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8. 4. 21:40

지혜로의 초대에 반응

지혜로의 초대에 반응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혜로의 초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고, 지혜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해야 한다. 지혜의 초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것은 지혜의 초대에 응한 사람들에 대한 혜택과 지혜를 거부했을 때에 당하게 되는 재앙이다.

 

 

지혜는 특히 어리석은 자와 거만한 자들을 초대의 대상으로 삼아 회개를 촉구한다. 사실 지혜가 더욱 필요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지혜를 멀리한다. 그들이 지혜를 멀리한 결과는 재앙과 환난이며, 무엇보다도 뒤늦게 지혜를 찾으나 지혜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선지자들의 메시지와도 유사한 내용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는 결국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거부하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지혜의 교훈을 멸시하지 않는 슬기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1:24-25)

 

여기서 멸시하며무시하다, 거절하다.’라는 의미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 방자히 행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우리는 지혜의 소리에 바르게 반응해야 하지, 그 소리를 멸시하며 무시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혜로 반응하지 않는 자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나 귀를 막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 거역하며 자신의 뜻대로 행하게 되면, 그들이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7:11-12)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지혜를 얻으며, 100 퍼센트 순종하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으로 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미련하게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잠하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1:26)

 

우리는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외면당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7:13) 주께서 말씀하실 때 잘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며,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지혜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하며, 낮은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지금 주님을 찾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악에서 돌이켜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 미련함이 아닌 지혜로운 자로서 바른 선택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만 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의 능력만을 믿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반응하는 자, 지혜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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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8. 4. 21:39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는 지혜가 의인화되어 나타나는데 본서에는 이런 방식의 묘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지혜는 여성형으로 사용되면서 악인, 특히 음녀와 대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악인들의 꾀임은 주로 은밀하게 진행 되어지는데 반해, 지혜의 초대는 길거리와 광장 등에서 공개적으로 되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몇몇의 특권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권하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은 지혜가 모자라서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호의를 갖고 계시며, 그들에게 후하게 지혜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지혜로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본문에서 어리석은 자들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2-23) 우리는 어리석음을 좋아하거나, 거만을 기뻐하는 자가 되지 말고, 지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하는 슬기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앞 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1:20-21) 우리는 지혜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그 소리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슬기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자가 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주의 자녀로서 말씀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소유한 자라고 생각하는 미련함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께 배우는 믿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9-3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호흡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를 얻기를 사모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지혜로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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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말세지말에 깨어있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

성경: 잠언 1:22-30

잠언 1:22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잠언 1:23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잠언 1:24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잠언 1:25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잠언 1:26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잠언 1:27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잠언 1:28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잠언 1:29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잠언 1:30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

 

1. 지혜

종교 개혁을 일으킨 루터는 로마로부터 파면장을 받고 심한 공포에 떨고 있었다. 루터의 공포가 극에 달하자 하루는 그의 부인이 하얀 소복을 입고 그의 머리맡에 앉아 곡을 하기 시작했다. 이를 이상히 여긴 루터는 대체 누가 죽었기에 그리 슬피 우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그의 부인은 하나님께서 돌아가셔서 웁니다.’라고 대답했다. 그후 루터는 하나님께서 죽다니 그게 무슨 망발이오.’라고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녀는 당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당신이 믿는 전능자 하나님이 돌아가신 것 같아 우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루터는 크게 깨닫고 새로운 용기를 얻어 종교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살아가는 자,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힘있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지혜를 깨닫고

잠언은 히브리 지혜 문학의 백미이다. 본장은 이러한 잠언의 서론으로서 잠언의 목적과 참된 지혜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먼저 잠언의 저자가 솔로몬 왕임을 분명히 밝힌다. 그리고 이 글을 기록한 목적이 모든 사람에게 참된 지혜를 깨닫게 하고자 함임을 말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참된 지혜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선언한다(1-9). 그러면서 악한 자의 유혹에 빠지지 말고 멀리하라고 권고한다. 이는 악한 자의 길은 멸망으로 향하기 때문이다(10-19). 이와 반대로 저자는 지혜의 교훈에 귀를 기울이라고 촉구한다. 이는 지혜의 교훈은 사람을 평안으로 이끌기 때문이다(20-33). 본장은 악한 자와 지혜로운 충고를 대조함으로써 잠언의 교훈에 참된 성공과 생명의 길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3.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22-23)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는 지혜가 의인화되어 나타나는데 본서에는 이런 방식의 묘사가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지혜는 여성형으로 사용되면서 악인, 특히 음녀와 대조되어 나타나고 있다. 악인들의 꾀임은 주로 은밀하게 진행 되어지는데 반해, 지혜의 초대는 길거리와 광장 등에서 공개적으로 되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몇몇의 특권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권하는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은 지혜가 모자라서 지혜를 구하는 자에게 호의를 갖고 계시며, 그들에게 후하게 지혜를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늘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지혜로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본문에서 어리석은 자들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음을 좋아하며 거만한 자들은 거만을 기뻐하며 미련한 자들은 지식을 미워하니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영을 너희에게 부어 주며 내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1:22-23)

우리는 어리석음을 좋아하거나, 거만을 기뻐하는 자가 되지 말고, 지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하는 슬기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앞 절에서 이렇게 말한다. “지혜가 길거리에서 부르며 광장에서 소리를 높이며 시끄러운 길목에서 소리를 지르며 성문 어귀와 성중에서 그 소리를 발하여 이르되.”(1:20-21) 우리는 지혜의 소리를 외면하지 말고, 그 소리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슬기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지으신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는 자가 되지 말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을 가진 주의 자녀로서 말씀 앞에 바르게 반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1:7)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소유한 자라고 생각하는 미련함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배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주께 배우는 믿음의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11:29-30)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호흡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를 얻기를 사모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지혜로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지혜로의 초대에 반응(24-26)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지혜로의 초대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어리석은 마음을 버리고, 지혜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해야 한다. 지혜의 초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것은 지혜의 초대에 응한 사람들에 대한 혜택과 지혜를 거부했을 때에 당하게 되는 재앙이다. 지혜는 특히 어리석은 자와 거만한 자들을 초대의 대상으로 삼아 회개를 촉구한다. 사실 지혜가 더욱 필요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오히려 지혜를 멀리한다. 그들이 지혜를 멀리한 결과는 재앙과 환난이며, 무엇보다도 뒤늦게 지혜를 찾으나 지혜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선지자들의 메시지와도 유사한 내용을 보는 느낌을 갖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거부는 결국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거부하시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지혜의 교훈을 멸시하지 않는 슬기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불렀으나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폈으나 돌아보는 자가 없었고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1:24-25) 여기서 멸시하며무시하다, 거절하다.’라는 의미로 교육을 받지 못한 상태, 방자히 행하는 상태를 나타낸다. 우리는 지혜의 소리에 바르게 반응해야 하지, 그 소리를 멸시하며 무시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지혜로 반응하지 않는 자들,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나 귀를 막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등을 돌려 거역하며 자신의 뜻대로 행하게 되면, 그들이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7:11-12)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지혜를 얻으며, 100 퍼센트 순종하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향으로 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고 미련하게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잠잠하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1:26) 우리는 사람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하나님의 눈치를 보며, 사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외면당하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7:13) 주께서 말씀하실 때 잘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며, 성령님께서 말씀하실 때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열어놓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지혜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하며, 낮은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55:6-7) 지금 주님을 찾아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악에서 돌이켜 살아계신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 미련함이 아닌 지혜로운 자로서 바른 선택을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살아남기 위해 서로 경쟁해야만 하는 현대 사회 속에서, 자신의 능력만을 믿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게 반응하는 자, 지혜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지혜로운 자로서 여호와를 경외하고(27-30)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 앞에서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은 지혜로운 자로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않을 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이르겠고 너희에게 근심과 슬픔이 임하리니 그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 대저 너희가 지식을 미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즐거워하지 아니하며 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나의 모든 책망을 업신여겼음이니라.”(1:27-30) 우리는 삶 가운데서 주님이 아닌 다른 편을 선택하기를 즐기는 어리석은 자가 되어, 광풍 같은 두려움이 임하거나, 폭풍같이 재앙을 만나거나, 근심과 슬픔 가운데 빠지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하나님 편을 선택하고, 늘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14:26) 주를 경외하여 강한 믿음을 선물로 받고, 자녀들에게도 주께서 피난처가 되심을 깨닫는 복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악을 행하기를 즐겨 하여, 빛이신 주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3:20) 빛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에 소망이 있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움을 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성령 충만함을 입기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25:10-12) 열방의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을 뵙게 될 때, 그것이 두려움이 아닌 기쁨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는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늘 깨어 있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21:34-35)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지혜를 받아 드리는 복된 그리스도인

우리는 지혜를 받아들이는 자가 되어 안연함과 평안의 축복을 누리는 슬기로운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지혜는 그것을 가진 자에게 생명 나무와 같아서 생명과 복을 베풀며, 모든 재앙을 미리 알아 피할 수 있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할 때,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게 됨을 깨닫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으며 자기 꾀에 배부르리라.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은 자기를 멸망시키려니와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1:31-33) 지혜로운 생각과 행위를 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먹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청종하여 주께서 베푸시는 평안과 안전함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성령님의 도움으로 악인이 아닌 의인의 길을 걷기를 기도한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3:10-11)

예수님의 제자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그 길이 좁고 험난하게 보이며 외롭게 느껴질지라도, 인내로서 끝까지 승리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21:19)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호흡하며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지혜를 얻기를 사모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지혜로 살아가는 삶! 자신의 능력만을 믿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지혜로의 초대에 바르게 반응하는 삶!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자로서 여호와 하나님을 늘 경외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삶! 이렇게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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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금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7. 28. 21:10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는 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는 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의 원수로 행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빌 3:18)

바울은 눈물로 많은 이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여 멸망의 길로 가는 자들을 좇을 것을 염려하며 간절한 호소를 한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사람마다 십자가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소망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를 어리석게 보는 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 그들이 멸망으로 가게 됨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빌 3:19)

여기서 ‘배’는 ‘위장’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한 자들은 욕심을 따라 행함으로써 배를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자,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늘 깨어 있어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땅의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 밖에 있을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계 22:15)

우리는 십자가와 원수가 되게 행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기쁨으로 주를 뵈옵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18-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숨을 걸고 따라가는 주님의 군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자신의 모습은 감추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되는 역사, 성령님의 도움으로 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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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7. 28. 21:09

믿음의 본.

믿음의 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본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본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믿음으로 살아갔음에 대해 확신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유혹을 경계할 것을 명하면서 자신을 본받아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좇아 행하라고 권면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여기서 ‘본’은 ‘원형, 따라가야 할 표상’을 가리킨다. 바울은 복음에 철저한 자신의 삶을 따르라고 성도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빌 3:17)

확신에 찬 믿음으로 바울은 고백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도들의 본이 되라고 권면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자신이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자, 타인에게도 믿음의 본이 될 수 있는 자가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체들 앞에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복 받은 자가 분명하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히 13:7)

우리의 삶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님의 아름다운 열매가 점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더욱 확고한 믿음으로 사는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 간에 서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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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늘에 시민권을 둔 그리스도인

성경: 빌립보서 3:17-21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3:19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3:20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3: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1. 유혹

영국의 도서 지방에 있는 니들즈(Needles) 근방의 사우스 다운즈(South Douns)라는 곳에서만 서식하는 특이한 종류의 나비가 있다. 한 곤충학자는 그 나비를 채집하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해가 지면 시럽단지와 솥을 가지고 언덕에 올라가, 엉겅퀴에다 솔로 시럽을 발라 놓은 뒤 밤중쯤 되어 그곳에 가보면 나비들이 시럽에 달라붙어 날아가지 못합니다.’ 이는 사탄의 속임수와 흡사하다. 사탄은 온 거리마다 쾌락의 단물을 발라 놓고는 유혹받은 자들의 발목을 잡아 놓는다. 달콤한 독배를 마시고 위험에 대한 모든 의식을 상실하도록 유혹한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어떠한 것에 붙잡혀 살아가고 있는가? 사탄의 유혹을 따라가는 자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자, 성령님의 음성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늘 소망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유대주의자들의 거짓 교훈에 대해 경계하면서 자신과 같이 오직 복음을 위하여 살 것을 명한다. 거짓 선생들은 육신의 욕심을 위하여 산다. 하지만 성도는 바울과 같이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둔 자로서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좇아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다. 본장은 빌립보 교회를 혼란케 하는 대적자들에 대한 바울의 엄중한 경고를 다루고 있다. 즉 유대주의자들이 여느 교회와 마찬가지로 빌립보 교회에 침입하여 복음의 순수성을 흐리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논쟁적인 어조의 엄중한 경고를 한다. 본장에 수록되어 있는 바울의 적대자와의 논쟁은 당시 초대교회의 상황과 바울 자신의 입장을 밝혀 주고 있다. 바울은 본장에서 자신의 적대자들을 가리켜 개들, 행악하는 자들, 손할례당등으로 표현하고 있다. 유대화를 획책하는 무리들을 향하여 바울은 매우 신랄하게 책망한다.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단락에서 바울은 적대자들에 대한 강경한 경고와 더불어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 생활이 가져다 준 유익에 관하여 설파하고 있다(1-14). 둘째 단락에서는 빌립보 교인들이 바울을 본받아 진리를 굳게 잡고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되 거짓 교사를 멀리하라고 경계하고 있다(15-21).

 

3. 믿음의 본(17)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본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본을 보이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믿음으로 살아갔음에 대해 확신했다. 바울은 유대주의자들의 유혹을 경계할 것을 명하면서 자신을 본받아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좇아 행하라고 권면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3:17) 여기서 원형, 따라가야 할 표상을 가리킨다. 바울은 복음에 철저한 자신의 삶을 따르라고 성도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3:17) 확신에 찬 믿음으로 바울은 고백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성도들의 본이 되라고 권면했다.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딤전 4:12) 자신이 믿음의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자, 타인에게도 믿음의 본이 될 수 있는 자가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체들 앞에서,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본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는 복 받은 자가 분명하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이르고 너희를 인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저희 행실의 종말을 주의하여 보고 저희 믿음을 본받으라.”(13:7) 우리의 삶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하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본이 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님의 아름다운 열매가 점점 더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내가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더욱 확고한 믿음으로 사는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 간에 서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는 자(18-19)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의 원수로 행하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3:18) 바울은 눈물로 많은 이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고 있음을 토로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여 멸망의 길로 가는 자들을 좇을 것을 염려하며 간절한 호소를 한 것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사람마다 십자가에 대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에게 십자가는 무엇인가?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우리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가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소망이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를 어리석게 보는 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 그들이 멸망으로 가게 됨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3:19) 여기서 위장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는 인간의 물질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한 자들은 욕심을 따라 행함으로써 배를 신으로 섬기는 자들이라고 교훈한다. 우리는 자신의 욕심을 따라 행하는 자,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늘 깨어 있어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땅의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 밖에 있을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도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렇게 말한다.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22:15) 우리는 십자가와 원수가 되게 행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에 가서 기쁨으로 주를 뵈옵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면 무엇이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내가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1:18-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숨을 걸고 따라가는 주님의 군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동안 자신의 모습은 감추어지고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게 되는 역사, 성령님의 도움으로 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역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20-2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에 시민권을 둔 자인가?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으나, 하나님 나라에 시민권을 둔 자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3:20) 바울은 성도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므로 땅의 일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며 섬겨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자신의 신분이 하늘에 소속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위엣 것을 찾는 지혜로운 인생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3:1-3)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인생, ‘는 죽고 예수로 사는 인생이 나의 삶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세상과 짝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힘들고 고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주와 함께 걸어가는 삶에 영원한 즐거움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16:11) 주님은 믿음의 사람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 주의 자녀들을 기쁨으로 충만케 하시기를 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깨닫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소망한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날마다 믿음의 사람들이 열방 가운데 더해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십자가를 지신 주님,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나를 살리시는 주가 되심을 믿음으로 고백하며 소망 가운데 즐거움으로 이 길, 믿음의 길을 걸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3:21)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우리도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될 것을 소망 삼고,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좇아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3:4)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로서 세상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사랑하며, 하늘을 소망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서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늘에 속한 삶을 사는 자!

우리는 하늘에 속한 삶을 살아갈 것을 믿음으로 결단해야 한다. 바울은 로마의 법치하에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법이 통치하는 영원한 하늘나라의 시민권도 소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나그네에 불과하며 정의와 평화의 법이 다스리는 영원한 본향으로 가는 과정에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이것이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운명과는 대조되는 놀라운 축복과 은총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 교훈을 따르거나, 땅의 거짓된 것을 바라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 그리스도로 인한 참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4:1) 하늘에 소망을 두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제자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1:8)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사라질지라도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주를 바라보며, 오직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의 사람으로서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하는 자, 예수님의 생명과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으로 살아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8:5-7)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님의 도움으로 확고한 믿음으로 살기를 소망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믿음의 본을 보이는 삶을 사는 자!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지 않고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살게 하며, 성령님의 도움으로 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 하늘에 시민권을 둔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하며, 하늘을 소망 삼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서 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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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성경: 시편 27:1-6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편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편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 소망

미국의 백화점 왕인 제이 씨 페니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는 심한 재정난에 허덕여 죽으려고까지 했고, 격리 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찬송 소리를 듣고 한 예배의 장소로 가 보았다. 그때 그곳에서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가 뒷좌석으로 다가가 앉으려 할 때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매우 익숙한 찬송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찬송은 그에게 위로와 큰 확신을 주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나를 좀 돌보아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그 후 그는 건강도 회복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결국 상업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소망의 하나님

본 시편은 어려움에 처할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 이전까지 선한 것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께만 소망을 둔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을 가진 주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본시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이런 일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기도 하는 일이다. 본시는 비탄시로서 자신의 슬픈 처지를 탄식하며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는 내용이다. 시인은 자신의 위기에 대해 호소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반드시 보호해 주신다는 신앙의 확신을 노래한다.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므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친다고 할지라도 두렵지 않다는 담대한 신앙고백을 한다(1-6). 이어서 시인은 자신이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있으니 여호와께서 응답해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주께서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버리거나 떠나는 일이 없기를 절실한 마음으로 부르짖는다(7-12). 마지막으로 시인은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함으로써 끝을 맺는다(13-14).

 

3. 두려워하지 않음(1-3)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빛이요 구원주이시며 생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어떤 두려움과 공포도 없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두려움은 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있는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다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과 보호의 능력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빛과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1) 여기서 능력은 원어로 <z/[m;: 마오즈>이다. 이는 피난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안전한 장소, 피난처, 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과 피난처가 되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형편 가운데 처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15:2) 모세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힘과 노래와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듯이 주를 신뢰하는 자들 앞에 있는 어떠한 문제와 상황도 해결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원수들이 왔으나 그들이 실족하고 말았음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7:2) 하나님이 의 편이 되어주신다면, 원수들도 어찌하지 못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울 것이 전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3:6) 담대하게 고백했던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날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매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담대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편 27:3) 여기서 ‘태연하리로다신뢰하다, 의탁하다를 의미한다. 다윗은 주를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군대가 진 칠지라도 전쟁이 일어나 자신을 치려 할지라도, 주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윗뿐만 아니라 에게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넉넉히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5-37)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이 부족한 자들은 주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를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안전함(4-5)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주 안에서 안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 27:4)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원어로 <!['n: 노암>이다. 이는 선함, 매력, 아름다운 점, 사랑스러움을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확신을 여호와의 집에 거하려는 갈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에 대한 바램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서 그 전에서 사모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안목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그분의 말씀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다윗과 같이 그분 안에 있을 때 안전함을 깨닫고, 여호와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하기를 소망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6) 우리에게도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가득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또한, 다윗은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키시는 주가 되심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시편 27:5) 여기서 장막회막, 여호와의 전이라고도 불리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주와 동행하기를 원했던 다윗은 환난 당할 때 하나님께서 주의 날개 아래에서 지켜 주심을 고백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갈망하는 다윗은 자신의 환난 날에도 여호와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고백한 것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이 임재해 계시는 장막 은밀한 곳에 자신을 숨겨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확신했다.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고백과 믿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늘 친밀한 교제가 있기를 소망한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께서 베푸시는 절대적인 안전과 은혜를 입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은혜로 인하여 환난을 당해도 요동하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처럼 우리도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방의 모든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반석 위에 든든히 선 우리의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7:24-25)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서가는 믿음이 의 믿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원했던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여호와를 찬송(6)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주를 높이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7:6) 여기서 제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 드려졌던 종교의식이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무찔러 주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드리며 주를 찬양할 것을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둘러싼 원수를 무찌르시고 높임을 받을 것을 확신했다.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원수들 앞에 두려워하거나 그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실 주를 기대해야 한다. 원수를 무찌르시는 주님, 모든 결과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주님을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21:13)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체험하고, 날마다 주를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주를 찬양하기를 소망한다. 지금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를 높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19-20) 우리는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자녀가 되어 서로 교제하며 주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해와 방패가 되시는 주, 은혜와 영화를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 달려가는 자, 그는 안전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18:10)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내가 만난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문제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건져 주시고, ‘를 사망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날마다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자!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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