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3. 12. 11. 07:15

생수를 마시고.

생수를 마시고.

(바른성경) 요한복음 4:14 누구든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될 것이다." 라고 하시니,

생수를 마시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者는 永遠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永生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영어esv) 요한복음 4:14 but whoever drinks of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will never be thirsty again. The water that I will give him will become in him a spring of water welling up to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 요한복음 4:14 ος δ αν πιη εκ του υδατος ου εγω δωσω αυτω ου μη διψηση εις τον αιωνα αλλα το υδωρ ο δωσω αυτω γενησεται εν αυτω πηγη υδατος αλλομενου εις ζωην αιωνιον

(히브리어modern) 요한복음 4:14 ואשר ישתה מן המים אשר אנכי נתן לו לא יצמא לעולם כי המים אשר אתן לו יהיו בקרבו למקור מים נבעים לחיי העולמ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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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22. 3. 7. 08:38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바른성경) 요한1서 2:17 세상도 지나가고 세상의 정욕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

모든 것이 지나가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가 영원히 거함을 깨닫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개역한글국한문) 요한1서 2:17 이 世上도 그 情欲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行하는 이는 永遠히 居하느니라

(영어esv) 요한1서 2:17 And the world is passing away along with its desires, but whoever does the will of God abides forever.

(헬라어신약stephanos) 요한1서 2:17 και ο κοσμος παραγεται και η επιθυμια αυτου ο δε ποιων το θελημα του θεου μενει εις τον αιωνα

(히브리어modern) 요한1서 2:17 והחלד עבור יעבר עם תאותיו והעשה רצון אלהים יעמד לע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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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8. 2. 8. 16:20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 요한복음 4:9-14

말씀: 목이 마르지 않는 생수

성경: 요한복음 4:9-14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4: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 인격

프랑스의 종교 개혁자 칼빈과 독일의 종교 개혁자 루터가 후에 교리 문제로 사이가 좋지 못할 때였다. 그때 칼빈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루터가 나를 마귀라고 하여도 나는 그를 하나님의 종으로 높일 것이다.’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남을 헐뜯고 악담하고 불평하는 일은 잘 할 수 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어리석은 사람일수록 더 뛰어나다. 그러나 남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것은 저를 이길 줄 알고 고상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다. 우리의 삶, 나의 마음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대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복음 전파

본장은 예수님께서 유대에서 사마리아를 거쳐 갈릴리에 이르기까지의 일련의 여정에 있어 베푸신 교훈과 표적을 다루고 있다. 특히 본장에 수록된 교훈은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 간의 담화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예수님의 두 번째 강화로서, 자기 계시의 원리와 초청의 원리를 드러내 주신다. 예수님께서 이 여정을 택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이르기 전에 대적들과의 무모한 충돌을 피하시기 위함이다. 둘째로, 소외받는 무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하심으로써 하나님의 은혜와 복음의 보편성을 부각시키셨다. 이러한 본장은 수가에 있는 야곱의 우물가(1-6), 우물가의 여인(7-15), 참 예배의 본질(16-26), 사마리아 여인의 증거(27-30), 참 양식(31-38), 사마리아인들에게 증거(39-42), 갈릴리 사역 개시(43-45) 두번째 표적으로서 신하의 아들을 살리심(46-54)으로 구성되어 있다.

 

3. 사마리아 여인(9)

예수님은 누구를 사랑하셨는가? 예수님은 유대인이 상종하지 않은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다. 본문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4:9) 어느 날, 예수님은 유다를 떠나 갈릴리로 향하여 가실 때 사마리아로 통과하게 되었다. 사마리아 수가에 이르렀을 때 예수님은 야곱의 우물 곁에 앉아 쉬셨고, 그때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다. 수가는 사마리아 성인데,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 가까이에 있었다(4:5). 일반적으로 야곱의 우물에서 평원을 건너 동북쪽으로 1km 지점에 있는 에발 산의 동륙에 있는 아스갈 마을과 동일시된다. 옛날의 세겜, 오늘날의 델 발라다를 가리킨다. 수가라는 동네에 우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은 매일 야곱의 우물로 혼자 물을 길으러 온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물을 줄 것을 이 여인에게 요구한다. 그러자 여인은 예수님께 어찌하여 유대인이 사마리아 사람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묻는다. 이는 당시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사람을 부정하게 여겨 상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마리아인은 유다와 이방인의 혼혈족이었기 때문에 유다인들은 그들을 개와 같이 취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으셨고, 사마리아인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다.

사마리아인은 누구인가? 사마리아인은 [] [] !ynIrom]vo(shomronim), pl. [] Samareitai(Samareitai), pl. Samarivth"(Samarites), Samariti"(Samaritis) [] Samaritans이다. 기원전 721년 앗수르 왕 사르곤 2(Sargon 2)에 의한 사마리아 점령 후, 각지에서 이민족을 이주시키고, 그들이 잔존 이스라엘과 혼혈하여 생겨난 사람에 대한 호칭이다(왕하 17:24-40). 특히 기원전 721년 앗수르에 의해 북 왕국이 멸망된 후, 여기에 외국인이 식민 이주되어, 종교 생활, 사회생활은 현저히 이교화되었다. 그리고 기원 전 4세기 말에는 마게도냐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마게도냐인의 이주도 있어서, 포로 귀환 후의 신앙의 순수성을 주장하고, 수호하려는 예루살렘 중심의 유대인과 세차게 대립하게 되었다. 유대인은 이교화된 사마리아인을 멸시하고, 예루살렘성전에 들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마리아인은 대항적으로 그리심산에 성전을 세우고 사마리아역 성서를 편집했다. 이 반목은 후대까지 계속되었는데, 유대인은 유다와 갈릴리와의 왕복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마저도 피하여, 일부러 요단강 동안의 페레아(Peraea-요단 저편 마 19:1)를 우회할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성 부인에게 전도하시고(4:1-26),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까지 들어(10:30-35), 이 반목을 극복하셨다. 예수님은 모든 영혼을 사랑하셨다.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주님이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영혼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어느 날, 베드로는 설교를 하기 위해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방문한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의 집에 방문하는 것, 이방인과 교제하는 것이 위법인지 알았지만, 그 금기를 깨고 성령님이 자신에게 말씀하신 바에 순종하여 그의 집에 가게 된다. “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교제하는 것과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10:28) 우리는 이방인이었지만 주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기억하고,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어떠한 이들도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 한번은 예수님이 병자들을 고치시며 사역하실 때,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소리 질렀던 나병 환자 10명을 고치신다. 그런데 고침 받은 10명 중 한 사람, 사마리아인만 돌아와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주님은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신다. 예수의 발아래 엎드리어 사례하니 저는 사마리아인이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7:16-19) 사마리아인처럼 또한 이방인인데, 우리는 주님의 은혜를 날마다 간구하여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고, 되어진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마리아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 열방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은 나를 극진히 사랑하신다. 우리는 그분 안에 생명이 있음을 알고, 그분을 알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마리아인도 사랑하신 예수님, ‘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을 붙잡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예수 그리스도(10)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야 하는가? 우리는 인생을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에 다니는 동안에,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4:10)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요청했던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했던 사마리아 여인을 보며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우리는 믿는 자들이 구할 때 좋은 것들로 베풀어 주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육신의 것 뿐만 아니라 영적인 것들도 충만하게 채워 주시는 좋으신 주가 되신다. 예수님께 구하는 자들은 생수를 마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셔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 승천하신 그분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믿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9:6)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며, 만왕의 왕, 전능하신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반드시 를 구원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55:6-9) 우리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만나기를 사모하며 부르짖을 때, 그분은 우리를 반드시 만나 주실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든지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함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17:3) 우리는 참 하나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각이 모든 이들에게 열려지기를 위해 중보해야 할 것이다.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한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영적인 안목이 열려야(11-12)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열려야 하는가?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면서 영적인 안목이 열려야 한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한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4:11-12) 사마리아 여인은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정오에 깊이가 약 26m인 이 야곱의 우물에 물을 길으러 왔는데 그녀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어떻게 이 깊은 우물에서 당신이 생수를 얻겠는지 물으며 야곱보다 큰 자이냐고 주님께 묻는다. 시간이 얼마 지나 예수님은 영적인 안목이 열리지 못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생수를 주는 자임을 밝히신다. 그런데 오히려 여인은 예수님이 누구관대 야곱의 우물보다 더 좋은 생수를 줄 수 있느냐며 물었던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단번에 알아봤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우리는 영적인 안목을 가진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과 영에 속한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거듭나지 못한 자연인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영적으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어리석게 보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도 없습니다.”(고전 2:14) 우리는 성령님의 은혜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영이신 하나님의 일을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는가, ‘는 무엇을 얻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살아갈 것인가? 우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기 위해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6:27)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께서 주의 자녀들이 구할 때 좋은 것들로 베푸실 것을 믿고,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자, 성령님의 은혜로 영적인 안목이 열려 하나님의 행하심을 잘 깨닫는 자들이 되어, 주의 행하심을 날마다 경험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13-14)

세상 사람들은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들을 찾아다닌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인간의 영혼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3-14) 우물의 물은 육신의 목마름을 잠시 해결해 주지만, 주께서 주시는 물은 영혼의 목마름을 완전히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물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신이 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할 것임을 말씀하시며 자신이 영원한 물을 주는 자이심을 교훈하셨다. 그러나 여인은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오해한다. 그리고 다시는 물을 길으러 오지 않게 그 물을 주실 것을 요구한다. 그 때에 예수님은 그 여인의 숨겨진 사실을 끄집어내며 남편을 데려오라고 하심으로써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신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나타내심으로써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주께로 나아와 그분께 부르짖는 이들은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살게 되는 역사가 있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목마른 자들아 나아오라, 주께서 채우시리라! 주께로 나아오는 자들은 목마름에서 완전히 자유케 될 것이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55:1-3) 여호와를 청종하면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의 영혼이 살게 됨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주의 자녀들을 풍성히 채우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49:10)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는 주님 앞에 나아가면 우리는 살게 될 것이다. 사마리아 여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께서 를 사랑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는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성령님의 은혜로 영적인 안목이 열려서 하나님의 행하심을 잘 깨닫고, 목이 마르지 않는 생명수를 주시는 주님을 찾고 인격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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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성경: 요한12:12-17

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2: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 태공망 여상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태공망 여상은 주문 왕 때 출세의 가도를 달렸으나 젊었을 때는 대단히 가난했다. 그런데도 밖에 나가 일할 생각은 않고 독서삼매의 나날을 보냈으므로 집안이 엉망이었다. 이때 부인은 생활에 지쳐 친정으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이름을 떨친 여상에게 어느 날 부인이 나타나 다시 살게 해달라고 했다. 이때 여상은 잠자코 물이 담긴 그릇을 엎지르고는 저 물을 그릇에 다시 담아 보시오.’하였다. 그러나 물은 흙 속에 스며들어 버렸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무언가를 하다가 쉽게 포기하지는 않는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쉽게 주님을 저버리지는 않는가? 세상을 더욱 사랑하지 않고 예수님만 최고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2.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해야 한다(1-6). 새 계명은 사랑의 실천을 요구한다. 어두움과 증오가 함께 존재하듯이 빛과 사랑도 함께 존재한다(7-11). 이러한 교제의 삶은 남녀노소 구별 없이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에게 다 해당된다(12-14). 성도들은 세상을 사랑치 않아야 한다(15-17). 이미 많은 적그리스도가 출현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생의 약속을 믿고 의를 행해야 한다(18-29).

 

3. 죄 사함 받은 주의 자녀

우리는 어떠한 은혜를 받은 자들일까? 우리는 원래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 할 죄의 속성을 지닌 자들이다. 그 죄를 해결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시다. 인류가 죄 아래 있다는 사실과 역사적 예수의 위치는 매우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다.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매우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들이다. 아무도 해결해 줄 수 없는 죄의 문제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식간에 해결되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까지 부여받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은 피조물이 아니라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는가?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았음을 말한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요일 2:12) 예수님께는 어떤 권세가 있는가? 예수님은 죄를 사할 권세를 가지신 분이다. 어느 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가 지붕을 통해 내려졌다. 친구들에 의해 천정을 뚫고 내려진 중풍병자가 친구들의 믿음으로 인해 고쳐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5:20) 한 번은 향유 옥합으로 예수님을 씻어드린 죄인이었던 여인에게 주님은 죄를 사하여 주신다.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7:47-50) 사람들은 죄 사함을 얻었다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불만을 가졌으나, 예수님은 죄를 사하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 분명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구원이 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4:12)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을 힘입어 나아가야 한다.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10:43) 의 삶에서 작게 또는 크게 지은 죄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께 죄를 자백하면 죄를 사하여 주심을 믿고 담대하게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9)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주님 앞에 나아가 죄 사함 받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4. 견고한 믿음가지고 마귀를 대적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영적전투를 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해야 할까? 주 안에서 견고한 믿음을 가지고 마귀를 대적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은 신앙이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고 또 악한 자를 이겼다고 말한다. 여기서 악한 자는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가? 악한 자는 마귀를 가리키고 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싸우는 사람들이며 이를 위해서는 믿음에 견고히 서야만 한다. 믿음에 견고히 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을 한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를 피하여 숨는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반드시 주님이 도울 것이며 우리는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됨을 믿어야 한다.

요한은 아비들에게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고, 청년들에게 악한 자를 이기었음을 말한다.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3)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복을 받았음에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아는 은혜에 관해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아버지는 아들을 알고, 아들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는 아버지를 알게 된다. 주님이 주신 은혜로 우리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게 되었음은 놀라운 일이다. 안타깝게도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지 못한다. 세상 가운데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세상 권세를 잡고 있는 마귀의 자녀의 신분에서 벗어나야 한다. 악한 자에게 속아 아벨을 죽인 가인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가인 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악한 자의 지배를 받게 되면 악한 행위의 결과를 낳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죄인들도 사는 길이 있다.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죄인들을 위해 화목 제물이 되신 좋으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1-2) 예수님은 사랑의 주님이 되신다. 예수님은 곧 십자가를 지시게 될 즈음에도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신 사랑의 주님이 되신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17:21)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되고, 근신하여 깨어있어 주님처럼 기도하며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벧전 5:8-9) 영적 전투에 임하는 주님의 군사로서 전신갑주를 입고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6:10-12) 반석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아갈 때 영적전투에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

 

5.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는 어디에 거해야 할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요일 2:14) 예수님의 참 제자는 어디에 거하는 자들일까?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참 제자에 관해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8:31) 주의 말씀 안에 거하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 주님은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의 길을 걸어갈 때 우리를 붙들어 주신다.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제자들은 주의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된다.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6:10) 바울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고백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4:13) 우리는 능력을 주시는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함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말씀이 안에 풍성히 거할 때 주의 영광을 위해 살아 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3:16) 늘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여 삶을 통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6. 세상을 사랑치 말라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가? 본문에서 세상이란 용어는 하나님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음을 올바로 이해해야 한다.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피조 세계로서의 세상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은 아니다. 세상의 주인은 누구인가?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런데 본문은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한다. 이때의 세상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을까? 이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떠난 세상을 가리킨다. 하나님 없는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친히 주인이 되셔서 통치하시는 세상을 그리스도인은 사랑하고 가꾸어 나가야 한다. 본서가 하나님과 세상을 날카롭게 대립시킨 것은 헬라어의 특성에 기인한다. 헬라 사상은 본래 영과 육, 세상과 천상을 이원론적으로 구분한다. 세상과 육은 저급하고 악한 것이고, 천상과 영은 고급하고 선한 것이다. 그래서 헬라인들은 끊임없이 세상과 육을 벗어던지고 영의 세계인 천상에 이르고자 한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철학적 배경을 가진 헬라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본 서신에서도 세상과 하나님을 날카롭게 구분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래 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단지 세상이라는 이유만으로 거부하지 않는다. 우리는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세상에 대해 하나님과 대립하는 일체의 존재의 의미로 기술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 것을 말한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멀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주님을 섬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 우리는 주님만을 잘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주님을 따라가는 제자들을 미워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15:19)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을 각오하되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우리는 어떠한 신분으로 살아가는 자들인가? 확실한 주님의 종으로 살아가기를 다짐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아감을 말한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10) 그리스도의 종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로서 살아갈 것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며 예수님의 생명을 가진 자로서 위의 것들을 바라보는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3:1-2) 예수님을 믿는 자는 반드시 세상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요일 5:4-5)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결코 세상가운데서 승리하게 됨을 선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7.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한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고 말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영존하시는 분이시다. 천지는 없어지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천지는 없어지려니와 주는 영존하시겠고 그것들은 다 옷 같이 낡으리니 의복 같이 바꾸시면 바뀌려니와.”(102:26)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없어지고 변하지만 주 안에는 영원함이 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된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우리는 삶의 어떠한 것들 중에서도 최고 우선순위로 예수님을 영접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우리는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라고 고백한 다윗의 기도처럼 언제나 주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주의 신이 선하시니 나를 공평한 땅에 인도하소서.”(143:10)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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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5. 28. 01:21

속사람을 강건하게!, 고린도후서 4:16-18

말씀: 속사람을 강건하게!

성경: 고린도후서 4:16-18

4: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4: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4:18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1. 보내고

점심시간 기다리며 오전을 보내고, 퇴근시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고, 월급날 기다리며 한 달을 보내고, 보너스 기다리며 석 달을 보내고, 휴가 기다리며 1년을 보내고, 승진 기다리며 5년을 보내고, 퇴직금 느는 맛에 10년을 보내고, 자식 크는 맛에 20년을 보내고, 집 한 칸 고대하며 30년 보내고.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유한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에게 기쁨을 주는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주 안에서 믿음의 눈으로 더욱 좋은 것을 바라보며 크게 기뻐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2. 논밭의 곡식

논밭의 작물들이 푸르른 것들로 가득하면 기쁠 것이다. 그러나 논밭이 푸르게 보이는 것은 곡식 때문일 수도 있고 잡초 때문일 수도 있다. 교회도 그럴 수 있는데, 교회 안의 성도들 중 모두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어떤 이들은 다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정의와 진리를 부르짖지만 이 중에는 잡초인 자들이 섞여 있기도 하다. 그들은 성경을 의심하며 지식인이라고 자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때로는 더러운 윤리를 진보라 하며 바르게 사는 자들을 바보 취급하며, 윗사람에게 순종하는 사람을 아부한다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들이 아닌 주 안에서 거듭난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밭을 메운 곡식이 되어야 한다. 반드시 주님이 오셔서 추수할 때에 모두가 알곡인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3. 바울의 사역

바울은 자신이 지닌 사도직의 영광스러움과 신성함을 특별히 강조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는 사역을 하며 유난히 고난과 시련을 겪었기 때문일 것이다. 바울의 서신들을 통해서 볼 때 그가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많은 환난을 겪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본장에서는 사도직이 갖는 영광과 고난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바울은 누구보다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복음 사역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당하셨던 것처럼 고난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친다는 메시지를 선포했는데, 이는 고난이 단지 고난으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데에 대한 복음의 핵심이 드러난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단락에서는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의 영광을 계속해서 변호하고 있으며(1-6), 둘째 단락에서는 고난을 통해 성도들이 참여하게 될 영원한 영광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다(7-18).

 

4. 피조물과 조물주

우리는 누가 만드신 작품인가? 우리는 하나님이 흙으로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줌으로서 창조되어 살아가고 있는 자들이다. 결코 진화를 거쳐서 존재하는 자들이 아니다. 스스로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참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피조물인 우리를 만드신 분은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피조물인 우리 모두가 조물주이신 하나님의 작품이 확실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는 때때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주 앞에서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새 생명을 가진 우리는 주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겉 사람 & 속 사람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날마다 변화될 수 있을까? 우리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우리의 속사람을 날마다 새롭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는 우리는 결코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바울은 겉 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므로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우리의 육체는 쇠하나 주 안에서 우리의 속사람은 쇠하지 않음을 믿어야 한다. 주님과의 관계가 좋을 때 우리의 속사람은 점점 강해 질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입은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자 나단 선지자는 그를 책망한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우리가 정직한 영으로 새롭게 된다면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가운데 속사람이 강건케 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의 반석이시다. 시편기자는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이 마음의 반석이시오 영원한 분깃이라고 고백한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잔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73:26)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 받아 주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새 힘을 주시는 주

믿음의 싸움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시선을 둘 때,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도우실까? 좋으신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신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40:29) 우리는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이 솟아남을 믿어야 한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40:31) 우리는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의 도구로서 주의 일에 힘 있게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다양한 환경가운데서 믿음의 시련이 있을지라도 결코 흔들리지 말고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고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8) 속사람이 강건한 자들이 되어 즐거움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 유순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사람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4) 현대인의 성경은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유순하고 정숙한 마음가짐으로 속사람을 아름답게 하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귀한 일입니다.”(벧전 3:4) 주님의 도우심으로 속사람이 날마다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5. 환난과 영광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다 보면 세상의 다양한 환경에 부딪히기도 한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할 때에 세상의 문화와 정서, 법과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보면 그리스도인으로서 겪어야 하는 환난이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환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는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삶은 매우 짧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삶이 영원함을 기억하고 주의 나라에서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잠시 받는 환난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 보았을까? 예수님은 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고 물과 피를 흘리셨다. 그 보혈의 은혜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은 세상에서 가장 큰 은혜이다. 그 큰 은혜를 안다면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잠시 받는 환난을 크게 여기지 말고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고후 4:17) 여기서 경한 것이란 세상에서 성도들이 겪을 고난이 잠깐임을 의미한다. 공동번역은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것입니다.”(고후 4:17) 우리는 주님을 믿으며 겪게 되는 고난이 잠깐뿐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겪는 고난은 어떠한 유익이 있을까? 시편기자는 자신의 고난이 유익했다고 고백한다.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119:67)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겪게 되는 고난이 우리의 믿음을 단련함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의 선진들에게도 고난은 있었을까? 예수님은 선지자들도 핍박 받았음을 말씀하신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5:12) 주를 믿으며 살아가는 동안 핍박이 있다면 하늘에서 상이 큼을 알고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언제 어디서나 참고 선을 행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2:7) 우리는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 영생으로 하실 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강인한 자들이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바울은 환난이 주는 유익에 대하여 이렇게 말한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5:3-5)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주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서 환난 가운데서도 잘 인내하여 주 안에서 소망을 갖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믿음의 시련 가운데서 잘 인내해야 한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3-4) 주님의 은혜 가운데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면 주 안에서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장차 나타날 영광

우리는 고난 가운데서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까? 우리는 고난을 극복한 자들에게 허락하시는 주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한다. 바울은 현재의 고난보다 장차 나타날 영광이 크다고 말한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어떠한 고난 가운데서도 우리는 주님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주님은 시험을 참는 자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하실 것이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12) 우리는 어느 때를 살고 있는가? 죄악이 세상에 관영한 말세 중 말세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알고 더욱 정신을 차려 기도에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

그리스도인들이 주목해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말고 보이지 않는 믿음의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승리해야 한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8) 공동번역은 아래와 같이 기록한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에 눈길을 돌립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고후 4:18) 우리는 믿음의 눈을 떠서 고난의 때가 잠시 잠깐임을 깨닫고 영원한 세계인 주님의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 왕 되신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 어떠한 심판이 있게 되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인자가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염소는 영벌에 양은 영생에 있게 할 것을 말씀하신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25:46) 우리는 세상의 것들은 유한함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6-17)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12:2-3) 우리는 예수님이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주님을 바라볼 때 승리할 수 있다.

 

6. 영생을 주시는 주를 바라보고 인내하며 승리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보이지 않는 믿음의 싸움을 계속하며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는 동안 잘 인내해야 한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8:24-25) 바울의 인내는 영원한 영광과 관련이 있는데, 그는 일시적인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영원한 영광을 위해서 여러 가지 고난을 견디어 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심을 집중하는 것은 보이는 세계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의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것들은 언젠가는 다 사라지고 이 세상에서 받는 고난도 역시 짧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씀을 지킨 자들에게는 크고 놀라운 영광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생명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요일 2:25) 영원한 생명을 주신 주의 은혜로 고난처럼 보이는 환경 가운데서도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며 날마다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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