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고!

성경: 에베소서 4:17-24

4:17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4: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4: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4: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4: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4: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4: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1. 하나님을 사랑

어린 소년이 아버지인 비클리주교에게 아버지 성경에 나오는 그룹과 스랍의 뜻이 무엇인지 설명해 주세요.’라고 했다. 그는 아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룹이란 지식을 뜻하는 히브리 말이고, 스랍은 열정을 뜻한단다. 그러므로 그룹은 특별히 지식에 뛰어난 천사이고, 스랍이란 하나님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천사라고 생각되어지는구나!’ 그 후, 어린아이는 맑은 눈을 반짝이며 그렇다면 저는 죽어서 그룹이 되기보다는 스랍이 되겠어요. 많은 지식을 갖기보다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겠어요.’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믿음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뛰어넘어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소망한다. 어떠한 상황과 형편 가운데서도 날마다 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삶

본 장에는 만유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교회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교훈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원대하신 경륜과 예정, 구속, 화해 등의 교리와 함께 교회론을 다루었지만, 본 장에서부터는 그러한 내용들을 삶의 구체적인 영역에서 어떻게 적용시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본 장은 교리적인 원리에서 실천적인 적용으로 넘어가는 분수령이라 할 수 있다. 교리와 실천은 따로 분리되어 있거나 서로 관계없는 것이 아니라 한 사건의 원인과 결과처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교리처럼 그에 부응하는 실천적 삶도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본 장의 내용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1-10), 그리스도 안에서의 연합(11-16),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운 생활(17-24), 새로운 생활의 법칙(25-32)으로 구성되어 있다.

 

3. 허망한 것으로 행하지 말고(17-18)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무엇을 행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얻은 믿음의 사람들은 육신의 삶, 허망한 것으로 행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4:17-18) 바울은 성도들에게 이방인의 허망한 것으로 행치 말라고 명한다. 이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죄악 된 삶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 그들은 마음에 하나님이 없으므로 무지함과 완악한 모습을 보였다. 즉 그러한 자들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으므로 사망의 길을 행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거나, 마음이 완악함으로 인하여 허망하게 행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육으로 살아가지 말고 영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고전 15:50) 우리는 혈과 육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날마다 영적으로 변화 받는 삶을 살도록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날마다 성령의 사람으로 조금씩 변화 받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육신의 생각을 멀리하는 자, 하나님의 법을 따라가기를 힘쓰는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로 살아갈 것을 결단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7-8)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날마다 멀리하고, 하나님의 법에 순복하며 살 것을 선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라면, 성령님과 동행하며 죄와 싸워 이기는 삶, 날마다 천국 백성의 삶을 살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도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9-11)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이제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의 말씀을 잘 깨닫고, 완악한 마음으로 허망한 일을 행하지 않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지혜로운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생명 가운데 거하는 삶을 사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감각 없는 자가 되지 말고(19-20)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4:19-20) 주의 자녀들이 완악한 마음을 품는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잠시는 가만히 두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완악함을 인하여 방탕과 죄악의 길로 행하도록 방임하여 두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대로 보응하시기 위하여 진노의 불을 예비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깨닫고 감각이 없이 더러운 것을 행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 우리는 이방인처럼 음란, 정욕, 술취함, 방탕, 우상숭배를 행하지 않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감각이 없이 정욕대로 행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힘쓰는 자가 아닌, 자신이 주인이 되어 인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1:28) 우리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열방에 있는 주의 백성들의 마음이 날마다 주님을 갈망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셨다. 예수님은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확증하셨다. 우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이러한 예정된 역사가 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기 위한 놀라운 사랑의 사건임을 깨달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 5:14-15) 구원받은 주의 자녀들은 이제 가 주인인 삶이 아닌 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직도 예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어 들이지 않는 분들이 있다면 있는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자신에게 큰 죄, 작은 죄, 어떠한 죄가 있다면 그 죄의 본성을 가진 인간은 모두 전적 부패한 존재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원죄를 사하실 능력이 있으신 예수님 앞에 나아와야 한다. 우리는 자기 뜻대로 살아갔던 과거의 삶을 회개해야 한다. 하나님은 죄인들이 예수 십자가의 보혈로 깨끗이 씻음을 받아 새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심을 기억하고, 자신이 주인이었던 삶을 회개하고 마음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를 기도한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면서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를 향한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을 기억하고, 날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5.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21-22)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생활을 하면서 무엇을 벗어 버려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려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4:21-22) 우리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이방인 중에 있어 그들이 행하는 허망한 것을 좇아 행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지음을 받은 자가 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와 생명의 길을 가르침 받은 자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이다. 우리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의 힘으로는 되지 않지만, 성령님이 도울 때 우리는 이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우리의 과거의 삶은 어떠했는가?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던 자였다.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1:13)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변화를 받아 주의 일에 충성을 다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갔다. 우리 또한 바울과 같은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자신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리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종노릇하는 삶을 살지 않을 것을 날마다 선포해야 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6:6) 우리는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 정욕대로 살아갔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중보기도 해야 할 것이다. 날마다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소망한다. 어제와 오늘이 같은 믿음, 언제나 같은 수준에 머물러 있는 믿음이 아닌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신의 모든 잘못된 습관을 멀리하고, 영적인 세계에서 날마다 주님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권면한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1-2) 우리는 외식을 멀리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 주를 기쁘시게 해야 할 것이다. ‘는 무엇을 결단할 수 있겠는가? 날마다 성령님의 은혜로 변화 받기를 소망한다. 이제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 심령이 새롭게 되어(23-24)

우리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심령이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에 이르는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본문에서 바울은 이렇게 권면한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4:23-24)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된 자로서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으로서 자신을 계시하시고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님께서 도울 때 우리는 그러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51:10) 날마다 영이 새롭게 되는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는 죄악으로 달려가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주의 역사에 귀하게 쓰임을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의 말씀을 잘 깨닫고, 완악한 마음으로 허망한 일을 행하지 않는 자! 감각 없는 자가 되어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지 않는 자! 날마다 성령님의 은혜로 변화를 받아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으로 사는 자! 우리 모두가 이러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 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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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6. 25. 11:08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로마서 9:30-33

말씀: 믿음으로 승리하는 자

성경: 로마서 9:30-33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9:31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9:32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

9:33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1. 지식의 유행

시골에서 올라온 한 남자가 있었다. 그는 일류신사가 되고 싶어 어느 영화에서 본 영국 신사 모자를 고물상에서 구입했다. 그리고 헌 양복 한 벌을 사서 입고 길을 가다가 조끼를 입은 사람이 눈에 띄어 조끼를 사서 입었다. 또 어떤 사람이 넥타이를 매니 그도 넥타이를 사서 매었다. 또 보니까 어떤 사람이 안경을 쓰고 다니기에 안경을 쓰고, 서부 영화를 보니까 작업복 같은 바지를 입고 다니기에 작업복을 하나 사서 입었다. 모두 다 괴상한 것만 입고 다닌다. 그러나 그는 자기가 근사한 신사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우리도 자신에게 맞지 않는 여기저기 유행하는 사상을 가져다 자기의 지식으로 만들지는 않는가? 이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비하면 가치가 낮은 것이다. 바울은 세상의 많은 지식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참 만족을 얻었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아갔다.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인가? 우리는 예수님의 참 제자로서 예수님을 믿고 따라가는 것을 최고로 만족하며 기뻐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2. 구원의 은혜

바울은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은혜를 받기 원한다고 말하면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인한 구원의 원리를 설명한다. 유대인들은 교만하여 스스로의 의로 구원을 얻으려고 함으로써 그리스도가 그들의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특권을 가졌던 민족은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임에 있어서는 이스라엘보다 이방인이 우세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다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은 아니었다(1-13). 인류의 구원 운동은 하나님의 선택 행위에서 비로소 일어났다. 그 선택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과 불변의 결정으로 되어지며(14-16), 유기될 자를 동반한다. 이러한 유기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 부터 어떤 자들을 구원하시지 않기로 작정하신 사실을 가리킨다(17-33).

 

3. 믿음과 율법(30-31)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받고,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게 된다. 이 땅에서의 삶은 계속 될 수 없으며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된다. 반드시 죽게 되는 우리는 천국 아니면 지옥에 가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되는 특권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하여 천국 백성이 되었을까?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여 주님 앞에 나아갔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 자신의 의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난 의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믿음에서 난 의

유대인들은 특별히 하나님께 선택 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이방인들은 그들에 비하면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구원에 있어서 이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는 복을 누리게 됨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복을 받게 되었는데 그들의 의는 믿음에서 난 의였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의를 따르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9:30)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힘은 놀랍다. 복음에는 능력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데 그 피의 은혜는 로 하여금 주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에 이르게 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새롭게 된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을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이르게 됨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에 차별이 없음을 감사해야 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3:22)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 믿음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 가운데서 살았다. 유대인들은 할례를 받았는데 할례의 역사는 아브라함의 때에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계약)을 맺으신 후(15), 언약의 표로서 모든 남자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자손을 포함하여 돈으로 산 노예와 그 자식들도 모두 할례 받을 것이 명해졌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았고, 그 때부터 행해진 할례의 행위를 통해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고, 할례가 믿음으로 된 의에 대한 표시임을 기억해야 한다.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 할례 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 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4:11)

바울은 자신이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았다고 말한다.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3:9) 주 안에서 그분의 의를 힘입어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좇으며 살아가야 할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권면한다. 세상 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라 말한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딤전 6:1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지었던 노아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였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 그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방주를 예비했다. 그리고 구원받는 은혜를 누렸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11:7) 우리는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로서 살아가야 한다.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하지 말아야 한다.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이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벧전 4:3) 이방인이지만 예수님의 큰 사랑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주 안에서 새 생명을 갖게 되었음에 감격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율법의 역할

인간이 율법을 다 지키며 살아갈 수 있을까? 유대인들은 의의 법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누구보다 더욱 힘썼다. 그러나 의의 법을 따라간 그들은 율법에 이르지 못했다. “의의 법을 따라간 이스라엘은 율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9:31) 그렇다면 율법은 무슨 일을 할까?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한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3:20) 율법은 무엇이며 믿음은 무엇인가? 바울은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이 헛것이 된다고 말한다. 세상을 얻을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면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되며 하나님의 약속도 무가치하게 된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4:14-15)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만일 세상을 얻을 사람들이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면 믿음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약속도 무가치합니다. 율법은 아무리 잘 지키려고 해도 어기기 마련이며 그 결과로 하나님의 노여움만 사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이 없으면 자연히 어기는 일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4:14-15) 율법은 우리의 모습을 살피게 하는 역할을 하며 율법을 통해서는 의롭게 되지 못한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3:10-11)

율법을 완벽하게 지키며 살아가는 자는 없다. 율법 중 하나만 어길지라도 모두 범한 자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간음하지 말라 하신 이가 또한 살인하지 말라 하셨은즉 네가 비록 간음하지 아니하여도 살인하면 율법을 범한 자가 되느니라.”(2:10-11)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아갈 수 있으며 믿음의 자손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 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4:16)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로서 율법을 통해 죄를 깨닫고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 힘쓸 것을 선포해야 한다.

 

4. 하나님의 은혜(32-33)

우리에게 베푸는 하나님의 은혜는 놀랍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고 그 분을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살아가게 하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는 의지를 통한 행위로는 한계에 부딪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소망임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기쁨 가운데서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여야 한다.

 

행위를 의지하지 말고

바울은 유대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았고 행위를 의지했다고 말한다. 자신의 노력을 통해,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나약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에 이른다는 복음과 충돌하게 된다. “어찌 그러하냐. 이는 그들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칠 돌에 부딪쳤느니라.”(9:32)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믿음이 아닌 행위로 그것을 추구하다가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9:32) 어느 날 예수님께 청년이 찾아왔다. 그는 예수님께 묻는다.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주의 계명을 잘 지킨 그에게 예수님은 재물을 팔고 자신을 따르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가로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가로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가로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19:16-20) 우리는 율법을 지키는 것을 넘어 주님을 사랑하고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일하려 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6:27-29)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신 일들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신 후 자신을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7:23)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들을 통해서라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을 열심히 증거하다가 옥에 갇힌 바울과 신라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그들은 옥에 갇혀서 찬양을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옥 문이 열리고 그들의 몸은 자유를 얻게 되었다. 옥에서 나온 바울과 신라를 지키고 있던 간수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적을 본 간수들은 바울과 신라에게 어떻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 묻는다. 그리고 바울과 신라는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에 이르게 됨을 말한다.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저희를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주고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16:30-34)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구원이 있다.

우리는 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고전 1:23) 세상 사람들에게 미련하게 보일 수도 있는 복음을 기쁨으로 전하기를 힘써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큰 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아들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어떠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는 아들이 있는 자에게 생명이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사람들의 증거를 받을진대 하나님의 증거는 더욱 크도다. 하나님의 증거는 이것이니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것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에 관하여 증거하신 증거를 믿지 아니하였음이라.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9-12)

 

예수님을 믿는 자

세상에서 어떤 사람이 제일 복 받은 자일까? 예수님을 믿는 자가 가장 복 받은 자이다. 율법만을 좇으며 구원을 찾는 자들은 걸림돌에 걸릴 수 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는 말씀 앞에 넘어질 수 있다. “기록된 바 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바위를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9:33)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기록한다. “이것은 성경에 보라! 내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바위를 시온에 둔다. 그러나 그를 믿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쓰인 말씀과 같습니다.”(9:33) 예수님은 우리 중 누군가에게는 시험의 돌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돌은 견고한 기초의 돌이고 그것을 믿는 자는 안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28:16) 예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나 건축자들의 버린 돌은 곧 구원의 반석이 되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21:42) 우리는 기록된 성경 말씀 중에서도 예수님에 관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고 또한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이 되었다 하니라 저희가 말씀을 순종치 아니하므로 넘어지나니 이는 저희를 이렇게 정하신 것이라.”(벧전 2:7-8)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될 것이다.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10:11) 우리는 자신의 삶이 주 안에서 은총이 넘치도록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기도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로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로 나를 이기어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무고히 속이는 자는 수치를 당하리이다.”(25:2-3) 성경에서 주님을 따르며 겪게 되는 고난도 문제 삼지 않았던 이는 누구였을까? 바울은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않고 담대히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예수님이 존귀히 되게 하려 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1:20) 주님만이 자신에게 살아 역사하시기를 소망했던 바울은 고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우리는 자신의 의지를 뒤로 하고 예수님에 관해 기록된 성경 말씀을 등불로 삼아야 한다.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의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먼저 모셔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을 온전히 잘 따라가기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하며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5. 믿음으로

에게 있어서 큰 기쁨은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은 구원의 은총을 받았다는 사실에 있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생활이 평안을 보장받고 윤택한 삶을 누릴 수 있음에 기뻐해서만은 안 된다. 우리가 진정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영원한 형벌 가운데서 아무런 조건도 없이 생명의 자리로 옮겨진 것이다. 이 기쁨은 어떤 환난이나 역경 속에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강한 확신과 새로운 힘을 준다. 이 기쁨을 우리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예수님 밖에서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실 것이다.

때로는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 고단하고 시련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은 우리의 믿음의 시련이고 연단이며 주님 앞에서 칭찬과 영광과 존귀함을 얻게 하기 위한 매우 가치 있는 과정임을 기억해야 한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벧전 1:7) 어느 때에든지 주 안에 거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성령님의 도움으로 언제든지 예수님을 잘 바라보고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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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랑이 넘치는 주의 자녀

성경: 마태복음 5:43-48

5: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5: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5: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5: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1. 속마음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 열 두명을 직접 뽑았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은 마귀이며 멸망의 아들이다. 그가 나를 팔 것이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깜짝 놀랐다(6:70-71). 그때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큰돈을 벌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속마음은 어떠한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예수님을 이용해 돈 좀 벌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룟 유다과에 속한 사람들일 수 있다. 모든 죄인을 사랑하셨던 예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우리는 그 사랑을 넉넉히 누리고 그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2. 예수님의 천국 복음 전파

본장은 산상보훈이 있는 장이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천국 백성들이 살아야 할 삶의 규범과 생활 헌장을 모세의 율법과의 관계 속에서 전해 준 내용을 기록해 놓은 장이다. 여기서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을 뛰어넘어 모든 인간의 삶이 존재의 본질에 기초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해 주신다. 예수님은 산에 오르셔서 제자들을 가르치셨다(1). 팔복에 관하여 가르치셨고(2-12), 제자의 참 모습과 사명에 관하여 가르치셨으며(13-16), 율법의 가치에 대하여 가르치셨다(17-20). 한편, 살인과 간음과 이혼과 맹세와 동형 복수법에 관한 모세의 율법을 전적으로 새롭게 재해석해 주셨다(21-42). 그리고 적극적으로 이웃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는 선언을 하신다(43-47). 이 모든 것의 근원적 이유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서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들이 온전해야하기 때문이다(48).

 

3. 원수에게(43-44)

우리 안에는 누구의 생명이 있는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예수의 생명이 있다. ‘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고 주의 자녀가 되어 살아가는 자가 바로 우리이다. 예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너무나도 사랑하신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의 원수도 사랑하신다. 인간은 연약한 자이기 때문에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원수를 사랑해야 할까? 주님은 원수도 사랑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원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주님은 우리가 원수를 사랑하기를 바라신다.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장성한 믿음과 뜨거운 사랑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원수 사랑

원수를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보통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지만 원수는 미워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5:43) 우리는 연약한 자들이어서 우리를 힘들게 하는 원수를 사랑하지 못한다. 인간의 능력으로 이것은 불가능 할지 모른다. 하지만 성령님이 도울 때 상황이 달라 질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원수에 대하여 선대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진리와 공의를 유지할 의무를 주신다. 개인적인 반감이나 증오심은 사람으로 하여금 불의하고 야비한 행동을 하게 하는데, 하나님은 원수의 것이라도 잃어버리지 않도록 보호라고 명하신다. “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만나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러짐을 보거든 삼가 버려두지 말고 그를 도와 그 짐을 부리울지니라.”(23:4-5) 뿐만 아니라 이웃사랑을 자신의 몸과 같이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19:18)

예수님은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9-40) 우리는 자신을 학대하거나 미워해서도 안 된다. 그리고 이웃을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한다. 우리는 주 안에서 새 생명을 가진 자로서 예수님이 주신 참 자유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이 자유를 잘못된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바울은 자유로운 자로서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고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 이루었나니.”(5:13-14) 우리 안에는 오직 사랑만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사랑함으로 우리가 주 안에 거하고 있음을 스스로 확증해야 한다.

 

박해자를 위하여 기도

우리는 자신의 원수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우리는 성령이 충만할 때에 원수를 사랑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았을까?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며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라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5:44) 주님으로부터 부어지는 사랑이 우리에게 넘쳐나서 원수를 사랑하고, 성령님의 도움으로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우리는 원수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을까? 원수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사랑이 충만한 자들이 되어야 한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는 네게 상을 주시리라.”(25:21-22) 표준 새 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 하거든 마실 물을 주어라. 이렇게 하는 것은, 그의 낯을 뜨겁게 하는 것이며, 주께서 너에게 상으로 갚아 주실 것이다.”(25:21-22) 원수에게 먹을 것과 물을 주는 것은 사랑 없이는 불가능 하다. 그러나 우리가 뜨거운 사랑으로 원수에게 행한다면 원수도 그 사랑으로 인해 자신을 돌아보게 될 것이다.

주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는 우리는 다른 이들을 화평케 하고 축복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5:9)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가는 곳곳마다 화평케 되는 역사가 있게 될 것을 선포해야 한다.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위해 축복하는 은혜가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6:27-28) 우리는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 집사를 잘 알고 있다. 그는 원수를 사랑했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원수들을 위해 기도했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7:60) 성령님이 도울 때 우리도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빛이신 예수님이 임하시면 어두움은 물러간다. 주 안에서 선은 악을 물러가게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무엇이 최고의 복인가? 악한 자들에게 선을 행하고 승리하며 살아간다면 우리는 복 받은 자들이다. 바울은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말한다.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12:20-21) 우리는 주 안에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음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로서 빛으로 살아가야 한다. 상대가 행하는 악과 욕에 그대로 반응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빌어 주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3:9) 원수를 위하여 기도 할 수 있도록 성령의 충만함을 입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주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여 주님이 주시는 넘치는 복 가운데 살아갈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

4. 하나님의 자녀(45-47)

하나님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보편적인 은혜를 베푸는 분이시다. 예수님을 마음 가운데 영접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주신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도 크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아직 영접하지 않은 자들에게도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 우리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느끼고 그분을 더욱 알아가기에 힘써야 한다. 우리는 를 사랑하시는 그 큰 사랑을 잘 경험하고 그 사랑을 어느 누구에게든지 흘러 보낼 수 있는 복된 자들이 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아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 우리에게 못 마땅한 이웃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는 자들이 될 때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주님께 기쁨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할 때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나님은 악인과 선인에게 동일한 해와 비를 주시는 분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5:45) 공동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그래야만 너희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이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악한 사람에게나 선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옳은 사람에게나 옳지 못한 사람에게나 똑같이 비를 내려주신다.”(5:45) 하나님은 긍휼을 베푸는 분이시다. 다윗은 찬송 시에서 주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 대해 긍휼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145:9) 우리는 긍휼의 주님을 기억하고 주의 아들로서 누구든지 사랑할 수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 삶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합하도록 힘써야 한다. 예수님을 믿는 자로서 말씀대로 살아가야 한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의 삶에 비춰져야 한다. 우리는 무엇을 주의해야 할까? 예수님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6:1) 하나님께서 주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보응하실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의 씨가 우리 안에 거하면 우리는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거룩하신 하나님을 따라 우리도 힘써 죄악들을 멀리하고 주님을 잘 따라 살게 될 수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제자로서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13:35)

 

누구든지 사랑

우리는 누구를 가장 사랑하고 있는가? 누구에게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도 하는가? 우리는 자신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을 기억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어 준 이들에게 비슷한 사랑, 또는 그 이상의 사랑을 베푸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하는 사랑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 조건 없는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흘러 보내며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세리도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함을 말씀하시며 그리스도인들은 이방인과 달라야 함을 말씀하신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이 당시의 세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좋지 않았다. 이 세리들은 로마 정부에서 거두어들이는 금액 이상으로 가능한 한 지방에서 돈을 징수하여, 그 여분의 돈을 자기의 것으로 하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의 세리는 민중으로부터 배척과 비난을 받았다. 그들은 유대인 사회에 용납되지 못하고, 그들의 친구로 되는 사람마저 배척되었다. 그래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마태의 집에 들어가 음식을 드시자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했다.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9:10-11) 이런 세리들도 보편적인 사랑은 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바라보기도 했는가?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자로 보기도 했다.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의 친구가 되셨기 때문이다.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11:19)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이 참이었음을 알고 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셨는가?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 우리는 죄인들도 자신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을 기억하고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6:32) 우리는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따라 성령님이 주시는 은혜로 충만한 사랑이 누구에게든지 흘러가도록 힘써야 한다.

5. 온전한 주의 자녀

하나님은 완벽하신 분이시다. 완벽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 이 땅 가운데 살아가면서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 우리는 어떠한 자들이 되어야 할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우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5:48) 우리는 온전한 주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성령님의 은혜를 구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주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구별된 자들로서 거룩한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한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바 기어다니는 것으로 인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11:44)

욥은 하나님께도 인정을 받은 자였다.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였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2:3) 우리는 욥처럼 악에서 떠난 자로서 주를 경외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빛이신 예수님이 다른 이들에게 드러나기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6) 우리 모두가 온전한 주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성령님의 은혜로 우리 가운데 원수조차 사랑할 수 있는 충만한 사랑이 허락되어 사랑이 넘치는 주의 자녀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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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묵상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5. 5. 05:40

정욕을 따르지 말고.

정욕을 따르지 말고.

(바른성경) 데살로니가전서 4:5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처럼 정욕을 따르지 말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처럼 정욕을 따르지 마는 '우리'가 되게하여 주옵소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아멘.~^^♥

(영어KJV) 데살로니가전서 4:5 Not in the lust of concupiscence, even as the Gentiles which know not God:

(영어ASV) 데살로니가전서 4:5 not in the passion of lust, even as the Gentiles who know not God;

(헬라어신약Stephanos) 데살로니가전서 4:5 μη εν παθει επιθυμιας καθαπερ και τα εθνη τα μη ειδοτα τον θεον

(히브리어Modern) 데살로니가전서 4:5 ולא בתאות זמה כדרך הגוים אשר אינם ידעים האלה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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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7. 11:24

주님 앞에서의 인생, 시편 144:1-11

주님 앞에서의 인생, 144:1-11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144: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144:2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144: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144: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144:5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

144:6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

144:7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144:8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의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44:9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144:10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144:11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 유머: 관리비 청구서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가 없네. 어디로 갔지.. 분명히 여기 이 가방에 두었는데벌써 30분이 넘게 가방을 뒤지는 아내. ‘안되겠어, 관리사무소에 가봐야겠다.’ 관리사무소에 가서 재발급을 요청하니 이미 납부가 되었다고 한다. 더 당황한 아내는 신랑에게 전화해 봤다. ‘아니 내가 그런 거 내는 거 봤어요?’ 남편이 말한다. 점점 더 오리무중이다. 다시 집으로 와서 다시 가방을 찾아보다가 점점 사색이 되어가는 아내. 며칠 전 아버님 생신이어서 부랴부랴 준비를 하고 외출을 하면서 우체통에서 편지뭉치들을 꺼냈다. 식구들과 만나서 식사를 한 후 헤어지면서 뒤늦게 생각나 아차하며 아버님께로 갔던 아내. ‘아버님 이거~’ ‘머 이런 걸 됐다’ ‘아이 아버님 성의니까 받아주세요.’ ‘괜찮대도 그러는구나.’ ‘아잉, 아버님.’ 극구 사양하시는 아버님께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자켓 주머니에 넣어드렸던 봉투가 아내 손에 그대로 남아 있다니. ㅠㅠ

 

2. 도우시는 하나님

다윗은 전쟁에서 여러 번 기적적으로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도움을 찬송하고 있다(1). 다윗은 사울의 손에 여러 번 죽을 뻔 했으나, 그때마다 하나님의 보호를 받은 것이 너무 신기하여서, 그에 대한 감사와 감격을 지금도 갖고 있다(2-4). 그리고 현재 당하고 있는 난관을 이길 수 있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원한다(5-11). 다윗은 자기를 괴롭히는 원수들의 특징으로 '거짓 행동' 을 고발한다. 다윗에게 있어서 궤사한 말과 그런 행위의 소유자는 가장 큰 대적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진노가 나타나기를 청원한다. 또한 장차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가 하나님의 은혜로 안정될 것을 확신하였기 때문에 그것을 현재의 사실처럼 감사한다(12-15).

 

3. 찬양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훈련시키시어 강한 용사가 되게 하셨음을 찬양하면서, 자신을 핍박하는 대적들의 거짓됨에 대해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하셔서 자신을 곤경에서 구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또한 시인은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는 복에 대하여 증거하며,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심을 말한다.

 

4. 하나님과 인생(1-4)

하나님 앞에 우리의 인생은 어떠한가?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며,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인간을 구원하시고, 인간을 어려움 가운데서 건져주실 수 있는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계신 분, 최고의 능력이 있으신 분은 바로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반석이신 여호와

다윗은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심을(1) 고백한다. 다윗이 많은 전쟁가운데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다윗의 편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이는 전쟁, 보이는 싸움, 보이는 환경의 어려움, 또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전투, 그 어디에서라도 승리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보이는 환경 가운데서, 내게 원수라고 생각되는 자들을 대할 때에도 영적인 부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한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4)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반석이신 여호와만을 바라고 의지하며, 강건한 자들로 잘 훈련 받아야 한다. 바울은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6:10-11)고 말한다.

 

나의 사랑, 요새

다윗은 하나님께 나의 사랑, 나의 요새, 나의 산성, 나를 건지시는 이, 나의 방패이심을 말하며,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2)고 고백한다. 하나님께 사랑의 노래와 고백을 올려드리는 다윗의 모습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며, 하나님만 바라보도록 우리에게 도전을 준다. 하나님이 수많은 전쟁을 치렀던 다윗은 능력으로 띠를 띠우사 자신을 치는 자들로 굴복케 하시며, 원수와 자신을 미워하는 자를 끊어버리게 하심을 말하고, 저희가 둘러보아도 구원할 자가 없었고 오직 하나님만이 승리자이시고, 승리케 하시는 분이심을 말하며, 구원의 바위이신 하나님을 높인다(삼하 22:40-48).

 

인생이 무엇이기에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 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3-4) 다윗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은 인생을 생각해 주시는 주님을 묵상하는데, 우리 또한 하나님 앞에서는 짧은 시간동안 작은 사람으로서 살아간다. 그러한 우리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큼을 고백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좋은 환경과 형편가운데서도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하는 겸손한 자들이 되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146:3-4) 우리는 한 평생 사는 동안 사람들과 원수를 맺어서도 안 되나, 혹 어려움 가운데 있다면 주님을 의지하고 불변하시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5. 원수들 앞에(5-8)

하나님 앞에 선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원수들은 있을 수 있다. 우리 앞의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원인을 알 수 없는 대적들이 생길 수도 있다. 뚜렷한 이유가 없지만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원수들 앞에서 우리의 반응은 어떠해야 할까? 우리를 무너뜨리려하는 어떤 이들에게, 그들이 취했던 행동과 같은 태도로 대한다면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자들이 아닐 수 있다. 오직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기도하며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시선을 결코 빼앗기지 않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한다.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5)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주님, 하늘을 낮게 드리우시고, 내려오시며, 산들을 만지시어 산마다 연기를 뿜어내게 하십시오.”(144:5)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고, 만물은 그 분 앞에 진동하기도 한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19:18)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강행하시도록 탄원하는데,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대적으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열방으로 주의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64:1-2)라고 말한다.

 

원수들을 무찌르시고

하나님이 일하시면 원수들은 물러가게 된다. 다윗은 기도한다.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6)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구름이 물을 쏟고 궁창이 소리를 발하며 주의 살도 날아 나갔나이다 회리바람 중에 주의 우뢰의 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취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77:17-18)

 

주의 손을 펴사

주님은 우리를 구하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7)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기록한다. “높은 곳에서 주의 손을 내미셔서 거센 물결에서 나를 끌어내시고, 외적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십시오.”(144:7) 또한 시편기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다. “나를 수렁에서 건지사 빠지지 말게 하시고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서와 깊은 물에서 건지소서 큰 물이 나를 엄몰하거나 깊음이 나를 삼키지 못하게 하시며 웅덩이로 내 위에 그 입을 닫지 못하게 하소서.”(69:14-15) 하나님만이 만물 중에서 높으신 분임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여 큰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물이 그 소리를 높였고 큰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시니이다.”(93:3-4)

 

거짓을 말하는 이들

원수들은 대부분 거짓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거짓에 반응할 이유는 없다. 다윗은 고백한다.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의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7) 시편기자는 이렇게 고백한다.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12:2), 저희가 그를 그 높은 위에서 떨어뜨리기만 꾀하고 거짓을 즐겨하니 입으로는 축복이요 속으로는 저주로다(셀라).”(62:4)

 

우리는 원수들 앞에 지혜롭게 반응해야 한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모든 일을 고하며 도움을 구하는 믿음이 필요하다. 인내하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는 태도를 갖는 그리스도인들은 복 받은 자들이 분명하다.

6. 구하시는 주(9-11)

주님을 찬양

우리는 주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원수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 승리케 하실 주, 승리케 하신 주님을 높여야 한다. 다윗은 주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9) 주님을 잘 의지하여, 되어진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만 찬양하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한다. “나팔 소리로 찬양하며 비파와 수금으로 찬양할지어다 소고 치며 춤 추어 찬양하며 현악과 퉁소로 찬양할지어다 큰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할지어다.” (150:3-5)

 

구하여 주소서

주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0-11)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과 동행하여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여호와께서 너희 곧 너희와 또 너희 자손을 더욱 번창케 하시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115:14-15)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미래를 책임지시며 그들의 삶을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께 잘 붙들리어 주님 앞에서 주님께 합한 인생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7.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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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7. 11:16

성령으로 사는 삶, 사도행전 10:44-48

성령으로 사는 삶, 행 10:44-48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10:44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10:45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10:46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10:47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
10:48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

1. 20번의 선
하루는 남편이 TV를 보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당신 결혼하기 전에 선을 20번두 더 봤다며?" 남편의 말에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랬었죠" 그러자 남편이 얼굴에 약간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당신이 그 많은 남자들 중에서 날 선택한 이유가 뭐야?" 그러자 아내가 남편을 한번 째려보더니 말했다. "그거야. 그 20명 중 나와 결혼하길 원했던 사람은 당신뿐이었으니까요!" ㅠㅠ

2. 성령강림
고넬료 가의 성령 강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이는 바울의 회심과 더불어 기독교의 세계적 확산의 기틀을 마련한 사건이다. 고넬료와 베드로의 만남을 가능하게 된 것은 피지배국인 유대와 지배국인 로마 사이에 가로막힌 장벽을 깨뜨리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이다. 본장에서 베드로는 가이사랴에 이르러 고넬로의 회심 사건을 이행하고 본 장 이후에는 바울이 서서히 전도 사역의 핵심을 이루게 된다. 이러한 본장은 고넬료의 환상(1-8절), 베드로의 환상(9-16절), 고넬료와 베드로의 상면(17-33절), 베드로의 말씀 증거(34-43절), 성령 세례(44-48절)로 구성되어 있다.

3. 하나님의 은혜(44-46)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얼마나 잘 살아 갈 수 있을까? 우리의 힘만으로 잘 살아갈 것 같지만, 결코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것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떠한 은혜를 주시는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제자로서 하나님의 은혜 없이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어렵기만 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기쁨 가운데서 주님을 섬길 수 있게 하셨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을 허락하신 좋으신 하나님을 높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성령은 무엇인가? *성령(聖靈): Holy Spirit [그]pneu'ma(pneuma), [句](tov)pneu'ma (tov)a{gion [영]Holy Spirit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용어. 삼위일체에 있어서, 아버지이신 하나님, 아들이신 하나님(그리스도)과 구별되는 제3위격. 그 본질은 한가지로서 삼위일체를 형성한다.

성령의 내려오심
성령님은 언제 역사하는가?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서 설교를 할 때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셨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44)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듣는 가운데 성령님이 역사하시기를 기대하며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놓인 사도들이 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말 한 후 무리들이 기도하자 하나님은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고 그들은 말씀을 전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또한 베드로가 가이사랴에서 보낸 세 사람에게 말 할 때 성령님이 그들에게 역사했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저희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행 11:15)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은 이방인들을 포함하여 모든 사모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시는 분이시다.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45).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 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주시는 선물을 능히 막을 자가 없으며 하나님은 이방인에도 회개할 은혜를 주심을 말한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 주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6-18)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죄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한다.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골 2:13-14) 이방인에게도 은혜를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방언을 하고 하나님을 높임
성령이 임하게 되면 어떠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며, 우리는어떠한 자세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할까? 그리고 교회에는 어떠한 유익이 있을까?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이 내려오시니, 그들은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을 높이게 되었다.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46) 또한 바울이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에게 안수하매 그들도 성령을 체험하게 되었다.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행 19:6)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방언과 예언에 대해 말하는데, 이들은 숨은 일을 드러나게 하며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계심을 알게 도움을 말한다.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율법에 기록된바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다른 방언하는 자와 다른 입술로 이 백성에게 말할지라도 저희가 오히려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방언은 믿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지 않고 믿는 자들을 위함이니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러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나 무식한 자들이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책망을 들으며 모든 사람에게 판단을 받고 그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게 되므로 엎드리어 하나님께 경배하며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 가운데 계시다 전파하리라.”(고전 14:20-25) 하나님이 성령을 통해 허락하신 은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되신 교회 안에서 덕이 세워지고, 하나님께만 더욱 집중하여, 주님을 높이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이다.

4. 성령세례 받으면(47-48)
하나님은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허락하신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게 되는 자들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공로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며, 예수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시게 역사하신다.

물로 세례를 줌
믿는 자들에게 베풀게 되는 세례는 무엇인가? *세례(洗禮): Baptism [그]baptisma(baptisma) [영]Baptism 물을 붓고, 또는 물에 침수되는 것에 의해 그리스도교회에 입회하는 의식을 세례라고 하는데, 카톨릭 교회도 프로테스탄트도 이것을 성례전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역사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 들인 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야 한다. 베드로는 말씀을 듣고 성령을 받은 자들에게 세례 주기를 금할 자가 없다고 말한다. “이에 베드로가 이르되 이 사람들이 우리와 같이 성령을 받았으니 누가 능히 물로 세례 베풂을 금하리요 하고.”(47) 에디오피아 내시는 빌립에게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기를 소원했다.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뇨.”(행 8:36)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마음을 깨끗이 하고 차별하지 않음을 말한다.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행 15:8-9)

더 머무르기를 청함
하나님의 은혜가 있는 곳에는 더 머무르기를 청하는 역사기 일어난다. “명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라 하니라 그들이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기를 청하니라.”(48) 바울의 무리는 빌립보에서 여인 루디아에게 세례를 주었고, 여인은 강권하여 집에 들어와 머물기를 소원했다.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행 16:15) 바울은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음을 말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언제나 성령의 은혜로 주 안에서 함께 머무르기를 힘쓰며,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 우리는 주 안에서 복 받은 자들이다.

5. 성령 충만한 생활
하나님께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성령님, 그리고 믿는 자들에게 계속해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과 동행하며, 주 안에서 충만한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이 된다면 하나님께 감사한 일이다.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말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엡 5:18) 구원의 투구를 쓴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를 간구하며, 성령의 감동하심에 의해 쓰인 하나님의 말씀이 성령의 은혜로 삶 가운데 충만하게 역사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엡 6:17) 성령 안에서 깨어서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주님의 역사에 함께 동참하여 충성된 주의 일꾼으로, 그리고 주 안에서 하나가 되어 서로 사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엡 6:18)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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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TV/설교문 | Posted by 데일리 푸드 2016. 1. 7. 11:13

염려하지 말고, 마태복음 6:27-34

염려하지 말고, 6:27-34 (대한성서공회 개역개정판 1998)

6: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6: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6:29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6: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1. 간절한 기도

표류당한 두 사람이 구명보트에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망망한 바다뿐이었다. 한 사람이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 하나님! 만약 저를 구해 주신다면 저의 재산의 절반을 바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런 희망이 보이 질 않았다. 오히려 풍랑만 더 심할 뿐이었다. [!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신다면 제 재산의 3분의 2를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 다시 아침이 되어도 구원의 손길은 닿지 않았다. 한 사람은 다시 간절한 기도를 시작하였다. [하나님, 제발 저의 이 간절한 기도를 받아주십시오. 제 목숨을 구해주신다면 저의 재산....] 그때 다른 한 사람이 소리쳤다. [이봐, 거래를 중단해! 저기 섬이 보여!]

 

2. 천국 시민의 생활

예수님은 천국 시민의 기본 생활인 구제 생활과 기도 생활, 금식 생활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셨다(1-18). 그리고 세상의 그릇된 가치관을 비판하시고, 보물을 하늘에 쌓을 것을 권면하시며,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입히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오직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것을 권면하신다(19-34).

 

3. 채우시는 주(27-30)

세상을 살아가면서 염려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 건강, 자녀의 문제로 염려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의 염려로 하나라도 해결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염려하지 말라

예수님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느냐고 묻고 계신다.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6:27)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함을 믿어야 한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은 영원함을 기억하고, 그 분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 할 수도 없고 덜 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3:14)

우리는 무엇으로 인해 자주 염려하고 있을까? 예수님은 음식보다, 의복보다, 목숨과 몸이 더 중요하지 않냐고 물으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6:25) 예수님은 작은 것도 능치 못하면서 왜 다른 것을 염려하는지 물으신다.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그런즉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능치 못하거든 어찌 그 다른 것을 염려하느냐.”(12:25-26)

 

하나님이 키우시는 백합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분이시다. 자연 모든 만물은 하나님이 지었고,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을 기억해야 한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6:28) 예수님은 백합화는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않지만 하나님이 키우심을 말씀하신다.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아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12:27) 우리에게 공급하실 주님을 신뢰하며 각자의 형편가운데서 나누어 줄 수 있는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한다. 있는 자들은 없는 자들에게 옷과 먹을 것을 나누어 주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3:11)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예수님은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백합화 한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음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6:29) 솔로몬은 어떤 영화를 누렸었을까? 솔로몬 왕은 마시는 그릇이요, 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는 천하 열왕보다 컸다.”(대하 9:20-22) 그런데 이런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보다 백합화 하나가 더 아름답고, 그 보다 더 우리를 사랑하시며 삶을 책임지시는 주님이 우리의 주가 되심을 기억해야 한다.

 

믿음이 작은 자들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입히시는 분이심을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6:30)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어떤 것들보다 우리를 가장 소중히 여기심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풍랑을 만나 무서워하는 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고,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잔잔하게 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신대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8:26)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음을 믿는 믿음을 반드시 가져야 한다.

 

4. 먼저 구할 것(31-33)

우리는 채우시는 주님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살아가며 구하되, 무엇을 먼저 구하며 살아가야 하며 무엇을 염려하지 말아야 할까?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지 말라

우리는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먹을 것, 마실 것을 놓고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6:31) 또한 다윗은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영히 허락지 아니하시리로다.”(55:22)고 고백한다. 베드로도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고 말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 5:7) 우리는 마음속의 염려를 모두 주께 맡기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은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말씀하신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2) 우리는 염려가운데 있지 말고 하나님을 높여야 한다. 다윗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말한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103:13) 주께 긍휼함을 입기를 소망하며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주의 얼굴을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한다.

 

먼저 그에 나라와 의를 구하면 더하시리라

우리는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필요를 구하되,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다윗은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 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라 여호와를 찾는 자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한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34:9-10)

우리는 복음 안에 있는 자들로서 무엇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 바울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말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7)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하나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임을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 안에서 최고로 만족한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하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나누는 삶을 살아가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5.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34)

그리스도인들은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고 하루하루 주님만 의지하고 기쁨으로 주 안에서 즐거워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예수님은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함을 말씀한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6:34) 세상이 주는 평안과 차원이 다른 주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우리 마음가운데 충만하여 염려를 마음 밖으로 던져버리고, 늘 기쁨으로 승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14:27)

 

6.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받아(요일 4:9),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천국백성의 삶을 살게 됨을 믿고(고후 5:17),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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