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어린아이와 같은 자세로 예수님 앞에 나아오며!

성경: 누가복음 18:15-17

18: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8:16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8: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1. 유연한 사고와 부드러운 마음

남이 나를 비판하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링컨은 이렇게 말했다. ‘만일 내가 나에 대한 모든 비판의 글들을 신경을 써서 읽으려 한다면 아무것도 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제임스 화이트컴 릴레이씨는 자신의 격한 기질에 대해 암브로우스 비어스씨의 비판을 받았을 때 나는 침묵의 몽둥이로 그를 치겠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비난을 퍼붓는 약한 기질이 갖는 독소는 다음과 같이 비유될 수 있다. ‘독사가 비난하는 자를 물어뜯으면 비난하는 자는 살겠으나 독사는 죽는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유연한 사고를 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행실을 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본장의 교훈들은 이미 전장에서 언급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다. 본장도 여러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주된 내용은 기도와 영생에 관한 교훈이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셨고(1-8),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를 말씀하셨다(9-14). 예수님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를 데려옴을 보시고 어린아이들에게 안수하시고 기도해 주셨다(15-17). 어떤 관원이 예수님께 영생에 관하여 질문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가진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재산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근심하며 돌아갔다(18-30).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에게 자신의 메시야 수난을 예고하시고(31-34), 예루살렘으로 가시다가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 한 소경을 고쳐 주셨다(35-43).

 

3.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며(15)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누구를 낮추며 사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며 예수님을 따르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18: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들이 손을 얹어 축복해 달라고 어린아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자 제자들이 보고 그 사람들을 꾸짖었다.”(18:15) 사람들은 예수님께 축복을 받기 위한 마음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데려왔는데, 제자들은 분주한 예수님의 사역을 생각하며 그 사람들을 꾸짖었을 것이다. 제자들의 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은 달랐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꾸지람을 받는다. 우리는 예수님의 중심을 잘 헤아리며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며 나아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기쁨으로 주님 앞에 나아갔던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며 주님께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맹인 두 사람도 낮은 자세로 자신들의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갔다.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20:31) 조용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에도 마다하지 않고 병 고침을 받기 위해 낮은 자세로 예수님을 부르며 나아갔던 맹인들과 같이, 그리고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며 주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18:4)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를 업신여기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삼가 이 소자 중에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18:10) 예수님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며 아이들을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들의 천사들이 항상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을 기억하며 소자 중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영혼을 대하며 믿음 생활하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거룩하신 주님을 닮아 거짓을 멀리하는 성결한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14:5) 날마다 천국을 누리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복된 길을 걸어가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악에는 어린아이와 같고 즐거움으로 예수님을 좇는 지혜로운 삶을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전 14:20) 냉정하게 보이는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면서 스스로 높이지만 말고, 이제는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며 예수님을 기쁨으로 따르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16)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어떤 마음으로 사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믿음 생활을 하며 하나님 나라에 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8:16) 개역 한글 침례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8:16)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주께 나아오는 사람들을 꾸짖는 제자들을 오히려 꾸짖으셨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0:14) 그리고 그 어린아이들을 불러 가까이하시고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는 것을 용납하라 하시며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마음을 깨닫고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주께 나아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11:25)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순수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마음 중심을 하나님 앞에서 젖 뗀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하며 예배자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131:1-2) 주의 은혜로 하나님 앞에서 교만을 멀리하며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같이 심령을 고요하게 하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며 그분을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예배자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순수한 믿음을 소유하고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러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18:3) 거칠고 험한 세상 가운데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는 것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간다면 세상 가운데서 해를 입지 않도록 주님께서 지혜와 명철을 주실 것이다. 영적으로 하나님과 잘 교제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살면서도 해를 입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승리하는 복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거친 세상 가운데서 강퍅해진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이제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믿음 생활을 하며 하나님 나라에 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17)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어떤 자세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믿음 생활을 하며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8:17) 개역 한글 침례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18:17) 여기서 받들지의 의미는 영접하다, 인정하다이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아들이는 복된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마가복음에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10:15)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소유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천국에 들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3:3-6)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의 나라를 인정하며, 성령님의 역사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천국에 가는 복된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된 인생을 살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주님을 모르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인생의 최고 우선순위가 주님을 영접하는 일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주저하지 말고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7-8)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주를 따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삶 가운데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겸손한 자세로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성숙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자신을 살피지 못한 나머지 계속해서 교만한 자세로 살아가지 말고, 이제는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믿음 생활을 하며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사는 자가 되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난한 마음으로 천국을 소유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가난한 마음을 소유하여 늘 천국을 경험하며 살아가는 복된 자가 되기를 바란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5:3)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늘 낮은 자세와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15:33) 어린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며 예수님을 기쁨으로 따르는 복된 자!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믿음 생활을 하며 하나님 나라에 가는 복된 자!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한 자세로 믿음 생활을 하며 영적으로 성숙한 삶을 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어린아이와 같은 자세로 예수님 앞에 나아오며 예배자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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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9. 3. 7. 07:31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바른성경) 마가복음 8:34 예수께서 무리를 제자들과 함께 부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자기를 부인하기를 힘쓰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믿음의 사람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마가복음 8:34 And when he had called the people [unto him] with his disciples also, he said unto them, Whosoever will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헬라어신약Stephanos) 마가복음 8:34 και προσκαλεσαμενος τον οχλον συν τοις μαθηταις αυτου ειπεν αυτοις οστις θελει οπισω μου ελθειν απαρνησασθω εαυτον και αρατω τον σταυρον αυτου και ακολουθειτω μοι

(히브리어Modern) 마가복음 8:34 ויקרא אל העם ואל תלמידיו ויאמר אליהם החפץ ללכת אחרי יכחש בנפשו וישא את צלבו וילך אחר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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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찬양을 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성경: 마가복음 11:4-10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 기다리시는 주

영국 남동부의 하트포드셔 왓포드 교회의 묘지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교회 묘지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형 무덤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큰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덤은 무신론자인 한 여인의 무덤이었는데 그녀는 임종 직전까지 하나님께 도전했다. 심지어는 임종의 병상에서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 무덤에서 나무가 나와 자라게 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평생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그녀의 죽음이 오히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분으로서 인간이 회개하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심을 무언으로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되어, 높으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엎드리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 주일이다. 그리고 다음 주일날은 영광스러운 승리의 부활절 주일이다. 내일부터 한 주간 동안은 고난 주간인데,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이 한 주간은 희비가 엇갈리는 주간이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신 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환호하였다(1-10). 다음날 예수님은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셨다. 그런데 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11-14).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는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셨다(15-18). 다음 날 아침에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서 믿음의 교훈을 주셨다(19-25).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더불어 논쟁을 벌였다(27-33).

 

3.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4-6)

겸손한 왕이신 예수님은 어디로 입성하셨는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하는 예수님을 위해 이렇게 순종한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4-6)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11:1-3) 예수님의 명령은 이상한 명령처럼 보인다.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주인이 있었던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순종은 나귀가 예수님 앞에 이르게 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메시야로서, 왕으로서의 입성을 의미한다.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셔서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다. 벳바게와 베다니는 서로 인접한 마을이었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km 거리에 있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최후의 사역을 위하여 메시야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평화의 왕이 되신다. 구약 성경에는 장차 작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우리는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선지자로 하신 이 말씀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알고 계셨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21:4-5) 예루살렘으로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되신다.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며, 예수님처럼 마음이 겸손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땅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삶 가운데서 늘 높이고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나귀 새끼 위에 타신 예수님(7-8)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은 무엇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가? 겸손하신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나귀 중에서도 새끼 나귀를 타고서 입성하신 것이다. 본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11:7-8) 예수님은 겉옷을 깐 새끼 나귀 위에 앉으셨다.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사람들은 자신의 겉옷을 깔고,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그를 맞이했다. 나귀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는 어떤 나귀였을까? 이 나귀는 아직 어느 누구도 타 보지 않은 나귀였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의도하신 대로 모두 순종하게 만드셨다. 제자들은 끌고 온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걸쳤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겉옷을 벗어 펴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왕하 9:13).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보좌가 아닌 나귀 새끼 위에 앉으신 것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앉는 자리, 그 위에 양탄자 대신 제자들의 허름한 겉옷을 깐 것이다. 이런 메시야의 모습은 그가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종으로도 오셨음을 의미한다. 우리 예수님은 인류의 왕이셨으나 종이 되셨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폈을 것이다.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19:36)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나무를 길에 펴고 흔들었다. 그들이 펴고 흔들었던 종려나무는 무엇인가? 종려나무는 영어로 Palm, Palm tree이다. 열대와 아열대에 많이 보여지는 상록 교목이다. 종려, 또는 종려나무로 성경에 번역된 원어는 대추야자(date-palm)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종려나무(hemp-palm)는 종려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높이는 3-7m에 달하며 암갈색의 섬유에 싸인다. 줄기는 원주처럼 직립하고, 가지치지(번식치) 않는다. 잎은 줄기 끝 자루에 총생하는데 각각 30cm가량의 대에 끝에 가서 손바닥처럼 갈라진 것으로 드리운다. 자웅이주이고 5-6월에 엽액에서 담황색의 화수가 나와, 황백색 여섯 잎이 작은 꽃이 핀다. 과실은 타원형으로 굳고, 9-10월에 암청색으로 익는다. 그리고 줄기의 섬유로 종려승, 종려선, 종려비, 또는 깔개 등을 만든다고 한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은 이 나뭇잎을 흔들면서 환영한 것이다(12:13). 이 나무는 승리의 표상으로 되었다. 종말의 구속된 성도들은 이 나무를 손에 들고서 어린 양 앞에 서 있을 것이다(7:9).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행하셨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들은 바로 순종했고, 제자들의 순종은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행케 했다.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19:35) 새끼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그리고 그분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겸손한 모습으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역하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호산나찬송을 받으신 예수님(9-10)

무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소리를 지르며 호산나하며 찬송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11:9-10)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앞, 그리고 뒤에서 사람들은 호산나 호산나하며 기쁨으로 외친 것이다. 새끼 나귀를 타신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추종하는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으며 나뭇가지를 꺾어 주님의 길을 예비했었다. 그리스도의 입성을 알리는 그들의 아우성은 왕께 대한 최고의 찬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엄한 영접은 백성들의 뜨거운 눈물과 정감 어린 사랑으로 대신했다. 그들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환호를 끊임없이 외쳤을 것이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21:9)

여기서 호산나는 영어로 Hosanna이고 [] wjsanna(osanna)이다. 헬라어 호산나는 아람어 an;[]v'wOh(hoshana)’의 음사로서 ! 구원해 주시옵소서의 뜻이다. 구약에서는 여호와께 구원을 구하는 짧은 기도로서 시 118:25에 씌어져 있다. 이것은 초막절 때 사람들이 제단의 주위를 돌면서 외친 환성인데, 이 축제 때의 기도는 거의 이 말로 시작되었다. 신약에서는 종려 주일에 예수님의 최종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한 사람들의 환성, 또는 아이들이 성전 뜰에서 주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 지르는 기쁨의 외침(21:9, 15)인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사건에 관련하여 복음서에 모두 6회 씌어져 있다(21:9, 9, 15, 11:9, 10, 12:3). 이러한 것들로 볼 때, 메시야를 대망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영접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메시야이신 주를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듣고 믿어, 주를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자기 삶의 주인을 선택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인류의 평화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어떠한 삶의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삶 가운데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인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좋은 것들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높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의 평화이다. 온 땅과 민족은 좋으신 주께 마음 중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우리는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찬양을 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지어다.”(148:1) 예루살렘에 새끼 나귀를 타고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신다. 우리 모두가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찬양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감사의 고백을 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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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9. 20. 16:14

복 있는 자의 삶, 마태복음 5:1-8

말씀: 복 있는 자의 삶

성경: 마태복음 5:1-8

5: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5:2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5: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1. 행복

가난과 고독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노학자가 항상 행복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한 젊은이는 노학자의 그런 삶의 비결을 알고자 그분의 집에 몰래 들어갔다. 그 노인은 오후가 되자 조용히 앉아 성경을 펴고는 읽기 시작했다. 그는 12시까지 성경을 읽더니 하나님이시여! 오늘도 변함이 없는 당신의 말씀 위에 저를 서 있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아픔과 고통을 씻어주는 명약이다.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고, 주의 뜻대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가르침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으로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 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기록해 놓은 장이다. 여기서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 복수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 하기 때문이다(48).

 

3. 복 있는 자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1-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시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 있는 자에 대해 가르쳐 주신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5:1) 여기서 산에는 누가복음에 평지로 나와 있는데, 전승에 의하면 가버나움과 디베랴 사이의 한 언덕으로 나타나 있다. 그리고 제자들이는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열두 제자 외에 그를 따르던 많은 무리들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한 언덕에서 열두 제자와 그 외의 무리들에게 복 있는 자에 대해 가르쳐 주신다. 예수님은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해 주셨다. “밝으매 그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서 열둘을 택하여 사도라 칭하셨으니 곧 베드로라고도 이름 주신 시몬과 및 그 형제 안드레와 및 야고보와 요한과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셀롯이라 하는 시몬과 및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및 예수를 파는 자 될 가룟 유다라.”(6:13-16)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마태, 도마,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이라 하는 시몬, 유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주님께 배우며 제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 많은 무리는 배우기 위해 몰려들었다. “예수께서 다시 바닷가에서 가르치시니 큰 무리가 모여 들거늘 예수께서 배에 올라 바다에 떠 앉으시고 온 무리는 바다 곁 육지에 있더라.”(4:1) 우리는 예수님께 겸손히 배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입을 열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다.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5:2) 여기서 가르쳐는 원어로 <didavskw: 디다스코>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기간 중에 하셨던 사역 즉 말씀 전파, 병자 치료와 동등한 중요성을 가지는 사역을 나타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의미를 가르치는 일을 자신의 사역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예수님은 인간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하나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우리가 입을 열어 복음을 선포할 때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빌립도 입을 열어 예수의 복음을 전했다. 빌립이 입을 열어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하니.”(8:35) 예수님께서 전하셨던 복음의 비밀을 잘 깨닫고 입을 열어 작은 예수로서 복음 전파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6:19)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전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3-4)

예수님은 어떠한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5:3) 우리는 가난한 심령을 소유하여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 통회하는 자를 기뻐하신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34:18)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실 주를 기대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온유하고 겸손한 분이셨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9)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를 힘써야 한다. 주님께 배울 때 참 평안을 얻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5:4) 우리가 주님 앞에서 애통하는 자가 된다면 주께로부터 위로를 받게 될 것이다. ‘애통하는 자에서 애통은 죽은 자를 위한 애도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죄에 대한 탄식을 가리킨다. 우리가 죄에 대해 탄식하는 자들, 애통한 심정을 가진 자들이 되어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는 애통해 하는 것을 어려워해서는 안 된다. 주의 제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동안 눈물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잘 통과한 이후 복이 있게 될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126:5-6) 우리는 고난의 과정을 통과 할 때에도 성실히 자신의 일에 충성하고, 믿는 자들을 위해 예비 된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21:4) 우리는 주께서 택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인내로서 믿음을 잘 지켜야 하며, 주님을 찾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는 자들이 되어 주 안에서 복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온유하고 의에 주린 자(5-6)

예수님은 어떠한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온유한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5:5) 우리는 온유하고 의에 주린 자가 되어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여기서 온유한 자는 원어로 <praei'": 프라에이스>이다. 이는 인내, 사랑, 겸손을 의미하는데 무엇보다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해 하나님의 위로를 바라보며 참고 견디는 마음을 표현한다. 하나님은 인내, 사랑, 겸손한 자를 기뻐하신다. 우리는 온유한 자가 되어 어떠한 고난이 있더라도 믿음으로 참고 견디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땅을 포함한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시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포함하는 말이다. 온유한 자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구약 시대의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유한 자라고 일컬음을 받았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12:3) 우리는 모세처럼 온유한 자, 사랑이 넘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4:2)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동안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온유한 성품의 사람이 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5:6) 우리가 주님 앞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다면 주께로부터 채워지는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세상에 있는 어떠한 풍족함으로도 만족할 수 없다. 세상의 풍족함은 어느 정도의 만족함 이후에 또 다른 공허함을 준다. 인간은 하나님 안에 거할 때, 하나님을 찾을 때 만족함을 얻게 되며, 영혼이 기뻐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달려갈 때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삶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55:1-3) 주님을 찾는 자, 주님께 청종 하는 자는 영혼이 살게 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함과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84:2) 우리 모두가 온유하고 의에 주린 자가 될 것을 결단하고, 날마다 여호와를 찾고 부르짖어 주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한 자(7-8)

예수님은 어떠한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시는가? 예수님은 긍휼히 여기는 자가 복이 있는 자라고 말씀하신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5:7) 우리는 긍휼이 여기는 자가 되어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긍휼을 입은 자들로서 이웃에게 긍휼을 베푸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18:33-35) 우리는 나를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처럼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원수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가 재물을 흩어 빈궁한 자에게 주었으니 그 의가 영원히 있고 그 뿔이 영화로이 들리리로다.”(112:9) 우리는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타인을 긍휼히 여기며 나누는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5:8) 우리가 주님 앞에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된다면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닫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다윗은 정직한 영, 성령님과 동행하기를 원했다.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해 지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 복임을 깨달아야 한다. 마음이 정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날마다 잘 아는 삶이 행복한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야고보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4:8)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거룩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 것을 결단하고, 타인을 긍휼히 여기고 회개를 즐겨하는 자들이 되어,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복 있는 사람

우리는 주 안에서 복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이 사실을 알고 복 받은 자들로서 당당하게 천국 시민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1) 우리는 천국 백성으로서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자,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 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않는 자로 살아가기를 힘써야 한다. 성령 안에서 늘 기도하기를 힘쓰고, 서로 사랑하며 삶 가운데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벧전 1:22)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자, 거룩한 삶을 살기를 힘쓰는 자, 서로 뜨겁게 사랑하는 자가 되어 날마다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12:14)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화평함과 거룩함을 드러내어 주를 뵈옵는 자들이 되도록 늘 깨어 있어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천국 백성이 되는 복을 받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이 은혜에 감사하며,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자로서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한 자, 온유하고 의에 주린 자, 긍휼이 여기고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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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

성경: 누가복음 9:37-43

9:37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 새

9:38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 아들이니이다

9:39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 가나이다

9:40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9:4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

9:42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

9:43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 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1. 믿음의 사람

군함 한 척이 전투에 참가하기 위해 출항했다. 그 배에는 스티븐스라는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승선해 있었다. 배가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해역에 당도하자 배에 탔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스티븐스 곁으로 몰려들며 스티븐스를 잡아라, 스티븐스를 잡아라.’하고 외쳤다. 그들은 평소 스티븐스가 청렴한 생활과 성실한 기도 생활을 하며 성경말씀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 지경에 처한 그들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있는 사람을 붙잡고자 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은 자신이 하실 일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메시야 이신 예수님께서 기적과 이사를 행하시고 우리를 위한 최종적인 사역을 감당하시기 위해 자기에게 정해진 길로 걸어가신다. 제자들에게 친밀히 말씀하시고 메시야의 놀라운 일들을 자세히 보여 주신다.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길이 그의 앞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길을 걸어가야만 했다. 확실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셨던 예수님의 사역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신유와 축사의 능력을 주어 선교 사역지로 파송하신다(1-6). 헤롯은 예수님으로 인한 표적들을 보고 예수가 누구인가를 알고자 하였다(7-9). 사도들이 선교 여행에서 돌아온 후에 예수님과 사도들과 많은 무리들이 광야에 모였는데, 여기서 유명한 오병이어의 사건이 일어난다(10-17). 그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주는 그리스도시라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에 자신의 메시야 사역에 대해 가르쳐 주신다(18-27). 그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는 변화산에 올라가사 영광스럽게 변화된 모습으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종말에 관해 말씀을 나누신다(28-36). 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 들린 아이를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시고 믿음이 없음을 책망하신 후에 그 아이를 고쳐 주신다(37-42). 나중에 다시 예수님께서는 메시야 사역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다(43- 45). 제자들이 누가 크냐는 토론을 벌이는 것을 보고 겸손을 가르치셨고(46-48), 드디어 때가 되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다(49-62).

 

3. 귀신 들린 아이(9:37-43; 17:14-18; 9:14-27)

제자들은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당황하고 있었다. 그때 예수님은 그 아이를 고치시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다시 알리셨다. 메시야로서 세상의 모든 권세를 이기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이루시기 위해 감당하시는 사역을 알리셨다. 예수님은 이기신 권세를 물려받은 사람들이 그 일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파하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하셨던 말씀을 잘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9:23)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이러한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믿고 삶 가운데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4. 예수님을 맞이하는 큰 무리(37-38)

예수님을 맞이한 이들은 누구였는가? 변화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신 예수님을 큰 무리들이 맞이한다. “이튿날 산에서 내려오시니 큰 무리가 맞을 새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소리 질러 이르되 선생님 청컨대 내 아들을 돌보아 주옵소서. 이는 내 외 아들이니이다.”(9:37-38) 변론하고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저희와 변론하느냐 무리 중에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벙어리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 왔나이다.”(9:16-17) 귀신 들린 아이 때문에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변론을 하고 있었다. 귀신들린 외아들을 고쳐야 하는 문제로 그들은 소란스러웠다. 예수님은 그 아이의 아비와 이렇게 대화한다. 예수께서 그 아비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가로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9:21-22) 아버지는 아이에게 들어간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한다.

우리는 문제의 상황 앞에서 언제나 하나님께 긍휼히 여겨 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부르짖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은 마귀에게 눌린 많은 이들을 자유하게 해 주셨다. 마태복음은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의 외침을 기록한다. 귀신 들린 딸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불쌍히 여기어 달라고 간절히 외친다.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15:22) 예수님은 간절히 부르짖을 때 반드시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다. 삶 가운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간절히 기도하여 응답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귀신들린 자들의 반응(39)

귀신들린 자들은 어떠한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가? 귀신들린 자들은 귀신으로 인해 경련, 거품을 일으키고 상함을 받기도 한다. “귀신이 그를 잡아 갑자기 부르짖게 하고 경련을 일으켜 거품을 흘리게 하며 몹시 상하게 하고야 겨우 떠나가나이다.”(9:39)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아이는 악령이 덮치기만 하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서 입에 거품을 물고 경련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온 몸에 상처를 입습니다만 악령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9:39) 악령은 문제를 일으킨다. 악령은 인간에게 들어가서 상처를 입히고 그 곳에서 나가기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할 때 그는 반드시 반응하며 견디지 못해 그 곳을 떠나가게 됨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는 예수님께 간청한다. 그리고 예수님은 귀신을 꾸짖으시며 아이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신다. 곧 그 아이의 아비가 소리를 질러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의 달려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가라사대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9:24-25) 우리는 마귀와 가까이 하는 삶이 아닌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삶, 성령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원래 우리는 마귀에게 속한 자들었으나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되었음을 믿어야 한다. 세상에 속한 자들의 영적인 위치는 이렇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8:44) 세상에 속한 자들은 거짓을 말하고,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언제나 깨어있어 마귀를 대적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마귀는 세상 사람들을 자신의 방향대로 끌고 가려고 하며, 믿는 자들 또한 넘어뜨리기 위해 열심을 내는 피조물이다. 우리는 마귀의 존재를 분명히 알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있는 삶, 성령 안에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성령 충만함을 입어 마귀와의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하며,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제자들은 못 쫓음, 야단맞는 제자들(40-41)

예수님의 제자들이라면 누구를 좇을 수 있어야 하는가? 예수님의 제자라면 마귀를 잘 대적하고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본문의 제자들은 벙어리 귀신 들린 자를 자유하게 하지 못했고,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보고 꾸짖으신다. “당신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주기를 구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너희에게 참으리요 네 아들을 이리로 데리고 오라 하시니.”(9:40-41) 우리는 예수님 안에는 불가능이 없음을 믿어야 한다. 이 상황을 마가복음을 이렇게 기록한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9:19) 우리는 주와 동행하는 자들로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은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며 억압 가운데서 풀어주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 때 하나님을 불신했고,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 없음에 대해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모든 이적을 행한 것도 생각하지 아니하고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14:11)

우리는 지금까지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로 인해 살아계신 하나님을 고백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안에는 능력이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유대 성읍들의 선교 사역을 위해 70인 봉사대를 보낸다. 그리고 그들을 해할 자가 없음을 말씀하신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 하더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10:17-19)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는 원수를 제어할 권세가 있음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날마다 영적 전투를 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귀신을 꾸짖고 아이를 낫게 하신 예수님(42)

예수님은 누구를 낫게 하는 분이신가? 예수님은 귀신들린 자를 자유하게 하시는 분이다. 이 땅의 왕이신 예수님은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해 주시는 치료의 주가 되신다. “올 때에 귀신이 그를 거꾸러뜨리고 심한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고 아이를 낫게 하사 그 아버지에게 도로 주시니.”(9:42)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은 경련을 일으키며 반응했다. 예수님은 그 아이를 불쌍히 여기시며 귀신을 쫓아낸 후, 그 아버지에게 아이를 주었다. 마가복음은 그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9:26-27) 귀신은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로 경련이 일어나게 했고, 예수님은 죽은 것 같이 된 아이를 일으키셨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자유하게 하시며, 마귀에게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해 주시는 능력의 주가 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 중 또 하나의 사역의 장면을 기록한다. 갈릴리 가버나움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은 크게 소리 지르는 귀신 들린 자,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외치는 자를 꾸짖으신다.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4:35-36) 예수님의 이름 앞에 어두움은 굴복하게 되어 있다. 우리는 삼킬 자를 찾으며 두루 다니는 마귀, 인간을 파괴하고 무너뜨리며 일하는 마귀를 대적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우리 모두가 천국에 시민권을 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기도하며, 응답 받는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눌린 자를 자유하게 하시는 좋으신 예수님을 날마다 찬양하며, 주의 권능을 힘입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땅 위의 눌린 자들을 자유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주님(43)

우리 주님은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분을 마음의 중심에 잘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 그들이 다 그 행하시는 모든 일을 놀랍게 여길 새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9:43) 하나님은 크신 분이고 우리는 작은 자이기 때문에 주께서 행하신 일들에 대해 놀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렇게 크신 주를 경외하는 삶을 사는 복 받은 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벙어리 귀신 들린 아이를 자유하게 한 후, 예수님과 제자들은 집에 들어갔고 이렇게 대화한다.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종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9:28-29) 이 시대의 주의 제자인 우리가 금식하며 기도할 때 어두움은 물러가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살아가는 이 땅에서의 삶이 고단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 삼고 승리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는 주의 제자들을 위해 지금도 중보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의 보혈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7:25)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통해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며 그분의 살아계심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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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7. 2. 00:56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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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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