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6. 14. 07:41

참 하나님을 높이고.

참 하나님을 높이고.

(바른성경) 예레미야 10:10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이시며, 영원한 왕이시니, 그 진노에 땅이 진동하며 민족들이 그 분노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참 하나님을 높이며 그분께 경배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예레미야 10:10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永遠한 王이시라 그 震怒하심에 땅이 震動하며 그 忿怒하심을 列邦이 能히 당치 못하느니라

(영어esv) 예레미야 10:10 But the LORD is the true God; he is the living God and the everlasting King. At his wrath the earth quakes, and the nations cannot endure his indignation.

(히브리어modern) 예레미야 10:10 ויהוה אלהים אמת הוא אלהים חיים ומלך עולם מקצפו תרעש הארץ ולא יכלו גוים זעמ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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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

성경: 느헤미야 4:1-6

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4: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4: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4: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1. 안전함

어느 날 한 여인이 부리로 쪼는 듯한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그녀가 일어나 보니 유리창 안에서는 나비가 이리저리 소란스럽게 날고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는 참새가 들어오려고 유리를 쪼고 있었다. 유리를 보지 못한 나비는 곧 잡히리라 생각했다. 역시 유리를 보지 못한 참새도 쉽게 나비를 잡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비는 안전했는데 그 이유는 참새와 나비가 보지 못한 그들 사이의 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안전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늘 영적으로 깨어있어 기도하며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평안함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

바사 왕실의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하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훼파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 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고서 BC.444년에 유다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이방인들은 이 일을 방해하기 위해 계략을 세웠다. 그들은 유다 백성을 말로 조롱하여 낙망시키려 했다. 그들은 그 일이 실패하자 무력으로 침공하여 그 사역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유다 백성을 격려했다. 그리하여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성벽 재건 사역을 감당했다.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처음에 유대인의 성벽 건축 소식을 들었을 때 불가능한 일을 한다고 비웃었다(1-3).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앙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건축 공사를 하여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다(4-6). 이에 산발랏과 암몬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은 당황하여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저지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러한 원수들의 위협과 책동으로 유대의 건축 담당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유대인들의 마음은 조금씩 분열되기 시작했다(7-12). 그러나 느헤미야는 용기를 잃지 않고 백성들을 격려하고 주를 기억할 것을 강력히 권면했다(13-14). 그리하여 온 백성들이 다시 힘을 얻고 신앙 안에서 한마음이 되어서,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에는 연장을 들어 외적에 대한 방비와 성벽 건축의 일을 동시에 진행해 나갔다(15-23).

 

3.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분노하는 자들(1-3)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어떻게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산발랏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분노하여 비웃는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4:1)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의 과정을 본 산발랏은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를 모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공개적으로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의 사역을 비웃었다. 산발랏은 유다 백성들 앞에 놓인 일이 매우 중하고 어려운 일임을 밝힘으로 유다 백성의 의욕을 상실하도록 만들려 했다. 또한, 이 비웃음 속에는 유다 백성의 일을 방해하여 못하게 만들겠다는 협박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비웃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구약 성경에는 다윗을 비웃는 골리앗이 등장한다. 블레셋을 대표하는 거인 골리앗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다윗을 알아보지 못했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삼상 17:43-44) 우리는 육의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자가 아닌,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산발랏은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유다 백성들을 이렇게 비난한다.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4:2) 여기서 미약한은 원어로 <!ylil;mea}:아말렐림>이다. 이는 수목이 말라 죽듯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산발랏은 유다 백성들을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들로 보았다.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총독으로서 유대 제사장 가문과 사돈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느헤미야의 행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 재건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우 분노했다. 그는 느헤미야에게 아닥사스다 왕을 배반하려 하느냐고 말하면서 반감을 표시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2:19) 그러나 느헤미야는 개의치 않고 성곽 재건 공사를 시작했고 그래서 산발랏은 분노했던 것이다. 산발랏의 분노는 결국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 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했다(6:2).

산발랏과 함께 유다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비웃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 사람은 암몬 사람 도비야인데 산발랏의 측근이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4:3) 도비야는 산발랏을 도와 유다 백성의 사역에 대해 비웃으며 조롱했다. 산발랏이 유다 백성의 무능함과 그 사역의 어려움을 진술하여 유다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려고 시도했다면, 도비야는 유다 백성이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리라말하며 유다 백성의 사역 결과에 대해 비웃었다. 우리는 산발랏과 도비야처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깨닫지 못하고 비웃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11:36) 우리는 믿음 안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일 앞에 비난하는 자가 아닌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강퍅한 마음으로 사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느헤미야의 기도(4-5)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자들의 비난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원수들의 비난과 조롱이 있을 때,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그분께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4:4) 악한 자들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을 비웃으며 조롱할 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다. 그는 공의의 하나님께 악인들의 악행을 심판해 주시기를 구했다. 그들은 유다 백성들을 조롱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이 주의 노를 격동하였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성벽 재건 사역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주의 일꾼으로 맡음 바 사명을 잘 수행할 때에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기도와 함께 유다 백성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의 협박과 조롱을 개의치 않고 성벽 재건 사역을 잘 감당했다. 어려움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구약 성경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당당하게 나아갔다.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 17:26)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그는 복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시편에서 아삽은 예루살렘 성이 황폐화 되었고, 이스라엘은 이웃 나라들의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을 때에 긍휼을 구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훼방한 그 훼방을 저희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79:12) 또한, 자신을 헤치려는 음모 앞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유다 지도자들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박해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18:23) 예레미야는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며 원수들에게 보응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는 복된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3:34)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악의 축에서 사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원수들의 비난과 조롱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고 기도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완성되어 가는 예루살렘 성벽(6)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면 어떠한 결과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일은 성취가 됨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4:6) 우리는 하나님의 반대편이 아닌 하나님 편에 서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날마다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일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일을 즐거워했던 한 인물이 구약에 등장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다.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대상 29:3)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것들을 주님 앞에 기쁨으로 드렸다. 또한,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음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다윗처럼 하나님의 일을 기뻐하며, 그분의 역사를 기대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바란다. 아직도 주님 안에서 믿음이 없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기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52일만에 끝나게 되었다. “성 역사가 오십 이 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6:15)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은 결국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의 역사에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분의 큰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110:3) 우리를 통해 일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큰 경륜을 깨닫고 행하며 그분께만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3:21)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지 않은 세상 가운데서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일은 성취가 됨을 깨닫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믿음 안에서 잘 인내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 안에서 잘 인내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유다 백성들은 성벽 재건의 역사를 경험하며 기뻐한다. “이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12:43) 유대인들이 성벽을 재건할 때에 당한 고난과 환난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었다. 우리는 불순종 이외의 이유로도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겪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 속에서 강인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져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신앙생활 하는 동안 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자! 원수들의 비난과 조롱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그분께 기도하는 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일은 반드시 성취됨을 깨닫는 자! 이런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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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0. 10. 07:15

혀.

혀.

(바른성경) 잠언 25:23 북풍이 비를 몰고 오듯 험담하는 혀는 얼굴에 분노를 일으킨다.

험담을 멀리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잠언 25:23 The north wind driveth away rain: so [doth] an angry countenance a backbiting tongue.

(히브리어Modern) 잠언 25:23 רוח צפון תחולל גשם ופנים נזעמים לשון סת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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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12. 1. 06:37

더러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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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16. 13:29

감정과 언어에 있어서의 지혜, 잠언 15:1-4

말씀: 감정과 언어에 있어서의 지혜

성경: 잠언 15:1-4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15:2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15:3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15:4 온순한 혀는 곧 생명 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

 

1. 영혼사랑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으로 갈 선교사 지망생들을 접견하여 당신들은 무엇 때문에 선교사로 중국에 가려고 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후보자들은 제각기 중국의 수많은 영혼들이 멸망의 길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중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의 대답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대답만으로는 고난과 역경에 부딪히면 쓰러지고 말겁니다.’ 그 후 한 지망생은 이렇게 다시 묻는다. ‘그러면 선교사님은 무슨 동기로 가셨습니까?’ 그러자 허드슨 테일러는 이렇게 답한다. ‘내겐 한 동기밖에는 없습니다. 그들을 사랑해서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는가? 오직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언어생활

본장의 1-2, 4, 23, 28절은 모두 언어생활에 대한 교훈이다. 어떤 사람의 언어생활을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가 있다. 사람은 마음에 쌓은 것을 그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미련한 자는 그 마음에 쌓아 놓은 악을 그의 입을 통해서 쏟아낸다. 그는 노를 격동하는 과격한 말을 하고, 패려한 것을 말하며 자신의 미련함을 드러내는 말을 한다. 참으로 미련하고 악한 자의 말은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하다. 그의 혀는 마치 칼과 같아서 그것을 듣는 이와 말하는 이 모두를 상하게 한다. 그러나 지혜 있는 자는 분노를 쉬게 하는 온유한 말을 하며, 때에 맞는 아름다운 말을 깊이 생각한 후에 한다. 그의 혀는 생명나무와 같이 듣는 이의 마음을 치료하며 생기를 북돋아 준다. 그의 입과 입술은 참으로 복되어서 말하는 이와 듣는 이 모두를 행복하게 한다. 참으로 그는 그의 입술의 열매로 인한 복록을 누린다.

 

3. 의인과 악인

의인과 악인의 특징에 대해 비교하고 있는 본장은 특히 하나님께 대한 태도의 차이를 자세히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악인과 의인의 모든 차이가 결국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에서 연유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본장은 참된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함이라는 잠언 전체의 주제를 다시 한 번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말을 할 때 지혜롭게 하는 자는 화평을 이루나 과격한 말은 다툼을 일으킨다(1-7).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자는 제사를 드려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고 오히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8-12). 사람의 참된 기쁨은 물질에 있지 않고 마음의 화평에 있으므로 분을 내지 않고 사랑의 마음을 지니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다(13-20). 그러므로 의인은 지혜로운 말을 즐겨하고 불의한 뇌물을 멀리함으로 소원이 이루어지나, 악인은 훈계를 멸시하고 여호와를 멸시함으로 음부에 들어가게 된다(21-33).

 

4. 분노의 감정(1)

우리는 어떠한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자신에게 들리는 말에 따라 감정이 요동하기도 하는 것이 연약한 인간이다. 우리가 분노의 감정을 잘 다스리고 기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말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우리는 유순한 말을 하고 과격한 말을 멀리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상대의 어떠한 말이 자신을 화나게 할 때에도 노하기를 더디 할 수 있어야 한다. 노와 분에 대해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29:22) 노할 수 있는 상황에 서로 노하기에 열심을 낸다면 다툼은 그치지 않게 된다. 그리고 분을 내고 분 품은 삶을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슬퍼하실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잘 지켜야 하는가?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돈, 권력, 명예를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에 탐심을 버리고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마음이 탐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풍족하게 되느니라.”(28:25) 탐하는 마음은 다툼만 일으키게 함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여 풍족한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분을 쉽게 내면 다툼을 일으키나 노하기를 더디 하면 시비가 그치게 될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분을 쉽게 내는 자는 다툼을 일으켜도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시비를 그치게 하느니라.”(15:18) 믿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원수라도 사랑 할 수 있는 믿음의 태도가 필요하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크고 놀라움을 알고, 가슴으로 그 사랑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잠언은 미움과 사랑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10:12) 우리 앞에 어떤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미움의 결과는 다툼이고 사랑의 결과는 평안임을 반드시 기억하고 사랑하기를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언제나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아름다운 말을 하며 타인에게 뜨거운 주의 사랑을 전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지혜 있는 자(2)

무엇을 소유하는 것이 믿는 자들에게 큰 복일까? 그리스도인들은 주 안에서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이 지혜가 부족하다면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아름다운 말을 하는 우리가 된다면 감사한 일이다. 솔로몬은 혀와 입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다.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15:2) 혀를 다스리는 것은 쉽지 않지만 성령님의 은혜로 혀를 잘 훈련받아 성숙한 언어를 사용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마음은 주님 닮은 마음이 되어야 한다. 의인과 악인의 말은 다른데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15:28) 우리는 입을 통해 악을 쏟아내기 보다, 깊이 생각하고 말하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우매한 자가 아닌 지혜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함이 인생의 참된 행복이라고 말했던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지혜자의 말과 우매자의 입술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지혜자의 입의 말은 은혜로우나 우매자의 입술은 자기를 삼키나니 그 입의 말의 시작은 우매요 끝은 광패니라.”(10:12-13) 연약한 인간은 말의 실수를 종종 한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며 입의 말을 통해 은혜만 흘러갈 수 있도록 언제나 성령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마음을 갖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16:23)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내가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인간의 노력으로 자신의 마음을 수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마음을 갖게 되고 아름다운 입술의 열매를 얻게 될 것이다. 인생의 길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자신의 연약한 부분을 늘 주님께 아뢰어 드리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주께서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대저 사람의 길은 여호와의 눈앞에 있나니 그가 그 모든 길을 평탄케 하시느니라.”(5:21) 주님께 기도하여 하늘의 지혜를 덧입고 성령님의 은혜로 혀를 잘 다스려 지혜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감찰하시는 주(3)

우리를 감찰하시는 분은 누구신가?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주님은 나의 마음의 슬픔과 기쁨을 다 알고 계신다. 솔로몬은 인간을 어디서든지 살피시는 여호와의 눈이 있음을 말한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15:3) 우리는 살아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악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최고 우선순위로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어 드려야 한다. 큰 죄나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주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 보혈로 용서함 받아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어 드리고 주와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사람의 걸음을 감찰하시는 전지전능하신 주가 되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길을 주목하시며 사람의 모든 걸음을 감찰하시나니 악을 행한 자는 숨을만한 흑암이나 어두운 그늘이 없느니라.”(34:21-22)

인간은 하나님의 눈을 피해 숨을 수 없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를 감찰하시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언한다.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감찰하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김을 얻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은폐되지 못함이라.”(16:17) 하나님은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23:24) 우리의 선과 악은 하나님 앞에서 다 드러나게 될 것이다.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3)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잘못한 것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주님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주의 일을 잘 감당하는 충성된 주의 일꾼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온순한 혀(4)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온순한 혀를 가지고 생명을 흘러 보내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온순한 혀는 곧 생명나무이지만 패역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15:4) 간사한 혀는 거짓을 말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네 혀가 심한 악을 꾀하여 날카로운 삭도 같이 간사를 행하는도다. 네가 선보다 악을 사랑하며 의를 말함보다 거짓을 사랑하는도다(셀라). 간사한 혀여 네가 잡아먹는 모든 말을 좋아하는도다.”(52:2-4) 우리는 남의 말을 하는 것이 죄임을 알고 이러한 습관을 멀리하는 주의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18:8)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쁜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 사람의 말은 맛있는 음식과 같아서 사람들은 그것을 삼키기 좋아한다.”(18:8) 우리는 주님을 최고로 사랑하기를 소망하는 구별된 자로서 입술에 선한 말이 넘쳐나야 한다.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16:24) 우리는 성령님께서 삶을 지도하시므로 선한 말을 하여 예수님의 생명을 전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감정에 기초한 언어 사용을 하는 연약한 자들이 되지 않아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가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칭찬받을 만한 언어를 사용하는 지혜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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