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9. 17. 07:43

주를 기뻐하고 높이며.

주를 기뻐하고 높이며.

(바른성경) 마태복음 21:9 그분을 앞서 가는 무리들과 뒤따르는 무리들이 외치기를 "호산나, 다윗의자손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이시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라고 하였다.

환경과 상황과 무관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기뻐하고 그분을 높여 찬양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마태복음 2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子孫이여 讚頌하리로다 主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영어esv) 마태복음 21:9 And the crowds that went before him and that followed him were shouting, "Hosanna to the Son of David!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Hosanna in the highest!"

(헬라어신약stephanos) 마태복음 21:9 οι δε οχλοι οι προαγοντες και οι ακολουθουντες εκραζον λεγοντες ωσαννα τω υιω δαβιδ ευλογημενος ο ερχομενος εν ονοματι κυριου ωσαννα εν τοις υψιστοις

(히브리어modern) 마태복음 21:9 והמון העם ההלכים לפניו ואחריו קראו לאמר הושע נא לבן דוד ברוך הבא בשם יהוה הושע נא במרומ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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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찬양받기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르는 자가 되고!

성경: 마태복음 21:14-16

마 21:14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

마 21:15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마 21: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1. 경건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갬벌드(Gambold)는 조지아에서 웨슬레와 함께 생활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웨슬레에 관해 편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웨슬레는 옥스포드에서 늘 쾌활했다. 그리고 그는 교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성급한 행동을 엄격한 통제로 억제했으며 언제나 어린아이와 같이 순박하게 생활했다. 그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자신의 최대 임무라 생각하여 하나님과 끊임없는 영적 교제를 가졌다. 그리고 골방에서 기도를 드렸는데 기도를 마치고 방을 나올 때면 그의 얼굴은 마치 해같이 빛났다.’ 그렇다. 이렇게 주님 앞에서 경건의 생활에 힘쓰고 그분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자가 복된 자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에서 사는 동안,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며 늘 그분과 교제하고 주를 기뻐하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을 축복합니다.

 

2.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본장은 이제 드디어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입성하신 뒤 성전에 들러 정화하신 것도 기록하고 있다. 한편 선민임을 자랑하며 예수님께 도전하는 유대인들을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심판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다. 그러심으로 예수님은 자신이야말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고 세상에 속한 자를 심판하실 메시야라는 것을 더욱 드러내신다.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을 때 예수님은 준비해 두셨던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신다. 무리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호한다(1-11절).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사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셨다. 그리고 소경과 저는 자들을 고쳐주셨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행동과 무리들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란 찬송에 대하여 분개하였다(12-17절). 이른 아침에 예수님이 성으로 들어오시다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영원히 열매 맺지 못할 것이라고 저주하셨다(18-22절).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로 더불어 여러 가지 논쟁을 하시고 비유를 말씀하기도 하셨다(23-46절).

 

3.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고(14)

하나님의 사람들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누구를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맹인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주시니.”(마 21:14)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성전 안에 있던 소경들과 절뚝발이들이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 21:14) 예수님은 소경과 절뚝발이를 불쌍히 여기시며 그들을 고쳐주신 것이다. 연약한 이들을 사랑하고, 사회적 약자에게도 편견을 갖기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바라보며 다가가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 35:5) 우리의 육신의 눈을 포함한 영적인 눈을 열어주실 주님을 깨닫고, 그분을 기대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옥에 갇힌 요한이 보낸 그의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 우리는 예수님께서 앉은뱅이와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셨음을 알고, 그의 제자로서 이러한 사역을 잘 감당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의 반대편에 서는 자가 아닌 주를 따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가로되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뇨 또 누가 이 권세를 주었느뇨.”(마 21:23)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이들처럼 주께 묻기보다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를 믿고 그분의 사역을 이어가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성전 미문에 앉아있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행 3:1-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고 낫게 하는 역사가 우리에도 있기를 기도한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눌린 자를 고치시고 자유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어둡고 병든 세상에서 낙심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을 축복합니다.

 

4.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알고(15)

하나님의 사람들은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누구를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알고, 구원의 주님을 높이며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마 21:15) 여기 ‘노하여’를 통하여 우리는 예수님이 메시야로 인정되는 것에 대해 당시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마음이 상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영적 무지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의 과정으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호산나 호산나 외치며 주를 높였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 예수님은 겸손한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마태복음은 나귀 새끼를 타신 왕이신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마 21:6-8) 우리는 겸손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 찬양받기 합당하신 예수님을 기뻐 높이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시며 예언의 말씀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요 12:13-15)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을 높이는 멋진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미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니.”(눅 19:37-38)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구원의 주님을 높이고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막 11:9-10) 환경에 따라 감정이 요동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알고 구원의 주님을 높이며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16)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누구를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 21:16)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사역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주께서 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악하고 음란한 세대 가운데서 영적인 눈이 어두워져 살아간다면 주님의 마음만 아프게 하는 자가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표적을 구하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마 16:4) 악한 세대 가운데서 죄악 가운데 살아가며 주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자가 아닌, 죄악을 회개하고 주의 말씀을 깨닫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마태복음은 계시에 대한 예수님의 감사 고백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마 11:25) 하나님 앞에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며 살지 않기를 바란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사 5:21) 우리는 겸손한 태도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열려 천국의 비밀을 깨닫는 복 있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저희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무릇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마 13:11-16) 우리는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주의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늘 회개하기를 힘쓰고 주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갈 수 있는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감사하며, 기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할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모든 인간이 전적 부패하여 예수님의 보혈이 아니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신 주께 감사하고, 늘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 18:3-4) 거친 세상 가운데서 무뎌져 버린 강퍅한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구원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끝까지 주를 따르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닫고 끝까지 주를 따르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지혜로 구원의 비밀을 깨닫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고전 2:6-8) 우리는 유대인들이 이 비밀을 깨닫지 못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았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은전 삼십 량에 팔리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다 마치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이라 인자가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하여 팔리우리라 하시더라.”(마 26:1-2)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고, 찬양을 받기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끝까지 잘 따라가는 복이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병든 자를 고치시고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 찬양받기 합당하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알고 구원의 주님을 높이며 기뻐하는 자!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으로 주를 기쁘시게 하고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찬양받기 합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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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잘 따라가는 자!

성경: 마가복음 11:4-10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 믿음을 가지고 끝까지 달려가고

어렵고도 중대한 임무를 맡았던 한 젊은 장교의 이야기이다. 그는 여러 번의 임무 수행에 비참하게도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도 그의 상관인 대령은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를 또다시 맡겨 그 장교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드디어 그 젊은 장교는 이번에는 영웅적으로 그 임무를 완수했다. 그리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었다. 군목은 이 사실을 알고 그에게 축하의 말을 건냈다. 그러자 그 청년 장교는 이렇게 말했다.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지요. 내가 그를 실망시켰는데도 그는 나를 계속 신임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그렇다. 누군가가 자신을 신뢰해 준다고 믿고 인내하며 노력한다면 시간이 좀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께서 자신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부르심의 목적을 따라 끝까지 달려가는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있음을 믿으며 끝까지 인내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사역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정화사건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구약 시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대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입성 첫날 성전을 둘러보셨다(9:9). 그리고 예수님은 성전에서 만연되어 있는 인간의 위선과 탐욕, 허영과 자기중심의 모순을 발견하고 이를 숙청하기 위해 채찍을 드셨다. 예수님은 베다니에 이르신 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데 많은 이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환호하였다(1-10). 다음날 배가 고프신 예수님은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셨다. 그러나 나무에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무화과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11-14).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는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셨다(15-18). 다음 날 아침에 무화과 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서 믿음의 교훈을 주셨다(19-25).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더불어 논쟁을 벌였다(27-33).

 

3. 예수님을 태울 나귀 새끼(4-6)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으나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사람들이 나귀 새끼를 가져가도록 허락했고 제자들은 나귀 새끼를 풀어 예수님께로 끌고 올 수 있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4-6)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메시야로서 왕으로서의 입성이다. 예수님은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 둘을 보내셔서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신 것이다. 벳바게(aGEP' tyBE, Beth-phage)는 지명인데, 익지 않은 종려의 곳의 의미를 지닌다. 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곳인데,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km거리에 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여기서 나귀를 구하여 탔음을 기록한다(21:1, 11:1, 19:29). 예수님은 공생애 최후의 사역을 위해 메시야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자 하셨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서 입성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의 앞의 상황은 이렇다.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어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묻는 말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도 알려주셨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11:1-3)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께서 타실 나귀 새끼가 제자들을 통해 순조롭게 전달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이미 예언된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한 막힘없이 진행되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짐을 깨닫고 그분의 역사에서 좋은 편에 속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셨으나, 천사들과 권세들도 순복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께 순복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2) 자기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것처럼 생각하며 살아가지 말고,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 앞에 순복하며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잘 믿고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을 축복합니다.

 

4. 예수님이 타신 나귀 새끼(7-8)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새끼 나위 위에 얹어 놓았고 예수님은 그 나귀를 타셨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11:7-8) 요한복음은 어린 나귀를 타신 예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12:14) 제자들은 주님이 시키신 대로 나귀 새끼를 끌고 왔는데 그 나귀는 지금까지 누구도 타 보지 않은 나귀였다. 이렇게 하여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말씀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21:4-5)

예수님은 분명히 왕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었는데, 보좌 대신 나귀 새끼에 겸손히 앉으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의도하신 대로 모두 순종하게 만드셨다. 제자들은 끌고 온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걸쳤는데 유대인에게 있어서 겉옷을 벗어 펴는 행위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왕하 9:13). 우리는 자신이 믿는 주님이 왕이신 예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 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21:8) 나귀 새끼를 타고 낮은 모습으로 오신 겸손의 왕 예수님을 기뻐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 자신만의 목표를 위해 분주하게만 살아가지 말고, 겸손하게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기뻐하며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호산나 찬송을 받으신 예수님(9-10)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호산나 찬송을 받으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는 복된 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서 그리고 뒤에서 호산나 찬송하며 주님을 높였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11:9-10)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주님을 추종하는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으며 나뭇가지를 꺾어 주님의 길을 예비했다. 그리스도의 입성을 알리는 그들의 아우성은 왕께 대한 찬송이었다. 그들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환호를 끊임없이 외쳤다. 우리는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평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예수님은 많은 백성의 환호를 받으면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는데, 그 후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신 후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다. 이러한 수난을 우리를 위해 받으시게 된다.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19:15)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 질렀고,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넘겨주게 된다. 이러한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을 아셨던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백성들의 환호를 받으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이렇게 높임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주님을 잘 따라가는 복된 삶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복된 삶을 살 수 없을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 없이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기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주님께서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지금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언제 어디서나 하늘에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인 예수 그리스도를 잘 따라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 기쁨이 없어 보이는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낙심하지 말고, 호산나 찬송을 받기 합당하신 예수님을 높이며 그분을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란다.

 

6. 언제나 구원의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높이며 찬양하는 복된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구원의 주님께 감사하고 그분을 높이며 찬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146:2)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며 구원받은 주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모든 일이 역사를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진행됨을 인정하고, 그분께 순복하며 보좌 우편에 계시는 예수님을 잘 믿고 따라가는 자! 분주한 삶 가운데서도 믿음의 눈을 열어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겸손의 왕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기뻐하며 사는 자! 자기 삶의 형편을 생각하며 낙심하지만 말고,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호산나 찬송을 받기 합당하신 예수님을 높이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겸손의 왕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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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찬양을 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성경: 마가복음 11:4-10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 기다리시는 주

영국 남동부의 하트포드셔 왓포드 교회의 묘지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교회 묘지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형 무덤이 있었는데 그 한가운데 큰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 무덤은 무신론자인 한 여인의 무덤이었는데 그녀는 임종 직전까지 하나님께 도전했다. 심지어는 임종의 병상에서 만약 하나님이 계신다면 내 무덤에서 나무가 나와 자라게 할 것이다라고 공언했다. 평생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공언했던 그녀의 죽음이 오히려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전능하신 분으로서 인간이 회개하기를 오래 참고 기다리고 계심을 무언으로 증거하고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되어, 높으신 하나님 앞에 날마다 엎드리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오늘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종려 주일이다. 그리고 다음 주일날은 영광스러운 승리의 부활절 주일이다. 내일부터 한 주간 동안은 고난 주간인데,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이 한 주간은 희비가 엇갈리는 주간이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이르신 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환호하였다(1-10). 다음날 예수님은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셨다. 그런데 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11-14).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는 성전 정화사건을 일으키셨다(15-18). 다음 날 아침에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서 믿음의 교훈을 주셨다(19-25).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더불어 논쟁을 벌였다(27-33).

 

3.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4-6)

겸손한 왕이신 예수님은 어디로 입성하셨는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하는 예수님을 위해 이렇게 순종한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11:4-6)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11:1-3) 예수님의 명령은 이상한 명령처럼 보인다.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주인이 있었던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순종은 나귀가 예수님 앞에 이르게 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메시야로서, 왕으로서의 입성을 의미한다.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셔서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다. 벳바게와 베다니는 서로 인접한 마을이었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km 거리에 있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최후의 사역을 위하여 메시야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평화의 왕이 되신다. 구약 성경에는 장차 작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우리는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선지자로 하신 이 말씀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알고 계셨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21:4-5) 예루살렘으로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되신다.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며, 예수님처럼 마음이 겸손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땅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삶 가운데서 늘 높이고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나귀 새끼 위에 타신 예수님(7-8)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은 무엇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가? 겸손하신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나귀 중에서도 새끼 나귀를 타고서 입성하신 것이다. 본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11:7-8) 예수님은 겉옷을 깐 새끼 나귀 위에 앉으셨다.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사람들은 자신의 겉옷을 깔고,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그를 맞이했다. 나귀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는 어떤 나귀였을까? 이 나귀는 아직 어느 누구도 타 보지 않은 나귀였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의도하신 대로 모두 순종하게 만드셨다. 제자들은 끌고 온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걸쳤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겉옷을 벗어 펴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왕하 9:13).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보좌가 아닌 나귀 새끼 위에 앉으신 것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앉는 자리, 그 위에 양탄자 대신 제자들의 허름한 겉옷을 깐 것이다. 이런 메시야의 모습은 그가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종으로도 오셨음을 의미한다. 우리 예수님은 인류의 왕이셨으나 종이 되셨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폈을 것이다.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19:36)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나무를 길에 펴고 흔들었다. 그들이 펴고 흔들었던 종려나무는 무엇인가? 종려나무는 영어로 Palm, Palm tree이다. 열대와 아열대에 많이 보여지는 상록 교목이다. 종려, 또는 종려나무로 성경에 번역된 원어는 대추야자(date-palm)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종려나무(hemp-palm)는 종려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높이는 3-7m에 달하며 암갈색의 섬유에 싸인다. 줄기는 원주처럼 직립하고, 가지치지(번식치) 않는다. 잎은 줄기 끝 자루에 총생하는데 각각 30cm가량의 대에 끝에 가서 손바닥처럼 갈라진 것으로 드리운다. 자웅이주이고 5-6월에 엽액에서 담황색의 화수가 나와, 황백색 여섯 잎이 작은 꽃이 핀다. 과실은 타원형으로 굳고, 9-10월에 암청색으로 익는다. 그리고 줄기의 섬유로 종려승, 종려선, 종려비, 또는 깔개 등을 만든다고 한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은 이 나뭇잎을 흔들면서 환영한 것이다(12:13). 이 나무는 승리의 표상으로 되었다. 종말의 구속된 성도들은 이 나무를 손에 들고서 어린 양 앞에 서 있을 것이다(7:9).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행하셨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들은 바로 순종했고, 제자들의 순종은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행케 했다.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19:35) 새끼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그리고 그분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겸손한 모습으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역하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호산나찬송을 받으신 예수님(9-10)

무리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소리를 지르며 호산나하며 찬송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11:9-10)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님의 앞, 그리고 뒤에서 사람들은 호산나 호산나하며 기쁨으로 외친 것이다. 새끼 나귀를 타신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추종하는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겉옷을 벗어 길에 깔았으며 나뭇가지를 꺾어 주님의 길을 예비했었다. 그리스도의 입성을 알리는 그들의 아우성은 왕께 대한 최고의 찬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장엄한 영접은 백성들의 뜨거운 눈물과 정감 어린 사랑으로 대신했다. 그들은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는 환호를 끊임없이 외쳤을 것이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21:9)

여기서 호산나는 영어로 Hosanna이고 [] wjsanna(osanna)이다. 헬라어 호산나는 아람어 an;[]v'wOh(hoshana)’의 음사로서 ! 구원해 주시옵소서의 뜻이다. 구약에서는 여호와께 구원을 구하는 짧은 기도로서 시 118:25에 씌어져 있다. 이것은 초막절 때 사람들이 제단의 주위를 돌면서 외친 환성인데, 이 축제 때의 기도는 거의 이 말로 시작되었다. 신약에서는 종려 주일에 예수님의 최종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한 사람들의 환성, 또는 아이들이 성전 뜰에서 주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 지르는 기쁨의 외침(21:9, 15)인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사건에 관련하여 복음서에 모두 6회 씌어져 있다(21:9, 9, 15, 11:9, 10, 12:3). 이러한 것들로 볼 때, 메시야를 대망하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영접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는 메시야이신 주를 기뻐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듣고 믿어, 주를 기뻐하는 삶을 살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자기 삶의 주인을 선택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인류의 평화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2:14)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바라보기를 소망한다. 어떠한 삶의 역경 속에서도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삶 가운데서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소리 높여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주인

우리는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세상의 좋은 것들을 좇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만 높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 평강의 왕이신 예수님의 이 땅에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이 땅의 평화이다. 온 땅과 민족은 좋으신 주께 마음 중심으로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려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우리는 영원한 왕 예수 그리스도, 평강의 왕 예수 그리스도, 찬양을 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지어다.”(148:1) 예루살렘에 새끼 나귀를 타고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신다. 우리 모두가 겸손의 왕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찬양받으실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 날마다 감사의 고백을 하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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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4. 4. 20:37

존귀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12-15

말씀: 존귀하신 예수님

성경: 요한복음 12:12-15

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2: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2: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 찬송

한 목사님이 노환으로 누워계신 어머니의 머리맡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었다. 80세가 훨씬 넘은 할머니가 자기의 병이 치료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자녀를 위로했다. 임종예배를 위해 온 가족이 다 모였을 때, 목사님은 어느 성구를 읽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네가 알아서 골라라. 단지 찬송하는 것으로 말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노구에 병마와 싸웠지만 그녀는 괴로움에 지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 달라는 유언을 했던 것이다. 삶 가운데 우리는 어떠한 고통을 가지고 있는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로 세상에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역을 했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명을 고난과 죽음을 통해 성취하실 그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장에서 요한은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구약 성경의 예언에 대한 성취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수천 년 전에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비로소 성취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이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갖고 있는 메시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향유를 부은 마리아(1-8), 나사로를 죽이려는 음모(9-11), 예루살렘 입성(12-19), 한 알의 밀(20-26), 자신의 죽음의 예고(27-36), 강퍅한 유대인들(37-43), 빛이신 예수님을 믿을 것에 대한 권면(44-50)으로 이루어졌다.

 

3.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12)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이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환영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이스라엘 왕으로 믿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그때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이는 구약의 메시야 예언의 성취였다. 예수님을 환영한 무리는 누구였을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살리실 때 함께 있던 자들의 증거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표적 행하심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를 본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달랐다.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그 광경을 보고 분을 내며 그들의 하는 일이 쓸데없다고 말했다. 본문을 보면 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는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12:12)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었는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면 신고할 것을 명령해 놓았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11:55-56)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했지만,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잡고자 했던 것이다.

유월절에 대해 더 살펴보면 이렇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주셨고, 그들은 이것을 기념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어, 출애굽을 행하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6:6) 또한 종교개혁을 했던 남 유다의 요시아 왕은 정성을 다해 유월절을 지켰었다. “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대하 35:7) 유대인의 각 가정에서 지키고 있는 유월절의 식순을 보면 니산월의 13, 즉 그 날의 일몰과 함께 시작되어 등불을 켜면 집안에서 일체의 누룩을 제해 버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4일 저녁부터 유월절의 식사를 시작한다. 축복은 기도한 후, 첫째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손을 씻고 기도한 후 쓴 나물에 쓴 나물에 하로세스를 발라(곁들여) 기도 후 가족에게 먹게 했다. 하로세스[ts,/rj(ch roseth)는 과실과 포도주를 섞어 만든 크림 같은 조미품으로 이것은 선조가 애굽에서 점토를 반죽하던 고통의 상징이다. 그 후 고난의 빵으로 불리는 세 조각 겹친 무교병을 취해 애굽에서 선조의 고난을 상기했다.

 

4. 호산나 찬송 받으시는 예수님(13)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주님께 호산나 하고 외치며 왕이신 주님을 찬송한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 그들이 흔들던 종려나무 가지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종려나무는 거룩함이나 승리, 또는 번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전쟁에서 승전하고 입성할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외쳤던 호산나<wJsannav>의 의미는 부디 도와주십시오, 구원하옵소서의 뜻을 갖는다. 이는 시편 118:25에 있는 히브리어에 대한 음역이다. , 그들은 구원의 메시야를 환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님을 주제로 하는 마태복음에서 마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21:9-11)

무리들은 호산나 하고 외치며 주님을 높였고 온 성은 소동했다. 우리 주님은 왕 중의 왕이시오, 주 중의 주이시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44:6) 우리는 예수님이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천국에서도 주를 믿는 나라와 족속들은 어린양 예수께 찬송하게 될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7:9)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나 주님을 호산나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나귀를 타신 예수님(14)

왕이신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12:14) 여기서 어린 나귀는 스가랴 9:9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이다. 말은 전쟁 시에 타지만 나귀는 평화 시에 타는 동물이다. 따라서 메시야가 평화의 왕이며 사랑의 왕으로 오심을 나타내며 어린 나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공의와 구원을 베푸는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이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예수님께서 타고 오신 나귀는 어떤 나귀였는가? 예수님은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나귀새끼를 풀어 끌고 올 것을 명하셨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11:1-7)

조금은 이상한 명령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올 것을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사람들은 제자들이 나귀를 푸는 것을 허락했고 예수님은 겉옷이 걸쳐진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주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나귀를 타신 겸손하신 예수님, 왕 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씻고 용서함 받아 주님의 보좌 앞에 엎드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겸손의 왕 예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왕 되신 예수님(15)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주님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미 예언된 대로 나귀를 타고 오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보고 우리는 크게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12:1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 임금이 너에게로 오신다.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하신 말씀 그대로였다.”(12:15) 예수님과 관련해 언제 또 소동하는 일이 있었는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유대인의 왕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 소식을 듣고 소동하고 만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2:2-3) 왕 되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기다리는 자들은 주님의 나타나심에 크게 기뻐하며 감동했을 것이고, 예수님께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이 소식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놀랐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식에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 내가 구원자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다면 복 받은 자이다. 우리 주님의 일은 크고 기이하다. 우리는 만국의 왕을 높이며 찬양하는 승리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한 계시록은 주 안에서 승리자들의 노래를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15:3)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시련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인내로서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하여, 왕 되신 주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호산나를 외치면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한 군중의 함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의 함성은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메시야, 바로 그분이 오셨으므로 더 이상 지체 말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는 민족적인 간청이었다. 군중은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단지 자신들이 기대한 정치적, 민족적 소망을 이뤄 줄 메시야로만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장차 자기들의 기대가 무너졌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무리로 돌변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의 모습이 당시의 군중과 비슷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와 가정, 개인의 어떠한 목적과 영광을 위해 주님을 좇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들로서 주님을 잘 따라가며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5) 온 맘과 힘을 다하여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우리는 바울의 고백에 도전 받아야 한다. 나귀를 타신 겸손하신 예수님,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구원자 예수님, 존귀하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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