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2. 17:32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 시편 42:1-5

말씀: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

성경: 시편 42:1-5

42:1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42: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1. 마음

히틀러는 평소에 싫어하는 것이 두 개가 있었다. 그 중에 하나는 유대인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자였다. 그렇게 된 이유는 그의 가정적인 환경에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행상인이었는데 물건을 구한 후 팔고 돌아오는데 한 달이나 두 달 정도가 걸렸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고독을 견디다 못해 이웃에 사는 유태인과 불륜의 관계를 맺고 말았다. 어린 히틀러는 이 사실을 알고 어머니에게 그러지 말 것을 호소했으나 어머니는 끝내 돌아서지 않았다. 결국 한 사람 어머니와 유태인의 범죄는 히틀러의 마음에 원한을 품게 했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주님을 향한 변치 않는 마음을 가지고, 시험에 들지 않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갈망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외치며 조롱하는 원수들의 핍박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한다. 자신의 영혼이 그러한 비난 소리에 아파하며 낙망할 때, 시인은 하나님만을 바라보라고 격려한다. 낙망 중에 주를 바라보는 것만이 회복과 승리의 길임을 시인은 확신하고 있었다. 시인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곳에서 쫓겨나 멀리 유리하면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것처럼 성전에서 하나님 공경하기를 갈급해 한다(1-2).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묻고 하나님을 멸시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날에 많은 무리와 기쁨의 찬송을 부르던 그때와는 대조적으로 이제는 그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시인은 무척 슬퍼하고 있다(3-4). 그러나 이렇게 낙심한 상태에서 시인은 자기가 일어나야 함을 깨닫는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장차 임할 주님의 인자를 내다본다(5-8). 그리고 하나님을 내 반석이라고 하면서 과거에 지켜 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왜 낙망만하고 있느냐고 스스로에게 꾸짖고 있다(9-11).

 

3. 주를 찾기에 갈급(1)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찾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어떠한 일을 만나더라도 좋으신 주를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주를 찾는 자들의 소리에 반드시 귀 기울시는 분이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해 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42:1) 여기서 갈급함은 원어로 <gr"[: 아라그>이다. 이는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를 말한다. 사슴은 목이 말라 있을 땐 간절함 마음으로 시냇물을 찾을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갈증이 나서 마음이 몹시 조급한 상태로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찾는다고 고백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주님을 만나면 영혼에 기쁨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깃딧에 맞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84:1)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사모해야 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풍족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우리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주를 만나고 빛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수로 마시우시리이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36:8-9)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을 살았던 다윗은 주를 찾기에 힘썼고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곤핍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려 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63:1-2) 내가 걸어가는 길이 힘들다고 느껴지는가? 우리가 어떠한 길을 걸어갈지라도 그 순간 하나님을 찾는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 고라 자손의 시 영장으로 알라못에 맞춘 노래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46:1) 하나님은 우리를 돕는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나의 모든 상황을 아시며 나를 돕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 주께서 베풀어 주시는 영적인 풍요로움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2)

우리는 무엇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어떤 이는 높은 가치의 것을 추구하며 어떤 이는 눈에 보기 좋은 것을 좇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지향하는 자의 영혼은 하나님을 찾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42:2)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여기서 살아계시는의 의미는 하나님이 이방 신들과는 다르게 모든 생명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이방 신들과 비교할 수 없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되신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갈망하며 하나님의 얼굴 뵙기를 원했다. 또한 다윗도 하나님께 한 가지 일을 구했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주의 아름다움을 구하기를 소원했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27:4) 우리는 어디에 거하기를 더 소원하는가? 고라 자손의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84:10) 우리가 주의 궁정에서 하루가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낫다고 고백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우리 주님은 누구신가?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고 영원한 왕이 되신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오.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열방이 능히 당치 못하느니라.”(10:10) 뿐만 아니라 생명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감당할 이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5:26) 우리는 아버지께 생명이 있고 아들에게 생명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신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7:37) 누구든지 주께로 달려오는 자들은 영혼이 다시 살게 될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지금 나아와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아야 한다. 주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주의 보좌 앞에 나아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혼의 큰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님 한 분만을 갈망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비방하는 자들 앞에 눈물(3)

우리는 믿는 자로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떠한 비난을 받을 수도 있을까? 본문의 시인은 하나님이 어디계시냐고 묻는 이들 때문에 밤낮으로 눈물을 흘린다.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42:3) 또 시인은 자신의 고통을 이렇게 토로한다.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42:10) 비방자들은 믿는 자들을 대적하고 비방하며 하나님을 조롱하는 죄를 범하기도 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비방 할 때 주의 자녀들은 뼈가 마르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좋으신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면 가만히 계시지 않고 더 좋은 것들로 채워 주실 것이다. 아삽의 시에서 시인은 이렇게 기도한다. “어찌하여 열방으로 저희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주의 종들의 피 흘림 당한 보수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79:10) 주변의 어떤 이가 주님을 비방함으로 인해 자신이 참기 힘든 상황 가운데 있다면 그 때를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기회로 삼고, 자신이 주님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 있다면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그럴 때 일수록 하나님만 바라보며 승리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하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42:11) 내가 믿는 하나님을 향해 누군가가 비방하는 순간에는 눈물로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바라고, 언제나 자신의 영혼이 하나님을 바라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상한 마음(4)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마음이 상하기도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기대만큼 어떠한 일의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마음이 상한다. 그러나 이 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고 기뻐하며 슬퍼하는 것이 더 아름다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했던 지난 날을 회상했고, 지금의 상황을 보며 슬퍼한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42:4) 시인은 과거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한 것을 기뻐했는데 여기서 성일은 안식일을 가리킨다. 이 날은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므로 모든 백성들은 이 날을 거룩히 구별해야 했다. 그리고 무리는 원어로 <@/mh;: 하몬>인데, ‘많은 수의 군중,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시인은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기념하는 성일에 많은 수의 군중과 동행하며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했던 것을 회상했고, 현재의 모습을 슬퍼한다.

또 성경의 다른 인물들은 언제 슬퍼했는가? 예레미야는 타락으로 인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고 슬퍼하며 이렇게 고백한다. “슬프다 어찌 그리 금이 빛을 잃고 정금이 변하였으며 성소의 돌이 각 거리 머리에 쏟아졌는고.”(4:1) 또한 한나는 슬피 울며 기도한다. 그녀는 아이를 갖지 못해 슬퍼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엘리 제사장은 술취한 줄로 오해했지만 한나는 엘리 앞에 이렇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한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나의 심정을 통한 것 뿐이오니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동됨이 많음을 인함이니이다.”(삼상 1:15-16) 이처럼 인간은 자신의 기대와 다른 모습을 목격하게 되거나 자신의 마음 속에 원통함이 생기면 슬퍼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마음이 생길 때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자신이 슬픈 마음이 들 때에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는 자들은 그 분께 모든 것을 토해 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62:8) 피난처가 되시는 살아계신 주님이 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이 땅에서 주님을 믿고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고단하게 느껴질지라도, 하나님께서 나의 눈물을 보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과 하나님 나라의 삶을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 말씀하신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16:25) 내가 겪는 일로 인해 마음이 상할 때 주님께 모든 것들을 아뢰어 드리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천국을 소망삼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여전히 주를 찬양(5)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찬양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시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42:5) 늘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주께서 나를 도울 것을 확신해야 한다. 여기서 낙심하며구부러지다를 뜻한다. 즉 마음이 심하게 눌려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불안해의 의미는 영혼이 성난 파도처럼 심하게 요동치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낙심하며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고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주의 얼굴을 구했다. 우리는 성령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확신하며 언제나 주를 높이고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과 환경이 내게 다가오더라도 주님을 찾고 주님을 갈망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성경: 마태복음 26:31-35

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6: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26: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1. 골프 챔피언 에드 파골

에드 파골은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긴 골프 챔피언이다. 그는 10살 때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그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왼쪽 팔이 20cm나 짧아졌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중에도 앞으로 골프 챔피언이 되겠다는 소망과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그렇게 짧은 팔을 가지고 어떻게 골프를 칠 수 있겠소?’라고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 그는 할 수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날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더욱 굳게 다짐했다. 그 후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수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수난 예고를 하셨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1-5). 예수님께서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6-13). 그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려는 음모에 가담했다(14-16).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내기를 원하셨다. 가룟 유다에게는 다시 한 번 암시적으로 회개의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떡과 포도주로 성찬을 베풀었다(17-29). 예수님께서는 수난 후에 제자들이 흩어지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예언하셨다(30-35). 그 후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 가시어 피땀을 흘리며 기도하셨다(36-46). 드디어 가룟 유다의 밀고로 예수께서 붙잡히신다(47-56). 예수님은 가야바의 집에서 심문을 받으셨다(57-66). 베드로는 예수님의 심문 현장을 보러 왔다가 발각되자 엉겁결에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후에 심히 통곡한다(67-75).

 

 

3.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예수님(31-32)

흩어지리라 예언하심

우리는 주를 믿는 확실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이 주를 버리고 흩어질 것을 그들에게 알려주셨다.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던 무리들은 음모를 꾸몄고 그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된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 유다를 통해서 주님은 잡히신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라 하였느니라.”(26:31)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릴 것을 미리 아셨고, 가슴 아픈 소식이지만 이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신다. 예수님은 이전에도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후 삼일 만에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16:21) 이 말씀 후 베드로는 주님께 그리하지 마실 것을 말하며 항변했지만 예수님은 그 말을 물리치시며 베드로를 꾸짖으셨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 했기 때문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던 밤 잡히시게 된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16:32)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중에도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고 계심을 확신하시며 담대하셨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환난은 찾아 올 것이다.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며 서로 잡아 주는 일들이 있게 될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24:9-10) 우리는 주 안에서 확고한 믿음의 신앙을 가져야 한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생각하며 죽기까지 주를 좇아 살아갈 것을 다짐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지 아니하였나이다.”(17:5)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주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령님을 의지하여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살아나리라 말씀하심

우리는 주님께서 살아나셨음을 확실히 믿고 살아가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이 자신을 버리고 갈 것을 말씀하신 후, 긍정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던지신다. 자신은 잡히고 제자들은 흩어지게 되는 절망의 상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다시 살아난 후 갈릴리로 먼저 가 있게 될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6:32) 예수님은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다시 부활하셨고 제자들은 주님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 주님은 죽으실 뿐만 아니라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다.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20:19) 채찍질 당하며 죽으신 후 다시 살아나실 것을 주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 사실을 제자들은 잘 깨닫지 못했었다.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 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 제자들이 이것을 하나도 깨닫지 못하였으니 그 말씀이 감추였으므로 저희가 그 이르신 바를 알지 못하였더라.”(18:33-34) 제자들에게는 이 말씀이 아직은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깨닫지 못했던 제자들의 상황과는 무관하게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을 때 천사들을 만나게 되었다. 천사들은 무서워하는 여자들을 진정시키며 이렇게 말한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28:6-7) 주님이 누웠던 곳은 비어 있었고 우리 주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보지 않고서도 믿을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베드로와 예수님의 대화(33-35)

주를 버리지 않겠다 말하는 베드로

우리는 주님을 부인하지 않는 믿음이 있는가? 제자들이 주님을 버리고 떠날 것을 말씀하셨던 예수님께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한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26:33)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었다. 그러나 그의 확신에 찬 믿음도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지 않았을 때 무너지고 말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주를 믿는 믿음도 끝까지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이다. 그러므로 늘 주님 앞에 겸손해야 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16:18-19) 우리 모두가 겸손한 자들이 되고 겸손한 자들과 함께 하는 복된 길을 걸어가야 한다.

자신의 마음만을 믿고 살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지혜롭게 행하여 주님의 은혜를 입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28:25-26)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주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실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말게 하소서. 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에 항상 주의하리이다.”(119:116-117) 내가 소유한 믿음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임을 잘 깨닫고, 주의 말씀을 사랑하여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누가 붙잡아 주셔야만 주 안에 서 있을 수 있는가?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주셔야만 우리는 믿음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 담대하게 주님께 대답했던 베드로에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26:34) 베드로는 목숨조차 주를 위해 버릴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진 베드로가 자신을 부인할 것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13:38)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신다. 우리는 나의 강점과 약점을 다 알고 계시는 주님을 인정하며 주님 앞에 겸손히 엎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하는 자들을 붙잡아 주시는 주님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부인하지 않을 것을 말하는 베드로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가?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을 지키며 주와 동행해야 한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주님이 자신을 부인할 것을 말씀하시자 이렇게 말한다.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26:35) 하지만 제자들이 주님을 떠나갔음을 성경은 잘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런즉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또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주님 앞에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는 스스로 조심하며 믿음을 잘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의 힘으로 되지 않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한다. 주님의 제자들로서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믿음을 잘 지키어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즉각적 회개를 하는 베드로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주님을 좇아야 할까?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다.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26:74) 믿음은 무엇인가? 결정적인 순간에도 변치 않는 믿음이 참 믿음이다. 목숨을 걸고 믿는 믿음이라야 참 믿음이다. 베드로는 순간적인 위기의식에 굴복하여 예수님을 부인했다. 그러나 곧바로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통회하고 자복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6:75) 우리는 잘못을 아는 순간 즉각적으로 회개했던 베드로의 모습을 보며 도전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 없음을 하나님께 아뢰어 드리고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 앞에 나아가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씻음 받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어 이 땅 가운데서 주와 동행하는 복을 누려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3) 우리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를 위해 중보하고 계심을 잊지 않아야 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2)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며,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2. 16. 13:13

주의 자녀로서 인내하라!, 전도서 7:8-10

말씀: 주의 자녀로서 인내하라!

성경: 전도서 7:8-10

7: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7: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7: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

 

감사

알렉산더 화이트목사님은 항상 무엇에든지 감사하는 분이었다. 그는 주일이면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 후 설교를 시작했다. 그가 있는 곳은 다행히 날씨가 항상 좋았다. 그러던 어느 주일 갑작스럽게 폭풍우가 몰려왔다. 한 성도는 목사님은 오늘 같은 날에 과연 뭐라고 말씀하실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때 화이트 목사님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같이 폭풍우가 몰아치는 험악한 날씨를 매일 주시지 않음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 감사의 고백을 하는 우리의 삶이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전도자

인생이란 무엇인가? 본장부터는 허무한 인생 속에서도 나름대로 보람 있고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교훈적 형식으로 언급한다. 전도자는 젊은 시절에 인생의 허무함을 몸소 경험한 후에 신앙을 회복했다. 그는 하나님의 참된 지혜를 소유한 인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제시한다. 특별히 본장은 솔로몬이 자신이 장년 시기에 저술한 잠언의 내용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잠언과는 대조적으로 여기서는 어떤 행위에 대해 상대적인 관점에서 표현한다는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저자는 보다 나으니라는 비교급의 형식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여호와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만 참된 지혜를 발견할 수 있음을 역설하는 전반부(1-14), 중용에 대한 성경적 시각을 분명히 드러내 주는 중반부(15-18), 말씀을 의지하던 지혜자의 능력과 인간의 부패함을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후반부(19-29)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은 이제까지와 다르게 지혜로운 삶을 살 것을 말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지혜는 인간적인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지혜이다. 하나님 중심의 지혜는 인본주의적 지혜와는 달리 우매한 것보다 월등한 우월성을 지닌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지혜를 근거로 신중하게 살아가야 함을 전도자는 역설한다.

 

3. 겸손함과 인내(8)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까?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7:8) 일은 시작할 때보다 끝날 때가 더 좋다. 그리고 교만한 마음보다는 참는 마음이 낫다. 여기서 낫고좋다, 유익하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하나님 또는 사람에게 선이나 기쁨을 만들어 주는 상태를 말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참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유익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마음을 싫어하시고 겸손한 마음을 기뻐하신다. 솔로몬은 이런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다. 우리도 누구를 대하던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겸손하지 못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솔로몬은 잠언에서 교만의 결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13:10) 교만의 끝은 다툼이 일어날 뿐이다.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권면을 듣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욕심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잠언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28:25) 욕심이 많은 자는 말썽을 일으키지만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될 것이다.

나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주님을 따라가는 자들로서 자신의 영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혼이 천국 가는 복을 누려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인 그리스도인이라면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힘써 주님을 좇아야 한다. 우리는 인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21:19) 우리는 믿음을 가진 자로서 세상 가운데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세상의 다양한 시험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해서는 인내가 반드시 필요함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10:36) 성령님을 의지하여 겸손함이 넘쳐나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노하기를 더디 하고(9)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할까?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성급하지 않아야 한다. 주 안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결단코 조급한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 우둔한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일을 빨리 시작하려 한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일의 시작보다 그 끝이 중요함을 알고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신중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세상을 사는 지혜는 급한 마음을 갖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급한 마음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며 노를 발하게 하고, 일을 그르치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는 이렇게 살아가지 못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에 변화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솔로몬은 노하지 말 것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7:9) 노하는 것은 우매한 자들의 태도이다.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멋진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구약성경에서 노를 발했던 몇몇의 인물들이 있다. 가인은 자신이 드린 예물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자 심히 분해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가인에게 왜 안색이 변하느냐고 물으셨다.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4:5-6) 가인은 분한 마음을 야단치셨던 하나님 앞에 화가 났고 동생 아벨을 살인하는 죄를 저지르고 말았다. 또한 하만은 모르드개가 자신에게 절하지 않자 매우 노했다. 화가 난 하만은 유대인들을 다 멸하고자 마음을 먹었다.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 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3:5-6) 하지만 에스더는 믿음으로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서 사정을 고했다. 결국엔 노를 참지 못했던 하만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그는 나무에 달려 목숨을 잃게 되었다.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잠언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노하기를 속히 하는 자는 어리석은 일을 행하고 악한 계교를 꾀하는 자는 미움을 받느니라.”(14:17) 성급히 노하는 자들은 어리석은 일을 행하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명철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14:29) 분은 다툼을 일으키고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할 것이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15:18) 또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가 용사보다 나음을 깨닫고 우리는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 우리는 빨리 듣고, 느리게 말하며 성내기도 더디 해야 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이렇게 권면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1:19) 생각과 감정을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나쁜 감정과 좋지 않은 생각을 말로 뱉어냄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우리가 이러한 것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힘들다. 그러나 성령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아가기를 힘 쓸 때에 주께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들로 우리를 바꾸실 것이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들로서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지혜자(10)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자들이 되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많은 세월동안 다양한 사람들이 잠시 동안 이 땅에서 살아간다. 연약한 인간들은 이렇게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고 감사의 고백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이 세상 가운데서 불평하며 죄를 짓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세월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니라.”(7:10)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감사해야 하나 그렇게 하지 못할 때도 많다.

성경은 죄악 된 인간을 여러 곳에서 기록하고 있다. 다윗은 인간의 악함을 시편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14:2-3) 인간은 다 죄 아래에 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고 혀는 속이기를 힘쓴다. 인간의 발은 악으로 달려가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율법 아래 놓인 인간들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다. 바울은 죄 아래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3:9-10)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지혜를 소유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3:18) 지혜는 그것을 얻는 사람에게 생명의 나무이다. 우리는 그 지혜 얻기를 사모해야 한다. 지혜는 병기보다 낫다. 한 사람의 지혜는 성읍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다. 솔로몬은 지혜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그 성읍 가운데 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르기를 지혜가 힘보다 낫다마는 가난한 자의 지혜가 멸시를 받고 그 말이 신청되지 아니한다 하였노라. 종용히 들리는 지혜자의 말이 우매자의 어른의 호령보다 나으니라.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한 죄인이 많은 선을 패괴케 하느니라.”(9:15-18) 우리는 조용한 지혜자의 말이 어리석은 임금의 큰 소리보다 나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 정직한 자들이 되어 구한다면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잠언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2:7) 우리는 은혜를 주시며 힘과 방패가 되어 주시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늘의 지혜를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이 주신 지혜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인내로서 승리

전도자는 죄악 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허무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의를 내세울 수 없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해야 한며,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의 자녀로서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고, 시험과 환난을 인내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복된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시편기자는 자비와 은혜가 넘치시는 여호와께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103:8) 우리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의 모든 상황을 맡겨 드려야 한다. 주님은 인내하는 자를 복되게 여기시는 좋으신 분이다.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5:11) 우리는 욥의 인내에 도전을 받아야 한다. 욥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23:10) 내가 겪는 고난이 크다고 생각 되는가? 하나님께서 모든 과정을 통해 를 단련하신 후에 더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와 동행 하게 될 것을 기대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22) 우리는 주의 자녀로서 인내해야 한다. 주님을 믿고 따라가는 동안 잘 인내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믿음을 가지고 견고하게

성경: 베드로전서 5:5-10

5:5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5:6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5: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5:11 권능이 세세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1. 여우 한 마리

며칠 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해 굶주린 여우 한 마리가 있었다. 그 여우는 산비탈을 지나다 포도밭에 새까맣게 잘 익은 포도송이를 보게 되었다. 배고픈 여우는 포도를 보고 너무나도 반가웠다. 그래서 그 포도를 따먹기 위해 발돋움을 해보았지만 키가 닿지 않았다. 여우는 펄쩍 뛰기도 하고 저만큼 가서 달려오다가 힘껏 뛰어오르기도 했지만 키가 닿지 않았다. 그러자 여우는 원망스럽게 포도송이를 바라보다가 침을 탁 뱉으며 이렇게 말한다. ‘저까짓 것 안 먹고 말지! 벌레 먹고 시기만 한 걸?’ 여우는 불평을 하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일을 대할 때,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믿음으로 도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훈련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가 장차 영광에도 참예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한다. 또한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닮아 겸손함으로 주께서 주신 사명을 완수하여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을 권고한다. 본장은 그리스도인들의 협동적인 훈련과 개인적인 훈련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장로들은 무리를 돌봐야 하는 특별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저들의 영혼을 살펴야 한다. 젊은이들은 장로들에게 순종해야 하며 양쪽 모두는 겸손의 은혜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 하는 유일한 올바른 태도이다(1-6). 신자는 자신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겨야 하며 원수인 마귀의 악한 계교에 대해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이것은 고난의 주제를 다시 상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 목적은 오직 고난 받은 자로 하여금 미래의 영광을 쌓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려는 것이다(7-11). 끝으로 저자는 자신의 동역자인 실라와 바벨론의 교회와 마가의 인사를 전한 후 간단한 축사로 서신을 맺는다(12-14).

 

3. 겸손함으로(5)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서로를 대해야 할까? 순종과 겸손의 모습으로 서로를 대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베드는 이렇게 권면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여기서 허리를 동이라옷을 매어 입다라는 뜻이다. 이는 어떤 일을 바로 실행하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의미한다. 우리는 적극적인 태도로 겸손으로 옷 입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3:12)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을 입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 입기 위해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는 무엇으로 옷 입기를 결단할 것인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기를 소망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4) 우리는 정욕을 위해 살아가지 말고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주님의 뜻을 좇아 살아가면서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를 낫게 여겨야 한다. 어떠한 일이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2:3)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로서 겸손의 모습으로 서로 사랑으로 행하며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때가 되면 높이심(6)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에게 어떠한 복을 주실까? 우리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 진다면 때가 되면 주님께서 우리를 높이실 것이다.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6) 여기서 높이시리라는 남들 앞에서 고귀한 자로 선포하고 숭앙을 받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겸손할 때에 주께서 우리를 고귀한 자, 높임을 받는 자로 세우실 것이다. ‘는 낮아지기 위해 힘써야 하는가, 아니면 높아지기를 위해 힘써야 하는가?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23:12) 주께서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이는 분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이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잠언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29:23)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겸손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야고보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4:10) 우리가 주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된다면 주님은 우리를 반드시 높이실 것이다. 주 앞에서 겸손한 자들이 되어 주님의 은혜를 입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맡기라(7)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자신 안에 있는 염려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모든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고 권면한다. 우리의 염려는 죄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안에 있을 때에 염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 해 주심으로 모든 염려와 근심을 없애주신다. 주님은 우리의 사망의 문제와 모든 질병과 경제적인 문제까지 해결 해 주신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걱정을 주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개역한글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여기서 권고하심이란 관심을 가지고 돌봄, 그리고 조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자신의 염려를 주께 맡길 때 주님은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보시고 조언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먹고 사는 것조차 염려해서는 되지 않는가? 예수님은 염려에 대해 이렇게 명하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6:25) 예수님은 의 목숨과 몸을 책임져 주시는 좋으신 주님이 되시므로 우리는 염려를 멀리해야 한다. 우리는 육신을 위해 무엇으로 채울까 염려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또한 예수님은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6:34) 우리 모두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모든 염려를 주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깨어라(8)

주 안에 있는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마귀는 무엇을 하고 다니는가? 우리는 마귀는 믿는 자들을 넘어뜨리기 위해 여기 저기 사자처럼 다니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여기서 근신하라는 원어로 <nhvyate: 넵사테>이다. 이는 근신하다, 절제하다, 경계하다라는 뜻으로 희미한 정신 상태에서 깨어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에 굳게 서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근신하고 절제하고 경계하여 하나님께 순종하는 믿음에 굳게 서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마귀가 공격해 올지라도 결코 넘어지지 않아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무엇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가? 주님은 방탕함, 술취함, 생활의 염려를 경계할 것을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21:34)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 주의 날이 덫과 같이 임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은 주님 밖에 있는 자들이 영영한 불에 들어갈 것을 말씀하신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25:41) 왼편에 있는 자들은 마귀를 위해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바울은 낮에 속한 자들로서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라고 권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근신하고 깨어 있어 주님께 기쁨이 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전신갑주를 입고 늘 깨어 있어 마귀의 일들을 잘 분별하며 믿음생활에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7. 믿음을 굳건히 하여(9)

우리는 영적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을 굳건히 해야 하는가? 우리는 믿음을 굳건히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9)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고난이 있음을 인정하며 결코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바울은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한다.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11:33) 주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갔던 의인들은 믿음으로 승리했고,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고, 믿음으로 사자로부터의 공격에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딤전 6:12)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은 마냥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세상 가운데서 환난을 당할 지라도 결코 승리 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이 와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한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16:33) 우리가 주를 붙잡을 때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허락하실 것이다. 주 안에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은혜의 하나님(10-11)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은혜의 주가 되신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권능이 세세 무궁하도록 그에게 있을지어다 아멘.”(벧전 5:10-11) ‘를 부르신 주님께서 잠시 고난을 당하는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여기서 온전하게는 어떤 일이라도 잘 수행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가 되게 함을 의미한다. 은혜의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실 때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고 견고하게 서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은 가볍고, 주께서 베풀어 주실 영광은 무거움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또한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138:7) 하나님은 우리를 소성케 하시며, 원수들의 공격으로부터 건져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과 환경 가운데 처하던지 언제나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주를 믿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견고하게 세워져 가는 믿음의 사람, 믿음의 가정, 믿음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말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성령님과 동행하기

성경: 사도행전 1:6-11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 사해

요단 계곡 남단에는 죽은 바다가 있다. ‘죽은 바다인 사해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것 중의 하나로 길이가 47마일, 넓이는 10마일, 수심이 1,292 피트나 된다. 요단강에서 그곳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의 양만해도 상당량이 되는데 사해는 전혀 소량의 물도 내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사해의 아래에 위치한 지역은 건조한 사막 지대가 되었다. 사해의 염기는 다른 바다의 5배나 되며, 거기에는 어떤 물고기도 살지 못하고 해변에도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다. 마치 하나님의 저주가 그곳에 퍼부어진 것처럼 음울하고 황폐한 분위기이다. 이러한 사해의 모습은 이기적인 삶의 전형이라 하겠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가 자신만을 위해 좋은 것을 다 소유하고자 하는 삶이 아닌, 좋은 것을 나누고 흘러 보내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약속

본장은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의 약속을 기록하고 있다. 본서의 저자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 대한 증거에 이어 본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시작된 초대교회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장은 그래서 본서 전체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최후의 지상 명령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명령에 따라 본서의 내용은 전개된다. 본서를 누가복음의 속편으로 이해할 때에 본장은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본장을 기점으로 하여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본장은 본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이러한 본장은 머리말(1-5), 예수님의 승천(6-11), 다락방 기도(13-14), 가롯 유다의 종국(15-19), 사도로 뽑힌 맛디아(20-26)로 구성되어 있다.

 

3. 예수님(6-8)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정치적 독립을 의미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일은 그들의 알 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더 위대한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 민족에 국한될 수가 없었고 온 세계를 위한 그 분의 증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은 후에 이 일을 해야 했다. 8절은 특별히 사도행전의 흐름을 말해 주고 있다.

 

예수님에 대한 시각의 차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의 의중을 잘 알 수 있다면 복된 일이다. 제자들은 주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에 관하여 이렇게 묻는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1:6) 제자들은 언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후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우실 때가 지금입니까?’하고 묻자.”(1:6) 1세기의 유대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을 위한 지상적이고 정치적 나라를 의미했다. 그리고 주님이 사역하시던 한 때에 그 백성들은 예수님을 강제로 그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교 사역은 이 땅에서의 나라의 세속적인 화려함이 아닌 영적 능력으로 이룩하려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는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두 아들이 주의 나라의 좋은 보좌에 앉기를 요청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0:21) 그 자리는 왕 다음의 좋은 자리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좋은 자리를 요구하는 한 인간의 부족하고 겸손하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영적으로 힘쓰며, 한 마음을 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정치적으로 평화를 가져다주는 분이 아니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사야서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이렇게 기록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우리는 를 위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님이 평강의 왕이시며, 영원한 왕이심을 믿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여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버지의 권한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은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답하신다. ‘때와 시기에서 때는 기회를 의미하며 시기는 지속적인 기간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때에 대한 권한은 오직 한분 하나님 아버지께 있다. 바울은 주님 오심의 때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2)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 우리 주님의 재림의 때도 하나님만 아신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때는 하나님의 권한임을 잘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만의 권한이 있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주님은 한 어머니의 요청 이후,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잔을 마시려니와 좌우편에 앉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임을 말씀하신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0:23) 주님의 때의 권한이 하나님 아버지께만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는 자신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증인(8-10)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주님을 믿으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탐욕적인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참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증인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에 이 일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우리는 명예와 권력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관심을 갖아야 한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온 땅에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렇게 명하신 예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열방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될 때 예수님은 오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주님의 오심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우리는 이 말씀을 잘 기억하며 온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가까운 이웃에게서 부터 열방의 민족에게 까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 원수 마귀를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10:19)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으며, 믿는 자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은 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아직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하늘로 올라 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 가셨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1:9) 개역한글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1:9) 여기서 올리워 가시니의 원어는 <uJpevlaben: 휘펠라벤>이다. 이는 영접하다, 부양하다.’라는 뜻인데 예수님의 승천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승천이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며 이것은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제자들 앞에서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셨고 제자들은 구름에 가린 주님을 볼 수 없었다.

구약에서는 영광의 구름이 등장한다. 하나님을 뵈옵기 위해 시내산에 오른 모세에게 주님은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19:9) 하나님은 그 분의 역사를 그려 가실 때 구름을 등장시키시기도 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은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3) 주를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처소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의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믿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흰 옷 입은 두 사람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로 흰 옷 입은 두 사람, 천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1:10)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을 때에도 그들은 천사를 목격하게 된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28:3) 천사의 형상은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다. 또한 예수님의 무덤의 두 천사를 요한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20:12)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확실히 신뢰하며, 의심 없이 주님을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다시 오실 주님(11)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흰 옷 입은 두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1)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큰 영광과 능력으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1:27)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 모두가 주께서 다시 오심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사도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주님 앞에 악한 자와 선한 자, 모두가 주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자들로서 존귀하신 주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야 한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14:4) 거룩하신 주님처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힘쓰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언제나 받기를 소원하며,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대하며 주와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 26. 11:58

구별된 자로서의 삶, 시편 5:1-7

말씀: 구별된 자로서의 삶

성경: 시편 5:1-7(다윗의 시)

5:1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5:2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5:3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5: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5:7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1. 식인종의 섬

젊은 미국 청년 하나가 식인종이 사는 섬에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는 며칠간의 항해 끝에 태평양 가운데 있는 식인종의 섬에 도착했다. 식인종들은 맛좋은 놈이 왔구나.’하면서 어두운 밤을 틈타 그의 천막을 덮칠 셈이었다. 그러나 한밤중에 어찌된 일인지 천막 근처에서 여러 명의 군인이 둘러서서 보초를 서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가까이 가지 못하고 돌아가고 말았다. 다음날 밤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추장과 식인종의 대표급 몇 명이 선교사에게 와서 밤중에 그들이 목격한 일을 설명했다. 그리고 오히려 자신들을 해치지 말라.’는 당부를 했다. 선교사는 자기의 천막 안팎을 둘러보고 자신을 지키던 자들이 하나님의 천사였던 것을 깨달았다. 그 후 선교사는 담대히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의 삶에 관여하고 계심을 확실하게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기도

시인은 하나님께 응답을 구하며 간절히 부르짖는다.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은 곧 의인의 구원을 의미한다. 그래서 시인은 거짓되게 자신을 정죄하고 핍박하는 자들의 악행을 보응하실 것을 구한다. 그는 또한 주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음을 고백하며 주의 보호를 받아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기를 소원한다. 다윗은 본시를 통해 자신의 아침 기도시간에 응답을 바라고 있는데(1-3) 이로 인해서 본시는 아침 희생제사 전에 제사장들에 의해서 낭송되거나 개인예배 시 입례송으로 많이 낭송되었다. 본시는 다윗이 아침 기도시간에 자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 중에 하나이나 악인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원수임을 강조하고 있다(4-7). 따라서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하나님께 경배하려 하는 다윗 자신은 하나님께 구원받기를 간구하고 있으며(8-10) 더 나아가 하나님께 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임할 것을 확신하고 있다(11-12).

 

3. 하나님(1-3)

심정을 헤아리시는 주

시인은 하나님께서 아침에 자신의 기도를 들을 것을 믿고 기도했고 그 응답을 바란다고 고백한다. 그는 중심을 다해 기도하고 하루 종일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기대와 소망 가운데 생활 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침 첫 시간을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 큰 유익을 끼치게 된다. 기도로 시작한 하루의 삶은 하나님의 인도와 은혜를 체험하는 풍성한 영적 삶이 된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심정을 헤아려 주시는 분이시다. 본문에서 다윗은 심정을 헤아려 주시는 주께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5:1) 여기서 심정은 원어로 <gygIh;: 하기그>이다. 이는 속으로 중얼거림, 속삭임을 뜻한다. 즉 다윗은 조용한 소리로 기도를 했음을 나타낸다. 다윗은 심정을 헤아려 주시는 주께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다. 또한 다윗은 반석이신 주께 이렇게 기도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19:14) 그리고 자신을 곤고하고 궁핍한자라고 하며 응답을 구했다. “여호와여 나는 곤고하고 궁핍하오니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86:1) 우리는 심정을 헤아리시는 주를 바라보며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도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연약함을 돕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할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8:26) 구별된 자로서 의 심정을 헤아리시는 주께 성령님의 도움으로 기도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왕 되신 주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주님이 되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다윗은 왕 되신 주께 이렇게 부르짖는다.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5:2) 왕 되신 주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응답하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왕 되신 주님을 이렇게 노래한다.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 가시리로다. 영광의 왕이 뉘시뇨.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오.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24:7-8) 강하고 능하신 여호와 하나님, 전쟁에 능한 여호와 하나님, 영광의 왕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머리를 들고 주를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구원자, 왕 되신 주님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오.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자시오.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니라.”(33:22) 구별된 자로서 왕 되신 주님께 기도하여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주를 기다림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구별된 자로서 주를 기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해가 뜨는 것을 보기 위해 기다릴 때에 밤이 길게 느껴지는 것이 당연하다. 다윗은 자신의 소리를 들으시는 주께 이렇게 기도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5:3) 여기서 기도하고는 원어로 <&r"[;: 이라크>이다. 이는 희생 제사를 준비하다, 제물을 배열해 놓다.’를 의미이다. 다윗은 경건한 마음으로 고요한 아침에 기도하고 그분을 바랬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을 기다리는 그의 마음이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다고 고백한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130:6) 새벽 미명은 하나님과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시간이 분명하다.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기도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1:35) 구별된 자로서, 미명에 주님께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4-6)

죄악을 싫어하시는 주

우리 하나님은 무엇을 싫어하실까? 시인은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기 때문에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함을 말한다. 이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속성에 대한 고백이다. 행악 자들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앞에서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 다윗은 하나님이 죄악을 싫어하심을 이렇게 고백한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5:4) 우리 하나님은 죄악을 싫어하시므로 악은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한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준비는 과정에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7) 다윗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중심을 다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마땅히 귀한 것들을 드렸다. 우리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신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12:14) 죄악을 멀리하며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구별된 자로서 주를 언제든지 뵈올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행악 자를 미워하시는 주

우리 하나님은 무엇을 미워하시는가? 우리 하나님은 행악 자를 미워하신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 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 자를 미워하시며.”(5:5) 오만 한 자는 주님 앞에 설 수 없으며, 주님은 행악 자를 미워하는 분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여기서 오만 한 자는 악인들 중의 한 부류이다. 하나님에 의해서 정죄된 자들은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행악 자는 무엇인가? ‘행악 자는 보통 시편에서는 악인을 가리키나 본문에서는 다윗을 대적한 자들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는 오만 한 자와 행악 자가 절대로 되어서는 안 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어리석은 자들과 거만한 자들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1:22) 어리석은 자는 어리석음을 좋아한다. 그리고 거만한 자는 거만을 기뻐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로서 살아가야 한다. 주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아가는 자, 주님의 법에 따르지 않는 자들은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심판의 때에 왼편에 있는 자들은 마귀를 위해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게 할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25:41) 우리 모두가 구별된 자로서 악을 행하지 말고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짓말 하는 자의 멸망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자들을 멸망시키실까? 하나님은 거짓말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5:6) 거룩하신 하나님은 속이는 것을 싫어하신다. 그들은 마지막 때에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사도요한은 계시록에서 왼편에 있는 자들의 마지막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21:8) 아직도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삼아야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구별된 자로서 거짓을 멀리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주의 사랑을 힘입어 승리(7)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주 안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받은 다윗은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힙 입어 주의 성전을 향하여 엎드릴 것을 고백한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5:7) 개역한글 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인자를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리이다.”(5:7) 주의 풍성한 인자에서 인자는 원어로 <dseje: 헤세드>이다. 이는 아비, 친절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주의 집은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시는 장소인데 다윗이 시온 산에 세웠던 여호와의 장막을 말하고 있다. 다윗은 풍성한 주의 언약적인 사랑에 힘입어 하나님이 임재 해 계시는 장막을 향해 엎드리기를 소원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반드시 구별된 자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악인들은 그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주의 사랑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7)

우리는 죄악과 함께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주의 보혈을 의지하여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마귀는 언제나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아는 우리는 깨어 있어 기도하며 주의 날개 아래에 거하고, 다윗처럼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4:16)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며 구별된 자로서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기도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 19. 12:07

주의 얼굴을 구하는 삶!, 시편 105:1-4

말씀: 주의 얼굴을 구하는 삶!

성경: 시편 105:1-4

105:1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105: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

105:3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105:4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1. 탐욕

어느 청년이 한번은 길을 가다가 2달러짜리 지폐를 주웠다. 그때부터 그는 길을 걸을 때마다 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리하여 40년 동안 그는 29,516개의 단추와 54,172개의 핀과 7페니를 주워 모았다. 그러나 그는 햇볕의 따스함, 친구들의 미소, 새들의 노래, 꽃과 나무와 푸른 하늘의 아름다움은 볼 수 없었다. 즉 다른 사람을 돕는 일과 하나님과 함께 하는 가치 있는 삶을 잃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탐욕이 얼마나 비참한 결과를 낳는지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의 얼굴을 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

본시는 시편에 나타난 시 78, 106편과 더불어 세 편의 역사 시에 속합니다. 언약을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의 찬양 시로 끝 부분이 할렐루야로 끝나서 할렐루야시라고도 불린다. 본시의 주제나 문체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있는 아삽의 시 78편의 일반적인 특성과 비슷하며 1-15절까지는 대상 16:8-22에서 인용되었다. 이 시는 창 12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때로부터 시작하여 가나안 정복이 여호수아 때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3. 주님께 감사(1)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다양한 환경 가운데서 우리는 늘 주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의 모든 상황을 아시며 의 필요를 아시는 주님께 늘 감사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105:1) 우리의 삶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목숨을 걸고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를 쉬지 않았던 다니엘은 기적적으로 사자 굴속에 들어갔다가 살아나게 된다. 그 후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살리신 하나님을 높이게 된다.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6:26-27)

우리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고 입을 열어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왕이신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찬양하라 하나님을 찬양하라. 찬양하라. 우리 왕을 찬양하라. 하나님은 온 땅에 왕이심이라 지혜의 시로 찬양할지어다.”(47:67)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늘 감사의 고백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노래하며 찬양(2)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입술로 어떠한 말을 하고 있는가? 우리는 의 삶에 관여하셔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입술을 열어 찬양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이한 일들을 말할지어다.”(105:2) 여기서 찬양하며의 의미는 원어로 <WrM]z": 잠루>인데, 악기의 현을 만지며 연주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모든 악기와 노래를 동원하여 최상의 찬양을 드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주님을 높이며 찬양하되, 최상의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내 죄를 용서해 주신 주님을 높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구원하신 주님을 높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입에 있게 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권면한다.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뵈어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인함이라 하고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으로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능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13:8-9)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살아계심을 기억하고 그 분을 노래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 이름을 송축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96:1-2)

우리는 거룩하고 크신 하나님을 소리 높여 불러야 한다.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12:5-6)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지금도 살아계시는 주님을 최고로 높이며, 입술을 열어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5. 주의 이름을 자랑, 찾으라!(3-4)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무엇을 자랑하고,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할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권위와 재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구하며 주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들은 마음이 즐거울지로다.”(105:3)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구하여 마음의 즐거움을 얻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쌓아 놓은 부와 능력이 아니다. 우리의 의지의 대상이 되시는 분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이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이 변치 않는 분임을 깨닫고 주님만을 의지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9:10) 우리가 주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은 우리 편이 되어 주시며, 우리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아직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다면 좋으신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만나주실 것이다.

지금 조금 바쁘다는 핑계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내일로 미루려고 하는 이는 현명하지 못한 자이다. 우리 인생의 끝이 언제 찾아올지에 대해 아는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때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찾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11:9-10)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할까?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의 능력과 얼굴을 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105:4) 주의 이름을 언제나 자랑하며 주를 날마다 찾기를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의 얼굴을 구하며!

우리는 주님께 감사하는 자, 주님을 찬양하는 자, 주님만 자랑하며 찾는 자들로서 승리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언제나 주 안에 거하기를 소망하며 성령님과 동행하기를 힘 쓸 때에 주님은 우리를 좋은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날마다 주의 얼굴을 구하기 힘쓰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 마음이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27:8)

 

하나님의 언약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결코 변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사랑을 대변해 주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그 광야 가운데서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베풀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님께 자신의 사정을 아뢰어 드리고, 주의 얼굴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 11. 13:28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시편 119:105-112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성경: 시편 119:105-112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6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

119:107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119:108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

119:109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119:110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19:111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119:112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

 

1. 가로등

보물섬의 저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가로등 지기였다. 그는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거리를 내려가면서 거리의 가로등에 차례로 불을 켜는 것을 보곤 했다. 그는 여기서 받은 교훈을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가로등 지기가 지나간 후에는 항상 그 뒤에 등불이 남겨진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는 가로등지기처럼 자신이 지나온 길에 빛을 남기고 있을까? 모든 이에게 소망과 사랑의 빛을 밝혀 주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찬양을 하면서 말씀의 귀중한 가치를 강조한다. 자신에게 구원을 주며 자신의 인생길을 진리로 인도하는 빛이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시인은 갈급해 한다. 그리고 그 말씀과 항상 함께하기를 간구한다. 저자가 미상인 본시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열정을 표현한 것이다. 독특하게도 시의 각 절마다 율법이라는 말이 나온다. 무엇보다 본시에 나타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지극한 정성은 경이롭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결단이 나오고(1-8), 이어서 그 말씀을 즐거워함을 말한다(9-16). 시인은 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를 원하면서 하나님의 관용을 애원하고 있다(17-32).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얻기 위해 주의 법도를 따를 것을 다짐하고 있으며(33-96),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에게 나타날 하나님의 큰 은혜를 바라보고 있다(97-136).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로우심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임을 다시금 언급하고 있다(137-176).

 

3. 주의 말씀(105-106)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 됨을 강조한다. 그래서 자신이 주의 율례를 끝까지 행하려고 자신의 마음을 기울였다고 말한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들을 지키기로 맹세하고 굳게 정하였나이다.”(119:105-106) 여기서 맹세하고는 법정에서 증인이 진실만을 말할 것이라고 선서하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죄인에게 구원을 허락함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진리로 인도해 줌을 깨달아야 한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고백했을까? 잠언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6:23) 주의 말씀은 등불이요, 빛이요, 생명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했던 한 왕이 있었는데, 그는 요시아 왕이다. 요시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왕이었고, 요시아 왕 때에 백성들도 율례를 지키는 삶을 살았다. “왕이 대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좇기로 하니라.”(왕하 23:3) 하나님은 이런 요시아 왕을 기뻐했을 것이다. 우리는 주의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지도자, 리더가 많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최고 우선으로 여기며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행악자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리로다.”(119:115)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기에 힘을 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고난가운데 기도(107-108)

주의 자녀들이 고난 가운데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자신이 겪고 있는 큰 고난을 주님께 아뢰었다.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나기 위해 간청했다. “나의 고난이 매우 심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 입이 드리는 자원제물을 받으시고 주의 공의를 내게 가르치소서.”(119:107-108) 주께서 명하시면 모든 것이 해결됨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다시 살게 할 것이다. 다윗은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진솔하게 고백한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저희가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22:14-18)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아뢰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들에게는 세상으로부터 오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고통 가운데서 를 건져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심을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34:19)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자신의 삶 가운데 고난이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가? 우리가 주께 부르짖는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를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기도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143:11) 우리는 찬송을 받으실 주님께서 자신의 삶에 관여하셔서 가르쳐 주실 것을 요청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찬송을 받으실 여호와여 주의 율례를 내게 가르치소서.”(119:12)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면 우둔한 자도 깨닫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119:130) 성령님의 역사로 하나님의 말씀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자신의 환경을 하나님께 토로하며, 말씀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여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악인들이 해하려고 함(109-110)

악인들이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를 공격하기도 할까? 악인들은 믿음의 사람들을 공격하기도 한다. 시편기자는 자신의 생명이 위기 가운데 있었으나 주의 법을 잊지 않음을 고백한다. “나의 생명이 항상 위기에 있사오나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악인들이 나를 해하려고 올무를 놓았사오나 나는 주의 법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119:109-110) 원수들은 남을 넘어지게 하려고 올무를 놓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주님을 의지하는 자는 원수들이 공격해 올지라도 넘어지지 않을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 하는 자들 중에는 교만한 자가 있는데 시편기자는 그들이 웅덩이를 팠다고 말한다. “주의 법을 좇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가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119:85) 주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함정을 만들어 하나님의 사람들을 넘어뜨리려고 힘쓴다. 그러나 우리는 원수들의 모략과 공격에 맞서서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말씀을 의지하여 깨어 기도함으로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 복음의 일군 바울에게도 큰 고난이 있었다. 그는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주의 일을 위해서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고백한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바울은 옥에 갇히기도 했었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죽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주를 위해 많은 수고를 하면서도 주의 일을 잘 감당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고후 11:23) 우리는 충성된 주님의 일군으로서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좁은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해야 한다. 심지가 곧은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6:10) 뜻을 정하고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을 열고 기도했던 다니엘, 그는 하나님께 중심이 바로 서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악인들이 헤하려고 할 때, 큰 고난이 올 때에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의 증거들로 기업을 삼음(111)

우리는 무엇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즐거워 할 수 있다면 그는 어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자일 것이다. 시편기자는 주의 증거들을 자신의 기업으로 삼았다고 고백한다. “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119:111)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마음이 즐거워 했다. 다윗은 여호와의 교훈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19:8) 우리가 주의 계명을 최고로 사랑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을 금 곧 정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119:127) 주의 구원을 사모하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119:174)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 중심에 두고, 주의 말씀으로 인해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

시편 기자는 본장에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본장은 율법주의의 우수성을 역설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게 됨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진리가 되므로 우리는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빛으로 인도할 것이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땅 가운데도 주님의 사랑이 넘쳐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주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한다. 그리하여 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죄 용서함 받고 천국백성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영원히 주의 율례들을 행함(112)

우리는 무엇을 위해 결단하고 기도해야 할까? 우리는 마음을 다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것을 결단하고, 그렇게 살아갈 수 있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주의 율례들을 영원히 행하려고 내 마음을 기울였나이다.”(119:112) 시편 기자는 악한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해달라고 이렇게 기도한다.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와 함께 악을 행치 말게 하시며 저희 진수를 먹지 말게 하소서.”(141:4) 우리는 예수님만을 최고로 사랑하는 자들로서,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 붙잡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근신하며, 주의 은혜를 바라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벧전 1:13) 마음을 굳건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의 중심에 두어,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 5. 11:21

어려운 환경 속에서의 기도, 시편 57:1-5

말씀: 어려운 환경 속에서의 기도

성경: 시편 57:1-5 / 사울을 피해 굴에 있는 다윗

57:1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57:2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57:3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 (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57:4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7: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1. 문둥병

매리 리드라는 인도의 한 선교사가 있었다. 그녀는 문둥병 환자들에 대해 도울 방법이 없어 안타까워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인해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병명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후 의사로부터 그녀 역시 문둥병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때 그녀는 절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절망하기 보다는 오히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제까지 그녀는 문둥병 환자들로 인해 마음 아파했으나 앞으로는 그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곧 그녀는 인도로 되돌아가 동일한 환자로서 그들과 함께 일했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건강과 희망을 주는 귀한 일을 감당했다. ‘는 어떠한 형편 가운데 놓여있는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날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원의 주

시인은 원수에게 쫓겨 숨어 있는 상황 속에서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한다고 고백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널리 전파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과 찬양은 구원받은 모든 자의 행할 바이며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목적을 성취하는 일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으므로 그분의 긍휼을 체험했다. 그러므로 위험을 당했을 때 하나님께 피신하였다(1). 왜냐하면 자기가 의지하고 부르짖는 하나님의 높으신 사실에 안전을 느꼈기 때문이다(2). 하나님의 구원은 불쌍한 자를 돌보시는 자비와 그 약속을 믿는 자에게 주시는 진실성으로 성립된다(3). 그러므로 위험한 원수들 가운데 처해 있으면서도(4), 하나님을 높이기 원한다(5). 이 시인은 과거의 신앙 체험에 의하여 진정한 성도를 해하려는 원수들의 흉계가 필경 그들의 자멸을 가져오는 사실에 대하여 확신했다(6). 다윗은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7). 이런 안정된 상태에서 그 안전 보장에 대해 하나님께 힘을 다해 찬송을 드린다(8-11).

 

3. 주의 날개 그늘 아래(1)

우리는 위기의 상황가운데 놓였을 때 누구를 의지해야 할까?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인 사울에게 악하게 대하지 않았다. 어느 날 다윗은 사울을 피해 아둘람 굴에 피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시를 통한 그의 삶이 잘 표현 되어 있다. 다윗은 큰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구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이 재앙들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57:1) 다윗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원했다. 심정적으로 긍휼히 여기는 것만이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 고난에서 구원하여 주시기를 소원했다. 다윗은 자신의 영혼이 주께로 피하기를 원했는데, 여기서 피하되는 대적으로부터 위협을 받는 자가 안전한 은신처로 피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자신을 완전히 맡기고 평안을 누리는 상태를 뜻한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된다면 어디로 피해야 하는가? 우리는 위기의 상황 가운데 놓이게 되었을 때 다른 이를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9:10) 우리 주님은 자신을 의지 하는 자를 절대로 버리지 않으신다. 나는 누구를 의지하며 누구의 도움을 구하는 자가 될 것인가?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오직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였사오니 내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13:5) 오직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며, 주의 인자하심을 의뢰하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2)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우리 하나님은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신 주가 되신다. 그리고 모든 것들을 행하실 능력의 주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모든 것을 이루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다윗은 어려움 가운데서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이렇게 부르짖는다. “내가 지존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57:2) 여기서 지존하신의 의미는 원어로 <@/yl][,: 엘리온>이다. 이는 세상 통치자나 그들이 섬기는 신들보다 뛰어나며 온 우주를 다스리는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칭호이다.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신들보다도 뛰어나며 우주를 다스리는 유일한 신이 되신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2-3) 우리는 모든 신위에 뛰어나시며 인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내가 처한 상황이 위기처럼 느껴지는가? 그럴 때일수록 주님께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바울은 역사를 주관하시고 이루시는 주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더욱 더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는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하나님의 역사를 위해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 늘 주의 일에 힘쓰고, 하나님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이루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구원(3)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어디에서 건지는 분이신가?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사랑으로 원수를 바라본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원수를 사랑으로 대하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원수를 헤하려 한다. 다윗은 자신을 헤하려는 사울의 무리들의 비방에서 건짐 받기를 하나님께 구했다. 우리도 하나님께 구한다면 원수의 비방에서 건짐 받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의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57:3) ‘삼키려는의 의미는 원어로 <#a'v;: 솨아프>이다. 이는 맹수가 먹이를 삼키는 모습을 뜻한다. 여기서는 다윗이 원수들에 의해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비방의 의미는 거짓된 말과 조롱하는 말로 상대방을 해치고 인격을 모독하는 것을 뜻한다. 다윗은 거짓된 말과 조롱하는 말을 통한 모독의 말을 들으며 괴로워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상황 가운데 놓인 다윗은 인자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운다면 모든 것들이 해결 받게 됨을 믿었다. 다윗을 삼키려는 자가 많았다.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가 있다. 이 노래에서 다윗은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를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56:1-2) 우리는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어떠한 기도를 해야 할까? 다윗은 자신을 보호해 주실 주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저가 영원히 하나님 앞에 거하리니 인자와 진리를 예비하사 저를 보호하소서.”(61:7)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을 때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건지실 능력 있는 분이 되신다. 인자와 진리가 충만하신 하나님께 부르짖어 문제를 해결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4)

원수들은 무엇으로 우리를 괴롭게 만들기도 할까? 인간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혀일 것이다. 훈련되지 않은 언어의 구사는 어떤 이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자신이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고 원수들의 혀가 날카로운 칼 같다고 고백한다. “내 영혼이 사자들 가운데에서 살며 내가 불사르는 자들 중에 누웠으니 곧 사람의 아들들 중에라. 그들의 이는 창과 화살이요. 그들의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57:4) 여기서 불사르는 자는 원어로 <!yfih}l: 라타팀>이다. 이는 상대방에 대한 깊은 증오로 인해 마음속에 미움이 불타는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다윗을 해하려는 사울을 뜻한다. 그리고 날카로운 칼은 다윗을 해치려는 사울의 잔인함을 묘사한다. 사울의 무리는 다윗을 이토록 괴롭혔고 다윗의 마음에는 그들을 원수처럼 여기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그들의 혀를 통한 말은 한 사람의 믿음을 시험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3:6) 우리는 어떠한 혀를 가져야 할까? 솔로몬은 지혜로운 자의 혀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12:18)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지혜로운 자의 혀를 가지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원수들을 미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은혜로 원수들로부터 건짐 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여호와여 일어나 나의 영혼을 구원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저는 그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 같으며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일어나 저를 대항하여 넘어뜨리시고 주의 칼로 악인에게서 나의 영혼을 구원하소서.”(17:12-13) 원수가 움킨 것을 찢으려 하는 사자처럼 우리를 공격하고, 날카로운 칼과 같은 혀로 우리를 넘어뜨리려 할지라도 주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가 그러한 환난과 시험을 잘 통과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신 주(5)

우리가 믿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다윗은 자신을 어려움 가운데서 건지실 주님께 이러한 고백을 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57:5) 여기서 하늘 위에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대인들은 하늘이 세상을 다스리는 신의 거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이 세상의 주관자이심을 하늘 위에라고 표현했다. 우리는 어려움 가운데 놓였을 때 누구를 의지 할 것인가? 그리고 도움을 주실 능력의 주님을 신뢰한다면 어떻게 주님께 고백할 것인가? 우리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실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바라며, 부르짖는 자들을 반드시 도울 주님을 믿고 감사의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8.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아직도 주님을 마음에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아와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좋으신 하나님께 삶을 의탁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날개 그늘 아래 있음을 확신하고 감사했다. 우리 또한 예기치 못한 일로 큰 난관에 봉착할 수도 있다. 우리는 이럴 때일수록 무엇을 확신해야 할까? 우리는 주의 날개로 암탉이나 새들이 자기 새끼를 보호하듯이 를 덮어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확신해야 한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지키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 보호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깨닫지 못할 때는 어떻게 될까? 이 때 하나님은 잠시 날개를 걷고 그들에게 고통의 위험을 주기도 하신다. 그렇게 하여 그들이 더 이상 하나님 없이는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기도 하신다. 우리는 주의 날개 아래 보호받고 있을 때 그 보호하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을 찬송하는 다윗의 모습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도 그분께 늘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시편 기자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신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모든 나라 위에 높으시며 그 영광은 하늘 위에 높으시도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자 누구리요. 높은 위에 앉으셨으나 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113:4-6) 우리 하나님은 모든 것 위에 뛰어나신 주가 되신다. 우리가 평안함 가운데 거하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주님,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해결 하실 수 있는 주님께 부르짖어 응답받아 주를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30. 19:47

천국 가는 길, 누가복음 13:24-30

말씀: 천국 가는 길

성경: 누가복음 13:24-30

13: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13:26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13:27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13:28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13:29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13:30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

 

1. 신호등

한 기독교인이 길을 건너기 위해 교통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에 성경을 들고 있는 소녀 둘이 나란히 서 있었다. 한 소녀가 신호등을 바라보며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그냥 건너갈까? 지나가는 차들도 없는데!’ 이 말을 들은 다른 소녀는 빨간 불인데 교통질서를 위반하고 건너가는 것보다는 녹색 불이 될 때까지 이렇게 기다려야 돼. 우리가 성경을 들고 있으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니?’라고 대답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천국 백성 된 자로서 날마다 주님 앞에서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구원

어떤 사람이 구원에 대해 질문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와 관련하여 하나님 나라와 그리스도인들의 책임에 대해 가르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첫째, 성도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하고 둘째, 준비되지 못한 자는 결코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 여기서 준비되지 못한 자란 주의 이름으로 일하였으되 악행을 즐겨 일삼던 자들이다. 셋째, 지금은 나중 된 자이지만 장차는 먼저 될 자도 있다는 내용이다. 우리는 이러한 구원의 도리를 잘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날마다 빛 된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두어 사람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자에 대해 질문하자, 실로암 망대 사건을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신다(1-5). 또 무화과나무 비유도 들려주신다(6-9). 안식일에 십팔 년 동안 귀신들린 여자를 고쳐 주시며(10-17), 하나님 나라에 관해 겨자씨 비유와 누룩비유를 말씀하셨다(18-20). 그리고 예루살렘 여행 중에 구원에 대한 질문에 답변해 주셨다(21-30). 어떤 바리새인들로부터 헤롯의 예수님을 체포하고자 하는 음모를 전해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메시야 적 사역을 선포하시고 예루살렘을 위하여 애곡하신다(31-35).

 

3. 좁은 문으로(24)

천국은 정말로 있을까? 성경은 천국이 실제하고 있음을 말씀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는 자들은 천국에 갈 수 있다. 우리가 지금 예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고 있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이들에게는 주님을 따라가는 순례자의 길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라 걸어가는 길은 좁은 길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13:24) 여기서 좁은 문의 의미는 진리를 따르는 자가 당할 당연한 고난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이 얼마나 험난한 것인지를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주님을 따라가는 길이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우리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성령님께 순종하며 말씀을 따라 살아간다면 충분히 주님의 제자로서 승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이 좁음을 말씀하시며 좁은 문으로 들어갈 것을 명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7:13-14) 하지만 우리는 천국행 티켓을 반드시 얻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천국은 우리가 영원히 거할 처소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제일 소중한 것인지 분별하고, 반드시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될 것을 다짐해야 한다. 그리고 천국을 소망할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해야 할까?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하나님 아버지의 일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6:27)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복 받은 자들로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 힘써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도 주님의 역사에 동참한 자로서 힘써 일했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9)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며 성령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주의 일에 힘쓰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닫힌 문(25-26)

우리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할까? 우리는 천국의 문이 열려 있을 때 감사하며,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어 들이고 주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의 자녀라면 성령님의 조명을 받아 말씀을 따라 행하며, 하나님의 뜻에 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를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13:25-26) 지혜로운 자라면 천국백성으로 살기를 소망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주 앞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중 예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못 들어가는 자가 있을 수도 있는가?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선지자 노릇,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한 자들 중에서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자가 있음을 말씀하신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7:21-22)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을 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왼편에 있는 자들이 영영한 불에 들어갈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믿지 않는 자들이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 된 곳에 들어가게 됨을 말씀하신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25:41)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그 분이 심판자가 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13:25) 우리가 지금 호흡하고 있음은 주님의 은혜이다. 육신의 생명이 붙어 있는 이때,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천국 문이 닫히기 전에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슬피 울며 이를 갈 자(27-28)

예수님은 주님을 잘못 따르던 자들에게 냉대하기도 하실까?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분께서 양과 염소를 가르는 때에는 심판의 주로서 정확한 판단을 하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악한 자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가라 하리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13:27-28) 여기서 행악의 의미는 일차적으로 윤리적인 무당 행위를 가리키지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모든 행위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행악하는 자들은 천국 문 밖으로 쫓겨나서 슬피 울게 될 것이다. 우리는 행악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죽기까지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을 잘 따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주님과 무관한 삶을 살았던 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우리는 사랑의 주님께서도 그 때에는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게 될 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25:12)

우리는 주님 앞에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거짓을 말하는 자도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음을 깨달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5:6)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의 끝은 다르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1:6) 우리는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형으로 죽어가는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행악 자는 예수님을 저주했지만, 다른 한 편의 행악 자는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자신을 생각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긍휼을 구했던 그 행악 자가 낙원에 있을 것을 말씀하셨다. “가로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23:42-43) 우리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지만 자신의 죄 때문에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자들이 있다면, 사랑의 주님께 용서를 구하며 자비하신 주님께 엎드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천국 문 밖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갈 자가 되지 말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 씻음을 받고 주의 자녀로서 승리의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6. 잔치에 참여 할 자(29-30)

우리는 어디에 속할 것을 결단해야 하는가? 지금도 천국 문은 열려있다.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자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오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여하리니 보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될 자도 있느니라 하시더라.”(13:29-30) 예수님을 먼저 믿은 자들은 열심을 가지고 좁은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며, 뒤 늦게 믿은 자들이 있다면 더욱 열심히 주를 좇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주님의 날에 천사들은 사방으로부터 택한 자들을 모으게 될 것이다.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13:27)

예수님은 또 두 아들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한 사람이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21:28-31) 포도원에 가서 일할 것을 대답만 하고 불순종한 맏아들이 있었고, 가기 싫다고 대답한 후 회개하고 일하러 간 둘째 아들이 있었다. 이들 중 주님은 누구를 더 기뻐하셨을까? 주님은 회개를 하고서 일하러 간 둘째 아들을 더 기뻐하셨다. 우리는 주님께서 회개 후 순종하는 아들의 편이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는 천국백성 된 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1:23) 우리는 믿음의 반석 위에 서서 주께 소망을 두고 충성된 일군으로서 승리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천국 가는 길을 선택하고, 지상 최대의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