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3. 1. 12. 06:47

주를 위한 인생을 살아가고.

주를 위한 인생을 살아가고.

(바른성경) 마태복음 13:11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비밀들을 아는 것이 허락되었으나, 저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국 비밀을 알게 하셨음을 감사하며, 주를 위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마태복음 13:11 對答하여 가라사대 天國의 秕密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許諾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영어esv) 마태복음 13:11 And he answered them, "To you it has been given to know the secrets of the kingdom of heaven, but to them it has not been given.

(헬라어신약stephanos) 마태복음 13:11 ο δε αποκριθεις ειπεν αυτοις οτι υμιν δεδοται γνωναι τα μυστηρια της βασιλειας των ουρανων εκεινοις δε ου δεδοται

(히브리어modern) 마태복음 13:11 ויען ויאמר כי לכם נתן לדעת את סודות מלכות השמים ולהם לא נת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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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1. 12. 11. 09:36

짐을 여호와께 맡기고.

짐을 여호와께 맡기고.

(바른성경)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내맡겨라. 그러면 주께서 너를 붙드시고, 의인이 흔들리는 것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염려를 멀리하고 주님을 신뢰하며 믿음의 삶을 사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義人의 搖動함을 永永히 許諾지 아니하시리로다

(영어esv) 시편 55:22 Cast your burden on the LORD, and he will sustain you; he will never permit the righteous to be moved.

(히브리어modern) 시편 55:22 השלך על יהוה יהבך והוא יכלכלך לא יתן לעולם מוט לצדי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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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찬양을 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성경: 마가복음 11:4-10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 기다리시는 주

영국 남동부의 하트포드셔 왓포드 교회의 묘지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교회 묘지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형 무덤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큰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덤은 무신론자인 한 여인의 무덤이었는데 그녀는 임종 직전까지 하나님께 도전했다. 심지어는 임종의 병상에서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 무덤에서 나무가 나와 자라게 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평생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그녀의 죽음이 오히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분으로서 인간이 회개하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심을 무언으로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되어, 높으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엎드리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 주일이다. 그리고 다음 주일날은 영광스러운 승리의 부활절 주일이다. 내일부터 한 주간 동안은 고난 주간인데,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이 한 주간은 희비가 엇갈리는 주간이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신 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환호하였다(1-10). 다음날 예수님은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셨다. 그런데 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11-14).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는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셨다(15-18). 다음 날 아침에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서 믿음의 교훈을 주셨다(19-25).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더불어 논쟁을 벌였다(27-33).

 

3.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4-6)

겸손한 왕이신 예수님은 어디로 입성하셨는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하는 예수님을 위해 이렇게 순종한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4-6)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11:1-3) 예수님의 명령은 이상한 명령처럼 보인다.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주인이 있었던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순종은 나귀가 예수님 앞에 이르게 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메시야로서, 왕으로서의 입성을 의미한다.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셔서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다. 벳바게와 베다니는 서로 인접한 마을이었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km 거리에 있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최후의 사역을 위하여 메시야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평화의 왕이 되신다. 구약 성경에는 장차 작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우리는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선지자로 하신 이 말씀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알고 계셨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21:4-5) 예루살렘으로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되신다.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며, 예수님처럼 마음이 겸손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땅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삶 가운데서 늘 높이고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나귀 새끼 위에 타신 예수님(7-8)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은 무엇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가? 겸손하신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나귀 중에서도 새끼 나귀를 타고서 입성하신 것이다. 본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11:7-8) 예수님은 겉옷을 깐 새끼 나귀 위에 앉으셨다.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사람들은 자신의 겉옷을 깔고,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그를 맞이했다. 나귀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는 어떤 나귀였을까? 이 나귀는 아직 어느 누구도 타 보지 않은 나귀였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의도하신 대로 모두 순종하게 만드셨다. 제자들은 끌고 온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걸쳤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겉옷을 벗어 펴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왕하 9:13).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보좌가 아닌 나귀 새끼 위에 앉으신 것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앉는 자리, 그 위에 양탄자 대신 제자들의 허름한 겉옷을 깐 것이다. 이런 메시야의 모습은 그가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종으로도 오셨음을 의미한다. 우리 예수님은 인류의 왕이셨으나 종이 되셨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폈을 것이다.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19:36)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나무를 길에 펴고 흔들었다. 그들이 펴고 흔들었던 종려나무는 무엇인가? 종려나무는 영어로 Palm, Palm tree이다. 열대와 아열대에 많이 보여지는 상록 교목이다. 종려, 또는 종려나무로 성경에 번역된 원어는 대추야자(date-palm)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종려나무(hemp-palm)는 종려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높이는 3-7m에 달하며 암갈색의 섬유에 싸인다. 줄기는 원주처럼 직립하고, 가지치지(번식치) 않는다. 잎은 줄기 끝 자루에 총생하는데 각각 30cm가량의 대에 끝에 가서 손바닥처럼 갈라진 것으로 드리운다. 자웅이주이고 5-6월에 엽액에서 담황색의 화수가 나와, 황백색 여섯 잎이 작은 꽃이 핀다. 과실은 타원형으로 굳고, 9-10월에 암청색으로 익는다. 그리고 줄기의 섬유로 종려승, 종려선, 종려비, 또는 깔개 등을 만든다고 한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은 이 나뭇잎을 흔들면서 환영한 것이다(12:13). 이 나무는 승리의 표상으로 되었다. 종말의 구속된 성도들은 이 나무를 손에 들고서 어린 양 앞에 서 있을 것이다(7:9).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행하셨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들은 바로 순종했고, 제자들의 순종은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행케 했다.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19:35) 새끼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그리고 그분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겸손한 모습으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역하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호산나찬송을 받으신 예수님(9-10)

무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소리를 지르며 호산나하며 찬송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11:9-10)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앞, 그리고 뒤에서 사람들은 호산나 호산나하며 기쁨으로 외친 것이다. 새끼 나귀를 타신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추종하는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으며 나뭇가지를 꺾어 주님의 길을 예비했었다. 그리스도의 입성을 알리는 그들의 아우성은 왕께 대한 최고의 찬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엄한 영접은 백성들의 뜨거운 눈물과 정감 어린 사랑으로 대신했다. 그들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환호를 끊임없이 외쳤을 것이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21:9)

여기서 호산나는 영어로 Hosanna이고 [] wjsanna(osanna)이다. 헬라어 호산나는 아람어 an;[]v'wOh(hoshana)’의 음사로서 ! 구원해 주시옵소서의 뜻이다. 구약에서는 여호와께 구원을 구하는 짧은 기도로서 시 118:25에 씌어져 있다. 이것은 초막절 때 사람들이 제단의 주위를 돌면서 외친 환성인데, 이 축제 때의 기도는 거의 이 말로 시작되었다. 신약에서는 종려 주일에 예수님의 최종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한 사람들의 환성, 또는 아이들이 성전 뜰에서 주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 지르는 기쁨의 외침(21:9, 15)인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사건에 관련하여 복음서에 모두 6회 씌어져 있다(21:9, 9, 15, 11:9, 10, 12:3). 이러한 것들로 볼 때, 메시야를 대망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영접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메시야이신 주를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듣고 믿어, 주를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자기 삶의 주인을 선택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인류의 평화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어떠한 삶의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삶 가운데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인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좋은 것들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높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의 평화이다. 온 땅과 민족은 좋으신 주께 마음 중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우리는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찬양을 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지어다.”(148:1) 예루살렘에 새끼 나귀를 타고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신다. 우리 모두가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찬양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감사의 고백을 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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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

성경: 사무엘상 1:12-18

삼상 1: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삼상 1: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삼상 1: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삼상 1: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삼상 1: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삼상 1: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삼상 1: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1. 똑같은 말

존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는 자녀들을 사랑하며 인내로서 가르쳤다. 하루는 웨슬레의 아버지가 수산나에게 당신은 저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로 스무 번이나 타이른다.’고 야단했다. 이때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열아홉 번만 말했다면 내 말은 헛수고가 될 뻔했어요.’ 사랑은 무엇일까?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다. 매일 웃을 수만은 없는 우리의 삶이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느껴져서 이 사랑이 서로에게 흘러넘쳐 가시기를 축복합니다.

 

2. 사무엘의 출생

본문은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이스라엘 역사에 큰 영향을 준 한 위대한 인물, 사무엘의 출생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는 여기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할 사무엘의 출생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알게 한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는 한 생명의 출생도 결코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할 인물에 대해서는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이며 왕정국가건립의 산파역할을 한 인물이다. 그의 출생을 기록하는 본 장에서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두 부인 중에 하나인 한나는 자식이 없어 상심하다가 하나님 앞에 자식을 주시면 나실인으로 바칠 것을 서약한다(1-11). 한편 성전에서 한나의 기도 내용을 들은 엘리는 한나를 축복하고, 집으로 돌아간 한나는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고 불렀다(12-20). 그 후 한나는 자신이 드린 서원대로 사무엘이 젖을 때자 성전으로 데려가 하나님께 바쳤다(21-28).

 

3. 기도(12-13)

우리는 얼마나 기도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얼마나 응답받고 살아가는가? 죄인인 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녀로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되신다.

 

한나의 기도

고대 근동에서 여자의 가치는 자녀를 생산하는 데 있었다. 자녀를 생산치 못한 여자는 어떠한 대우를 받게 되었을까? 비록 본처라 할지라도 대접을 받지 못했다. 본장에서 자식이 있는 브닌나가 한나를 구박한 것이나 한나가 그토록 비통해 하며 슬퍼한 것은 당연한 일일 수 있다. 그런데 한나는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자기에게 닥친 고난을 극복했다.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를 연결하는 대화의 통로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의 통로가 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성경은 기도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성경은 성도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참조, 살전 5:17). 그러나 모든 기도가 다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기도만이 하나님께서 들으신다. 그런 점에서 한나의 기도는 좋은 모범을 보여 준다. 한나의 기도는 어떠한 기도였는가? 첫째는 자기에게 닥친 위기의 상황을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을 통해 해결하고자 한 믿음의 기도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기도 응답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한나의 기도를 바라보는 엘리

엘리 제사장은 자식이 없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한나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삼상 1:12) 엘리는 누구였는가? 엘리(yli[e, Eli)고상함, 높음의 뜻을 가지며 사무엘 선지자의 스승이다(삼상 1:25-2:11). 그는 실로의 대제사장(삼상 1:9)이었고 40년간 이스라엘을 치리한 유능한 사사였다(삼상 4:18). 아론의 아들 이다말의 후손에서 최대의 대제사장이었을 것이다(삼상 1:9, 왕상 2:27, 대상 24:3, 6). 그러나 그에게도 결점이 있었다. 그는 직분에 대하여 경건하고 유능했지만 자녀에 대한 가정교육을 소홀히 했다. 그의 아들이었던 홉니와 비느하스는 불량자여서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아버지 엘리의 제사장직을 더럽히고 제사와 제물을 경시했다(삼상 2:12-15). 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하나님께 대한 죄였다(삼상 2:29, 3:13) 그래서 그에게 하나님의 형벌이 선고되었다(삼상 2:31-36).

자녀가 없었던 한나는 성전에 올라가서 통곡하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그 기도는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들으셨다. 우리는 이처럼 눈물의 기도를 하나님 앞에 해야 한다. 하나님은 진실 되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드려지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시다. 본문의 앞 상황은 이러했다.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 그 때에 제사장 엘리는 여호와의 전 문설주 곁 의자에 앉아 있었더라.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삼상 1:9-11) 한나는 통곡하며 아들을 주시면 구별된 자로 기르겠다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태어나는 아이를 평생 나실인으로 주께 드릴 것을 서원했다. 당시에는 이렇게 서원 기도를 드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이 서원은 반드시 지켜져야 했다. 그래서 한나는 그저 자기의 소원만을 하나님께 아뢴 것이 아니라, 기도의 응답에 상응하는 감사를 드리겠다고 약속했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이 되고,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는 자들로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한나의 간절한 기도

엘리 대제사장은 한나의 간절한 기도를 들었다. 한나는 누구인가? 한나는 Hannah(인명) (hN;j', Hannah) 은총의 뜻을 가지며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의 두 아내 중 하나이다. 그리고 선지자인 사무엘의 모친이다. 그녀는 남편 엘가나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으므로 다른 아내로부터는 미움을 받았다. 브닌나가 한나를 시기한 것은 첩의 소행도 되지마는 한나가 갑절이나 사랑을 받고 있는데 대한 반항이었다. 그러나 한나는 자녀가 없어서 매년 실로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하며 제사를 드릴 때에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 하겠나이다.”(삼상 1:11)고 서원 기도를 드렸었다. 대제사장 엘리도 이 기도가 응답되기를 소원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제사장의 축복을 들은 한나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 얼굴에 근심이 사라졌다. 당장에 기도의 응답이 나타난 것은 아니었지만, 한나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한나는 마음속의 근심 걱정을 완전히 버렸다.

우리의 기도의 자세는 어떠한가? 우리도 한나의 기도의 자세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면 응답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 엘리는 한나의 기도를 목격한다. 그리고 그녀의 입술을 보며 취한 줄로 생각한다.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삼상 1:13) 충만한 가운데 기도한 한나가 엘리의 눈에는 취한 줄로 생각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되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기도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님의 역사는 기도하는 자들을 술에 취한 자처럼 보이게 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2:13) 성령님의 도움으로 기도할 때 그 기도가 반드시 응답받게 됨을 믿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4. 기도의 응답(14-18)

하나님께 드려진 기도는 반드시 응답받게 된다. 우리는 최고 우선순위로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가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다. 우리도 반드시 기도의 응답을 경험하며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엘리와 한나의 대화

술에 취한 듯해 보이는 한나에게 엘리는 이렇게 묻는다.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삼상 1:14) 충분히 오해할 만한 장면이다. 그러나 한나는 엘리에게 유순한 태도를 보인다. 잠언은 유순한 대답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5:1) 한나의 대답 또한 유순했다. 한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 1:15)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기도했던 한나는 술을 마신 것이 아니라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되 하나님을 100퍼센트 신뢰하며 주님을 사모하며 기도의 내용을 고백해야 한다.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셀라).”(143:6)

한나는 엘리에게 자신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삼상 1:16) 한나는 악한 여자가 아니었고 자식이 없음으로 인해 마음에 원통함이 있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마음의 원통함을 주님께 아뢰되 부드러운 혀를 가지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25:15)

 

평안히 가라 말하는 엘리

한나의 말을 들은 엘리는 그녀가 평안히 갈 것을 말하며 그녀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원했다.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삼상 1:17)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일하시면 이 땅 가운데서 불가능한 일이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혈루병 환자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딸은 고침을 받고 만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5:3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여인아,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병이 완전히 나았으니 안심하고 가거라.’하고 말씀하셨다.”(5:34) 주님께서 행하시면 불가능함이 없다.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주님께서 행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함을 믿어야 한다.

 

근심 빛이 없었던 한나

한나의 기도는 아직 구체적으로 응답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택한 백성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확실히 믿었다. 한나의 얼굴에 근심 빛은 사라졌다.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삼상 1:18) 우리는 이러한 한나의 기도의 자세에 도전 받고 믿음으로 구한 것은 반드시 응답받게 될 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구해라! 그리하면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살아계신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하여 반드시 응답받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기쁨 가운데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5.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

한나의 기도는 응답되었다. 한나는 기도의 응답으로 사무엘을 낳게 되었다. “한나가 임신하고 때가 이르매 아들을 낳아 사무엘이라 이름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삼상 1:20)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은 응답하신다. “하나님의 일에서 필요한 것은 첫째도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다. 그렇다면 내 사랑하는 형제여! 기도하라, 기도하라, 기도하라!” (Edward Payson) 한나는 기도의 응답을 확신 했었다. 그녀는 자신의 믿음대로 곧 아이를 갖게 되었다. 그리고는 자녀를 출산하게 되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기도의 응답을 확신하고 믿음대로 구하며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찬양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 할지어다(셀라).”(66:4)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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