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금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3. 3. 17:38

하나님의 행하심.

하나님의 행하심.

이 땅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은 누가 행하시는 일인가?

믿음 없는 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께서 행하시는 일임을 고백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이 영원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전 3:14)

솔로몬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언제나 한결같고, 더하거나 뺄 수 없으니, 그분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성실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천지는 주님의 법대로 지금까지 존재하며, 주께서 이 땅을 다스리신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시 119:90-91) 만물이 주님의 종이므로 우리의 주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척박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언제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딛 1:2) 언제나 영원한 생명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죄악 덩어리이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면 복된 인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하는 신실한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전 3: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지금 있는 일도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도 전에 다 있었던 일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나간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하신다.”(전 3:15)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누구신가?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죄에 대해 벌하시며 넘어진 주의 백성들을 다시 일으키시는 사랑의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왕 중의 왕 되신다.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당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알고 우리는 주님 앞에 겸손히 서 있어야 한다.

여호와를 당할 자는 누구도 없다.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잠 21:30)

완벽하신 하나님, 높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그분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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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3. 1. 11:21

하나님의 일을 측량치 못함.

하나님의 일을 측량치 못함.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일을 다 측량할 수 있을까?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판단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존재인 인간은 크신 하나님의 일을 다 측량할 수 없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어 애쓰게 하신 것을 자신이 보았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전 3:10)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이 땅에서 다양한 형태로 수고를 다 한다. 땀을 흘리며 힘써 일하기도 하고, 강도가 높은 지적 노동을 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부를 쌓기 위해 힘을 쓴다. 또 어떤 이들은 명예를 쌓기 위해 힘을 쓴다. 이러한 얻어진 결과들은 자신의 삶을 편하게 하기도 하며, 타인에게 자신을 높게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수고는 다 헛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 높은 곳에 놓고 그분을 최선을 다해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을 더 큰 목표로 하며 살아가는 삶은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다.

바람은 느낄 수 있을 뿐인데, 바람을 잡을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잡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는 우리에게 무익한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전 5:16)

혹시 우리 가운데 세상의 것들을 계속해서 잡으려는 자가 있는가? 세상의 것들은 어떻게 왔든지 다시 그대로 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바람을 잡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더욱 집중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셨음을 말하면서,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인간이 다 측량할 수 없게 하셨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전 3: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수준을 절대 넘지 못하는 자가 바로 우리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이는 무한하다. 우리는 그분의 판단을 측량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에 대해 다 알지 못하므로, 언제나 그분께 묻고 살아가는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인생의 길을 묻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잘 지도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나’는 어떠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가? 이 땅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나’의 삶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우리는 ‘나’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하신 일이 많고, 온통 주님의 것으로 풍요함을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시 104:24)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다 측량할 수 없음을 기억하고, 그분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께서 행하실 모든 일에 감사하며, 주께서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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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측량치 못할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

성경: 전도서 3:10-15

3:10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3:12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3:13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

3:14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3:15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

 

1. 만남

세계 명작 중 하나인 벤허의 저자 류 윌리스는 본래 무신론자였다. 하루는 그가 작품의 소재를 찾던 중 갈릴리 나사렛의 목수 예수의 생애에 흥미 있는 사랑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작품화하면 베스트셀러가 될 것이라는 마음을 먹었다. 그는 그날부터 성경을 몇 번씩이나 반복하여 읽어내려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성경을 읽던 그가 은혜를 받고 말았다. 그는 후일 처음의 의도를 버리고 벤허라는 청년이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는 내용의 작품을 남겼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발견했을 뿐 아니라 주님을 만났다. 그 예수님께서 내 작품의 중심을 이루셨을 뿐 아니라 내 마음의 중심이 되었다.’ 참 아름다운 고백이다. ‘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의 삶에도 예수님으로 인한 아름다운 고백이 더욱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또한, 우리 모두가 성경을 가까이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날마다 경험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인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 계획을 세우고 열심히 일한다. 그러나 인간이 그 모든 일을 주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도리어 인간은 어떤 법칙과 때에 따라 일을 하는 것이다. 전도자는 이러한 인간임을 깨닫고, 인간들이 복종해야 할 고상한 체제가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솔로몬은 전장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 설명했다. 그런데 저자는 본장에서 다시 일반적인 원리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설명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는 인생의 현상들을 하나님의 섭리와 비교함으로써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강조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모든 것에 정해진 때가 있다. 그런데 태어나고 죽는 것, 심고 거두는 것, 만나고 헤어지는 모든 현상들은 사람의 계획과 노력으로 되어지지 않는다(1-10). 왜냐하면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이루시는 것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이다(11-15). 그러므로 모든 인생은 각기 행한 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각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만이 축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16-22).

 

3. 하나님의 일을 측량치 못함(10-11)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일을 다 측량할 수 있을까?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판단한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해 다 아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작은 존재인 인간은 크신 하나님의 일을 다 측량할 수 없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어 애쓰게 하신 것을 자신이 보았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3:10)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이 땅에서 다양한 형태로 수고를 다 한다. 땀을 흘리며 힘써 일하기도 하고, 강도가 높은 지적 노동을 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부를 쌓기 위해 힘을 쓴다. 또 어떤 이들은 명예를 쌓기 위해 힘을 쓴다. 이렇게 얻어진 결과들은 자신의 삶을 편하게 하기도 하며, 타인에게 자신을 높게 보이게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수고는 다 헛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2:11) 우리는 하나님을 최고 높은 곳에 놓고 그분을 최선을 다해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 외에 다른 것들을 더 큰 목표로 하며 살아가는 삶은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다. 바람은 느낄 수 있을 뿐인데, 바람을 잡을 욕심을 가지고 그것을 잡으려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는 우리에게 무익한 것이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것도 폐단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으려는 수고가 저에게 무엇이 유익하랴.”(5:16) 혹시 우리 가운데 세상의 것들을 계속해서 잡으려는 자가 있는가? 세상의 것들은 어떻게 왔든지 다시 그대로 가게 되어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바람을 잡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더욱 집중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솔로몬은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셨음을 말하면서,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 인간이 다 측량할 수 없게 하셨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3:11)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자연을 다스리시고, 인간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 수 없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수준을 절대 넘지 못하는 자가 바로 우리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깊이는 무한하다. 우리는 그분의 판단을 측량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에 대해 다 알지 못하므로, 언제나 그분께 묻고 살아가는 겸손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인생의 길을 묻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길을 잘 지도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는 어떠한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가? 이 땅은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의 삶도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우리는 를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주께서 하신 일이 많고, 온통 주님의 것으로 풍요함을 고백한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104:24)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다 측량할 수 없음을 기억하고, 그분 앞에 겸손히 엎드리며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인생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께서 행하신 모든 일에 감사하며, 주께서 행하실 일들을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의 선물(12-13)

하나님께서 연약한 인간들에게 주신 선물은 무엇이 있을까? 온 땅을 다스리시고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양한 선물을 허락하셨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3:12)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은 주님 안에서 아름다운 일이다. 여기서 기뻐하며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기쁨을 뜻한다. 사람의 가장 큰 기쁨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선을 행하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37:3)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그 믿음을 가지고 선을 행하면,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또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3:13)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많은 수고를 한다. 때로는 그 수고로움이 육체를 고단하게 한다. 그러나 수고하는 동안 우리는 마음으로 즐거워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수고함 이후 누리게 되는 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임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한다. 그런데 솔로몬은 이러한 낙도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임을 말한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가운데서 심령으로 낙을 누리게 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는 것이로다.”(2:24) 수고하는 동안 심령이 기뻐하는 것은 복된 일이다. 우리는 이렇게 를 풍족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일에 힘써야 한다. 이렇게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믿음의 눈을 들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좋으신 주님으로 인해 항상 기뻐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4-7) 내 삶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복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좌절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주를 기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삶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선물들을 상고하며 기뻐해야 한다. 앞으로도 더 큰 일을 행하신 하나님을 기대하며, 감사함으로 아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한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주의 일에 충성하고, 심령의 기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의 행하심(14-15)

이 땅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은 누가 행하시는 일인가? 믿음 없는 이들은 자신들의 노력으로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주께서 행하시는 일임을 고백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이 영원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그 위에 더 할 수도 없고 그것에서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3:14) 솔로몬은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이 언제나 한결같고, 더하거나 뺄 수 없으니, 그분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성실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천지는 주님의 법대로 지금까지 존재하며, 주께서 이 땅을 다스리신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천지가 주의 규례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연고니이다.”(119:90-91) 만물이 주님의 종이므로 우리의 주인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척박한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주님께 소망을 두어야 한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언제나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1:2) 언제나 영원한 생명을 주실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죄악 덩어리이지만,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자녀가 되면 복된 인생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심을 고백하는 신실한 주의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제 있는 것이 옛적에 있었고 장래에 있을 것도 옛적에 있었나니 하나님은 이미 지난 것을 다시 찾으시느니라.”(3: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지금 있는 일도 오래전에 있었던 일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도 전에 다 있었던 일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지나간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하신다.”(3:15)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분은 누구신가? 인류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신다. 죄에 대해 벌하시며 넘어진 주의 백성들을 다시 일으키시는 사랑의 하나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왕 중의 왕이 되신다.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당할 자가 아무도 없음을 알고 우리는 주님 앞에 겸손히 서 있어야 한다. 여호와를 당할 자는 누구도 없다. “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21:30) 완벽하신 하나님, 높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그분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의 영역 아래 사는 자들

우리는 하나님의 영역 아래에서 살아간다. 믿음의 눈을 들어 이 땅을 바라보면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심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분의 통치 하심 아래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의 인생에 대해 잘 계획해도 그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19:21) 우리가 많은 계획을 세울지라도 성사는 하나님께 달려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삶을 의탁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주와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눈이 있는 곳에 우리의 눈이 있고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 만물을 다스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의 삶을 다스리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11:36) 우리는 에게 베풀어 주실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기대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거친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동안, 하나님의 일을 다 측량할 수 없음을 알고 주를 경외하는 자, 자신의 삶에 있는 기쁨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고 주께 영광을 돌리는 자, 하나님의 행하심을 알고 주께 소망을 두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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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금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2. 24. 08:00

시험을 통과하여.

시험을 통과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 무엇을 통과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셔서 사용하시되, 훈련을 통과하게 하신다. 훈련 가운데는 강한 훈련도 있어서 믿는 자들이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험을 잘 통과하는 자,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 3:12-13)

개역한글 침례성경은 ‘13’절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3)

여기서 ‘공력’은 원어로 <e[rgon: 에르곤>이다. 이는 ‘일, 행위, 작품’이라는 뜻으로 행한 일을 나타내기도 하며 일을 행한 결과로서의 작품을 나타내기도 한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것인데 그리스도의 심판 날에 그 공력을 밝히 드러낼 것이라고 교훈한다.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한다는 것이다. 그때 세운 공력이 불에 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공력이 불타 없어지면 해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주께서 ‘나’를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실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우리는 신접한 자와 다른 어떤 이의 교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자, 주의 증거의 말씀을 좇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큰 파도가 집을 삼키는 듯한 믿음의 시련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시련을 만날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그 시련을 잘 통과할 때 견고한 믿음의 삶으로 변화될 것이며, 주님을 뵙게 될 때 칭찬받는 자들이 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주님은 곧 오신다.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어야 한다.

날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주께서 오시면 천체는 불에 타서 없어지고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떠한 믿음은 소유했는가?

우리는 모든 것이 드러날 때 주 앞에 믿음을 보일 수 있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땅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함을 기억하고, 말씀 위에 서 있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며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불같은 시험도 잘 통과하여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그리스도인, 자신의 믿음을 주님 앞에 당당히 보여드리는 그리스도인, 주님께 칭찬받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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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2. 22. 14:50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은 어디 위에 세워져 가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같이 터를 닦아 두었는데 그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0-11)

여기의 ‘터’는 ‘기초, 주춧돌’이라는 말인데, 이 ‘터’는 어떤 일에 있어서 그 시작이 되는 기본이며 또한 어떤 존재에 있어서도 그 기본이 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의 신앙의 핵심과 기반이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어떤 존재도 신앙과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복음 사역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일꾼일 뿐 신앙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의 기초요, 이스라엘의 기초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우리는 삶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요, 교회의 기초도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음을 믿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1-12)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함 받고 주 안에서 자유함을 얻어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인생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복 받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을 영접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동참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든든히 세우는 ‘우리’의 사역, ‘우리’ 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9)

‘나’는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 믿음 가지고 힘을 다하여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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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주님 앞에 서는 날을 바라보며 승리!

성경: 고린도전서 3:10-15

3: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3: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3: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3: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3: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3: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 믿음

겨자씨는 당시 유대 사람들의 말 가운데 작은 것의 대명사였다. 겨자씨 나무는 약 4m까지 자라며 그 열매는 아주 맛이 좋아 많은 새들이 씨를 쪼아 먹으려고 온종일 그 겨자나무에 깃든다고 한다. 이 비유는 비록 겨자씨는 작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큰 사람, 대제국을 거목에 비유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 문명이나 한 시대, 한 민족이 변화되는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자라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변화와 성장을 하고 있는가? 자신의 믿음이 겨자씨 만한 작은 믿음일지라도 그 믿음을 마음에 품고 주님을 잘 따라가게 되면 큰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 주의 역사에 동참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성장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영적인 유아 상태에 있어 육신에 속하였음을 말한다. 그러면서 인간을 바라보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자,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가 될 것을 교훈한다. 또한, 세상의 헛된 지혜와 인간으로 자랑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령한 지혜를 구할 것을 명한다. 본장에서는 고린도 교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 언급하면서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신앙의 미성숙과 세상 지혜를 자랑하는 인간적 교만으로 인해 발생한 것임을 밝힌다. 그와 더불어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 복음 전도자와 신자들의 관계를 밝히 드러냄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의 화합을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다. 또한, 본장의 내용 속에는 고린도 교회를 향한 바울의 견책, 교훈, 격려, 호소 등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감동과 영감을 준다. 그리고 고린도 교인을 향한 바울의 진한 애정이 잘 드러나 있다. 이러한 본장은 고린도 교회의 분쟁이 영적 미성숙에서 비롯됨을 지적하고 있는 부분(1-9), 하나님의 성령을 간직한 성도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봉사와 충성 및 성결의 삶을 견지해야 한다는 적극적 신앙 자세를 강조한 부분(10-17), 인간의 지혜는 거짓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역설한 부분(18-23)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10-11)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은 어디 위에 세워져 가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사역의 터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이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같이 터를 닦아 두었는데 그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0-11) 여기의 기초, 주춧돌이라는 말인데, 는 어떤 일에 있어서 그 시작이 되는 기본이며 또한 어떤 존재에 있어서도 그 기본이 되는 것이다. 믿는 자들의 신앙의 핵심과 기반이 오직 그리스도가 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어떤 존재도 신앙과 대상이 될 수 없으며, 복음 사역자들은 오직 그리스도의 일꾼일 뿐 신앙의 대상이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의 기초요, 이스라엘의 기초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우리는 삶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요, 교회의 기초도 예수 그리스도임을 선포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음을 믿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4:11-12)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용서함 받고 주 안에서 자유함을 얻어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인생의 구원자가 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복 받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을 영접하고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동참하되,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든든히 세우는 우리의 사역, ‘우리교회가 되도록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9) ‘는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응답하시고, 때가 되면 주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그 믿음 가지고 힘을 다하여 주님의 일을 잘 감당하면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시험을 통과하여(12-13)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동안 무엇을 통과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우리를 주님의 일꾼으로 부르셔서 사용하시되, 훈련을 통과하게 하신다. 훈련 가운데는 강한 훈련도 있어서 믿는 자들이 넘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시험을 잘 통과하는 자,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숙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고전 3:12-13) 개역한글 침례성경은 ‘13’절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고전 3:13) 여기서 공력은 원어로 <e[rgon: 에르곤>이다. 이는 , 행위, 작품이라는 뜻으로 행한 일을 나타내기도 하며 일을 행한 결과로서의 작품을 나타내기도 한다.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것인데 그리스도의 심판 날에 그 공력을 밝히 드러낼 것이라고 교훈한다.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한다는 것이다. 그때 세운 공력이 불에 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공력이 불타 없어지면 해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위에 든든히 서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 주께서 를 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시키실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8:20) 우리는 신접한 자와 다른 어떤 이의 교훈을 받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는 자, 주의 증거의 말씀을 좇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큰 파도가 집을 삼키는 듯한 믿음의 시련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시련을 만날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그 시련을 잘 통과할 때 견고한 믿음의 삶으로 변화될 것이며, 주님을 뵙게 될 때 칭찬받는 자들이 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주님은 곧 오신다.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어야 한다. 날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 그리고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주께서 오시면 천체는 불에 타서 없어지고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나는 어떠한 믿음은 소유했는가? 우리는 모든 것이 드러날 때 주 앞에 믿음을 보일 수 있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땅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함을 기억하고, 말씀 위에 서 있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며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불같은 시험도 잘 통과하여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는 그리스도인, 자신의 믿음을 주님 앞에 당당히 보여드리는 그리스도인, 주님께 칭찬받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상 받는 자(14-15)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주님 앞에 무엇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시험과 환난조차도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한 주의 자녀들을 칭찬하시며 상을 주실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고전 3:14-15) 현대인의 성경은 ‘15’절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것이 타 버리면 상을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구원을 얻어도 마치 불 속에서 간신히 헤쳐 나온 것과 같을 것입니다.”(고전 3:15) 여기서 의 내용을 살펴보면 이렇다. 구약에서부터 불은 하나님이 그 뜻을 드러내시는데 쓰는 도구였다. 여기서도 불은 성도들의 공력을 판가름하는 심판 날에 이루어질 심판을 의미한다. 우리는 구원만을 간신히 유지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공력을 판가름하는 그 날, 심판의 날에 주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이 주안에서 하고 있는 하나님의 일에 충성을 다해야 할 것이다. ‘가 하고 있는 작은 일, 그 일에 충성을 다하고 간절히 기도하면 그 후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전 3:8) 우리는 주께서 생명을 주시는 동안에 자기 역할의 일을 할 것인데, 주님은 각자가 한 그 충성을 보시고 상을 주실 것이다. 주의 일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다른 지체와의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라나게 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영광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묵묵히 일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 5:4)

주님은 보응하시는 주가 되신다. 잘한 것은 잘했다, 못한 것은 못했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는 못한 것보다 잘했다고 하는 것이 더 많아, 주께서 주시는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기쁨을 누려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주의 사역을 즐거움으로 감당해야 한다. 타인의 허물이나 잘못을 드러내거나 판단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며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 중심을 다 해 주를 예배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5) 우리는 를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임을 알고, 하나님께 합한 자, 거룩한 신부로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지금 주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하나님 앞에 내가 받을 상은 얼마나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성령님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낮아지고 겸손하게 서 있는 자, 영광의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를 하여 주님께 잘했다 칭찬받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사랑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진 교회는 절대 무너지지 않으며, 사단의 권세도 굴복해야만 한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16:18) 예수님은 시몬을 베드로로 개명해 주셨는데, 헬라어의 바위(반석: Pevtro")에서 유래한다(16:16, 18). 그런데 바울은 이스라엘이 광야에 반석에서의 물로 부양된 것을 상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반석에 비유했다(고전 10:4).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수의 원천으로서의 반석이 되신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진 교회와 가정과 직장과 나라는 안전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속한 작고 큰 공동체를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영적 전투가 힘들게 느껴지는 때가 있을지라도, 주님 뵈올 날을 기대하며 끝까지 믿음을 잘 지켜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함이 우리가 속한 작고, 큰 공동체에 있기를 소망한다. 주님의 은혜와 긍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서가는 자, 불같은 시험도 잘 통과하는 자, 주님을 뵈었을 때 영광의 면류관을 받는 자의 삶을 사시기를 소망한다. 주님 앞에 서는 날을 바라보며 성령님과 동행하며 끝까지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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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금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2. 17. 22:08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떠한 마음을 유지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자들로서 자신의 감정을 잘 다스려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 14:29)

화가 나는 상황 가운데 있다고 해서 쉽게 노하는 자, 그는 지혜롭지 못한 자이다. 노를 더디 하는 자는 명철한 자이며,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자는 지혜로운 자이다.

노는 무엇인가? 노는 분노와 진노인데, [히] #a('aph), hm;j'(chemah) [그]ojrghv(orge) [영] Anger이다. 성내는 일, 노는 일반적으로는 개체의 요구 및 목표를 달성하려 함에 있어서 그것이 저지되는 것에 대한 보복적 정서 반응을 말한다.

그리고 성장해 감에 따라 노는 잠재적, 지속적, 보복적으로 되어간다. 보복은 간접적 합목적성을 더해간다.

성경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지배에 복종치 않는 사상과 행동에 대한 인간의 노는 정당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기록한다(출 32:19, 행 17:16).

반면에 경솔하고 부당한 노와 거기서 생겨나는 죄의 위험은 경고한다(시 37:8, 엡 4:26).

우리는 완전히 성내지 않는 자, 완전한 자는 될 수 없다. 하지만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감정을 잘 다스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부당한 노와 그것에서 비롯되는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이며, 분노해야 한다면 하나님의 일에 반하는 것들에 대해서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노를 멀리하는 자,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셨던 모세를 보고 도전받아야 할 것이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한 자가 되어 천국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마음 가운데 천국을 소유한 자로서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며, 성령님의 지도를 잘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나’는 무엇을 지키기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가? 자신이 지켜야 하는 어떠한 것들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자가 된다면 그는 복 받은 자일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지켜 언제 어디에서나 하나님을 잘 예배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 같으니라.”(잠 25:28)

성벽이 없다면 적의 침략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자, 그는 영적인 전투에서도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해 싸우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는 영적인 전투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싸우되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시기하거나 눈앞에 보이는 적과 싸우는 일에 힘쓰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힘써야 한다.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평온한 마음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잠 14:30)

우리는 삶 가운데 일어나는 시기, 질투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금 끊어버리고, 마음의 즐거움을 유지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잠 17:22)

불완전한 모습으로 불완전한 환경 가운데서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의 마음을 잘 지키는 자,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로서 영적 전투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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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수요설교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2. 17. 22:0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그분 앞에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여호와를 항상 경외해야 한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견고한 의뢰가 있나니 그 자녀들에게 피난처가 있으리라.”(잠 14:26)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견고한 믿음을 허락하신다.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님을 경외하면 강한 믿음이 생기고, 그 자식들에게도 피난처가 생긴다.”(잠 14:26)

경외란 무엇인가? 경외는 [히]ta'r]yI(yir'ah) [그]Fovbo'"(phobos) [영]Fear Reverence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을 나타내는데 쓰는 용어이다.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명하는 말씀은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함께하고 있다(신 6:4). 시내 산에서 율법이 주어지는 때, 하나님은 영광과 광채 가운데 친히 나타나셔서 이 경외심을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 심어주셨다(신 4:10).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할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응답일 것이다. 어느 정도 하나님을 알고 있는 자만이 이 경외심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날마다 찾고 구하여 그분을 알아,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12:1)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이다.

뿐만 아니라, 본문의 솔로몬의 잠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생명의 샘이니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느니라.”(잠 14:27)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생명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그는 사망의 그물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에 악을 멀리하고 여호와를 기뻐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깨달은즉 마음이 올무와 그물 같고 손이 포승 같은 여인은 사망보다 독한 자라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저를 피하려니와 죄인은 저에게 잡히리로다.”(전 7:26)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는 죄악의 길을 피하며, 죄를 짓게 유혹하는 자들을 피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나’의 힘으로는 할 수 없지만,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성령님의 지도를 잘 받는다면 이러한 삶은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지혜로운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은 재앙으로부터 안전하며 평안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잠 19:2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가운데, 생명이 붙어있는 동안에,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대한 공경과 두려움을 나타내는 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 받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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