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한마음으로 주의 일에 충성!

성경: 로마서 12:4-11

12: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12: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12:8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12:9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2: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2: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 진실

어떤 일에 있어서 진실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진실을 위해 인기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인기를 위해 진실을 버릴 것인가? 우리는 종종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기는 사람이 주고 진실은 하나님이 주심을 알며, 인기는 잠시요 진실은 영원함을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라는 것이다. 천문학자는 별을 관찰하는 사람인데, 그가 별을 잘못 관측해도 별빛은 퇴색하지 않는다. 또한, 장미를 호박꽃이라 해도 그 향기는 줄어들지 않는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진실한 사람을 오해한다 해도 그 사람의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칭찬과 구설수에 좌우되는 인생이라면 참으로 슬픈 인생일 것이다. 우리가 변덕 많은 인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오로지 진실한 마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할 때, 참된 영혼의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성도의 삶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사신 것이니 하나님께 바쳐야 마땅하다. 따라서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는 억지나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정한 감사의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된 예배이다(1-2). 성도는 각자 받은 은혜를 지혜롭게 생각하여 그의 받은 은혜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그것으로 교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한편 바울은 사랑에 책임이 따른다고 말한다.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하고 뜨거운 가족적 애정과 서로 먼저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부지런히 주님을 섬기고 소망 중에도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고 기도에 항상 힘을 쓰며 가난한 자를 돌보고 동고동락하여 하나가 되며, 악으로 악을 갚지 말아야 한다(3-21). 이와 같이 모든 삶에 있어서 선과 사랑의 행동 방침을 강조하는 본 장은 기독교인의 행동 강령의 대전제를 보여 주고 있다.

 

3. 교회 공동체(4-5)

교회 공동체는 누구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을 선물로 받은 그리스도인, 교회 안에서 지체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12:4) 여기서 한 몸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지칭하고 있다. 몸이 많은 다른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교회도 많은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명의 그리스도인도 교회이며, 각각의 지체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한 교회를 이룬다. 각 지체는 서로 다른 기능이 있는데, 우리는 각 지체로서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수님이 한 분이시듯이 몸도 하나이며, 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는데, 그 지체 중 한 사람이 자신임을 기억해야 한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고전 12:12) ‘는 한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존재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로서 존재해야 함을 기억해야 한다. 교회 안에서 한 지체인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날마다 조금씩 믿음이 자라나 영적인 거장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풍성한 사랑이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 가운데 있기를 기도한다. 하나님께 큰 은혜를 받아 누리며, 그 은혜와 사랑을 다른 형제자매에게 흘려보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4:15-16)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도리어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 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각 부분이 자기 구실을 다함으로써 각 마디로 서로 연결되고 얽혀서 영양분을 받아 자라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도 이와 같이 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4:15-16)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인데, 지체들이 예수님과 잘 연결되어 있을 때 믿음이 성장하고, 아름답고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져 갈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12:5)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마음에 꼭 새겨야 할 것이다. 소중한 지체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으로 주님의 역사를 그려가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복음 전파에 생명을 걸고 힘을 썼는데, 주의 몸 된 교회를 위하는 일이라면 고난도 문제로 여기지 않고, 기쁨으로 여겼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1:24) 우리도 바울에게 도전을 받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서 주님의 일에 더욱 힘쓰며, 기쁨으로 교회를 섬기며 나가야 할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잘 연합되고, 지체들로서 서로 하나가 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하실 것이다. 우리는 날마다 의 믿음이 자라나며, 주님의 교회가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해서 기도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한마음으로 힘써 일하고,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 가운데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이 주신 은혜대로(6-8)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자들이 믿음의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허락하시는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은혜를 허락하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이 주신 은혜대로 힘써서 주의 사역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12:6) 여기서 믿음의 분수는 각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다양한 은사를 의미한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받은바 직분과 은사에 따라 적당하게 행할 것을 권면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몸으로 하는 교회의 각 지체로서 성도들에게 직분과 은사를 주셨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성을 지니는 동시에 각 지체들의 다양성을 지닌다. 하나님은 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신다. 우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맞는 다양한 은사들을 허락하셨음을 알고, 주께 감사하고 주어진 은사를 잘 사용하며 주의 일에 열심을 내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부어지는 더 큰 은혜가 있기를 사모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2:17)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로 꿈을 꾸고 환상을 보고 예언함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힘을 내어 주의 일에 힘쓰고, 주님이 이끌어가시는 역사에 시선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은사를 주셨는가?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12:7) 여기서 가르치는 자는 오늘날의 일반적인 교사가 아니라 사도 시대에 성도들을 가르치던 사도적 선생들을 가리킨다. 섬기는 은사가 있으면 섬기는 일에 힘쓰고,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꾼을 찾고 계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소망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24:45-47)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귀한 일꾼들이 될 것을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가진 달란트, 은사를 묻어두지 말고, 잘 꺼내어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주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고 칭찬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혹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12:8) ‘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사는 무엇인가? 위로하는 일, 구제하는 일, 지도하는 일, 자선을 베푸는 일등,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어떠한 은사를 주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 묻고 자신의 은사를 찾아내어 하나님의 역사에 잘 동참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각자의 직분과 은사에 따라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대로, 그리고 주어진 은사를 잘 사용하여 주님의 역사에 귀하게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서로 사랑(9-10)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지체로서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 된 지체들로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12:9) 여기서 미워하고는 가치 판단 과정을 거쳐서 나쁘거나 싫어하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미워하는 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우리는 거짓을 멀리하고, 악을 미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누리며 형제 자매에게 사랑을 나눌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할 때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실 것이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119:104) 주님의 법을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함으로 지혜를 얻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주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거짓을 미워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서로 경주하되, 형제를 사랑하고 서로 존경하기를 경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권면한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12:10) 여기서 우애하고는 원어로 <filovstorgoi: 필로스토르고이>이다. 이는 형제 사이의 사랑, 가족 사이의 사랑을 의미한다. 바울은 이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서로를 얼마나 위해야 하는지를 나타낸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 안에서 지체된 우리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점점 커지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 그것은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의 누구보다도 사랑하셨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셨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인가? 내가 예수님의 참 제자라면 형제자매를 조건 없이 사랑해야 할 것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4-35) 주께서 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이 를 향한 놀라운 사랑이었음을 성령님의 은혜로 깨닫기를 소망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이 사실을 더욱 깊이 깨닫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 죄인인 우리를 부르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케 된 우리는 이 자유를 남용하지 말고 감사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이 감사의 마음을 서로 사랑함으로 나타내 보여야 할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5:13)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며 살 것을 지금 결단하고, 날마다 선포해야 할 것이다. ‘를 죄에서 자유케 하신 주님을 입술을 열어 날마다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입술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 주의 사랑 안에 거하고 사랑으로 행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열심히 주를 섬김(11)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열심히 주를 섬기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12:11)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자신의 직분을 감당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는 더욱 성장하고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 안에 놀라운 믿음의 성장과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질 수 있기를 위해 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주를 섬기고, 주께서 걸어가신 그 발자취를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치 못할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12:28) 교회 공동체 안에서 하나로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령님의 역사로 한마음으로 행하여 주를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대로,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에 따라 적극적으로 사역하며 나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형제자매를 사랑하며,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그분의 일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함으로 열심히 주를 섬기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믿음 생활에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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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금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4. 7. 07:05

악한 자들로 인해 불평하지 말고.

악한 자들로 인해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주님을 날마다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자들로 인해 절대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7)

시인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 것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악인들 앞에서 그들을 향한 다른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여호와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악한 자들의 잘됨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자신의 입술을 잘 지키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인내하며 잠잠히 기다린다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실 것이다.

자신의 열악한 환경과 상황 때문에 마음이 움츠러들거나 불편해하지 말고, 날마다 여호와를 바라며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시 27:14) 입술을 다물고 여호와를 바랄 때 주께서 친히 일하실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자의 형통함으로 인해 감정이 요동하거나 분을 내지도 말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시 37:8)

의인이 행악자로 인하여 마음에서 나오는 분을 버리고 노를 버려야 하는 이유는 분노의 결과가 행악에 치우치게 하기 때문이다. 의인은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분노의 감정이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감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그들이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들에 대해 평가하며 분을 내거나,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자신도 악의 올무에 빠져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마음과 입술을 잘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전쟁에서 성을 빼앗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성을 빼앗는 자는 위대하게 보인다.

그러나 성을 빼앗는 자보다 더 훌륭한 자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자신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만약, 실수로 자신의 마음에 분을 내었다면 해가 지기 전에 화해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엡 4:26) 우리는 자신의 마음 가운데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도록 늘 힘써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악인과 원수의 형통함을 보고 그들을 판단하여 마음으로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는 연약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나’의 삶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과 ‘나’의 삶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신다.

나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는 주님 앞에서 입술을 잘 지키고,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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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4. 5. 11:28

여호와를 기뻐하고 맡기는 자.

여호와를 기뻐하고 맡기는 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를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소유한 자들로서 여호와를 기뻐하고 그분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시인은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명하면서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을 말한다.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하면, ‘나’의 모든 생각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주를 기뻐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주님께 구한다면 반드시 그분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 우리는 주를 기뻐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행사를 모두 주님께 맡기며 나아갈 때 그분께서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내 삶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어떠한 부분을 간섭해 주기를 원하는가? 우리 인생의 길을 지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는 자,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친히 역사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 16:3) 주께 맡기고 성령님을 의지할 때, 주께서 친히 ‘나’의 삶 가운데 간섭하셔서 ‘나’를 지도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삶이 잘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들의 삶에 더욱 관여하길 원하실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주의 얼굴을 구하고 주님의 뜻 가운데 거하기를 소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주께 맡기는 자,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햇빛처럼 그들의 옳음을 빛나게 하시고 대낮처럼 그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해주실 것이다.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6)

우리는 여호와를 의지하면 여호와께서 의인의 의와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아내실 것을 믿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나의 삶의 문제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인해 근심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을 여호와께 맡기고 주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나’의 삶에 간섭하시며 ‘나’의 삶을 경영해 가실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이 이루실 것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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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성경: 시편 37:4-11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37:6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 같이 하시리로다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37:8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37:9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37:10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 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37:11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

 

1. 참된 믿음의 사람들

18441022일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러한 예언을 했던 윌리암 밀러5만에 달하는 그의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농사일도 돌보지 않은 채 승천 예복을 입고 산언덕에 올라가 찬송을 했었다고 한다. 그들은 밀러의 말대로 긴장한 채 하늘을 바라보면서 불이 내리고 나팔 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1022일 새벽이 밝아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호각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놀란 그들은 이 바보들아 빨리 집에 돌아가서 감자나 캐라고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는 다시 오신다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진 자들로서 더욱더 성실하게 자기 일을 잘 감당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복음 전파에 힘쓰고, 악한 길에 빠지지 말고 주님이 인도하시는 선한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실족하지 않는 의인

시인은 행악자들이 잘 되는 세상의 부조리의 문제로 인하여 의인이 실족하지 말 것을 명한다. 그러면서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임하여 악인이 멸망을 당하고 의인이 흥왕하게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인들의 궁극적인 승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에 근거하는 것으로 의인의 영원한 소망이다. 본시는 악인들의 일시적 번영을 보지 말고 하나님의 궁극적 심판을 보라는 내용이다. 악인의 일시적 번영에 대하여 불평하지 말 것은 그가 곧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다(1-2). 의인은 선을 행하고 주를 의지해야 한다(3-6). 의인은 악인의 형통함을 보더라도 참고 기다려야 한다. 잠시 후면 악인은 없어질 것이고 의인은 땅을 차지하여 평화를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7-11). 악인이 칼과 활로 의인을 공격하고 가난한 자를 엎드러뜨리고자 하나 그 칼과 활이 도리어 악인의 마음을 찌르게 될 것이다(12-17). 의인도 가끔 넘어지나 여호와의 손이 붙드시므로 완전히 넘어지지는 않는다(18-25). 하나님은 공의를 사랑하시고 성도를 보호하심으로 의인은 땅을 차지하고 영영히 거할 것이다. 그리고 악인은 일시적 세력이 컸다고 할지라도 그의 궁극은 멸망뿐이다(26-40).

 

3. 여호와를 기뻐하고 맡기는 자(4-6)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누구를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생명을 소유한 자들로서 여호와를 기뻐하고 그분께 자신의 삶을 맡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37:4) 시인은 여호와를 기뻐하라고 명하면서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을 말한다. 우리가 여호와를 기뻐하면, ‘의 모든 생각을 아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이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상황과 환경을 초월하여 주를 기뻐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주님께 구한다면 반드시 그분께서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15:7) 우리는 주를 기뻐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또한, 우리의 행사를 모두 주님께 맡기며 나아갈 때 그분께서 이루실 것을 믿어야 한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37:5)

내 삶의 문제는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어떠한 부분을 간섭해 주기를 원하는가? 우리 인생의 길을 지도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문제를 맡기는 자,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 주께서 친히 역사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16:3) 주께 맡기고 성령님을 의지할 때, 주께서 친히 의 삶 가운데 간섭하셔서 를 지도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삶이 잘 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자들의 삶에 더욱 관여하길 원하실 것이다. 믿음의 사람들이 주의 얼굴을 구하고 주님의 뜻 가운데 거하기를 소망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욱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주께 맡기는 자, 그를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햇빛처럼 그들의 옳음을 빛나게 하시고 대낮처럼 그들의 권리를 당당하게 해주실 것이다.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37:6) 우리는 여호와를 의지하면 여호와께서 의인의 의와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실 것을 믿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나의 삶의 문제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을 인해 근심하고 있는가? 우리의 삶을 여호와께 맡기고 주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의 삶에 간섭하시며 의 삶을 경영해 가실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이 이루실 것을 믿고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악한 자들로 인해 불평하지 말고(7-8)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 어떠한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주님을 날마다 기뻐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자들로 인해 절대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37:7) 시인은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 것을 다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악인들 앞에서 그들을 향한 다른 말을 많이 하지 말고, 여호와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악한 자들의 잘됨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지도 말아야 한다.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자신의 입술을 잘 지키며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인내하며 잠잠히 기다린다면,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친히 일하실 것이다. 자신의 열악한 환경과 상황 때문에 마음이 움츠러들거나 불편해하지 말고, 날마다 여호와를 바라며 강하고 담대해야 한다. “너는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바랄지어다.”(27:14) 입술을 다물고 여호와를 바랄 때 주께서 친히 일하실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자의 형통함으로 인해 감정이 요동하거나 분을 내지도 말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37:8) 의인이 행악자로 인하여 마음에서 나오는 분을 버리고 노를 버려야 하는 이유는 분노의 결과가 행악에 치우치게 하기 때문이다. 의인은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분노의 감정이 하나님의 뜻과 배치되는 감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타인을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설령 그들이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들에 대해 평가하며 분을 내거나, 하나님께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불평하거나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자신도 악의 올무에 빠져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의 마음과 입술을 잘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전쟁에서 성을 빼앗는 것은 어려운 일이므로 성을 빼앗는 자는 위대하게 보인다. 그러나 성을 빼앗는 자보다 더 훌륭한 자는 자신의 마음을 잘 다스리는 자이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자신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이 넘치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간혹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실수를 범하기도 한다. 만약, 실수로 자신의 마음에 분을 내었다면 해가 지기 전에 화해하기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4:26) 우리는 자신의 마음 가운데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도록 늘 힘써야 할 것이다. 나는 어떠한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악인과 원수의 형통함을 보고 그들을 판단하여 마음으로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께 불평을 늘어놓는 연약한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의 삶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 ‘의 생각과 의 마음과 의 삶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신다. 나를 가장 많이 알고 계시는 주님 앞에서 입술을 잘 지키고, 그리스도의 평강을 빼앗기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악인 VS 하나님의 사람(9-11)

하나님은 악인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의인들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실까? 세상의 많은 사람들 중에는 악인도 있고 의인도 있는데, 의인들의 삶은 결국, 형통하게 하신다. 하지만 악인의 끝은 망하게 하신다. 악을 행하는 자는 뿌리째 뽑히게 되는 것이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37:9) 행악자들은 결국 끊어지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형통하게 되어 땅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짧은 시간 동안 형통하게 보이는 행악자들을 보고 불편해하지 말아야 한다. 행악자의 끝은 끊어지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는 승리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가 지금 어려운 고통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면, 주 안에서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분께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저희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저희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55:23) 우리가 부르짖을 때 하나님은 파멸의 웅덩이에서도 건져주실 것이다. 우리는 웅덩이에서 건지실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원수들 앞에서도 마음 가운데 그리스도의 평강을 잃지 말아야 할 것이다.

 

또한, 악인의 결국이 소멸임을 기억하고 악인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악인은 결국 없어지게 되어있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37:10) 의인은 악인으로 인해 분과 노를 발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악인을 곧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만이 악인에 관한 심판권을 갖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으로 인하여 불평하고 투기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렇게 행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악에서 떠나 의인의 길을 걸어갈 것을 지금 결단해야 한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와 죄를 씻고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한다. 모든 영혼이 빛의 자녀로서 담대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주로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기뻐하는 삶, 마음의 평강을 누리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복된 주의 자녀들은 더욱 온유한 자가 되기 위해 성령님을 의지해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37:11) 여기서 온유한 자비천한 자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이는 하나님께 대하여 자신을 겸손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시인은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길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악인의 번성함에도 불평과 투기하지 않는 자,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으로만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선을 행하는 자, 바로 그들이 온유한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는 악인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지금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일 수도 있으나 하나님께서 영원히 보장해 주시는 의인의 길을 걸어갈 것인가? 우리 모두가 잠시 잠깐 좋아 보이는 죄와 짝하는 악인의 삶이 아닌,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시는 의인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믿음 위에 서서 여호와를 기다리며

우리는 믿음 위에 굳건히 서 있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믿음 위에 서서 여호와를 잠잠히 기다리는 하나님이 신뢰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날마다 선포해야 한다. 악인은 의인을 치기를 즐겨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자,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아가기를 힘쓰는 자가 결국 승리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악인이 의인 치기를 꾀하고 그를 향하여 그의 이를 가는도다. 그러나 주께서 그를 비웃으시리니 그의 날이 다가옴을 보심이로다.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엎드러뜨리며 행위가 정직한 자를 죽이고자 하나 그들의 칼은 오히려 그들의 양심을 찌르고 그들의 활은 부러지리로다.”(37:12-15) 우리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판단하심을 알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며 여호와를 잠잠히 기다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20:22)

또한,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경건의 생활에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딤전 6:11) 성령님의 도움으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삶 가운데 맺어지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여호와를 기뻐하고 그분께 삶을 맡기어 드리는 자, 악한 자들로 인해 입술로 범죄 하지 않는 자, 악인의 결국은 패망이나 의인을 끝까지 책임지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 이 좁은 길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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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예수 부활을 믿고 전하는 자!

성경: 누가복음 24:5-10

24:4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24:5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24:6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24:7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24:8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24:9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24:10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

 

1. 영혼 사랑

은 조그만 시골의 이발사이다. 어느 날, 그는 시로부터 큰 상금을 받고 장소를 옮겨 다른 주에 있는 마을에 더 큰 이발소를 차리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의 식구가 이사하기 전 환송회를 열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해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은 다시 돌아와 그의 이발소를 열었다. 아마도 큰 곤경에 처했던 것 같았다. ‘은 가위질을 다시 하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큰 도시에 글쎄 교회도 주일학교도 없지 뭡니까? 사람들은 돈벌이와 도박, 술을 먹는데 너무 바빠서 교회를 필요로 하지 않더라고요. 주일이 되어서 아이들을 보낼 주일학교가 없던걸요? 난 그래서 돌아온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는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 명예, 세상의 좋은 것들보다 교회를 더 사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한 영혼을 천하보다도 귀하게 여기며, 어린 영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귀하게 쓰임 받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에 갔다. 그때 무덤의 문은 열려 있었고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알려 주었다. 여자들이 사도들에게 이 사실을 전해 주었을 때 다른 이들은 믿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무덤에 달려가서 빈 무덤을 확인했다(1-12). 부활의 주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셔서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베푸셨다(13-35). 제자들이 모인 곳에 부활의 주님께서 나타나사 구운 생선을 잡수셨다(36-43). 그 후 성경 말씀을 풀어 가르치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한 증인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보혜사 성령이 오시기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명하셨다(44-49). 예수님은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제자들에게 축복하시고 승천하셨다(50-53).

 

3. 천사를 보고 놀라는 여인들(4-5)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누구를 보고 놀라게 되는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은 천사를 보고 놀라고 만다. 여인들은 예수님의 무덤에 주님이 계시지 않는 것을 보고 근심한다. 그때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을 보게 되고, 여인들은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댄다. 그리고 천사들은 어찌 다시 사신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묻는다. 본문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24:4-5) 여인들은 두 천사를 보고 얼굴을 땅에 대는데, 여기 얼굴을 땅에 대니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렇게 여인들이 반응한 것은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인들은 초자연적인 존재를 보고 무척 놀라고, 경외심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천사들의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는 대답에서 살아 있는 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 말의 의미는 예수의 부활이 확실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이 확실하다고 말한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 자들, 이 사실을 확고한 믿음으로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24:1-3)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큰 지진이 났었고, 예수님의 시체를 넣어 둔 무덤의 돌문이 굴려지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때 마침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이 향품을 가지고 예수님이 묻혀 있던 무덤을 찾았다. 그런데 무덤의 돌문이 옮겨진 것을 보고 무덤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여인들은 누가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간 줄 알고 근심한 것이다. 심지어 여인들 중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너무 슬픈 나머지 울기까지 했다. 그녀는 무덤 속을 본 후, 두 천사를 목격하게 되는데 요한복음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더니 울면서 구푸려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 편에 앉았더라.”(20:11-12) 우리는 이렇게 무덤 안에 있던 천사들이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라고 놀란 여인들에게 했던 말의 의미를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음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날마다 이러한 아름다운 고백을 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삼 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6-8)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몇 일만에 부활하셨는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사망 권세를 깨고 삼 일만에 부활하셨다. 천사들은 이 사실을 무덤을 찾았던 여인들에게 전하게 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24:6-8) 여인들은 천사들의 말을 듣고서야,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된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에서 기억하고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는 예수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의 위엄과 예언의 성취를 함축하는 말이다. 예수님은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에 대해서 살아계실 때 예언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셨던 말씀을 의심 없이 믿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죽임을 당하고 삼 일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과거에 말씀하셨던 내용은 이렇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기워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심히 근심하더라.”(17:22-23) 천사들은 죽은 지 삼 일만에 부활하신다는 이 말씀을 여인들에게 상시시켜 준 것이다. 그리고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통해 주님께서 하셨던 말씀들을 기억하고 부활의 사실을 믿게 된다.

우리는 주께서 행하신 일들을 믿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자신 앞에 일어난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건을 믿는 것이 최고의 복이다. 우리는 성경이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자신에게 응하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희롱과 능욕, 침 뱉음을 받을 것, 채찍질 당하고 죽게 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이르시되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선지자들로 기록된 모든 것이 인자에게 응하리라. 인자가 이방인들에게 넘기워 희롱을 받고 능욕을 받고 침 뱉음을 받겠으며 저희는 채찍질하고 죽일 것이니 저는 삼일만에 살아나리라 하시되.”(18:31-33) 하지만 우리를 위해서 죽으신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셨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사망의 권세를 깨고, 말씀 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28:6)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어느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해야 한다. 부활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붙잡을 때,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간섭하시고, ‘를 일으키실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삼고, 부활의 주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여,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여인들(9-10)

여인들은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어떻게 행했는가? 여인들은 이 소식을 들은 후, 이 사실을 전하게 된다. 여인들은 무덤에서 돌아가 이 사실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린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한 사도와 다른 모든 이에게 알리니 (이 여자들은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라 또 그들과 함께 한 다른 여자들도 이것을 사도들에게 알리니라).”(24:9-10) 여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이 사실을 확실히 믿었다. 여인들은 슬픔을 떨쳐 버리고 기쁜 마음으로 빈 무덤과 천사의 말을 열한 사도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소식을 전파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시고 다시 사셨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다시 사신 예수님께서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며, 전에 말씀하신 대로 거기서 주님을 볼 수 있음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말한다.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16:7-8)

여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놀랐다. 심지어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서워하면서도 기쁜 마음이 샘솟아 올랐을 것이다. 여인들은 기쁜 마음으로 어디론가 달리기 시작했다. “또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그 여자들이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알게 하려고 달음질할새.”(28:7-8) 그들은 무서움과 큰 기쁨으로 무덤을 빨리 떠나 제자들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울고 있는 제자들에게 도착한다. 여인들은 슬퍼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 일을 전하게 된다. “마리아가 가서 예수와 함께 하던 사람들의 슬퍼하며 울고 있는 중에 이 일을 고하매.”(16:10) 아마도 제자들이 처음에는 이 소식을 듣고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 사건이 기적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믿기 어려운 이 사건이 실제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사셨다. 우리는 이 사건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활의 소식을 믿을 뿐만 아니라, 믿고 전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전한 여인들처럼, 주의 부활을 믿고 전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부활의 소식을 믿는 자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하셨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성전을 헐면, 자신이 삼일 동안 다시 일으킬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2:19-22)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성전은 자신의 육체였고, 유대인들에 의해 주님은 죽임을 당하셨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를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죽으실 뿐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여인들로부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처음에는 그 말이 허탄한 듯이 보여 믿지 않았다. 여인들의 말을 들은 제자 중 베드로만이 무덤으로 달려갔다. 베드로는 무덤에 가서 빈 무덤을 확인하고 신비감에 싸였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부활 신앙으로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삼 일만에 다시 사셨다. 다시 사신 예수님, 부활의 주님이 의 주가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곧 믿는 자들의 부활이다. 우리는 이러한 고백을 하는 복된 삶을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사실을 지금 믿음으로 고백하고, 주님 오실 날까지 이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거친 세상에서 이 고백을 하기에 한없이 부족하지만, 주께서 도우실 때 이 고백이 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그분의 사역에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14:26) 성령님께서 도우실 때에 이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자,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전하는 복된 자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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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3. 24. 06:59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겸손한 왕이신 예수님은 어디로 입성하셨는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 본문에서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해야 하는 예수님을 위해 이렇게 순종한다.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막 11:4-6)

예수님은 예루살렘 근처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이 말씀에 순종한 것이다.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은 이렇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막 11:1-3)

예수님의 명령은 이상한 명령처럼 보인다.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주인이 있었던 나귀 새끼를 풀어 끌고 오라고 말씀하셨으니 말이다. 그러나 제자들의 순종은 나귀가 예수님 앞에 이르게 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이것은 메시야로서, 왕으로서의 입성을 의미한다.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제자 둘을 보내셔서 사람이 타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오라고 하셨다. 벳바게와 베다니는 서로 인접한 마을이었으며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2.5km 거리에 있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최후의 사역을 위하여 메시야로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입성하셨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인류의 평화의 왕이 되신다. 구약 성경에는 장차 작은 나귀를 타고 입성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이렇게 기록해 놓았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슥 9:9)

우리는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기뻐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선지자로 하신 이 말씀이 이루어져야 함을 잘 알고 계셨다.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마 21:4-5)

예루살렘으로 새끼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겸손한 왕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우리의 찬양의 대상이 되신다.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며, 예수님처럼 마음이 겸손한 자의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땅의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삶 가운데서 늘 높이고 경배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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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금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3. 24. 06:34

나귀 위에 타신 예수님.

나귀 새끼 위에 타신 예수님.

겸손의 왕이신 예수님은 무엇을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가?

겸손하신 주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나귀 중에서도 새끼 나귀를 타고서 입성하신 것이다.

본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막 11:7-8)

예수님은 겉옷을 깐 새끼 나귀 위에 앉으셨다. 그렇게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께 사람들은 자신의 겉옷을 깔고,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그를 맞이했다. 나귀를 타고 겸손의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맞이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는 어떤 나귀였을까? 이 나귀는 아직 어느 누구도 타 보지 않은 나귀였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애 기간 동안에 의도하신 대로 모두 순종하게 만드셨다. 제자들은 끌고 온 나귀 새끼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벗어 걸쳤다.

유대인에게 있어서 겉옷을 벗어 펴는 행위는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는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왕하 9:13).

우리는 왕이신 예수님이 당신의 보좌가 아닌 나귀 새끼 위에 앉으신 것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자신이 앉는 자리, 그 위에 양탄자 대신 제자들의 허름한 겉옷을 깐 것이다.

이런 메시야의 모습은 그가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종으로도 오셨음을 의미한다. 우리 예수님은 인류의 왕이셨으나 종이 되셨다.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기쁨으로 자신의 겉옷을 벗어 길에 폈을 것이다. “가실 때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더라.”(눅 19:36)

그리고 어떤 이들은 나무를 길에 펴고 흔들었다. 그들이 펴고 흔들었던 종려나무는 무엇인가?

종려나무는 영어로 Palm, Palm tree이다. 열대와 아열대에 많이 보여지는 상록 교목이다. 종려, 또는 종려나무로 성경에 번역된 원어는 대추야자(date-palm)를 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종려나무(hemp-palm)는 종려과에 속하는 상록 교목으로, 높이는 3-7m에 달하며 암갈색의 섬유에 싸인다. 줄기는 원주처럼 직립하고, 가지치지(번식치) 않는다.

잎은 줄기 끝 자루에 총생하는데 각각 30cm가량의 대에 끝에 가서 손바닥처럼 갈라진 것으로 드리운다. 자웅이주이고 5-6월에 엽액에서 담황색의 화수가 나와, 황백색 여섯 잎이 작은 꽃이 핀다. 과실은 타원형으로 굳고, 9-10월에 암청색으로 익는다.

그리고 줄기의 섬유로 종려승, 종려선, 종려비, 또는 깔개 등을 만든다고 한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군중은 이 나뭇잎을 흔들면서 환영한 것이다(요 12:13).

이 나무는 승리의 표상으로 되었다. 종말의 구속된 성도들은 이 나무를 손에 들고서 어린 양 앞에 서 있을 것이다(계 7:9).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고 행하셨던 예수님의 말씀 앞에 제자들은 바로 순종했고, 제자들의 순종은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진행케 했다.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눅 19:35) 새끼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그리고 그분은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

우리는 좋으신 주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겸손한 모습으로, 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 사역하는 복된 주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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