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
성경: 시편 42:1-5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 마음
히틀러는 평소에 싫어하는 것이 두 개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유대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자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의 가정적인 환경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행상인이었는데 물건을 구한 후 팔고 돌아오는데 한 달이나 두 달 정도가 걸렸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고독을 견디다 못해 이웃에 사는 유태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말았다. 어린 히틀러는 이 사실을 알고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 것을 호소했으나 어머니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결국 한 사람 어머니와 유태인의 범죄는 히틀러의 마음에 원한을 품게 했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갈망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조롱하는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한다. 자신의 영혼이 그러한 비난 소리에 아파하며 낙망할 때, 시인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격려한다. 낙망 중에 주를 바라보는 것만이 회복과 승리의 길임을 시인은 확신하고 있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에서 쫓겨나 멀리 유리하면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성전에서 하나님 공경하기를 갈급해 한다(1-2절).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묻고 하나님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날에 많은 무리와 기쁨의 찬송을 부르던 그때와는 대조적으로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시인은 무척 슬퍼하고 있다(3-4절). 그러나 이렇게 낙심한 상태에서 시인은 자기가 일어나야 함을 깨닫는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장차 임할 주님의 인자를 내다본다(5-8절). 그리고 하나님을 내 반석이라고 하면서 과거에 지켜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왜 낙망만하고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꾸짖고 있다(9-11절).
3. 주를 찾기에 갈급(1)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어떠한 일을 만나더라도 좋으신 주를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주를 찾는 자들의 소리에 반드시 귀 기울시는 분이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 여기서 갈급함은 원어로 <gr"[: 아라그>이다. 이는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를 말한다. 사슴은 목이 말라 있을 땐 간절함 마음으로 시냇물을 찾을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로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찾는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면 영혼에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시 84:1)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풍족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주를 만나고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시 36:8-9)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던 다윗은 주를 찾기에 힘썼고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 63:1-2) 내가 걸어가는 길이 힘들다고 느껴지는가? 우리가 어떠한 길을 걸어갈지라도 그 순간 하나님을 찾는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며 나를 돕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 주께서 베풀어 주시는 영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2)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떤 이는 높은 가치의 것을 추구하며 어떤 이는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좇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지향하는 자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시 42:2)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살아계시는’의 의미는 하나님이 이방 신들과는 다르게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방 신들과 비교할 수 없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되신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원했다. 또한 다윗도 하나님께 한 가지 일을 구했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주의 아름다움을 구하기를 소원했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시 27:4) 우리는 어디에 거하기를 더 소원하는가? 고라 자손의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10) 우리가 주의 궁정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우리 주님은 누구신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왕이 되신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렘 10:10) 뿐만 아니라 생명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감당할 이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요 5:26) 우리는 아버지께 생명이 있고 아들에게 생명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 7:37) 누구든지 주께로 달려오는 자들은 영혼이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지금 나아와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아야 한다. 주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주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혼의 큰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한 분만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비방하는 자들 앞에 눈물(3)
우리는 믿는 자로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떠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까?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묻는 이들 때문에 밤낮으로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시 42:3) 또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토로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시 42:10) 비방자들은 믿는 자들을 대적하고 비방하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비방 할 때 주의 자녀들은 뼈가 마르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면 가만히 계시지 않고 더 좋은 것들로 채워 주실 것이다. 아삽의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한다.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 흘림 당한 보수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시 79:10) 주변의 어떤 이가 주님을 비방함으로 인해 자신이 참기 힘든 상황 가운데 있다면 그 때를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기회로 삼고, 자신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만 바라보며 승리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11) 내가 믿는 하나님을 향해 누군가가 비방하는 순간에는 눈물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바라고, 언제나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상한 마음(4)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기대만큼 어떠한 일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이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고 기뻐하며 슬퍼하는 것이 더 아름다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던 지난 날을 회상했고, 지금의 상황을 보며 슬퍼한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시 42:4) 시인은 과거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한 것을 기뻐했는데 여기서 ‘성일’은 안식일을 가리킨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모든 백성들은 이 날을 거룩히 구별해야 했다. 그리고 ‘무리’는 원어로 <@/mh;: 하몬>인데, ‘많은 수의 군중,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시인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일에 많은 수의 군중과 동행하며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던 것을 회상했고, 현재의 모습을 슬퍼한다.
또 성경의 다른 인물들은 언제 슬퍼했는가? 예레미야는 타락으로 인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애 4:1) 또한 한나는 슬피 울며 기도한다. 그녀는 아이를 갖지 못해 슬퍼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엘리 제사장은 술취한 줄로 오해했지만 한나는 엘리 앞에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삼상 1:15-16)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목격하게 되거나 자신의 마음 속에 원통함이 생기면 슬퍼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이 생길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자신이 슬픈 마음이 들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는 자들은 그 분께 모든 것을 토해 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시 62:8) 피난처가 되시는 살아계신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이 땅에서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고단하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눈물을 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과 하나님 나라의 삶을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눅 16:25) 내가 겪는 일로 인해 마음이 상할 때 주님께 모든 것들을 아뢰어 드리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천국을 소망삼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여전히 주를 찬양(5)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찬양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 42:5) 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주께서 나를 도울 것을 확신해야 한다. 여기서 ‘낙심하며’는 ‘구부러지다’를 뜻한다. 즉 마음이 심하게 눌려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불안해’의 의미는 영혼이 성난 파도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낙심하며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의 얼굴을 구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확신하며 언제나 주를 높이고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과 환경이 내게 다가오더라도 주님을 찾고 주님을 갈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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