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728x90
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7. 16. 09:41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은혜, 로마서 11:33-36

말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은혜

성경: 11:33-36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1. 소경인 아들

나면서부터 소경인 아들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세상의 아름다움과 사물을 이해시키려고 열심히 설명을 했다. 그러나 아이는 별다른 느낌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명성 있는 안과 의사를 알게 되었다. 다행히도 그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아들은 천신만고 끝에 눈을 뜰 수 있었다. 아이는 이제야 어머니의 얼굴과 흰 구름 등 세상을 느끼고 볼 수 있었다. 아들은 눈을 뜬 후 엄마에게 묻는다. ‘왜 제가 이런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진작 말씀해주지 않았어요?’ 그러자 엄마는 얘야, 수없이 얘기했지만 네가 믿지 않았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란다.’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영혼의 눈이 열릴 때에만 진정한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넘쳐나게 된다.

 

2. 구원의 은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땅히 그 영광과 감사를 받으셔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도덕적 선행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이들이 있다. 이렇게 율법적 자력 구원의 상태에 머무는 자가 있다면 그는 이스라엘의 무지함을 반복하는 자이다. 우리는 구원자 되신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며, 은혜의 주권자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바울의 감사와 찬송처럼 매일 그 깊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감사하는 신앙이 울려 나도록 해야 한다. 바울은 본장에서 자신처럼 이스라엘 가운데 구원 얻은 자들도 있다고 말한다(1-10). 그러나 이스라엘의 실패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들에게로 가게 되었다. 이방인들은 돌 감람나무와 같이 소망이 없었지만 참 감람나무의 뿌리, 곧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이 되었다. 이들이 자긍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을 먼저 입었던 이스라엘도 교만하므로 버림당한 사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접붙임을 받는 것이 겸손히 주님을 믿는 데만 달려 있기 때문이다(11-24).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을 자들의 수가 찰 때에는 다시 이스라엘 백성의 회개할 기회가 이른다(25-30). 또한 바울은 마지막에 하나님의 지혜를 찬송한다(33-36).

 

3. 구원의 역사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는 구원의 역사를 찬양한다. 이는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와 지식의 풍요함으로 말미암았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는 바울의 고백은 무엇을 증거하고 있는가? 이는 창조주이시며 구원주이시며 심판 주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잘 증거하고 있다. 이러한 구원 교리는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와 근거를 제시한다.

 

4. 깊으신 하나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는 은혜는 얼마나 클까? 하나님은 얼마나 풍성하신 분이신가? 우리는 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을 고백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우리는 풍성하신 하나님, 그분의 판단을 잘 헤아리지 못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그 분의 판단을 신뢰하며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서 사탄에게 고통 받은 욥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에게는 엘리바스, 빌닷, 소발이라는 세 친구가 있었다. 이 중 소발과 욥의 대화 중 소발은 하나님을 이렇게 묘사한다.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11:7-9) 우리는 깊고 크고 넓으신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주님의 뜻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까? 다윗은 주의 의와 판단에 대하여 말한다. 하나님은 사람뿐만 아니라 짐승도 보호해 주시고 주의 의는 우람한 산줄기 같고 주의 판단은 바다와 같다고 고백한다.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판단은 큰 바다와 일반이라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보호하시나이다.”(36:6) 또 다윗은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음과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이 많음을 말한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40:5) 주님이 하신 일은 크고 크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행사가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심히 깊으시니이다.”(92:5) 우리 주님은 크고도 크신 분이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를 구원해 주신 은혜에 크게 감격해야 한다.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죄 사함 받았음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1:7) 우리 하나님은 깊으시고 그분의 은혜는 풍성하다.

 

5. 주님의 마음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주님의 생각을 잘 알 수 있을까? 바울은 주님의 생각을 잘 아는 이가 없으며 주님의 의논의 상대가 될 만한 이가 없다고 말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11:3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님의 생각을 잘 안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주님의 의논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우리가 크신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알기 위해 힘써야 한다. 지금 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이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고백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전 2:1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성경에도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습니다.”(고전 2:16) 아버지의 마음을 잘 헤아리며 아버지의 마음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우리가 된다면 감사한 일이다.

우리는 주님의 일을 감당함에 있어서 어떠한 각오를 가지고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주님의 십자가에도 그리고 그의 영광에도 참여할 각오가 있어야 한다. 어떤 힌두교 여인이 뜻밖에 침례교 선교회에 크리스쳔으로서 침례를 요청했다. 선교회는 그 여인에게 믿던 종교를 포기함으로 당해야 할 고난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여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모든 고난을 기꺼이 받겠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나의 주님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이 나를 위해 받으신 고난과 비교할 만큼 큰 고난은 결단코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를 향한 우리의 마음은 어떠한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의 크나큰 특권이며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증거이다.

 

6. 여호와의 광대하심

우리 주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우리 주님은 광대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광대하신 주님을 기뻐해야 한다. 우리는 그 분의 광대하심 앞에 엎드릴 수밖에 없다. 바울은 하나님께 먼저 드렸으니 하나님이 갚아 주셔야 한다고 말할 사람이 없음을 고백한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11:35) 주께는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있다. 천지는 다 주의 것이고 주는 만유의 머리가 되신다. 여호와여 광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이김과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유의 머리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유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자를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12) 우리는 모든 것이 주의 손에 달렸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은 우리는 광대하신 주님의 일하심을 신뢰해야 한다. 바울은 주님께 받은 은혜가 큼을 고백한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고전 4:7)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누가 여러분을 남달리 뛰어나게 하였습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 중에 하나님에게 받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가진 것이 하나님에게 받은 것이라면 어째서 받지 않은 것처럼 자랑합니까?”(고전 4:7) 우리는 모든 것은 광대하신 주께로부터 왔고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선포해야 한다.

 

7. 주님께 영광

우리는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신다. 만물은 주에게서 나왔고 다시 주께로 돌아간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11:36) 우리는 주님의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다윗은 권능 있는 자들에게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릴 것을 말한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29:1-2) 주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순결한 신부로서 주님을 경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세상 모든 만물은 어디로부터 나왔는가? 바울은 만물이 주로부터 말미암았고 자신들도 그로 말미암았음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고전 8:6) 만물의 처음이 되시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삶을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바울은 주님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원했다.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3:21) 우리는 교회와 예수님 안에서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만물은 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고 주님은 만물 이전부터 계신 분이심을 기억해야 하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1:15-17) 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정사와 권세가 다 주님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알고 주님의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소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8.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리며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가운데 은혜로 구원의 은총을 입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찬송과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찬송을 받으시기 위해 허물 많고 죄 많은 를 구원해 주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구원은 주께로부터 나왔음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주님의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기를 소원해야 한다.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 4:18) 그 분은 죽지 않으시고 빛 가운데 거하신다.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오직 주께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려 드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를 살리시고 날마다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야 한다.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은혜에 감격하며 주님을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

 

728x90
728x90

말씀: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

성경: 시편 128:1-6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128: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128: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1. 따뜻한 말

Q: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4수에 실패한 인생 낙오자입니다. 잘하려고 해도 뭔가가 제 앞을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를 해도 자신이 없고 그저 죽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집에서도 저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주위의 시선은 너무나 따갑고 냉정하기만 합니다. 누구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데 아무도 저를 위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말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A: 가스보일러, 난로, 전기장판, 모닥불, 아궁이, 열 내는 하마.....

 

2. 가정생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가정생활의 즐거움에 대하여 다룬 본시는 작자 미상의 지혜시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복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축복의 분위기의 시로, 성전에 도착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용으로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본시에 나타난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정겨운 느낌을 준다. 저자 미상인 본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리는 가정생활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다. 본시의 토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축복의 분위기가 바로 의인의 가정에 머무르는 것이다. 본시는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을 축복을 그리고 있으며(1-2), 나아가 의인의 가정이 받는 실제적인 축복을 보여 주고 있다(3-6).

 

3. 주를 경외함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우리는 감격하고 있는가? 감격하는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어떠한 모습을 기뻐하실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경외는 문자적으로 어떤 신적인 능력에 대해서 인간이 가지는 두려운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두려움과 존경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편 128:1) 길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길은 원어로 <&r<D<:데라카>이다. 이는 걷다또는 인도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도 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은 어떤 길일까? 다윗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기록한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주의 율법을 좇아 살아간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1-3) 우리는 주의 율법을 좇아 살아가는 자들에게 형통하는 복이 있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자들은 어떠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까?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들은 아담의 범죄 이후 수고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하나님은 범죄 한 아담에게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하고 흙으로 돌아가게 됨을 말씀하신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9)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동안 나그네의 삶을 살다가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짧은 시간동안 주님을 잘 경외하고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12:1)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하며 형제들에게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되 최선을 다해 힘써서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4. 형통하게 됨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복을 주실까?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형통하게 되는 복을 주신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피조물들은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살아간다. 이러한 삶도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애 쓴다고 하여 모두가 다 수고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삶이 우리의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면 수고한 만큼 좋은 결과로 베풀어 주신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128:2) 우리는 주님을 잘 경외하여 형통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고 옥에 갇히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주를 경외했던 그에게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49:22) 주를 경외했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불순종하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순종하는 자가 될 것인가?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결과도 다름을 기억해야 한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게 된다. “네가 포도원을 심고 다스릴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28:39)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여 수고할지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잘 되는 복을 주신다.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28:4) 우리는 모두가 주를 경외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통하게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5. 아내와 자녀의 복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가? 아내와 자녀의 복을 주신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128:3) 포도는 영어로 Vine(Grape) []Vine (Grape), 포도나무에 열리는 열매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포도나무 과에 속하는 낙엽성의 덩굴이 뻗는 식물로서, 전 세계에 600여종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포도(vine, Vitis vinifera), 올리브와 함께 팔레스티나에 있어서의 중요한 과수였다. 경제적으로서의 그 중요성은 곡물의 다음이지만, 그 재배에는 많은 손이 가야 하는 것이므로, 나봇의 포도밭의 실례가 보여 주는 대로, 소유자의 집착은 강렬했다(왕상 21:3비교). [(올리브)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6:6)는 구절은 이들 과수의 중요성에 관련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감람나무는 []tyIz"(zayith) []ejlaiva(elaia)이다. 영어로는 Olive(올리브)인데 감람은 감람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푸른빛이 나는 타원형의 핵과로 맛이 좀 쓰고 떫다. 이것은 중국 감람(Chinese olive)이고, 성서에 있어서 감람으로 역된 히브리어 [자이스]는 올리브나무와 그 열매를 가리키고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것은 이 올리브의 잎이었다(8:11). 이것은 평화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 올리브는 서아시아 원산으로, 일찍부터 지중해 연안에 이식되어, 올리브와 무화과는 지중해적 특징의 과실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가장 귀중한 과수의 하나이다. 자식들이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하였는데, 어린 감람나무가 장차 감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자녀들도 풍성한 축복을 가져올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를 경외할 때 결실한 포도나무 같은 아내의 복과 장차 감람 열매를 맺게 되는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녀의 복을 받게 된다. 우리는 자녀의 소중함을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은 자녀가 많은 자는 복되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127:5) 이들은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 주님을 경외하는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주를 경외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52:8) 다윗이 자신을 주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세상 끝 날까지 그 분만을 섬기며 그분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6. 주를 경외하는 자의 복

우리는 하나님이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심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128:4)

주의 도우심이 없이도 우리가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그네의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어떠한 것도 계속되게 안전하지 못함을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는 헛되다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127:1) 인간의 모든 노력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가운데서 헛된 노력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 지켜주셔야 우리의 삶의 모든 것들은 안전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를 의뢰해야 하는가? 우리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여호와를 의뢰해야 한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125:1) 우리가 주님을 의뢰할 때 요동치지 않고 주와 동행하며 안전하게 된다.

 

7. 예루살렘에 대한 축복

주를 경외하는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어디로 나가가야 할까?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128:5) 예루살렘의 번영을 본다는 것에서 보며의 의미는 눈앞의 실제 상황을 확인하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확실함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시온은 어떠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시온은 Zion(지명) (@/Yxi, Siwvn, Zion)요해하나님의 거룩한 산의 이름이고 시편, 이사야서, 예레미야서에 빈번히 인용되고 있다.

창세기, 사무엘상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으나, 구약에는 152, 신약에는 7, 외전에 16회 기록되고, 그 빈도가 높은 것은 이 이름이 지니는 종교적 의의의 중요성을 보이고 있다. 이 이름이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은 사무엘하 5:7(대상 11:5)인데, 다윗이 이 요해를 점령하고 다윗 성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동남 구릉, 기드론 골짜기와 듀로브온 골짜기 사이에 융기해 있는 구릉을 가리키는데, 처음에는 이 구릉을 시온이라 불렀다(왕상 8:1). 솔로몬이 다윗 성의 북쪽 높은 구릉에 성전을 세우고서부터 이 성전의 구릉을 시온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시편 기자는 시온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다(48:2, 50:2). 시온은 여호와께서 세웠고(14:32), 거룩한 산(2:6), 여호와의 거처(9:11)이다. 여호와께서는 시온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고(1:2) 거기서 구원을 보내며(14:7, 53:6), 거기서 축복하신다(128:5, 134:3).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시온은 주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이 거하시는 곳을 사모하여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기자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실 것을 말한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134:3) 이사야가 받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에서 백성들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주의 도로 자신들을 가르칠 것을 말한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2:3) 주를 경외하는 우리는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울은 복 주실 주를 찬송하라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118:26) 주님 계신 곳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8.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 주심

우리는 어떠한 자로서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야 할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축복과 돌보심을 받을 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면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영원토록 복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주님을 잘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생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평강을 주시는 주

하나님은 평강의 주님이 되신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자손 대대로 평강이 임하게 된다.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로다.”(128:6) 욥은 하나님이 허락했던 고통가운데서도 주를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했던 욥은 말년에 이전보다 더 큰 복을 받게 되었다.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42:16) 우리는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 계신 곳을 사랑하여 평강의 복을 누려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66:12) 평강을 주시는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 하늘의 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