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질투하는 사울, 사랑받는 다윗

성경: 사무엘상 18:10-16

18: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8: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18:12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

18:13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18: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

18:15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

18:16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

 

1. 변화

한 젊은이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내게 세상을 개혁할 힘을 주소서.” 그러나 한 영혼도 변화시키지 못한 채 중년에 이르렀다. 그는 다시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나와 내 친지들만이라도 변화시키면 족하겠나이다.” 시간이 지나 그는 노인이 되었다. 노인이 되고 나서야 그는 자신의 기도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노인은 이제 이렇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주여, 나 자신을 고칠 능력을 주소서.!”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면서 외형적인 것에만 집중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흡족하지 못한 결과로 인하여 믿음이 연약해지거나 좌절, 실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지키는 동안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만지심 가운데 주님을 닮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고 있다면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다윗의 명성

골리앗을 죽인 다윗의 명성은 온 이스라엘에 두루 퍼졌다. 그 후 다윗은 이제 이스라엘에서 사울보다 더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자가 되었다. 본문은 이런 다윗의 인기를 싫어하는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여러 가지 계교를 꾸미는 장면들이 나온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꾼들에게는 여러 모양으로 적대 세력들의 방해가 끊이지 않는 법이다. 전장에서 골리앗을 죽인 다윗은 서서히 이스라엘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똑같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심판과 축복이라는 상반된 결과를 맞이한 사울과 다윗의 관계는 여러 가지 갈등을 낳게 되었다. 사울을 다시 만난 다윗은 그의 아들 요나단과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1-5). 그러나 사람들이 다윗을 더 칭찬하게 되자 사울은 다윗을 미워하여 창으로 죽이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6-16). 그러자 이번에는 사위를 삼는다는 미끼로 다윗을 블레셋과의 전장에 내보내어 죽게 만들고자 하였다(17-21).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다윗은 오히려 승리를 거두고 사울의 사위가 되며 더욱 이름이 높아졌다(22-30).

 

3. 악령이 내린 사울(10-11)

마귀는 인간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타락한 천사인 마귀는 피조물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사탄을 통해 고통을 주어 죄를 깨닫게 하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사탄이 틈타게 되면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며 많은 불편함을 겪게 된다. 악령이 내린 사울은 어떠한 행동을 했는가? 그는 정신없이 떠들고, 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고자 했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삼상 18:10-11) 현대인의 성경은 11절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한다. “내가 저놈을 벽에 박아 버려야지 하고 혼잣말로 중얼거리다가 갑자기 창을 다윗에게 던졌다. 그러나 다윗은 그 창을 두 번이나 피해 도망하였다.”(삼상 18:11) 다윗은 악령이 들린 사울로 인해 죽을 뻔했고, 이 외에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역경을 겪어야만 했다. 사울에게 임한 악령은 영어로는 Evil spirit, Demon이다. 이스라엘 역사의 이른 시기에는 악령이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보내어 불행을 가져오게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9:23, 삼상 16:14-23, 18:10, 19:9). 이스라엘은 마귀에게 제사하고(32:17) 자녀를 악귀에게 제사로 드리기까지 하였으므로(106:37), 그 미신적인 행동은 책망받아야만 했다. 신약성경에는 인간에게 육체적, 정신적 질환을 가져오게 하는 것으로서 귀신이 묘사되고 있다(7:22, 1:34, 4:33, 7:20). 악령은 인간의 삶을 어렵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귀신의 영향을 받고 있는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여 영적인 자유함을 얻는 복을 누려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악령을 허락하신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사울이 다윗을 시기, 질투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블레셋에게 고통받고 있었던 이스라엘 군대는 골리앗과 전투를 해야만 했다. 그런데 거인 골리앗을 당해 낼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다윗이다. 다윗은 칼과 방패가 아닌 물매와 돌을 들고 골리앗에게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 이름만 의지하고 나아가 골리앗을 물리치는 기적을 맛보았다. “다윗이 이같이 물매와 돌로 블레셋 사람을 이기고 그를 쳐 죽였으나 자기 손에는 칼이 없었더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집에서 빼어 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그 머리를 베니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용사의 죽음을 보고 도망하는지라.”(삼상 17:50-51) 거인 골리앗을 이긴 다윗의 모습을 보고 블레셋 군인들은 도망하고 말았다. 이러한 다윗의 승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쁨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오는 무리를 축하하며 여인들이 노래를 불렀는데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여인들이 뛰놀며 창화하여 가로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삼상 18:6-7) 사울도 자기 군대의 승리 소식에 기뻐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의 노래에 그는 불쾌하여 심히 노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이튿날 하나님은 사울에게 악령을 허락하셨고, 사울은 그 악령으로 인해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우리는 쉽게 분을 내거나 질투하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27:4)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화가 나면 사나워지고 분이 터지면 막을 수 없겠지만 사람이 질투를 부리면 누가 당해 내랴.”(27:4) 화와 분을 내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나, 더욱이 질투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기를 힘쓰고, 하나님의 지혜로 잘 대처하여 마귀에게 틈탈 기회를 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 가운데 거하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이 떠난 사울 VS 하나님이 함께한 다윗(12-14)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까? 부족한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다면 우리는 어두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수도 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사울을 떠났고 다윗에게 함께하여 그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여호와께서 사울을 떠나 다윗과 함께 계시므로 사울이 그를 두려워한지라.”(삼상 18:12)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은 자신을 떠난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알고 그를 두려워한다. 여호와의 신이 떠나면 그가 누구든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 것인데, 왕이었던 사울이 그 어려움 가운데 놓이게 된 것이다.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은 사울을 번뇌케 했다.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삼상 16:14)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일은 정말로 두려운 일이다. 훗날 왕이 된 다윗은 하나님의 영이 떠나는 일이 무서운 일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주의 성신을 자신에게서 거두지 말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회개한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51:11) 주와 동행함이 복이다. 우리는 성령님을 마음 가운데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주와 동행하는 은혜가 있기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다윗을 부담스러워한 사울은 그를 자신의 곁에서 떠나게 한다. “그러므로 사울이 그를 자기 곁에서 떠나게 하고 그를 천부장으로 삼으매 그가 백성 앞에 출입하며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니라.”(삼상 18:13-14) 사울은 다윗을 천부장으로 삼는다. 천부장은 영어로 Rulers of thousands, Tribune of the cohort, [] #l,a, rc(sar eleph) [] ciliarco"(chiliarchos)이다. 이는 재판관 또는 군대의 지휘관이다. 구약에서는 히브리어 사르 엘레프의 역어로서 천명의 장을 의미하고, 재판관에 대해 씌어져 있다(18:21, 25). 모세는 광야의 여정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 또는 군사적 필요뿐만 아니라, 민사적인 문제에도 필연적으로 책임을 가지게 되었고, 모세의 중재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이런 문제에까지 노심초사해야만 했다.

그래서 경험이 많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몇 가지 조언을 한다. 중보의 기도는 모세가 책임졌고, 백성의 종교교육과 도덕교육의 근본도 모세가 책임을 졌다. 그리고 또 하나는 사법과 쟁정의 문제인데 그 대부분을 다른 유용한 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내용은 이렇다. ‘온 백성 가운데서 재덕이 겸비한 자 곧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진실 무망하여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자를 빼서 백성 위에 세워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그들로 때를 따라 백성을 재판하게 하라는 것이다. 물론 모든 일을 다 맡겨 버리라는 것은 아니고 큰일은 모세가 직접 담당한다. 이것을 위한 천부장을 비롯한 자격은 유능한 인격자, 경외하는 경건한 인물, 성실한 인물, 청렴한 인물이었다. 신약시대에는 군대의 계급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일대를 지휘하는 장교를 가리켰다. 일대는 원래는 천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로마제정시대에는 약 600인으로 감소 되었다.

다윗을 부담스럽게 여긴 사울은 그를 천부장이라는 야전 지휘관으로 전보를 시켰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한 다윗은 결코 망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인생은 망하지 않고 흥하게 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함께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여호수아와 함께하실 때 그의 명성은 온 땅에 퍼지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함께하시니 여호수아의 명성이 그 온 땅에 퍼지니라.”(6:27) 여호수아뿐만 아니라 요셉도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형통한 삶을 살았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39:2-3) 하나님과 함께함이 복이다. 우리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주와 동행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자기 자신을 믿고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애타게 찾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십자가 앞에 나아와야 한다.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던지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로 죄 용서함 받아 왕 되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이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주와 동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끝까지 책임져 주실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21:8)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기를 바란다.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떠난 사울처럼 살아가는 인생이 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다윗처럼 살아가는 삶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백성들에게 사랑받는 다윗(15-16)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떠한 복을 받게 되는가? 하나님이 함께하는 자라면 누구나 타인에게도 사랑을 받게 되어 있다. 본문에서 사울은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지혜롭게 행하는 다윗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사울은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삼상 18:15) 사울은 원래 다윗을 지지했었다. “다윗이 사울의 보내는 곳마다 가서 지혜롭게 행하매 사울이 그로 군대의 장을 삼았더니 온 백성이 합당히 여겼고 사울의 신하들도 합당히 여겼더라.”(삼상 18:5) 악령에 붙잡힌 사울은 다윗을 미워했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했다.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다윗을 사랑하였으니 그가 자기들 앞에 출입하기 때문이었더라.”(삼상 18:16)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스라엘과 유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다윗이 자기들을 잘 인도하므로 그를 사랑하였다.”(삼상 18:16)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하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께 사랑받고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악인들은 눈을 뜨기만 하면 다른 사람들을 해하려고 한다. 악인들은 자신의 삶에 위협을 가하는 이들을 가만두지 못한다. 악인들은 하나님을 잘 신뢰하지 못한 나머지 자신이 하나님보다 앞서서 행하려 한다. 우리는 이러한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기 때문에 그분께 기도하며 그분께 자신의 사정을 잘 아뢰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다니엘을 기록한다. 사람들은 다니엘의 허물을 들추어내기 위해 열심을 냈다. 그러나 그에게서 아무 허물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는 충성된 자였고, 허물이 없는 자였다.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 사람들이 가로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하고.”(6:4-5) 우리는 남의 허물을 찾기 위해 열심을 내지 말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정결한 자가 되기를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공의로우신 주님의 얼굴을 기쁘게 뵈올수 있도록, 늘 회개하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3:17) 험난한 인생길을 걸어가는 동안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가 있기를 원한다. 좁은 길을 걸어가는 동안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가 자신의 삶에 있기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연약하고 허물이 많은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더욱더 성령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함께하셔서, 주님께 칭찬받고 사람들에게도 사랑받는 존귀한 삶을 살아가는 복된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삶

사울은 다윗을 지방의 한직으로 내몰아 명성이 높아지는 것을 막고자 했다. 그러나 오히려 백성들과 교류하게 된 다윗은 더욱 명망을 얻게 되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셨고 다윗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의 명성이 결코 억지로 되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비록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인정하시고 축복하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에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최고로 의지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솔로몬의 잠언은 이렇게 기록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3:5-7) 하나님을 의지할 때, 그분께서 우리의 삶을 잘 지도해 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을 더욱 경외하며, 시기 질투하여 어두움에 속하지 않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는 복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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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7. 24. 10:01

경건&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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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7. 3. 2. 05:37

사명감당.

사명감당.

(바른성경) 요나 1:3 그러나 요나는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고 일어나 욥바로 내려갔더니,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났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뱃삯을 내고 그 배에 올랐다.

요나처럼 도망하지 말고 사명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요나 1:3 But Jonah rose up to flee unto Tarshish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and went down to Joppa; and he found a ship going to Tarshish: so he paid the fare thereof, and went down into it, to go with them unto Tarshish from the presence of the LORD.

(헬라어구약Septuagint) 요나 1:3 και ανεστη ιωνας του φυγειν εις θαρσις εκ προσωπου κυριου και κατεβη εις ιοππην και ευρεν πλοιον βαδιζον εις θαρσις και εδωκεν το ναυλον αυτου και ενεβη εις αυτο του πλευσαι μετ' αυτων εις θαρσις εκ προσωπου κυριου

(히브리어Modern) 요나 1:3 ויקם יונה לברח תרשישה מלפני יהוה וירד יפו וימצא אניה באה תרשיש ויתן שכרה וירד בה לבוא עמהם תרשישה מלפני יהו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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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19. 08:28

머무름&피함.

머무름&피함.

(바른성경) 시편 61:4 내가 영원히 주님의 장막에 머무르며, 주님의 날개 아래에 피하겠습니다. 셀라

주님의 장막에 머무르며, 주님의 날개 아래에 피하는 '우리'가 될 것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시편 61:4 I will abide in thy tabernacle for ever: I will trust in the covert of thy wings. Selah.

(헬라어구약Septuagint) 시편 61:4 εως ποτε επιτιθεσθε επ' ανθρωπον φονευετε παντες ως τοιχω κεκλιμενω και φραγμω ωσμενω

(히브리어Modern) 시편 61:4 אגורה באהלך עולמים אחסה בסתר כנפיך סל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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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2. 1. 14:32

신실하신 주를 갈망, 시편 91:1-11

말씀: 신실하신 주를 갈망

성경: 시편 91:1-11 / 모세의 시

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91: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91:3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91:4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

91:5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

91:6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91:7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91:8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

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91:11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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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프 챔피언 에드 파골

그는 역사상 최고의 기록을 남긴 골프 챔피언이다. 그는 10살 때 아스팔트 바닥에 떨어져 왼쪽 팔꿈치를 다쳤다. 그로 인해 수술을 받았고, 그 결과 왼쪽 팔이 20cm나 짧아졌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중에도 앞으로 골프 챔피언이 되겠다는 소망과 확신을 잃지 않았다. 그때 주위 사람들은 당신이 그렇게 짧은 팔을 가지고 어떻게 골프를 칠 수 있겠소?’라고 회의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때 그는 할 수 있다. 내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날 도와주실 것이다.’라고 더욱 굳게 다짐했다. 그리고 더 열심히 노력하여 세계적인 챔피언이 되었다. 우리의 삶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언제나 주안에서 용기를 잃지 말고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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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인도하심

우리가 살아가면서 진정으로 의지할 분은 누구신가? 시인은 인간의 의뢰할 존재는 하나님뿐임을 노래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의지하여 찾는 자에게 응답하여 주시고 사랑으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의뢰는 기도를 통해 나타나며,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하는 기도를 들어주시어 환난 중에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 본시는 험한 인생의 여정에서 여호와 하나님만이 최고이자, 최후의 요새임을 고백하고 있는 시로서 시 46편과 유사한 내용구조를 지니고 있다. 감정의 심한 굴곡을 담고 있는 비탄 시와는 다르게 초지일관 하나님의 변함없는 보호와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있는 신앙 시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시인의 신뢰는 하나님에 관한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흔히 발견되는 일시적이고 심리적인 믿음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시인은 이스라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상기하면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 보호와 구원과 영화가 베풀어질 것임을 확고하게 믿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누리는 안전에 대해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본시는 세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선언적 고백을 하는 전반부와(1-2), 해명적 고백을 하는 중반부(3-13), 그리고 하나님의 직접적 응답을 다루고 있는 후반부(14-16)로 구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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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1)

의 피난처가 되는 분은 누구신가?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요, 요새요, 의뢰하는 자라고 고백한다. 이는 세상의 모든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그늘 아래로 피할 때 그 어떤 공격으로부터도 보호받을 수 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도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가 없음을 확신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 거해야 하는가?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91:1) 여기서 지존자는 원어로 <@/yl][,:엘레온>인데 가장 높은 자라는 뜻이다. 이는 세상 나라의 통치자들이나 그들이 섬기는 신들과 비교해 탁월하시고 홀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우리는 지존하신 하나님의 절대 주권 아래서 살아가는 자들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은 어디인가? 은밀한 곳은 비밀 장소를 의미한다. 아무도 모르는 비밀스러운 곳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도 없고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지존자 하나님을 나타낸다. 다음으로 거하리로다의 의미는 새끼가 어미의 품속에서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되어 평안한 쉼을 얻는 상태를 가리킨다.

인간의 지혜로는 하나님과 하나님이 계신 곳을 다 이해할 수 없다. 주님을 다 이해할 수 없는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의 은혜로 호흡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주님께 감사를 올려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좋으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지식으로 알고 경험으로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시인하면 주께서 그 안에 거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5-16) 하나님께서 죄인인 를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우리는 예수님을 구주로 마음속에 모셔 들이고 주의 자녀로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그리하여 주의 자녀로서 피난처 되신 주님 품에 거하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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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피난처요 요새이신 하나님(2-3)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시인은 하나님이 자신의 피난처, 요새, 의뢰할 분임을 고백한다.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91:2)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다윗도 반석, 요새, 건지시는 자, 피할 바위, 방패, 구원의 뿔, 산성이신 하나님을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피할 바위시오.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18:2) 본문에서 또한 시인은 사냥꾼의 올무와 전염병에서 건지실 주님을 고백한다.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91:3) ‘사냥꾼의 올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이는 들짐승을 잡기 위해 설치한 덫을 일컬으며 성경에서는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한 간악한 계교를 가리킨다. 우리는 영적인 안목이 어두워서 실수하고 심지어 타락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그 분께 기도하며 깨어 있게 된다면 사냥꾼의 올무에 빠지지 않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이 타락할 때에 하나님은 어떻게 벌하셨는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을 원망한 후 재앙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 앞에 죄의 용서함을 구했다.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16:46-48) 타락한 인간들을 벌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로서 피난처 되신 하나님과 동행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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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의 진실함(4)

우리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 되시는가? 우리 하나님은 진실함이 충만하신 분이시다. 시인은 하나님의 진실함을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91:4) 여기서 깃으로는 자기 백성을 보호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새끼를 품는 어미 새에 비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의 깃이 우리를 덮을 때에 우리는 안전하게 되며, 이렇게 보호하시는 그 분의 진실함은 최고의 방패임이 분명하다. 어느 날 아브람은 환상 중에 하나님을 뵈옵는다. 아브람은 롯을 구출하기 위한 전쟁의 승리 후에 정신적인 낙심 상태에 있었고 영적으로 매우 침체되어 있었다. 그 원인은 첫째, 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돌라오멜과 그의 연합군들의 복수전이나 가나안 열국과의 동맹전의 위험을 인식한 데 있었다. 두 번째, 가나안과 후손을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셨기 때문에 불안해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가 된다고 말씀하시며 그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셨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5:1)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믿음의 확신을 주셨던 좋으신 하나님이시다.

바울은 주의 백성들에게 신실하게 행하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에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6:17-18) 하나님은 거짓이 없으신 분이시다.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천지는 없어지나 주님의 말이 없어지지 않음을 말씀하신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13:31) 하나님의 말씀은 변치 않으심을 기억하고 진실하신 하나님께 피하여 안전한 우리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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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공포와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음(5-6)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는가? 시인은 많은 사람이 엎드러지더라도 하나님께 피한 자에게는 재앙이 가까이 못하며 악인의 보응을 목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시인의 고백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이미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재앙을 내리시고 모든 장자를 죽이실 때 이스라엘 백성은 재앙을 당하지 않았고 그들은 애굽 사람들에게 임한 재앙을 보게 되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심판을 행하실 때에도 반복되어 질 것을 기억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주 안에 있는 자들을 위협하는 것들에 대해 그리고 주 안에서 이러한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음에 대해 이렇게 고백한다. “너는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과.”(91:5) ‘낮에 흐르는 살의 의미는 한낮에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 빛을 뜻한다. 이는 팔레스타인 같은 사막 지대에서 일사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것은 인간에게 큰 위험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주께서 보호하실 때 두려움은 사라지게 된다.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91:6) 개역한글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파멸은 원어로 <bf,q,:케테브>이다. 이는 완전히 휩쓸어 가는 것이 란 뜻으로 전쟁이나 기근같이 삶의 터전을 완전히 폐허로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주 안에 거할 때 전쟁과 기근에서도 우리는 두렵지 않게 된다. 다윗은 원수들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 하리요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 하리요. 나의 대적, 나의 원수 된 행악 자가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다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안연하리로다.”(27:1-3) 하나님께서 늘 생활 가운데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어떠한 두려움도 물리치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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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악인들의 멸망(7-8)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를 해할 자는 아무도 없다. 본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91:7) 여기서 만 명이의 의미는 하나님을 믿지 않아 재앙을 피하지 못하고 멸망하는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우리가 주 안에 거할 때 어느 재앙도 를 멸망시키지 못함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의인과 악인의 삶에 관여하셔서 선악 간에 판단하시고 보응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 “오직 너는 똑똑히 보리니 악인들의 보응을 네가 보리로다.”(91:8) ‘보리로다는 어떤 현상이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것임을 확언하는 표현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시며 반드시 행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반드시 하나님 편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악을 싫어하시는 분이다. 우리는 악에 대해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노아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7:23) 죄악이 관영한 인류를 물로 심판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예수님의 보혈로 죄를 회개하여,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어 주님만을 바라고 그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너를 들어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목도하리로다.”(37:34) 주님 앞에서 악인은 패하게 됨을 기억하며 주의 법도를 따라 행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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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피난처이신 주님(9-11)

우리의 피난처가 되는 분은 누구신가? 그 분이 지금도 살아계셔서 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본문의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91:9) ‘거처는 어린아이가 완전한 평안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어머니의 품과 같이 모든 위협으로부터 보호되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곳인데 여기서는 하나님의 품을 의미한다. 우리는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품속에서 안전하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시인은 또 이렇게 고백한다.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91:10-11)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재앙도 없고 천사들을 통해서라도 우리의 갈 길을 보호하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본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보호하여 주심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고 갈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참된 지식과 사랑을 통해 올려지는 기도를 흠향하시고 위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는 시인이 예측할 수 없는 위태로운 삶의 상황에서 유일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을 소망했음을 기억하고 이처럼 황금만능주의, 향락주의, 음란한 문화 속에서도 결코 낙망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붙잡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우리가 절망처럼 느껴지는 세상살이에서도 주안에서 희망을 가진다면 반드시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승리하게 될 것이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3:6) 신실하신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지도하실 주님을 갈망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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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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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4. 24. 08:28

감사.

감사.

(바른성경) 시편 118:1 여호와께 감사하여라. 그분은 선하시며 그분의 인애하심은 영원하시다.

선하시며 인애하심이 영원한 여호와께 감사하는 '우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영어KJV) 시편 118:1 O give thanks unto the LORD; for [he is] good: because his mercy [endureth] for ever.

(영어ASV) 시편 118:1 Oh give thanks unto Jehovah; for he is good; For his lovingkindness `endureth' for ever.

(헬라어구약Septuagint) 시편 118:1 αλληλουια α# αλφ μακαριοι οι αμωμοι εν οδω οι πορευομενοι εν νομω κυριου

(히브리어Modern) 시편 118:1 הודו ליהוה כי טוב כי לעולם חסד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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