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4. 4. 20:37

존귀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12-15

말씀: 존귀하신 예수님

성경: 요한복음 12:12-15

12: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12: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12: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2:15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1. 찬송

한 목사님이 노환으로 누워계신 어머니의 머리맡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었다. 80세가 훨씬 넘은 할머니가 자기의 병이 치료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는 자녀를 위로했다. 임종예배를 위해 온 가족이 다 모였을 때, 목사님은 어느 성구를 읽고 싶은지 물었다. 그러자 할머니는 네가 알아서 골라라. 단지 찬송하는 것으로 말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노구에 병마와 싸웠지만 그녀는 괴로움에 지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게 해 달라는 유언을 했던 것이다. 삶 가운데 우리는 어떠한 고통을 가지고 있는가? 어떠한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수님의 사역

본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예수님의 사역을 요약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메시야로 세상에 영생을 주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역을 했던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이다.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자신의 사명을 고난과 죽음을 통해 성취하실 그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본장에서 요한은 의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구약 성경의 예언에 대한 성취임을 나타내고자 했다. 수천 년 전에 예언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이 비로소 성취되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이 절대적인 신적 권위를 갖고 있는 메시야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본장은 향유를 부은 마리아(1-8), 나사로를 죽이려는 음모(9-11), 예루살렘 입성(12-19), 한 알의 밀(20-26), 자신의 죽음의 예고(27-36), 강퍅한 유대인들(37-43), 빛이신 예수님을 믿을 것에 대한 권면(44-50)으로 이루어졌다.

 

3.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예수님(12)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이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환영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이스라엘 왕으로 믿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그때 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는데 이는 구약의 메시야 예언의 성취였다. 예수님을 환영한 무리는 누구였을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살리실 때 함께 있던 자들의 증거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표적 행하심을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을 환영하는 무리를 본 바리새인들의 태도는 달랐다. 바리새인들은 오히려 그 광경을 보고 분을 내며 그들의 하는 일이 쓸데없다고 말했다. 본문을 보면 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신다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는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12:12) 유대인들은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었는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오면 신고할 것을 명령해 놓았다.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케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더니 저희가 예수를 찾으며 성전에 서서 서로 말하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뇨 저가 명절에 오지 아니하겠느냐 하니.”(11:55-56) 예수님을 따르던 자들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호했지만, 주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예수님을 잡고자 했던 것이다.

유월절에 대해 더 살펴보면 이렇다. 사랑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건져주셨고, 그들은 이것을 기념했다. 하나님은 모세를 부르시어, 출애굽을 행하신 하나님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말할 것을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6:6) 또한 종교개혁을 했던 남 유다의 요시아 왕은 정성을 다해 유월절을 지켰었다. “요시야가 그 모인 백성들에게 자기의 소유 양떼 중에서 어린 양과 어린 염소 삼만과 수소 삼천을 내어 유월절 제물로 주매.”(대하 35:7) 유대인의 각 가정에서 지키고 있는 유월절의 식순을 보면 니산월의 13, 즉 그 날의 일몰과 함께 시작되어 등불을 켜면 집안에서 일체의 누룩을 제해 버리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14일 저녁부터 유월절의 식사를 시작한다. 축복은 기도한 후, 첫째 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손을 씻고 기도한 후 쓴 나물에 쓴 나물에 하로세스를 발라(곁들여) 기도 후 가족에게 먹게 했다. 하로세스[ts,/rj(ch roseth)는 과실과 포도주를 섞어 만든 크림 같은 조미품으로 이것은 선조가 애굽에서 점토를 반죽하던 고통의 상징이다. 그 후 고난의 빵으로 불리는 세 조각 겹친 무교병을 취해 애굽에서 선조의 고난을 상기했다.

 

4. 호산나 찬송 받으시는 예수님(13)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주님께 호산나 하고 외치며 왕이신 주님을 찬송한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 그들이 흔들던 종려나무 가지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에서 종려나무는 거룩함이나 승리, 또는 번영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전쟁에서 승전하고 입성할 때 백성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외쳤던 호산나<wJsannav>의 의미는 부디 도와주십시오, 구원하옵소서의 뜻을 갖는다. 이는 시편 118:25에 있는 히브리어에 대한 음역이다. , 그들은 구원의 메시야를 환호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으로 오신 메시야 예수님을 주제로 하는 마태복음에서 마태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장면을 이렇게 기록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이는 누구뇨 하거늘 무리가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21:9-11)

무리들은 호산나 하고 외치며 주님을 높였고 온 성은 소동했다. 우리 주님은 왕 중의 왕이시오, 주 중의 주이시다.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속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44:6) 우리는 예수님이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믿어야 한다. 천국에서도 주를 믿는 나라와 족속들은 어린양 예수께 찬송하게 될 것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7:9) 그리스도인으로서 언제나 주님을 호산나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나귀를 타신 예수님(14)

왕이신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12:14) 여기서 어린 나귀는 스가랴 9:9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이다. 말은 전쟁 시에 타지만 나귀는 평화 시에 타는 동물이다. 따라서 메시야가 평화의 왕이며 사랑의 왕으로 오심을 나타내며 어린 나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공의와 구원을 베푸는 나귀를 타신 겸손의 왕이시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예수님께서 타고 오신 나귀는 어떤 나귀였는가? 예수님은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나귀새끼를 풀어 끌고 올 것을 명하셨다.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 사람도 타 보지 않은 나귀새끼의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거기 섰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가로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의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걸쳐 두매 예수께서 타시니.”(11:1-7)

조금은 이상한 명령처럼 보이지만 예수님은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끌고 올 것을 제자들에게 명하셨다. 사람들은 제자들이 나귀를 푸는 것을 허락했고 예수님은 겉옷이 걸쳐진 새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주님은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다면 나귀를 타신 겸손하신 예수님, 왕 되신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어 들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씻고 용서함 받아 주님의 보좌 앞에 엎드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겸손의 왕 예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왕 되신 예수님(15)

예수님은 나에게 누구신가?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신다. 우리는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 주님을 보고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이미 예언된 대로 나귀를 타고 오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보고 우리는 크게 기뻐해야 할 것이다.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12:1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시온의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 임금이 너에게로 오신다.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하신 말씀 그대로였다.”(12:15) 예수님과 관련해 언제 또 소동하는 일이 있었는가?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유대인의 왕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이 소식을 듣고 소동하고 만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2:2-3) 왕 되신 예수님을 메시야로 기다리는 자들은 주님의 나타나심에 크게 기뻐하며 감동했을 것이고, 예수님께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이 소식에 부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놀랐을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소식에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 내가 구원자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릴 수 있다면 복 받은 자이다. 우리 주님의 일은 크고 기이하다. 우리는 만국의 왕을 높이며 찬양하는 승리자들이 되어야 한다. 요한 계시록은 주 안에서 승리자들의 노래를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15:3) 세상 가운데서 어떠한 시련과 고난이 있을지라도 인내로서 믿음을 지키고 끝까지 승리하여, 왕 되신 주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호산나를 외치면서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한 군중의 함성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의 함성은 구약의 선지자들에 의해 예언된 메시야, 바로 그분이 오셨으므로 더 이상 지체 말고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는 민족적인 간청이었다. 군중은 예언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단지 자신들이 기대한 정치적, 민족적 소망을 이뤄 줄 메시야로만 알고 있었다. 이것은 장차 자기들의 기대가 무너졌을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던 무리로 돌변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나는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우리의 모습이 당시의 군중과 비슷하지는 않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와 가정, 개인의 어떠한 목적과 영광을 위해 주님을 좇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들로서 주님을 잘 따라가며 승리해야 한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기 위해 목숨까지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16:25) 온 맘과 힘을 다하여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20:24) 우리는 바울의 고백에 도전 받아야 한다. 나귀를 타신 겸손하신 예수님,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 구원자 예수님, 존귀하신 예수님께 감사하고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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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대하며 성령님과 동행하기

성경: 사도행전 1:6-11

1: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1: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1: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1:11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 사해

요단 계곡 남단에는 죽은 바다가 있다. ‘죽은 바다인 사해는 세계에서 가장 희귀한 것 중의 하나로 길이가 47마일, 넓이는 10마일, 수심이 1,292 피트나 된다. 요단강에서 그곳으로 흘러들어가는 물의 양만해도 상당량이 되는데 사해는 전혀 소량의 물도 내보내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로 사해의 아래에 위치한 지역은 건조한 사막 지대가 되었다. 사해의 염기는 다른 바다의 5배나 되며, 거기에는 어떤 물고기도 살지 못하고 해변에도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다. 마치 하나님의 저주가 그곳에 퍼부어진 것처럼 음울하고 황폐한 분위기이다. 이러한 사해의 모습은 이기적인 삶의 전형이라 하겠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 모두가 자신만을 위해 좋은 것을 다 소유하고자 하는 삶이 아닌, 좋은 것을 나누고 흘러 보내는 귀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약속

본장은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의 약속을 기록하고 있다. 본서의 저자는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 대한 증거에 이어 본서에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성령의 강림으로 인하여 시작된 초대교회의 성장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장은 그래서 본서 전체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의 최후의 지상 명령을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명령에 따라 본서의 내용은 전개된다. 본서를 누가복음의 속편으로 이해할 때에 본장은 새로운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그러므로 본장을 기점으로 하여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본장은 본서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이러한 본장은 머리말(1-5), 예수님의 승천(6-11), 다락방 기도(13-14), 가롯 유다의 종국(15-19), 사도로 뽑힌 맛디아(20-26)로 구성되어 있다.

 

3. 예수님(6-8)

주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실 때, 제자들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정치적 독립을 의미하는지를 묻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일은 그들의 알 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더 위대한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한 민족에 국한될 수가 없었고 온 세계를 위한 그 분의 증인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은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들이 되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받은 후에 이 일을 해야 했다. 8절은 특별히 사도행전의 흐름을 말해 주고 있다.

 

예수님에 대한 시각의 차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통해서 그 분의 의중을 잘 알 수 있다면 복된 일이다. 제자들은 주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하심에 관하여 이렇게 묻는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1:6) 제자들은 언제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후 예수님이 다시 나타나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주님,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우실 때가 지금입니까?’하고 묻자.”(1:6) 1세기의 유대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을 위한 지상적이고 정치적 나라를 의미했다. 그리고 주님이 사역하시던 한 때에 그 백성들은 예수님을 강제로 그들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선교 사역은 이 땅에서의 나라의 세속적인 화려함이 아닌 영적 능력으로 이룩하려는 것이었다. 제자들은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세배대의 아들의 어머니는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두 아들이 주의 나라의 좋은 보좌에 앉기를 요청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20:21) 그 자리는 왕 다음의 좋은 자리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좋은 자리를 요구하는 한 인간의 부족하고 겸손하지 못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으로 하나님의 일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하나님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영적으로 힘쓰며, 한 마음을 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정치적으로 평화를 가져다주는 분이 아니셨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이사야서는 영존하시는 아버지를 이렇게 기록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우리는 를 위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구원자 예수님이 평강의 왕이시며, 영원한 왕이심을 믿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잘 깨달아 아버지의 마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여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버지의 권한

하나님 아버지는 어떠한 권한을 가지고 계신 분인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것은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답하신다. ‘때와 시기에서 때는 기회를 의미하며 시기는 지속적인 기간을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의 완성의 때에 대한 권한은 오직 한분 하나님 아버지께 있다. 바울은 주님 오심의 때에 관해 이렇게 기록한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살전 5:1-2)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 우리 주님의 재림의 때도 하나님만 아신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때는 하나님의 권한임을 잘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24:36)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만의 권한이 있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 주님은 한 어머니의 요청 이후, 야고보와 요한이 주의 잔을 마시려니와 좌우편에 앉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권한임을 말씀하신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20:23) 주님의 때의 권한이 하나님 아버지께만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하는 자신이 되기를 기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증인(8-10)

성령님의 도움으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주님을 믿으면서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탐욕적인 어떤 것에 관심을 갖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참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증인의 삶을 스스로 살아갈 수는 없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에 이 일은 가능하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우리는 명예와 권력을 멀리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관심을 갖아야 한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온 땅에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이렇게 명하신 예수님의 뜻을 잘 깨닫고, 열방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힘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 될 때 예수님은 오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주님의 오심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24:14) 우리는 이 말씀을 잘 기억하며 온 세상 가운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 가까운 이웃에게서 부터 열방의 민족에게 까지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권세가 있다. 원수 마귀를 멸할 수 있는 하나님의 권세가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10:19)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수 있으며, 믿는 자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의 승천

예수님은 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아직도 예수님을 구원자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로 자신의 죄를 용서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려야 한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고, 하늘로 올라 가셨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 가셨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1:9) 개역한글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1:9) 여기서 올리워 가시니의 원어는 <uJpevlaben: 휘펠라벤>이다. 이는 영접하다, 부양하다.’라는 뜻인데 예수님의 승천을 나타내는 말로 쓰였다. 승천이란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며 이것은 존재의 변화를 의미한다. 제자들 앞에서 말씀을 마치신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셨고 제자들은 구름에 가린 주님을 볼 수 없었다.

구약에서는 영광의 구름이 등장한다. 하나님을 뵈옵기 위해 시내산에 오른 모세에게 주님은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하셨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로 여호와께 고하였으므로.”(19:9) 하나님은 그 분의 역사를 그려 가실 때 구름을 등장시키시기도 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은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3) 주를 믿는 자들은 주님께서 예비하신 처소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들의 처소를 예비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믿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흰 옷 입은 두 사람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을 보고 있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났다. 바로 흰 옷 입은 두 사람, 천사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1:10) 안식일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 갔을 때에도 그들은 천사를 목격하게 된다. “그 형상이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거늘.”(28:3) 천사의 형상은 번개 같고 그 옷은 눈 같이 희었다. 또한 예수님의 무덤의 두 천사를 요한복음은 이렇게 기록한다.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예수의 시체 뉘었던 곳에 하나는 머리 편에, 하나는 발편에 앉았더라.”(20:12)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확실히 신뢰하며, 의심 없이 주님을 잘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다시 오실 주님(11)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 사망 권세를 깨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 흰 옷 입은 두 천사는 이렇게 말한다.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1:11)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께서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믿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큰 영광과 능력으로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1:27)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 모두가 주께서 다시 오심을 반드시 보게 될 것이다. 사도요한은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1:7) 주님 앞에 악한 자와 선한 자, 모두가 주님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자들로서 존귀하신 주님 앞에 겸손하게 엎드려야 한다.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14:4) 거룩하신 주님처럼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힘쓰고, 지금도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함을 언제나 받기를 소원하며,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대하며 주와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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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0. 22. 09:12

능력.

능력.

(바른성경) 사도행전 1:8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이다."

성령님의 능력으로 곳곳에 복음을 잘 전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사도행전 1:8 But ye shall receive power, after that the Holy Ghost is come upon you: and ye shall be witnesses unto me both in Jerusalem, and in all Judaea, and in Samaria, and unto the uttermost part of the earth.

(헬라어신약Stephanos) 사도행전 1:8 αλλα ληψεσθε δυναμιν επελθοντος του αγιου πνευματος εφ υμας και εσεσθε μοι μαρτυρες εν τε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εν παση τη ιουδαια και σαμαρεια και εως εσχατου της γης

(히브리어Modern) 사도행전 1:8 אבל תקבלו גבורה בבוא עליכם רוח הקדש והייתם עדי בירושלים ובכל יהודה ובשמרון ועד קצה האר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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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

성경: 시편 128:1-6

128: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128:2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128:3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128: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128:5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128:6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

 

1. 따뜻한 말

Q: 안녕하세요? 저는 이번에 4수에 실패한 인생 낙오자입니다. 잘하려고 해도 뭔가가 제 앞을 막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를 해도 자신이 없고 그저 죽고 싶은 생각뿐입니다. 집에서도 저를 포기한 것 같습니다. 주위의 시선은 너무나 따갑고 냉정하기만 합니다. 누구에게 위로를 받고 싶은데 아무도 저를 위로하려 하지 않습니다. 따뜻한 말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세요. A: 가스보일러, 난로, 전기장판, 모닥불, 아궁이, 열 내는 하마.....

 

2. 가정생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가정생활의 즐거움에 대하여 다룬 본시는 작자 미상의 지혜시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복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는 축복의 분위기의 시로, 성전에 도착하는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용으로 사용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본시에 나타난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마치 한 폭의 그림같이 정겨운 느낌을 준다. 저자 미상인 본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누리는 가정생활에 대해서 언급되어 있다. 본시의 토대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축복의 분위기가 바로 의인의 가정에 머무르는 것이다. 본시는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받을 축복을 그리고 있으며(1-2), 나아가 의인의 가정이 받는 실제적인 축복을 보여 주고 있다(3-6).

 

3. 주를 경외함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우리를 살리기 위해 이 땅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서 우리는 감격하고 있는가? 감격하는 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 주님은 우리의 어떠한 모습을 기뻐하실까?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 경외는 문자적으로 어떤 신적인 능력에 대해서 인간이 가지는 두려운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두려움과 존경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편 128:1) 길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길은 원어로 <&r<D<:데라카>이다. 이는 걷다또는 인도하다라는 뜻으로 여기서는 사람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계명을 가리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을 걷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자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도 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은 어떤 길일까? 다윗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하여 기록한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주의 율법을 좇아 살아간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1:1-3) 우리는 주의 율법을 좇아 살아가는 자들에게 형통하는 복이 있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이 땅 위에 살아가는 자들은 어떠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을까? 이 땅 위에 살아가는 모든 피조물들은 아담의 범죄 이후 수고하며 살아가야만 한다. 하나님은 범죄 한 아담에게 얼굴에 땀을 흘려야 하고 흙으로 돌아가게 됨을 말씀하신다.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3:19)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동안 나그네의 삶을 살다가 본향인 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이다. 우리는 이러한 짧은 시간동안 주님을 잘 경외하고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112:1)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하며 형제들에게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더욱 많이 힘쓰라고 권면한다.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되 최선을 다해 힘써서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4. 형통하게 됨

하나님은 자신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어떠한 복을 주실까?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형통하게 되는 복을 주신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피조물들은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살아간다. 이러한 삶도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애 쓴다고 하여 모두가 다 수고한 만큼 좋은 결과를 얻지는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한 삶이 우리의 삶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주님을 경외하면 수고한 만큼 좋은 결과로 베풀어 주신다.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128:2) 우리는 주님을 잘 경외하여 형통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었던 요셉은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리고 옥에 갇히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주를 경외했던 그에게 하나님은 큰 은혜를 주셔서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49:22) 주를 경외했던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큰 복을 받았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서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불순종하는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순종하는 자가 될 것인가? 그 선택은 자신에게 달려있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복의 결과도 다름을 기억해야 한다. 불순종하는 자들은 저주를 받게 된다. “네가 포도원을 심고 다스릴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28:39)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여 수고할지라도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나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잘 되는 복을 주신다.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28:4) 우리는 모두가 주를 경외하고 그 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형통하게 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5. 아내와 자녀의 복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가? 아내와 자녀의 복을 주신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128:3) 포도는 영어로 Vine(Grape) []Vine (Grape), 포도나무에 열리는 열매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보급되어 있는 포도나무 과에 속하는 낙엽성의 덩굴이 뻗는 식물로서, 전 세계에 600여종이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포도(vine, Vitis vinifera), 올리브와 함께 팔레스티나에 있어서의 중요한 과수였다. 경제적으로서의 그 중요성은 곡물의 다음이지만, 그 재배에는 많은 손이 가야 하는 것이므로, 나봇의 포도밭의 실례가 보여 주는 대로, 소유자의 집착은 강렬했다(왕상 21:3비교). [(올리브)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지 말라](6:6)는 구절은 이들 과수의 중요성에 관련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감람나무는 []tyIz"(zayith) []ejlaiva(elaia)이다. 영어로는 Olive(올리브)인데 감람은 감람나무의 열매를 말한다. 푸른빛이 나는 타원형의 핵과로 맛이 좀 쓰고 떫다. 이것은 중국 감람(Chinese olive)이고, 성서에 있어서 감람으로 역된 히브리어 [자이스]는 올리브나무와 그 열매를 가리키고 있다. 노아의 방주에서 날려 보낸 비둘기가 물고 온 것은 이 올리브의 잎이었다(8:11). 이것은 평화의 상징으로 되고 있다. 올리브는 서아시아 원산으로, 일찍부터 지중해 연안에 이식되어, 올리브와 무화과는 지중해적 특징의 과실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가장 귀중한 과수의 하나이다. 자식들이 어린 감람나무 같다고 하였는데, 어린 감람나무가 장차 감람 열매를 맺게 되는 것처럼 자녀들도 풍성한 축복을 가져올 것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를 경외할 때 결실한 포도나무 같은 아내의 복과 장차 감람 열매를 맺게 되는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녀의 복을 받게 된다. 우리는 자녀의 소중함을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은 자녀가 많은 자는 복되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 전통에 가득한 자는 복 되도다 저희가 성문에서 그 원수와 말할 때에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127:5) 이들은 그들의 원수와 담판할 때 수치를 당하지 않게 된다. 주님을 경외하는 우리는 언제나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께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주를 경외하며 주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하리로다.”(52:8) 다윗이 자신을 주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다고 말하며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영히 의지한다고 고백한 것처럼 우리도 세상 끝 날까지 그 분만을 섬기며 그분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6. 주를 경외하는 자의 복

우리는 하나님이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심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128:4)

주의 도우심이 없이도 우리가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유지할 수 있을까? 나그네의 삶을 살아갈 때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어떠한 것도 계속되게 안전하지 못함을 기억해야 한다. 솔로몬은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에서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는 헛되다고 말한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127:1) 인간의 모든 노력도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 가운데서 헛된 노력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 지켜주셔야 우리의 삶의 모든 것들은 안전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를 의뢰해야 하는가? 우리는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여호와를 의뢰해야 한다. 여호와를 의뢰하는 자는 시온 산이 요동치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125:1) 우리가 주님을 의뢰할 때 요동치지 않고 주와 동행하며 안전하게 된다.

 

7. 예루살렘에 대한 축복

주를 경외하는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어디로 나가가야 할까?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128:5) 예루살렘의 번영을 본다는 것에서 보며의 의미는 눈앞의 실제 상황을 확인하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는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확실함을 의미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신다고 하셨는데, 시온은 어떠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까? 시온은 Zion(지명) (@/Yxi, Siwvn, Zion)요해하나님의 거룩한 산의 이름이고 시편, 이사야서, 예레미야서에 빈번히 인용되고 있다.

창세기, 사무엘상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으나, 구약에는 152, 신약에는 7, 외전에 16회 기록되고, 그 빈도가 높은 것은 이 이름이 지니는 종교적 의의의 중요성을 보이고 있다. 이 이름이 맨 처음에 나오는 것은 사무엘하 5:7(대상 11:5)인데, 다윗이 이 요해를 점령하고 다윗 성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동남 구릉, 기드론 골짜기와 듀로브온 골짜기 사이에 융기해 있는 구릉을 가리키는데, 처음에는 이 구릉을 시온이라 불렀다(왕상 8:1). 솔로몬이 다윗 성의 북쪽 높은 구릉에 성전을 세우고서부터 이 성전의 구릉을 시온 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시편 기자는 시온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고 있다(48:2, 50:2). 시온은 여호와께서 세웠고(14:32), 거룩한 산(2:6), 여호와의 거처(9:11)이다. 여호와께서는 시온에서 자신을 나타내시고(1:2) 거기서 구원을 보내며(14:7, 53:6), 거기서 축복하신다(128:5, 134:3).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시온은 주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주님이 거하시는 곳을 사모하여 주님을 기쁘게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기자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실 것을 말한다.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 지어다.”(134:3) 이사야가 받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에서 백성들이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주의 도로 자신들을 가르칠 것을 말한다.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 도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2:3) 주를 경외하는 우리는 주의 말씀을 사모하며 주님이 계신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바울은 복 주실 주를 찬송하라고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말한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1:3) 우리는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의 이름으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118:26) 주님 계신 곳으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서 복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8.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복 주심

우리는 어떠한 자로서 이 땅 가운데서 살아가야 할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어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축복과 돌보심을 받을 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는다면 주님은 우리의 생각과 모든 삶의 영역에서 영원토록 복 주실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서 주님을 잘 섬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생활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이 나라와 민족과 열방이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평강을 주시는 주

하나님은 평강의 주님이 되신다. 주를 경외하는 자들에게는 자손 대대로 평강이 임하게 된다.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 지로다.”(128:6) 욥은 하나님이 허락했던 고통가운데서도 주를 향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다. 결국 하나님을 경외했던 욥은 말년에 이전보다 더 큰 복을 받게 되었다.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42:16) 우리는 주님을 경외하고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주님 계신 곳을 사랑하여 평강의 복을 누려야 한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66:12) 평강을 주시는 주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 하늘의 복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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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7. 11:44

핍박 중에 담대함, 사도행전 4:13-22

핍박 중에 담대함, 사도행전 4:13-22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4:13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4: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4: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하고

4:18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4:21 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4: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1. 유머: 말 되는 유머. 어느 날 사자가 머리를 손질해야 되는데 빗이 없었다. 마침 그 때 토끼가 가고 있었다. 사자가 빗 좀 달라니까 토끼가 하는 말 (레빗) 어느 날 원숭이가 가고 있었는데 사자가 원숭이에게 너 키 몇이야 하니까 원숭이가 하는 말 (몽키) 어느 날 매와 독수리에게 여러 팬레터들이 왔다. 매가 독수리에게 좋은 글을 하나 고르라고 했다. 매가 독수리에게 무슨 글을 골랐냐고 물어 봤더니 독수리가 하는 말(~~)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짱구 집에 장난전화를 했다. 거기 중국집이죠? 짱구가 대답했다.(아니요 한국집인데요.) 곶감이랑 감이랑 달리기 시합을 했다. 근데 곶감이 너무 늦게 왔다. 감이 빨리 좀 오랬더니 곶감이 하는 말 (곧 감)

2. 본장은 '교회의 성장'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교회에 대한 핍박의 시작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앉은뱅이를 치유한 이후로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 사도들에 대한 박해와 반대가 유대교 지도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핍박이 교회의 외형적 성장과 내적 성장에 오히려 도움을 주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본장은 체포된 베드로와 요한(1-4), 베드로의 지혜로운 변증(5-12), 석방된 베드로와 요한(13-22), 감사와 찬양의 기도(23-31), 나눔 공동체(32-37)로 구성되어 있다.

 

3. 베드로와 요한을 핍박(13-18)

베드로와 요한을 이상히 여김

베드로는 성령이 충만하여 백성의 관리와 장로들에게 말한다. 만약 너희가 병자에게 착한 일을 행한 것에 대해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질문한다면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다. 이 예수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고,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름 이름은 없다고 말한다(4: 8-12).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히 말함을 보고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고 그들이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았다(13).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는(고전 1:27) 분이시다. 약한 이들을 사용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비난 하지 못함

장로와 서기관들은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하지 못했다(14). 앉은뱅이가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랐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은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 행각에 모였고 베드로는 이것을 보고 왜 기이히 여기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주목하느냐 말했다(3:8-12).

 

표적 나타난 것을 부인 못함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으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음을 부인하지 못하며 그들을 공회에서 나가라고 의논한다(15, 16).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공회를 모으고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나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저를 믿을 것이요 로마인들은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한다(11:47-48). 모든 백성은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해 심히 기이하게 여기며 놀랐다(3:9-10).

 

예수이름으로 가르치지 못하게 함

그들은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한다(17-18).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사도들을 채찍질 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여 놓았다(5:40).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을 기록되었고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24:46-48) 말씀하셨다. 우리는 성령이 충만하여 표적 또한 나타내고 핍박을 당할지라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증언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4. 담대한 베드로와 요한(19-21)

무엇이 옳은가 판단(하나님 말씀VS그들의 말)

담대함을 입은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고 말한다. 옥문이 열려 사역하는 이들을 잡아다 공회에 세우고 대제사장이 물을 때, 베드로와 사도들은 대답하여 가로되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5:29)고 말한다.

 

보고 들은 것을 말함

베드로와 요한은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20) 말한다. 다니엘은 기도를 금하라는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금사 했다(6:10). 예레미야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다(20:9) 말했다. 주와 동행하는 자 하나님의 일을 금하지 않고 말한다.

 

위협하여 놓아 줌

관리들은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는데 이유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21) 때문이었다. 성전 맡은 자는 관속들과 같이 가서 저희를 잡아 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가 두려워서(5:26)였다.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담대한 자들이 되어, 주 안에서의 모든 일을 말하며, 위협을 당하나 하나님의 보호함을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복 받은 자임을 믿습니다.

 

5. 주안에서의 확신과 표적(22)

흔들리지 않는 신앙

베드로와 요한은 교권주의자들이 위협하는 말을 들은 후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19)고 말했다. 이와 같은 사도들의 용기 있는 자세는 한마디로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신앙이 있는 자들에게는 '자기'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 속에 하나님으로 충만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두려움과 위협이 와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도 하나님 제일주의적인 신앙을 갖고 있어야 현대 문명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고 똑바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주 안에서 표적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이 사십여 세나 되었다(22). 주 안에서 병에서 고침 받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저희가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1:13-14). 이처럼 주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 위해 기도에 힘써야 한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가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1:8) 하신 말씀을 믿고 늘 성령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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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7. 11:29

왕이신 예수, 마가복음 11:1-10

왕이신 예수, 11:1-10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11: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11: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11: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11: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11: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11: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11: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11: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1: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 유머: 그림

어느 날 미술 선생님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그리라고 했다. 그림을 그리기 귀찮았던 구철이는 잔머리를 굴리다가 도화지를 까맣게 칠하고선 선생님께 김이예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미술 선생님이 도화지를 쫙쫙 찢으면서 하는 말, 떡국에 넣어 먹어라.

 

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신 후 아무도 타지 않은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를 부르며 환호하였다(1-10). 다음날 예수께서 시장하셔서 무화과나무의 열매를 먹으려고 하셨으나 열매가 없는 것을 보시고 다시는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셨다(11-14).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는 성전 정화 사건을 일으키셨다(15-18). 다음날 아침에 무화과나무가 말라 버린 것을 보고서 믿음의 교훈을 주셨다(19-25).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로 더불어 논쟁을 벌였다(27-33).

 

3. 주의 뜻대로 순종(1-6)

감람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러

예수님과 무리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란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신다(1). *벳바게:Beth-phage(지명), (aGEP' tyBE, Beth-phage) 익지 않은 종려의 곳베다니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동리인데,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여기서 나귀를 구하여 탔다(21:1, 11:1, 19:29). 감람 산 위에 있는 게흐르 에 두르(Kefr et-Tur)와 동일시된다.

*제자(第子):Disciple, pupil []dymil]T(talmid) []maqhthv"(mathetes) 좁은 의미로는 예수의 12제자에 한하고(10:1, 11:1, 8:27)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를 메시야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 즉 그리스도인을 가리키고 있다(6:1, 7, 9:19, 11:26 기타). 제자로서의 도는 일면으로는 엄하게, 예수에 대한 충성이 요구되고(8:31), 참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체를 버리고서 십자가를 지고 따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요구되었다(14:26). 그리고 제자로서 가장 뚜렷한 특색은 서로 사랑하는 일로서 섬기는 것이었다(13:35).

 

나귀새끼를 풀어 오라

그리고 예수님은 맞은 편 마을로 가면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2)고 말씀한다.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러면 즉시 이리 보내리라 말씀한다(3). 예수님의 말씀은 예기치 못한 일들도 일어나게 하며, 기적까지도 일어난다. 가나안의 혼인 잔치에서, 그 어머니도 하인들에게 이르되 예수께서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2:5) 말한다. 순종은 쉽지 않은 일이나, 하나님은 순종을 기뻐하신다. 제자들은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순종한다(21:6).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의 거리에 매여 있어서 그것을 풀게 된다(4).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겸손히 나귀를 타신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 할 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 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9:9)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을 하려느냐 하매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하니 허락한다(5-6). 겸손함으로 나귀를 타신 예수님, 순종하여 주의 역사에 동참한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다. 하나님 앞에서 그 분의 역사를 위해 순종으로 나아가는 피조물들은 복 받은 자임을 믿습니다.

 

4. 겸손하신 예수님(7-9)

나귀에 타신 예수님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님은 그 위에 타신다(17). 겸손함으로 나귀를 타신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 이사야는 평강의 왕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높인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9:6-7)

 

겉옷과 나뭇가지를 펴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게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8), 주님을 높인다. 가실 대에 저희가 자기의 겉옷을 길에 펴며(19:36) 주님을 기뻐한다.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며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9) 외친다. 감람산에서 내려가는 편까지 가까이 오시매 제자의 온 무리가 자기의 본바 모든 능한 일을 인하여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여 가로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하며(19:37-38) 주님을 높인다.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12:13) 겸손으로 나귀를 타고 오신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시며, 찬송을 받아 마땅하시므로 그 분을 높이며 호산나 찬양을 올려드리는 복된 삶을 살아야 한다.

 

5. 찬송을 받으실 주(10)

왕 되신 주님은 우리에게 찬양을 받아 마땅하신 분이시다.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10) 무리가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 하늘에는 평화요 가장 높은 곳에는 영광이로다 할 때 무리 중 어떤 바리새인들이 선생이여 당신의 제자들을 책망 하소서 하니 예수님은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19:38-40) 말씀하신다. 우리는 마땅히 왕 되신 주님을 높여야 한다.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데서 찬양할지어다.”(148:1)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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