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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7. 13. 07:53

먹이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먹이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바른성경) 시편 147:9 들짐승과 우짖는 까마귀 새끼에게도 먹이를 주신다.

지으신 것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을 높이고 살아가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시편 147:9 들짐승과 우는 까마귀 새끼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도다

(영어esv) 시편 147:9 He gives to the beasts their food, and to the young ravens that cry.

(헬라어구약septuagint) 시편 147:9 ουκ εποιησεν ουτως παντι εθνει και τα κριματα αυτου ουκ εδηλωσεν αυτοις

(히브리어modern) 시편 147:9 נותן לבהמה לחמה לבני ערב אשר יקרא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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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대적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자!

성경: 사무엘 상 17:41-47

삼상 17:41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삼상 17:42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삼상 17:43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삼상 17:44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

삼상 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삼상 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삼상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1. 성령 안에서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한 젊은이가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내게 세상을 개혁할 힘을 주소서.’ 그러나 그는 한 영혼도 변화시키지 못한 채 중년에 이르렀다. 그는 또다시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나와 내 친지들만이라도 변화시키면 족하겠나이다.’ 그는 노인이 되어 자신의 기도가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게 되었다. 그제야 그는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능력을 주소서.’ 그렇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늘 회개하기를 힘쓰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매일 영적인 성장을 경험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고

본장은 평생을 전쟁 속에서 보낸 다윗의 첫 번째 전투이며 가장 극적인 전투였던 골리앗과의 전투를 기록하고 있다. 블레셋과 엘라 골짜기에서 다시 전쟁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용장 골리앗으로 인해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조롱거리가 되었다(1-11). 이때 이새의 아들들도 전투에 참가했다. 그런데 마침 형들의 안부를 물으러 온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을 조롱하는 말을 듣고 의분이 일어났다(12-30).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골리앗과의 대결을 요청했고 허락을 받았다(31-40). 갑옷도 없이 단지 짐승을 잡는 물맷돌만을 가지고 골리앗과 대결을 한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마침내 골리앗을 죽이며 승리한다. 이에 힘을 입은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을 격멸하여 대승을 거두었다(41-54). 그리고 전승의 공로를 세운 다윗은 사울 앞에 불려가서 다시 상면하게 되었다(55-58).

 

3.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는 골리앗(41-42)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자녀를 보고 업신여기는 악인 앞에 어떻게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원수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블레셋 사람이 방패 든 사람을 앞세우고 다윗에게로 점점 가까이 나아가니라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삼상 17:41-42) 블레셋 사람 골리앗은 아직 어리게 보이는 다윗을 보고 그를 업신여겼다. 외형적으로 보면 장수도 아닌 어린 소년이 자신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했던 다윗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였고 차기 왕으로 예정된 자이기도 했다. “이에 보내어 그를 데려오매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가 그니 일어나 기름을 부으라.”(삼상 16:12)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는데,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를 시기한 나머지 죽이려고 다니던 사울 왕의 목숨을 살려주기도 했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삼상 24:14) 다윗은 사울에게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는데,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다윗의 성품이 훌륭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본문의 시점으로 돌아오면, 다윗이 골리앗 앞에 나아가겠다고 사울 왕 앞에 섰을 때, 그는 다윗을 만류했었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삼상 17:33) 하지만 다윗은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나아가서 거인 골리앗을 물리치고 만다. 우리는 다윗이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 승리했음을 기억하며, 원수들의 모욕 앞에서 위축되지 말고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승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수들이 악을 행하기를 즐김을 깨닫기를 바란다.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을 하려 한다는 소식을 들은 이방인들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 계략을 세웠다. 성경은 이 일을 방해했던 산발랏의 분노와 비웃음, 그리고 곁에서 유다 백성들을 비난한 암몬 사람 도비야에게 대응했던 느헤미야의 말을 이렇게 기록한다.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말하여 가로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의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케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필역하려는가, 소화된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섰다가 가로되 저들의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4:2-4) 우리는 하나님 일의 진행에 있어서 원수들의 비난이 전혀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때 반드시 기적은 일어남을 깨닫기를 바란다. 성경은 나귀 턱뼈로 일천 명을 죽인 삼손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한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 천명을 죽이고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 천명을 죽였도다.”(15:15-16) 우리는 자신의 사정을 그대로 주님께 아뢰어 주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평안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심령에 넘치나이다.”(123:4)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원수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때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4:4-5)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열악한 형편으로 인해 움츠리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다윗을 저주하는 골리앗(43-44)

그리스도인들은 주의 자녀를 저주하는 악인 앞에 어떻게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원수들이 저주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대적을 밟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그 블레셋 사람이 또 다윗에게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 하는지라.”(삼상 17:43-44) 거인 골리앗은 소년 다윗에게 자신을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나아왔느냐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살을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겠다고 엄포했고,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말이 하나님의 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함을 믿고, 담대하게 주와 동행하며 원수들 앞에 바르게 반응해야 할 것이다. 칼이 어떤 이들을 구원하지 못함을 깨닫기를 바란다. 고라 자손의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44:6)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기도 함을 기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9:11-12) 인생은 칼을 의지할 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예측하지 못한 시간에 끝을 맞이하기도 한다. 다윗을 협박하고 저주하며 나아갔던 거인 골리앗의 최후는 죽음뿐이었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18:12) 우리는 골리앗의 죽음을 통해 교훈을 받고, 교만이 멸망의 선봉이라는 주의 말씀을 기억하며 교만한 자가 아니라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시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42:8)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낮에 경험하고, 밤에는 그분께 찬송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다윗은 구원의 하나님을 이렇게 노래한다. “대저 주께서 나로 전쟁케 하려고 능력으로 내게 띠 띠우사 일어나 나를 치는 자로 내게 굴복케 하셨나이다 주께서 또 내 원수들로 등을 내게로 향하게 하시고 나로 나를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셨나이다 저희가 부르짖으나 구원할 자가 없었고 여호와께 부르짖어도 대답지 아니하셨나이다 내가 저희를 바람 앞에 티끌같이 부숴뜨리고 거리의 진흙 같이 쏟아 버렸나이다.”(18:39-42)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한 다윗은 포악한 자로부터 보호해 주실 하나님을 믿으며 이렇게 고백한다. “내 구원의 능력이신 주 여호와여 전쟁의 날에 주께서 내 머리를 가리우셨나이다.”(140:7)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을 신뢰함에 기초한 이러한 아름다운 신앙고백과 기도가 가득 넘칠 수 있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대적을 밟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108:13) 자신을 대적하는 원수들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이 저주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대적을 밟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다윗(45-46)

그리스도인들은 대적들 앞에 누구의 이름으로 나아가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대적들 앞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피할 바위와 방패와 산성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삼상 17:45-46) ‘45모욕하는은 원어로 <#r"j;:하라프>이다. 이는 발가벗기다라는 뜻으로 많은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는 것을 의미한다. 골리앗은 하나님 앞에서 불 경건한 태도를 보이며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의 이러한 태도에 위축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의 앞에 나아갔다. 그리고 오히려 골리앗의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본문 이전의 시점에 보면, 거인 골리앗은 자신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했음을 말하며 자신과 싸울 자를 보내라고 엄포했다. “그 블레셋 사람이 또 가로되 내가 오늘날 이스라엘의 군대를 모욕하였으니 사람을 보내어 나로 더불어 싸우게 하라 한지라.”(삼상 17:10) 그리고 다윗은 담대함으로 그의 앞에 나아가게 된 것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6) 다윗은 결국 물맷돌 다섯 개 중 한 개만으로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다.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삼상 17:51)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불가능함이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 손에 붙잡혀 주님의 큰일을 감당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상 진멸하시는 분, 악을 대적하시는 하나님을 깨닫기를 바란다. 신명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7:2) 하나님은 자기 일을 행하시기 위해 대적들을 멸해주셨으며 모세의 편이 되어주셨다.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선 자들이 되어 주님의 승리를 맛보아야 할 것이다.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주의 군사들이 되기를 바란다.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두려워 말라 내가 그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그들의 한 사람도 너를 당할 자 없으리라 하신지라.”(10:8) 여호수아와 모세, 그들과 함께하신 분이 주의 자녀와 함께 하심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우리는 그분과 동행하며 매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는 복된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기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이들은 이러한 복된 인생을 살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하게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7-8) 죽기까지 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악을 대적하며 주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피할 바위와 방패와 산성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18:2) 원수들 앞에서 심리적으로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대적들 앞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피할 바위와 방패와 산성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을 아는 자!(47)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을 깨닫고 주와 동행하며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바란다. 다윗은 이렇게 말한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7) 우리는 칼과 창을 의지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구원의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분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27:1)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자기 마음의 두려움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어 좇고, 담대하게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원수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하나님께 모든 사정을 아뢰어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원수들이 저주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대적을 밟으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대적들 앞에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고, 피할 바위와 방패와 산성이신 주님과 동행하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대적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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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

성경: 신명기 7:17-24

7:17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

7:18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

7:19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

7:20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

7:21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

7:2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

7:2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기시고 그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시고

7:24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

 

1. 응답

찰스 로간 목사님 옆집에 한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 소녀가 교회에 함께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그 소녀는 로간 목사님이 아시아 선교를 위해 오랜 동안 타국에서 생활하고 돌아왔을 때까지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계속해서 그녀가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했다. 어느덧 세월이 지났고 그 소녀는 할머니가 되어서야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 40년의 로간 목사님의 기도가 응답받게 된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끝까지 인내하며 기도하여 응답받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2.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했다. 본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종교적으로 그들과 융합하지 말고 어떠한 동맹이나 타협도 하지 말 것을 특히 강조한다. 이 말씀은 오늘날 세상 속에서 세상과 대적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제시되는 말씀이다. 본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의 종교, 문화, 풍습에 물들지 않고 언약 공동체로서 지켜야 할 성격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섬멸하고 그들의 풍습을 좇지 말 것을 명하셨다(1-5). 그러면서 계명을 준수하는 자에게는 물질과 건강의 축복을 내리시며 이행하지 않는 자는 당장에 보응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6-16).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원수들로부터 보호하시고 대적들을 진멸시키시겠다고 약속 하시면서 한 번 더 우상 숭배에 대한 금지 명령을 내리셨다(17-26). 하나님은 어느 지역보다 우상 숭배가 많았던 가나안 풍습 때문에 거듭해서 우상 숭배 금지를 강조하신 것이다.

 

3. 두려워 말라(17-19)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을 두려워하여 떨게 될 것에 대해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의 많은 종족 수와 백성들의 수에 압도당할 수 있었다. 또한 그들은 광야 생활만 해서 군사적인 경험이 거의 전무했는데, 그 사실 또한 큰 장애 요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모세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위대한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권면한다.

 

염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염려하지 않아야 한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 상황이 어둡게 보일지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되, 염려하지 않아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거민들로 인해 염려하지 말 것을 말한다. “네가 혹시 심중에 이르기를 이 민족들이 나보다 많으니 내가 어찌 그를 쫓아낼 수 있으리요 하리라마는.”(7:17) 가나안 땅을 보고 온 정탐꾼들은 그 곳을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 사는 곳, 거민을 삼키는 땅으로 보았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13:32) 가나안 거민이 아무리 크고 두려워 보일지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은 염려하지 않아야 한다. 마음 가운데 일어나는 염려를 던져버리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면 불가능이 없음을 기억하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우리는 두려운 상황에서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우리는 두려움을 주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럴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지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거민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행하셨던 역사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바로와 온 애굽에 행하신 것을 잘 기억하되.”(7:18)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셔서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해 주셨고 홍해도 건너게 하셨다. 시편기자는 감사의 고백을 이렇게 기록한다. “애굽의 장자를 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을 저희 중에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홍해를 가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이스라엘로 그 가운데로 통과케 하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바로와 그 군대를 홍해에 엎드러뜨리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10-15)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너가게 하셨고 추격하던 애굽 군대들은 수장시키셨다. 우리는 홍해 앞에서 두려워해서는 안 되며 상황을 바꾸실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불가능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 분께 언제나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리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다윗은 시편에서 자신의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27:1-2) 다윗에게도 원수와 대적들이 있었지만 그는 생명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용기 있는 삶을 살았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문제의 해결 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크신 능력으로 행하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와 감사와 찬양으로 그 상황을 영적으로 돌파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강한 손과 편 팔로 행하신 출애굽의 하나님

우리는 두려운 상황 가운데서 누구를 바라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마음에 두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강한 손과 편 팔로 믿는 자들을 인도해 주는 좋은 분이 되심을 믿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의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강한 손과 편 팔로 행하신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도 동일하게 행하실 것을 말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내실 때에 네가 본 큰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강한 손과 편 팔을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는 모든 민족에게 그와 같이 행하실 것이요.”(7:19)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계획한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이다. 바로와 그 신하들은 하나님 앞에서 교만히 행하여 징계를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의 편에 서 있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 편에 서있어서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행하심을 바라보아야 한다. 느혜미야는 홍해 사건을 통해 교훈하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기록한다.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저희가 우리의 열조에게 교만히 행함을 아셨음이라. 오늘날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 주께서 또 우리 열조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시사 저희로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오는 자를 돌을 큰물에 던짐 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9:10-11)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자신 앞에 있는 문제의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자신이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환경을 두려워하지 말고 능력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문제의 상황 가운데서 마음을 강하게 해야 한다. 신명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행하실 것임이라 반드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31:6) 능력의 하나님은 지금도 동일하게 일하고 계신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4. 일하시는 하나님(20-22)

모세는 이스라엘이 택함을 받은 존재로서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헤렘 전쟁을 철저히 수행할 것을 명한다. 그 전쟁의 성취 여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척도가 될 것이다.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 대해서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그 반대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축복에서 제외된다. 우리는 이것이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임을 알 수 있다.

 

대적을 멸하심

하나님은 누구를 멸하여 주시는가?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대적을 멸해 주신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에게 왕벌을 보내어 멸할 것을 말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또 왕벌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의 남은 자와 너를 피하여 숨은 자를 멸하시리니.”(7:20) 왕벌은 벌 중에 큰 것으로 그 무리가 종종 말이나 소에 덤벼드는 일이 있다. 겁난 말이나 소는 놀라 미친 듯이 날뛰다가 죽는 일도 있다고 한다. 하나님은 종종 왕벌을 보내어 일하셨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내가 왕벌을 너희 앞에 보내어 그 아모리 사람의 두 왕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게 하였나니 너희 칼로나 너희 활로나 이 같이 한 것이 아니며.”(24:12) 우리는 하나님이 자연 속의 생명체를 통해서도 일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 편에 서 있기를 결단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46:7) 문제의 상황 가운데 두려워하지 말고, 대적 앞에 초자연적 능력으로 행하시는 하나님,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동행하시는 하나님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하나님은 믿는 자들과 동행해 주시는 분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두려워하지 말 것을 말한다. “너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7:21) 우리는 자기 앞의 상황을 두려워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문제의 상황을 보고 두려워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크고 두려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편에 서서 평안함을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거역하지 않는 자, 자기 앞에 상황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온 여호수아와 갈렙은 두려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하나.”(14:9) 우리는 언제나 믿는 자들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문제의 상황을 뚫고 나아가야 한다. 언제나 믿는 자들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순종이 요구됨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가?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순종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 할 때 그 분께서 일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시리니 너는 그들을 급히 멸하지 말라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할까 하노라.”(7:22)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을 한꺼번에 치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급히 멸할 경우에 들짐승이 번성하여 그들을 해칠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멸하라고 말씀하실 때에 순종하는 자가 복 있는 자임을 기억해야 한다. 가나안 족속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신명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붙여 너로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7:2) 하나님이 명하실 때 가나안 족속을 치는 것,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지 말라 할 때 수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명하실 때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작은 자임을 깨닫고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자신의 똑똑함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순종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143:10)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가장 먼저 자기 삶의 주인을 선택 할 것을 결단해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더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 회개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이 되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인생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묻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만 의지(23-24)

너를 당할 자가 없음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만 의지 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당할 자가 없음을 믿어야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진멸할 것을 말한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기시고 그들을 크게 혼란하게 하여 마침내 진멸하시고 그들의 왕들을 네 손에 넘기시리니 너는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제하여 버리라 너를 당할 자가 없이 네가 마침내 그들을 진멸하리라.”(7:23-24)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전쟁을 하게 됨을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거룩한 전쟁으로 묘사 할 수 있다. 겉으로 가나안 원주민에 대한 잔혹한 살해는 세속적인 전쟁이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차별성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는 이 정복 전쟁의 주인공이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악은 심판을 당하나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져 가게 되어 있다. 가나안 족속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을 받아야 했고 거룩하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나라는 세워져야만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땅 정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거룩한 전쟁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이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면 불가능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신명기는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 밟는 모든 땅 사람들로 너희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게 하시리니 너희를 능히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11:25) 우리는 이 땅에서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당당하게 십자가의 길을 걷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주님과 동행하며 자신들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7) 우리는 지금까지 나와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의 삶 가운데 더 크고 깊은 뜻 가운데서 행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예수님 안에서 소망을 가져야 한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환경을 보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는 자들의 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주와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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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위로와 소망, 신랑이 되시는 주를 알고

성경: 호세아 2:14-21

2:14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2:15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2:1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

2:17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

2:18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

2:19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2:20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

 

1. 울고 있는 소녀

스코틀랜드의 동양어학자인 덩컨박사는 자신의 부족을 느껴 성만찬에 참례하지 못하고 강대 밑에 가엾은 모습으로 앉아만 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덩컨박사는 한 소녀를 보았다. 한 소녀가 울면서 포도즙을 마시지 않고 잔을 그대로 돌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덩컨박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보지는 않고 자신의 죄지은 모습만을 보고 울고 있는 소녀의 모습을 통해 자기 안에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덩컨박사는 소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소녀야 그것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죄인을 위한 것이다.’ 이렇게 고요한 음성으로 부르짖은 후 자기도 그 잔을 받기 위하여 손을 내밀었다. 주님 앞에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예수 그리스도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분이시다. 우리 가운데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2. 징계 후의 자비

본장에서는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 경고와 함께 하나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징계 목적이 그들의 믿음의 정화에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우상과는 상관이 없이 살아가야 하는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방인들의 풍습을 좇아 우상을 숭배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시어 열창으로 흩어짐을 당하게 만드시겠다는 경고하셨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이후에 광야에서 사십년을 지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목이 굳어 신앙의 연단을 통해 새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상 숭배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도 이스라엘 백성을 정화시켜 새롭게 만드시기 위함이었다. 본장에는 음녀 고멜을 비유한 하나님의 경고가 계속 소개되고 있다. 특히 본장에서는 긍휼과 사랑을 베풀기 전에 생명의 근원을 우상으로 인정해 버린 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해서 하나님의 징계를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전장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로만 끝맺음하는 것이 아니고 징계 후에 자비를 베풀어 언약을 갱신하시고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끝을 맺고 있다. 따라서 본장은 우상 숭배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언약을 잠시 지연시키고 하나님의 징계를 임하게 하겠다는 경고의 부분(1-13)과 징계의 목적이 회개를 통한 구원과 언약의 회복에 있음을 보여 주는 부분(14-23)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회개치 않은 자와는 결코 교제를 나누지 아니하신다. 하나님은 오직 죄를 진심으로 회개한 자와 언약 관계를 계속 유지해 나가고 계시길 원하실 뿐이다.

 

3. 위로와 소망 되신 주(14-15)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우리 하나님은 위로와 소망이 되는 주님이시다. 호세아는 어떤 선지자였는가?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대언한다. 호세아는 Hoshea(인명) (['vE/h, Hoshea), [] @Wshe(Hosee)구원이다. 그는 브에리의 아들로서 선지자이며 유대 왕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의 치세와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 2세의 치세에 예언 활동을 하였다(1:1). 호세아 선지자는 북조 이스라엘의 시민이었는데 그가 그 나라의 선지사역을 60, 혹은 65년 동안 하는 중에 북조 이스라엘의 선지자로서 예후의 집을 거스려 예언하였다(1:4). 그는 여로보암의 치세 동안 적어도 12-3년간 예언하고, BC 722년 사마리아의 붕괴를 보기까지 생존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떤 학자는 그의 예언자로서의 봉사는 40년간 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호세아는 남조 유다에서 활동한 이사야와 동시대(1:1, 1:1), 즉 그가 예언 활동을 했을 때의 여로보암 1세와 웃시야는 동시대였으나, 호세아의 예언활동 개시는 이사야의 그것보다도 빠르고, 또 그 끝도 이사야가 그 활동을 끝맺기 훨씬 이전인 것 같다. 그는 또 북 왕국에서 예언한 아모스, 남조에서 예언한 미가와도 동시대였다.

호세아가 받은 하나님의 말씀은 참혹하고 비극적인 것이었는데 인간 존재를 근저에서부터 뒤집어엎을 정도의 극렬한 것이었다. 따라서 호세아의 선교는 다른 선지자들보다도 매우 개인적 색채 시랑, 진노, 배신과 이탈에 대한 정열적인 생각, 즉 이율배반적인, 이것인가 저것인가라는 갈등이 특징이다. 호세아는 이 격정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받았으며, 환언하면 여호와께서는 호세아를 여호와 자신의 페이도스(Pathos) 안에 포착한 것이다. 따라서 호세아에게 있어서 여호와의 말씀은 작열적인 사랑인데, 이것이 호세아의 예언 전체의 특징으로 되어 있다.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다하지 않는 사랑을 호세아는 결혼이라는 영원한 비의를 이스라엘 사상 처음으로 써서 표현했다.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위로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주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2:14)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자를 귱휼히 여기시는 좋으신 주님이 되신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가 그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길 것임이니라.”(49:13)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주님을 즐거워하며 감사하고 소리 높여 노래 할 수 있어야 한다. 대저 나 여호와가 시온을 위로하되 그 모든 황폐한 곳을 위로하여 그 광야로 에덴 같고 그 사막으로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51:3)

 

소망의 문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문이 되어 주시는가? 하나님은 우리에게 소망의 문이 되어 주신다.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2: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거기서 그녀에게 포도원을 되돌려 주고 고난의 골짜기를 희망의 문이 되게 하겠다. 저가 어렸을 때와 같이, 이집트에서 나오던 날과 같이 거기서 노래할 것이다.”(2:15) 하나님은 아골 골짜기를 희망의 문이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아간이 죽은 곳, 그곳이 아골 골짜기이다. “그 위에 돌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날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 극렬한 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날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7:26) 우리가 주님을 기대하고 주님을 바라볼 때 주님은 우리를 살리신다.

우리 주님은 살리시는 주님이 되신다. 여호와의 영이 에스겔을 골짜기로 데려갔고 에스겔은 그 곳에서 뼈들을 보게 된다. 하나님과 에스겔은 이러한 대화를 한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대언하여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한즉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37:11-14) 우리는 삶 가운데서 행하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그 분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생명의 문이 되심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 문으로 들어갈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10:9) 우리의 삶 가운데 위로와 소망의 주님을 붙잡고 반드시 승리할 것을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신랑 되신 주(16-18)

남편이라 일컫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어주시는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 아버지는 신랑이 되신다. 죄악에서 돌이켜 주님께로 돌아가면 우리는 신랑 되신 그분의 신부로서 살아갈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 날에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다시는 내 바알이라 일컫지 아니하리라.”(2:16) 우리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남편이 되신다.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라 칭함을 받으실 것이며.”(54:5) 우리는 정결한 처녀로서 한 남편인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자들로 살아가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 우리는 신랑 되신 주님 한분으로만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분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한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19:7)

 

바알들의 이름을 입에서 제거

우리는 무엇을 멀리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우상을 멀리하고 하나님만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피조물들이 우상숭배 하는 것을 하나님은 싫어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우상숭배에 대하여 직접 심판하기도 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바알들의 이름을 그의 입에서 제거하여 다시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여 부르는 일이 없게 하리라.”(2:17) 피조물들은 다른 신들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참 신으로 선택하여 반드시 생명이 되시는 주님으로 인한 마음의 기쁨을 누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른 신에게 예물을 드리는 자는 괴로움이 더할 것이라 나는 저희가 드리는 피의 전제를 드리지 아니하며 내 입술로 그 이름도 부르지 아니하리로다.”(16:4) 우리 주님은 홀로 높임을 받아 마땅하신 존귀한 주님이 되신다.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2:11)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떤 부분에서든지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시겠다고 작정하시면 그 뜻은 반드시 성취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피조물들은 이 땅 가운데 있는 모든 우상은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10:11)

 

전능자의 그늘

우리 하나님은 누구의 그늘이 되어 주시는가? 약속의 주님은 전쟁을 멈추게도 하시는데 주님은 믿는 자들의 편이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 또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하고 그들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2:18)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날이 오면, 너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지 아니하고, 낭군이라고 부르리라. 야훼의 말씀이시다.”(2:18) ‘에게 쉼이 필요한가? 주님은 능히 우리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좋으신 분이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23:2) 전쟁을 쉬게 하실 능력이 있으시는 주님을 붙잡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46:9)

를 살리실 능력이 있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안식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모세의 시는 이렇게 기록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군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91:1-13) 신랑 되신 주님을 사모하며 우상을 제거하고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승리할 것을 선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여호와를 알고(198-20)

우리 모두는 여호와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뜻을 잘 깨달아 승리해야 한다. 주님과 잘 연합함으로 주님을 점점 더 깨닫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2:19-20) 우리의 삶을 되돌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는 너무나도 크다. ‘를 살리시기 위해서 화목 제물이 되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믿음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3:25-26) 하나님의 징계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이었는가? 징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징계는 성도들의 믿음을 훈련시키고 더 나아가 고난당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다시 받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들을 대할 때 축복의 약속과 심판의 경고를 동시에 주심을 깨닫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복된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구속 받은 자로서 주님이 주신 지혜를 가지고 승리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1:7-8) 성령님의 도움으로 위로와 소망, 신랑이 되시는 주를 알기를 힘써야 한다. 우리 모두가 그분을 최고로 사랑하고 그 분을 잘 섬기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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