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해당되는 글 108건
- 2018.01.20 신뢰.
- 2018.01.18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마태복음 5:13-16
- 2017.11.25 감정과 언어.
- 2017.11.20 계획&응답.
- 2017.11.12 광주 새로운 교회 임승관 목사, 참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 171112
- 2017.09.06 회개.
- 2017.06.21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 예레미야 51:11-14
- 2017.05.14 광주 새로운 교회 임승관 목사, 살아가는 동안에 주의 은혜를 입고 170514
- 2017.04.25 마음.
- 2017.01.05 하나님.
말씀: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성경: 마태복음 5:13-16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 소금과 빛
우리는 꽃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꽃이 시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꽃이 그 최고의 특성을 상실할 때, 그것은 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승용차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 차가 사고가 나서 더 이상 차로써 그 구실을 하지 못할 때, 그것은 쇠붙이로서 다시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소금과 빛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금과 빛은 그 기능을 일단 상실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인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으로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 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잘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사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절).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절),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절),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절).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복수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절).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절).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 하기 때문이다(48절).
3. 세상의 소금(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세상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여기 ‘소금이니’의 소금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금은 구약에서는 부패 방지에 긴요한 물질이었고, 정결과 순수함의 상징어로 등장한다. ‘소금’은 [히] jl'm,(melach) [그] a{la"(halas) [영] Salt이다. 소금의 화학명은 염화나트륨이고 보통 식염이라고도 한다. 천연 해수 중에는 약 2.8% 포함되고, 또한 암염에서도 산출된다. 사해의 물은 보통해수의 6배 가까이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제염에 이용되고, 그들 이스라엘은 세돔(소돔)에서 근대적 제염공업을 발달시키고 있다. 소금은 성막, 성전에서의 제물에 넣어졌다(레 2:13, 겔 43:24). 소금은 맛이 변치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데, ‘함께 소금을 먹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우정의 상징이다. 그리고 [소금의 언약]이라는 표현을 낳았다(대하 13:5와 스 4:14 비교). 그런 점에서 막 9:50에 있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는 명령과 ‘서로 화목하라’는 말이 결합되어 있는 일은 의미가 있다. 소금은 또한 건전한 인격과 언어에도 사용되어 있다(골 4:6). 반면에, 파괴된 성읍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삿 9:45). 롯의 아내는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를 돌아다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창 19:26). 우리는 예수님도 지상의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하셨음(눅 17:32, 33)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지옥에 가는 이들은 누구나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을 말씀하신다.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49-50)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옥에 가는 자들이 아니라, 천국에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형제자매로서 서로 원수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법대로 다시 살아가는 자가 아닌, 주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벧후 2:20-21)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세상이 좋아서 다시 세상을 향해 간다면 그의 믿음은 주님께 칭찬받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는 거룩한 주의 백성,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다. 우리는 맛을 잃지 않는 소금, 이 소금으로서 반드시 세상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세상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들이 아닌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소금으로서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매일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눅 14:34-35)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금의 신분을 잊지 말고, 소금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세상의 빛(1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신분을 소유한 자들인가?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 여기 ‘빛이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빛은 거짓이나 부정의 개념과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며 여기서는 죄악된 세상에 복음을 밝히는 성도의 사명을 강조하는 말이다. 빛은 [히] r/a('or), r/am;(ma'or) [그] fw'"(phos) [영] Light이다. 빛은 육안으로 느끼는 비교적 파장이 짧은 전자파이다. 넓은 의미에서 눈으로 느낄 수 없는 자외선, 적외선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눈으로 느껴지는 빛을 가시광이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이 자연적인 빛 외에도 초자연적인 빛,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며(시 27:1, 119:105, 욥 24:13, 3:20), 하나님은 제 1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창 1:3). 그리고 하나님은 ‘옷 입음 같이 빛을 입으셨다’라고도 표현되어 있다(시 104:2). 빛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궁극적인 행복을 나타내는 생활과 관련해서도 기록되어 있다(시 36:9). 신약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빛이라’하시고(요 8:12, 9:5, 12:46), 또한 요 1:5에는 ‘하나님은 빛이시라’(oJ qeo;" fw'" ejstin)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빛으로 일컬어진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 5:14).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빛나는 것은 사람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빛의 사명은 무엇인가? 빛의 사명은 어두움의 세상에 빛을 발하여 모든 것을 비추는 일이다(마 5:6, 엡 5:8). 등대 위의 등불이 모든 것을 비추듯이 우리는 어두움의 세계에 참 빛을 보여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은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요 12:36)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를 가졌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한다.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고 천국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또한, 빛의 자녀들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우리는 모두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이신 예수님께 지도를 받으며 좁은 길을 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 가운데서 어두움의 유혹이 오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빛의 아들로서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믿음을 잘 지키어 나가야 한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등경 위에 등불(15)
어두움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빛으로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등불을 두어야 하는가?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마 5:15) 빛을 밝히기 위한 등불은 등경 위에 얹어 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등불’은 [히] r/am;(ma'or) [그] luvCno"(luchnos) [영] Light, Lamp, Torch인데, 등에 켠 불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장막이나 집안에 주야로 등불을 켜둘 필요가 있었다. 당시의 실내는 어두워서 주간에도 작은 것을 찾는데는 등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눅 15:8). 그리고 그것은 조명의 목적을 위함이기도 하고 항상 불씨를 손 가까이에 준비해 두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에서 여러 가지 상징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켜있는 등불은 건강과 활기있는 생활을 의미하고, 꺼진 등불은 그 반대를 의미했다(시 18:28, 잠 13:9, 24:20, 31:18 기타). 하나님은 사랑의 등불(시 119:105)이시고, 다윗도 이스라엘의 등불로 말해졌다(삼하 21:17-). 다윗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그가 한번 넘어지는 때면 이스라엘은 등을 잃어 암흑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등불은 하나님의 보호의 상징(욥 29:3)이었고, 계명은 인생의 등불(잠 6:23), 그리고 눈은 몸의 등불(마 6:22)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등불이시다(계 21:23→ 요 1:6-9, 8:12). 우리는 빛 되신 주님, 등불이신 주님을 따라 등불을 비추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놓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삶은 반드시 형통하게 됨을 알고, 그렇게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잠 4:18)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빛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빛의 자녀로서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영적으로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빌 2: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세대 가운데서 여러분이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빌 2:15) 우리는 흠이 없고 순전한 믿음을 가진 자, 악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서 영적인 복들을 받아 누려야 한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순수한 자이나, 큰 믿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의 신분을 가진 자임을 깨닫고,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나’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게 될 것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는 이미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임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여전히 어둡고 썩어져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빛과 소금임을 기억하고 주와 동행하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언제 어디서나 비취시도록 그분 앞에서 겸손히 서 있어야 한다. 빛을 받아들이는 자, 그는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자신 앞에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소망 삼고, 영원한 세계에서 왕 노릇하게 될 그 날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계 22:5) 우리 모두가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자, 세상의 빛으로 사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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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
성경: 예레미야 51:11-14
51:11 화살을 갈며 둥근 방패를 준비하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것 곧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이라
51:12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수꾼을 세우며 복병을 매복시켜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주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계획하시고 행하심이로다
51:13 많은 물 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
51: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숨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진실로 사람을 메뚜기 같이 네게 가득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향하여 환성을 높이리라 하시도다
1. 하나님의 능력
‘D. L. 무디’가 그토록 큰 일꾼으로서 사역할 수 있었던 최고의 비밀은 시편 62:11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나는 그 능력이 무디에게 있지 않음을 인하여 기뻐한다. 또한 ‘챨스 피니’에게 그리고 ‘마틴 루터’에게 속하지 않았음을 감사한다. 인류 역사 중 하나님이 사용하신 어떤 그리스도인도 그 능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다. 만일 D. L. 무디가 무슨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하면 그는 그것을 갖되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어떠한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R. T. Torrey의 묵상을 통해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과 바벨론의 멸망
본장에서는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되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드러나 있다. 전장은 바벨론의 죄악과 관련된 심판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반면에 본장에서는 심판의 구체적인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바벨론 심판의 주체에 대해서는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등의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 및 필연성을 강조했다. 바벨론은 한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대적했으므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그들의 교만 때문이라고 밝혀 주고 있다. 결국 바벨론 심판은 구속 계획 속에서 의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며, 바벨론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의 멸망에 관하여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백성 가운데 경건한 사람들에게 구원에 대한 소망과 용기를 주기 위함이다.
본장은 전장에 이어서 바벨론 심판의 필연성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전장에서 설명되었던 유다의 회복에 대한 기사가 생략되고 오직 바벨론 심판에 대한 내용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다시 언급하는 부분(1-14절), 하나님에 대한 찬송을 묘사하는 부분(15-19절), 여호와의 진노와 그 결국을 다루는 부분(20-26절), 바벨론을 적대하는 모든 열방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부분(27-32절), 바벨론에 적대하는 유다의 불평과 하나님의 보수하심을 묘사하는 부분(33-40절), 바벨론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부분(41-49절),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을 향한 여호와의 메시지를 선언하고 있는 부분(50-53절), 바벨론이 궁극적으로 황폐하게 될 것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54-58절), 결론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을 보여 주는 부분(59-64절)로 이루어져 있다.
3. 심판의 주(11-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을 일으켜 바벨론을 치고 자신을 대적하는 자 중에서 처하는 자를 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바벨론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어 바벨론을 치는 자가 임할 때에 바벨론 땅에는 죽음을 당한 자들로 차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보복하심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하신다면 불가능한 일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마음먹는다면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망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하나님께서 메대 왕들을 통해 바벨론을 멸하기로 하셨다고 말한다. “화살을 갈며 둥근 방패를 준비하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것 곧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이라.”(렘 51:1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화살촉을 벼리어 화살 통 가득히 넣어라. 야훼께서 메대 왕을 부추기어 바빌론을 멸망시키시기로 결심하셨다. 이는 당신의 성전이 짓밟힌 것을 복수하시는 것이다.”(렘 51:11) 하나님은 교만한 이들을 물리치시며, 뜻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고 마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북방에서 큰 연합국을 일으키어 바벨론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보라 내가 큰 연합국으로 북방에서 일어나 나와서 바벨론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항오를 벌이고 쳐서 취할 것이라. 그들의 화살은 연숙한 용사의 화살 같아서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리로다.”(렘 50:9)
한 때 사용되었던 바벨론도 그들의 선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쓰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였던 바벨론도 교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땅은 황폐케 되어 그중에 거하는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벨론 땅에서 도피한 자의 소리여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무릇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치고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 일한 대로 갚고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니라.”(렘 50:28-29) 하나님은 선하고 좋으신 분이시지만 하나님 앞에 교만히 행하는 자는 망하게 됨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방비하라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실 자는 있는가? 하나님은 계획하신 바를 이루시는 분이므로 연약한 인간이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성벽을 향해 기를 세우고 경비병을 보강하라고 대언한다.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수꾼을 세우며 복병을 매복시켜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주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계획하시고 행하심이로다.”(렘 51:12)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빌론 성벽을 향해 기를 세우고 경비병을 보강하며 관측병을 배치하고 매복조를 편성하라! 여호와께서 바빌로니아 국민에 대하여 이미 말씀하신 것을 계획대로 수행하실 것이다.”(렘 51:12)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의 보응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괴롭히고 하나님께 교만한 바벨론에 대해 보응하셔야만 했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서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하심 앞에 순종하는 태도를 간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바벨론을 멸하셨듯이 믿는 자들의 원수들에 대해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당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잘 깨달아야 한다.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잠 21:30) 우리는 자신의 지혜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분의 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이 땅의 많은 민족들 또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경영하시므로 우리는 주님의 편에 설 뿐이다. “땅이 진동하며 고통하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바벨론을 쳐서 그 땅으로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할 경영이 섰음이라.”(렘 51:29) 자기 삶의 모든 계획과 문제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맡기어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인생(13-14)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어 멸망시키는 사건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닌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권고하시는 것은 그들의 열조와 맺으신 언약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찬양하고 영광을 증거 할 것이다.
인생의 한계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한계는 어떠한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끝은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향하여 끝이 왔음을 대언한다. “많은 물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렘 51:13)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물이 많은 곳에 살며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수명이 다하였고 네 종말의 때가 되었다.”(렘 51:13) 아무리 좋은 곳에서 아무로 좋은 것들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인생들도 하나님이 때가 다 되었다고 말씀하시면 반드시 끝이 오게 된다. 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바라보고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한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눅 12:19-21) 자신을 위해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두었더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모든 것들을 그대로 놓고 이 땅을 떠나야만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작은 자가 바로 우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배부른 삶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힘쓰며, 하나님 앞에서 근신하여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하나님 앞에서 작은 존재인 자신의 위치를 알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목숨을 두고 맹세
하나님이 뜻을 정하시면 그 일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뜻을 확실히 하시며 움직이시면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어떠한 일이든지 이루어지고 만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대언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숨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진실로 사람을 메뚜기 같이 네게 가득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향하여 환성을 높이리라 하시도다.”(렘 51:14)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만군의 주께서 그의 삶을 두고 맹세하셨다. 내가 메뚜기 떼처럼 많은 군대로 너를 공격하게 할 것이니, 그들이 너를 이겨 승리의 환호를 외칠 것이다.”(렘 51:14) 하나님께서 뜻을 두고 행하시면 그 분은 분명히 일을 이루시고 마는 분이다. 우리는 인생의 주인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반드시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 받고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은 주님이 지었고, 우리는 주님의 통치하심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권능으로 땅을 지으신 주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 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 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렘 10:12-16) 우리는 뜻을 정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 앞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여 그 분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고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세상 모든 권세의 근원자
인간은 한없이 작고 인생은 지극히 짧다.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진 나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끝을 맞이하고 만다. 하나님은 열국에게 명하시어 바벨론을 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권세의 근원자로서, 열국의 왕들로 방백들을 시켜 바벨론을 공격하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열국에 의해 심판을 받은 바벨론은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군대를 통해 바벨론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을 보응하게 하셨다. 우리는 죄악에 대해 반드시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며,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그분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측량치 못할 판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 지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 지어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 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 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시 148:1-5) 우리는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바벨론을 멸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인생의 한계를 깨닫고 세상 모든 권세의 근원자 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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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성경) 창세기 8:21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맡으시고 마음 속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다시는 사람 때문에 땅을 저주하지 않겠다. 사람이 마음으로 의도하는 것이 어려서부터 악하기 때문에 내가 이번에 했던 것처럼 모든 생물을 다시는 멸하지 않겠다.
인간의 마음의 악함을 알고 은혜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창세기 8:21 And the LORD smelled a sweet savour; and the LORD said in his heart, I will not again curse the ground any more for man's sake; for the imagination of man's heart [is] evil from his youth; neither will I again smite any more every thing living, as I have done.
(헬라어구약Septuagint) 창세기 8:21 και ωσφρανθη κυριος ο θεος οσμην ευωδιας και ειπεν κυριος ο θεος διανοηθεις ου προσθησω ετι του καταρασασθαι την γην δια τα εργα των ανθρωπων οτι εγκειται η διανοια του ανθρωπου επιμελως επι τα πονηρα εκ νεοτητος ου προσθησω ουν ετι παταξαι πασαν σαρκα ζωσαν καθως εποιησα
(히브리어Modern) 창세기 8:21 וירח יהוה את ריח הניחח ויאמר יהוה אל לבו לא אסף לקלל עוד את האדמה בעבור האדם כי יצר לב האדם רע מנעריו ולא אסף עוד להכות את כל חי כאשר עשיתי׃
(바른성경) 고린도전서 1:25 하나님의 어리석은 것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다.
인간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고린도전서 1:25 Because the foolishness of God is wiser than men; and the weakness of God is stronger than men.
(헬라어신약Stephanos) 고린도전서 1:25 οτι το μωρον του θεου σοφωτερον των ανθρωπων εστιν και το ασθενες του θεου ισχυροτερον των ανθρωπων εστιν
(히브리어Modern) 고린도전서 1:25 יען כי סכלות האל חכמה היא מאדם וחלשת האל חזקה היא מאד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