.󰡓예수님은 가슴이 설레었다.󰡒직업은?…󰡓󰡒목수인데?󰡓예수님은 더욱 흥분되었다. 또 이렇게 요셉에게 묻는다.󰡒아들이 하나 있죠? 그러자 요셉이 답한다.󰡒!…󰡓󰡒팔목과 무릎에 구멍이 뚫려있죠?!󰡓󰡒!?…󰡓예수님은 눈물을 글썽거리며 노인에게 다가갔다.󰡒아버지!, 아버지!…󰡓그러자 노인은 의아해 했다. 그리고 어리둥절해 하며 잠시 고개를 꺄우뚱하더니 이렇게 답한다. “피노키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모두가 천국을 가는 귀한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탄생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손길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의 찬송이 울려 나오게 했다. 메시야의 탄생을 예고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때 감사와 감격의 소리가 어우러지고 있다. 인생 최고의 즐거움은 무엇일까? 바로 구원자를 찬송하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바라보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의 발걸음이 복된 이유는 이 소식을 듣는 자들에게 구원의 복이 임하게 되기 때문이다. 누가는 이 아름답고 복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이 복음을 잘 전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누가는 자기의 복음서의 성격을 간단히 규명한다(1-4). 제사장 사가랴가 성소에서 분향을 드릴 때, 천사가 나타나서 세례 요한의 탄생을 예고했고, 부인 엘리사벳이 아이를 수태한다(5-23). 천사 가브리엘이 나사렛에 살고 있는 처녀 마리아에게 메시야 수태를 알려준다. 그리고 마리아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 처녀였지만 천사의 예언을 믿는다(24-38). 얼마 후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문안했을 때, 둘 다 성령이 충만했고 마리아는 메시야에 대한 유명한 찬가를 불렀다(39-56). 엘리사벳이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요한이라 하였으며, 요한의 부친 사가랴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메시야와 세례 요한의 사역을 찬양한다(57-80).

 

3. 가브리엘의 방문(26-28)

천사 가브리엘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특별한 소식을 전하기도 하실까? 하나님은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이 땅 가운데 예수 탄생의 소식을 전하신다. 가브리엘은 갈릴리 나사렛으로 가서 요셉과 마리아에게 소식을 전한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1:26) 갈릴리는 Galilee(lyliG:, Galilee)로 팔레스틴의 가장 북쪽에 있는 지방이다. 히브리어로는 고리’, ‘주변’, ‘지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나사렛은 Nazreth(Nazarav, Nazarevq, Nazarevt, Nazreth)로 히브리어(nasar)에서 파생한 말인데, 감시라는 뜻이다. 갈릴리의 성읍인데, 예수님께서 자란 곳이다(1:9, 4:16). 또 예수의 양친 요셉과 마리아의 거주지이기도 하다(2:23, 1:28, 2:4, 39, 41). 구약, 외전, 요세푸스의 역사에도 나오지 않는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성읍이었다(1:45, 46).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려고 했다(4:28-31, 4:23, 13:54-58, 6:1-6), 그러나 그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곳 출신이기 때문에 나사렛 예수’(10:38)라고도 불렸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장성하여 사역을 하실 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하고 설교하시며 성령을 받을 것을 말씀하셨다. 그 때 무리 중 어떤 이들은 가르치시는 갈릴리에서 나신 이를 보고 선지자,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라 했는데, 각자의 의견을 달리하며 쟁론했다. “혹은 그리스도라 하며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가 어찌 갈릴리에서 나오겠느냐.”(7:41)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시는 분이 누구신지 잘 알지 못했지만, 이렇게 설교하셨던 분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갈릴리에서 태어난 분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복된 소식을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전하셨다.

 

마리아에게 이르기를

천사는 누구를 찾아왔는가? 가브리엘 천사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찾아왔다.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1:27) 그들은 아직 결혼은 하지 않고 약혼만 한 관계였다. 그리고 마리아는 약혼만 했으므로 아직 처녀였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7:14) 하나님은 처녀가 아들을 낳을 것에 대해 계획해 놓으셨다. 그리고 이렇게 예언된 내용은 다시 한 번 천사를 통해 요셉과 마리아에게 전달이 된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18)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요셉과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음을 확실히 믿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평안 할 지어다 문안

가브리엘 천사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평안을 빌며 문안한다.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 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1:28)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이 분명하다. 가브리엘 천사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함을 전달한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무엇을 빌어주시는가? 구약 성경에 보면 한 천사는 기드온에게도 나타났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기드온과 함께 하심을 말한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6:12)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부어진다면 우리는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라도 평안을 빌어주시며, 주께서 함께 하며 역사하고 계심을 알게 하신다. 늘 하나님의 보호와 간섭하심 가운데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놀라는 마리아(29-31)

마리아가 놀람

우리가 천사의 소식을 듣게 된다면 어떠한 반응을 보이게 될까?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다.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1:29) 천사가 평안을 빌어주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에 마리아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했을 때 여인들은 무덤으로 달려갔었다. 그때도 천사는 여인들 앞에 나타나 그들을 놀라게 했다. “무덤에 들어가서 흰 옷을 입은 한 청년이 우편에 앉은 것을 보고 놀라매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16:5-6) 막달라 마리아,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는 안식 후 첫 날 일찍 무덤으로 갔었고 그들은 천사를 보고 놀라고 말았다. 어느 누구라도 천사를 보면 놀랄 것인데, 그 후에 천사가 전하는 특별한 소식까지 듣게 된다면 더욱 놀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리아 역시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했다.

 

무서워 말라 하는 천사

천사는 놀란 마리아에게 어떻게 반응했을까? 천사는 놀란 마리아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말한다.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1:30) 천사는 예수님의 무덤에서 주님을 찾는 여자들에게도 무서워 말라 말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28:5)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행하심 앞에 놀랄 수밖에 없으나, 하나님은 좋은 것들로 채워주시는 분임을 깨닫고 주 안에서 평안을 누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며 그 분의 역사를 진행해 나가셨다.

 

예수를 낳을 것이라

가브리엘 천사가 그들에게 전달한 내용은 무엇일까? 그 내용은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은 예수라 하라는 내용이었다.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1:31)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니, 이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 분명하다. 이 소식을 들은 마리아와 요셉은 기절할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다. 마태복음은 예수 탄생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1:23)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하는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 된다. 임마누엘은 Immanuel(laeWnM;[i, 'Emmanouhvl, Immanuel)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심이라는 뜻이다.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서 주실 징조로써 처녀가 낳는다고 예언한 아들의 이름이다(7:14, 1:23, 8:8).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하니라.”(1:21)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 그리스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이름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32-33)

예수님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다. 영원한 왕 예수, 평강의 왕 예수, 구원의 주님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1:32-33) 어느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그 분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인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께 권한을 받은 예수님, 그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 손에 주셨으니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3:35-36) 천사를 통해 요셉과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할 것을 알려주시고, 아들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그 사랑에 감격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14. 17:25

주님처럼 사랑으로, 골로새서 3:12-17

말씀: 주님처럼 사랑으로

성경: 골로새서 3:12-17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3:15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1. 건설

내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라고 했던 나풀레옹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그는 비통한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제국을 건설했다. 그러나 그것은 힘을 기초로 해서 천재의 창조를 쌓았던 것이므로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의 역사는 어떠한가? 우리 예수님은 그의 제국을 사랑 위에 건설했다. 그리고 지금도 수천만의 사람들이 그의 이름으로 죽으려 한다. 예수님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며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되신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날마다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 성도가 추구해야 할 것

바울은 주 안에서 믿는 자들이 추구하며 행해야 할 삶의 양태와 목적에 대해 교훈한다. 그것은 육체를 좇는 땅의 것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그 법은 그리스도의 새 계명, 즉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이러한 사랑 실천의 실제적인 면을 들어 가정과 사회 속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해 말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서 해방된 자임을 강조하는 교리적인 가르침이 본장에서부터는 윤리적인 권면과 지시로 분위기가 바뀐다. 본장에 나타나는 옛 사람과 새 사람의 비유는 로마서의 첫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의 비유와(5:12-21) 밀접히 연관된다.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의 변화는 언제 일어날까? 이는 불순종하고 무기력한 첫째 아담의 존재 방식을 버리고 마지막 아담인 그리스도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힘입을 때 일어난다. 이러한 변화는 인간이 최초에 부여받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주장의 내용은 세 부분으로 나된다. 첫째 단락에서 바울은 사람의 새 목표가 무엇이며,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하여 역설하고 있다(1-11) 둘째 단락에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새로운 성품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12-17), 셋째 단락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각 사람이 자신의 위치에서 가져야 할 행동 원리를 제시하고 있다(18-25). 

 

3. 옷 입고;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12)

우리는 믿는 자로서 무엇으로 옷 입은 삶을 살아야 할까?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3:12) 바울은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로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을 옷 입으라고 그들에게 말한다. 여기서 택하사의 의미는 원어로 <ejklektoi;: 에클렉토이>이다. 이는 제비를 뽑는 것과 같은 우연한 것이 아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의지에 따라 뽑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로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창세전부터 선택 받고 주님과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자가 바로 주님을 영접하고 살아가는 임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바울은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믿는 자들을 정했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8:29)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자로서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 입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불만이 있거든; 용납, 용서(13)

믿는 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어려운 일이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바울은 불만이 있을 때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할 것을 말한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3:13) 우리는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내 죄가 깨끗해졌음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를 용서할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셨더라.”(11:25) 우리는 주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되,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자들로서 주님 앞에 아뢰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용서하되, 예수님 앞에서 서로 용서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무슨 일이든지 뉘게 용서하면 나도 그리하고 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용서한 그것은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 앞에서 한 것이니.”(고후 2:10) 서로 용서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사랑; 온전하게 매는 띠(14)

믿는 자들은 또한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 바울은 용납과 용서를 하는 삶을 살아가되, 그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권면한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3:14) 누군가를 향한 용납과 용서는 결코 쉽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모든 좋은 것들을 행하되 사랑이 기초가 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의가 나타날 수도 있고, 완전한 용서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의 아가페의 사랑으로 상대를 사랑한다면 어떠한 문제라도 문제가 아닌 것이 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 1:7) 경건한 삶, 형제가 서로 사랑하는 삶, 그 위에 사랑을 더하여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랑으로 허다한 죄를 덮어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우리는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하여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의 허물은 주의 사랑으로 덮어주어야 한다. 온전하게 매는 띠인 사랑으로 서로를 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장: 그리스도의 평강(15)

믿는 자들은 무엇이 자신을 주장하게 해야 할까? 바울은 예수님의 평강이 마음을 주장하게 할 것을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3:15) 여기서 평강은 상황적인 조건에 관계없이 항상 편안하고 자족하는 영적 상태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은 우리의 환경과 상황과 무관하게 주어지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능력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수님의 평강이 내 삶에 늘 충만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름 받았음을 기억하고,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우리는 주님이 주신 평강을 받아 누리며, 두려운 마음을 밖으로 던져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또 이렇게 권면한다.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20) 우리 모두가 주님이 주신 평강 안에서 두려움을 멀리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풍성한 말씀 가운데; 권면, , 찬송, 신령한 노래, 감사의 마음(16)

우리의 삶 가운데 무엇이 풍성해야 할까? 세상의 지식이나 자신의 경험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바람직한 삶이 아니다. 돈과 명예와 부귀는 우리에게 만족함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최후에는 이러한 것들이 인간의 삶을 망가트리게 됨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바울은 삶 가운데 풍성해야 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권면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3:16) 우리의 삶에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가득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와 찬양, 신령한 노래, 감사가 넘쳐나서 날마다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한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47:6-7)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고, 삶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 늘 왕이신 주님을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17)

우리는 주 안에서 좋은 것들을 행하되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해야 한다.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3:17) 말과 일에 있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있던 에게 빛으로 찾아 오셔서 구원하신 주님을 높여드려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주의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임을 기억하며 승리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 어떠한 형편에서도 깊고 넓고 크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에게 행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8. 17:36

주를 확실히 믿는 믿음, 마태복음 14:25-33

말씀: 주를 확실히 믿는 믿음

성경: 마태복음 14:25-33

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14:26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14:27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14:28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14:31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14:32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1. 루터의 기도

종교 개혁자 루터는 때때로 저녁이 되면 창가로 다가가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이 세상이 저의 것입니까? 하나님의 것입니까? 이 교회가 당신의 것입니까? 저의 것입니까? 만일 당신의 세상이고 당신의 교회라면 그것들을 돌보십시오! 저는 잠을 자러 갑니다. 하나님 부탁합니다!’ 우리 또한 자신의 인생의 짐을 모두 혼자서 지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모든 짐을 져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자. 자신의 짐을 모두 주님께 맡겨 드리고 승리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분봉 왕 헤롯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죽은 세례 요한이 살아났다고 두려워한다. 헤롯이 세례 요한을 헤로디아의 음모로 인해 죽였기 때문이다(1-12).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빈들로 가시니 많은 무리가 뒤쫓았다. 예수님께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말씀으로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쳐 주셨다. 날이 저물어 식사시간이 되었으나 먹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셨다(13-21). 그 후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태워 보내셨다. 배가 풍랑으로 흔들릴 때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셨다(22-33). 게네사렛 땅에 이르자 많은 사람들이 병자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서 치유함을 받았다(34-36).

 

3. 메시야 예수님

본장은 세례 요한이 헤롯의 잘못을 지적하여 옥에 갇혔다가 헤로디아의 음모에 의해 죽음을 당한 사건을 기록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프게 우셨으나 절망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그의 인류 구속 사역을 계속적으로 해 나가시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동시에 오병이어의 기적 및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어가다 빠진 사건을 언급한다.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심으로써 자신이 인류를 모든 부족함과 죄의 고통에서부터 구할 수 있는 메시야임을 나타내 보이신다. 그리고 그 후에 홀로 기도하시기 위해 제자들만 먼저 바다 건너편으로 가게 하신다. 기도를 마치신 뒤 예수님께서는 배로 떠난 제자들에게 가기 위해 바다 위를 걷는다. 그리고 바다 위로 걸어오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도 믿음으로 물위를 걷게 된다.

 

4. 예수님(25-27)

물 위를 걷는 예수님

는 어떠한 주님을 만났고 그분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는가? 예수님은 새벽에 혼돈 가운데 있는 제자들에게 찾아 오셨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14:25) 밤 사경은 언제인가? 구약에 있어서는 야간을 4시간 단위의 경으로 나누고, 초경(2:19), 이경(7:19), 새벽(14:24, 삼상 11:11)이라 불렀다. 이것은 보초로 서는 시간을 정하는 군사적인 것이었다. 신약시대에는 야간을 12분하는 방법(23:23) 외에, 민간적인 구분방식인 경(3시간 단위)이 도입되었다(13:35). 그것은 저물 때, 밤중, 닭 울 때, 새벽의 넷이었다. 누가복음 12:38에 나오는 이경은 밤중, 삼경은 닭 울 때, 마태복음 14:25의 상황은 새벽으로서 사경이다. 본문의 앞부분의 상황은 이렇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14:22-24) 예수님은 제자들을 먼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혼자 산에서 기도하셨고, 제자들은 거센 바람으로 인해 배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의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6:48)

 

무서워 놀라는 제자들

제자들은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14:26) 제자들은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줄로 알았다. 때때로 초월적 능력을 보이셨던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걷는 것은 신기한 일이 아니다. 예수님은 물 위를 걸을 뿐만 아니라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하신 분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찾고 있는 여인들에게 흰 옷 입은 천사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24:5) 예수님은 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구원의 주님이 되신다. 또한 두려움에 떨고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강을 주시고, 모세의 율법을 말씀하시며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셨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24:45) 물 위를 걸은 예수님은 초월적 능력도 행하시고 제자들의 마음의 문도 열어서 성경을 깨닫게 해주신 구원의 주님이 되신다.

 

두려워 말라 명하시는 주

예수님은 놀란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14:27) 예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평안을 빌어주셨다. 주님은 를 돕는 자이시며 하나님 자녀의 편이 되어주심을 믿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41:14)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을 믿는 믿음을 굳건히 해야 한다. 부활의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 자신을 확증시켜 주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24:38-39) 우리는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결코 의심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아직도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이 죄인 됨을 알고 십자가 앞에 엎드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아 구원의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 한다. 그리하여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천국에 거할 곳이 많음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 예수님을 믿어 천국을 침노하는 지혜로운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곳곳으로 흩어지며 자신이 혼자 있게 될 것을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 초월적인 능력을 보이시며 제자들에게 찾아오셨고 평안을 빌어주시는 좋으신 주님을 붙잡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베드로(28-30)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하시기를 요청하는 베드로(믿음의 확신&실제)

우리는 주님 앞에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주를 따라가고 있는가? 열정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께 물 위를 걷는 분이 주님이 분명하다면 자신을 물 위로 오라 하실 것을 말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14:28) 베드로는 주님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사모했던 듯하다. 그는 믿음이 있는 자로서 주님께 자신을 물 위로 걷게 해 줄 것을 요청했다. 주를 믿는 우리에게는 열정과 믿음이 필요하다. 주를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세상 가운데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어느 날 자신들이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는지에 대해 묻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믿음의 힘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17:20) 우리는 불가능이 없으신 예수님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그리고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실제적인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베드로는 주를 향한 믿음의 확신이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결코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말한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주님을 부인하게 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베드로가 가로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26:33-35) 우리는 큰 믿음을 소유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주를 향한 큰 믿음조차 주님께서 허락하셨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작아지지 않기를 위해 성령 안에서 늘 깨어있어 기도해야 한다.

 

물 위를 걷는 베드로

예수님은 베드로의 말에 오라하며 답하신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물 위로 걸으며 주님께 나아간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14:29)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베드로는 물 위를 걷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었다. 우리 안에 믿음이 있다면 불가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9:23) 우리는 겨자씨 한 알처럼 작게 보이는 믿음일지라도 확실한 믿음이라면 큰 역사가 일어날 수 밖에 없음을 믿어야 한다. “주께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17:6) 주님이 함께 하시면 어떠한 일이라도 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주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함을 선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물 위로 빠져가는 베드로

주님의 말씀하심에 따라 베드로는 물 위를 걸었다. 그러나 베드로가 바람을 쳐다보는 순간 그는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물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베드로는 간절하게 주님께 도움을 요청한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14:30) 여기서 바람은 베드로에게 가해진 신앙적인 시련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이 겪고 있는 시련 앞에서 강인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처한 환경이 삶의 큰 위기라고 느껴질 때 주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138:7) 주님은 우리를 원수의 공격에서 보호해 주시는 분이시다. 주님이 붙잡아 주신다면 우리는 다시 일어나게 됨을 믿어야 한다.

 

손을 내밀어 건지시는 주

물에 빠져가는 베드로에게 주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주신다. 그리고 의심하지 말 것을 당부하신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14:31) 우리는 주와 동행하면서 의심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주님 앞에 두 마음을 품지 말 것을 말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1:6-8) 우리는 자신의 문제를 주님 앞에 아뢰어야 한다. 주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의심하지 않고 간구한다면 주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 앞에 겸손한 자세로 순종하고, 문제 앞에 결코 낙심하지 않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간구하여 응답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살아서 역사 하시는 주(32-33)

우리 주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주신 주님은 제자들이 타고 있는 배에 오르신다. 그리고 주님이 배에 오르시자 바람은 잠잠케 되었다.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14:32)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모든 것이 잠잠케 됨을 깨달아야 한다. 바람을 잔잔케 하신 주님 앞에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한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14:33) 여기서 절하며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능력 앞에 완전히 굴복 당했음을 의미한다. 예수님의 능력 앞에 모든 것들은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을 어떻게 고백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했던 베드로는 주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 살아계신 주님 앞에 마음의 중심을 다하여 참된 고백을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좋으신 주님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계신 주님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1. 14:32

신실하신 주를 갈망, 시편 91:1-11

말씀: 신실하신 주를 갈망

성경: 시편 91:1-11 / 모세의 시

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91: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91: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91: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91: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91: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91: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if !supportEmptyParas]--> <!--[endif]-->

1. 골프 챔피언 에드 파골

그는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긴 골프 챔피언이다. 그는 10살 때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그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왼쪽 팔이 20cm나 짧아졌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중에도 앞으로 골프 챔피언이 되겠다는 소망과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그렇게 짧은 팔을 가지고 어떻게 골프를 칠 수 있겠소?’라고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때 그는 할 수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날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더욱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언제나 주안에서 용기를 잃지 말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2. 하나님의 인도하심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의지할 분은 누구신가? 시인은 인간의 의뢰할 존재는 하나님뿐임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여 찾는 자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뢰는 기도를 통해 나타나며,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시어 환난 중에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본시는 험한 인생의 여정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최고이자, 최후의 요새임을 고백하고 있는 시로서 시 46편과 유사한 내용구조를 지니고 있다. 감정의 심한 굴곡을 담고 있는 비탄 시와는 다르게 초지일관 하나님의 변함없는 보호와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있는 신앙 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시인의 신뢰는 하나님에 관한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흔히 발견되는 일시적이고 심리적인 믿음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시인은 이스라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상기하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 보호와 구원과 영화가 베풀어질 것임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누리는 안전에 대해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본시는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선언적 고백을 하는 전반부와(1-2), 해명적 고백을 하는 중반부(3-13),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적 응답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14-16)로 구분할 수 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3.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1)

의 피난처가 되는 분은 누구신가?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자라고 고백한다. 이는 세상의 모든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늘 아래로 피할 때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도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거해야 하는가?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91:1) 여기서 지존자는 원어로 <@/yl][,:엘레온>인데 가장 높은 자라는 뜻이다. 이는 세상 나라의 통치자들이나 그들이 섬기는 신들과 비교해 탁월하시고 홀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우리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어디인가? 은밀한 곳은 비밀 장소를 의미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곳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지존자 하나님을 나타낸다. 다음으로 거하리로다의 의미는 새끼가 어미의 품속에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되어 평안한 쉼을 얻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계신 곳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주님을 다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호흡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주님께 감사를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지식으로 알고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면 주께서 그 안에 거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5-16) 하나님께서 죄인인 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속에 모셔 들이고 주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의 자녀로서 피난처 되신 주님 품에 거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4. 피난처요 요새이신 하나님(2-3)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 요새, 의뢰할 분임을 고백한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91:2)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다윗도 반석, 요새, 건지시는 자,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신 하나님을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18:2) 본문에서 또한 시인은 사냥꾼의 올무와 전염병에서 건지실 주님을 고백한다.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91:3) ‘사냥꾼의 올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는 들짐승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을 일컬으며 성경에서는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한 간악한 계교를 가리킨다. 우리는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서 실수하고 심지어 타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그 분께 기도하며 깨어 있게 된다면 사냥꾼의 올무에 빠지지 않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타락할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벌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후 재앙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죄의 용서함을 구했다.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16:46-48) 타락한 인간들을 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로서 피난처 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5. 주의 진실함(4)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우리 하나님은 진실함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실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91:4) 여기서 깃으로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끼를 품는 어미 새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의 깃이 우리를 덮을 때에 우리는 안전하게 되며, 이렇게 보호하시는 그 분의 진실함은 최고의 방패임이 분명하다. 어느 날 아브람은 환상 중에 하나님을 뵈옵는다. 아브람은 롯을 구출하기 위한 전쟁의 승리 후에 정신적인 낙심 상태에 있었고 영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었다. 그 원인은 첫째,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돌라오멜과 그의 연합군들의 복수전이나 가나안 열국과의 동맹전의 위험을 인식한 데 있었다. 두 번째, 가나안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셨기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가 된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셨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셨던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주의 백성들에게 신실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6:17-18)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분이시다.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나 주님의 말이 없어지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13:31)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으심을 기억하고 진실하신 하나님께 피하여 안전한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6. 공포와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음(5-6)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가? 시인은 많은 사람이 엎드러지더라도 하나님께 피한 자에게는 재앙이 가까이 못하며 악인의 보응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이미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모든 장자를 죽이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고 그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임한 재앙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을 행하실 때에도 반복되어 질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주 안에 있는 자들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주 안에서 이러한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음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91:5) ‘낮에 흐르는 살의 의미는 한낮에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빛을 뜻한다. 이는 팔레스타인 같은 사막 지대에서 일사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것은 인간에게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주께서 보호하실 때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91:6) 개역한글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파멸은 원어로 <bf,q,:케테브>이다. 이는 완전히 휩쓸어 가는 것이 란 뜻으로 전쟁이나 기근같이 삶의 터전을 완전히 폐허로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주 안에 거할 때 전쟁과 기근에서도 우리는 두렵지 않게 된다. 다윗은 원수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 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27:1-3) 하나님께서 늘 생활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어떠한 두려움도 물리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7. 악인들의 멸망(7-8)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를 해할 자는 아무도 없다. 본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91:7) 여기서 만 명이의 의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 재앙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할 때 어느 재앙도 를 멸망시키지 못함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의 삶에 관여하셔서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보응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91:8) ‘보리로다는 어떤 현상이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확언하는 표현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며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반드시 하나님 편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악을 싫어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7:23) 죄악이 관영한 인류를 물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어 주님만을 바라고 그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37:34) 주님 앞에서 악인은 패하게 됨을 기억하며 주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8. 피난처이신 주님(9-11)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분은 누구신가? 그 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본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91:9) ‘거처는 어린아이가 완전한 평안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되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인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품을 의미한다. 우리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품속에서 안전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91:10-11)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재앙도 없고 천사들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갈 길을 보호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본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보호하여 주심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고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참된 지식과 사랑을 통해 올려지는 기도를 흠향하시고 위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시인이 예측할 수 없는 위태로운 삶의 상황에서 유일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소망했음을 기억하고 이처럼 황금만능주의, 향락주의, 음란한 문화 속에서도 결코 낙망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붙잡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우리가 절망처럼 느껴지는 세상살이에서도 주안에서 희망을 가진다면 반드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승리하게 될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6) 신실하신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지도하실 주님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1. 26. 14:11

빛 되신 주님을 따라, 누가복음 11:33-36

말씀: 빛 되신 주님을 따라

성경: 누가복음 11:33-36

11:33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11:34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

11:36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

 

1. 각주구검

<여씨춘추> 찰금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강을 건너다 그만 들고 있던 칼을 놓치게 되었다. 그는 얼른 칼을 빠뜨린 뱃전에다 표시를 해 두고 내가 칼을 빠뜨린 곳은 여기다.’라고 하며 자못 영리한 듯이 중얼거렸다. 이윽고 배가 언덕에 와 닿자 그는 아까 표시를 해 놓은 그 자리에서 물로 뛰어들었다. 배는 이미 멀리 와 있는데도 그는 그 자리에 그대로 칼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는 눈앞에 보이는 하나만을 알 뿐, 그 밖의 것은 전혀 생각지 않는 처사로 바로 여기에서 각주구검이란 고사성어가 유래되었다. 우리는 어리석은 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주님의 제자로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세상에서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제자들의 물음

제자들은 예수님께 기도문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다(1-4). 이어서 벗이 강청하는 비유를 들어 기도의 자세를 가르쳐 주신다(5-13). 예수님은 벙어리 귀신을 쫓아내시는 것을 본 사람들 중에서 예수님을 비난하여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집안끼리 분쟁하면 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데 어떻게 귀신의 왕이 귀신을 내쫓을 수가 있겠느냐고 반문하신다(14-26). 무리가 모였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악한 세대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 보여 줄 수가 없다고 말씀하신다(27-32). 그리고 등불 비유도 말씀하신다(33-36). 한 바리새인이 식사 초청을 했는데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이상히 여기자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이 깨끗한 것이 더욱 중요함을 가르쳐 주신다(37-44). 그리고 율법사가 이에 대하여 이의제기를 하자 예수님께서는 율법사들이 오히려 사람들의 짐을 더 무겁게 한다고 책망하신다(45-54).

 

3. 의로운 사람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과시하려고 여러 가지 외식을 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과 행동을 통해서 이웃들에게 인정을 받는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그 마음속에서 빛이 비추어 다른 사람에게 비추이는 등불같이 우리는 선한 사람이 되어 그의 선함으로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주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선이요, 의인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바른 삶의 모습이다. 이러한 온전한 모습을 갖추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한다.

 

4. 등경 위에 등불(33)

등불은 어디에 두어야 좋은 것일까? 아마도 등불의 목적에 맞게 밝게 비추기 위해 높은 것에 두는 것이 옳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에나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11:33)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등불을 켜서 숨겨 두거나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방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그 빛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11:33) 그리스도인은 빛 되신 예수님을 따라 세상 가운데서 빛으로 서 있어야 한다. 우리의 눈이 먼저 열려서 주님을 만나고 주와 동행하는 복이 있기를 소망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119:18)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넘쳐나기를 기도한다. 예수님은 등불은 모든 사람에게 비춰야 함을 말씀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5:15)

우리는 어떻게 세상 가운데 주님의 빛을 드러낼 수 있을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5-16) 빛의 자녀로서 우리 가운데 성령의 나타나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모든 이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들이 있기를 소망한다. 등불이 오면 모든 것이 들어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4:21-22)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4:22)

우리는 예수님께서 빛으로 오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12:46) 예수님은 세상에 빛으로 오셨는데 빛으로 오신 주를 믿는 자는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된다. 모든 이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예수 십자가의 흘린 보혈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려야 한다. 그리하여 빛의 자녀가 되어 어두움 가운데 거하지 않는 자로서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흠 없는 자녀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빛들로 나타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도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나로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2:15-16)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 모두가 빛의 자녀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몸의 등불은 눈(34)

몸의 등불은 어디일까? 우리는 눈을 통해 사물을 보게 되는데 눈의 소중함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은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음을 말씀하신다. “네 몸의 등불은 눈이라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만일 나쁘면 네 몸도 어두우리라.”(11:34)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눈이 열려야 한다. 우리의 생각과 판단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 하나님 편에서는 그릇된 것일 수도 있다. 솔로몬은 길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16:25) 악한 눈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 잠언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28:22) 눈이 가리워지면 깨닫지 못하게 된다.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44:18)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육신의 것들 멀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육신의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7:22) 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가? 어느 날 예수님은 사울에게 나타나셨다. 그리고 사울에게 사명을 주시며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의 눈을 뜨게 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26:18)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거룩한 분이시다. 우리는 그 분의 거룩함을 따라 진실함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육체의 지혜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을 말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써 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의 증거 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또한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주기를 소망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17) 우리가 성령님께 순종하고 경건의 삶을 살아가기를 힘쓸 때 우리의 눈이 열리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이다.

 

6. 우리 속의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35)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빛으로서 살아가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속의 빛은 어둡지 않은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11:35)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밝은 빛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지혜가 필요하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한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고전 3:18-20) 우리가 하나님께 속일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세상의 지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여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의 지혜와 위로부터 난 지혜의 차이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지니라.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3:13-17) 세상적 지혜는 시기와 다툼과 자랑의 열매를 낳는다. 우리는 하늘의 지혜로 살아가서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가 가득한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을 사랑하였으므로 주의 말씀이 발의 등과 길의 빛이라고 고백한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119:97-105)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여 하늘의 지혜를 얻고 빛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복합니다.

 

7. 성령님의 인도(36)

등불의 빛이 비출 때

우리의 몸은 얼마나 밝은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온 몸이 밝다면 감사한 일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빛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하시니라.”(11:36) 우리는 등불의 빛이 밝아 온 몸이 밝게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한다. 우리는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지혜 있는 자는 듣고 학식이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모략을 얻을 것이라.”(1:5) 우리는 주 앞에서 얼마나 성숙한 자로 서 있는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5:14)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러 하나님의 일에 잘 받들어 나가야 한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빛 되신 주님을 따라 세상 가운데서 밝은 빛이 되어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1. 19. 11:17

주를 노래하고 감사하는 삶, 시편 65:8-13

말씀: 주를 노래하고 감사하는 삶

성경: 시편 65:8-13

65:8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65:9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65:10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65:11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65:12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65:13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1. 새로운 결단

모진 고통에 시달리던 한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견디다 못해 자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녀는 밤중에 뉴리버 강으로 향했다. 그녀가 구 병기창 근처에 다다랐을 때 찬송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그것은 존 웨슬리 목사가 인도하는 기도회에서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소리였다. 그녀는 순간 찬송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 자살하려던 마음을 버리고 새로운 결단을 내렸다. 죄에는 죽고 하나님 안에서는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처럼 찬송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뿐 아니라 자살하려던 여인을 구원의 길로 이끌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하나님과 동행할 때 우리의 삶에 찬양과 감사만 넘쳐나게 될 것이다.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주님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

본시는 다윗이 일생을 통해 수많은 고난을 겪은 후에 그 동안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내용이다. 저자는 개인적인 구원의 차원을 넘어 온 우주를 섭리하고 주관하시는 권능의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윗은 먼저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며,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도 용서해 주신다. 뿐만 아니라 감히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을 주의 뜰로 불러 주시고 무한한 축복으로 채워 주신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와 사랑 때문임을 고백한다(1-5). 한편, 저자는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는 근거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의 권능하심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만물을 창조하시고 자연계의 모든 현상을 주관하신다(6-7). 뿐만 아니라 사람이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시고 곡식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며 가축들을 살찌게 하신다(8-13). 그러므로 하나님을 향해 만물은 찬양과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3. 감사

우리가 언제나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 찬양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 해 3대 절기를 지키며 하나님 앞에 나아갔는데 그 중의 하나로 초막절을 들 수 있다. 너희 타작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거두어들인 후에 이레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16:13) 초막절은 Feast of Boosths []twOKSuh' gj(chag hassukkoth) []skhnophgia(skenopegia) []Feast of Boosths이다. 유월절(무교절)과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실절)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히브리인)3대 축절의 하나로, 최대의 축제(14:16, 18)이며 [수장절]이라고도 부른다(Feast of ingathering, 23:16, 34:22). 새 번역의 요 7:2에는 [장막절]로도 역하고 있다. 이 절기에 관한 규정은 레 23:34-43, 29:12-40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티쉬리월(양력 9-10)15(추분일에 가까운 만월)부터 1주간, 후에는 8일간으로 연장하여 지켜졌는데, 첫날과 끝 날에는 성회가 있었다. 가을의 추수로서 올리브, 포도, 무화과 등을 거두어들이고 이것을 감사하면서 해를 끝마치는 연말 추수의 감사제이고, 동시에 신년제이기도 했다. 주께서 정해 주신 바에 따라 절기를 지키는 동안은 밭에 초막을 세우고 그곳에 거한데서 초막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23:40-43). 이렇듯 원래는 농경력의 행사였는데, 후에 이스라엘이 경험한 광야의 고초와 유랑의 장막(천막)생활을 기념하기 위해 민족사적, 신앙적 해석이 가해져 절기 기간 중 야외에 나무 가지 등으로 임시초막을 만들어 거하는 행사가 되었다(8:14-17).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를 기억함과 이 세상이 임시적인 초막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표시였다. 회당에서는 전도서가 낭독되고, 성전에서는 성대한 희생제사가 연일 행해졌다. 또한 율법의 낭독 연간계획의 최종을 독파하는 말로서 중요시되어 [심하트 토--hr;wOT-tj'm]c(simchath- torah)](율법의 기쁨, Rejcicing of the Law)의 말로 불렸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성도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복과 생활을 증거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 사함의 은총을 받는 것과 땅의 소산을 먹는 일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 속에 이루어짐을 노래한다. 성도는 영육 간에 은총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이 외치고 노래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땅 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징조를 보고 두려워한다고 말한다. “땅 끝에 사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65:8) 땅 끝에 사는 자는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를 뜻한다. 그리고 여기서의 두려움은 창조주의 기이하고 오묘한 섭리에 대한 경외심을 의미한다. 자연의 질서와 현상은 무엇을 증거 할까? 이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증거 하는데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연 만물에 부여하신 질서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증거 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연을 통하여 인간에게 곡식을 주신다. 땅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그 땅에 물을 공급하시어 인간이 먹을 곡식이 생산되게 하신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 맞이하는 낮과 밤, 모든 것이 다 주님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인정하고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예비하셨으며.”(74:16) 우리는 이 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해로 낮을 주관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8) 우리는 를 창조하시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찬양

우리는 주님이 지으신 이 땅위에서 살아가며 무엇을 찬양할 수 있을까? 시인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농사에 복을 주시어 양식을 얻게 하심을 인하여 찬양한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께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적당한 환경을 조성하여 주시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열매를 거둘 수 없게 될 것이다. 인간들이 과학을 발전시켜 스스로의 지혜를 자랑하며 교만히 행하여도 하늘이 단비를 내려 주지 않으면 재앙을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땅의 소산을 먹는 자로서 하나님의 은택을 인하여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땅을 돌보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하게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그들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65:9) 돌보사의 원어는 <dq'P;: 파카드>이다. 이는 살펴보다라는 뜻으로 땅에서 되어지는 모든 일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좋은 것들로 베풀어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리시면 모든 것이 풍족하게 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가 그 누각에서 산에 물을 주시니 주의 행사의 결과가 땅에 풍족하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 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104:13-15) 주의 행하심으로 인해 의 삶속에서 찬양이 넘쳐나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63:1) 날마다 주의 행하심으로 인해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의 삶이 될 것을 믿고 선포해야 한다.

 

5. 비를 주시는 주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좋으신 하나님은 땅의 것들이 잘 자라도록 비를 공급하시는 분이시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65:10) 단비는 소나기를 뜻하는데 여기서는 곡식의 파종기나 추수 전에 내리는 적당한 비를 의미한다. 식물이 자랄 때 필요한 것 중 매우 중요한 것은 비이다. 우리는 주님이 적절한 때에 비를 내려 주시는 좋으신 분임을 믿어야 한다. 좋으신 주님께서 의 삶 가운데 은혜를 주셔서 복을 주실 것을 기대하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다윗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5:12) 우리는 말씀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되어 주께서 의롭다 여기실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6. 은택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택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풍성함이 주님의 은혜와 덕택임을 고백했다.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방울이 떨어지며.”(65:1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렇듯이 복을 내려 한 해를 장식하시니 당신 수레 지나는 데마다 기름이 철철 흐릅니다.”(65:11) 한 해는 매년마다 되풀이 되는 일을 말하는데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일상사를 의미한다. 매일 마다 하나님의 은택을 입어 살아가는 자들이 복 받은 자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그 분의 언약을 지킬 때 좋은 길로 인도하실 하나님을 기대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25:10)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을 때 반드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다윗은 또 하나님의 은혜로 기름방울이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다고 고백한다.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65:12) 하나님께서 베푸는 은혜는 놀랍고 크다. 세상 만물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없다. 다윗은 고백한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65:6) 의 삶 가운데서 권능으로 일하시는 주님, 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좋으신 주님을 높이는 자들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7.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

지금까지 의 삶을 되돌아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큰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은택은 식물을 생산하는 밭뿐 아니라 소나 양을 먹여 키우는 초장에도 임하여 목축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 주셨다. 초장에는 양 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다는 시인의 노래는 풍성함으로 인한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 한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풍성한 물질의 복은 영적 축복을 상징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주님을 즐거이 외치고 노래한다. 이는 성도의 찬송으로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불려 질 노래이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 크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언제나 주님을 노래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65:13)

우리는 지금까지도 많은 일을 행하신 주님, 앞으로 더 큰 일을 행하실 주님을 기대하며 기뻐해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주님 없이 살아왔던 삶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그리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자연 만물들도 주님 앞에서 즐거워하게 됨을 시편기자는 고백한다. “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바다와 거기 충만한 것은 외치며 밭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즐거워할지로다. 그리할 때에 삼림의 나무들이 여호와 앞에서 즐거이 노래하리니 저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려 임하실 것임이라. 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96:11-13)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능력을 자랑하며 교만히 행할지라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자임을 항상 고백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영혼의 구원과 일상생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인하여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한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은혜 속에서 주를 노래하고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1. 11. 16:39

깨어있어 은혜로운 말로, 골로새서 4:2-6

말씀: 깨어있어 은혜로운 말로

성경: 골로새서 4:2-6

4:2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4:3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4:4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

4: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1. 정원사

옛날 베르사이유궁전에 늙은 정원사가 있었다. 그는 충성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정원을 정성스럽게 돌보아 아름답게 꽃이 필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기쁨을 맛 볼 수 없었다. 그 이유는 궁전에서 조신들이 몰려와 꽃밭을 짓밟아 버리기 때문이었다. 너무 속상한 정원사는 왕께 탄원의 글을 올렸다. 그리고 이것이 인정받아 루이 14의 어명으로 에티켓이라고 쓴 팻말을 꽃밭 사이사이에 놓고 그 길로만 걷게 하였다. ‘에티켓‘a ticket’ 하나의 푯대란 뜻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한 언행과 예절을 얼마나 갖추고 사는가? 예수님을 좆아 가는 제자로서 성령님의 은혜로 아름다운 말과 행동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복음 전파 사역

바울은 성도들에게 항상 기도하여 복음 전파의 사역에 동참할 것을 말한다. 그리고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지혜롭게 행하여 합당한 말로 은혜를 끼치며 덕을 세울 것을 지시한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통해 사랑을 전한다. 바울은 편지의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의 매인 것을 생각하라고 했는데 이는 복음을 위하여 더욱 충성할 것을 성도들에게 강조한 것이다.

본서는 에베소서와 함께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혔을 때 쓰인 것이다. 그래서 에베소서와 많은 점이 유사하다. 그러나 에베소서는 교회론을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그리스도 안에서의 통일을 주장하는 반면 본서는 기독론을 중심으로 거짓 교사들의 가르침을 반박하고 있다. 본장은 이러한 본서의 특징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일반적인 몇 가지 권면과 긴 문안 인사가 덧붙여져 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몇 가지 부차적인 훈계가 산만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기도와 선교의 의무에 대한 기본적인 개요가 매우 탄탄한 구조로 짜여있다. 2-4절의 복음 사역들을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중보 기도에 대한 권면이 본장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본장의 내용은 성도의 기도생활에 대해 언급한 전반부와(1-6), 목회 사역에 있어서 인간관계를 매우 중요시한 바울이 그와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들의 안부를 묻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후반부(7-18)로 구성되어 있다.

 

3. 깨어 있어 기도(2-4)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 바울은 성도들에게 기도에 항상 힘쓰고 감사함으로 깨어 있을 것을 명한다. 성도가 기도를 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은 기도를 통해 영적인 긴장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도 병을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면서 기도 외에는 그러한 능력이 나올 수 없음을 말씀하셨다. 그럼으로써 성도의 영적 생활에 있어서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바울은 특히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되 그리스도의 비밀을 담대히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고 했다. 복음 전도 사역을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이는 복음 증거 사역이 성령의 능력을 힘입지 않으면 불가능함을 의미한다. 바울은 성도들의 기도로 인해 자신이 복음을 담대하고도 효과적으로 증거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울은 언제나 복음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을 언제나 성도들에게 부탁했다. 그리고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란 말을 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여 주실 것을 믿음으로 간구하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의 삶도 늘 감사함으로 주님께 나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깨어 있으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생활해야 할까? 예수님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생각할 것이 많은 세상에서 우리는 주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렇게 명한다. “기도를 계속하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4:2) 우리는 불평이 아닌 감사함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염려 할 일이 있어도 살아계신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어떠한 일이든지 감사함으로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아뢴다면 반드시 주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주 안에서 소망을 갖고 환난 중에서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주께 소망을 두고 환난 가운데 잘 견기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도움을 믿어야 한다. 늘 깨어 있어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6:18) 우리는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망 권세를 깨고 다시 사신 주님, 그리고 하늘로 승천하신 주님께서 다시 오시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13:33)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며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일

우리는 무엇에 집중하며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섬기는 이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심부름꾼으로서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복음 전파에 힘쓸 때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바울은 자신들의 전도 사역의 문이 열리고 예수님의 비밀을 말할 수 있게 해달라고 중보 요청을 했다.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그리하면 내가 마땅히 할 말로써 이 비밀을 나타내리라.”(4:3-4) 바울은 매임을 당하면서까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우리도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의 소중함을 알고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복음에 대한 깨달음, 천국의 비밀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천국비밀을 아는 것이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음을 말씀하신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13:11) 우리는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마음의 중심을 다해 하나님의 일에 힘써야 한다. 옥에 갇힌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4:1) 우리는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의 은혜로 전도하며 믿음을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 2:4-5) 성령님을 의지하며 사역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세월을 아끼고 소금과 같이(5-6)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며 주를 좇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아끼는 삶을 살아가야 할까? 바울은 성도들에게 외인에 대하여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고 말한다. 이는 믿지 않는 자들을 대함에 있어서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명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비둘기처럼 순결하고 뱀처럼 지혜로울 것을 지시하셨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 핍박하기 위해 억지 주장을 펴면서 믿는 자들을 대적한다. 그러한 일에 공연히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지혜롭게 대처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도의 지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주신다. 이러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기도해야 한다. 야고보 사도는 어떻게 권면하고 있는가? 그는 지혜가 부족하거든 언제나 꾸짖지 아니하시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권면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을 아껴서 복음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무가치한 일로 시간을 낭비하는 일은 하나님께 불충하는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세월을 아끼며 주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혜로서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수행할 때 무엇이 필요할까? 바울은 지혜가 필요함을 말한다.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4:5) 외인은 누구인가? 외인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이방인이나 유대인, 외국인을 지칭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의 일을 하며 살아가는 동안 믿지 않는 자들을 대할 때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필요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지혜와 순결이 필요함을 가르쳐 주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0:16) 그리고 바울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라고 말한다. “너희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를 인하여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데 지혜롭고 악한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16: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실 때 우리는 이 지혜로 주님의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악한 세상 가운데서 세월을 아끼고 주의 뜻을 잘 분별하며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5:15-17) 자신에게 지혜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예수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1:5)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가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말을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의 말은 어떠해야 할까? 바울은 말에 있어 은혜가 있고 소금이 맛을 냄과 같이 할 것을 권면한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4:6) 여기서 은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은혜는 타인에게 대하는 친절하고 상냥한 태도를 가리킨다. 자신의 삶 가운데 성령이 충만하여 친절한 모습으로 소금의 짠 맛을 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께서 도울 때 우리는 지혜의 언어를 사용하게 될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그 말씀을 가르치기를 힘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예수님을 닮은 자들이 될 수 있다.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 하고.”(11:19) 우리는 주님이 의롭다 여기는 자들이 되어 지혜를 말하며 걸음에 실족함이 없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의인의 입은 지혜를 말하고 그 혀는 공의를 이르며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 걸음에 실족함이 없으리로다.”(37:30-31)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입술로 주를 높이며 를 구속해 주신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내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구속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 하리이다. 내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말씀하오리니 나를 모해하려하던 자가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71:23-24) 우리가 주를 높일 때 우리의 영혼은 기뻐하며 우리가 주의 의를 말씀할 때 대적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높이고 주님의 제자들로서 세상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힘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우리의 입술로 주님만을 높이고 더러운 것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4:29)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님이 주신 입술을 가지고 주님만을 높이고 세상의 소금으로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5. 주님이 주신 지혜로 승리

예수님이 와 함께 하실 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주의 사역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의 지혜를 가지고 승리 할 수 있다. 야고보는 하늘의 지혜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3:17) 우리는 성결, 화평, 관용, 양순, 긍휼, 선한 열매가 가득 넘쳐 나는 의 삶이 되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처럼 소금으로서 서로 화목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9:50) 옥에 갇히기 까지 주의 일을 감당했던 바울은 담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파했다.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니라.”(6:20)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담대함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21:36)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께 늘 기도하며 성령님의 도움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늘 깨어 있어 입술에 은혜로운 말을 가지고 담대하게 주의 일을 잘 감당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