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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역하고!

성경: 사도행전 3:1-10

3:1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3:2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3:3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3:4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3:5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3:6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3:7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3:8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3:9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3:10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1.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며

얼마 전 어느 신학대학의 모 교수님이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교수는 전문 도박사로 자신을 밝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신앙을 가지고 있나요?’ 그러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 나는 지구 위에 있는 건 무엇이든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믿습니다.’ 교수가 그 말에 동의를 표하자 이번에는 그가 아주 난처한 질문을 던졌다. ‘쥐가 가진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교수가 할 말을 찾지 못해 멍하니 있자, 그는 이렇게 다시 말했다. ‘쥐가 존재하는 목적은 우리에게 직업의 기회를 부여해 주는 데 있지요.’ 그렇다. 우리는 쥐도 이 세계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존재함을 알고, 목적이 있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그리스도 안에서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이름으로 힘있게 사역하고

전장의 끝부분은 예루살렘 교회의 진정한 공동체로서의 탄생을 소개하고 있다. 이적과 함께 주의 은혜가 넘침으로, 믿는 자의 수가 더해 갔다. 본장에서는 교회의 성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여기서 교회가 갖은 시련 속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보게 되는데, 증거하는 공동체로서의 온전함을 갖추기 위한 많은 모습을 대하게 된다. 본장은 앉은뱅이 치유 사건과 베드로의 설교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은 성령 충만을 입은 사도들이 복음 전파에 주력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본장에서부터 사도들을 중심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점점 흥왕이 되며, 자연적으로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 전 지역에 확산이 됨을 볼 수 있다. 본장은 앉은뱅이 치유(1-10)와 이 기적에 대한 베드로의 답변(11-16)과 베드로의 두 번째 설교(17-26)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설교는 예수님이 메시야라는 복음의 선포에서 시작하여 죄에 대한 회개로의 요청으로 진전된다. 이 설교는 앉은뱅이 치유 사건을 계기로 행해진 설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의 목적, 의미, 죽음, 부활, 승천 등 기독론적 내용이었다. 그런데 첫 번째 설교 때에는 3천 명이 회개하는 역사가 있었지만, 본장의 설교에서는 사도들에 대한 핍박이 시작되는 차이점이 있기도 하다.

 

3.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가 있었음을 알고(1-4)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어떤 이가 있었음을 기억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주님께 고침을 받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제 구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3:1-4) ‘2못 걷게 된 이는 구약 시대에는 이러한 병의 근원에 대하여 죄의 대가, 형벌이라고 여겼다. 그리고 미문(동문)’은 이방인의 뜰을 지나 여인들의 뜰로 들어갈 때 통과하게 되는 문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자를 메고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었다. 그리고 그는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했고, 그들은 그 앉은뱅이에게 자신들을 보라고 말했다. 우리는 성경에 많은 맹인이 고침을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누가복음은 바디매오라 이름하는 구걸하는 소경이 있었음을 기록한다.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가에 앉아 구걸하다가.”(18:35) 또한, 성경은 실로암 못에 가서 씻고 고침을 받은 구걸하던 한 사람이 있었음을 기록한다. 이렇게 구걸을 해야만 먹고 살 수 있었던 불쌍한 맹인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을 보며, 우리는 병들고 억압받는 이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웃 사람들과 및 전에 저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가로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9:8)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베데스다에서 병자를 고치셨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서른 여덟 해 된 병자는 자신의 병이 낫기를 소망했고, 예수님은 그를 고쳐주셨다.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5:6) 우리는 주님께 믿음으로 나아와 고침을 받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신대.”(11:40) 그리고 과부의 아들을 살린 엘리야 이야기를 보며, 주님 안에서 일어나는 기적이 있음을 인정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왕상 17:21-22)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 고침을 받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 어떻게 보게 된 것을 물으니 가로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9:15) 질병 가운데 있다고 하여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주님께 고침을 받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명하자 앉은뱅이가 일어났음을 알고(5-8)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명하자 앉은뱅이가 일어났음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명하자 앉은뱅이가 일어났음을 알고, 예수님 이름의 권세를 인정하며 담대하게 사역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3:5-8) ‘7힘을 얻고확고한, 경고한이라는 뜻으로, 신체에 대한 것과 믿음에 대하여 쓰였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은 그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얼어나 걸으라고 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이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걷는 기적이 일어났다. 또한, 믿는 자들에게 표적이 나타남을 잘 깨닫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16:17) 우리는 성령과 능력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마귀에게 눌린 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깨닫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의 사역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10:38)

뿐만 아니라, 바울이 점치는 귀신들린 여종 하나를 자유케 해주었음을 잘 깨닫기를 바란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같이 여러 날을 하는지라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16:18) 바울은 귀신을 쫓아내며 한 여종을 자유케 해줄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귀신에게 당했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쫓으며, 맡겨진 주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가로되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 두 사람에게 뛰어올라 억제하여 이기니 저희가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19:14-16)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 이름의 권세를 인정하며 담대하게 사역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성경은 바울이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을 고쳤음을 기록한다.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어 걷는지라.”(14:10) 예수님 안에서 기적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명하자 앉은뱅이가 일어났음을 알고 예수님 이름의 권세를 인정하며 담대하게 사역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주를 높이며(9-10)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누구를 높이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주를 높이며, 주의 능력으로 힘있게 사역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3:9-10) 일어나 걸으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앉은뱅이를 본 사람들은 심히 놀랐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는 더 큰 놀라운 일이 일어남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중풍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야기를 기록하는데, 이렇게 예수님의 이름에 불가능함이 없음을 인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2:11-12)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여호와를 송축하는 복된 주의 자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103:1-2)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인해 질병 가운데 있기도 함을 잘 깨닫기를 바란다. 성경은 실로암 못의 맹인이 고침 받았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 질병이 허락되기도 함을 알 수 있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9:3) 또한, 성경은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음을 기록하고 있는데, 우리는 예수님 이름의 능력을 인정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5:41) 우리는 이렇게 주님의 능력을 보고 인정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바로 자신임을 알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된 인생의 걸음을 걷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인생의 최고 우선순위가 주님을 영접하는 일임을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7-8)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여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고,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 안에서 기적이 일어남을 알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는 복된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의 능력으로 힘있게 사역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사도행전은 베드로와 요한이 잡혔다가 다시 풀려났음을 기록한다.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 여세나 되었더라.”(4:21-22) 스스로 강한 척하며 자기 의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주를 높이며 주의 능력으로 힘있게 사역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는 지혜로운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3:12)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인도함을 따라 고넬료에게 갔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을 한다.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베드로가 일으켜 가로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10:25-26) 성전 미문 앞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못 걷게 된 이가 있었음을 기억하며, 주님께 고침을 받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자!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명하자 앉은뱅이가 일어났음을 알고, 예수님 이름의 권세를 인정하며 담대하게 사역하는 자! 하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주를 높이며, 주의 능력으로 힘있게 사역하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사역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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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4. 2. 08:32

하나님의 성전된 자로서.

하나님의 성전된 자로서.

(바른성경) 고린도전서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멸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너희는 그 성전이다.

하나님의 성전 된 자로서 거룩하기를 힘쓰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고린도전서 3:17 누구든지 하나님의 聖殿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滅하시리라 하나님의 聖殿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영어esv) 고린도전서 3:17 If anyone destroys God's temple, God will destroy him. For God's temple is holy, and you are that temple.

(헬라어신약stephanos) 고린도전서 3:17 ει τις τον ναον του θεου φθειρει φθερει τουτον ο θεος ο γαρ ναος του θεου αγιος εστιν οιτινες εστε υμεις

(히브리어modern) 고린도전서 3:17 ואיש אשר ישחית את היכל אלהים האלהים ישחית אתו כי היכל אלהים קדוש ואתם הנכם קדוש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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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찬양받기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르는 자가 되고!

성경: 마태복음 21:14-16

마 21: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마 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마 21: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 경건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갬벌드(Gambold)는 조지아에서 웨슬레와 함께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웨슬레에 관해 편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웨슬레는 옥스포드에서 늘 쾌활했다. 그리고 그는 교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성급한 행동을 엄격한 통제로 억제했으며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이 순박하게 생활했다. 그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자신의 최대 임무라 생각하여 하나님과 끊임없는 영적 교제를 가졌다. 그리고 골방에서 기도를 드렸는데 기도를 마치고 방을 나올 때면 그의 얼굴은 마치 해같이 빛났다.’ 그렇다. 이렇게 주님 앞에서 경건의 생활에 힘쓰고 그분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자가 복된 자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에서 사는 동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며 늘 그분과 교제하고 주를 기뻐하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을 축복합니다.

 

2.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본장은 이제 드디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입성하신 뒤 성전에 들러 정화하신 것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선민임을 자랑하며 예수님께 도전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심으로 예수님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세상에 속한 자를 심판하실 메시야라는 것을 더욱 드러내신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을 때 예수님은 준비해 두셨던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다. 무리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한다(1-11절).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사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셨다. 그리고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셨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행동과 무리들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란 찬송에 대하여 분개하였다(12-17절). 이른 아침에 예수님이 성으로 들어오시다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셨다(18-22절).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로 더불어 여러 가지 논쟁을 하시고 비유를 말씀하기도 하셨다(23-46절).

 

3.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고(14)

하나님의 사람들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누구를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마 21:14)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성전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뚝발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 21:14) 예수님은 소경과 절뚝발이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고쳐주신 것이다. 연약한 이들을 사랑하고, 사회적 약자에게도 편견을 갖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라보며 다가가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 35:5) 우리의 육신의 눈을 포함한 영적인 눈을 열어주실 주님을 깨닫고, 그분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옥에 갇힌 요한이 보낸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 우리는 예수님께서 앉은뱅이와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셨음을 알고, 그의 제자로서 이러한 사역을 잘 감당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의 반대편에 서는 자가 아닌 주를 따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마 21:23)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이들처럼 주께 묻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를 믿고 그분의 사역을 이어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행 3:1-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고 낫게 하는 역사가 우리에도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눌린 자를 고치시고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어둡고 병든 세상에서 낙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을 축복합니다.

 

4.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알고(15)

하나님의 사람들은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누구를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알고, 구원의 주님을 높이며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마 21:15) 여기 ‘노하여’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메시야로 인정되는 것에 대해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마음이 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영적 무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의 과정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주를 높였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마태복음은 나귀 새끼를 타신 왕이신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마 21:6-8) 우리는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찬양받기 합당하신 예수님을 기뻐 높이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시며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요 12:13-15)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을 높이는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눅 19:37-38)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구원의 주님을 높이고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막 11:9-10) 환경에 따라 감정이 요동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알고 구원의 주님을 높이며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16)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누구를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 21:16)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사역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악하고 음란한 세대 가운데서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살아간다면 주님의 마음만 아프게 하는 자가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마 16:4) 악한 세대 가운데서 죄악 가운데 살아가며 주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아닌, 죄악을 회개하고 주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마태복음은 계시에 대한 예수님의 감사 고백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하나님 앞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며 살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 5:21) 우리는 겸손한 태도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열려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복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1-16) 우리는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늘 회개하기를 힘쓰고 주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기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모든 인간이 전적 부패하여 예수님의 보혈이 아니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신 주께 감사하고,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3-4) 거친 세상 가운데서 무뎌져 버린 강퍅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구원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끝까지 주를 따르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끝까지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지혜로 구원의 비밀을 깨닫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6-8) 우리는 유대인들이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은전 삼십 량에 팔리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마 26:1-2)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찬양을 받기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잘 따라가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알고 구원의 주님을 높이며 기뻐하는 자!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찬양받기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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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9. 5. 1. 23:08

주를 기뻐하고.

주를 기뻐하고.

(바른성경) 마태복음 21:15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과 성전에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께." 라고 소리쳐 말하는 아이들을 보고 화가 나서,

어린아이들처럼 주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마태복음 21:15 And when the chief priests and scribes saw the wonderful things that he did, and the children crying in the temple, and saying, Hosanna to the Son of David; they were sore displeased,

(헬라어신약stephanos) 마태복음 21:15 ιδοντες δε οι αρχιερεις και οι γραμματεις τα θαυμασια α εποιησεν και τους παιδας κραζοντας εν τω ιερω και λεγοντας ωσαννα τω υιω δαβιδ ηγανακτησαν

(히브리어modern) 마태복음 21:15 ויהי כראות הכהנים הגדולים והסופרים את הנפלאות אשר עשה ואת הילדים הצעקים במקדש ואמרים הושע נא לבן דוד ויחר לה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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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성경: 시편 27:1-6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시편 27:2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시편 27:3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시편 27:4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5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시편 27:6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1. 소망

미국의 백화점 왕인 제이 씨 페니는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 사업에 투자했다. 그러나 그는 심한 재정난에 허덕여 죽으려고까지 했고, 격리 병원에 수용되기도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찬송 소리를 듣고 한 예배의 장소로 가 보았다. 그때 그곳에서는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가 뒷좌석으로 다가가 앉으려 할 때 너 근심 걱정 말아라.’는 매우 익숙한 찬송을 들을 수 있었고, 그 찬송은 그에게 위로와 큰 확신을 주었다. 그는 사랑의 하나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사오니 나를 좀 돌보아 주십시오.’라고 외쳤다. 그 후 그는 건강도 회복되고, 다시 사업을 시작하여 결국 상업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소망의 하나님

본 시편은 어려움에 처할 때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대한 확신을 노래하고 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그 이전까지 선한 것으로 채워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주께만 소망을 둔다면,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을 가진 주의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다윗은 이런 사실을 본시에서 노래하고 있는데 이런 일은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기도 하는 일이다. 본시는 비탄시로서 자신의 슬픈 처지를 탄식하며 여호와의 도움을 구하는 내용이다. 시인은 자신의 위기에 대해 호소하기 전에 여호와께서 반드시 보호해 주신다는 신앙의 확신을 노래한다.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므로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친다고 할지라도 두렵지 않다는 담대한 신앙고백을 한다(1-6). 이어서 시인은 자신이 고통 중에서 부르짖고 있으니 여호와께서 응답해 달라고 간구한다. 시인은 주께서 얼굴을 숨기지 마시고 버리거나 떠나는 일이 없기를 절실한 마음으로 부르짖는다(7-12). 마지막으로 시인은 여호와의 은혜를 찬양함으로써 끝을 맺는다(13-14).

 

3. 두려워하지 않음(1-3)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다윗은 환난 중에서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빛이요 구원주이시며 생명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윗에게는 어떤 두려움과 공포도 없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는 두려움은 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 안에 있는 피조물에게서 나온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두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다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도우심과 보호의 능력을 기대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빛과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시편 27:1) 여기서 능력은 원어로 <z/[m;: 마오즈>이다. 이는 피난하다라는 말에서 유래했으며 안전한 장소, 피난처, 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과 피난처가 되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형편 가운데 처할지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모세는 출애굽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비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15:2) 모세는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힘과 노래와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홍해를 가르셨듯이 주를 신뢰하는 자들 앞에 있는 어떠한 문제와 상황도 해결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해하려는 원수들이 왔으나 그들이 실족하고 말았음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7:2) 하나님이 의 편이 되어주신다면, 원수들도 어찌하지 못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천만인이 둘러치려 하여도 두려울 것이 전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3:6) 담대하게 고백했던 다윗의 고백처럼, 우리 또한 날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매일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며, 담대한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편 27:3) 여기서 ‘태연하리로다신뢰하다, 의탁하다를 의미한다. 다윗은 주를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이 있었다. 그는 군대가 진 칠지라도 전쟁이 일어나 자신을 치려 할지라도, 주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다윗뿐만 아니라 에게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넉넉히 그리스도 안에서 승리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5-37)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이 부족한 자들은 주의 백성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주를 향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넉넉히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안전함(4-5)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떠한 확신을 가져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붙잡아 주심으로 주 안에서 안전함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살아가기를 원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 27:4) 여기서 아름다움이란 원어로 <!['n: 노암>이다. 이는 선함, 매력, 아름다운 점, 사랑스러움을 가리킨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확신을 여호와의 집에 거하려는 갈망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참된 교제에 대한 바램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그는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면서 그 전에서 사모할 것이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이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막의 외적인 아름다움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외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 안목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와 그분의 말씀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또한 다윗과 같이 그분 안에 있을 때 안전함을 깨닫고, 여호와의 아름다움,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하기를 소망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23:6) 우리에게도 여호와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가득 넘쳐나기를 소망한다.

또한, 다윗은 환난 날에 여호와께서 자신을 지키시는 주가 되심을 말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시편 27:5) 여기서 장막회막, 여호와의 전이라고도 불리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다. 주와 동행하기를 원했던 다윗은 환난 당할 때 하나님께서 주의 날개 아래에서 지켜 주심을 고백한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갈망하는 다윗은 자신의 환난 날에도 여호와께서 구원하시고 보호해 주심을 고백한 것이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이 임재해 계시는 장막 은밀한 곳에 자신을 숨겨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견딜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을 확신했다. 우리에게도 다윗과 같은 고백과 믿음이 있기를 소망한다. 다윗처럼 하나님과 늘 친밀한 교제가 있기를 소망한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주께서 베푸시는 절대적인 안전과 은혜를 입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은혜로 인하여 환난을 당해도 요동하거나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처럼 우리도 이러한 믿음으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열방의 모든 믿음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가운데 있기를 위해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반석 위에 든든히 선 우리의 믿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7:24-25)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서가는 믿음이 의 믿음이 되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는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기를 원했던 다윗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여호와를 찬송(6)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누구를 높이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생각하며, 주를 높이고 찬양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편 27:6) 여기서 제사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구약 시대에 드려졌던 종교의식이다.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수를 무찔러 주시고, 자신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예배드리며 주를 찬양할 것을 고백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둘러싼 원수를 무찌르시고 높임을 받을 것을 확신했다. 다윗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원수들 앞에 두려워하거나 그들과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들 가운데 역사하실 주를 기대해야 한다. 원수를 무찌르시는 주님, 모든 결과를 통해 영광을 받으실 주님을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칭송하겠나이다.”(21:13) 살아계신 하나님을 삶 가운데서 체험하고, 날마다 주를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 있다면 이 시간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주를 찬양하기를 소망한다. 지금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먼저 믿은 우리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주를 높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5:19-20) 우리는 모든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주의 자녀가 되어 서로 교제하며 주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

급변하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구원의 주를 바라보며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84:11)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해와 방패가 되시는 주, 은혜와 영화를 주실 주님을 신뢰하며, 담대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여호와께 달려가는 자, 그는 안전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18:10) 내가 살아가는 환경이 어떠하든지 내가 만난 문제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문제보다 더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50:15) 어떠한 상황과 형편에서도 건져 주시고, ‘를 사망 가운데서도 구원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다윗의 하나님이 의 하나님이 되심을 날마다 선포하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넉넉히 이기는 삶을 사는 자! 평생토록 주께서 베푸시는 안전함 가운데 거하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동안 원수 앞에서 승리케 하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주를 높이고 입을 열어 주를 찬양하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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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

성경: 예레미야 51:11-14

51:11 화살을 갈며 둥근 방패를 준비하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것 곧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이라

51:12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수꾼을 세우며 복병을 매복시켜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주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계획하시고 행하심이로다

51:13 많은 물 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

51:14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숨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진실로 사람을 메뚜기 같이 네게 가득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향하여 환성을 높이리라 하시도다

 

1. 하나님의 능력

‘D. L. 무디가 그토록 큰 일꾼으로서 사역할 수 있었던 최고의 비밀은 시편 62:11에 나타나 있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나는 그 능력이 무디에게 있지 않음을 인하여 기뻐한다. 또한 챨스 피니에게 그리고 마틴 루터에게 속하지 않았음을 감사한다. 인류 역사 중 하나님이 사용하신 어떤 그리스도인도 그 능력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해 있다. 만일 D. L. 무디가 무슨 능력을 갖고 있었다고 하면 그는 그것을 갖되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었을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어떠한가?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R. T. Torrey의 묵상을 통해 깨닫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과 바벨론의 멸망

본장에서는 바벨론의 멸망과 관련되어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드러나 있다. 전장은 바벨론의 죄악과 관련된 심판의 필연성을 말하고 있다. 반면에 본장에서는 심판의 구체적인 방법을 서술하고 있다. 바벨론 심판의 주체에 대해서는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등의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의 심각성 및 필연성을 강조했다. 바벨론은 한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하나님을 대적했으므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그들의 교만 때문이라고 밝혀 주고 있다. 결국 바벨론 심판은 구속 계획 속에서 의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며, 바벨론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바벨론의 멸망에 관하여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이유는 바벨론에 끌려간 유다 백성 가운데 경건한 사람들에게 구원에 대한 소망과 용기를 주기 위함이다.

본장은 전장에 이어서 바벨론 심판의 필연성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전장에서 설명되었던 유다의 회복에 대한 기사가 생략되고 오직 바벨론 심판에 대한 내용만을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본장은 바벨론에 대한 심판을 다시 언급하는 부분(1-14), 하나님에 대한 찬송을 묘사하는 부분(15-19), 여호와의 진노와 그 결국을 다루는 부분(20-26), 바벨론을 적대하는 모든 열방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부분(27-32), 바벨론에 적대하는 유다의 불평과 하나님의 보수하심을 묘사하는 부분(33-40), 바벨론의 운명을 그리고 있는 부분(41-49), 바벨론에 있는 포로들을 향한 여호와의 메시지를 선언하고 있는 부분(50-53), 바벨론이 궁극적으로 황폐하게 될 것을 묘사하고 있는 부분(54-58), 결론적으로 바벨론으로부터의 구원을 보여 주는 부분(59-64)로 이루어져 있다.

 

3. 심판의 주(11-12)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을 일으켜 바벨론을 치고 자신을 대적하는 자 중에서 처하는 자를 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일으키셔서 바벨론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일으키시어 바벨론을 치는 자가 임할 때에 바벨론 땅에는 죽음을 당한 자들로 차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 보복하심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작정하신다면 불가능한 일이 있을까?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마음먹는다면 아무리 강한 나라라도 망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본문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한다. 하나님께서 메대 왕들을 통해 바벨론을 멸하기로 하셨다고 말한다. “화살을 갈며 둥근 방패를 준비하라. 여호와께서 메대 왕들의 마음을 부추기사 바벨론을 멸하기로 뜻하시나니 이는 여호와께서 보복하시는 것 곧 그의 성전을 위하여 보복하시는 것이라.”(51:11)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화살촉을 벼리어 화살 통 가득히 넣어라. 야훼께서 메대 왕을 부추기어 바빌론을 멸망시키시기로 결심하셨다. 이는 당신의 성전이 짓밟힌 것을 복수하시는 것이다.”(51:11) 하나님은 교만한 이들을 물리치시며, 뜻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고 마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북방에서 큰 연합국을 일으키어 바벨론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보라 내가 큰 연합국으로 북방에서 일어나 나와서 바벨론을 치게 하리니 그들이 항오를 벌이고 쳐서 취할 것이라. 그들의 화살은 연숙한 용사의 화살 같아서 헛되이 돌아오지 아니하리로다.”(50:9)

한 때 사용되었던 바벨론도 그들의 선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하나님의 경륜에 따라 쓰임 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쓰였던 바벨론도 교만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 땅은 황폐케 되어 그중에 거하는 사람이나 짐승이 다 도망하게 되었던 것이다. “바벨론 땅에서 도피한 자의 소리여 시온에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보수하시는 것, 그 성전의 보수하시는 것을 선포하는 소리로다. 활 쏘는 자를 바벨론에 소집하라 무릇 활을 당기는 자여 그 사면으로 진을 치고 쳐서 피하는 자가 없게 하라 그 일한 대로 갚고 그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그가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 여호와를 향하여 교만하였음이니라.”(50:28-29) 하나님은 선하고 좋으신 분이시지만 하나님 앞에 교만히 행하는 자는 망하게 됨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방비하라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의 계획을 바꾸실 자는 있는가? 하나님은 계획하신 바를 이루시는 분이므로 연약한 인간이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이다. 예레미야는 바빌론 성벽을 향해 기를 세우고 경비병을 보강하라고 대언한다. “바벨론 성벽을 향하여 깃발을 세우고 튼튼히 지키며 파수꾼을 세우며 복병을 매복시켜 방비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주민에 대하여 말씀하신 대로 계획하시고 행하심이로다.”(51:12)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바빌론 성벽을 향해 기를 세우고 경비병을 보강하며 관측병을 배치하고 매복조를 편성하라! 여호와께서 바빌로니아 국민에 대하여 이미 말씀하신 것을 계획대로 수행하실 것이다.”(51:12) 바벨론의 멸망은 하나님의 보응으로 나타난 결과였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괴롭히고 하나님께 교만한 바벨론에 대해 보응하셔야만 했다. 우리는 고난과 역경이 있을지라도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서 믿음으로 서 있어야 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말씀하심 앞에 순종하는 태도를 간직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어 바벨론을 멸하셨듯이 믿는 자들의 원수들에 대해 그들이 행한 대로 보응하실 것이다. 하나님을 당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잘 깨달아야 한다.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21:30) 우리는 자신의 지혜로 인생을 살아가려고 해서는 안 되며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 분의 지혜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며, 이 땅의 많은 민족들 또한 하나님의 통치 아래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모든 것은 여호와께서 경영하시므로 우리는 주님의 편에 설 뿐이다. “땅이 진동하며 고통하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바벨론을 쳐서 그 땅으로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할 경영이 섰음이라.”(51:29) 자기 삶의 모든 계획과 문제를 하나님 앞에 온전히 맡기어 드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인생(13-14)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어 멸망시키는 사건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닌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고 다시 권고하시는 것은 그들의 열조와 맺으신 언약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찬양하고 영광을 증거 할 것이다.

 

인생의 한계

하나님 앞에서 인생의 한계는 어떠한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끝은 언젠가 오게 되어 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을 향하여 끝이 왔음을 대언한다. “많은 물가에 살면서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재물의 한계 곧 네 끝이 왔도다.”(51:13)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물이 많은 곳에 살며 재물이 많은 자여, 네 수명이 다하였고 네 종말의 때가 되었다.”(51:13) 아무리 좋은 곳에서 아무로 좋은 것들을 소유하며 살아가는 인생들도 하나님이 때가 다 되었다고 말씀하시면 반드시 끝이 오게 된다. 우리는 어떠한 목표를 바라보고 살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한 부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12:19-21) 자신을 위해 아무리 많은 재물을 쌓아 두었더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모든 것들을 그대로 놓고 이 땅을 떠나야만 한다. 이렇게 살아가는 자, 이 땅에서 살아가는 작은 자가 바로 우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만을 위한 배부른 삶을 추구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를 힘쓰며, 하나님 앞에서 근신하여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고백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하나님 앞에서 작은 존재인 자신의 위치를 알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목숨을 두고 맹세

하나님이 뜻을 정하시면 그 일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뜻을 확실히 하시며 움직이시면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어떠한 일이든지 이루어지고 만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대언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의 목숨을 두고 맹세하시되 내가 진실로 사람을 메뚜기 같이 네게 가득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향하여 환성을 높이리라 하시도다.”(51:14)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만군의 주께서 그의 삶을 두고 맹세하셨다. 내가 메뚜기 떼처럼 많은 군대로 너를 공격하게 할 것이니, 그들이 너를 이겨 승리의 환호를 외칠 것이다.”(51:14) 하나님께서 뜻을 두고 행하시면 그 분은 분명히 일을 이루시고 마는 분이다. 우리는 인생의 주인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반드시 삶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모시고 살아가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 받고 회개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은 주님이 지었고, 우리는 주님의 통치하심 아래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레미야는 권능으로 땅을 지으신 주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그가 목소리를 발 하신즉 하늘에 많은 물이 생기나니 그는 땅 끝에서 구름이 오르게 하시며 비를 위하여 번개하게 하시며 그 곳간에서 바람을 내시거늘 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망령되이 만든 것인즉 징벌하실 때에 멸망할 것이나 야곱의 분깃은 이 같지 아니하시니 그는 만물의 조성자요 이스라엘은 그 산업의 지파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니라.”(10:12-16) 우리는 뜻을 정하시면 반드시 이루시는 분 앞에서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여 그 분의 사랑을 충만하게 받고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세상 모든 권세의 근원자

인간은 한없이 작고 인생은 지극히 짧다. 아무리 강한 권력을 가진 나라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끝을 맞이하고 만다. 하나님은 열국에게 명하시어 바벨론을 치도록 하셨다. 하나님은 세상 모든 권세의 근원자로서, 열국의 왕들로 방백들을 시켜 바벨론을 공격하도록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열국에 의해 심판을 받은 바벨론은 황무하여 거민이 없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사 왕 고레스의 군대를 통해 바벨론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을 보응하게 하셨다. 우리는 죄악에 대해 반드시 징벌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며,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고 그분을 위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측량치 못할 판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하며,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 지어다. 그의 모든 사자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찬양할 지어다. 해와 달아 찬양하며 광명한 별들아 찬양할 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찬양할 지어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 것은 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음이로다.”(148:1-5) 우리는 날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바벨론을 멸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살아가야 한다. 인생의 한계를 깨닫고 세상 모든 권세의 근원자 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우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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