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11. 2. 07:38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바른성경) 로마서 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에 힘써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한 일에 힘쓰며 살아가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로마서 12:17 Recompense to no man evil for evil. Provide things honest in the sight of all men.

(헬라어신약Stephanos) 로마서 12:17 μηδενι κακον αντι κακου αποδιδοντες προνοουμενοι καλα ενωπιον παντων ανθρωπων

(히브리어Modern) 로마서 12:17 אל תשלמו לאיש רעה תחת רעה דרשו הטוב בעיני כל אד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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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6. 24. 08:36

제자.

제자.

(바른성경) 요한복음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서로 사랑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요한복음 13:35 By this shall all [men] know that ye are my disciples, if ye have love one to an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 요한복음 13:35 εν τουτω γνωσονται παντες οτι εμοι μαθηται εστε εαν αγαπην εχητε εν αλληλοις

(히브리어Modern) 요한복음 13:35 בזאת ידעו כלם כי תלמידי אתם בהיות אהבה ביניכ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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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5. 1. 08:08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

(바른성경) 로마서 12:18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롭게 지내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로마서 12:18 If it be possible, as much as lieth in you, live peaceably with all men.

(헬라어신약Stephanos) 로마서 12:18 ει δυνατον το εξ υμων μετα παντων ανθρωπων ειρηνευοντες

(히브리어Modern) 로마서 12:18 אם תוכלו ככל אשר תמצא ידכם היו בשלום עם כל אד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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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마음을 다해 주께 드리는 자!

성경: 누가복음 21:1-4

21:1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21:2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21:3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21:4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1. 하나님의 방문

어느 토요일 아침 루즈벨트대통령이 나가는 워싱턴 교회의 교구 목사 사무실에 요란한 전화벨이 울렸다. 수화기를 들자 이내 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이번 주일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오실 것 같습니까?’하고 묻는 것이었다. 교구 목사는 침착하게 설명했다. ‘대통령의 참석 여부를 제가 지금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꼭 오실 것 같습니다. 정말 수많은 교인들이 참석할 만한 일이지요.’ 교회에 오는 이들은 각자 이유가 있을 수 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교회에 올 것이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은 다른 이유에서 이기도 할 것이다. 어떤이들은 자신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종교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는 어떠한 예배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께 중심을 다해 예배하는 복된 그리스도인,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교훈

본장은 포괄적인 의미에서 종말에 대한 예고를 주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 본장은 내용 구성상 크게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즉 종말에 관한 문제 제기, 종말 선포, 그리고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말씀이 그것이다. 본장의 주님의 말씀은 교육적 목적으로 주어진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께서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칭찬하셨다(1-4). 사람들이 성전을 칭송하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고(5-9), 말세에 일어나게 될 여러가지 징조들을 말씀하셨다(10-28). 그리고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말씀하사 종말의 징조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분별할 것을 가르치셨고(29-33), 한편으로는 종말을 맞이하여 성도들이 스스로 절제하고 기도하고 깨어있을 것을 가르치셨다(34-38).

 

3. 헌금(1)

믿는 자들은 언제 예물을 드리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보통의 경우 예배드리러 교회에 나올 때, 하나님께 감사의 예물을 드린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을 넣는 것을 목격한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부자들이 헌금함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21:1) NIV 성경는 이렇게 기록한다. “As he looked up, Jesus saw the rich putting their gifts into the temple treasury.”(21:1) 한글 개역 성경에는 헌금으로 번역된 말이 없고, 연보로 번역되어 있는데,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느 날 예수께서는 부자들이 와서 헌금 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고 계셨는데 예수님께서 하루는 사람이 연보 궤에 헌금을 넣는 것을 보셨다.”(21:1) 헌금은 [] Offering, Gift, Contribution Offering이다. 이는 받은바 은혜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여 바치는 금전이다. 예배 때에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은 언제부터였는가? 헌금을 봉헌하는 것은 구약시대부터의 습관이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에 의해 수입의 10분의 1이 하나님께 바쳐졌다(27:30). 그리고 초대교회에 있어서는 예배 때 교회의 성례전에 쓸 것(, 포도주 등) 및 곤란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가지고 와서 드렸고 각각 소용을 충당했다(고후 9:8-15). 드디어 그것은 금전을 바치는 헌금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3세기에는 이미 매월, 매년, 혹은 임시의 헌금이 행해졌다. 그러나 5세기 무렵부터는 십분의 1세가 행해지게 되었고, 7세기에는 제도로서 확립되었다. 그리고 교회의 유지 및 그 활동은 그것에 의해 처리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어떠한가? 이때도 국가가 교회의 경비를 지출하고, 또는 교회세로서 교회의 활동을 유지하는 금전을 거두는 일과 같이 대행하는 형식이 많은 나라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교회가 국가와 완전히 분리하게 된 곳에서는 신자의 자유의지에 의한 헌금을 드림으로써 교회를 섬겼다. 이렇게 헌금은 예배의 중요 부분으로서 위치 하고 있다. 전례적인 예배의 경우 헌금은 설교 후에 봉헌송과 함께 드려진다. ‘는 어떠한 자세로 헌금을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될 것인가? 헌금은 충동이나 흥분한 감정으로 드려서는 안 된다. 우리는 헌금을 드리는 바른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옳음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계획성을 가지고 드리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고후 9:7). 우리 모두가 예물을 드리되, 주께 기쁨으로 드리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2-3)

예수님은 어떠한 예물을 기뻐하실까? 예수님은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작은 예물도 매우 기뻐하신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하는 것을 보신다. “또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21:2) 주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유심히 보셨다. 그 후, 그의 제자들에게 올바른 헌금의 정신을 교훈하시는데 이를 통해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주의하도록 경고하신 것이다. 가난한 과부가 드린 렙돈[] leptovn(lepton) [] Copper, coin이다. 그리스의 최소 동화(12:42, 21:2)인데, 1/8센트이다. 누가복음 12:59에서는 호리로 번역되어 있다. 중량 1.7g, 앗사리온의 1/8, 고드란트의 1/2에 해당한다(12:42). 과부가 헌금한 렙돈은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유통하고 있던 청동화로 보인다. 예수님은 이 과부가 드린 렙돈에 깊은 주의를 기울이시며 불과 두 렙돈을 드린 것을 칭찬하신다. 그리고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라고 평가하신다. 우리는 위선의 적발과 경건의 발견에 있어서 예수님의 깊은 안목을 볼 수 있다. 렙돈은 당시 노동자가 받는 일당의 1/128에 해당하는 돈이었는데, 두 렙돈이 과부의 생활비 전액임을 감안 할 때 그녀의 간절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과부의 헌금을 칭찬하신다. “이르시되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21:3) 부자들의 많은 헌금보다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을 주의 깊게 보신 예수님은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헌금의 양에는 관심이 없으셨다. 우리는 예물을 드릴 때 작은 양이지만 진실한 마음을 담아서 드려야 한다. 만약, 많은 양이지만 마음의 중심을 다해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 와야 한다. 예수님의 발 앞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의 이야기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녀를 비판했다.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고 닦는 그녀를 평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진실한 마음을 받아주셨다.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14:8-9)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아셨다. 그리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향유를 부으며 마음 중심으로 나아온 그녀를 기뻐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베드로가 입을 열어 가로되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10:34) 인간의 외모보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예물을 드리는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 ‘는 어떠한 예배자로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두 렙돈을 드린 과부처럼 중심을 다해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중심을 다해 예배하며, 중심을 다해 예물을 드리고, 중심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부자의 헌금 VS 가난한 과부의 헌금(4)

하나님은 어떤 그리스도인의 헌금을 더 기뻐하실까? 예수님은 부자의 헌금과 가난한 과부의 헌금 중 과부의 헌금을 더 귀하게 여기셨다. 하나님은 풍족한 중에 드리는 헌금보다, 없는 중에 드리는 헌금을 더 기뻐하신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21: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21:4) 주님은 넉넉한 가운데 일부를 드린 예물보다, 없는 중에 전부를 드린 과부를 칭찬하신 것이다. 주님은 헌금의 양보다는 헌신하는 마음을 헤아리신다. 주님은 내면과 동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올바른 자세로 예물을 드려야 할 것이다.

초대교회 때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에 올 때 교회의 성례전에 쓸 것(, 포도주 등)을 가져 왔었다. 그들은 가난한 형제들에게 나누어 줄 것을 가지고 왔는데, 그들의 교제의 모습은 매우 헌신적이었다. 또한, 부유한 신자들은 가난한 형제들의 생활필수품을 돕기 위해 자기들의 소유를 팔기까지 했다.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던 것이 분명하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2:44-45) 우리 가운데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나길 원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큰 은혜 가운데 거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아직도 자신이 주인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 주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를 가졌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한다. 우리는 마음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열방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마음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쳐 나기를 기도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크고 작은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 나서, 서로 나누는 역사가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그 마음을 예물이든 아니면 다른 어떠한 모습으로라도 주님께 표현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을 받지 아니하시리라.”(고후 8:12) ‘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예물을 드릴 것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가진 것이 없으면 없는 가운데 작은 것이라도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풍족하면 풍족한 가운데 최고 좋은 것으로 드릴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주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며, 큰 것이 아닐지라도 하나님 앞에 최선을 다해 드리기를 기뻐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의 헌금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도전을 준다. 하나님은 헌금과 더불어 헌금에 담긴 마음을 받으신다. 참된 헌금의 정신은 생활비 전부라도 드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 참된 마음을 담아 주께 드린다면 헌금의 크기와 관계없이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이다. 다윗은 성전 건축을 지시한 후, 건축에 쓸 예물을 백성들과 드리고 감사의 기도를 이렇게 올려드린다.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즐거이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대상 29:17)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가 주님께 드리며 기뻐할 수 있다면 더 큰 은혜이다. 다윗이 주께 드리며 기뻐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주께 마음을 다해 드리며 기뻐할 수 있길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하나님께 기쁨으로 드리는 자, 그는 복 받은 자이다. 주께 기쁨으로 예물을 드리는 자, 두 렙돈을 드린 과부처럼 작은 것이라도 마음 중심을 담아 주께 드리는 자, 가난한 과부의 헌금을 기뻐하셨던 주님의 마음을 알고 기쁨으로 주께 드릴 것을 결단 하는 자,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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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세상의 빛과 소금인 우리!

성경: 마태복음 5:13-16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5: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 소금과 빛

우리는 꽃을 볼 때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꽃이 시들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꽃이 그 최고의 특성을 상실할 때, 그것은 거름으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승용차는 우리에게 편리함을 가져다 준다. 그러나 그 차가 사고가 나서 더 이상 차로써 그 구실을 하지 못할 때, 그것은 쇠붙이로서 다시 사용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소금과 빛의 경우는 어떠한가? 소금과 빛은 그 기능을 일단 상실하면 아무 쓸모가 없게 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인 우리가 빛과 소금으로 잘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가르침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으로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 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잘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사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복수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 하기 때문이다(48).

 

3. 세상의 소금(13)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세상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여기 소금이니의 소금의 의미는 무엇인가? 소금은 구약에서는 부패 방지에 긴요한 물질이었고, 정결과 순수함의 상징어로 등장한다. ‘소금[] jl'm,(melach) [] a{la"(halas) [] Salt이다. 소금의 화학명은 염화나트륨이고 보통 식염이라고도 한다. 천연 해수 중에는 약 2.8% 포함되고, 또한 암염에서도 산출된다. 사해의 물은 보통해수의 6배 가까이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어서 일찍부터 제염에 이용되고, 그들 이스라엘은 세돔(소돔)에서 근대적 제염공업을 발달시키고 있다. 소금은 성막, 성전에서의 제물에 넣어졌다(2:13, 43:24). 소금은 맛이 변치 않는다는 특징을 갖는데, ‘함께 소금을 먹는다는 것은 불변하는 우정의 상징이다. 그리고 [소금의 언약]이라는 표현을 낳았다(대하 13:5와 스 4:14 비교). 그런 점에서 막 9:50에 있는 너희 속에 소금을 두라는 명령과 서로 화목하라는 말이 결합되어 있는 일은 의미가 있다. 소금은 또한 건전한 인격과 언어에도 사용되어 있다(4:6). 반면에, 파괴된 성읍에 소금을 뿌리는 것은 완전한 멸망을 의미한다(9:45). 롯의 아내는 소돔, 고모라가 멸망할 때 뒤를 돌아다 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다(19:26). 우리는 예수님도 지상의 재물에 집착하는 사람들에게 경계로 하셨음(17:32, 33)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지옥에 가는 이들은 누구나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을 말씀하신다. 사람마다 불로서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9:49-50)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지옥에 가는 자들이 아니라, 천국에 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형제자매로서 서로 원수를 맺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세상의 법대로 다시 살아가는 자가 아닌, 주님의 거룩한 명령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만일 저희가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희에게 나으니라.”(벧후 2:20-21)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지만, 세상이 좋아서 다시 세상을 향해 간다면 그의 믿음은 주님께 칭찬받지 못하는 연약한 믿음일 것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는 거룩한 주의 백성,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이다. 우리는 맛을 잃지 않는 소금, 이 소금으로서 반드시 세상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세상 가운데서 세상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이들이 아닌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소금으로서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고 성령님을 의지하여 매일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었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 없어 내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14:34-35)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소금의 신분을 잊지 말고, 소금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세상의 빛(1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로서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신분을 소유한 자들인가? 우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5:14) 여기 빛이라의 의미는 무엇인가? 빛은 거짓이나 부정의 개념과 반대되는 의미를 지니며 여기서는 죄악된 세상에 복음을 밝히는 성도의 사명을 강조하는 말이다. 빛은 [] r/a('or), r/am;(ma'or) [] fw'"(phos) [] Light이다. 빛은 육안으로 느끼는 비교적 파장이 짧은 전자파이다. 넓은 의미에서 눈으로 느낄 수 없는 자외선, 적외선을 포함하는 경우에는 눈으로 느껴지는 빛을 가시광이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이 자연적인 빛 외에도 초자연적인 빛, 동시에 상징적인 의미로도 많이 쓰인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은 빛이시며(27:1, 119:105, 24:13, 3:20), 하나님은 제 1로 빛을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1:3). 그리고 하나님은 옷 입음 같이 빛을 입으셨다라고도 표현되어 있다(104:2). 빛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궁극적인 행복을 나타내는 생활과 관련해서도 기록되어 있다(36:9). 신약에서, 예수님은 나는 세상에 빛이라하시고(8:12, 9:5, 12:46), 또한 요 1:5에는 하나님은 빛이시라(oJ qeo;" fw'" ejstin)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도 세상의 빛으로 일컬어진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5:14).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빛나는 것은 사람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임을 기억해야 한다. 빛의 사명은 무엇인가? 빛의 사명은 어두움의 세상에 빛을 발하여 모든 것을 비추는 일이다(5:6, 5:8). 등대 위의 등불이 모든 것을 비추듯이 우리는 어두움의 세계에 참 빛을 보여야 할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빛이신 예수님은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면 빛의 아들이 될 것을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서 숨으시니라.”(12:36)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자신의 죄를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 받아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를 가졌든지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 십자가 앞에 엎드려야 한다. 마음의 중심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고 천국백성으로 살아가야 한다. 또한, 빛의 자녀들은 빛과 어두움이 공존할 수 없음을 깨닫고,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않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우리는 모두 빛의 자녀가 되어 빛이신 예수님께 지도를 받으며 좁은 길을 잘 걸어가야 할 것이다. 자신의 삶 가운데서 어두움의 유혹이 오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대적하고, 빛의 아들로서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믿음을 잘 지키어 나가야 한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 5:5) 험난한 세상 가운데서 빛이신 예수님을 따라 빛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등경 위에 등불(15)

어두움이 가득한 세상 가운데서 빛으로 살아가는 동안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디에 등불을 두어야 하는가? 등불은 등경 위에 두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5:1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등불을 켜서 됫박으로 덮어 두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둔다. 그래야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다 밝게 비출 수 있지 않겠느냐?”(5:15) 빛을 밝히기 위한 등불은 등경 위에 얹어 두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여기서 등불[] r/am;(ma'or) [] luvCno"(luchnos) [] Light, Lamp, Torch인데, 등에 켠 불을 의미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장막이나 집안에 주야로 등불을 켜둘 필요가 있었다. 당시의 실내는 어두워서 주간에도 작은 것을 찾는데는 등불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15:8). 그리고 그것은 조명의 목적을 위함이기도 하고 항상 불씨를 손 가까이에 준비해 두기 위해서였다. 이런 일에서 여러 가지 상징이 생겨나게 되었는데, 켜있는 등불은 건강과 활기있는 생활을 의미하고, 꺼진 등불은 그 반대를 의미했다(18:28, 13:9, 24:20, 31:18 기타). 하나님은 사랑의 등불(119:105)이시고, 다윗도 이스라엘의 등불로 말해졌다(삼하 21:17-). 다윗의 경우를 생각하자면, 그가 한번 넘어지는 때면 이스라엘은 등을 잃어 암흑으로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등불은 하나님의 보호의 상징(29:3)이었고, 계명은 인생의 등불(6:23), 그리고 눈은 몸의 등불(6:22)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등불이시다(21:231:6-9, 8:12). 우리는 빛 되신 주님, 등불이신 주님을 따라 등불을 비추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놓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님을 따라가는 자,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삶은 반드시 형통하게 됨을 알고, 그렇게 살아갈 것을 지금 결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4:18)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점점 빛나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말세지말을 살아가는 빛의 자녀로서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고,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가기를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6-8) 영적으로 자지 말고 깨어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2: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러면 삐뚤어지고 잘못된 세대 가운데서 여러분이 흠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깨끗하고 순수하게 살 수 있을 것이며 하늘의 별처럼 빛날 것입니다.”(2:15) 우리는 흠이 없고 순전한 믿음을 가진 자, 악한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서 영적인 복들을 받아 누려야 한다. 어두운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만, 순수한 자이나, 큰 믿음을 가지고 지혜롭게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는 자들은 하늘의 별처럼 빛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의 신분을 가진 자임을 깨닫고,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주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는 주의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빛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는 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도우시면 우리는 빛으로 살아가며 착한 행실을 나타내 보이게 될 것이다.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통해 주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는데, 이는 예수님의 제자라면 그는 이미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빛과 소금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임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세상이 여전히 어둡고 썩어져 가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빛과 소금임을 기억하고 주와 동행하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5:14) 우리는 잠에서 깨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언제 어디서나 비취시도록 그분 앞에서 겸손히 서 있어야 한다. 빛을 받아들이는 자, 그는 빛의 세계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어떠한 상황이 자신 앞에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소망 삼고, 영원한 세계에서 왕 노릇하게 될 그 날을 생각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한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22:5) 우리 모두가 세상의 소금으로 사는 자, 세상의 빛으로 사는 자, 등불을 등경 위에 두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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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평강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성경: 빌립보서 4:4-7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4: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 소망의 생각

어느 날 ‘J. 윌버 채프만’(Wilbur Chapman) 목사님은 오하이오에 있는 한 교도소를 방문하여 수감자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37년 동안이나 이 감옥에 갇혀 있는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목사님은 그를 측은히 여기며 당신은 자유를 얻고 싶지 않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내가 무엇을 기대하고 석방을 바라겠습니까? 가족은 뿔뿔이 흩어지고 친구들은 하나 없는데 제가 누굴 위해 살겠습니까?’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 사람에게는 소망이 없는 스스로의 생각이 더욱 깊은 수렁이요 감옥이었다. 어떠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어떠한 생각의 습관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언제나 성령님의 인도함을 잘 받으며, 주 안에서 소망의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사랑과 감사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충고와 감사를 하고 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강조한다. 성도들이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평강으로 채워주심을 체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선교하는 데 사용되는 비용을 감당함으로써 주의 일에 동참했는데 바울은 이를 인하여 감사의 뜻을 표하면서 자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능력을 받아 부한 데 처할 줄도 알고 비천한 데 처할 줄도 안다고 고백한다.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의 쓸 것을 채우실 것임을 말한다. 하나님은 성도의 헌신을 보고 기뻐 받으시며 영 육간에 축복으로 채워주신다.

본장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영적 성장을 위한 결론적인 몇 가지 충고와 더불어,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빌립보를 포함하는 고대 마게도냐 지방의 부인들은 다른 지방의 부인들과는 달리 개인 재산을 소유하는 등 사회적으로 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본장에서 바울이 언급한 유오디아와 순두게라는 여인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 하에서 빌립보 교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그들의 불화는 사람들에게 화제의 대상이 되었고, 빌립보 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 화해케 함으로써 주 안에서 흠 없는 온전한 공동체를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의도로 본장을 기록한 것이다. 본장의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에서는 빌립보 교회의 문제에 대한 여러 가지 종합적인 충고를 하고 있으며(1-9), 둘째 단락에서는 빌립보 교회가 보내 준 선물에 대한 감사와 마지막 인사를 덧붙이고 있다(10-23).

 

3. 기뻐하라(4)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말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기뻐할 수 있는 상황 가운데서 기뻐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뻐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 기뻐할 수 있는 자는 성숙한 자일 것이다. 다윗은 왕이 되기 이전에 사울에게 쫓기면서 블레셋 왕에게로 도망갔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미친 척 해서 겨우 목숨을 건지게 되었는데 그 사건 이후 이렇게 시를 지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그를 송축함이 내 입에 계속하리로다.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가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34:1-2) 다윗은 살기 위해 미친 척을 했었는데, 그의 자존심은 다 망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자존심의 손상, 최악의 상황과 무관하게 여호와를 자랑하며 기뻐했다. 또한 바울과 실라는 복음 증거에 힘쓰다가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옥중에서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미했다.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16:25) 인간이 옥중에서 찬양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계를 뛰어 넘어 입을 열어 찬양했고, 결국 옥문은 열리게 되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인간의 이성과 능력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우리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항상 기뻐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님을 의지하여 기도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시험과 고통, 환난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잘 인내하며 기도로 영적돌파를 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12:12)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감사하며 불평이 아닌 믿음의 말을 선포하고, 언제 어디서나 주 안에서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관용을 베풀라(5)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관용을 베푸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주 안에서 기뻐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 대해 관용을 베풀 것을 명한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4:5)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은 주 안에서 옳지 않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복음 전파에 힘쓰셨던 예수님,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신 사랑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빌리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의수히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빌리느니라.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빌리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로우시니라.”(6:29-35) 우리는 타인에게 사랑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관용의 마음으로 대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한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는 주의 강림이 가까움을 말하며 서로 원망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말한다.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밖에 서 계시니라.”(5:8-9) 우리는 내 앞에 서 있는 자가 누구이던지 상관하지 말고 원수까지 사랑하며, 원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때에 신부를 맞이하러 오실 예수 그리스도, 신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때에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말씀 위에 굳게 선 그리스도의 신부, 그리스도의 군대가 되어야 한다. 서로가 뜻이 맞지 않을 때에도, 다툼의 상황이 생길지라도, 서로 용납하고 관용을 베푸는 성숙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무도 훼방하지 말며 다투지 말며 관용하며 범사에 온유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낼 것을 기억하게 하라.”(3:2) 악에 대해 악으로 대하지 않는 삶, 원수조차도 사랑하는 삶, 주 안에서 서로에게 관용을 베푸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염려하지 말라(6)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염려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 것을 명했는데, 이는 믿음으로 담대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서 함께 하고 계심을 믿는 믿음으로, 내게 어떠한 일이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기도라는 가장 강한 무기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4:6) 우리는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구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어떤 이들은 매일의 삶이 고통의 삶일 수도 있다. 우리는 고통처럼 느껴지는 하루를 살아갈 때에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갈 것을 믿음으로 선포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6:34) 하나님께서 하루를 책임져 주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감사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기 보다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한다. 솔로몬은 잠언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5-6) 하나님은 인간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도 해결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깊고 넓다. 이 사실을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범사에 그 분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의 형편과 삶의 모든 문제를 주님 앞에 올려드리며 믿음으로 부르짖어야 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 하나님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아브라함과 같은 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고 염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평강의 하나님을 의지(7)

우리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는 그리스도인들로서 평강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 할 때에 하나님이 나를 가까이 해 주실 것이며, 주와 동행하는 동안 세상이 주지 못하는 큰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평강이 임하게 됨을 알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본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4:7) 여기서 지키시리라는 군대에서 보초가 병영을 지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고,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며,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기를 힘쓸 때, 주께서 나의 삶을 지켜주실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의 생각을 붙잡아 주시고 지켜주심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평강의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최고의 복 받은 삶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우리를 구속하신 주님은 평강의 주가 되신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고 주님을 신뢰하며 나아갈 때, 평강의 주님께서 친히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이다.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1:79)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파도는 잔잔하게 되며 예수님이 오시면 어두움은 물러가고 만다. 평강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거친 세상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키며 담대하게 제자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뻐하고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며 염려하지 않고 기도하는 자, 평강의 하나님을 의지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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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8. 4. 14:43

주안에서의 기적, 누가복음 8:49-56

말씀: 주안에서의 기적

성경: 누가복음 8:49-56

8:49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

8:50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

8:51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8: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8:53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8:54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8:55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

8:56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

 

1. 신앙

우주를 다녀온 두 우주인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같은 우주를 다녀왔지만 다른 고백을 했다. 우주 탐험을 마치고 돌아온 러시아의 우주인 가가린의 고백은 이렇다. “신은 우주 어느 곳에도 없었다.” 이에 반해 미국의 우주인 제임스 어윈은 달나라를 탐험하고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폴로 15호를 타고 가서 달에 머무르는 동안 하나님의 존재를 아주 가까이 체험했다.” 똑같은 우주인인데도 한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체험했고 다른 한 사람은 체험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견해 차이는 어디에서 생긴 것일까? 그것은 바로 그들이 가진 신앙의 차이 때문이었다. 우리의 신앙은 어떠한가? 삶 가운데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전도 여행을 다니셨고,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 등의 여자들도 예수님의 사역을 돕는다(1-3).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말씀하셨고, 나중에 제자들과 계실 때에 그 비유를 해석해 주신다(4-15). 또한 등불 비유를 말씀하신다(16-18).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중에 모친과 동생들이 온 것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예수의 모친이요 동생이라고 말씀하신다(17-21). 호수 건너편으로 가실 때 광풍이 일어났지만 예수께서 말씀으로 잠잠케 하신다(22-25). 갈릴리 맞은편의 거라사 지방에 이르러 군대 귀신들린 자를 만나서 치료해 주신다(26-39). 예수님께서 갈릴리에 돌아오신 후 회당장 야이로 딸의 병을 고쳐 주시러 가는 길에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만나서 고쳐 주신다. 그러는 동안 이미 죽은 야이로의 딸을 예수님께서 크신 능력으로 죽음 가운데서 살리신다(40-56).

 

3. 믿는 자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예수님으로부터 어떠한 은혜를 입었는가? 그녀는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림을 받는 은혜를 입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일어난 일을 통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메시야의 권세를 잘 알 수 있다. 인간은 한계에 부딪쳐 있을 때 주님을 의지해야 한다. 믿는 자들은 모든 문제의 해결 자이신 주를 의지해야 한다. 사망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는 어떠한 절망에 빠진 자라도 그 절망에서 건지시며 참된 희망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어두움과 죽음의 권세에 눌려 있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아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전진해야 할 것이다. ‘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 분 앞에 날마다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4. 야이로의 딸의 죽음(49)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에 대한 어떤 소식을 들었는가? 예수님은 사역 중에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이 와서 말하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선생님을 더 괴롭게 하지 마소서 하거늘.”(8:49) 한 사람이 와서 야이로에게 그의 딸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여기서 괴롭게 하지 마소서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전하는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신앙이 없음을 암시하는 말이다.

마가복음에서는 이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아직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가로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5:35) 그 딸은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 분명히 죽은 아이처럼 보였을 것이다. 회당장 야이로는 열두 살 먹은 외동딸이 죽어가고 있음을 알고 예수님의 발아래 엎드려 자신의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돌아오시매 무리가 환영하니 이는 다 기다렸음이러라. 이에 회당장인 야이로라 하는 사람이 와서 예수의 발아래 엎드려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구하니 이는 자기에게 열두 살 먹은 외딸이 있어 죽어감이러라. 예수께서 가실 때에 무리가 옹위하더라.”(8:40-42)

회당장 야이로에게는 예수님이 죽어가는 아이를 고치실 수 있다는 확신과 자신의 딸을 살려야 한다는 간절한 마음이 이었다. 우리는 문제의 상황 앞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 다른 방법을 찾기 위해 헤맬 것이 아니라 주님께로 달려가야 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구덩이에서 건짐 받게 됨을 믿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믿는 자들이 주를 의뢰해야 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뇨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50:10) 언제나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고, 전능하신 주께 불가능이 없음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두려워 말라(50)

예수님은 딸이 죽었다는 비보를 가지고 온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은 더 이상 예수님을 괴롭게 하지 말라했던 한 사람의 말을 듣고, 야이로에게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시고.”(8:50) 예수님은 딸이 죽었다는 말 앞에 두려워 말라, 믿기만 하라!’고 말씀하신다. 믿음 앞에서는 어떠한 장애물도 무너지게 되어있다. 믿는 자들 앞에서는 어떠한 장애물도 문제가 될 수 없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독자 이삭을 얻었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에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4:20) 공동번역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믿음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의 나이가 백세에 가까와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4:19)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날마다 잃지 않아야 한다. 성령 안에서 깨어있어 기도하여 하나님께 약속을 받고, 의심 없이 믿음으로 나아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믿음이란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확신하며, 바라는 것이 그대로 이루어 질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은 믿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11:22-24) 우리는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믿음으로 말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되는 역사가 반드시 있게 됨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9:23) 우리는 날마다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 없는 자들의 말을 듣고 두려워하지 말고, 예수님의 이름 앞에 모든 것이 굴복함을 기억하며 믿음의 말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주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고 의심 없이 기도하여 응답받는 삶,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우리 모두의 삶이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통곡하는 이들(51-52)

예수님이 야이로의 집에 도착하자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야이로의 죽은 외동딸이 있는 집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울며 통곡하고 있었다. “그 집에 이르러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아이의 부모 외에는 함께 들어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8:51-52) 여기서 울며 통곡하매는 장례식의 침통한 분위기를 암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예수님은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리는 분이시므로 야이로의 딸을 살리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모든 것들은 반응해야만 한다. 성경은 몇 명의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죽은 나사로가 깨어나는 사건이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가라사대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제자들이 가로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저희는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11:11-13) 예수님이 친구라고 불렀던 나사로도 예수님께서 명하실 때 일어나야만 했다.

구약 성경에는 엘리사가 죽은 수넴여인의 아이를 살린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엘리사는 아이 위에 올라가 자기 입과 눈, 손을 대고 그 몸에 엎드린다. 그 후 아이의 살은 점차 따듯해졌고 아이는 일곱 번 재채기를 하고 눈을 뜨게 되었다. 그 후 엘리사는 자신의 종 게하시를 통해 수넴 여인을 오게 했고 그 여인에게 아들을 취하라 말한다. “아이의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 입에, 자기 눈을 그 눈에, 자기 손을 그 손에 대고 그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서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가로되 네 아들을 취하라.”(왕하 4:34-36)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 앞에 모든 것들이 무릎 꿇게 됨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는 죽음도 무릎 꿇게 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분임을 확실히 믿고, 언제나 그분을 의지하며 그분께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 하나님은 믿는 자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자신의 구할 바를 구하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비웃음&기적(53-55)

사람들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 앞에 어떻게 반응했는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 앞에 비웃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는 일어났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그 죽은 것을 아는 고로 비웃더라.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고 불러 이르시되 아이야 일어나라 하시니 그 영이 돌아와 아이가 곧 일어나거늘 예수께서 먹을 것을 주라 명하시니.”(8:53-55)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심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 비웃을 지라도 그 웃음에 움츠려 들 필요가 전혀 없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면 반드시 그대로 되기 때문이다. 마가복음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기록한다.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이라.”(5:41)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모든 문제의 상황이 끝나게 됨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소경을 고치는 기적을 행하셨다. 예수님은 소경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침을 사용하시며 그를 고쳐 주신다. “예수께서 소경의 손을 붙드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8:23) 소경은 예수님이 안수하시자 눈을 뜨고 말았다. 우리는 소경을 불쌍히 여기셨던 예수님,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못 고칠 병으로부터, 어두움의 눌림으로부터 자유하게 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명하시면 불가능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나사로에게 나오라고 명하셨고, 죽은 나사로는 베로 몸을 감은 채 나왔다.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11:43-44) 나사로를 살리신 주님의 이름을 부를 때 우리도 사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함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땅에서 제일 복된 삶은 모든 것을 잠잠케 하시는 주와 동행하는 삶이다. 예수님의 이름 앞에 풍랑은 잔잔하게 될 수밖에 없다. 제자들이 나아와 깨워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 한대 예수께서 잠을 깨사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시니 이에 그쳐 잔잔하여 지더라.”(8:24) 아무리 죽게 된 상황일지라도 살아계신 주님을 찾고 간절히 부르짖으면 반드시 살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됨을 믿어야 한다. 불신자들의 비웃음에 마음이 요동하지 말고 오직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영적 전투에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놀라움(56)

예수님의 행하심 앞에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딸을 보고 부모는 깜짝 놀라고 만다. “그 부모가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경고하사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하시니라.”(8:56)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아이의 부모는 깜짝 놀랐다. 예수께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 두셨다.”(8:56) 마가복음은 부모 뿐 아니라 사람들도 크게 놀랐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게 하셨고 그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신다. “소녀가 곧 일어나서 걸으니 나이 열두 살이라 사람들이 곧 크게 놀라고 놀라거늘 예수께서 이 일을 아무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저희를 많이 경계하시고 이에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라.”(5:42-43) 소녀를 사랑하셨던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예수님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고 예수님 보다 더 강한 것도 없다. 예수님의 말씀 앞에 바람과 바다는 순종해야만 한다. “저희가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저가 뉘기에 바람과 바다라도 순종 하는고 하였더라.”(4:41) 우리는 주 안에서 기적은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소녀를 살리신 예수님,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 나를 수렁에서 건지신 예수님, 나를 모든 문제의 구덩이에서 건지실 예수님을 붙잡고,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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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6. 9. 16:23

영광의 이름 예수, 요한복음 13:31-35

말씀: 영광의 이름 예수

성경: 요한복음 13:31-35

13: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13: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13: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1. 기적

OMF 선교사가 선교비를 들고 역으로 가던 중 강도들을 만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강도들이 곧 흩어지더니 도망쳐 버렸다. 그 후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강도들 중 하나가 구원을 받은 것이다. 전에 그 사건을 안 사람들이 왜 그때 강도들이 선교사를 죽이고 돈을 빼앗아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회개한 강도는 그때 우리는 군인들이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사건의 의혹을 푼 결과 그와 똑같은 시간에 기도 후원 그룹이 그 선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강도들이 본 군인들의 숫자는 기도 후원자들의 수였다.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다. 우리는 어떠한 기적을 체험을 하며 살아가는가? 어떠한 환경가운데서도 좌절하지 말고 기적을 통해서도 일하시는 주님을 붙잡고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새 계명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가까이 두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새 계명을 명하신다. 또한 예수님은 유다의 배반과 베드로의 자신에 대한 부인을 예고하신다. 십자가의 고난을 앞둔 예수님의 교훈과 예언은 제자들의 사명과 앞일을 밝히 보여 준 것이다. 새 계명을 행함으로써 예수의 제자 됨을 증명할 수 있다는 말씀은 진정한 제자의 도가 무엇인가를 교훈해 준다. 본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함께 하심이 기록되어 있다.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두셨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권면의 말씀을 베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이러한 본장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1-11), 섬김의 본(12-20), 가룟 유다의 배반 예고(21-30),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31-35), 베드로의 부인 예고(36-38)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에는 공관복음에서 볼 수 없는 내용, 즉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과 섬김의 도에 대해 가르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3. 주님의 영광(31)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기 위해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진 후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을 말씀하시고, 그가 나간 후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13:31) 하나님께서 인류 역사를 구원하시기 위한 계획 속에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죽으셔야만 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파는 역할을 하는 도구로 악하게 쓰임을 받는다. 예수님은 이러한 모든 진행 과정을 아시고, 이제 때가 되어 자신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다고 말씀하신다. 표준 새 번역은 이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13:31)

여기서 영광은 영어로 Glory이고 []dwObK(kabod) []dovza(doxa)이다. 이는 하나님의 완전성, 탁월성, 임재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쓰이는 용어이다. 가룟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님께서 영광을 받으셨음을 우리는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셔야만 했고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 승천하셨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한 여정 중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다. 그리고 인자가 들려야 할 것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를 져야 하는 사역에 대해 무거운 마음, 심적 부담감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제자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신다. 예수님의 마음은 괴로웠으나 아버지께 주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신다. 그 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가로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신대.”(12:28)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위해 사역하셨다.

나의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2:11) 우리는 모든 입이 주를 그리스도라 시인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일을 할 때에도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삶,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삶이 우리 모두의 삶이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예수님의 믿음(32)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갈 때 그분께서 반드시 이루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면 하나님도 자기에게 영광을 주실 것을 믿었다.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13:32) 이 말씀을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면 하나님도 나에게 자기 영광을 곧 주실 것이다.”(13:32)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리라, 이루시리라는 확실한 믿음의 소망을 가지고 사역하셨음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예수님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무리에게 잡히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저희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17:21-24)

예수님은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고 주의 백성들이 하나 되기를 간구했다. 인간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알 수 있기를 원했고,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영광을 보기를 소원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구에게 순복할 수밖에 없는가?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은 예수님께 순복해야만 한다. 저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저에게 순복하느니라.”(벧전 3:22)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자기 마음의 보좌에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고, 천국 백성이 되어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믿음으로 사역하셨던 예수님, 사랑으로 행하셨던 예수님, 하나님 우편의 보좌에 앉으셔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주님 붙잡고 거친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예수님이 가시는 곳(33)

우리를 위해 생명을 버리신 예수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천국을 예비하시며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13:33)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의 몸을 입고 잠시 이 땅에 계셨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 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 일찍이 유다인들에게 말한 대로 이제 너희에게도 말하거니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13:33) 예수님은 죽으신 후 부활 승천하셔야만 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그 곳에 갈 수 없었다. 예수님은 보내신 이에게 돌아가셔야만 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7:33) 하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늘에 속한 예수님을 잘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8:21-24)

예수님은 위에서 나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분,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그리고 인간은 죄 가운데서 태어나서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는 존재이다. 죄와 범벅이 된 인생들인 우리가 살 길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것뿐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4-6) 의심이 많았던 도마는 이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 앞에 자꾸 반문했고, 예수님은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 나라에 갈 자가 없음을 말씀해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감사해야 한다. 늘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지체된 자들로서 짐을 나누어지며 주의 율례를 지키고 사랑하기를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6:2) 하늘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을 날마다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 교회 안에서 지체들로서 사랑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새 계명, 사랑(34)

우리는 예수님의 어떠한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 중에서도 최고의 계명인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여기서 새 계명은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는 이웃에 대한 인간적인 사랑이라기보다는 예수님의 사랑에 근거한 희생적이고 적극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적인 사랑에 감격하고, 지체들 간에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님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로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은 서로 사랑할 것을 말씀하시며 이렇게 권면하신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15:12-13)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성령님의 은혜로 이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이 사랑을 마음에 담고 이웃에게 흘러 보낼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시다. 성부 성자 성령님이 삼위일체가 되심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음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하며 그 분을 섬기는 예배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 안에서 한 몸인 자들로서 고통과 기쁨을 함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6-27)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고통과 기쁨을 함께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바라며 견디는 것이다. 바울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 13:4-7) 모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님 앞에서 겸손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로서 날마다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3:12-13) 주 안에서 서로를 긍휼히 여기고 용서와 용납을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사랑으로 모든 것들을 참고 견디어 내며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께서 말씀하신 새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예수님의 제자(35)

이 땅 가운데서 잠시 잠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로서 승리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는 서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명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5)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과 영적인 힘이 있기를 소망한다. 사도 요한은 말씀을 지키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5)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기를 힘쓰는 자, 그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복 받은 인생이 되기를 소망한다. 사도 요한은 이렇게 권면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 4:20-21)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곁에 있는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삶을 통해 삼위 일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리고 날마다 삶 가운데서 영광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며, 그 분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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