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창조주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자!

성경: 로마서 9:19-24

9: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9: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9:22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9:23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9:24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

 

1.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생각과 정반대의 상황으로 인도하시고 역사하기도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위해서는 칼과 창이 필요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손에 나팔을 주셨으며, 성을 공격할 좋은 작전 대신에 성을 일곱 바퀴 돌기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듣는 이들을 당황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을 한다면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는 일어날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창조주 하나님의 방법이 다양함을 깨닫고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전능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 붙잡혀 그분의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

바울은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를 받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인한 구원의 원리를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교만하여 스스로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했다.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민족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부분에서는 달랐다. 이방의 나라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우세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다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아니었다(1-13). 인류의 구원 운동은 하나님의 선택 행위에서 비로소 일어났다. 그 선택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불변의 결정으로 되어지며(14-16), 유기될 자를 동반한다. 이 유기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어떤 자들을 구원하시지 않기로 작정하신 사실을 가리킨다(17-33).

 

3. 하나님을 대적할 자는 없음(19-20)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하나님이 어떠한 분임을 깨닫고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자가 없음을 알고, 그분을 잘 섬기며 경건에 힘쓰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9:19-20) 여기서 대적하느냐대항하다, 반대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거역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거나 그분께 반문할 수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에서와 야곱 중에 에서를 미워하시고 야곱을 사랑하신 선택에 있어서 그러한 선택이 불공평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해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결코 불의함이 없으시다고 단언하고 있다. 본문 앞부분의 말씀은 이렇다.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로라 하셨으니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9:17-18) 바로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신 분도 하나님이신데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큰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열방을 다스리시고 그분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을 경외했던 선한 왕 여호사밧은 아람이 쳐들어올 때 여호와께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백성들에게는 금식하라 공포한다. 그는 여호와의 전 새 뜰 앞에서 백성들 가운데 서서 이렇게 말한다. 가로되 우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막을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 피조물로서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우리를 건질 힘이 있으신 능력의 하나님을 의지하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 지으심을 받은 자들로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고 감사함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고 경건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벧후 2:9) 살아계신 하나님, 대적할 수 없는 하나님 앞에서 경건한 모습으로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자신만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자가 없음을 알고, 그분을 잘 섬기며 예배자의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21-22)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9:21-22) 여기서 토기장이는 토기장이가 흙덩어리를 갖고 각기 다른 수준이나 목적의 그릇을 만드는 것처럼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을 상징한다. 우리는 토기장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부족한 인간을 오래도록 참으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64:8) 토기장이에게는 똑같은 흙을 가지고도 어떤 것은 귀히 쓰일 그릇으로, 어떤 것은 천히 쓰일 그릇으로 만들 주권이 있다. 다른 사람이 토기장이의 선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고 하물며, 토기가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바울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대해 불의하다고 하는 자들에 대해 마치 토기가 자기를 만든 토기장이에 대하여 불평하며 항의하는 것에 비유하여 하나님의 주권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우리는 모든 것들이 주께로부터 왔으며 자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주님이 지으셨음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토기장이신 하나님께 순종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의 패리함이 심하도다 토기장이를 어찌 진흙같이 여기겠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어찌 자기를 지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나를 짓지 아니하였다 하겠으며 빚음을 받은 물건이 자기를 빚은 자에 대하여 이르기를 그가 총명이 없다 하겠느냐.”(29:16) 빚음 받은 물건인 우리에게 빚으신 하나님을 바라는 눈이 열리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열방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음을 받은 자들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자로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를 대하여 너는 무엇을 만드느뇨 할 수 있겠으며 너의 만든 것이 너를 가리켜 그는 손이 없다 할 수 있겠느뇨 아비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났느냐 어미에게 묻기를 네가 무엇을 낳으려고 구로하느냐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곧 이스라엘을 지으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장래 일을 내게 물으라 또 내 아들들의 일과 내 손으로 한 일에 대하여 내게 부탁하라.”(45:9-11)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분께 자신의 삶을 의탁하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창조주 하나님께 거룩한 그릇으로 귀하게 쓰임 받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딤후 2:20-21) 자신을 지으신 분이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23-24)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이 풍성한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 이 그릇은 우리니 곧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부르신 자니라.”(9:23-24) 여기서 예비하신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서 구원할 자를 미리 선택하셨다는 의미이다. 우리는 태초부터 선택하여 불러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2:4)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심을 가슴 깊이 깨닫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민족과 혈통을 초월하시어 사랑하시고 구원을 베푸신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은 모든 민족을 망라한 것으로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하여 죄인을 택하시고 구원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백성의 조건을 아브라함의 혈통적 자손이라는 것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러한 생각은 하나님의 아브라함에 대한 약속을 오해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이미 민족을 초월한 보편적인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이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12:3)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나타나고 있다. 믿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이방인인 우리를 구원해주셨음에 감격하며 좁은 길을 기쁘게 걸어가는 예배자가 되기를 바란다. 차별하지 않으시는 구원의 하나님을 기뻐하기를 바란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10:12) 이렇게 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속 사람이 날마다 강건하여지기를 기도한다.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3:16)

뿐만 아니라, 믿음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3:28) 하나님의 귀한 부르심을 받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임을 깨닫고, 하나님과 형제와 자매를 사랑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하나님 밖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러한 은혜 가운데 거하지 못할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인생에 있어서 최고 우선순위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하게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그분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은혜가 풍성하신 미쁘신 주와 날마다 동행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하나님 손에 붙잡혀 주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증거케 하기 위하여 주권적인 사랑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음을 깨닫고 맡겨진 주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어떠한 조건과 무관하게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은혜로 구원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한다. 어떠한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 오더라도 믿음으로 잘 돌파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받은 너희를 친히 온전케 하시며 굳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케 하시리라.”(벧전 5:10)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며 믿음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3:1)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대적할 자가 없음을 알고, 그분을 잘 섬기며 예배자의 삶을 사는 자!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께 귀하게 쓰임 받는 자!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주님께 영광 돌리며 그분과 동행하는 자! 이런 복된 삶을 사는 자, 창조주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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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을 갈망하고 즐거워하며 기뻐 찬양하는 자!

성경: 시편 63:1-11

시편 63: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시편 63: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시편 63:3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시편 63:4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시편 63:5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

시편 63:6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시편 63: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시편 63: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시편 63:9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시편 63:10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시편 63:11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

 

1. 은혜를 알고

개미 한 마리가 어느 날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 위를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런데 바람에 날려 그만 강물 위로 떨어지고 말았다. 잎에 매달려 한참 떠내려가는데 마침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나뭇잎을 물어다가 뭍에 놓고는 가버리는 것이었다. 얼마 후 비둘기가 나무에 앉아 콩밭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포수가 비둘기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려 하고 있었다. 이를 본 개미는 얼른 포수의 뒤꿈치를 물었다. 이 때문에 총알은 빗나갔고 비둘기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일전에 비둘기의 도움으로 살아난 그 개미가 이번에는 비둘기의 목숨을 구해 준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자신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날마다 고백하며, 그분을 향한 바른 태도로 끝까지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여호와를 향한 마음

본문은 다윗의 시인데 그가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그는 여호와를 갈망하는 자기 영혼의 상태에 대해 노래했다. 그는 자신이 여호와를 앙모함에 대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 보호하여 주심을 확신했다. 그래서 자신을 대적하는 악인들의 비참한 종말에 대해서도 예언했던 것이다. 또한, 시인은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 하나님의 공의가 세워지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다윗은 이 시편에서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생명보다 나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을 내다보고 그때에 찬송하리라고 한다(1-5). 그가 장차 주님을 찬송하되 주님의 완전성에 대해 깊은 느낌으로 찬양할 것도 여기에 미리 말하여 둔다(6-7). 이 시인은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며 즐거워하는 믿는 자가 반드시 승리하고 성도를 박해하는 자는 마침내 망하리라고 한다(8-11).

 

3. 주님을 갈망하며(1-2)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를 갈망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시편 63:1-2) 다윗은 목마름 속에서 물을 찾듯이 자기 육체가 주를 앙모한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다윗의 이러한 고백을 통해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으며 신뢰했는지 잘 알 수 있다. 먹는 물은 육체를 입은 우리가 살아갈 때 매우 중요하다. 사막으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에서 물은 생명과 같았으며 이로 인해 전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하면서 광야에서 목마름을 호소하며 모세에게 이렇게 원망한다.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17:3) 아마 우리도 물을 먹지 못한다면 이렇게 애써 물을 갈망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갈 때 필요한 것은 육체의 목을 축이는 물만이 아니다. 또 다른 물은 영적인 물인데, 예수님은 자신이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4:14) 우리는 물이 없으면 생물이 살 수 없듯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영혼은 죽을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고, 그분만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실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영적인 눈을 열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다. 다윗의 하나님께 대한 갈급함과 앙모함은 주의 임재의 상징인 성소에서 영적인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성전에 거하며 주를 바라보는 다윗의 행위가 세상의 어떤 것보다 주를 만남이 즐거움과 기쁨이 됨을 알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믿음의 길을 걸어가면서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며 영의 눈을 열어 그분을 바라보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주를 바라고 간절히 찾아 그분을 날마다 경험하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란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8:17) 주님을 만날 때 영혼이 만족함을 얻으며,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를 갈망하고 그분의 얼굴을 구하며 승리하기를 바란다.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105:4) 자신의 만족함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주님 안에서 영혼의 만족함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언제나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입술로 주님을 찬양하고(3-5)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를 찬양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선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인자하심이 생명보다 나으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할 것이라 이러므로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나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 나의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찬송하되.”(시편 63:3-5) 다윗은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나음을 고백하며 입술로 주를 찬양할 것이라고 다짐한다. 세상에 생명보다 귀한 것이 없지만 주의 인자가 생명보다 귀함을 고백한 것이다. 또한, 5절의 골수와 기름진 것은 짐승의 살찐 부분이나 베일 좋은 부분을 말하는데,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는다는 것은 동물을 잡아 큰 잔치를 벌이는 일을 가리킨다. 그는 하나님으로 인한 자기 영혼의 만족을 잔치에서 맛보는 만족에 비유한다. 그는 골수와 기름진 것을 먹음과 같이 자신의 영혼이 만족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육체의 기쁨이라면 하나님과 주야로 교제하며 찬양과 기도를 드리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혼의 기쁨일 것이다. 그는 평생토록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인하여 손을 들겠다고 서원한다. 손을 드는 것은 기도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우리는 찬양과 기도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구체적인 방법임을 알고 기쁨으로 찬양하며 늘 기도에 힘쓰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시편에서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을 송축할 것을 이렇게 고백한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영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광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광대하심을 측량치 못하리로다.”(145:1-3) 그리스도인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 광대하신 하나님을 높이고 입술로 찬양하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주님을 높이는 복된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시리라 또한 이후에라도 건지시기를 그를 의지하여 바라노라.”(고후 1:10) 우리를 살리신 주님께 감사하고, 우리는 많은 이들이 주님으로 인해 영적으로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평생토록 선하고 아름다우신 주를 찬양하는 복된 자가 되기를 바란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 이름을 찬양하라.”(135:3) 입술로 감사의 고백을 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지금까지 호흡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을 즐거워하고(6-7)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누구를 즐거워하며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시편 63:6-7) 여기서 기억하며는 원어로 <rk'z::자카르>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총을 되새기는 것을 나타낸다. 다윗은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한다고 고백하고 있는데, 이 고백은 하나님을 언제나 생각하고 끊임없이 사모하겠다는 그의 다짐이다. 다윗은 주께서 자신의 도움이 되시어 날개 그늘 아래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자신이 평생에 기쁨으로 주를 찬송하며 기도할 것을 다짐할 수 있었다.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잠자리에 들어서도 당신 생각, 밤을 새워가며 당신 생각뿐, 나를 도와주신 일 생각하면서 당신의 날개 그늘 아래에서 즐겁습니다.”(63:6-7) 주의 날개는 하나님의 구원과 보호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인데, 그는 구원의 은총을 생각하며 주를 찬양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주를 찬양하며 주님을 기뻐하는 것이 주의 자녀에게 주신 특권임을 깨닫고, 매일의 삶에서 다윗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윗은 시편에서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창조주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할 것을 말한다. 할렐루야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성도의 회중에서 찬양할지어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자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시온의 자민은 저희의 왕으로 인하여 즐거워할지어다 춤추며 그의 이름을 찬양하며 소고와 수금으로 그를 찬양할지어다.”(149:1-3) 구원의 하나님, 왕이신 하나님을 기뻐 찬양하고, 피할 바위와 큰 도움이신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주께 피하여 그분께 보호받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오직 주에게 피하는 자는 다 기뻐하며 주의 보호로 인하여 영영히 기뻐 외치며 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은 주를 즐거워하리이다.”(5:11) 하나님이 주인이 되어 사는 이들은 이렇게 그분께 피하며 도움을 구하여 응답받고 기뻐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사는 이들은 이러한 복을 누릴 수 없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기를 바란다. 주님께서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지금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베푸신 은혜에 늘 감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로 사랑하며 그분을 즐거워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어떠한 형편 가운데서도 주님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73:25) 자신의 즐거움을 좇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늘 왕이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의인을 붙잡으시되 악인을 대적하시는 주님 바라보며 승리하는 자(8-11)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들을 붙잡아 주시고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믿음 생활에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나의 영혼을 찾아 멸하려 하는 그들은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넘겨져 승냥이의 먹이가 되리이다 왕은 하나님을 즐거워하리니 주께 맹세한 자마다 자랑할 것이나 거짓말하는 자의 입은 막히리로다.”(시편 63:8-11) 여기서 붙드시거니와얻다, 견고히 지키다, 유지하다를 뜻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가까이하며 따르기를 힘쓰는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또한, 다윗은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 저주를 말한다. 그들이 땅 깊은 곳에 들어가며 칼의 세력에 붙인 바 되어 승냥이의 밥이 될 것이라는 저주이다. 이는 하나님을 대적한 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예언한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영벌에 처하는 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따라가는 복된 주의 자녀로 승리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광야 같은 세상에서 비록 하나님 편에서는 이들의 수가 적을지라도, 다윗과 같은 변함없는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을 기뻐하신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넉넉히 이기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13:24) 악인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편에 서서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혼의 만족함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닫고, 언제나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분의 얼굴을 구하는 복된 자! 지금까지 호흡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선하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 성령님의 도움으로 언제 어디서나 왕이신 하나님을 사모하고 즐거워하는 복된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하나님을 갈망하고 즐거워하며 기뻐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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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즐거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자!

성경: 시편 100:1-5

시편 100:1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시편 100:2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시편 100:3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시편 100:5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1. 감사함으로 찬양

장로교의 한 목사님의 과거 이야기이다. 젊었을 때 그는 아내가 교회에 다니는 것이 매우 못마땅해서 그녀를 자주 핍박했고 그때마다 아내는 찬송을 불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는 인민군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미군의 포로가 되었다. 미군은 포로 처형을 시작했고 이윽고 그의 차례가 다가왔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미군은 예수 믿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곧 그는 십자가를 그리며 기도하는 흉내를 냈다. 그러자 그 뒤의 포로들도 그를 따라서 했다. 이때 미군은 그들에게 찬송을 하라고 했고, 그는 자신의 아내를 학대했을 때 항상 그녀가 부르던 그 찬송을 유창하게 불렀다. 그렇게 하여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고 시간이 흘러 그는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있었던 놀라운 이야기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살아남기 위해 찬양하지 말고, 언제 어느 때나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께 감사하며 찬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을 즐거이 찬양

본시는 찬양의 시 또는 감사의 시로 비애나 원망이 한마디도 언급되어 있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하나님의 통치를 찬양하는 시들 중 마지막으로 소개된 이 시는 예배 시로 간결하고도 압축된 감사의 표현을 통해 신선한 감동을 주고 있다. 우리의 창조주이시며 우리에게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영원토록 베푸시는 하나님께 즐거움으로 찬양할 것을 줄곧 권면하고 있다. 본시는 감사의 시라는 표제가 붙은 시인데 예배자들이 감사제의 예물을 가지고 성전 문과 뜰을 통과할 때 부른 노래이다(1-5). 시인은 원망이나 불평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시종일관 온 땅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경배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는 주의 백성들을 소집하고 예배자들이 의식에 참여하기 전에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다시 한번 마음에 떠올리면서 자발적인 감사와 기쁨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유도했을 것이다.

 

3. 맥추 감사절을 지키며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켰던 무엇을 기억하고 감사의 고백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맥추절을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갔음을 알고, 구원의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구약에는 3대 절기가 있다. 그것은 유월절(무교절)’, ‘맥추절(칠칠절)’, ‘초막절이다. 맥추절은 []Feast of harvest []ryxiQ;h' gj'(chag haqqatsir)이다. 태양력의 5월 말-6, 밀 수확이 끝난 때를 기념하여 드린 봄 작물의 수확 감사제로서 지냈다(23:16). 유월절부터 7주 후에 행해졌기 때문에, [칠칠절](34:22, 16:9-11), 또는 [오순절]로도 불렸다. 이날에는 회당에서 룻기가 낭독되었다. 후에 이날은 시내산에서의 율법이 주어진 날로서 축하되고, 다시 그리스도 교회의 성령 강림제에도 관련케 되었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16:16) 현대의 교회는 4월에 부활절, 7월에 맥추 감사절, 11월에 추수감사절, 12월에 성탄절로 지키고 있다. 맥추 감사절로 예배하는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감사로 넘쳐나기를 바란다.

맥추절의 의의를 살펴보면, 맥추절은 무교절(유월절)이 지난 다음 일곱 번째 주일 다음날을 하나님께 지키는 것이다. 칠주를 계수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16:10-11)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 종살이를 하면서, 먹고 살기도 어려운 환경의 고통과 아들을 낳아도 죽기도 하는 죽음의 공포에 싸여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역사로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살아남고, 출애굽을 통해 가나안에 입성하게 된다. 그 후 맥추절의 감사절을 통해 애굽의 종되었던 것을 생각하면서 구속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죄악 된 세상에서 택해주시고 구원해주셔서 천국 백성 삼아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맥추 감사절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구원의 큰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기를 바란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95:1) 감사가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맥추절을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하며 구원의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여호와께 찬송 부르며(1-2)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고 노래하며 그분께 나아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100:1-2) 여기서 기쁨으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자발적으로 예배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께 억지가 아닌, 전심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신명기는 칠칠절(맥추절)을 지키며 모두 함께 즐거워할 것을 기록한다.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16:11) 맥추절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객과 고아와 과부를 포함하여 모든 이들이 함께 기뻐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16:14) 다양한 신분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기뻐한 것이다. 우리는 열방의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알고 그분을 기뻐하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함께 기도해야 할 것이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그 앞에 나아가며 시로 그를 향하여 즐거이 부르자.”(95:2)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을 기뻐하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6-47) 열방의 모든 주의 백성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주님을 바라보고, 또한 하나님의 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기뻐 찬양하고 복음 전파에 힘쓰는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주님을 항상 기뻐하며 그분을 찬양하는 자로 살기를 바란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4) 다양한 노래를 부르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종의 신분에서 자녀의 신분으로 바꾸어주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감사함으로 그분께 나아가며(3-4)

이 땅 가운데서 믿음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어떠한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그의 소유된 백성으로서 감사함으로 그분께 나아가야 한다.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편 100:3-4) 여기서 알지어다는 원어로 <W[%D]:데우>이다. 이는 삶의 체험을 통해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깨닫고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의뢰하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들어가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을 받아 구원의 공동체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삶 가운데서 왕이신 하나님을 날마다 체험하고 그분께 모든 것들을 맡기며,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만이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다른 신은 이 땅 가운데 없음을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것을 네게 나타내심은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4:35) 이러한 고백을 하는 자들이 되어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어 주께서 베푸시는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란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7:9) 신실하신 하나님, 그분을 최고로 사랑하며 주께서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을 믿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바로 지금이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기회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하게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12:1)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늘 그분을 감사함으로 섬기며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분께 감사하며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영적으로 죽어있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음을 깨닫고 날마다 그분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에 승리하는 자!(5)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선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에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시편 기자는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시편 100:5) 개역 한글 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100:5) 여기서 대저는 원어로 <yKi:>이다. 이는 왜냐하면이란 뜻으로 이유를 뜻하는 접속사이다.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에 그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게 됨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 세상 끝날까지 그분을 높이며 끝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주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서, 신실하시고 선하신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이 많아지기를 기도한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136:1) 이스라엘 백성들이 맥추절을 지키며 하나님께 감사로 나아갔음을 알고, 구원의 하나님께 늘 감사하는 자! 종의 신분에서 자녀의 신분으로 바꾸어주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고 찬양하며 살아가는 자!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음을 깨닫고 날마다 그분께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즐거이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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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잘 하는 자!

성경: 디모데 후서 4:3-8

딤후 4:3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4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딤후 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딤후 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 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1. 인생

인간은 불행과 행복을 다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만약, 사람이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불행이라는 괴로움을 만나는 일 없이 행운 속에서만 살아간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는 교만하고 방종한 인간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마음먹은 대로 모든 행복이 쉽게 찾아온 나머지 방종과 교만으로 악의 노예가 된 황제를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다. 그리고 악명을 남기고 죽은 폭군들을 역사 속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행복을 누릴 자격을 갖추는 인간이 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주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경건의 훈련에 힘쓰고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복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사명 감당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 전파하기를 힘쓰라 명한다. 바울은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했으나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셔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널리 전파하게 되었음을 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앞장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진리 안에 거할 것을 부탁한 바울은 이제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최후의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본장에는 로마의 감옥에서 최후의 순간을 기다리는 노사도의 숙연함이 잘 드러나 있다. 즉 본장에는 바울이 석방되어 다시 복음 사역의 일선에 나가게 되리라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에 놓인 바울이 복음 사역을 위해 전력투구했던 지난날들을 회고하면서 사랑하는 제자이자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마지막으로 권면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이 권면의 내용은 첫째, 복음 증거, 둘째, 말씀 중심의 교육 훈련, 셋째, 고난의 감수로 요약할 수 있다. 본장의 내용은 사랑하는 동역자 디모데에게 주는 유언의 명령으로서 전도인의 직무를 다하라는 바울의 마지막 지시(1-5)와 바울의 순교자적 소망을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6-8)과 개인적인 당부(9-18), 끝 인사(19-22)로 구성되어 있다.

 

3. 그릇되지 않은 바른 교훈을 따르며 복음 전파를 잘 감당하고(3-4)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들은 무엇을 따르며, 무엇을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바른 교훈을 따르며, 진리 안의 복음을 잘 전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딤후 4:3-4) 여기서 허탄한 이야기는 만든 이야기, 신화라는 뜻이며 본문에서는 유대주의자들의 비성서적인 이야기를 뜻한다(딤전 1:4; 딤전 4:7). 혼탁한 시대를 살아가는 다른 이들이 진리에서 벗어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를지라도, 우리는 바른 교훈을 받기를 즐거워하며 진리를 따르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거짓 지도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5:31) 자신의 인기와 남들의 칭찬을 즐기며 살지 말고 오직 진리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집중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같이 하였느니라.”(6:26)

본문 앞 절의 말씀은 이렇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1-2) 여기 그의 나라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나라<basileiva: 바실레이아>통치하다라는 <basileuvw: 바실류오>에서 유래된 왕권, 나라(24:7)라는 뜻이며 는 그리스도 예수를 지칭한다. 즉 그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의미한다. 그리고 경책하며밝히 드러내다, 죄를 책망하다, 징계하다’(12:5)라는 뜻인데 책망하는 것은 죄를 깨달아 돌이키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말씀 전파를 의미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 전파하기를 힘쓰라고 명했다. 바울은 이러한 명령이 자신의 개인적인 명령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명령임을 밝히기 위해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고 있음을 밝힌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일생을 복음 전파에 바쳤고 이제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자신과 같이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명하고 있다. 또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10:15)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소망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날을 고대하며, 거짓 미혹에 빠지지 말고 오직 말씀을 전파하는 일에 힘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복음 전파를 잘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비진리를 좇아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성령님의 도움으로 바른 교훈을 따르며, 진리 안의 복음을 잘 전파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환경을 초월하면서까지 자신의 직무를 다하고(5-6)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무엇을 잘 감당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딤후 4:5-6) 여기서 전제와 같이 부어짐제주를 바치다라는 뜻이다. 바울의 이 말은 자신의 순교가 다가왔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자신의 피로써 자기의 제사장적인 의무를 다하게 될 것을 말한다. , 마지막까지의 철저한 헌신을 의미한다. 우리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던 바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또한, 디모데를 심히 아꼈던 바울은 그에게 자신과 함께 고난을 받을 것을 권면한다.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딤후 2:3) 바울은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때에 고난이 올 것을 예고하면서,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자신의 직무를 다할 것을 디모데에게 명했다. 우리는 때가 악하여 바른 교훈을 하면 듣지 않고 오히려 박해를 하며 거짓된 교훈을 좇는 자들이 많이 일어날지라도, 복음 전파자로서 생명을 다하여 진리를 사수하며 전파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복음 그 자체에 생명력이 있어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을 알고, 어떠한 환경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는 동안 잘 인내하고 충성스러운 종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택하신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딤후 2:10) 천국 가는 주의 백성들이 많아지길 기대하고 끝까지 잘 인내하며 복음 전파에 힘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인내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바란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13:34) 우리는 영으로 깨어 있어 기도하며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종과 문지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하여 주께 칭찬받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12:37) 강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하여 주께 잘했다고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고 끝까지 달려가고(7-8)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자녀들은 누구를 푯대 삼고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7-8) 바울은 죽음을 맞이할 날이 가까워 왔음을 밝히면서 자신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자신을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고백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유언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자신과 같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복음 전파에 힘쓸 것을 부탁한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고백은 확신에 찬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는 이제 평소에 그가 원한 바대로 육신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것을 기대했다. 그리고 자신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울뿐만 아니라 믿음을 지켜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모든 자들에게 보응해 주심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믿음의 경주에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12:1-2)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 삼고 끝까지 믿음의 싸움을 싸워 승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세상 가운데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최고로 중요함을 깨닫고, 그것을 최우선순위에 두시기를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이 믿음의 경주를 잘 하여 하나님께 잘 했다 칭찬받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선한 믿음의 여정을 완주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란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3:13-14) 다양한 자신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해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사명을 잘 감당하여 주님께 칭찬받는 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여 주님께 칭찬을 받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항상 힘써야 한다.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건전한 교훈, 바른 교훈을 듣기 싫어하고 거짓 교사들의 달콤한 말을 들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끝까지 인내하며 성실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목표를 분명히 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4-27) 끝까지 경기에 잘 임한 선수들이 상을 얻어 자신의 사명을 잘 마친 것처럼, 영적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열심히 사역하며, 성령의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바란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바른 교훈을 따르며, 진리 안의 복음을 잘 전파하는 삶을 사는 자! 환경을 초월하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직무를 잘 감당하여 주께 잘했다고 칭찬받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 삼고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해서 승리의 노래를 부르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끝까지 경주를 잘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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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귀히 여기며,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사는 자!

성경: 시편 137:1-9

시편 137:1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시편 137: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시편 137:3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시편 137:4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시편 137:5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시편 137:6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시편 137:7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시편 137:8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시편 137:9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1. 정체성

한번은 어떤 큰 건물이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그때 한 작은 돌이 발밑에서 뒹굴고 있었다. ‘큰 건물은 그 작은 돌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 이 꼬마야, 너 같은 것도 무슨 존재 가치가 있다고 굴러다니니?’ 그러자 작은 돌은 힘을 주어 , 그러지 마세요. 나도 이 지구의 한 모퉁이에 서 있을 뿐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내가 가장 높은 존재라오라고 말했다. 사실 그 작은 돌과 하늘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가장 높은 존재가 분명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우리도 작은 돌처럼 확실한 자기 인식을 하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살 때, 큰 건물에 비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가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자들로서 그분이 베푸신 은혜를 귀히 여기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하며 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바벨론 포로

시인은 바벨론에서의 이스라엘의 비참한 포로 생활을 노래했다. 예루살렘을 기억하며 바벨론 강가에서 부르는 시온의 노래는 나라 잃은 백성의 슬픔을 대변해 준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대한 열망은 단순한 향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풀어 주셨던 구원과 영광에 대한 갈구이다. 시인은 바벨론 강변에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고 고백한다(1). 바벨론 사람들이 여호와를 위한 시온의 노래를 불러 달라고 요청할 때, 이 시인은 경건한 사람이었으므로 그런 거룩한 노래를 이방인의 오락용으로 사용하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자기의 거문고를 버드나무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2-4). 또한, 시인은 이방에 있으면서 자기의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예루살렘을 더욱 즐거워 했다(5-6). 오히려 그는 바벨론 공격 시 이스라엘 멸망을 즐거워한 에돔 자손을 치소서라고 말한다(7-9).

 

3. 예루살렘을 향해 그리워 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 백성들(1-2)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예루살렘을 향해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137:1-2) 여기서 앉아서는 정착하여 거주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의 신분으로 바벨론에 살면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려야만 했으며, 하나님을 찬양할 때 쓰는 수금은 나무에 걸어 두어야만 했다. 시인은 바벨론 강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으로 주신 언약의 땅 예루살렘을 향한 그리움의 눈물이었다. 선민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는 컸으나, 그들의 범죄함으로 인해 하나님은 심판의 매를 들으셨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대언한다. “내가 예루살렘으로 무더기를 만들며 시랑의 굴혈이 되게 하겠고 유다 성읍들로 황폐케 하여 거민이 없게 하리라.”(9:11) 그래서 이방 나라의 포로로 잡혀갔고 그들은 비참한 처지에 처하며 슬퍼했다. 결국, 하나님의 예루살렘을 향한 예언은 이루어졌고 그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 이방 나라의 노예가 되었다.

더욱이 포로 신분인 그들이 더 슬플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방의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 자체보다도 하나님께 버림받았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하나님이여 열방이 주의 기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으로 돌 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79:1)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담대했지만,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포로 생활을 하는 그들은 깊고 큰 슬픔에 잠겼다. 예레미야도 예루살렘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을 보고 슬퍼하며 이렇게 눈물을 흘렸다.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끓으며 내 간이 땅에 쏟아졌으니 이는 처녀 내 백성이 패망하여 어린 자녀와 젖먹는 아이들이 성읍 길거리에 혼미함이로다.”(2:11) 우리는 주의 백성들의 범죄 이후에는 하나님의 징계가 있음을 알아야한다. 하지만 은혜의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렇게 행하신 주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자유하게 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분을 신뢰하는 자로 승리하기를 바란다. “여호와께 구속된 자들이 돌아와서 노래하며 시온으로 들어와서 그 머리 위에 영영한 기쁨을 쓰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51:11) 하나님의 법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에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예루살렘을 향해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바벨론인들에게 모욕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3-4)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바벨론 사람들에게 모욕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높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137:3-4) 여기서 노래를 청하며는 바벨론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모욕하기 위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도록 한 사실을 가리킨다. 바벨론 사람들은 포로의 신분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노래를 강요했다. 자신들을 위해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부를 것을 청한 것이다. 그때 부르는 시온의 노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노래가 아니었다. 그러나 포로의 신분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수락해야만 했다. 그들은 수치를 느꼈을 것이고, 더욱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을 호소했을 것이다. 미가 선지자는 예루살렘의 파멸에 대해 이렇게 대언한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 같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3:12) 그들의 범죄함으로 고국의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 언덕은 잡초로 뒤덮이고 만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로 놓아두지 않으셨고 그들을 회복시키셨다. “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지어다. 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31:12-13) 우리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그분의 징계 가운데 놓이지 말아야 할 것이며, 자신이 징계로 인해 고통 가운데 있다면 결국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을 깨닫고 그분을 기대하며 믿음을 굳세게 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징계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쁨으로 채우신 하나님을 높이는 자로 승리하기를 바란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35:10) 슬픔과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바벨론 사람들에게 모욕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결국은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높이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이방인들의 요구로 그들 앞에서 여호와의 노래를 부르는 이스라엘 백성들(5-6)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무엇을 깨닫고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방인들의 요구로 그들 앞에서 노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시인은 이렇게 고백한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하지 아니하거나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즐거워하지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137:5-6) 시인은 이방인들의 요구에 따라 노래를 부르는 이스라엘의 심정을 묘사하고 있다. 포로 생활 중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예루살렘을 기뻐함을 고백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보며 슬퍼한다.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는다면, 내 오른손아, 너는 말라비틀어져 버려라. 내가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내가 너 예루살렘을 내가 가장 기뻐하는 것보다도 더 기뻐하지 않는다면, 내 혀야, 너는 내 입천장에 붙어 버려라.”(시편 137:5-6) 자신들이 예루살렘을 잊고 거룩한 노래를 타락시킨다면 악기를 연주하는 손의 재주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하며 결코 예루살렘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우리는 이방인들을 위해 거룩한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마음이 예루살렘을 향하고 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그들은 고난 가운데 그러한 고백을 할 수밖에 없었다. 시편은 고난 가운데 있던 다윗의 고백을 이렇게 기록한다.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잇틀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사망의 진토에 두셨나이다.”(22:15) 자신이 고난 가운데 있다면 주께 소망을 두고 그분께 간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솔로몬은 이렇게 고백한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3:4)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것이 때가 있음을 알고, 끝까지 소망을 품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하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알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령님의 은혜로 끝까지 그분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주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대적들을 멸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바란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멸망시키는 자의 마음을 일으켜 바벨론을 치고 또 나를 대적하는 자 중에 처하는 자를 치되 내가 타국인을 바벨론에 보내어 키질하여 그 땅을 비게 하리니 재앙의 날에 그를 에워 치리로다.”(51:1-2) 자녀들의 죄에 대해 징계하시나, 결국은 회복시키시는 주와 동행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완전한 의지의 대상이 없이 살아가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이방인들의 요구로 그들 앞에서 노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대적들을 심판해 달라고 하는 시인의 간구(7-9)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로서 자신의 형편을 주님께 아뢰며 승리하는 신실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었기에 대적들을 심판해 달라고 간구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137:7-9) 에돔 족속은 이스라엘 족속과는 형제지간에 있었으나 이방인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훼파했다. 에돔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침공당할 때 예루살렘을 노략했다. 그래서 시인은 에돔 자손과 바벨론을 심판해 줄 것을 하나님께 요청했던 것이다. 시인은 믿음의 눈으로 잔인한 바벨론의 패망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결국 공의의 하나님께서 교만하게 행한 이방 족속들을 심판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에서 자유케 해 주셨음을 기억하며, 주께서 베푸시는 은혜의 소중함을 깨닫고 살아가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매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삶을 의탁하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구원의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 삼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예루살렘을 향해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끝까지 승리하는 자! 바벨론 사람들에게 모욕당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높이는 자! 이방인들의 요구로 그들 앞에서 노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유케 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끝까지 승리하는 자! 이런 복된 삶을 사는 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귀히 여기며 신실한 주의 백성으로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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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깨닫고 기도하며 믿음 생활하는 자!

성경: 디모데전서 2:1-7

딤전 2:1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딤전 2:2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딤전 2:3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딤전 2:4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딤전 2:6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딤전 2:7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1. 하나가 되어

광복 후 오랜 망명 생활에서 귀국한 이승만박사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정치 감각이 남달랐는데, 특유의 억양으로 정치적으로 여러 갈래로 나뉘어 싸우는 국내 현실을 보다못해 국민에게 그렇게 간곡히 호소했었다. ‘하나가 되는 것은 우리의 가정과 교회 나라를 모두 살리는 길일 것이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하며, 특히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기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목회의 실제적인 문제들을 언급한다. 그러면서 교회의 성도들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되 특히 권세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함을 말한다. 그것은 평화로운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며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므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본장은 특별히 우리가 합당한 교회 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 먼저, 기도 생활을 해야 할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기도의 대상은 모든 인류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진실한 성도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의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한 올바른 분담을 교훈하고 있다. 남성과 남성 지도자에게는 기도의 책임을 강조했다. 분노하지 말고 다투지 말고, 기도하라는 이 명령은 아마도 흥분하기 쉽고 또 싸움하기 쉬운 것이 남성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성들에게 주어진 책임으로 하나님이 나를 세워 주신 본래 그 자리, 순종의 자리를 잘 지키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이 염려하고 경계한 것은 여성들의 사역 그 자체가 아니라, 자기의 위치 즉 순종의 자리를 벗어난 사역을 염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교회의 일은 영적인 영역의 일이며, 영적인 일은 기도 없이는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본장의 내용은 중보 기도에 관한 교훈(1-8), 여성의 덕에 관한 교훈으로 구성되어 있다(9-15).

 

3. 그리스도인의 위정자들을 위한 기도(1-2)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들은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딤전 2:1) 여기서 도고청원, 기도, 중재의 기도의 의미이며 중보한다는 뜻을 강조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기도를 통해 역사를 이루어 가심을 깨닫고 세상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람들이 죄악에서 구원받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이는 복음 전파의 사명과도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다. 기도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기도의 본을 보이셨던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리고 장차 복음을 받아 믿게 될 자들을 위해서도 기도하셨다. 바울은 본문에서 자신을 위한 중보 기도에 감사의 말을 하며 임금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것을 권면한다.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2)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그들을 위함이기도 하지만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평안한 생활을 위함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정치를 잘하여 사회가 평안해야만 성도들이 모든 경건과 단정한 중에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세자들이 사악하여 폭정을 한다든지 신앙생활을 박해한다면 성도들도 심한 고통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위의 2절의 경건과 단정함에서 단정함위엄, 정중, 거룩함이라는 의미를 갖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평안한 사회가 되어 믿는 자들이 경건한 마음으로 즐거움 가운데 주님을 섬길 수 있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를 인정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13:1) 우리나라가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나라가 되고, 믿음의 자녀들이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기쁨으로 순종하는 일이 있기를 기도한다. 베드로는 이렇게 권면한다. 인간에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되 혹은 위에 있는 왕이나.”(벧전 2:13) 주를 위해 제도에 순복해야 함을 깨닫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마음이 불편할 때도 있겠지만 제도에 순복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계속해서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하나님 마음에 합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예레미야는 이렇게 대언한다.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하기를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니라.”(29:7) 예레미야는 자신이 고난 가운데 있었지만, 성읍의 평안을 위해 기도할 것을 말했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살기를 소망한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12:14) 사랑이 식어가는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3-4)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누구의 마음을 알고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복음 전파자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딤전 2:3) 여기서 받으실 만한받아들일 수 있는, 만족한이라는 뜻으로 환영하다, 인정하다라는 뜻을 가진 말에서 파생된 것이다. 즉 모든 이들을 위한 간구와 중재의 기도와 감사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이라는 것이다. 바울은 성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임을 밝힌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믿음의 사람으로서 순종하여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모든 이들이 다 주께로 나와 영적인 목마름을 해결하기를 기도한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55:1)

뿐만 아니라, 주의 제자로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음을 깨닫고 그 사명을 잘 감당하기를 기도한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7-19) 화목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소식을 잘 전달하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28:19) 성령님을 의지하며 복음 전파의 일을 잘 감당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또 가라사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16:15) 자신만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세대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복음 전파자로 믿음의 길을 걷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5-6)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누구를 믿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하는가?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아끼지 않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 가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 2:5) 중보자에서 중보<mesivth":메시테스>인데, ‘중재하다, 보증하다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유일한 중재자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심을 증거한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보내셔서 구원을 성취하게 하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이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자기 몸을 속전으로 주셨음을 기억하며 감사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6) 개역한글 침례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딤전 2:6) 여기서 속전으로대속물이라는 뜻이다. 이는 유월절의 희생양으로 자신을 내어주심으로 죄인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구속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약이 이르면<kairov":카이로스>가 기본형인데 , 시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일반적인 시간의 의미보다는 적절한 때, 결정적인 시점을 뜻한다. 여기서는 하나님이 예정하신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이 풍성하게 증거될 은혜의 시대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예수님의 순종으로 우리가 사망에서 건짐 받았음을 알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음을 깨닫고 그분과 친밀함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2:6-8) 자신을 낮추셔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 그분으로 인해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었음을 기억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공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이 시간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케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3:15-17)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와 주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기 바란다.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또한,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신 주께 감사하고,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살아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14:6)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아끼지 않으셨던 예수 그리스도께 구원이 있음을 믿고 천국 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7)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 2:7) 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3:7-8)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 전파의 사명을 잘 감당하여 주님 뵈었을 때 잘했다 칭찬받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의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복음 전파자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자신을 아끼지 않으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 가는 복된 자! 이런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명을 깨닫고 기도하며 믿음 생활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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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육에 속한 연약한 자가 아닌, 성령으로 사는 성숙한 자!

성경: 고린도 전서 2:9-14

고전 2: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고전 2:11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고전 2: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1. 안목

한 어머니가 아들을 대학의 기숙사로 보낸 얼마 후 학교를 방문했다. 그런데 기숙사에 들러 아들의 방에 들어간 어머니는 벽에 가득 붙여 놓은 사진들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모두가 정욕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여배우들의 나체 사진들이었다.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이것을 꼭 방의 벽에 붙여 달라는 부탁과 함께 어머니는 자신의 사진 한 장을 아들에게 보내 주었다. 며칠 후 어머니가 다시 기숙사 아들의 방을 가보니 깨끗한 벽에 자신의 사진만 붙어 있었다. 흐뭇해하는 어머니를 향해 아들은 어머니 사진을 차마 그런 사진들 틈에 함께 붙일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으로서 육을 따라 살아가지 말고, 영으로 사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하나님의 지혜

바울은 복음이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은 구원의 비밀로서, 세상의 지혜로는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만 깨달을 수 있음을 말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들로서 구원의 비밀을 깨달아 복음을 증거하는 사명을 받은 자들이다. 본장에서는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지혜로서의 성령을 반복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이 성령의 역사는 언제나 다른 두 위, 즉 성부 하나님과 성자 그리스도와의 삼위 일체론적 구조 속에서 조화롭게 나타난다. 그래서 바울이 본장에서 구체화시키는 주제는 성령과 십자가 사이의 밀접한 관계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신 사건 속에 나타났다. 그리고 이 지혜는 성령의 사역을 통해 본질적 의미와 증언으로 밝혀지고 전해진다. 본장은 성령의 능력으로 행한 전도(1-5), 신령한 것으로 분별할 수 있는 하나님의 지혜(6-13),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자가 곧 신령한 자임을 밝히는 부분(14-16)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장을 통해 구원의 문제가 결코 인간의 관점에서 다루어 져서는 안 되며, 인간의 지혜를 초월한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아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의 지혜는 성경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된다.

 

3.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9-10)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성령님을 깨닫고 믿음 생활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며 믿음 생활해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인간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인간의 지혜로 구원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지혜로만 깨달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가 자신에게 주신 자들만이 복음을 깨달을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여기서 보이셨으니는 원어로 <ajpekavluyen: 아페칼립센>이다. 이는 드러내다, 폭로하다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을 인간에게 드러내시는 성령의 역사를 의미한다. 공동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혜를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경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통찰하십니다.”(고전 2:10) 우리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깊은 경륜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통찰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성령님은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진리의 성령님과 동행하며 끝까지 인내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1:12)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좁은 길을 걷는 동안 성령님과 동행하며 행복한 믿음 생활하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마음을 감찰하시는 성령님을 의지하며 믿음 생활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8:26-27) 진리에 대한 기준이 모호한 시대 속에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진리의 성령님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성령님(11-12)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성령님을 깨닫고 믿음 생활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성령님을 깨닫고 주의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속의 비밀은 인간이 알 수 없고, 오직 성령님만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인간에게 계시하셨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이 알듯이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의 영만이 아는 것이다. 하나님은 크고 놀라우신 분인데, 인간은 그분의 판단을 측량할 수도 없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11:33-34) 이렇게 완전하신 하나님, 그분의 자녀로 살아가는 우리는 복된 자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는데 이 또한 놀라운 은혜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2:12) 우리 자신이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는 자임을 알고,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주의 일을 감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신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8:32)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으로 은사를 포함한 신령하고 좋은 것들을 받아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바울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고전 2:4)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이 아름답게 열매 맺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5-16)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주의 자녀로서 늘 기도하며 그분과 친밀한 관계 가운데 있기를 바란다. 강퍅한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성령님을 깨닫고 맡겨진 주의 사역을 감당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영의 사람으로 살고(13-14)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떠한 수준의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자신의 지혜가 아닌 성령님의 지혜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여기서 영적인영적인 것, 성령이 가득한이란 뜻이다. 이는 성령을 가진 사람을 나타내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우리를 통해 일하시도록 잘 준비되어가는 영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한다. 육에 속한 자가 되어 성령의 일들을 수용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 되기 때문이라.”(고전 2:14) 여기서 분별질문하다, 분간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법적인 용어이며 여기서는 영적으로 잘못된 것과 말씀에 합당한 것을 분간하는 것을 말한다.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일을 잘 분별하는 은혜도 있기를 바란다.

뿐만 아니라,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반대의 결과를 나타냄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기록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8:5-6) 육신의 생각이 아닌 영의 생각을 하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직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분들이 있다면 지금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께 나오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에겐 소망이 있는데 그것은 죄로 가득한 인간이 자유하게 되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3:16)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숙한 영의 사람으로 믿음 생활에 승리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주를 높이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3:16) 주의 영 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예배자로 늘 영적 전투에 승리하기를 기도한다. 모든 면에서 혼탁한 시대 속에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며 기쁘게 주님을 따라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게 되었음을 감사하며 성령 충만한 삶을 사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령님의 역사로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게 하신 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성령이 충만한 삶을 사는 복된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내가 너희의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1-3) 흑암에서 빛으로 옮겨진 은혜를 귀히 여기며, 성령님과 동행하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란다. 사도행전은 이렇게 기록한다.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2:4) 성령의 충만함과 함께 영적으로 필요한 은사를 하늘로부터 공급받아 주의 일을 잘 감당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분이 원하시는 삶을 사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며 승리하는 자! 하나님의 뜻을 아는 성령님을 깨닫고 맡겨진 주의 사역을 잘 감당하는 자!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통달하시는 성령님을 깨닫고 그분을 의지하며 복된 인생을 사는 자! 이러한 복된 삶을 사는 자, 육에 속한 연약한 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사는 성숙한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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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

성경: 느헤미야 4:1-6

4: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4: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4: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4: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4: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4: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1. 안전함

어느 날 한 여인이 부리로 쪼는 듯한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다. 그녀가 일어나 보니 유리창 안에서는 나비가 이리저리 소란스럽게 날고 있었다. 그리고 밖에서는 참새가 들어오려고 유리를 쪼고 있었다. 유리를 보지 못한 나비는 곧 잡히리라 생각했다. 역시 유리를 보지 못한 참새도 쉽게 나비를 잡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비는 안전했는데 그 이유는 참새와 나비가 보지 못한 그들 사이의 유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세계에서 사단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안전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늘 영적으로 깨어있어 기도하며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평안함 가운데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

바사 왕실의 술 맡은 관원으로 일하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훼파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 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을 받고서 BC.444년에 유다 백성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 소식을 들은 이방인들은 이 일을 방해하기 위해 계략을 세웠다. 그들은 유다 백성을 말로 조롱하여 낙망시키려 했다. 그들은 그 일이 실패하자 무력으로 침공하여 그 사역을 막으려고 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유다 백성을 격려했다. 그리하여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으로 성벽 재건 사역을 감당했다. 산발랏과 암몬 사람 도비야는 처음에 유대인의 성벽 건축 소식을 들었을 때 불가능한 일을 한다고 비웃었다(1-3). 그러나 유대인들은 신앙 안에서 일사불란하게 건축 공사를 하여 상당한 진척을 이루었다(4-6). 이에 산발랏과 암몬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은 당황하여 예루살렘 성벽 건축을 저지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침공하겠다고 위협하였다. 이러한 원수들의 위협과 책동으로 유대의 건축 담당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유대인들의 마음은 조금씩 분열되기 시작했다(7-12). 그러나 느헤미야는 용기를 잃지 않고 백성들을 격려하고 주를 기억할 것을 강력히 권면했다(13-14). 그리하여 온 백성들이 다시 힘을 얻고 신앙 안에서 한마음이 되어서,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한 손에는 연장을 들어 외적에 대한 방비와 성벽 건축의 일을 동시에 진행해 나갔다(15-23).

 

3.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분노하는 자들(1-3)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어떻게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산발랏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분노하여 비웃는다. 본문은 이렇게 기록한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4:1)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의 과정을 본 산발랏은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를 모았다. 그리고 그 앞에서 공개적으로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의 사역을 비웃었다. 산발랏은 유다 백성들 앞에 놓인 일이 매우 중하고 어려운 일임을 밝힘으로 유다 백성의 의욕을 상실하도록 만들려 했다. 또한, 이 비웃음 속에는 유다 백성의 일을 방해하여 못하게 만들겠다는 협박의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하나님의 일을 비웃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구약 성경에는 다윗을 비웃는 골리앗이 등장한다. 블레셋을 대표하는 거인 골리앗은 아직 소년이었지만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다윗을 알아보지 못했다.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또 이르되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삼상 17:43-44) 우리는 육의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자가 아닌, 영적인 눈을 열어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을 보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본문에서 산발랏은 계속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유다 백성들을 이렇게 비난한다.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4:2) 여기서 미약한은 원어로 <!ylil;mea}:아말렐림>이다. 이는 수목이 말라 죽듯이 아무런 소망이 없는 상태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산발랏은 유다 백성들을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들로 보았다. 산발랏은 사마리아의 총독으로서 유대 제사장 가문과 사돈 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느헤미야의 행적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다. 산발랏은 느헤미야와 유다 백성이 예루살렘 성 재건에 착수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매우 분노했다. 그는 느헤미야에게 아닥사스다 왕을 배반하려 하느냐고 말하면서 반감을 표시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2:19) 그러나 느헤미야는 개의치 않고 성곽 재건 공사를 시작했고 그래서 산발랏은 분노했던 것이다. 산발랏의 분노는 결국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 하는 데까지 이르기도 했다(6:2).

산발랏과 함께 유다 백성들의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비웃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 사람은 암몬 사람 도비야인데 산발랏의 측근이었다.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4:3) 도비야는 산발랏을 도와 유다 백성의 사역에 대해 비웃으며 조롱했다. 산발랏이 유다 백성의 무능함과 그 사역의 어려움을 진술하여 유다 백성의 사기를 떨어뜨리려고 시도했다면, 도비야는 유다 백성이 건축하는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지리라말하며 유다 백성의 사역 결과에 대해 비웃었다. 우리는 산발랏과 도비야처럼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깨닫지 못하고 비웃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기록한다. “또 어떤 이들은 희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으며.”(11:36) 우리는 믿음 안에서 어떠한 어려움도 극복하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일 앞에 비난하는 자가 아닌 믿음으로 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고전 1:27) 강퍅한 마음으로 사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느헤미야의 기도(4-5)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악한 자들의 비난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원수들의 비난과 조롱이 있을 때,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그분께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이렇게 기도한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4:4) 악한 자들이 예루살렘 성벽 재건 사역을 비웃으며 조롱할 때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다. 그는 공의의 하나님께 악인들의 악행을 심판해 주시기를 구했다. 그들은 유다 백성들을 조롱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이 주의 노를 격동하였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성벽 재건 사역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주의 일꾼으로 맡음 바 사명을 잘 수행할 때에 보호해 주시는 것이다. 느헤미야의 기도와 함께 유다 백성들은 산발랏과 도비야의 협박과 조롱을 개의치 않고 성벽 재건 사역을 잘 감당했다. 어려움 앞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구약 성경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당당하게 나아갔다. 다윗이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블레셋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의 치욕을 제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우를 하겠느냐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 17:26)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 그는 복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시편에서 아삽은 예루살렘 성이 황폐화 되었고, 이스라엘은 이웃 나라들의 조소와 조롱거리가 되었을 때에 긍휼을 구하며 이렇게 기도했다. “주여 우리 이웃이 주를 훼방한 그 훼방을 저희 품에 칠 배나 갚으소서.”(79:12) 또한, 자신을 헤치려는 음모 앞에 예레미야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유다 지도자들은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박해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하는 계략을 주께서 다 아시오니 그 악을 사하지 마시며 그 죄를 주의 목전에서 도말치 마시고 그들로 주의 앞에 넘어지게 하시되 주의 노하시는 때에 이같이 그들에게 행하옵소서.”(18:23) 예레미야는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며 원수들에게 보응해 주실 것을 기도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이다. 어려움의 상황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 앞에 겸손한 태도로 기도하는 복된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3:34) 믿음의 눈으로 볼 때 악의 축에서 사는 이들이 많은 세상 가운데서 신앙생활 하는 동안, 원수들의 비난과 조롱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고 기도하는 삶을 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완성되어 가는 예루살렘 성벽(6)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면 어떠한 결과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일은 성취가 됨을 알아야 한다. 본문에서 느헤미야는 이렇게 말한다.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4:6) 우리는 하나님의 반대편이 아닌 하나님 편에 서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고 날마다 믿음의 성장을 경험하는 복된 자들이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행하심을 기뻐하고 하나님의 일에 기쁨으로 동참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하나님의 일을 즐거워했던 한 인물이 구약에 등장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다.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대상 29:3)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것들을 주님 앞에 기쁨으로 드렸다. 또한,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수 있음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 드렸다.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다윗처럼 하나님의 일을 기뻐하며, 그분의 역사를 기대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면 믿음의 길을 걸어가기 바란다. 아직도 주님 안에서 믿음이 없고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한다. 자신에게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이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깨닫고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오시기 바란다.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하고,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는다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됨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며,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먼저 믿은 주의 자녀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기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 성벽 재건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52일만에 끝나게 되었다. “성 역사가 오십 이 일만에 엘룰월 이십 오일에 끝나매.”(6:15)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일은 결국 성취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그분의 역사에 동참하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그분의 큰 역사가 일어나길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110:3) 우리를 통해 일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한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2:13)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큰 경륜을 깨닫고 행하며 그분께만 영광을 올려 드리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13:21)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지 않은 세상 가운데서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일은 성취가 됨을 깨닫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믿음 안에서 잘 인내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자!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믿음 안에서 잘 인내하여 위대한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유다 백성들은 성벽 재건의 역사를 경험하며 기뻐한다. “이날에 무리가 크게 제사를 드리고 심히 즐거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크게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부녀와 어린아이도 즐거워하였으므로 예루살렘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느니라.”(12:43) 유대인들이 성벽을 재건할 때에 당한 고난과 환난은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니었다. 우리는 불순종 이외의 이유로도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겪을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고난 속에서 강인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져가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한다. 신앙생활 하는 동안 주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자! 원수들의 비난과 조롱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더욱 바라보며 그분께 기도하는 자!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일은 반드시 성취됨을 깨닫는 자! 이런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 앞에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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