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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삼손처럼 자기 사명을 감당하며 주의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고!
성경: 사사기 16:23-30
삿 16: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삿 16: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삿 16: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
삿 16: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삿 16: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삿 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삿 16: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삿 16: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1.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올림픽의 상징이기도 한 마라톤에서 두 번이나 우승의 영광을 안은 아베베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두 번째 우승한 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전신 마비가 되어 다리가 잘리는 고통을 맛보았다. 그러나 몇 년 후 노르웨이 세계 장애인 썰매 대회에서 우승컵을 받으러 나온 자는 다름 아닌 아베베였다. 불구의 몸으로도 좌절하지 않고 살아나가는 그의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초월하여 믿음으로 살아가고, 주님의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자기 사명을 감당한 삼손
삼손은 20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동했지만, 성경에서 삼손의 사사 활동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여기 본문에는 삼손이 어떻게 하여 사사로서 장렬한 최후를 마감하였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삼손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힘과 능력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일순간 한 블레셋 여인의 유혹에 빠져 결국 그 모든 힘과 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본문에는 삼손이 시험에 빠져 실패하는 모습과 함께 그가 마지막 순간 하나님께 회개함으로 다시 힘을 회복하고서 장렬하게 최후를 마친 장엄한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본장은 20년에 걸쳐 이스라엘의 사사로 활약한 삼손의 최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블레셋 여자와의 결혼 때문에 위험을 겪은 삼손은 그 뒤로도 정욕으로 인해 위기를 맞게 되었다(1-3절).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린 삼손은 들릴라라는 여인에게 빠져서 결국 머리가 깎이고 블레셋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4-17절). 이에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눈을 빼고 맷돌을 돌리게 하는 등 핍박을 하였다(18-22절). 마침내 죄를 깨달은 삼손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마지막으로 힘을 얻어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자신도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23-31절).

3. 삼손을 불러 재주를 부리게 한 블레셋 사람들을 알고(23-25)
하나님의 사람들은 삼손을 불러 어떻게 한 블레셋 사람들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삼손을 불러 재주를 부리게 한 블레셋 사람들을 알고, 시험을 잘 이기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삿 16:23-25) 삼손은 자기 힘의 비밀이 탄로가 나서, 머리털이 밀리고 두 눈이 뽑히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다. 그리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하게 된다. 다윗도 원수들에게 조롱을 당했는데, 시편은 원수 된 자 앞에서 보호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다윗을 이렇게 기록한다. “오직 내가 환난을 당하매 저희가 기뻐하여 서로 모임이여 비류가 나의 알지 못하는 중에 모여 나를 치며 찢기를 마지아니하도다. 저희는 연회에서 망령되이 조롱하는 자 같이 나를 향하여 그 이를 갈도다.”(시 35:15-16) 삼손은 나귀 턱뼈로 천명을 죽이는 기적을 경험한 자였지만,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가로되 나귀의 턱뼈로 한 더미, 두 더미를 쌓았음이여 나귀의 턱뼈로 내가 일 천명을 죽였도다.”(삿 15:16) 우리는 악의 편에 서서 믿음의 사람들을 비방하지도 말고,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간구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미 4:5)
뿐만 아니라, 원수가 넘어질 때 즐거워하지 않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 아니하사 그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잠 24:17-18) 우리는 여호와의 빛이 임하면 상황이 바뀌게 되며, 결국은 대적이 부끄러움을 겪게 됨을 깨닫고 담대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나의 대적이여 나로 인하여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하려니와 주께서 나를 인도하사 광명에 이르게 하시리니 내가 그의 의를 보리로다. 나의 대적이 이것을 보고 부끄러워하리니 그는 전에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가 어디 있느냐 하던 자라 그가 거리의 진흙같이 밟히리니 그것을 내가 목도하리로다.”(미 7:8-10)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시험을 잘 이기며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히 11:36) 선과 악을 분별하지 않고 대충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삼손을 불러 재주를 부리게 한 블레셋 사람들을 알고 시험을 잘 이기며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여호와께 부르짖은 삼손을 알고(26-28)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께 부르짖은 삼손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여호와께 부르짖은 삼손을 알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삿 16:26-28) 블레셋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은 삼손은 눈이 뽑혀 앞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건물을 버티고 있는 기둥까지 갈 수 있도록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그리고 삼 천명이 보는 앞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한다. 그는 자신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갚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것이다.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모압이 유다를 치고자 할 때 여호사밧 왕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음을 기록한다. 그는 오직 주만 바라보며 부르짖었다. “우리 하나님이여 저희를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대하 20:12) 또한, 다윗도 자신의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멸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는 원수의 핍박으로부터 보호를 간구하는 기도를 한 것이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나의 원수들을 끊으시고 내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소서 나는 주의 종이니이다.”(시 143:12) 요나도 물고기 뱃속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니느웨로 가라는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갔다가 물에 던져진 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가 그를 삼켰었다. 그러나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회개한 후 이어서 자기 사명을 감당했다. 이처럼 우리 또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건짐을 받은 후 주의 역사에 크게 쓰임 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내가 받는 고난을 인하여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삽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1-2)
뿐만 아니라, 환난 날에 부르짖어 건짐을 받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 50:15) 간구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잘 깨달으며, 기도하여 응답받고 기쁘게 믿음의 길을 걷는 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 91:15)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고 그 은혜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주의 긍휼을 구한다. 이는 주께서 영원토록 버리지 않으실 것임이며 저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부한 자비대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애 3:31-32)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삽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욘 2:7) 위기의 상황에서 자포자기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부르짖은 삼손을 알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삼손이 두 기둥에 힘을 주자 많은 방백이 죽었음을 알고(29-30)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가 두 기둥에 힘을 주자 많은 방백이 죽었음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삼손이 두 기둥에 힘을 주자 많은 방백이 죽었음을 알고,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삿 16:29-30) 삼손은 양손으로 두 기둥을 하나씩 잡고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구했다. 그러면서 힘을 다해 몸을 굽혔다. 그러자 그 건물이 무너졌고, 삼손은 모든 방백과 함께 죽고 말았다. 사사로서 마지막 사명을 다하며 그는 이렇게 자신의 인생을 끝낸 것이다. 우리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앞에 사탄이 패배했음을 알고, 주님과 동행하며 힘있게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할 것이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 3:15)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음을 잘 깨닫고, 믿음으로 영적 전투에 승리하며 주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기를 바란다. 여호와의 신에 감동된 삼손, 그는 이전에도 초월적 힘으로 많은 이들을 죽이기도 했다. “여호와의 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 삼손이 아스글론에 내려가서 그곳 사람 삼십 명을 쳐 죽이고 노략하여 수수께끼 푼 자들에게 옷을 주고 심히 노하여 아비 집으로 올라갔고.”(삿 14:19) 결국 삼손은 자신의 사명을 다하며 안타깝게 죽었는데, 우리는 이렇게 인생의 끝을 자신이 예상할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 동안 힘을 다해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할 것이다. “대저 사람은 자기의 시기를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가 재앙의 그물에 걸리고 새가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도 재앙의 날이 홀연히 임하면 거기 걸리느니라.”(전 9:12)
뿐만 아니라, 주님의 오심을 예비하고 영적으로 깨어있어 기도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8-39) 우리는 현재 자신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자신의 영적 상태를 점검하고, 늘 깨어 기도하며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사도바울이 자기 생명을 다해 주의 복음을 증거 했음을 기억하며, 주어진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우리는 자신이 이렇게 주의 생명을 가지고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복된 자임을 깨닫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이러한 복된 인생을 살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을 의지하고 그분께 붙잡혀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주님 앞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 15:10)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자기 사명을 따라 즐거운 마음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나’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골 2:15) 원수에게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자기 사명을 따라 살기를 주저하는 것이 아니라, 삼손이 두 기둥에 힘을 주자 많은 방백이 죽었음을 알고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사명감을 확실히 하며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사명감을 확실히 하며 주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행 21:13)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며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살기를 힘쓰는 자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 1:20-21) 삼손을 불러 재주를 부리게 한 블레셋 사람들을 알고, 시험을 잘 이기며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여호와께 부르짖은 삼손을 알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 삼손이 두 기둥에 힘을 주자 많은 방백이 죽었음을 알고, 죽음을 이기시고 승리하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달려가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 삼손처럼 자기 사명을 감당하며 주의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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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평온함이 넘치는 삶을 살고!

성경: 전도서 4:4-6

4:4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4:5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

4:6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

 

1. 긍정의 사고를 넘어

호나라 국경의 어느 요새 근처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다. 하루는 그의 말이 호나라 쪽으로 도망쳐 버리자 주위 사람들이 찾아와 그를 위로했다. 그러자 노인은 태연스럽게 고맙소. 그러나 이것이 어떤 복이 될는지 누가 알겠소?’라고 말했다. 그 후 도망쳤던 말이 훌륭한 호나라 말을 데리고 돌아오자 이번에는 그를 축하하러 왔다.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뭘요. 이것이 어떤 불행이 될지 누가 압니까?’ 이 일이 생긴 후 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떨어져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그래도 노인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뒤 호군이 공격해 오자 모든 장정은 전쟁에 나가 전사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이를 면할 수 있었다. 모든 상황의 해석은 그 일이 생긴 순간에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늘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 가운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주를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고 세상에서 말하는 긍정의 사고를 넘어, 주의 자녀들을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인생의 허무함

본장은 솔로몬의 개인적인 체험의 소산이 아니라 객관적인 관찰에서 나온 진술이다. 저자는 앞에서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허무함을 교훈했다. 그리고 본장에서는 불의함으로 가득 찬 사회의 모습을 말한다. 이는 인생의 허무함이 개인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사회와 구조, 모든 것에 나타남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세상에는 권세 있는 자가 설치고 힘이 없는 자는 억울함을 당해도 하소연할 수도 없다. 또한, 열심히 노력하는 자보다 남을 속이는 자가 더 큰 이익을 얻으니 참된 만족과 평안은 어디에도 없다(1-6). 또한, 아무리 많은 부를 가졌어도 후손이 없으므로 희망이 없는 사람이 있고, 참된 우정을 나눌 친구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없고 반드시 성공하는 사람과 실패하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다. 더구나 날 때부터 권력과 부귀를 보장받은 자가 있는 반면에 어떤 사람은 피지배자로 태어나며, 권력을 잡은 자라도 영원하지 않고 뒤에 오는 권력자에 의해 배척받게 마련이다(7-16). 이로써 저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허무하며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 있다.

 

3. 모든 수고와 재주로 인해 이웃에게 시기를 받기도 함을 알고(4)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든 수고와 재주로 인해 이웃에게 무엇을 받기도 함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모든 수고와 재주로 인해 이웃에게 시기를 받기도 함을 깨닫고, 시기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의로운 태도로 사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또 본즉 사람이 모든 수고와 모든 재주로 말미암아 이웃에게 시기를 받으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4:4) 솔로몬은 사람이 수고와 재주로 인해 이웃의 시기를 받음을 보고, 이것도 헛되고 바람을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삼차원의 세계에서 인간이 쌓으려고 하는 많은 것들은 영원하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들은 아마 잡히지 않는 바람을 잡으려 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창세기는 형들의 시기를 받은 요셉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그 형들이 아비가 형제들보다 그를 사랑함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언사가 불평하였더라.”(37:4) 이렇게 인간은 시기가 많은 연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시기의 상황도 줄곧 많이 생기기도 한다. 성경은 다윗을 시기한 사울의 이야기를 이렇게 기록한다. “사울이 이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가로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의 더 얻을 것이 나라 밖에 무엇이냐 하고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삼상 18:8-9) 아마도 다윗을 시기하는 마음으로 사는 사울의 인생에 평안함은 없었을 것이다. 다윗을 대적하며 산 사울 왕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울이 다윗을 더욱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나오면 그들의 나올 때마다 다윗이 사울의 모든 신하보다 더 지혜롭게 행하매 이에 그 이름이 심히 귀중히 되니라.”(삼상 18:29-30) 우리는 다윗을 평생 대적하며 살아간 사울 왕처럼 시기로 인해 상대를 적으로 대하며 사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주께 칭찬받을 만한 믿음의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기도 함을 깨닫기를 바란다. 솔로몬은 이렇게 기록한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써서 수고하였어도 그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업으로 끼치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라 큰 해로다.”(2:21) 그렇다. 인간이 행한 어떠한 수고의 결과를 자신이 취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어, 영과 육에 있어서 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악인의 삶이 아닌 주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저로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주게 하시나니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2:26) 우리는 세상에 헛된 일이 많음을 알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지 말고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헛된 것을 더하게 하는 많은 일이 있나니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하랴.”(6:11)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시기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의로운 태도로 사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세상에서 평안함이 없이 살기보다는, 인간이 모든 수고와 재주로 인해 이웃에게 시기를 받기도 함을 깨닫고 시기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의로운 태도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우매한 자로 살지 않아야 함을 알고(5)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태도로 살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우매한 자로 살지 말고,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소망하여 주님이 주시는 좋은 것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 내는도다.”(4:5)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렇다고 팔짱을 끼고 놀다가 말라 죽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4:5) 그렇다. 늘 팔짱만 끼고 노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도 옳은 일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과 교회와 가정에서 영적으로도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게으름을 내어쫓으며 활기차게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게으르게 살아가는 우매한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게으른 자가 아닌 부지런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12:27) 또한, 부지런한 자가 되어 마음의 풍족함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13:4) 우리는 육신의 욕망을 이기고 영의 생각을 따라 살아가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삶을 변화시키기를 힘쓰며 사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사는 것이 좋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많은 악인의 풍부함보다 승하도다.”(37:16)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다고 하여도, 주의 말씀 밖으로 벗어나는 악인의 삶을 살지 않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복됨을 고백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5:16-17)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물질의 풍족함만을 좇기보다 살아계신 주님 좇기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소망하여 주님이 주시는 땅을 차지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37:9)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너무 빨리 혹은 너무 느리게 살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우매한 자로 살지 않고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소망하여 주님이 베푸시는 좋은 것을 얻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한 손에만 가득하더라도 평온함이 있는 것이 좋음을 알고(6)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 손에만 가득하더라도 무엇이 있는 것이 좋음을 아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한 손에만 가득하더라도 평온함이 있는 것이 좋음을 알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4:6) 솔로몬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풍성하지 못하더라도 평온함이 더 좋음을 말한다. 그렇다. 적은 소득이지만 주님께 합당하게 사는 것이 더 아름다운 삶임을 우리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16:8)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도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이 주시는 평온함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17:1)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따라 좁은 길 걷는 것을 기뻐하고, 그 길을 걸으며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영적인 만족과 마음의 평안함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 안에서 서로 함께하는 자가 되어 풍성함을 누림이 좋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솔로몬의 전도서는 이렇게 기록한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4:9-12) 그렇다.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한 형제와 자매로서 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힘들 때는 위로하고 기쁠 때는 함께 웃으며 그분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누려야 할 것이다. 성경은 사울을 피해 십 광야 수풀에 숨은 다윗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은 아름다웠는데, 요나단은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려 했던 아버지 사울과 마음을 함께 하지 않고 다윗의 편에 서며 그가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로 하나님을 힘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 23:16) 우리는 이러한 관계로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알고 기뻐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윗을 비롯하여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입은 많은 인물처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갈 수 있음을 믿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이들은 이러한 복된 인생을 살지 못할 수도 있다. 아직도 자신을 믿고 살아가며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십자가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주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영육 간의 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한다. 모든 인간이 전적 부패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면 죄 사함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음을 깨닫기를 바란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하고, 주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서 주께서 주시는 풍성함과 평온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4:3) 물질적 풍요로움이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기보다는, 한 손에만 가득하더라도 평온함이 있는 것이 좋음을 알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로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고!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소유한 자로서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14:17-19)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환경을 초월하는 삶을 살고,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늘 하나님의 편에 선 자들로서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기를 힘쓸 수 있기를 기도한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34:14) 인간이 모든 수고와 재주로 인해 이웃에게 시기를 받기도 함을 깨닫고, 시기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의로운 태도로 사는 자! 하나님 앞에서 우매한 자로 살지 말고,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을 소망하여 주님이 베푸시는 좋은 것을 얻는 자! 한 손에만 가득하더라도 평온함이 있는 것이 좋음을 알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평온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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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0. 8. 20:11

하나님을 섬기는 삶, 전도서 2:21-26

말씀: 하나님을 섬기는 삶

성경: 전도서 2:21-26

2:21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

2:22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

2:23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2:24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

2:25 ,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

2:26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

 

1. 시간

영국의 정치가이자 나폴레옹을 격파하기도 한 장군 웰링톤이 한번은 어느 고관과 런던 다리 근처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그는 정시에 약속 장소로 나갔다. 그러나 고관은 5분이나 지나서 도착했다. 그가 조금 불쾌하게 생각하자 고관은 각하, 겨우 5분밖에 늦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겨우 5분이라고? 그 시간 때문에 우리 군대가 패전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라고 타일렀다. 그 후 또 그와의 약속을 하게 되었다. 그때 고관은 일찍 나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당신은 시간의 가치를 모르고 있군요. 아까운 5분의 시간을 낭비하고 있으니.’라고 꾸짖었다. 우리는 시간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하나님 앞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주 안에서 의미 있게 사용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을 축복합니다.

 

2. 소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싶어 하는가?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는 원하는 것들을 가질 수도 있고 못 가질 수도 있다. 우리는 소유의 크고 작음이 인생의 행복이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가이다. 본장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헛된 추구로 인한 절망과 무의미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전장에서 인생과 만물의 헛됨을 고백한 저자는 본장에서 허무함의 구체적인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교훈들은 솔로몬의 삶이 체험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가진다. 우리는 어떠한 즐거움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즐거움을 얻기 위해 많은 것들을 추구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술을 통해 쾌락을 구하고, 어떤 이들은 정욕을 통해 쾌락을 추구한다. 이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해 부를 쌓고 큰 집과 많은 노비들, 보석들을 사들이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즐기면서 살아간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헛되며 결국엔 허무함만 가져다 줄 뿐이다(1-11). 또한 남들보다 뛰어난 지혜를 지닌 자라도 인생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으며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은 존재이다(12-17). 그러므로 일평생 애쓰고 노력한 모든 것이 헛될 뿐이다(18-23). 결국 사람의 참된 행복은 심령에서 나며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니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자만이 소망을 가질 것이다(24-26).

 

3. 수고와 노력(21-23)

무엇을 얻고자 하는 수고와 그 노력은 모두 잘못된 것일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싫어하시며 성실한 자에게 복을 주신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열심히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인생의 수고가 헛되며 악한 것은 그 수고가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데에서 선과 악으로 갈리게 된다. 만약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그 수고는 헛되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사는 자들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곳에서 수고의 땀을 흘리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인간의 수고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겪는 수고는 얼마나 많은가? 전도자는 어떤 이는 자신이 수고하여 얻은 것들을 다른 이에게 넘겨주게 됨을 말한다. “어떤 사람은 그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다하여 수고하였어도 그가 얻은 것을 수고하지 아니한 자에게 그의 몫으로 넘겨주리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큰 악이로다.”(2:21) 자기가 수고한데로 소득을 얻고 영원토록 그 소유한 것에 대한 보장이 된다면 좋을 것이나 꼭 그렇지만은 않기도 하다.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지혜와 지식을 짜내고 재간을 부려 수고해서 얻은 것을 아무 수고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 남겨 주어야 하다니, 이 또한 헛된 일이며 처음부터 잘못된 일이다.”(2:21) 하나님께서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므로 우리의 소유에 대한 보증은 주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기억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한 평생을 살아가며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않는 자로 살아갈 수 있다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한 왕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여호야김이다. 그는 이십 오세의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십 일 년간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며 나라를 다스렸으니 이는 안타까운 일이다. “여호야김이 위에 나아갈 때에 나이 이십 오세라 예루살렘에서 십 일 년을 치리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대하 36:5) 한 나라의 왕이지만 하나님 앞에 옳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갔던 여호야김의 삶을 볼 때에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들에게 지혜가 필요함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살아가야 한다. 인간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존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죄인 하나가 많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음을 깨닫고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지혜가 병기보다 나으니라 그러나 한 죄인이 많은 선을 패괴케 하느니라.”(9:18) 지혜는 전쟁무기 보다 낫다.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지혜가 전쟁무기보다 더 낫지만, 죄인 하나가 많은 선한 것을 망칠 수 있다.”(9:18)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겪는 우리의 수고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며 주님의 편에 서서 승리하는 복된 우리가 되어야 한다.

 

해 아래에서 행하는 수고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해 아래에서 살아가며 많은 수고를 한다. 하지만 피조물로서 해 아래에서 행했던 모든 수고가 헛되다면 어떻게 될까?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이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이 무슨 소득이 있으랴.”(2:22) 수고한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양식을 얻기 위해 노동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수고가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방향의 것들이 되어 주님이 주시는 기쁨 가운데 넉넉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어떠한 것들보다 주님만을 최고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돈이 많으면 모든 것들을 다 행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참 만족이 없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이 없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이 없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재산이 더하면 먹는 자도 더하나니 그 소유주가 눈으로 보는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5:10-11) 돈이 많은 자는 관리해야 할 사람도 많으니 결국 그가 가진 많은 돈은 눈으로 보기에만 좋은 것일 뿐이다. 우리의 삶에서 돈 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바로 평온함이다.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나으니라.”(4:6) 우리는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여 바람을 잡으려는 삶을 살지 말고 한 손에만 가득하나 평온함이 넘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일평생에 근심

는 지금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있는가? 우리는 지금 무엇을 근심하고 있는가? 날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걱정만 한다면 이는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의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2:23) 부자의 삶이 좋기만 할까? 그의 삶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걱정하느라 고민이 많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노동자는 먹는 것이 많든지 적든지 잠을 달게 자거니와 부자는 배부름으로 자지 못하느니라.”(5:12) 우리는 근심이 많을 수도 있는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 가운데 단잠을 잘 수 있음을 감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고 해 아래에서 무의미한 수고하는 삶이 아닌 주 안에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4. 영혼의 주인(24-26)

우리의 영혼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이 땅 가운데서 누구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전도자는 먹고 마시는 육체의 쾌락을 온전히 헛되다고 비판하지는 않는다. 전도자는 육체의 기쁨에 더하여 영혼의 만족을 위해서 사는 인생이라면 참된 보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영혼의 만족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육체의 만족을 얻는 일은 결코 상반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 영혼의 주인이 되심과 동시에 육체의 주인이 되시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육체와 영혼 중 어느 한쪽을 경시해서는 안 될 것이다. 쾌락을 추구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되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여 그 분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며, 마음속에 참 자유를 누리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옴

우리가 밟고 있는 땅은 누가 만드신 것인가? 하나님이 만드신 곳에서 나오는 모든 것들은 그 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들임을 기억해야 한다.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수고하는 것보다 그의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은 없나니 내가 이것도 본즉 하나님의 손에서 나오는 것이로다.”(2:24)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 앞에 예배자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돈이 아닌 하나님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어느 날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이야기를 통해 교훈하신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12:19-20) 우리의 목숨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주님께서 나의 영혼을 취하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놓고 이 땅을 떠나야 한다. 자신의 영혼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천국 백성으로서 주님만 잘 붙잡고 살아가고 있는지 우리는 점검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만드신 땅에서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하루라도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솔로몬의 부귀

솔로몬은 이 땅에서 큰 부귀를 누린 자이다.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복을 크게 받은 왕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 먹고 즐기는 일을 누가 나보다 더 해 보았으랴.”(2:25) 솔로몬이 누린 부는 이렇다. “솔로몬이 하수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그 나라들이 공을 바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섬겼더라. 솔로몬의 일일 분 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 석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 석이요. 살찐 소가 열이요 초장의 소가 스물이요 양이 일백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찐 새들이었더라. 솔로몬이 하수 이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하수 이편의 모든 왕이 다 관할한바 되매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왕상 4:21-24) 여러 나라의 공을 받았던 솔로몬 왕, 하나님은 그에게 복을 허락하신 분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다른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편에 서서 승리할 것을 선포해야 한다.

 

바람을 잡는 것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소유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많은 부를 누리게 될 수도 있다. 세상의 좋은 것을 잡기 위해 살아가는 자의 삶은 마치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전도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은 그가 기뻐하시는 자에게는 지혜와 지식과 희락을 주시나 죄인에게는 노고를 주시고 그가 모아 쌓게 하사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에게 그가 주게 하시지만 이것도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로다.”(2:26)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들이 되면 세상 사람들을 통해서라도 좋은 것들로 공급받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들보다 하나님을 선택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우리 가운데 주 안에서 선한 열매가 가득 넘쳐날 수 있다면 감사한 일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가 우리에게 있으면 주 안에서 어떻게 부요해 질 수 있을까?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3:17) 주님을 좇아가는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러한 좋은 것들이 넘쳐나기를 위해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세상을 좇아가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알기 위해 말씀을 가까이 하고 의인으로서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나에게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올지라도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을 아시며 행한 대로 보응해 주실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해야 한다. 너희는 의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하라. 그들은 그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임이요. 악인에게는 화가 있으리니 화가 있을 것은 그 손으로 행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임이니라.”(3:10-11) 지금까지 잘못 살아 온 것들이 있다면 우리의 영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한다. 그리하여 바람을 잡으려고 나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예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넉넉히 주님 주신 기쁨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세상이 점점 타락의 길로 향하는 것은 쾌락의 탐닉성 때문일 수 있다. 한번 쾌락에 빠진 사람은 좀 더 자극적인 쾌락을 맛보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게 된다. 부를 얻은 사람은 다시 권력을 얻기 위해 달려갈 것이다. 그것을 얻은 사람은 또다시 육체의 쾌락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좇아갈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어디서도 결코 완전한 쾌락을 얻을 수는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세상이 주는 쾌락은 인생의 참된 의미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국은 파멸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할까? 그리스도인들은 오직 참된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항상 즐겁고 기쁜 삶을 누리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의 뛰어난 지혜로도 만족을 얻지 못한 전도자는 쾌락과 물질에서 만족을 얻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하나님 없는 절제와 하나님 없는 물질은 헛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러한 사실을 깨달은 전도자를 통해 우리는 어떠한 다짐을 해야 할까?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자족하며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나라를 날마다 경험 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4:17-18) 우리가 구할 때 주님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실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16:24) 하나님의 도움을 입기 위해 날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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